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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님의 서재입니다.

병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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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작품등록일 :
2020.03.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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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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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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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정훈장교는 계속 수업을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이 수송선을 놓친 게 훗날 추가 협정으로 이어지면서 개척단에게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당시 상태로만 보면 수송선이 기지로 바로 오지 않은게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이거 한 번 보시죠.”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분명 복장은 우주복인데, 들고 있는 장비들은 고철이다. 고철이지만, 목적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보인다. 왼손에는 방패 용도로 든 철판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철판을 날카롭게 갈고 손잡이 부분에 플라스틱으로 대충 붙인 듯한 급조 무기를 들고 있다. 무장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대체로 날붙이를 들고 있지만, 그마저도 물자가 없었는지 쇠파이프를 든 사람도 있었다. 결사항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좀비가 나오는 영화에서 급히 무장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수호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녔는지,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당시 무장 상태가 이랬어요. 중장비라고는 건설이나 토목용 밖에 없다보니, 최대한 요새를 튼튼하게 쌓아두고, 요새를 뚫는 적들에 한해서 육박전을 할 심산이었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조금 이상하고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버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대충 자르고 간 급조 무기를 들고 요새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습게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비장해 보이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살기 위해 무장하고 싸울 태세를 갖춘 사람들을 정훈장교의 설명과 함께 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몇 달이 지나고도 사막 형제단에서 움직임은커녕, 교신 하나 없었기 때문에 개척단은 사막 형제단이 조종 미숙으로 표류 내지는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본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사막 형제단이 화성을 향해 날아온 날로부터 일 년째 되던 날, 사막 형제단에서 개척단에게 교신을 걸었습니다.”

정훈장교가 시계를 봤다.

“너무 오래 떠들었네요. 10분 동안 쉴 사람은 쉬고, 화장실 갈 사람은 조교 인솔 따라서 가면 됩니다. 조교? 인원들 모아서 화장실 갈 사람들 통제해줘요.”

“알겠습니다.” 벽에 기대고 있던 유성 조교가 다시 일어났다.

“화장실 갈 인원 일어나서 본 조교 앞에 일렬로 위치합니다.”

수호는 석희가 일어나는지 살폈다. 석희가 주변 눈치를 살피다 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웃으며 일어나 조교 앞으로 갔다.

조용히 화장실까지 간 후 조교와 멀리 떨어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거 대화하기 힘드네.” 석희가 웃었다.

“너 졸았냐? 학교에서 수업시간마다 조니까 걱정되더라.”

“안 졸았어. 나 정훈장교님 바로 앞자리라 졸기는커녕 딴짓도 못해.” 소변기의 물을 내렸다. “너는 재밌었겠다. 학교 다닐 때도 역사 제일 좋아했잖아.”

“제식하다가 역사 들으니까 훨씬 낫지. 그런데 내 옆 동기는 졸려 죽을 지경이더라. 내 어깨에 머리 얹고 졸더라고. 식겁했잖아. 우리 뒤에 조교 있었는데.”

“너 이거 듣고 다음 주 훈련은 어떻게 버틸거냐.”

“몰라.” 수호는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어떻게든 버텨야지. 못 버티겠다고 여기가 빼주는 동네도 아니고.”

“열, 많이 컸다?”

“집합 20초 전.” 유성 조교가 화장실 안에 머리를 집어넣고 말했다. 다들 복명복창을 하고 하던 동작을 빠르게 마쳤다. 나중에 보자는 인사말도 하지 못한 채 복도 옆에 집합했다.


“다들, 잘 쉬었나요?” 정훈장교가 물었다. 훈련병이 큰 목소리로 답했다.

“밖에서 받는 훈련보다는 편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교육은 교육인만큼 여러분들 중엔 이거 역시 힘든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꾹 참고 들어준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속 이어서 교육 진행 할게요.”

꺼졌던 홀로그램이 다시 켜졌다. 터번을 쓰고 돌격소총으로 인원들이 개척단에게 교신을 거는 장면이다.

