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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전율 님의 서재입니다.

최강의 무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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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전율
작품등록일 :
2021.10.13 04:30
최근연재일 :
2021.12.15 15:39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46
추천수 :
1
글자수 :
37,523

작성
21.10.13 04:32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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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무덤지기 영웅, 디그

DUMMY

[당신은 이름은 ‘디그’, 땅을 파는 자입니다.]

[당신은 이노센트 공동묘지의 무덤지기입니다.]


[성향은 우울, 절망, 무기력입니다.]


“뭐야, 이거..?”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다. 작은 등불만이 빛을 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 테이블 모두 조잡했고, 테이블 위 식기들도 전부 나무로 만들어졌다. 입고 있는 옷은 거칠고, 헤졌다. 몇 겹이나 껴입었는데도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서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리가 생겼다.”


발가락을 움직이자 신고 있는 신발 앞쪽이 꿈틀거렸다. 그때 녹슨 쇠를 긁는 듯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디그··· 물을, 물을 줘.”


탁자에서 물병을 찾았다. 잔에 물을 따라 노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눈도 뜨지 못하고, 입만 살짝 벌렸다. 노인의 상체를 일으키고, 입에 물을 천천히 흘려주었다. 목소리는 노인의 것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정황상 디그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


그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 그가 삼키지 못한 물이 흘러 침상을 적셨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숨도 날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죽었다.


“이렇게 스토리가 시작되는 건가?”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엉덩이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잠깐, 분명 나는 방에서 게임 중이었는데.”


하지만 모든 감각이 너무 선명하고, 생생했다. 테이블을 쓰다듬자 차가움과 나뭇결이 느껴졌다. 기억을 되짚어봤다. 13번째 영웅의 테스트를 해보겠냐는 제작자의 제안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12 영웅’은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었다. 한참 고민했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일단 할 일을 해야겠지.”


침대 위, 디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입을 벌린 채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디그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덕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집을 나와 창고로 들어갔다. 등불에 의지해 적당한 크기의 관을 끄집어냈다. 누구나 묻히는 공동묘지에 귀족이 묻힐 일은 없었기에, 창고에는 조잡한 관 뿐이었다. 가져온 관에 시신을 눕혔다. 시신의 팔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관을 닫았다. 이제 구덩이를 파야 했다.


매장지를 정하고 첫 삽질을 했다.


칵-


반동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추운 날씨로 땅이 얼었다. 몇 번 삽질을 해봤지만, 작은 구덩이를 파내는 게 고작이었다. 기억에 따르면 최소 1m 정도는 파내야하는데, 이래서는 밤을 새워야 했다. 잠깐 삽질을 멈췄더니 땀이 식으며 몸이 떨려왔다.


“...일단 들어가자.”


집에 들어오자 버틸만 했다. 작은 등불은 생각보다 공기를 훈훈하게 데웠다. 무엇보다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침대의 이불도 거칠었지만 보온은 확실했다.


다음날 해가 땅을 녹여주었다. 물론, 여전히 날씨는 추웠고 땅은 거칠었지만 충분했다. 어젯밤은 돌덩이를 내리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삽이 나름 제역할을 해냈다. 구덩이를 파는데, 누군가 무덤지기를 찾았다. 삽을 꽂아두고 구덩이를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왜 네가 나오냐, 무덤지기는 어디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제가 묘지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크흠, 안타깝게 됐군. 받아라.”


디그의 기억이 맞다면, 배가 불룩 나온 이 자는 한스로 이 구역의 행정관이었다. 그가 건넨 주머니에는 동전이 가득했다. 묘지관리비였다. 한스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떠났다.


[동화 50닢, 관을 만들 목재와 식량을 살 때 필요합니다.]


초반에는 이런 식으로 설명이 따라붙지만 나중에는 어떤 설명도 주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정해진 루트도 없고,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도 없다. 그래서 최고의 자유도라는 거다. 하지만 12 영웅 모두 누구나 인정할 만한 업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디그라는 영웅은 도대체가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영웅으로 플레이할 때 가장 큰 단서는 바로 영웅 소개였다. 아주 짧지만 그만큼 확실한 이정표도 없었다. 예를 들면 7영웅 로그라스 임페리얼은 ‘황제’였고 성향은 ‘최강, 성장, 지배’였다. 그래서 영웅을 성장시키고, 부하를 만들어 제국의 황제가 되는 게 목표였다. 8영웅 에드윈은 ‘용사’였고 성향은 ‘결단, 의지, 대담함’였다. 용사인 만큼 대륙에 강림한 악마를 죽이는 게 목표였다.


[영웅의 권능은 발현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권능도 뭔지 알 수 없었다.


“삽질만 해도 죽겠는데, 어떻게 세상을 구해.”


관을 매장할 구덩이 하나 파는 것만으로 숨이 벅차왔다. 매장지는 준비됐지만 문제가 있었다. 하관(下棺), 매장지에 관을 내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기에 사람이 필요했는데,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디그의 기억을 되새겨봐도 없었다.


