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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변신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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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3.01.31 23:13
최근연재일 :
2023.02.11 23:4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46
추천수 :
4
글자수 :
44,052

작성
23.02.11 23:41
조회
20
추천
1
글자
10쪽

질투

DUMMY

거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진주예는 처절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환불을 받고 이 쓸데없는(?) 공염불을 멈춰 세워야 할 것인가, 그냥 배 위에 올라 그 대단하다는 불꽃놀이나 구경하고 집에 갈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이 호모새끼들을 전부 쳐 죽여 없ㅇ...


그때서야 겨우 진주예를 따라잡은 정영융이 뒤에서 손목을 잡아챘다.


“주예야! 방금 그거 오해야!”

“시끄러워! 다 봤거든!? 부둥켜안고 바지에 손 넣고 있던 거!”


그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바지에 손? 아니 그게 무슨... 아 그거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다 설명해 줄게! 잠깐만 좀...!”


평소였다면 충분히 냉정하게 대화를 시도했을 진주예지만, 그 순간은 술김에 감정적인 반응을 하고 말았다.


탁!


소리 나게 정영융의 손을 뿌리치고는 냉큼 배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건 생각을 해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정영융에게서 더 떨어지려고 취한 본능적 행동이었다.


쿵탕쿵탕!


발걸음소리가 요란했다. 배가 뒤집히거나 부서져도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낚싯배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탔어요!”


나이라가 확인했다. 낚싯배가 출발했다.


뒤에 남겨진 주찬범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고. 평생 이렇게 큰 오해를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만나서 설명할 기회가... 있을까?


아 맞다. 내가 걱정할 필요 없지? 영융이 저놈이 알아서 잘 설명하겠지. 아까 보니까 대학생이라 그런지 말발이 장난 아니더만.


곧 낚싯배의 모터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요 속에서, 주찬범은 심호흡을 하며 다시금 의지를 가다듬었다.


몸과 마음의 흔들림은 이미 가라앉아있었다. 가뿐하고 평온하고 후련했다.


돌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원규진이 야외테이블에 엎드려 곯아떨어져 있다는 걸. 놈의 숨소리는 주찬범의 숨소리와 마찬가지로 가지런하고 안정적이었다.


주찬범은 칼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체온으로 이미 덥혀놓은 칼이었다.


어려운 일 아니야. 두 번, 혹은 세 번만 찔러서 차에 태우면 모든 게 끝난다. 배를 찔러야 해. 등을 찌르면 경찰이 알아차릴 테니까.


“어? 뭐야? 배 나갔어?”


깜짝 놀란 주찬범은 하마터면 칼을 뽑아들 뻔했다. 미친 사람처럼 뒤로 돌아섰다. 등 뒤에는 현지수가 서 있었다.


“나 빼고 간 거야? 진짜?”


크게 당황한 주찬범은 뭐라고도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어... 너 왜... 여기... 왜?”

“나 잠깐 화장실 갔다 온다고...”


여자들은 원래 화장실에 갈 때 같이 가는 습성이 있다.


“화장실... 같이 안 갈래? 바다에 나가서 급해지면 안 되잖아.”


이런 요청은, 서로 사이가 좋든 나쁘든 간에 대부분 거절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지수의 제안에 나이라도 진주예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대화를 오래 나눈 뒤여서 서로가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지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질투하는 거야 지금? 유치하게...


현지수는 살짝 마음이 상했지만, 그래도 티를 내지 않고 혼자 화장실에 갔다. 설마 자기 혼자만 빼놓고 배를 출발시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였다.


그런데 술을 마시던 동안 흐트러진 화장을 다시 매만지고 나와 보니 배는 떠나고 없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이것들이 정말? 반칙을 해?


그래도 다행히 주찬범이 남아 있었다. 자기처럼 혼자 남겨진 건가 싶어 현지수는 허탈하게 웃었다.


“너는 왜 안 탔어? 자는 애 때문에?”


주찬범은 막대기나 기둥처럼 넋 없이 서 있었다. 몇 마디를 더 건네 봤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주찬범의 얼굴이 이상했다. 그것은 현지수가 태어나서 평생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절망과 두려움과 증오와 원망이, 한 남자의 얼굴을 화폭 삼아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처참하면서도 슬펐고, 폭발적이면서도 완전히 비어있었다.


주찬범이 완전히 부서져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육감으로 알아차린 현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드드득!


원규진이 애지중지하던 최신형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야외테이블에 엎드려 잠든 원규진의 머리에서 겨우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액정에도 불이 들어왔다. 휴대폰 잠금화면은 새빨간 색이었다. 그래서 주찬범의 눈에 그 붉은 빛은 잠에서 깨어난 마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불을 내뿜는 듯한 환영으로 보였다.


저걸! 저걸 빨리! 잡아서 멀리 던져버려야 하는데.


