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정창영태권

변신오징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3.01.31 23:13
최근연재일 :
2023.02.11 23:4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55
추천수 :
4
글자수 :
44,052

작성
23.02.10 23:42
조회
20
추천
1
글자
10쪽

범죄천재 찬범

DUMMY

그런데 그 순간, 주찬범이 낚싯배 주인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사장님. 포인트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리죠, 시간이?”


흥정을 하려는 것 같았다. 정영용은 크게 당황해 헛숨을 삼켰다.


어? 갑자기 왜 이래?


“한 바퀴요? 으음... 얼마 안 걸려요. 저는 손님들이 그만 잡자고 하실 때까지 계속 도는데요, 아이스박스 암만 큰 거 갖고 타셔도... 한 시간? 안에는 다 채우시더라고요. 제가 여자분들한테는 돈을 안 받는 거는, 여럿이 빨리 잡아서 아이스박스 채우면 회전이 빨라지니까 저도 손해가 안 나서 그런 거고.”


주찬범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 같자 낚싯배 주인이 좀 엉큼해 보이는 눈으로 웃었다.


“학생 분들인 것 같은데? 맞죠? 커플들 맞지? 아유 제가 젊은 손님들 사정 잘 알죠. 이때쯤 해가지고 모텔비 바가지 씌우는 놈들이 워낙 많아야지. 식당도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고. 그런데 지금 이 돈 쓰는 거, 비싼 것 같아도 나중에 후회 안 하실 거예요. 조금 있으면 꽃박람회 불꽃놀이도 하는데, 고기 안 잡고 그것만 구경해도 돈값 한다니까?”


아가씨들은 대번에 반색을 했다.


“불꽃놀이요, 아저씨?”

“배 위에서 보면 정말 환상적이에요. 아마 평생 못 잊을 걸?”

“어떡해, 진짜 예쁘겠다...!”


정영융은 조바심이 났다. 당연히 주찬범을 뜯어말렸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너무 늦었어. 얘들 빨리 집에 보내야 돼.”


너 지금 술 취해서 실수하는 거야, 라고 말하려던 정영융이 움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주찬범의 눈은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맑았다.


주찬범이 품고 있던 살의는 위협적이거나 요란하지 않았지만, 냉철하고 견고했다. 술도 마시는 척하면서 눈치껏 바닥에 버렸던 터여서, 사실은 일행 중에서 가장 멀쩡한 상태였다.


“사장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친구랑 얘기 좀 해보게요.”

“찬찬히 얘기하세요, 괜찮아요.”


주찬범이 공중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단 둘이 할 말이 있다는 것 같았다.


속 모르는 아가씨들이 남겨져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불 밝힌 배 위에서 불꽃놀이? 오늘 운 좋았네?


“야 어쩌자고 이래 지금?”

“아니, 아니야. 차라리 잘 됐어. 네가 여자애들 다 데리고 바다로 나가.”

“뭔 소리 하는 거냐고, 지금?”

“대충 구경 시켜주고, 사장한테는 다른 데에다 내려달라고 해. 여기로 돌아오지 말고, 바로 애들 택시 태워서 서울 올려 보내라고. 너 현금 얼마 있냐?”

“통장에 있던 거 다 찾아왔지. 저 개새끼가 삥 뜯을까봐.”

“됐다 그럼. 한 이십만 원 주면 서울까지 가고도 남을 걸? 그돈 그냥 걔들 줘.”

“쟤들 렌트카는 어쩌고?”

“그 차를 우리가 쓰고, 대신 반납까지 해준다고 해. 렌트카는 꼭 서울까지 찾아가서 반납할 필요 없어. 사고만 안 내면 그냥 아무데나 반납해도 되니까.”

“아 이제 알겠다...! 나는 시발 네가 술 취해서 미친 줄 알았어.”

“병신아. 내가 열쳤냐? 어차피 우리도 차 필요하잖아, 시체 나르려면. 원규진 저 새끼 차 그대로 몰고 다니다가 CCTV 찍히는 것보다, 저 차 타고 일 본 다음에 반납하는 게 더 나아. 그리고 이거 렌트카니까, 만약에 일이 잘못돼서 잡힌다고 해도 쟤들한테는 아무 일도 안 생길 거 아니야?”


그제야 주찬범의 깊은 뜻을 헤아린 문학천재가 입을 헤 벌렸다.


“천잰데?”


범죄천재 주찬범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정영융은 순순히 허리띠를 끌러서 넘겨줬다. 칼이 숨겨진 허리띠였다. 검집을 받아든 주찬범이 혀를 내둘렀다.


“어우 시발... 꼼꼼하게도 숨겨놨네. 이거 정말 네가 만든 거 맞냐?”

“혹시 혼자 죽이기 어려울 것 같으면, 괜히 일대일 뜨지 말고 나 오기 기다려. 안 그래도 쟤들 보내면 바로 너 있는 데로 올 거지만.”


주찬범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애써 웃음지어 보였다. 눈이 약간 젖어있는 것 같았으나, 정영융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듯, 주찬범은 괜히 허세를 부렸다.


“시발...! 이제 좀 끝내자. 이제 저 새끼도 내일 새벽이면 시체야.”


그렇지만 그 시체, 라는 단어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과는 딴판으로 완연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그 한 마디의 낱말이 주문이 되어 떨림을 불러왔다.


떨림은 전염되었다. 그렇지만 둘은 이를 악물고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는데도.