“씁쓸하네···”


최소 두명은 있어야 관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부탁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죽으면 아무도 모르겠지. 시체는 썩어갈 거고, 그러다 냄새가 심해지면 그때 발견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렇게 시체가 발견되면 언론에서는 신나서 보도할 게 분명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쓸쓸한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오히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지도.’


관을 매장지까지 옮겨왔다. 혼자 하관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관에 박아놓은 나무못을 빼내고 시신을 꺼냈다. 관을 먼저 매장지에 내렸다. 죄짓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신을 밀어 관에 떨어뜨렸다. 추운날씨로 딱딱하게 굳은 시신은 볼품없었다. 구덩이로 내려와 관뚜껑에 못질하고, 흙을 덮었다.


[영웅의 권능 ‘무덤지기’가 발현됩니다.]

[무덤지기는 묘지를 관리하는 자입니다. 그의 묘지에 잠든 망자들은 이제는 자신에게 필요없는 힘과 지혜를 무덤지기에게 양도할 것입니다.]


[죽은 자가 이곳에 잠듭니다.]

[그는 무덤지기였습니다. 그의 경험을 받습니다.]


권능을 확인하자, 곧바로 ‘디그’라는 영웅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법을 알 수 있었다.


“강자의 시신을 이곳에 묻어야겠네.”


다행히 직접 죽인 자만 권능의 대상인 것은 아니었다. 만약 직접 죽인 자의 시신만 대상이라면 난이도가 급상승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빵을 먹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그녀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나갔고, 디그는 다시 삽을 들고 일어섰다. 부지를 정해 삽질을 시작하는데, 아까와 다르게 삽을 다루는 게 편했다. 땅은 여전히 꽝꽝 얼었지만, 구덩이는 빠르게 완성됐다. 권능의 효과인 게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사람이 관을 들고 왔다. 그들의 침울한 분위기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무덤지기는 디그의 성향에 딱 맞는 직업이었다. 장례식은 간단했다. 사제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끝이었다.


[죽은 자가 이곳에 잠듭니다.]

[그는 경비병였습니다. 그의 힘과 경험을 받습니다.]


“흐음···”


무기력했던 몸에 힘이 스며들었다. 물론 경비병의 작은 힘이었기에 무기력한 성향을 몰아내진 못했다. 그래도 도움이 되는 건 분명했다. 사람들이 떠나고, 긴 막대를 꺼내들었다. 막대를 창처럼 내질렀다. 창은 다뤄본 적이 없지만, 몸에 감각에 따르니 그럴 듯 했다.


“오랜만에 훈련을 해볼까?”


막대를 내려놓고 자세를 잡았다. 태권도 겨루기 준비자세를 취했다가 재빠르게 돌려찼다. 정신은 올림픽의 황제였지만, 육체는 삐쩍마른 무덤지기였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엎어진 채로 디그는 실실 웃었다.


“운동을 해야겠네.”


볼품없는 발차기였지만, 만족했다. 두 다리가 생겼다는 게 실감났다. 몸을 단련하고 잠을 자는데, 알람이 떴다.


[누군가 죽은 자의 잠을 방해합니다.]


알 수 없는 알림에 몸을 일으켰다. 살짝 문을 열고 묘지를 살피니, 누군가가 묘지를 파헤치고 있었다. 작지만 뚱뚱한 난쟁이와 크지만 삐쩍마른 길죽이였다. 나서지 않고, 귀기울여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흑마법사의 하수인이네.’


12 영웅에서 흑마법사는 언제나 해치워야 할 적으로만 등장했다. 그들은 전염병과 같아서 초반에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그들에게 시간을 주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실패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주위를 살폈다.


“그나마 쓸만한 게 삽 정도네.”


땅을 파느라 뭉툭해진 삽으로 저들을 처리한다? 불가능했다. 훈련하면서 몸의 상태를 파악했다. 지금 상태로는 둘은커녕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이다. 관을 꺼내는 둘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가 이곳을 떠납니다.]

[그는 경비병이었습니다. 그의 힘과 경험이 사라집니다.]


“...줬다 뺐기냐.”


덕분에 권능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신이 묘지를 떠나면, 받았던 힘도 떠난다. 무덤지기라는 이름답게 무덤을 지켜야 했다.


“너희 둘, 나중에 다시 와라. 그때는 깔끔하게 묻어줄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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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이크 단장과 세바스찬 21.12.15 11 0 9쪽
9 종탑에서의 전투 21.12.14 14 0 9쪽
8 7번 실험체 21.12.13 16 0 8쪽
7 저승나무의 공간 21.10.18 23 0 9쪽
6 율리아 가문묘지 털이 21.10.17 25 0 10쪽
5 네크로맨서 무덤지기 21.10.14 24 0 10쪽
4 시체도둑 처리 21.10.14 24 0 10쪽
3 난쟁이와 길쭉이 21.10.13 22 0 8쪽
» 무덤지기 영웅, 디그 21.10.13 33 0 9쪽
1 현실 +2 21.10.13 55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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