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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변신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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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3.01.31 23:13
최근연재일 :
2023.02.11 23:4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49
추천수 :
4
글자수 :
44,052

작성
23.02.04 22:59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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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주꾸미 낚시

DUMMY

낚시를 하러 왔든 꽃을 구경하러 왔든 간에, 어쨌든 지나다니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원규진 이용완의 욕설과 구타도 자연히 수그러들었다. 평상시였다면 다행이다 싶었겠지만, 막상 죽여 없앨 마음을 품고 나니 그게 또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배경으로 놓고 그놈을 칼로 찌를 수 있을 리 없었다. 누구의 눈 어느 카메라에 증거가 남을지 모를 일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왔다. 정영융과 주찬범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계획을 뒤로 미룰까?


그러나 주찬범은 맹렬히 거부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의 결기를 눈으로 뿜어대면서, 오직 계획실행만을 원하고 있었다.


*


주꾸미낚시를 할 때 쓰는 미끼는, 화려한 색상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작은 생선 모양이었다. 원규진 이용완이 산 지렁이를 가져다가 낚싯바늘에 꿰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럴 일이 없어서 좋았다.


플라스틱 미끼의 꽁무니에는 낚싯바늘이 치마처럼 둘러붙어 있었다. 그 미끼를 물밑까지 가라앉힌 다음 낚싯대를 끌면서 밑바닥을 긁고 문지르다 보면, 그걸 먹이로 착각한 주꾸미들이 바늘에 꿰여 낚인다는 거였다.


이론은 그렇게 간단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원규진은 내심 점심 무렵이면 싱싱한 주꾸미요리를 안주 삼아 낮술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낚싯대를 네 개씩이나 드리우고 있는데도, 주꾸미는 좀처럼 낚여주질 않았다.


겨우 두 마리를 낚았을 뿐이었다. 주꾸미는 작았다. 뭘 어떻게 요리해볼 생각조차 해내기가 어려웠다.


그 습성상 주꾸미는 물이 얕은 곳에서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원규진은 차라리 물속에 들어가서 잡는 게 낫겠다고 푸념을 했지만, 정영융과 주찬범을 물속에 집어넣고 강제노역을 시키지는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대거나 분풀이로 폭력을 썼겠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 죽일 놈에 의해 셔틀로 살아온 세월이 말해주고 있었다. 원규진과 이용완의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그것이 놈을 찔러 죽이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해줄지 아니면 방해요소가 될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정영융은 대강 낚시를 하는 시늉만 하면서 목표물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찬범 역시 낚시에 열성적이지 않았다. 재미가 없는 게 당연했다.


누구도 신이 나지 않는 날이었다. 결국 원규진과 이용완은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찬범이 웃음을 참으며 정영융에게 눈짓을 했다. 일이 쉬워지고 있었다.


*


“잡아서 바로 조지니까 맛이 있기는 있네. 지랄 맞게 쪼끄매서 그렇지.”


봄에 흔히 볼 수 있는 뿌연 하늘이 조금씩 뉘엿뉘엿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잡은 주꾸미는 겨우 여섯 마리였다. 그것들은 잡아 올리자마자 죄다 원규진과 이용완의 입속으로 들어갔지만, 그날은 어쩐지 그것도 분하지 않고 낚시가 엉망이 된 것이 고소하기만 했다.


술에 얼굴이 불콰해진 이용완이 낚시의자에서 일어났다. 몸집이 비대한 놈이어서 그 작은 의자가 많이 불편했던 듯했다.


“이 시발 새끼들 존나 못 잡네 진짜! 야 나는 펜션 가 있을 테니까, 내일 아침까지 많이 잡아 놔라. 규진아 우리는 들어가서 술이나 빨자?”


그렇지만 원규진은 딱히 불편한 데가 없는 눈치였다.


“벌써 들어가?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아 이쪽으로는 여자들이 잘 안 오잖아. 순 아저씨들밖에 없고. 아까 보니까 놀러온 년들 많던데? 펜션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것들 있으면 같이 술 마시자고 해보게. 네 차 태워준다고 하면 다 같이 놀자고 할 거 아니야? 이거 먹고 정력 얼마나 좋아졌는지 시험도 해 봐야지.”


음주운전 같은 건 딱히 조심하지도 않는 놈이었다. 자기 차 아니니까.


원규진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의외로 낚시에 재미라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뭐 시발 몇 마리 먹지도 못했는데 효과가 있을 리가 있나.”


원규진이 뚱해 있자 이용완의 말이 빨라졌다.


“야 니네 밤새 잠 안 자고 잡으면 얼마나 잡을 수 있냐? 한 삼사십 마리 잡을 수 있잖아? 못 잡으면 이 시발롬들 그냥 확 다 바닷물에 처넣고... 규진아 그냥 이 새끼들 보고 잡으라고 하면 되지 뭘 직접 하려고 해?”


