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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님의 서재입니다.

병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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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작품등록일 :
2020.03.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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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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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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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많은 대화가 오갔고 시간이 흐르며 잔에는 술 대신 음료수가 대신 채워졌다. 다들 적당한 취기에 기분좋게 먹고 마셨다.

“내일 너희들 다 머리 자르자. 석희 엄마가 미용사거든. 잘 잘라주실 거야.” 석희 아버지가 말했다.

“술 냄새는 빼고 오거라. 술 냄새 풍기면서 오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부엌에서 석희 어머니가 말했다.

저녁을 다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서 놀기 시작했다. 낮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놀던 터라 슬슬 다들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슬슬 안 졸리냐?” 석희 책꽂이에서 책을 빼서 읽던 친구가 물었다.

“피곤하긴 한데, 뭔가 자기 아깝다. 이제 아니면 또 언제 놀겠어.”

수호도 피곤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기 아까웠다.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이유다. 지금 자면 지금 이 시간이 끝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이 끝난다는 것은 곧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태 쌓인 피로에 난생 처음 먹어보는 술기운이 모두의 몸을 덮쳤다. 각자 어디에서 잘지 장소도 나누지 못한 채로 침대 위에 서로 엉겨 붙은 채로 잠에 들었다.


눈을 떴는데 다들 일어날 수 없었다. 정신은 몽롱하고, 머리는 망치로 맞은 것처럼 깨질 듯이 아팠다. 수호는 머릿속으로 ‘이게 숙취구나’라 직감했다. 처음 겪어보는 숙취는 상상 이상으로 괴로웠다. 깨질 듯한 머리만큼 아픈 건 속이었다. 어제 기껏해야 맥주 한 캔 밖에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숙취로 괴로워했다.

시계를 보니 시침이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손가락을 접으며 몇 시간 잤는지 계산하려 했으나, 몇 시에 잠에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이내 단념했다. 가누기 힘든 머리를 남는 배게 위에 얹으며 두통을 달랬다.

문을 두드렸다. 석희 어머니였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명의 덩어리들이 채 술이 덜 깬 창백한 안색으로 아직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보았다. 그걸 보고 침실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이 첫술 가르친 애들 꼴 좀 보지 그래?”

“왜 그러는데?” 석희 아버지가 침대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누워있는 아들과 친구들을 보고 웃었다.

“그거 마시고 저렇게 힘들어 해?”

“지금 그럴 말 할 상태가 아니잖아요.”

“괜찮아. 나도 저랬어. 얘들아, 일어난 거 맞지?”

“예.” 석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석희 역시 속이 좋지 않았다.

“힘들겠지만, 일어나라. 너희들에게 꼭 필요한 약을 만들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탁으로 가자 김이 나는 국이 올라와있다. 노란 국물 안에는 콩나물과 생선포가 들어있다.

“이게 뭐에요?“”수호가 물었다.

“술 먹고 다음 날에 먹는 약.” 석희 아버지가 말했다.

“북엇국이야. 속 달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다.”

석희와 수호를 포함해 다들 집에서 아버지들이 아침에 먹는 것을 보았다. 한 명만 이 음식이 뭔지 유심히 쳐다보았다.

“왜 그러니?”

“아뇨. 그냥, 처음 보는 음식이라서요.”

“그래?” 석희 아버지가 물었다. “너희 아버지는 한 잔 하시고 뭘 드시니?”

“음식은 안 드시고, 그냥 차 한 잔 하시던데요. 녹차요. 한 잔 마시고 한숨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멀쩡하시더라고요.”

다들 국에 밥을 말아서 한술 떠 입에 넣었다. 담백한 생선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삼키니까 속이 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그 책에서 읽었던 플라시보 효관가보다. 수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들 말없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정신없이 퍼먹다 보니 이내 국그릇은 바닥을 들어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쓰린 속은 달랬지만 몽롱한 머리는 여전했다. 다들 더 놀 상황이 되지 않았다. 겨우 잡은 정신줄로 석희네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인사를 드리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 문이 열리자 수호의 어머니가 수호를 마중 나갔다.

