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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님의 서재입니다.

병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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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짐
작품등록일 :
2020.03.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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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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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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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DUMMY

두어 번의 얼차려를 더 받고 나서야 교육관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교육관 안에는 여러 의료기기들과 군의관들이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벽에 일렬로 서서 기다립니다.”

조교의 말에 병력들이 벽으로 붙었다. 조교와 군의관 한 명이 대화를 했다. 짧은 대화 후에 군의관이 병사들 쪽으로 다가갔다.

“어, 지금부터 간단한 건강검사 할 거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알겠지?”

목구멍부터 귀찮음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표정부터 자세, 발바닥까지 의욕이라곤 한 점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조교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생전 처음 와보는 장소에서 극단적인 인간들만 보니 수호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순서대로 가면서 각 부분에서 교번이랑 이름 불러주고, 측정 결과 말해주면 돼. 자, 출발.”

얼떨떨한 표정의 병력들이 일렬로 한 명씩 앞으로 나아갔다. 키와 몸무게를 쟀다. 가슴둘레와 허리둘레를 쟀다. 적은 카드를 옆 조교에게 넘겼다. 피를 뽑았다. 그리고 아무 장비가 없는 탁자 앞으로 갔다. 수호는 탁자 앞의 의자에 앉았다. 역시나 심드렁한 표정의 군의관은 아무런 의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픈데 있어?”

아픈 곳은 딱히 없다. 있어도 괜히 말하기는 싫었다. 아무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말하기가 싫었다.

“없습니다.”

“그래. 다음.”

의욕없는 군의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수호를 넘겼다. 앞뒤로 아픈 곳을 호소한 사람들을 보았지만, 역시나 심드렁한 목소리로 진찰하는 척만 하고는, 앞으로 넘기는 군의관을 보고나서 그런지, 이 모든 건강검진들이 보여주기식이라는 느낌 말곤 들지 않았다.

마지막 책상에서 수호는 종이컵을 받았다. 평소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으면 나오는 컵이랑 똑같이 생겼다. 군의관은 그 컵에 소변을 반만 받으라고 말했다.

“나오자마자 바로 담지는 말고,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고 한 3초 기다린 다음에 받아.”

“왜 그렇습니까?” 수호 앞사람이 물었다.

“첫 소변엔 세균이 있어서 제대로 검진이 안 돼.”

역시나 심드렁한 목소리지만, 수호는 최소 이 군의관만큼은 자기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만난 모든 검진하던 군의관은 이 같은 간단한 말조차 하지 않았다. 종이컵을 받았다. 소변을 빨리 보기 위해 주스도 한 컵 받았다. 오렌지 주스다. 소변 검사에 앞서 오렌지 주스를 보니 되려 입맛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달기보다는 씁쓸한 맛이다.

주스를 마시고 종이컵을 들고 화장실로 가자 소변을 담고 나오는 석희와 만났다. 입소식 이후 처음 만난 터라 더욱 반가웠다. 주변 눈치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자리 어디야?” 수호가 물었다

“나 맨 오른쪽 라인. 나도 너 계속 찾았네. 복도 집합 할 때도 안 보여서 계속 찾았잖아.”

“진짜 정신없네. 여기서 어떻게 6주나 있어?”

“벌써 앞이 깜깜하네. 야, 먼저 간다. 여기서 대화하다 걸리면 또 엎드릴라.” 석희는 그러고는 종이컵을 들고 군의관에게 갔다. 헤어진 수호는 종이컵을 들고 소변기 앞에 늘어진 줄에 동참했다. 줄을 선 사람들의 눈에는 공통적으로 정신이 쏙 나간 듯한 힘빠진 눈동자가 들어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수호의 눈 역시 정신이 나가있었다.

소변기 앞에 서자 여태 마렵지 않던 소변이 마려워졌다. 주스의 힘일까.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군의관 말대로 조금 기다리다 종이컵을 소변 줄기에 놓았다. 소변을 종이컵 반 만큼 채우고 다시 종이컵을 치웠다. 소변기 물을 내리고 손을 씻었다. 괜히 찝찝해서 손을 평소보다 더 오래 씻었다. 종이컵을 군의관에게 가져다주었다. 군의관은 종이컵에 수호의 이름을 쓰고 다시 복도에서 대기하라고 말했다.

