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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님의 서재입니다.

병정개미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타짐
작품등록일 :
2020.03.19 21:28
최근연재일 :
2020.03.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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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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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DUMMY

편지가 왔다. 하나는 불합격통지서, 하나는 입대통지서. 보자마자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봉투를 열어봤다. 안에는 접힌 종이가 있다. 이 종이에 수호의 운명을 결정지을 내용이 적혀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종이를 펼쳤다. 두 눈을 떴다.


본 대학에 보여주신 귀하의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모든 재능있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었으나, 정원 상 문제로 모든 인원들을

선발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기회에도 저희 대학과 인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사대학교총장 인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가 다시 빼보았다. 설마 떨어질까 했는데, 정말 떨어졌다. 천천히 면접 때 상황을 되집어 보았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자세가 삐뚤었을까? 아니면 자신감 없는 말투? 무엇이 되었든 현실이 두 통의 편지로 수호에게 전해졌다. 대입실패, 입대.

1층 우편함에서부터 15층 집으로 올라가는 길까지 속이 메스꺼웠다. 코끝이 아려왔다. 무엇이 이렇게 아픈 걸까. 시험에 떨어져서 아픈 걸까, 아니면 군대에 가야 하는 게 아픈 걸까.

집으로 들어와 통지서를 자세히 읽었다. 나라에서 귀신같이 대학 떨어진 건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날에 통지서를 보냈을까.


현역병 입영 통지서

성명:유수호

생년월일:2064년 7월 13일

주소:아사 행성 아사주 10구역

입영부대:아사 행성 기초군사훈련소

입영일시:2082년 1월 23일



연방 병역법 제16조에 의거 위와 같이 현역병으로 입영할 것을 통지합니다


통합인류연방 아사행성지부 병무청


꿈이 아니다. 볼을 꼬집었다. 눈물이 핑 돌만큼 아팠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릴 때 종종 상상하던, 나 어른 될 즈음엔 굳이 군대에 안 가도 될 거란 환상은 망상이었단 걸 갓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봉투 하나는 열지 않았다. 불합격통지서다. 열지도 않은 봉투를 구겨 통지서가 담겼던 봉투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웠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잿빛이다.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생기지 않는다.

여동생 수현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들리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현이 집 안 불이 켜진 걸 보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는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제야 수호의 이름을 부른다.

“유수호, 없어?”

“넌 오빠 이름을 막 부르냐.” 수호가 문을 열고 거실에 있는 수현을 봤다.

“있으면 대답을” 수현이 수호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췄다. “무슨 일 있어?”

“아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 이미 죽상인데. 아 맞다, 오늘 오빠 대학 결과 나오는 거 아니야?”

“그 얘긴 하지 말자.”

그제야 수현이 상황파악을 했다. 수현 역시 대학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이미 학교에서 돌고 도는 소리다. 남학생들이 대입에 떨어지면 어디로 가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어, 음. 그래서 오빠, 언제 가?”

“어딜 가.”

“군대.”

“다다음 달.”

“와, 엄청 빨리 가네.”

“시끄럽다.”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괜히 여동생에게 화가 났다.

“엄마 아빠는 알고?”

“어떻게 알아, 나도 이제 봤는데.”

수현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오빠 표정을 보아 이 이상 놀리면 자기한테 불똥이 튈 거란 것을 눈치챘다. 조용히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수호는 석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등학교부터 친구로 지내오던 석희는 일찌감치 대입에 뜻을 접고 입대를 준비하던 친구다. 전화 건지 채 오 초도 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왜. 바빠.” 석희가 받자마자 귀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게임하냐?”

“어, 바빠. 뭔데.”

“나 떨어졌다.”

“뭐?” 이제야 수호쪽에 집중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바꿔 들며 석희가 말했다. “너 필기 잘 치지 않았냐? 만점 받은 거 같다면서.”

“면접에서 망쳤나보다. 근데 불합격 통지랑 같이 뭐도 같이 온 줄 아냐?”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 수화기 너머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수화기 넘어 폭소가 터져나왔다. 석희는 게임을 끄고 자기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내가 말했지, 같이 동반입대 하자니까.”

“넌 신청했냐?”

“이미 했지. 나 내년 1월 입댄데.”

“어? 나돈데?” 수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잿빛이 번졌다. “너 어디로 들어가는데.”

“뭘 물어. 이 동네 남자들 가는 훈련소가 거기 말고 있냐. 아사 기초훈련단. 너도 거기 아냐?”

“어. 맞아.”

“캬, 어떻게든 같이 들어가긴 들어가겠네. 머리는 밀었냐?”

“오늘 결과 나왔다니까.”

“그러니까 나랑 같이 동반입대 하자고 했잖아. 괜히 이상한 곳으로 찢어지게 생겼네.”

“이렇게 될 줄 알았냐고.”

“조만간 만나서 머리나 같이 밀자. 슬슬 깎았어야 했는데, 잘됐네. 언제 자를래?”

“2주 전?”

“그래. 그럼 그 주 주말에 가자.”

“그래.” 석희의 목소리엔 입대를 앞에 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가고 싶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통화를 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오늘 날짜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진하게 쳐진 채로 ‘발표날’이라 적혀있다. 빨간 마커를 꺼내 X자를 쳤다. 앞으로 저 달력을 한 장만 더 찢으면, 자신은 군대에 갈 것이다. 수호는 이불로 머리를 덮었다.


