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의 약오르는 상자-4-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클랜을 만든 그때, 따로 가입을 권유할만한 플레이어가 있냐는 질문에 몇몇 클랜원들이 매너있는 플레이어들을 추천했는데 그 중 이윤상, 이윤진 형제가 들어가 있었다. 특히 2차 튜토리얼 시기에 둘이 다른 플레이어들의 준비를 많이 도왔고 실력 또한 훌륭했기에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정훈도 그 둘은 처음부터 염두해 두고 있는 플레이어 이기도 했기에 클랜원 중 누구라도 그 둘과 마주치게 되면 권유해보기로 했었던 것이다.
정훈은 클랜원들을 이끌고 '늑대의 숲' 에서 6레벨 몬스터인 레드임프와 8레벨 몬스터인 우드울프 위주로 안전하게 너구리의 약오르는 상자를 모으면서 레벨업을 하고 있었다. 이윤상, 이윤진 형제가 있는 곳은 정훈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녹색 숲'. 둘이 있는 곳과 비슷한 방향으로 클랜원들과 함께 몬스터 사냥을 나서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 클랜 가입을 권유할 생각이었다. 클랜원들 중에는 검사인 정훈과 전사를 선택한 남태양, 도둑을 선택한 이태연 이렇게 세명이 근접 클래스였고 나머지는 궁수 셋, 마술사 둘, 사제 하나로 이루어져있어 난전 보다는 조금씩 확실하게 몬스터들을 해치우려 했던 것이다. 모두 튜토리얼 때보다는 많이 능숙해 졌지만 그래도 몬스터의 수가 많거나 강하면 좀 불안한 감이 없지않아 있기에 조금 약한 몬스터를 사냥하기로 결정 하고는 비교적 안전하게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클랜원들과 함께 한 무리의 우드울프를 처리한 후 잠시 휴식하기로 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정훈이 이윤상, 이윤진 형제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GM의 눈 스킬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진행 방향이 준보스급 녹색오크 족장의 위치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클랜원들에게 잠시 주위를 돌아보겠다고 자신이 오지 않으면 먼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으라고 하고는 그 형제들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쪽으로 가는 도중 그 형제가 녹색오크 족장의 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미리 점찍어둔, 괜찮은 플레이어들이 당하게 될까봐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아무리 둘이 센스가 좋고 실력이 좋다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10레벨 대 플레이어 둘이 준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무리가 따랐다. 물론 정훈은 GM버프로 50렙대에 가까운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스페셜 어빌리티 찰나의 예술도 사용 가능하기에 상대 할 수 있겠지만. 평소대로 녹색오크 몇마리 정도를 상대하는데 찰나의 예술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급하게 오느라 지속적으로 사용한 여파가 컸다.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아직도 숨이 조금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힐."
둘중 상태가 더 좋지 않은 이윤상에게 먼저 힐을 사용했다. 왼쪽 어깻죽지에 녹색오크의 글레이브에 찔렸는지 자상이 꽤 깊게 나있었고 정훈이 힐을 사용하자 미세하게나마 아무는 듯 했다. 연속으로 힐을 사용하면서 인벤토리에서 소형포션을 꺼내어 상처에 들이 부었다. 이윤상의 얼굴에 아까보다는 화색이 돌기는 했지만 아직 정신을 차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들을까 싶어서 마음속으로 아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GM의 기상나팔은 왜 튜토리얼에서만 사용 가능한거야?'
-너구리라고 광고할 일 있어? 지금 쓰면 이 플레이어들이 네 정체를 금새 알게 될걸?
전기충격으로 이 둘을 깨울수 있지 않겠느냐고 라이트닝 볼트를 써보라고 한 정훈의 머리카락이 아리에게 쥐어 뜯겼다. 농담이라고 너 내 머리 다 뜯기면 어디 숨어있을거냐고 미안하다고 빈 후에야 머리털 몇가닥만을 뽑힌 채 아리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
되는대로 힐을 쓴 보람이 있는지 이윤상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왼쪽 어깨의 상처가 힐과 포션의 힘으로 꽤나 아물긴 헀지만 그래도 많이 고통스러운지 오른손을 왼쪽 어깨에 가져다 대고는 겨우 눈을 떴다.
