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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님의 서재입니다.

병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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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작품등록일 :
2020.03.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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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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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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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DUMMY

교육관으로 돌아왔다. 정훈장교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 문득 휴대폰 없이 이렇게 오래 지낸게 언젠가 싶었다. 아마 휴대폰을 처음 가진 이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몸에서 때놓은 적이 없을 것이다. 정훈장교는 휴대폰을 보는 훈련병들의 눈치가 보여 주머니에 넣었다.

“조교, 다 왔나?”

“그렇습니다.”

“식사, 다들 맛있게 했나요?”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은지라 평소보다 힘이 났다.

“오늘 병사식당은 뭐 나왔지? 햄버거?”

“그렇습니다. 오늘 빵식 나왔습니다.”

“빵식 그거 처음 먹을 땐 정신 못 차리지.” 정훈장교가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웃었다. “그런데 지금 먹으라면 못 먹겠어.”

정훈장교가 리모콘을 누르며 영상을 틀고 교육을 재개했다. 영상 속 사람들은 진영을 막론하고 다급히 움직이고 있다. 개척단 사람들은 오전 교육에 봤던 탄환 제조 공장에서 급하게 탄약을 만들고 있다. 사막 형제단 사람들은 출동 직전인 듯 장비를 착용하고 소총을 점검하고 있다.

“첫 협정은 사실상 임시방편이었을 뿐이고, 두 진영은 겉으로는 화성에서 상생을 지향했지만 그 뒤로는 많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개척단들은 언제 사막 형제단들이 협정을 파기할 지는 모르지만, 분명 먼저 쳐들어 올 것이라는 건 확신하고 매 보급선에 화기도 넣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이전에 개척단원들 대부분이 기술자, 공학자, 과학자들 위주였다면, 사막 형제단과 협정을 맺은 이후에는 전문적으로 무기를 다를 줄 아는 인원들도 보냈습니다. 우주개척 협정 때문에 군인을 데려올 수는 없지만, 전역한 군인들을 경비원이란 명목으로 화성에 데려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구 외 행성을 무장하기 시작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죠.”

보급선 안에 탄 인원 중 무장인원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 심지어 일부 보급선에는 식량 일부를 제외하면 탄과 화기들, 그리고 이를 사용할 인원들만 탑승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상 이때부터 아까 배웠던 3번, ‘화성을 포함한 지구 외부의 어떤 행성에서도 군사 활동을 금지한다’라는 조약은 의미가 퇴색되어갔습니다. 개척단원들과 지구의 미국, 러시아, 중국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들이 만든 조약을 자기 손으로 파기시키기엔 명분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사막 형제단과는 정식으로 협정을 맺었고, 이는 지구의 아랍 형제단 지지국들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당시 지구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영향권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공동체가 사막 형제단이었습니다. 위 세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는, 제 3세계권과 특히 옛 이슬람권 국가들을 하나로 뭉쳐 강대국들에게 밀리지 않는 준국가급 공동체로 성장했기에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상이 바뀌었다. 이번엔 지구의 모습이다. 미국 본토의 우주기지에서 보급선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추진체가 굉음과 빛,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았다. 관제센터에서는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문제없이 수송선을 보내며 서로 자축하고 있는 동안 레이더에 미확인 비행체가 잡혔다. 자축하던 인원들은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 레이더를 확인했다. 수송선이라기엔 너무 빨리, 그리고 공격적으로 날아왔다. 비행체는 수송선과 불과 1km 옆까지 날아왔다. 급히 수송선 승무원에게 교신을 보내봤지만 이내 미확인 비행체는 수송선과 접촉했다. 화면 너머 폭발하는 보급선이 보였다. 잡음이 들리더니 이내 교신도 끊겼다.

“폭발한 수송선 잔해는 도심에 떨어지면서 피해는 더 커졌습니다. 미 정부는 수송선 잔해를 회수하는 동시에 미사일 잔해도 찾았습니다. 내심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제 미사일이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수송선을 추적해 격추시킬 정도의 로켓공학을 가진 나라는 지금 화성에 진출한 국가들 뿐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 예상은 맞았지만, 반 만 맞았습니다.”

잔해 사진을 보였다. 미 서부 해안 쪽에 떨어진 추진체 잔해다. 옆에는 추진체를 인양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찍혀있다.