원규진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원규진까지 같이 여자들 꼬시러 가버린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해진 주찬범의 턱 근육이 바짝 일어섰다.


“야. 이 새끼 펜션까지 태워주고 와.”


정영융에게 내민 것 같았는데 주찬범이 냉큼 나서서 차 키를 받아들었다. 거의 가로채듯이. 차타고 숙소까지 가는 동안 어지간히 괴롭힘 당할 게 뻔했는데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는 원규진이 묻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


“저 새끼는 여기까지 내내 운전만 했으니까...”


말은 정영융으로 하여금 운전을 쉬게 해주겠다는 거였지만, 알고 보면 그건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영융이었기 때문이었을 터.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전, 주찬범은 정영융에게 거의 낙인을 찍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처절한 눈이었다. 큰 기대를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시발 새끼야! 낚싯대를 나처럼 부지런히 움직여야 될 거 아니야?”


정영융은 원규진이 건성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릴까봐 잠시 긴장을 탔었지만, 잘 보니 그건 그냥 술주정에 가까웠다.


원규진과 단 둘이 되고 난 뒤 하늘에는 피처럼 새빨간 노을이 내걸렸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짙은 색이었다.


술김이 올라오는지, 원규진은 낚싯대 네 개를 정영융에게 다 맡기더니 은박돗자리 위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 은박돗자리는 꼭 주찬범이 쳐놓고 간 덫 같았다.


정영융의 등 뒤로 2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자리였다.


정영융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주찬범이 같이 있었더라면 더 대담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혼자였다. 혼자서는 힘든 시간이었다.


주찬범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결행할 생각이었지만, 마치 그런 정영융을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것처럼 기회가 생겼다. 낚시꾼들이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던 것. 술을 마시러 가거나 저녁을 먹으러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주꾸미가 거의 안 잡히는 자리여서 누구든 언제든 자리를 뜬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때까지 그만큼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던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늘을 보고 드러누운 원규진이 팔을 올려 이마에 괴고 눈과 얼굴을 가렸다.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개새끼... 술김에 잠든 건가?


주변은 조용해졌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절대로 등 쪽에 칼자국이 나서는 안 됐다. 그렇게 하면 두들겨 맞다가 우발적으로 찔렀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뜨고 있든 간에, 얼굴을 보면서 찔러야 하는 거였다. 결국은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터였다. 몇 년 동안이나 괴롭힘 당하는 동안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일조차 어려워하게 된 정영융이었다.


자고 있는 걸 체중 실어서 찌른 다음에, 옷으로 덮어놨다가...


아니 아니지. 피가 많이 흐를 거 아니야.


속으로 기회가 금방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자꾸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의문들이 있었다. 끝없이 생겨날 기세였다.


피가 얼마나 날까? 얼마나 나야 죽는 거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어딜 찔러야 돼? 몇 번을 찔러야 뒈지는 거냐고. 한 번만 깊숙이? 아니 그랬다가 깨어나서 소리 지르고 덤비면? 그럼 두 번 정도 지르는 게 좋을까?


그런데 그때


코오. 코오,


작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은 핏빛으로 하늘 전부를 다 물들이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발작하듯 정영융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안 와. 지금 찔러야 돼. 찬범이 그 새끼는 곧 차 몰고 온다. 이 새끼 처리하고 나면, 남은 돼지새끼도 금방이야.


정영융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살그머니, 소리 내지 않고 고양이처럼 낚시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찌가 움직였다. 깜짝 놀란 정영융이 비틀거리다 낚시의자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드득! 카랑!


원규진의 몸이 움찔했다.


아 이런 시발!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낚싯대를 홱 당겨 주꾸미를 털어버렸다. 급히 하느라 옆 낚싯대와 줄이 엉켜버렸지만, 그런 걸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등 뒤의 원규진이 깨어났는지 어떤지가 더 중요했다. 더 이상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영융은 석화주문에 걸린 사람처럼 뻣뻣하게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후우...!


천만다행으로 원규진은 깨어난 게 아니라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을 뿐이었다. 막 해가 떨어지는 바다의 빛이 눈부셨던 것일까. 원규진은 아예 바다 쪽과는 등을 지고 있었다. 만약 잠에서 깨어난 게 아니라면, 상황은 더 유리해져 있었다.


정영융은 화가 치밀었다.


아 이 개새끼가 진짜! 끝까지 놀라게 만들고 있네. 다시 숨소리 가지런해지는 순간이 네 마지막이다.


고양이처럼 움직여가며 낚싯대 네 개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런 뒤에야 마침내 허리춤에 숨겼던 칼을 손에 잡았다. 온종일 숨겨온 칼자루는 노을처럼 따뜻했다. 정영융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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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잠시의 평화 23.02.06 18 0 10쪽
4 나이라 23.02.05 21 0 11쪽
» 주꾸미 낚시 23.02.04 20 0 10쪽
2 일진 죽이기 23.02.02 28 0 10쪽
1 멸치 23.01.31 6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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