"이윤상씨, 김정훈입니다. 큰일날뻔 했네요. 자, 이거 마셔요."
정훈은 이윤상의 오른손에 소형포션 하나의 마개를 열어 쥐어주었다. 이윤상은 떨리는 손으로 포션을 받아 마셨다.
"크엑컥컥! 우억···."
이윤상은 소형포션을 한모금 입에 넣었다가 도로 뱉아버렸다. 정훈은 그래도 먹어야 한다며 빨리 한번에 다 마시라고 재촉했다.
"끄으으···."
이윤상은 다 먹고는 눈물까지 흘리며 뒤로 쓰러져서 헉헉대며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포션의 맛은 굉장했으니까. 정훈은 포션을 먹어보고는 '장마철에 워커를 신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통에 워커에 물이 차서 젖은 양말을 3일간 세탁하지 않고 습한곳에 놔뒀다가 식용유를 부어놓은 맛' 이라고 평가한 적도 있었다. 정말 어이없는 맛이긴 했다. 생긴건 이온음료 같이 생겨가지고. 정훈은 포션을 먹기 싫어서라도 왠만하면 안 다치려고 조심해서 행동했고 가벼운 상처는 힐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잠시 누워 있어요. 동생분도 좀 봐줘야지."
'장마철에 워커를 신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통에 워커에 물이 차서 젖은 양말을 3일간 세탁하지 않고 습한곳에 놔뒀다가 식용유를 부어놓은 맛' 의 포션을 마시고 쿨럭거리고 있는 이윤상을 나무 기둥에 받쳐놓고 이윤진에게 다가갔다. 몇번 힐을 써줬지만 마력 스탯도 부족한데다가 스킬 레벨도 1이라 사제들 만큼의 효율도 나오지 않는데 MP가 바닥을 드러냈다. 소형 포션 여러개를 꺼내어 상처에 붓고 있는데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사제인 이윤상이 다가와서 동생에게 온갖 회복마법을 써주었다.
"으윽."
이윤진은 한쪽 눈을 번쩍 떴다. 왼쪽편의 얼굴, 특히 눈은 아까 잘못 맞았는지 심하게 부어서(힐과 포션으로 좀 가라앉기는 했지만 아직도 못볼꼴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뜨여지질 않았다. 그러자 이윤상이 포션을 들고 이윤진의 입에다가 꽂아 버렸다.
"야, 이거 원샷해야 효과 좋아. 반항하지 말고 한번에 마셔."
아마 왼팔이 멀쩡했다면 억지로 턱을 잡고 들이 부어버릴 기세였다. 죽을 위기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 정훈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차피 정훈도 먹일 생각이었으니까 별 말 없이 둘을 지켜보았다.
"끄··· 꺼어어어억. 푸."
포션 특유의 기묘한 냄새와 입냄새의 콜라보레이션이 정훈의 코를 덮쳤다. 정훈이 흐억 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자 이윤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동생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 놈 냄새가 워낙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심해가지고···. 저도 가끔 죽여버릴까 생각하거든요. 죄송합니다."
"허, 하. 괘, 괜찮아요.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거죠. 으읍."
"아, 아, 형. 어? 어떻게 된거지?"
이윤진은 정신이 좀 들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 인(人)자로 바스타드소드가 박힌 채로 땅에 꽂혀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보고 그제서야 상황판단이 되었는지 뒷통수를 긁적였다.
"아··· 맞다. 저 분이 뒤에서 소리지른거 까진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안나네. 혹시 혼자 저 놈 잡으셨어요?"
"저는 뭐 다된밥에 숟가락만 얹었죠."
이윤상은 녹색오크 족장의 시체를 힐끗 쳐다보았다. 옆구리부터 등까지 바스타드소드에 의해 갈리듯이 잘려 있었고 그 상처에서 연결되어 등에서부터 뚫고 나온 바스타드소드가 놈의 몸통에 폼멜까지 들어간 채로 박혀 있었다. 다된밥에 얹은 숟가락은 저런게 아니란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저건 산채로 꼬치구이로 만들어 버린거니까. 라이트닝 볼트에 구워진 내장에서는 아직도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었다. 검에 맞은 몬스터가 구운것 처럼 연기가 모락모락 날리가 없는데 정훈이 튜토리얼 보상 스킬로 마법을 배웠다고 생각하거나 아직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없거나 둘중 하나인 듯 했다.