“운 좋게도 추진체 잔해를 찾았습니다. 보통 미사일 잔해는 상공에서 터지면서 폭심지로부터 넒게 퍼지기에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운 좋게도, 당시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인양하던 한 인부의 신고로 추진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소로 인계된 추진체는 이내 제조국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의외의 국가, 아니 집단의 짓이란 걸 밝혀냅니다. 바로 사막 형제단이었죠.”

영상은 군용트럭에 물자를 싣고 창고에서 소총을 꺼내는 개척단원을 보여준다. 무장 목적으로 데려온 인원들 뿐 아니라, 후방의 연구원들도 기관단총이나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비록 트럭 위에 발사대를 거치한 급조품이긴 하지만 로켓포까지 가지고 있었다.

“미군 수뇌부들은 러시아와 중국에게 화성에서의 군사 작전 실행을 진행할 것을 촉구했지만, 의외로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자신들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적이 없는데, 굳이 자기 국가들의 인재들까지 희생시켜가며 거대한 사막 형제단과 물리적 충돌을 감행해야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었죠. 미국은 두 국가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큰 실망을 하고 이내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협정을 깨면서 독자적으로 우주에서의 단독작전을 펼칠지. 아니면 지구에서 어디있는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사막 형제단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해야할지, 어느 쪽을 선택하던 미국은 골치가 아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주개척협정을 파기하기엔 다른 두 국가의 군사력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지구에 남아있는 사막 형제단을 공격했다간, 화성에 있는 사막 형제단 병력들이 개척단을 공격할 게 뻔했으니까요. 거기에, 미국은 우주 이주를 위해 지구 국방비 예산을 크게 줄였던 터라, 이전만큼 강한 군사력도 아녔습니다. 우주와 지구 양 쪽에서 교전을 유지할 능력은 되지 않았단 거죠.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허나, 무얼 고르든 잘못된 선택으로 화성탐사기지가 사막 형제단에게 공격당한다면, 비판의 화살이 누굴 겨눌지는 뻔합니다.”

영상은 열심히 토론하는 미국 국회의사당을 보여줬다. 너나할 것 없이, 침을 튀겨가며 논쟁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 여기서 미국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수호가 바로 손을 들었다.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그저 손든 수호를 쳐다봤다.

“135번 훈련병, 유수호.”

“네, 말해봐요.” 정훈장교가 손으로 가리켰다. 수호는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이내 확실히 기억났다.

“화성에서 독자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맞아요.”

영상에서 성조기를 단 인원들이 무장한 채로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국적 인원들도 무장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다. 요새에서 총을 들고 지평선을 응시하는 무장 경비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벽 아래 다리맡에는 탄약을 가득 채운 상자들이 있었다. 급조 로켓포와 폭발물들도 준비됐다. 장비들은 조악하지만, 철저한 준비태세를 갖췄다.

“미국은 지구상에선 수송선 격추 사건을 묻었습니다. 별다른 외교적 행동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화성과 긴밀한 연락을 통해 공격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화성탐사기지와 사막 형제단 캠프는 230km 정도 떨어진 거리였습니다. 차량을 이용한다면 금방 접근 가능한 거리지만, 문제는 이 사이가 전부 평지라 차량을 이용하면 사막 형제단 경계병력들에게 발각당할 게 뻔한 경로였습니다. 그렇다고 우회를 하려니 험한 산맥이 있어 당시 우주차량 기술력으로는 돌파하기 곤란했습니다. 항공 수송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전진하지 않고 로켓포로만 선제 타격을 가했습니다.”

영상 속 로켓포가 섬광을 내뿜으며 탄을 발사했다. 네 발의 로켓이 사막 형제단의 기지를 향해 날아갔다. 다만 명중 장면 영상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위성으로나마 멀리서 관측한 영상은 볼 수 있었다. 네모난 물체 주변에 네 개의 폭염이 피어올랐다.

