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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변신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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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3.01.31 23:13
최근연재일 :
2023.02.11 23:4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54
추천수 :
4
글자수 :
44,052

작성
23.02.06 22:57
조회
18
추천
0
글자
10쪽

잠시의 평화

DUMMY

어? 잠깐만. 이렇게 굴러가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나? 숙소에 자러간 이용완이 떨어져나가면? 기회가 더 많이 생길 수도 있잖아.


주찬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정영융은 그 눈을 보고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일이 아무리 유리하게 흘러간다고 해도, 나이라와 그 친구들은 무관한 사람이었다. 정영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냉담하게 구는 미녀들에게 외제차를 보여주고 어떻게 꼬드겨볼 생각이었는지, 원규진은 차를 어디 세워뒀느냐고 주찬범을 다그쳤다.


허리춤에 숨겨놓았던 칼자루를 잡았던 손으로, 정영융은 나이라의 손을 잡았다. 혹시 덥석 잡으면 놀랄까봐 천천히, 마치 꽃송이를 감싸 쥐듯이 조심스럽게.


나이라는 움찔 놀라는 것 같기는 했지만,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손은 어린 시절보다 작고 매끄럽고 따뜻했다. 정영융은, 당황한 끝에 격하게 흔들리는 나이라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라야. 아무것도 묻지 말고. 오늘은 그냥 가. 부탁할게. 나중에 다 설명해줄 테니까.”


영문을 알 리 없는 나이라였지만, 그렇게 절박하고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자 뭔가 알아차린 것 같기는 했다.


“어... 그래? 그럼 전화번호 줄래? 나중에 연락...”

“아니 아니 아니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네 번호 알아낼 테니까, 오늘은 그냥 가. 다 말해줄게.”

“...그래. 알았어.”


원규진이 자기 차를 끌고 오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런 행동은 음주운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정상인들에게 절대로 호감을 줄 수 없었다. 현지수와 진주예는 벌써 저만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친구들 뒤를 따라 걸어가던 나이라가 돌연 뒤로 돌아섰다. 걱정스러워하는 듯한 얼굴로 정영융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안 돼. 그냥 가! 돌아보지 말고.


“이라야, 그냥 가자니까아?”


뒤에서 나이라를 부르는 진주예의 데시벨도 올라가고 있었다. 여자의 육감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목소리에서 약간의 신경질까지 묻어나고 있었다.


정영융은 세상 환하게 웃으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 길로 무사히 집에 보낼 수만 있다면, 나중에 원규진에게 어떤 보복을 당한다 해도 모두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제는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 원규진은 혼자잖아. 주찬범은 벌써 내 편이 됐고. 그리고 칼자루는 살인자가 쥐게 되는 법이니까.


그러나 잘 걸어가는 것 같던 나이라는 다시 뒤돌아섰다.


방금 전 돌아섰을 때와는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혹해하는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는 눈을 사납게 치켜뜨고 원규진 쪽을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안 돼!


온 세상이 한꺼번에 다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거 눈치 한 번 더럽게 없네, 라는 소리를 늘 하게 만들던 나이라였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영융이 처해 있는 폭력의 양식과 구도를 육감으로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었지만, 안 좋은 방향으로의 기적은 저주만도 못한 것이었다. 날이 춥지 않았는데도 정영융은 흐스스, 몸을 떨었다.


나이라는 막 차에 오르려던 친구 둘을 붙잡고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지수야 잠깐만. 쟤가 걔야.”

“누구?”

“왜, 작년 말에 공모전 큰 거 있었잖아. 그거 소설부문 수상자. 내가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말했었잖아.”

“정말?”


현지수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정영융을 보는 시선에 호기심과 흥미는 물론이고 약간의 존경심까지 담기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정영융에게까지 읽히고 발각됐다. 현지수의 눈이 커서였다.


연기자들이나 연기지망생들은 대체로 눈이 큰 경향이 있는데, 그건 영화를 찍는 카메라가 사람의 얼굴을 굴절시키고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실제보다 사람 얼굴을 크게, 그리고 눈은 작게 변형시켜 담아낸다. 그런 카메라로 찍는 영화 속에서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하려면 눈이 큰 편이 유리하다.


그 덕분(?)에 앞일을 예감할 수 있게 된 정영융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절규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외제차를 타고 폼을 잡으려다가, 나이라 일행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고 득달같이 돌아온 원규진이 대놓고 위협을 가하며 다가왔다.


“뭐야 이 시발새끼. 그냥 보낸 거야 지금? 네 맘대로?”


제발 그냥 가라 그냥 가줘 제발 제발 제발!


그러나 이미 위험을 감지한 나이라는 정영융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내겐 도움이! 안 돼!


