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으로 대정령사 - 23
시몬은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계약의 말을 했다.
그렇지만 계약을 여러 번 했다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진 건 아니다.
시몬은 언제나. 매번. 진지하고 진중하게 선택했다.
시몬은 자신의 몸 주변에 생성된 바람을 바라보았다.
바람의 정령이 시몬의 주변을 빙빙 돌며 날고 있었다.
“계약해줘서 고마워. 실프. 바로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시몬은 바람의 정령에게 부탁을 했다.
사람을 찾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손에 해골과 검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해. 나도 본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흐음······.’
나비같이 큰 날개를 가진 실프가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옆에 있는 드리아드의 허리정도 올까 싶은 작은 키였다.
‘사람···? 알겠어.’
실프는 더 묻지 않고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그 모습이 정말로 화려했다. 반짝이는 밤하늘의 은하수가 눈 아래에 내려온 것 같았다.
‘정령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광경이겠지? 조금 아깝네.’
시몬은 실프가 가는 방향을 달려서 따라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래 달리지 못하고 숨이 차 멈추었겠지만, 시몬은 비슷한 속도로 계속 달릴 수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까지 날아간 실프가 시몬에게 다시 다가왔다.
‘찾았어. 네가 말한 사람.’
“오오. 실프. 바람의 정령이라서 그런가 정말 빠르네. 고마워.”
‘그렇지만 여러 명. 틀릴지도 몰라.’
“아냐. 여러 명이라면 오히려 맞을 것 같은걸.”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저기. 서쪽에 삼 층짜리 건물이 하나.’
“건물?”
‘응. 주변에 소가 끄는 수레가 두 대···. 밖에 나온 사람이 다른 건물보다 많은 정도. 그 건물이야.’
시몬은 실프가 말한 방향을 향했다.
멀리 나무에 올라서 실프가 말하는 건물을 찾았다.
“저기 저 건물이지? 아무런 간판도 없고. 지붕에 색도 없는 허름한 건물.”
‘응. 그 건물에 네가 말한 특징을 가진 인간이·····. 꽤 많이 모여 있다.’
“그렇다면 정답이네.”
시몬은 나무 위에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바로 혼내 주러 갈 생각이야?’
시몬의 어깨에서 살라만드라가 툭하니 튀어나왔다.
살라만드라는 신이 났는지 들뜬 목소리로 팔짝 뛰었다.
‘진정해. 살라만드라. 기왕이면 침착하게 행동해야지.’
그런 살라만드라를 달래듯이 노움이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최하급의 정령이다. 자만하지 말라고.’
드리아드 역시 노움처럼 이성적인 말을 했다.
“이런걸 보면····. 너희는 정말 같은 최하급의 정령이라도 모두 성격이라든지 많이 다르구나.”
정신연령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어린 성격인 운디네는 상황을 잘 이해해지 못했는지 그저 웃는 표정으로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시몬. 어디 가?’
시몬은 운디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부터 하는 일은 너와 계약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일이야.”
가족의 상처를 고치기 위해 정령의 힘을 원했다.
소중한 사람이 다쳤기 때문에 힘을 얻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타인을 상처 입히기 위해 정령의 힘을 쓸 것이다.
‘달라?’
“응. 달라.”
운디네는 시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지만 시몬. 걱정해. 걱정하고 있어.’
“걱정? 아아······. 가족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지?”
‘응. 시몬. 나와 계약 했을 때도 걱정했어.’
운디네의 큰 눈이 시몬을 비추었다.
‘그러니까. 시몬은 언제나 같아.’
“그런···. 달라. 지금 나는···.”
시몬은 운디네의 말을 듣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아니. 반드시 다르다고 봐야하나?
시몬은 가족에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불이 난 뒤에 힘들여서 다시 세운 대장간에 들어온 그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아저씨를. 형을. 멋대로 다치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다.
‘가족을···. 두 번 다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 마음은 어쩌면 같은 방향일지도 모른다.
시몬은 운디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덕분에 중요한 걸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생각해낼 수 있었어.”
시몬은 자신의 싸움에서 대의를 찾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가족이 걱정되었다.
“자. 가자.”
시몬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 * *
시몬은 어둠을 달렸다.
몇 개의 건물을 지나서 실프가 말해주었던 놈들의 본거지에 도달했다.
건물 앞에는 짐수레와 몇 명의 보초가 서 있었다.
‘아무래도 경비가 있긴 하군. 네 댓 명 정도인가?’
덩치가 꽤 크고 인상이 험악한 사내 몇 명이 주변을 감시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키가 갑자기 커진 시몬이 보기에도 훨씬 큰 체격이다.
그렇지만 시몬은 멈추지 않았다.
시몬은 달리는 속도 그대로 문으로 향했다.
“잠시만! 거기 네놈!”
“웬 놈이냐!”
당연하지만 시몬의 앞은 경비에게 가로막혔다.
그렇지만 시몬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네 이놈!”
“사람 말이 안 들리냐!”
시몬의 몸은 지금 보통의 사람과 급이 다를 정도로 단단하다.
철괴공을 익힌 덕분에 몸 자체가 단련되어서 강철처럼 강한 것이다.
‘이놈들은 오러 조차 아니야. 이 정도라면 정령을 쓰지 않더라도···!’
시몬은 자신을 잡으려는 팔을 간단히 쳐냈다.
단지 그 정도인데도 상대는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대더니 나가 떨어졌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직 넘어지지 않은 사람 역시 시몬이 몸통으로 밀치자 맥없이 나가 떨어졌다.
“이쪽은 급해서 말이지.”
시몬은 영문을 모르고 쓰러진 사람들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들의 손등에는 검은색의 문신이 있었다.
‘해골과 검 문양···. 틀림없어. 이곳이다!’
시몬은 굳게 닫힌 문을 발로 걷어찼다.
꽤 두꺼운 철문이었지만 시몬의 힘에 맥없이 열렸다.
‘시몬. 사람이···. 꽤 많은 편이다.’
어느새 바람이 분다 싶었더니 실프가 시몬의 주변을 돌았다.
실프는 짧지만 확실한 말을 했다.
“괜찮아. 상관없어.”
시몬은 실프의 말에 대답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나온 내부의 풍경은 평범한 식당에 가까웠다.
여러 개의 식탁과 의자가 열을 맞추어서 있고 벽에 있는 찬장엔 그릇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는 덩치가 좋은 남자 몇 명이 앉아 있었다.
“어엉? 웬 놈이냐!”
시몬은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범죄 조직의 본거지가 이리 좁을 리가 없다.
“여기 말고 안이 더 있다는 뜻이겠지?”
“누구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그중 한 남자가 칼을 들고 시몬에게 다가왔다.
시몬은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냥 그 칼을 팔을 들어 받아주었다.
남자가 휘두른 칼은 시몬의 팔에 정확하게 내리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채앵―!
무기와 무기가 맞붙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남자가 들고 있는 칼에 금이 가더니 칼날이 두 동강이 나며 부러졌다.
- 작가의말
지난 22화와 이번 23편에 수정할 부분이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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