“사막 형제단의 수장 이븐 라시드는 개척단에게 자신들의 우주에서의 주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개척단을 이루는 세 국가들은 자기들끼리도 뒤에서 권력 투쟁을 해오던 터라, 여기서 더 파이를 뺏길 수는 없었습니다. 개척단은 처음엔 요청에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라시드는 현재 화성에 상륙한 자신들의 병력을 보였습니다. 2020년도에 사용하던 구식 소총이지만, 당시 화성에는 그거만큼 강한 화력의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화성에서 국지전이 벌어진다면, 말이 국지전이지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질 것이란 건 개척단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개척단 고위 간부들은 급히 회의를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막 형제단의 주권을 적어도 ‘당장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 건 다들 인정했습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저들의 주권을 인정하냐였죠. 영토를 정하는 협정을 어정쩡하게 진행한게 거대한 전쟁의 시발점이 된 건 인류가 나무로 만든 배를 타던 시절부터 이미 일어난 역사적 진리입니다. 여러 회의 끝에, 사막 형제단에게 사막 형제단 수송선이 정박한 위치를 기준으로 무려 1000제곱킬로미터라는 넓은 지역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사막 형제단 역시 개척단이 제안한 지역을 토대로 화성에서 자신들의 영역이 장차 자신들의 계획에 있어 좋은 기점으로 좋은 곳이라 판단하고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이게 ‘1차 화성 협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면 학교 수업처럼 될 거 같으니, 1차 협상은 여기서 줄일게요.”

정훈장교는 정신없이 말하고 난 뒤에 책상 위에 놓인 물을 마셨다.

“이 물도, 화성 시대까지만 해도 참 귀한 물건이었는데, 제2의 지구가 무더기로 발견된 이후로는 옛날 지구시대처럼 흔한 물건이 된 걸 보면, 참 세상사 딱 정해진 건 없는 거 같아요.”

정훈장교가 시계를 봤다. 11시 20분이다.

“조교? 식사 인솔은 10분 전에 보낼 거지?”

“그렇습니다.” 유성 조교가 대답했다.

“그럼 45분까지 교육하고, 생활관으로 올려보내자. 여러분도 괜찮죠?”

“예!”

“계속 교육 이어갈게요. 화성에서의 협상은 나비처럼 평화롭게 끝났지만, 그 날갯짓이 지구에선 폭풍을 일으켰죠.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바로 라시드의 출신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그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시 지구에서 가장 보편적인 자원이었던 석유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가 위상 역시 위태로웠기에, 뒤에서 세 강대국을 상대로 첩보전이나 비정규전을 지휘했단 의혹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었지만요.”

훈련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놀랍게도 석희였다.

“네, 질문하세요.”

“아직 물증은 안 나왔습니까?”

“네. 물증은 지구의 마지막 인류가 이주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상이 바뀌었다. 아까까지 협상 테이블에서 표면적으로나 서로에게 웃음을 보이며 조약서에 서명하던 사람들은 이내 서로가 서로에게 적개심을 대놓고 보였다.

“지구에서 우주 이주 계획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국제연합의 지구 포기 선언이었습니다. 이미 2020년대 후반부터 지구 환경이 극적으로 나빠졌고, 우주 탐사 기술은 물론, 기초적인 로켓 기술만 가지고 있는 국가들도 모조리 자국민들을 지구 밖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우주선 개발, 테라포밍 기술개발, 추진제 개발 등 여러 개발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 개발을 가장 먼저 끝낸 나라들이 앞서 화성개척의 시작을 알린 미국,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었습니다.”

영상이 바뀌었다. 개척단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까 철판과 폐금속으로 급하게 무장한 모습과는 달리, 방탄복과 헬멧, 그리고 소총으로 전과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철저하게 무장한 개척단원들이다.

“사막 형제단의 습격 이후, 개척단은 구식 무기라도 자신의 몸을 지킬 무언가가 없다면, 지금은 황무지를 줬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걸, 어쩌면 모든 걸 넘기게 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세 국가들은 보급품을 보낼 때마다 지구에서 쓰지 않는 도태장비들 일부를 개조해서 개척단에게 보냈습니다. 화성에 처음 쓰인 무기들은 2000년대 초반에 쓰이던 미제, 또는 러시아제 소총과 민수용 산탄총이었습니다. 어쩌면, 제2의 미국 서부개척이라고 할 수 있던 시절이죠.”

소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한 개척단원들이 이전 사막 형제단의 습격 때 지은 요새에서 경계를 서는 모습이 보였다. 바위에 표식을 새겨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과 탐사 기지 내에 급하게 만든 총알 제조 공장이 보였다.

“총을 보냈지만, 총알이 없으면 총은 칼보다도 못한 무기죠. 그래서 개척단원들은 지구에서 쓰던 민수용 총알 제조 키트를 조금 개조해서 탄환을 자체 조달했습니다. 생각보다 잘 쏴졌다네요.”

영상을 틀었다. 개척단원 세 명이 방탄복과 방음 헤드셋을 끼고 있다. 산탄총을 견착하고 표식을 새긴 바위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 상태가 좋지 않은지 총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황한 사격 부사수들이 달려와 사태를 진압하며 영상이 끝났다.