“너는 오면 연락을 해야지 왜” 말을 잊지 못했다. 창백한 수호의 얼굴을 봤다. “너 안색이 왜 그래?”

“술을 덜 깼어요.”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아침은?”

“먹고 왔어요.”

씻지도 않은 채 옷만 갈아입고 침대 위에 쓰러졌다. 2분 만에 코를 골았다. 모든 일이 하루만에 일어났다. 술에 취한 머리는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졌다. 귀에 들리는 코골이도 천천히 들렸다. 푹신한 침대 매트릭스 밑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멀쩡히 움직이는 건 벽에 걸린 시계 뿐이다.





머리를 밀고 난 이후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갔다. 오만 핑계를 대가며 친구들을 만나고 밤새 놀았다. 새벽에 들어와도, 심지어 밤을 새고 아침에 들어와도, 집에서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가끔 술냄새 난다고 핀잔 주는 수현을 빼면 한 달 동안 수호의 생활은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었다. 매일 새벽 집에 들어와 술 냄새와 먼지 냄새나는 옷을 옷걸이에 걸며 달력에 x자를 치는데, 앞으로 남은 빈칸이 한 칸 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즐거운 술기운이 확 날아갔다. 머리 아픈 숙취만 남았다. 마른 침을 삼켰다. 펜을 달력에 두드리며 아직 x자 치지 않은 마지막 한 칸을 보았다.

졸업 후 처음으로 오전 8시 전에 일어났다. 출근 준비하던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수호를 보고 놀랐다.

“너 이제 왔냐?”

“아뇨.” 입에 든 거품을 세면대에 뱉었다.

“그러면. 또 밤 샜어?”

“아뇨. 이제 일어난 건데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냐.”

아버지는 무슨 일인가 싶어 수호를 한참 쳐다보다 이내 시계를 보고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수호가 식탁을 보았다. 식탁 위에는 아직 밥이 없다. 아직 어머니가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식탁 위에 떨어진 식빵 부스러기를 보아 수현이 대충 먹고 갔다는 걸 짐작했다. 싱크대에도 설거지 하지 않은 잼 묻은 칼과 접시들이 들어있다. 행주를 물로 행궈 식탁을 닦았다. 새 접시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토스트기에 식빵 두 조각을 넣고 빵이 익는 동안 계란을 구웠다.

한창 계란을 굽는 사이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부엌에 서있는 수호를 보았다.

“이제 왔니?”

“아뇨. 아빠랑 똑같은 소리 하시네.”

“그럼. 이제 일어났어?”

“네. 엄마도 식사하실 거죠?”

“응”.

“이거 먼저 드세요. 제건 또 구울게요.”

토스트기가 튕기는 소리를 내며 식빵을 뱉어냈다. 잘 익은 계란과 식빵을 접시 위로 옮겨 식탁 위에 올렸다.

“잼 드려요?”

“그래줄래?”

선반 문을 열어 잼을 꺼냈다. 분명 딸기잼인데 안에 갈색 덩어리가 져있다. 아마 수현이 땅콩버터를 발랐던 칼을 그대로 썼던 것이리라.

“안에 땅콩버터도 섞였는데, 괜찮아요?”

“상관없어.”

딸기잼을 어머니께 드리고 자기 걸 다시 굽기 시작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났어?”

“그냥 눈이 떠지던데요.”

“갈 때 되니까 몸이 벌써 군인 다 됐네.”

“그런가 보죠.”

수호 계란과 식빵도 다 익었다. 접시에 담아 어머니 앞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오늘 지나면 한동안은 사회 밥 못 먹을 텐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어머니가 물었다. 수호는 생각했다. 평소 먹고 싶었던 거라면 다 찾아가서 먹었다. 놀만치 놀고 먹고 싶은 것들 다 먹으며 지내왔던 터라, 질문을 받아도 딱히 원하는 음식이 단박에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요.”

“저녁까진 생각해봐. 마지막인데.”

뭐가 좋을지 계란을 씹으며 생각해봤다. 주변에서 말하기론 군대에 가면 가장 그리운 음식이 단 음식들이라고 말했다. 가면 다른 건 몰라도 군것질거리가 굉장히 귀하다고 들었다.