복도에는 모든 검진이 끝난 사람들이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다. 수호는 앞에 석희가 있나 살펴보았지만, 모두 똑같은 까까머리라 뒤통수만으론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열심히 뒤통수와 뒤통수 사이에서 석희의 뒤통수를 찾는 사이에 조교가 줄 옆에 나타났다.

“우선 이 줄부터 생활관으로 복귀하겠습니다. 앞으로 가.”

조교의 구령 아래 인원들이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다시 돌아온 생활관은 여전히 어색했다. 삭막했다. 여전히 석희는 보이지 않는다.

“각자 자리에 앉아 조용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떠들지 않습니다.”

할 말만 하고 조교는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수호가 있는 자리에는 수호를 포함해서 겨우 네 사람만 돌아왔다. 그 네 사람 중 오른편에 앉은 선한 인상의 사람도 있었다. 수호는 우선 이 힘든 훈련소 생활을 버티려면, 석희 다음으로 이 사람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공간일수록 사람을 잘 사귀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야 이 힘든 공간, 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신체검사가 끝나고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생활관에 조교와 똑같은 모자를 썼지만, 인상은 전혀 다른 군인이 들어왔다. 모자로 보아 저 사람도 조교리라 추측했다. 조교는 자기 몸 쯤 되는 크기의 상자를 생활관 안으로 들고 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구 나 좀 도와줄래?” 조교가 입영장정들에게 물었다. 조교의 부탁을 듣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자신들의 조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모자로 보아 저 사람을 도와줘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침상 맨 가장자리에 앉은 두 명이 조교를 도와 상자를 옮겼다.

“휴, 고마워.” 이빨까지 보이며 웃는 조교는 아까 본 여태 본 이 부대 군인들 중에서 가장 친절한 인상이다. 수호는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을 봤다. 투명한 봉투로 포장된 옷들이었다. 내용물을 지켜보는 입영장정들을 보고 조교가 말했다.

“이거 너네 활동복이야. 앞으로 군생활 하면서 입을 잠옷. 그리고 이건 너네 속옷.”

수호는 이 옷을 군대 관련 시트콤에서 본 기억이 났다. 세부적인 디자인은 조금 다르지만, 색과 전체적인 디자인을 보아 자신이 생각하는 그 옷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 옷을 입고 2년 동안 자는 자신의 모습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상자를 다 옮긴 조교는 상자를 벽 옆에 두고 갈 길을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원래 조교가 돌아왔다. 조교를 보자마자 수호는 온몸에 기합이 들어갔다. 어릴 때 책에서 읽은 한 실험이 생각났다. 개한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쳐줬더니 종소리만 들어도 개가 침을 흘렸다는 실험. 파블로였나, 파블로프였나.

조교는 생활관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이게 여러분들 활동복과 보급 속옷들입니다. 아까 신체검사에서 자신의 신체 사이즈 다 확인했을 겁니다. 맞습니까?”

“예!”

“여기서 자기 사이즈에 맞는 옷을 찾으면 됩니다.”

교번 순서대로 한 명씩 나와서 자기 사이즈에 맞는 활동복과 속옷을 찾아갔다. 포장지에 사이즈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어 자기 사이즈를 찾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상자 안에는 긴팔 활동복과 반팔 활동복 두 벌이 있었다. 나중에 한 벌씩 더 보급될 거라고 조교가 말했다.

“반팔은 여름에 입고, 그 외에는 긴팔을 입을 겁니다.”

아사 행성은 유독 계절 변화가 뚜렷한 행성이다. 1월의 아사 행성은 쌀쌀하거나 춥다. 수호는 부디 저 긴팔 활동복이 따뜻하길 바랬다.

모든 인원들이 총 두 벌의 활동복을 챙긴 걸 보고 조교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관물대 위를 보면 상자 하나가 있을 겁니다.”