“협정 이후 화성 내전으로 내용이 이어지는데, 그 내용은 식사 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교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유성 조교가 일어나 인원들을 복도로 집합시켰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인원을 보고 교육관 안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오전 교육 태도,”

훈련병들이 침을 삼켰다. 혹시나 존 인원이 있을까 걱정했다.

“이상 없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4일 간의 모든 교육도 오늘 같은 태도 유지해주기 바랍니다. 그럼, 여기서 바로 취사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뒤에 보이는 문으로 나가겠습니다.”

건물 뒷문 앞에서 인원들이 오와 열을 맞춰 줄을 섰다. 그동안 숱한 얼차려가 훈련병들 개개인에게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어떤 자세로 서야하는지 똑똑히 교육했다.


“소대장 훈련병, 앞으로.”

소대장 훈련병이 교번을 부르며 줄 왼쪽에 섰다.

“소대장 훈련병 구령 하에 취사장으로 이동합니다. 실시.”

“앞으로 갓.”

소대장 훈련병의 명령이 떨어지자 똑같은 타이밍에 오른발이 나갔다. 수호는 아직도 이런 자신의 모습이 신기했다. 단 일주일 만에,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던 자신이 남의 구령에, 남과 같은 타이밍에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움직이면서도 믿겨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러한 생활이 어색했지만, 입대 3일 차 만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머리가 아닌 발로 생각하면 가능하다. 지금도 걷는 중에는 교관과 소대장 훈련병의 명령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입대 전 자기 아버지와 석희 아버지가 해주던 말이 진짜였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건 수월하게 적응해 나갔다. 일어나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일찍 자는 건 쉬웠다. 평소의 몇 배 더 힘든 생활을 하니 베개에 머리만 뉘어도 눈꺼풀이 바로 감겼다. 그러나 밥만큼은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첫날은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없이 입에 밥을 넣었지만, 둘째 날 아침부터 혀가 밥맛을 인식했다. 중학교 급식이 수호가 먹어온 단체급식 중 가장 맛없는 급식이었는데, 이곳 밥은 중학교보다 더했다. 간은 극단적으로 짜거나 싱거웠다. 간이 적당한 날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 식판에는 밥 대신 빵과 고기패티가 올라왔다. 말로만 듣던 군대버거를 처음 맛보는 날이 오늘이다. 모든 훈련병들의 얼굴에 기대가 가득 담겼다.

식탁에 앉았다. 포장지에 쌓인 빵과 고기패티, 평소 국을 담아주던 칸에는 시리얼이 담겨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딸기잼도 식판에 담겼다.

“웬 잼?” 훈련병들은 햄버거와 잼이라는 생소한 조합에 의문을 품었다. 혹시 군대 케첩은 이렇게 생겼나 싶어서 젓거락으로 찍어 핥아봤다. 화학적인 향이 강했지만, 딸기맛이 났다.

“어느 지역이 햄버거에 잼을 발라 먹지?” 석도가 숟가락으로 잼을 뜨며 말했다.

“군대 일찍 갔던 친구들이 군대에선 햄버거에 잼 발라 먹는다고 하던데, 거짓말이 아녔네.” 한도 숟가락으로 잼을 퍼 빵 한 면에 발랐다. 햄버거와 같이 보니 어색한 잼이지만, 훈련병들은 큰 불만 없이 빵에 발랐다. 어쨌든 여태 먹었던 맛없는 짬밥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딸기잼을 바른 햄버거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아니, 입대 이후 먹었던 음식들 중 가장 맛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찬바람 부는 1월의 야외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제식을 할 동안 단 음식이라곤 종교행사 때 받은 작은 과일주스뿐이었다. 딸기잼을 처음 볼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딸기잼을 너무 조금 준 취사병들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로 단맛을 음미해가며 햄버거를 씹었다. 시리얼마저 집에 있을 땐 잘 먹지 않는 싸구려 시리얼이지만, 부대에서는 최고의 진미였다. 곡물류를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는 걸 군대에서 다시 깨달았다. 수호는 살면서 가장 오래 음식을 씹으며 먹었다.

식사시간이 평소보다 오래걸렸다. 조교는 천천히 먹는 훈련병들을 다그쳤다.

“놀러왔습니까. 빨리 먹고 교육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식사 완료까지 앞으로 3분 더 드리겠습니다. 실시.”

“실시!”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훈련병들은 정신없이 남은 햄버거를 씹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삼키고 침에 남은 고혹적인 딸기향 단맛을 음미하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교육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내내 그 단맛이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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