어설픈 정의감으로 차를 세우고 친구들을 설득해 다가오는 나이라를 보면서, 정영융은 절망했다. 절망이 너무 커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당장 온 세상이 다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원규진이 그토록 간절히 소원했던 저녁식사자리가 잡혔다. 낚시터 바로 옆에 있던 해물식당이었다.


날이 날이었던 만큼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식당은 점점 조용해졌다. 식사하던 사람들 거의 전부가 그 괴상한(?) 일행에게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즉시 확 잡아챌 정도의 미녀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저런 미인들이 저런 새끼들이랑 이런 데서 밥을 먹어주신다고?

세상 말세라더니 진짜였네 이런 시발...


그 심각한 부조리(?)가 사람들의 호기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사실, 합석해있던 남자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만도 했다.


벌써 탁주 한 잔 거하게 걸치고 오신 듯 불콰해진 면상을 들이밀고는 마치 발정난 개새끼처럼 끈질기게 술을 권하는 놈,

영혼이 팔할 이상 빠져나가버린 듯한 얼굴로 한숨만 폭폭 내쉬고 있는 놈,

유일하게 제정신인 것 같기는 한데 혼자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대느라 그 미녀 분들께서 은혜로이 말을 걸어주시는데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 놈.


그 황당한 광경에 놀라 밥 먹다 말고 몰래 기도를 시작한 낚시꾼도 있었다.


오오 전능하신 창조주여. 홀리 쉬발 도대체 저기서 무슨 족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정영융은 잠재적(?)인 강간범에게서 초등학교동창과 그 친구들을 어떻게 구해내야 할 것인지의 문제로 암담해하고 있었지만,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을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잘만 하면 상황을 더 유리하게 만들어갈 수도 있을 성싶었기 때문.


이용완을 불러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숙소로 잡은 펜션으로 일행을 데려가지 못했다는 것이 원규진의 패착이란 생각이 들었다.


펜션은 살인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CCTV, 관리인, 옆방 사람들. 목격자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원규진이 칼을 맞아가며 비명 한 번 올리기만 해도 모든 것이 탄로 날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정영융은 애초에 시신유기가 어려워질 경우에만 숙소로 사체를 가져와 조작하는 것으로 그 용도를 한정했던 것.


그렇지만 나이라 일행에게 저녁을 잘 먹여서 무사히 돌려보내기만 한다면? 원규진은 숙소가 아닌 장소에서 혼자가 된다. 잘 구슬려서 더 취하게까지 한다면 금상첨화였다. 새벽녘쯤에는 싸늘한 시신 또는 무주의 고혼이 되어있을 터.


게다가 그날은 식당이든 술집이든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에, 원규진이 어디서 범행을 시작하든 간에 강간이 성공하기에는 꽤 어려운 조건이었다.


물론 원규진은 언제 어디서든 미친 짓을 벌일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놈이어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나이라와 그 친구들은 어딜 가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미인들이었던 만큼 방해요소가 생겨줄 공산도 컸다.


그럼 지금 당장은 안전한 거 아닌가?


한참동안이나 딴생각을 하다가 겨우 마음을 돌려먹은 정영융이 마음을 다잡고 힘없이 웃었다. 주찬범 역시 정영융이 그랬던 것처럼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지만, 정영융의 태도 변화를 보고 비슷하게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그런데 정영융의 그런 불성실한 태도가 도리어 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이라와 진주예 현지수는 모두 그 용모 덕분에 항상 주변의 관심을 받으며 살아온 수혜자들이었다. 그로 인해 누구를 만나든 늘 심리적인 우위에 서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이성들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녀들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그러나 그녀들이 누려온 기득권은, 정영융 앞에서 모두 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렇게 비싸게 구는 놈은 난생 처음이네...?


사실 그건 비싸게 굴었던 게 아니라 한참동안 멍청해져 있었던 것이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그 시점에서 공모전 얘기가 시작됐다. 마침 그 순간은, 정영융에게 본의 아니게 냉대(?)를 받게 되면서 진흙 밭에 뒹굴고 있었던 세 미녀의 자존심이 막 불쾌감으로까지 화하기 직전이었다.


“소설, 잘 읽었어요.”


사실 정영융에게 무시당하는 동안 오만정이 다 떨어져가던 현지수는 작별인사를 하는 셈치고 그 말을 던진 것이었지만, 그렇게 내뱉듯 던진 파르티안 샷은 마치 급습처럼 정영융에게 꽂혀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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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의 평화 23.02.06 19 0 10쪽
4 나이라 23.02.05 21 0 11쪽
3 주꾸미 낚시 23.02.04 20 0 10쪽
2 일진 죽이기 23.02.02 29 0 10쪽
1 멸치 23.01.31 6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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