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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님의 서재입니다.

병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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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작품등록일 :
2020.03.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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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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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인상 좋은 조교는 그 마지막 한 마디를 듣고 쿡 웃음소리를 냈다. 김유성이 입영장정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고개를 돌려 눈빛으로 경고를 주었다. 어깨를 으쓱 하곤 일어나 침상 앞에 섰다.

“저기 아까 도와준 애들 보이네.” 낮에 상자를 들어준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찬영 조굡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훈련소라고 너무 빡빡하게 잡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말을 멈추고 김유성 쪽을 보았다. “어쨌든, 전 여러분들에게 지킬 건 지켜주길 바랍니다. 6주가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닌데, 서로 얼굴 안 붉혀야 좋잖아요. 안 그래?”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답 해 줘.”

“맞, 맞습니다!” 인원들이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구먼. 이번 기수들 느낌이 괜찮아.” 뒤를 돌아 김유성에게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김유성이 일어나 침상 앞에 섰다. 아까 전까지와는 달리, 입영장정들은 긴장한 채로 귀를 열었다.

“김유성 조교입니다. 2제대 담당 조교이자, 3소대 총괄 조교를 맡고 있습니다. 소대 내에서 생활하다가 궁금하거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저에게 와서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어떤 스타일인지는, 오늘 오후 같이 지내면서 파악했으리라 믿습니다. 맞습니까?”

“예!”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교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김유성은 3소대 첫 번호부터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시켰다. 각자 출신지의 이름을 불렀다. 나이는 대게 20살 내지 21살이 많다. 전자는 대입을 실패했거나, 아예 대학을 갈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고, 후자는 대학에는 입학했지만 대체 복무 시험을 치지 않았거나 떨어진 사람들이다. 후자는 24살이나 25살, 제일 많은 사람은 29살도 있다. 저런 사람들한테는 말을 편하게 하래야 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그나마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 교류할 일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수호는 양옆 사람의 이름을 이 시간을 통해 알았다. 오른쪽에 앉은 인상 좋아 보이는 사람은 22살의 최한이란 사람이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이제 입대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선 화학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왼편에 앉은 험악한 인상의 사람은 의외로 번듯한 일을 하다가 온 사람이다. 이름은 구마석이다. 학교는 고등학생 때 자퇴를 택하고, 삼촌 밑에서 기술을 배우다가 영장을 받자마자 입대를 택했다고 말했다. 험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수호는 마석의 나이를 짐짓 높게 예상했다가 자신과 동갑이란 걸 듣고는 놀랬다. 역시나,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전 소대원들의 긴 통성명이 끝나고 교육 몇 개를 받고 나서 어느덧 시계는 오후 8시 40분을 가리켰다. 김유성 조교가 생활관 안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현 시간부로, 각자 청소 구역을 배정할 겁니다.” 옆에 유관호 조교가 코팅된 종이를 들고 벽 한 면에 걸었다. 김유성 조교가 그 종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 각자가 청소할 위치가 있습니다. 청소위치는 주 단위로 돌아가면서 배정될 예정이니 배정된 청소구역에 불만 가지지 않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현 시간부터 21시 30분까지, 청소 실시합니다. 실시!”

김유성 조교의 말에 모든 인원들이 각자의 청소 구역을 확인하러 갔다. 청소 구역은 교번 별로 나뉘어져있다. 수호는 양옆 구마석과 최한과 같이 화장실 청소에 배정됐다. 세 명 모두 화장실 청소에 배정된 걸 보고 표정부터 구겨졌다.

“화장실이면, 어떻게 청소해야죠?” 최한이 물었다.

“식당에서 일할 때는 세척 로봇이 도와주긴 했는데, 아마 여긴 없을 거니까 시골 화장실 청소하듯이 해야겠어요.” 구마석이 답했다. 수호와 최한이 고개를 돌려 마석을 보았다.

“어떻게 하는데요?” 둘이 동시에 물었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마석이 화장실 벽을 유심히 보았다. 이내 찾던 물건을 찾았다. 수도꼭지다.

“여기에 고무호스를 끼워서 한 명이 바닥에 물을 뿌리면, 나머지가 빗자루로 쓸어내면 돼요.”

