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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변신오징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3.01.31 23:13
최근연재일 :
2023.02.11 23:4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50
추천수 :
4
글자수 :
44,052

작성
23.02.08 23:54
조회
15
추천
1
글자
10쪽

이상한 분위기

DUMMY

일부러 그런 소설을 써서 그 인간들 본진에 던져 넣었던 거라니. 그럼 얘는 진짜 천재라는 얘긴데? 세상에 이런 애가 다 있었구나...


그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지수의 말 몇 마디에 쩔쩔매다가 사과까지 하는 순박한 모습에 자꾸 웃음이 나와서 꾹 참고 있던 중이었다. 잠시 상처 입었던 자존심도 완벽하게 회복을 했고, 몇 개월 동안 궁금히 여기고 있었던 난제도 해결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면 정영융은 굴욕과 배신감에 두루 절여지고 있었다. 나이라와 그 친구들을 어떻게든 원규진으로부터 구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건만, 배은망덕한 현지수가 갑자기 투견마냥 난입해 자기 소설을 물어뜯고 난도질을 해버린 것이었다. 못내 괘씸하고 분했다.


그 눈치를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현지수는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넋 놓고 쳐다볼 만큼 예쁘게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


아이고. 눈웃음치니까 장난 아니네? 완전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어떻게든 집에만 돌려보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상당히 가까워진 듯한 둘 사이의 공기는, 상상도 못할 사건들을 불러왔다.


정영융은 평생 처음으로 자기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게 되어 처음에는 마치 해부를 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느꼈지만, 어쨌든 현지수가 거의 비평가 수준의 해석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예술사 전반에 대한 이해도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정영융은 그 점을 칭찬하면서, 평소에 미인들은 어떨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살았었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이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다며 재차 사과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정말 신입생 맞냐고 장난 식으로 물었는데, 나이라가 불쑥 끼어들어 언니 재수한 거 어떻게 알았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은, 마치 정영융과 현수지 사이에 어떤 정서적 연결지점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듯한...


아 그냥 간단히 얘기해서, 누가 봐도 나이라가 질투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분위기였다.


정영융 앞에서 나이가 한 살 많다는 사실을 폭로당한 현지수는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면서 눈을 흘겼는데, 진주예가 그 얼굴을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미녀삼인방의 우정에 금이 가고 있었다. 서로의 서로를 향한 견제가 시작됐다.


한편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감히 가 닿을 수 없는 세계의 문밖에서 희망고문을 당했던 원규진은, 음욕보다 더 추잡하고 음험한 희망을 품었다. 현지수를 향한 것이었다.


청춘남녀의 감정은 세탁조 안의 빨래처럼 온통 엉키고 뒤틀리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오직 주찬범 뿐이었다.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즐거움이 차단돼있었던 수험생활을 거쳤었던 만큼, 새내기들끼리는 할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재수생이었다는 사실이 탄로 난 현지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를 변명처럼 주절주절 늘어놓다가 결국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 그 공모전 삼 년 동안 응모했었는데.”


현지수는 원래 학창시절 정영융과 비슷한 진로를 선택해 문학특기생 입학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지만 상복이 따라주질 않았고, 수상경력이 부족해 아쉽게도 한 해 재수를 하게 되었었던 것.


다행히 연극영화 쪽으로 일이 잘 풀려 목표로 하던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창작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미련과 그리움은 싸움닭 같은 태도와 표현으로 발현되고 말았었지만.


“아하. 그래서 그렇게 눈이 좋았던 거구나? 그만큼 써봤으면 나보다 잘 알겠네. 나는 한 1년 반 정도 틈틈이 시간 내서 연습했었는데 운이 좋았어.”


정영융은 바로 납득하고 지나갔다.


만약 현지수가 자기 입으로 그 공모전 수상에 매번 실패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현지수는 정영융 앞에서 어떤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을 공산이 컸다. 나는 작가를 잡아다 놓고 꼼짝도 못하게 조져서 자백(?)까지 받아낸 A급 저격수다 뭐 이 정도?


그러나 사실을 실토한 뒤 둘 사이에는 그와는 정반대의 위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최측과 심사위원들을 농락해 놓고 아직까지 발각되지도 않은 천재성이 현지수는 부럽기만 했다.