“야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안 채워지냐?”


왜긴? 손이 떨리니까 허리띠도 못 채우는 거지.


“뭐하냐 너? 허리띠 차고 있잖아? 허리띠 위에다가 또 채우려니까 당연히 안 되지. 네 거 끌러서 나 줘. 나랑 바꿔 매면 되겠네.”

“그러자.”


손을 떨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였을까. 주찬범은 자기 허리띠를 주욱, 한 번에 다 빼서 정영융에게 내밀었다. 그렇지만 정영융은 애초에 자기가 건넸던 검집을 다시 손으로 잡아들었다.


“잠깐만 있어 봐. 이거는 잘못 넣으면 칼날 때문에 바지가 잘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채워줄게.”


주찬범의 허리에 검집을 조심조심 채우는데, 주찬범도 자기 허리띠를 정영융의 허리에 갖다 대고 채우기 시작했다.


시간여유가 많지 않다는 생각에서이거나,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떨림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인 것 같았다.


둘은 어두운 구석에서 서로의 허리띠를 채웠다. 그 모습은, 선 채로 상대를 끌어안고 춤을 추는 취객들 같기도 했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씨름을 하는 곰 새끼들 같기도 했다.


주찬범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까 그 애... 진짜 예쁘고 참하더라. 나야 뭐 시발 이제 공장노가다나 해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망생이니까 소용없겠지만... 너는 걔랑 똑같은 대학생이잖아. 절대로 놓치지 마라. 그런 애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나도 알아 인마.”


정영융 역시 무심결에 본심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런데 대답을 해놓고 보니 그 애라는 게 누굴 말하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다.


세 명 중에 누구 말하는 건데?


그렇지만 그런 걸 물어보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비장했고, 어쩐지 쑥스럽기도 했다. 정영융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묵묵히 허리띠를 밀어 넣고 채웠다.


뭐, 일만 잘 되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길 각이었으니까. 그때는 원규진도 이용완도 없이. 우리끼리만.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사라져 소식이 없던 둘을 찾아 돌아다니던 진주예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영융아. 낚싯대는 다 실었는데, 사장님이 아이스박스 어디 있냐고...!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추악한(?) 꼬락서니를 목격한 진주예의 눈이 크게 홉떠졌다.


ㅇ0ㅇ


대강 이 이모티콘 같은 얼굴이 되었다고 하면 되겠다.


어억! 저 새끼들 시발 지금 뭐하는 거야 저 어두운 데서?


정영융과 주찬범이 잠시 이야기를 해보겠다며 사라진 뒤, 아가씨들은 자기들끼리 머리를 모았다. 아가씨들의 생각에는, 정영융 주찬범은 지금 가진 돈이 충분치 않아 선뜻 말을 못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여비가 간당간당한데,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걸로 오해를 했던 것.


진주예가 나서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주도했다. 지금까지 먹고 마신 걸 남자들이 다 계산했으니까, 낚싯배 값은 우리가 계산하자.


불꽃놀이에 눈이 멀어있던 아가씨들은 망설이지도 않고 당장 돈을 갹출하기로 결의했다. 자기들끼리 흥정을 하고, 혹시 나중에 나타나서 딴소리 못하게 배에 낚싯대부터 실었다. 그리고 신이 나서 둘을 찾아 나섰던 것.


그러다 정답게(?) 서로의 허리띠 버클을 채워주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었다.


마침 낚싯배에서 죽음의 빛이 그쪽으로 뻗어져 나왔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도록.


“주예야! 아니야! 잠깐만! 그거 아니야!”

“으어어억! 진짜 아닌데에!”


진주예는 말 한 마디 섞으려 하지 않고 바로 등을 돌렸다. 도망치듯 낚싯배를 향해 달려갔다.


진주예는 울고 싶어졌다. 비명도 지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날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고 뺵빽 울다가 잊었던 게 기억난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이새끼들이었던 거야? 어째 아까부터 우리한테는 조금도 관심이 없더라니! 그래 이 시발롬들 아까부터 서로 끈적끈적하게 시선 주고받는 게 수상하긴 했었어!


물론 둘이 시선을 교환했던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진주예로서는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일이었다.


시발 그러면 미리 말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어!? 망할 놈의 호모새끼들...!


그 혼란 속에서, 허리띠와 검집 결속이 완료되었다. 정영융은 바로 진주예를 따라가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진주예는 벌써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한 번 쉬지도 않고 낚싯배 앞까지 달려온 진주예는 당장 모든 것을 폭로하려 했지만,


“야 저것들 다 게이였어! 우리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애!”


라고 폭로할 매체가 없었다.


나이라는 이미 배에 오른 뒤였고, 현지수도 어느 구석으로 들어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예야, 얼른 타! 불꽃놀이 할 시간 얼마 안 남았대.”


나이라는 평소처럼 눈치도 없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신오징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질투 23.02.11 21 1 10쪽
» 범죄천재 찬범 23.02.10 21 1 10쪽
8 살인 마려워 23.02.09 19 1 10쪽
7 이상한 분위기 23.02.08 16 1 10쪽
6 전쟁 같은 문학 23.02.07 22 0 9쪽
5 잠시의 평화 23.02.06 19 0 10쪽
4 나이라 23.02.05 21 0 11쪽
3 주꾸미 낚시 23.02.04 20 0 10쪽
2 일진 죽이기 23.02.02 29 0 10쪽
1 멸치 23.01.31 68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