"전 중간에 기절했는데 꼼짝없이 죽을뻔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치않은 어깨를 부여잡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윤진도 형을 따라 고개를 꾸벅 숙였고 정훈은 손사래를 쳤다.
"아뇨, 별 말씀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급한 상황이라 마구 달려와서 돕긴 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석연찮은 점들이 꽤 있을 법 했다. 근처의 숲이긴 했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발견할 정도로 늑대의 숲과 녹색 숲이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이 둘에게야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해서 구해줬다고 설명한다 하더라도 클랜원들에게는 꽤나 멀리까지 나간 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얼렁뚱땅 길을 잃어버렸다고 설명해야 하나 싶었다.
"정훈씨가 저흴 발견해줘서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너구리시티로 돌아가야겠네요. 크흡···."
이윤상이 근처에 떨어져 있던 스태프를 들려다가 어깨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한쪽 얼굴이 박살나다시피 부은 이윤진도 자신의 장비를 챙겼다.
"감사합니다. 형 부축해서 돌아갈게요. 이 사례는 꼭···."
"아니에요. 같이 가시죠. 안그래도 드릴 말씀도 있으니까요."
정훈은 녹색오크 족장의 몸에 너무 깊게 박혀버린 바스타드소드를 뽑아내려 애썼고 이윤진이 도와줘서 겨우 뽑아낼 수 있었다. 거구의 몬스터가 쿵 하며 쓰러졌고 피범벅이 된 바스타드소드를 근처의 나뭇잎들로 닦아내고는 검집에 다시 집어 넣었다. 정훈과 이윤진은 이윤상을 양쪽에서 부축해서 걸으려 했지만 이윤상이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며 극구 사양했다. 이윤상은 사제 답게 틈틈이 힐로 자신을 치유했고 완쾌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외상은 힐로 곧바로 치료하기는 힘든지 피가 완전 멎지는 않아서 이윤진이 상의의 팔 부위를 찢어서 지혈을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하시고 싶은 말씀이란게···?"
이윤상이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걸음을 떼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정훈의 클랜원들이 있던 곳에서 이 곳으로 오는 길은 정훈이 녹색 오크들을 쓸어버리다시피 해서 깨끗한 편이었다. 물론 녹색 오크들의 시체가 깨끗하단 말은 아니지만. 곳곳에 목이 베이고 심장이 관통당한 녹색 오크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음. 사실 두분 만나게 되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훈은 잠시 말을 끌었다. 너무 우연이라고 강조해서 혹시나 티라도 나지 않을까 슬쩍 둘의 눈치를 봤지만 둘은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우연히' 라는 단어에 크게 주목하거나 하지는 않는 듯 했다.
"몇몇 분들과 같이 클랜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지금 클랜을 가입하셨거나 만드신게 아니라면 함께하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음··· 클랜마스터는 어느 분이죠?"
이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정훈은 이윤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부족하지만 제가 맡고 있습니다. 튜토리얼때 활 들고 같이 싸웠던 여덟 분이 다 오셔서 지금은 저 포함 아홉명입니다. 그 분들 기억 나시죠? 다들 두 분 이야기를 했더니 찬성하더라구요."
"아, 그 키크고 성격 좋던 누나. 전 가입할게요. 형은?"
이윤진이 눈치없이 고지현을 떠올렸는지 한쪽 얼굴이 박살난 채로 기묘하게 웃으며 바로 가입 의사를 나타냈다. 단순해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심하게 부은 채로 저렇게 웃으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이윤상은 그런 동생이 한심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왼손으로 동생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려 했지만 몸이 성치 않아선지 이윤진이 약올리듯 피해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윤상이 수락의 표시를 내보였다.
"멍청한 동생놈과 함께지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둘 다 가입하도록 하죠. 저희도 정훈씨랑은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작가의말
그림을 잘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반쪽이 터져버린 등장인물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네요.
( × д づ ) 음.........더 심하게 줘터져야 하는데 이모티콘으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그나마 쉬운 씨익 웃는 아리 표정? ( ✦ ‿ ✦ )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