마치 소설의 독자가 자신이 아끼는 작가를 직접 만났을 때 느낄 법한 팬심 비슷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어쩐지 꿀리는 느낌이 들고 자꾸만 쑥스러워져서 끝내는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엉뚱한 데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때때로 이유 없이 볼이 붉어지곤 했는데, 그저 술기운 때문인 것처럼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라와 진주예 역시 현지수와 비슷한 진폭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데서 불거졌다.


나이라는 나이라대로, 정영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도 한 적 없는 선함 때문이었다.


공모전결과가 발표된 뒤, 수상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낙담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독특해서 늘 같이 놀림을 받아왔던 정영융의 이름을 나이라가 잊을 리 없었다.


일부러 수상작 전문을 찾아 인쇄해두고 지인들에게 소개하곤 했었다. 그 지인 중에 진주예와 현지수가 있었던 것.


그때도 그랬지만, 그날 해저물녘에도 나이라가 애써 일행을 멈춰 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사람들이 아니던가. 나이라는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그 소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가면서 생색을 냈다. 뿐만 아니라 자꾸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을 끄집어내며 정영융과의 오래된 친분을 과시하려 들었다.


진주예에게는 중학교시절 학폭에 시달렸던 암흑기가 있었다. 진주예에게는 기억도 하기 싫은 과거의 일이 되어있었지만, 정영용에게 학폭은 현재 진행 중인 암덩이였다. 어떻게든 탈주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와중에 소설을 쓰고 상을 탔던 것이었다.


그래서 진주예는 정영융의 글이 가진 정서적 흐름에 동기화할 수 있었다. 현지수처럼 전문적으로 분석을 할 능력은 없었지만, 적어도 자기가 읽어낸 만큼에서는 적잖은 위로를 받고 눈물도 흘렸었다.


내색을 안 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기우는 것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여복이 터진 남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이 있는 게 이상하지. 정영융은 살인을 도모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미녀삼인방이 뭐라고 하건 겨우 맞장구만 쳐주고 있던 형편이었는데, 이게 또 일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화상대는, 냉철한 이성과 학술적인 소양으로 여자의 고민을 상당해주고 대안을 모색해주는 남자가 아니다. 무슨 뻘소리를 하든 간에 무조건 맞장구쳐주는 남자다.


건성으로 대강 어 그래 네 말 다 맞아, 라고 맞장구쳐주던 동안, 호감도는 도리어 올라갔다.


얘는 천재 과여서 건방지고 오만할 줄 알았는데. 자상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네?


그리고 정영융의 몸이 마르고 체중이 가벼웠던 건, 남자고등학교의 정글에서는 단박에 괴롭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중대결함이었지만, 그 또래 여학생들의 눈에는 딱히 나쁘게 보일만한 일이 아니었다.


수험생활을 하던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흘러넘쳤다. 물론 원규진과 주찬범에게는 이세계의 이야기였지만.


저녁자리는 계속 길어져 식당영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다섯 명의 청춘남녀와 한 마리의 일진 강간범은 노천주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즈음부터 현지수의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정영융과 주찬범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현지수만 문제였던 게 아니라, 나이라와 진주예 역시 내키는 대로 술을 들이키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더없이 위험한 일이었다. 주찬범은 이런 위험요소들이 발생하자 눈에 띄게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래 술과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 가장 먼저 술을 시작한 원규진이 야외테이블 위에 엎어져 버렸다. 낚시가 잘 안 된다고 마셨던 낮술에, 현지수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쁨에 앞뒤 재지 않고 들이부었던 저녁술까지 생각하면 실은 그조차도 늦은 감이 있었다.


위험요소가 그렇게 삭제돼버리자, 하늘이 자신을 돕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정영융이 주찬범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찬범은 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을 마주 보고 슬쩍 웃어주기는 했는데, 이 모습을 본 진주예가 또 말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학적인 소양은 정영융이나 현지수만 못했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썰미는 진주예가 가장 나았다. 취중이었음에도, 정영융과 주찬범 사이에 흐르는 수상한 공기를 감지하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술이 다 떨어지자 정영융이 환하게 웃었다. 평생 한 번도 웃어본 일 없었던 사람처럼. 환하게.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러면... 이제 다음을 기약하는 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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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분위기 23.02.08 16 1 10쪽
6 전쟁 같은 문학 23.02.07 21 0 9쪽
5 잠시의 평화 23.02.06 18 0 10쪽
4 나이라 23.02.05 21 0 11쪽
3 주꾸미 낚시 23.02.04 20 0 10쪽
2 일진 죽이기 23.02.02 28 0 10쪽
1 멸치 23.01.31 6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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