“단 거?”

“단 음식? 구체적으로 어떤 거?”

“어···” 머리를 굴려봤다. 단 음식이 뭐가 있을까. 아이스크림. 과자. 빵. 그러다가 케이크가 생각났다. 내일 떠나면 한동안 생일도 군대에서 지내야 한다.

“케이크 하나 사다 줄 수 있어요?”

“케이크?” 예상치 못한 답에 어머니가 되물었다.

“네.”

“그래. 저녁에 사다줄게.”

아침 식사가 끝났다, 수호는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했다.

“갈 때 되니까 갑자기 효자가 다 되네.” 어머니가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석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태 들은 석희 목소리 중 가장 낮은 목소리로 받았다.

“어디 아파? 목소리 왜 그래?”

“이제 일어났어.”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제 마지막이라고 아빠랑 계속 마셨거든.”

“너도 참 대단하다.”

“지는 얼마 전까지 같이 마셨으면서.”

“내일 같이 출발할래?” 수호가 물었다.

“아니, 좀 힘들거 같은데. 나 오늘 친척집 가서 인사드리고, 거기서 바로 출발할 거 같아서. 부대 앞에서 보자. 나도 너네 부모님들한테 인사도 드리고.”

“그래. 그럼 그러자.”

몇 번의 잡담이 오가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시간이 평소보다 유독 안 가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지막 하루인데, 이렇게 집에서 멍하니 보낼 수는 없었다. 찬장 유리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머리에 까치 몇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무작정 씻고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가장 빨리 오는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영화관에 갈 때 자주 타던 버스를 탔다. 창밖을 보고, 휴대폰도 좀 만지작 거리다보니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차벨을 누르고 내렸다. 평일 낮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오갔다.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제복과 군복 입은 사람들도 몇 명씩 보였다. 표정으로 보아 휴가나온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보이지 않는 군복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눈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닌, 마음이라는 렌즈를 끼고 본다는 책의 구절이 생각났다. 정말 그 말이 맞나보다.

정작 오기는 했는데, 어딜 갈지 정하지 않은 터라 갈 곳이 없어졌다. 도로 위에 서서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1월의 아사 행성은 도로에서 외투 하나만 믿고 서 있기엔 추운 행성이다. 들어가 시간을 보낼 장소를 찾았다. 계속 둘러보았지만 제일 만만한 건 역시 카페였다. 가장 가까운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엔 사람이 많았고, 주문을 기다리는 줄도 길었다. 다행히 자리가 몇 개 남아서 자리에 짐을 먼저 올려두고 줄을 섰다. 줄은 점점 짧아졌고, 이내 수호 차례가 왔다. 머리를 묶고 유니폼을 입은 점원이 주문을 받았다. 수호는 제일 싼 커피를 시켰다. 싸다고 시켰지만 5천 주켈이다. 식사 한 끼의 반 정도 되는 가격을 커피 한 잔에 치르며 돈을 건냈다. 1분 정도 기다리자 김이 나는 뜨거운 커피가 나왔다. 쟁반 위에 얹어 가방을 놔둔 자리로 갔다.

평일 낮 카페는 시끄럽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 자기네 종족 의상인지 처음 보는 의상을 입은 사람들, 테이블 옆에 자는 아이를 실은 유모차를 놓고 수다를 즐기는 어머니들, 그리고 군인. 또 군인이 보인다. 책상 위에 정모를 놓고 커피를 마시며 남들처럼 수다를 떨고 있다. 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군인들을 쳐다보며 커피를 마셨다. 검은색 정복에 왼쪽 가슴에는 몇 주 전 석희네 집에서 본 석희 아버지 정복에 달린 것과는 다르게 생긴 훈장들이 박혀있다. 앞에 앉은 사람 가슴에는 낙하산 모양 휘장이 달려있다. 저게 다 무슨 의미인지 수호는 모른다. 뒤통수에서 시선을 느낀 두 군인이 수호 쪽을 쳐다보았다. 수호는 잽싸게 시선을 손에 든 휴대폰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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