“미국은 전면전 대신 포격으로 선제공격했습니다. 로켓포는 모두 미국 소속이었고, 사막 형제단은 일단 국제법상으로는 국가로 인정받지 않았기에 선전포고 없이 공격해도 위반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은 미국이 자국 수송선이 파괴되었으니, 자신들이 책임지는 선에서 공격을 진행한다고 통보받았고, 이 포격이 사막 형제단들의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자, 항의할 명분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미국의 시나리오대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일이, 그것도 인간이 우주에 첫 우주선을 보낸 이후 가장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영상은 수많은 나라의 군인들을 비췄다. 육해공 모두 섞여있지만 공군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모드 하나같이 당황하고, 바삐 움직였다. 인공위성이 보여주는 영상을 자신들은 믿을 수 없었다. 달과 불과 500km 떨어진 곳에 하나, 그리고 화성 궤도에 하나 생겼다. 블랙홀과 비슷하지만 여태 관측됐던 블랙홀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이 무언가가 웜홀이라고 밝혀진 건 우연이었다. 러시아제 인공위성 하나가 노후화로 궤도에서 이탈했다. 어차피 폐기 직전이고 군사용도 아닌 민간 위성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위성이 궤도에서 이탈한 지 1주일 뒤, 화성탐사기지에서 교신을 보냈다. 해당 위성이 화성 궤도에 도착했다는 교신이었다. 이동 중이라 해도 믿기 어려울 판에 도착이라는 교신에 급히 해당 위성의 주파수를 추적했다. 위성은 화성 궤도에서 표류중이었다. 그리고 위성 근처에 강한 에너지가 탐지되었다. 그 에너지와 똑같은 양이 지구 근처에도 잡혔다.

화성개척기지에서 무인기를 보내 지구에서 넘어온 위성을 수거해 조사했다. 노후화로 인한 결함 외에는 어떠한 결함도 없었다. 우주를 연구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저게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웜홀일 것이라고.

“웜홀의 등장으로 우주개척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당시 기술로 약 250일 정도 걸렸는데, 웜홀을 거치면 단 하루만에 화성에 도착할 수 있으니, 연료는 아끼고, 보급품은 더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급이 원활하면 군사 작전을 펼치기 더욱 좋습니다.

미국은 지원자들을 뽑아 웜홀을 거쳐 화성으로 갈 인원들을 선정했습니다. 저게 진짜 웜홀인지 아닌지, 설사 웜홀이라 해도 저 웜홀을 통해 이동하는게 안전한지 따져볼 것은 많았지만, 당장 교전 중인 미국은 감행해서 성공했을 시에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강행했습니다. 이전과 같은 사고가 터지지 않기 위해 더욱 철저한 방공망을 펼친 채로 보급품과 자원자 마흔 명을 태운 수송선이 지구를 떠났습니다. 당시 교신 기록이 남았으니까, 영상 보면서 교육 이어갈게요.”

“휴스턴, 여기는 노르망디. 현재 상공 20000피트. 기체 이상 없다.” 수송선 조종사가 본부에 교신을 보냈다. 수송선은 하늘 높이 치솟으며 구름을 뚫었다. 어느새 카메라에서 사라졌다.

“노르망디, 여기는 휴스턴. 현 시간부로 지상에선 기체를 볼 수 없다. 현재 위치 어딘지.”

“휴스턴, 이미 창밖은 검다. 저 아래 지구도 보인다.”

“웜홀은 보이는가.”

“잠시 기다려달라.”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레이더와 창밖을 살피며 웜홀을 찾았다. 교신이 돌아오지 않자 불안한 본부가 재촉했다.

“노르망디?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찾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다. 다만 사전에 받은 항로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항로를 바꾸겠다.”

“알겠다. 도착하면 다시 교신해달라.”

수송선은 웜홀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수송선 안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이나 관제센터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짧지만 길게 느껴진 비행 끝에 수송선은 웜홀 앞에 도착했다.

“휴스턴, 바로 앞에 웜홀이 보인다. 지금 바로 들어가면 되는가?”

“그렇다. 노르망디. 행운을 빈다.”

조종사는 눈을 감고 입술로 무언갈 읇조렸다. 옆에 앉은 부조종사는 성호를 그었다. 눈을 뜬 조종사는 조종간을 앞으로 밀며 옆에 있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추진체가 불을 뿜었다. 수송선이 웜홀 안으로 들어갔다.

“노르망디, 들리면 보고하라.”

“여기는 노르망디.” 조종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가 아닌,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떨림이다. “기체가 많이 흔들린다. 블랙홀 같진 않다. 중력으로 인한 흔들림은 아니지만”

그 말을 끝으로 교신이 끊겼다. 레이더 상에서도 수송선의 위치와 주파수 모두 감지되지 않았다. 관제센터의 모든 이들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움직일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망연자실에 빠진 관제센터 사람들이 헤드셋을 벗기 시작하는 순간, 화성 궤도에서 주파수가 잡혔다. 익숙한 주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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