생각보다 더 구식인 청소방법에 최한과 수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집에서는 기계 하나만 키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인력으로 해결하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특히 대학교까지 갔다가 군대에 온 최한의 충격은 더했다.

“생각보다 더 하네요.”

“그럼, 누가 물 뿌릴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처음하는 청소 방식이다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마석이 말했다.

“물 뿌리는 게 그나마 쉬워요.” 마석이 수호와 최한을 보더니 최한에게 호스를 건냈다. “아까 보니까 우리 셋 중에서 제일 나이 많으신데, 쉬운 거 하세요.”

수호는 내심 자신을 주길 원했지만, 연장자 배려라는 대의명분을 깨면서까지 자신에게 호스를 달라고 할 순 없었다. 조용히 빗자루를 들고 나머지 하나를 마석에게 건냈다.

“그럼, 틀게요.”

최한이 수도꼭지를 돌렸다. 녹이 슬었는지 꼭지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마석이 다가가 힘을 주자 그제야 물이 나왔다.

“바닥에 쓸 듯이 뿌려야 저희한테 안 튀어요.”

능숙하게 청소를 지휘하는 마석을 보고 수호는 여태 마석에게 품었던 오해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기회가 된다면, 친해지고 싶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몸을 써서 청소를 하는게 얼마만인가 계산해봤다. 침대 이불 개는 거나, 책상 위를 정리하는 간단한 정리 말고, 진짜 청소는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다. 중학교부터는 기계가 다 청소를 담당했다. 당장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몸으로 청소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게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빗자루로 물을 씻어내고 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걸 경험할 줄은 몰랐다. 수호는 복도 너머 다른 사람들을 봤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도 다 얼떨떨한 표정이다. 수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순간이동 기계를 만드니 마니 하는 시대에 몸으로 걸레질을 하다니. 교과서에서 검은색 교복을 입고 목재 학교 바닥을 청소하는 먼 조상님 모습과, 지금 자신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유성 조교가 말한 시간이 되었다. 유성은 오늘 통틀어서 가장 엄격한 표정과 함께 생활관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모든 입영장정들은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시계를 확인하고 전원 제자리에 착석했다. 수호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입대 전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그 중에는 항상 점호가 있었다. 훈련소 점호가 그렇게 빡세다더라, 훈련소 점호는 최악이다, 무수한 괴담을 들으면서 왔다. 진정하려고 했지만, 다리가 떨리는 건 막을 수 없다. 100미터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뛴다. 얼차려를 받고 난 직후에도 이 정도로 뛰진 않았다. 첫 점호를 맞이하는 입영장정들 모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유성 조교는 조용히 소대장 훈련병을 불렀다. 간단한 보고 요령을 알리고 생활관 문 앞에 서서 돌처럼 서있는다. 가만히 서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조교를 보고 다른 입영장정들 역시 긴장한 채로 자신들의 첫 점호를 기다렸다.


방 너머 복도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과장하듯 목소리를 크고 길게 늘어뜨리며 복도의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전체 차렷!”

두 명의 사람이 복도에서 무어라 대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3소대 생활관은 중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 무슨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고, 이내 유성 조교가 오른쪽으로 돌아 외치기 시작했다.

“3소대 저녁점호 인원보고! 총원 143명! 현재원 143명! 이상 저녁점호 준비 끝!”

보고를 마친 유성 조교는 다시 왼쪽으로 돌아 복도를 응시했다. 유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점호를 기다렸다. 양반다리를 너무 오래 해 두 다리는 저려왔고, 앉은 차려 자세를 유지하는 두 팔은 아려왔다. 유성 조교가 보고 하고 20분이 지나서야 또 다른 사람이 생활관에 왔다. 옷에는 처음 보는 계급장이 박혀있고, 왼팔에는 두 줄이 그여진 완장을 차고 있다. 명찰에 점호 전 교육 때 들은 당직사관이다. 자세는 여유로우나, 날카로운 눈으로 생활관 곳곳을 살폈다. 유성 조교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당직사관은 2제대에 서 있는 소대장 훈련병 앞으로 갔다. 소대장 훈련병은 처음 하는 상황과 자신을 지켜보는 두 사람에게 받는 무언의 압박감은 소대장 훈련병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입술을 떠는 채 아무 말도 못하는 소대장 훈련병을 보고 조교는 입술을 씹었다. 다행히 당직사관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첫 보고니까, 실수할 수 있지. 유성아, 네가 대신 보고 해라.”