그러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휴대폰을 잡으러 1센티미터라도 다가가면 괴물을 잠에서 깨우게 될 것만 같았다.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지옥의 문은 넓지 않았다. 겨우 최신형 핸드폰의 액정화면만 한 넓이였다.


유치한 질투와 알량한 시샘, 사소한 거짓말과 대수롭지 않은 반칙이 만들어낸 손바닥만 한 빈틈을 비집고, 지옥은 기어이 그 뿔을 들이밀고 있었다.


악몽이 시작됐다.


*


“지수가 안 탔다고? 아니... 아까는 다 탔다며?”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지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호모들의 애정행각(?)을 보고 크게 놀라 바로 배에 올라탄 진주예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변명을 해 오해를 벗은 직후, 정영융은 현지수가 배에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찬범의 몸과 마음을 후려갈겼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충격이 정영융에게도 들이닥쳤다. 정영융은 선 채로 머리를 싸쥐었다. 웃지도 울지도 뭐라 말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화장실 간다고 잠깐 갔었는데, 내가 깜빡하는 바람에...”


깜빡한 것이 아니었다. 정영융과 현지수가 너무 급격히 가까워지는 걸 보고 느낀 질투심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나이라는 정영융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까봐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아무리 술김이었다고 해도, 배에 타야할 사람 네 명 중 한 명이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거짓말은 믿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과연 그 말을 정영융이 믿어줄까.


긴장한 나이라가 마른침을 삼키며 정영융의 안색을 살폈다. 그렇지만 정영융은 이미 큰 충격에 빠져 나이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같은 건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계속 실수를 위장해도 될 것 같은데.


계획이 어긋났다. 현지수와 주찬범이 함께 있다면 좋은 기회를 얻고도 놓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다 운 나쁘게 원규진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이용완과 연락이 닿게 된다면?


주찬범이 걱정된 정영융은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주찬범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안 받는 거야? 아 제발...! 별일 없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나이라였지만, 정영융이 크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자 낯은 조금씩 더 단단해졌다. 결국 나이라는 무엇도 뉘우치지 않게 되었다.


역시. 잘한 일이었던 건가?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렇게 달라붙어? 나 아니었으면 누군지도 몰랐을 거였으면서.


남겨진 현지수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나이라는 정영융과 함께 불꽃놀이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마냥 설레는 중이었다.


그 옆에서 둘을 말없이 지켜보던 진주예 역시 들뜨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드러내고 있던 중이었다.


정영융 혼자만의 혼란이었다. 낚싯배 주인이 조종석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불꽃놀이 명소예요.”


낚싯배는 어떤 인공조명도 찾아볼 수 없이 깜깜한 바다 한 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정영융은 짧고 격렬한 고심 끝에, 다시 주찬범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지만 바로 돌아가겠다고 하기도 좀 그랬다. 주찬범의 바지에 손을 넣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고 마음을 돌려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정영융은 잔뜩 들떠있는 둘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머뭇거린 사이, 나이라와 진주예는 정영융을 가운데 두고 어깨동무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붙어 섰다.


체온과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몸이 가까이 붙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졌다.


잠깐만? 고작 불꽃놀이 몇 분 정도 본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세 남녀가 붙어선 것을 본 낚싯배 주인이 의뭉스럽게 웃었다. 누런 이가 오징어 집어등 불빛에 반짝였다.


“불을 끌게요? 그래야 더 잘 보이거든.”


낚싯배의 집어등이 꺼졌다. 비로소 완전해진 어둠이 청춘남녀들을 한 입에 집어삼켰다.


바다 위에서 만난 어둠의 속은 깊고 검었다. 날이 춥지 않은데도 어쩐지 뱃속까지 으스스해지는 기분이었다.


“저기, 저쪽 보이시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과연 하늘이 빛나기 시작했다.


따닥! 따닥! 따다다닥!


폭발한 화약이 타악기 같은 리듬으로 밤하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치 천국이 살아있는 자들에게까지 그 문을 열어젖혀줄 것 같은 순간, 불꽃은 하늘과 바다에 데칼코마니를 그려내며 나방처럼 제 살과 뼈를 불태웠다.


불꽃의 바늘이 천사들의 옷을 바느질하는 동안, 바다와 세 남녀의 가슴은 열락의 예감으로 온통 수런거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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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 23.02.11 21 1 10쪽
9 범죄천재 찬범 23.02.10 20 1 10쪽
8 살인 마려워 23.02.09 19 1 10쪽
7 이상한 분위기 23.02.08 15 1 10쪽
6 전쟁 같은 문학 23.02.07 21 0 9쪽
5 잠시의 평화 23.02.06 18 0 10쪽
4 나이라 23.02.05 20 0 11쪽
3 주꾸미 낚시 23.02.04 19 0 10쪽
2 일진 죽이기 23.02.02 28 0 10쪽
1 멸치 23.01.31 6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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