일제히 고개를 돌려 관물대 위를 보았다. 납작하게 접힌 상자가 놓여있다.

“저 상자에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들고 온 모든 짐들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짐들이란, 여러분들이 지금 입고 있는 사회 옷부터, 싸 온 모든 짐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보호대나 개인 약도 넣어야합니까?”

“말했듯, 외부 물품은 일체 놔두면 안 됩니다. 밤에 점호 시에 적발되면, 불이익을 받을 겁니다.”

또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지병 때문에 먹는 약도 넣어야 합니까?”

이번엔 조교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일단 놔두고, 나중에 군의관님이랑 추가 상담하겠습니다. 아까 건강 검진 할 때, 군의관님에게 말씀 하셨습니까?”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약 계속 챙겨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엔 없습니까?”

“예.”

조교는 다시 생각했다.

“일단은, 가지고 있는 거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호는 어머니가 싸준 가방이 생각났다. 그러게 왜 괜히 싸줘가지고 짐을 늘렸을까. 아깝다고 생각했다.

조교의 명령 아래에 모든 인원들이 관물대 위에서 상자를 내렸다. 접힌 상자를 펴고 자기가 들고 온 짐을 넣기 시작했다. 수호는 상자 맨 밑바닥에 신발부터 넣었다. 그 위로 어머니가 싸준 가방을 넣었다. 문득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했다 집에서는 열어보지 않았다. 군대에서 외부 물품을 허용하지 않을 줄 몰라서 부대에서 확인할 생각이었다. 조교는 추리를 보고 몰래 지퍼를 열었다. 관절보호대, 내복, 필기구, 공책 따위가 들어있다. 별 거 없다고 생각하고 지퍼를 닫으려는 순간 공책 옆에 끼어있는 하얀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수호는 한 번 더 조교를 보았다. 반대쪽 침상을 보고 있다.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봉투를 꺼내 활동복 밑에 숨겼다. 다행히 조교도, 다른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짐을 싸면서, 사회에서 입고온 옷도 다 벗어서 넣고, 지금 바로 보급받은 속옷과 활동복으로 환복합니다.”

여태 최대한 빠른 몸놀림으로 행동한 입영장정들이었지만, 옷을 벗고 마지막 속옷을 벗는 과정에서 만큼은 모두들 주저했다. 그 모습을 본 조교는 다행히 얼차려를 주진 않았다.

“어차피 전부 남자들입니다. 그냥 벗습니다.”

조교의 차분한 지적은 얼차려만큼이나 효과적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수호는 재빠르게 속옷을 벗고 보급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착용감은 사회 속옷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긴팔 활동복 밑에 숨겨둔 봉투를 하계 활동복 밑에 숨기고 활동복을 입었다. 바지는 허리에 고무줄로 마감한 트레이닝복 같은 착용감이고, 상의는 안쪽에 기모가 달려 꽤나 포근한 착용감이다. 군대에서 처음 받은 보급품이 생각보다 괜찮아 적잖이 놀랐다.

상자에 짐을 넣으면서 계속 또 다른 보급품들이 들어왔다. 세면도구가 담긴 세면백, 필기구, 일기장. 일기장 표지에는 ‘병영일기’라고 가죽제 표지에 인쇄되어있다. 펼쳐보니 안에는 군가 몇 개와 직업군인으로 지원하는 방법 따위가 적혀있다. 읽자마자 바로 덮었다.

가방과 신발, 입고 온 옷들을 다 넣자 상자는 테이프로 감아도 터지려고 할 정도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조교는 제대 별 한 명씩 불러 편지지를 분배시켰다.

“관물대에 접이식 탁자가 있으니, 꺼내서 쓰면 됩니다. 이 편지는, 여러분이 집으로 보내는 택배와 함꼐 보내질 겁니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여기에 쓰면 됩니다.”

편지라. 수호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보던 가족들에게 할 말은 이미 부대로 들어오기 전에 실컷 했다고 생각했다.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쓰고 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무슨 말을 적을까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단 두 줄을 썼다.


잘 있습니다. 생각보다 여기 사람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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