“알겠습니다.” 낮지만 화가 났음을 알 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대장 훈련병을 자리에 보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표정이 아마 저럴 것이라 수호는 생각했다. 유성 조교가 빈 자리를 채우고, 두 사람은 경례를 주고 받은 뒤에 보고가 시작됐다.

“3소대 인원보고, 총원 143명, 현재원 143명! 현재원 번호!”

구령에 맞춰 1제대에서부터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큰 목소리에 웃음 보다는 절박함의 감정이 담겨졌다. 그러나 웃으면 안 된다는 명령은,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불러왔다. 긴장되는 분위기와 상반되는 웃긴 목소리는 모든 인원들은 내면의 웃음과 싸움을 이어갔다.

번호는 1제대를 넘어 2제대로 왔다. 수호는 다가오는 차례와 숫자를 보고 자신이 몇 번인지 속으로 계산했다. 자신이 43번 째라는 걸 계산했을 때, 이미 옆의 최한이 자신의 번호를 외쳤다.

“마흔셋!”

목소리가 조금 갈라지긴 했지만, 번호는 틀리지 않았고 옆의 석도 역시 자신의 번호를 틀리지 않았다. 보고가 3제대로 넘어갈 때까지 긴장을 풀리지 않았고, 마지막 인원이 ‘번호 끝’을 외치고 나서야 안심했다.

“옆 소대는 다 한 명씩 번호 실수하던데, 여긴 그런 인원이 없네. 이번 기수 소대원들 상태가 괜찮아.”

당직사관의 칭찬에 다들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첫 날이니, 앞으로 생활 잘 하라는 말만 남긴 채 사관은 돌아갔다. 돌아간 당직사관은 마이크로 점호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러나 감히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조교는 말없이 각 제대를 둘러보았다.

“첫 점호, 큰 문제 없이 잘 끝냈습니다. 앞으로 남은 모든 점호, 오늘처럼만 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 한 마디가 너무도 기분 좋았다. 오늘 처음으로 유성 조교에게 칭찬 들었다.

유성 조교가 시계를 보았다. 점호가 조금 늦어 시계는 이미 9시 50분을 넘어, 54분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시각 21시 54분, 22시 4분까지 화장실 갈 사람들 갔다 오고, 불침번들은 불침번 준비하도록. 취침 이후 30분 까지는 유동인구 없으니, 물 먹을 사람 화장실 갈 사람은 지금 빨리 갔다옵니다. 이상, 점호 끝.”

인원들은 그제야 자세를 풀고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물을 마시러 갔다. 수호는 화장실을 가는 길에 1제대로 갔다. 석희도 화장실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짧은 10분이 훈련소에 와서 제일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다.

“드디어 하루가 갔네.” 석희가 손에 묻은 물을 털며 말했다. “우리 이만큼 했는데 729일이나 남았어.”

“네가 날짜를 왜 세냐. 어차피 남으려던 거 아녔어?”

“하루 있어보니까,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 거 같아.”

“그럼 뭐하게.”

“몰라. 아직은 안 정했는데.” 그러면서 웃으며 말했다. “아직 1년하고 364일이나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하려고.”

그렇게 웃으면서 남은 생활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석희가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또 부러웠다. 복도에 조교가 나와 2분 남았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빨리 가자. 겨우 첫 날 곱게 보냈는데, 늦었다고 혼날 순 없잖아.” 석희가 수호를 데리고 화장실에서 나갔다. 생활관으로 돌아가자, 이미 볼일을 본 사람들은 침상 위에 매트리스를 펴고 잘 채비를 끝냈다. 시계를 보니 이제 오후 10시가 조금 넘었다. 밖이였다면 한창 놀 시간인데, 이제 자야한 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몸과 눈은 이미 잘 채비를 마쳤다. 눈꺼풀은 무겁고, 몸에는 기운이 없다. 다행히 오늘은 불침번이 없다. 배게에 머리를 대고 모포를 덮었다. 이불과 배게가 집에서 쓰던 것 보다 더 거칠고 불편했지만, 배게를 베자마자 눈꺼풀은 배로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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