눈을 떴다. 온몸에 위화감이 들었다. 팔을 움직여보는데 자기 팔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을 주면 줄수록 오히려 더 힘이 빠져만 갔다. 고개를 돌리는 것마저 힘이 들었다. 온 힘을 주어 겨우 주변을 살펴보았다. 늪지다. 처음 보는 늪지 진창에 빠진 수호는 어쩔 줄을 몰랐다. 수렁은 수호를 점점 삼켜갔다. 팔다리를 마구 휘져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진창은 점점 수호를 삼켰다. 온몸의 힘을 목에 모아 비명을 질렀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두 번 더 비명을 질러보았다. 목구멍이 막힌 듯 쇳소리만 날 뿐,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단 한 번의 마지막 힘을 모아 비명을 질렀다. 목구멍을 막은 진흙이 뚫렸다. 비명을 질렀다. 두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눈앞에 빛이 들이닥쳤다.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빛은 수호의 눈을 찔렀다. 눈물이 맺혔다. 겨우 빛에 적응이 된 눈을 뜬 수호는 주변을 보았다. 익숙한 천장. 벽. 이불의 감촉. 그리고 눈앞에 거대한 덩어리 세 개가 나타났다.

“허억!”

식은땀이 났다. 거친 숨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옆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현이 재밌다는 듯 웃고 있다. 아직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다.

“뭐, 뭐야. 여기 어디야.”

“오빠, 꿈꿨어?”

“어? 뭐?”

꿈이라는 단어가 수호의 정신을 현실로 되돌렸다. 덩어리 세 개는 수현과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그제야 온몸에 힘과 피가 돌았다. 몸을 일으켜세웠다. 다시봐도 가족들이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니? 아파?”

“아프긴 무슨. 꿈꿨네.” 수현이 옆에서 거들었다. 온몸에 힘이 다시 빠졌다. 배게 위로 머리가 쏟아졌다. 살다살다 이렇게 더러운 꿈은 처음 꿨다.


식탁 위에 김이 나는 음식들이 올라왔다. 다 수호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입맛이 수호와 다른 수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정부렸다.

“왜 오빠 좋아하는 거만 올라와.”

“위로해줘야지.” 찌개를 식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막 옷을 갈아입은 아버지가 수호 옆에 앉았다.

“필기는 잘 쳤다더만, 면접에서 실수했니?”

“뭐, 그런 거 같아요.” 수호는 입맛이 없다.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이 있던 입맛도 없앴다.

“애썼다.” 찌개를 한 숟갈 뜨며 말했다. “그럼, 입영통지서도 같이 왔겠네?”

“두 달 뒤에 오래요.”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겠네. 나 때는 2주 전에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아버지도 저처럼 떨어져서 갔어요?”

“아니. 나는 지원했다. 예전에 말해주지 않았니?”

“그랬던가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버지도 병으로 군대를 갔다왔단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계란을 한 젓가락 집어먹었다. 폭신하고 달콤한, 온기 가득한 맛이다. 기분이 조금 풀어진다.

“석흰가, 너랑 친하다는 그 친구. 그 친구도 입대하냐?” 아버지가 수호에게 물었다.

“네. 저랑 같은 날에 가더라고요.”

“부대는 똑같을 거고.”

“그렇죠. 거기 말고 더 없으니까요.”

“가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다녀라. 네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고.”

“네.” 수호는 놀랐다. 그 엄격한 아버지가 풀어줄 정도라니. 기쁘기보다, 오히려 군대란 도대체 어떤 곳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오빠, 오빠. 요즘은 군대 기간 얼마나 돼? 3년?”

“2년인가. 그 정도 될 거야. 근데 네가 알아서 뭐하게. 지원하게?”

“아니. 그럴 리가.” 놀리듯이 웃었다. “그동안 오빠방 내 옷장으로 쓰려고.”

참 기운 빠지는 부탁이다. 자기는 군대에 끌려가는데, 그거로 한몫 잡으려는 여동생이 얄미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입장이 다르다는 것 역시 수호는 알고 있다.

“그래. 써라. 써.”

“컴퓨터도 내 꺼.”

“그걸 왜 네가 써. 선 넘지마.”

“어차피 갈 사람인데. 주고 가.”

“수현아, 네 오빠 아주 가는 거 아니니까, 적당히 떼 써라.” 아버지가 수호의 편을 들어주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은 막내딸을 더 끔찍이 여기는 사람이다. 항상 오빠니까 양보하란 말을 들어왔는데, 오늘만큼은 아버지가 수호의 편을 들어주었다.

“에이. 2년이면 긴데, 그냥 오빠 컴퓨터 나 주고, 오빠 전역하면 새로 하나 사줘요.”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어서 밥 먹어라. 깨작깨작 그게 뭐냐.” 수호의 어머니가 대화에 끼었다.

“다 내가 싫어하는 거잖아. 하다못해 계란에 햄이라도 넣어주던가.” 야채밖에 들어있지 않은 계란을 뒤적거리며 수현이 투정을 부렸다. 평소와 같은 식탁 위 대화다. 비록 아버지가 수호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익숙하진 않은 일이지만. 이런 일상적인 대화마저 앞으로 한 달 후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남기고 뭐하냐?” 아버지가 물었다.

“속이 안 좋아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불을 끄고 이불로 머리를 덮었다. 잠에 들었다. 다행히 아까 그 악몽은 또 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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