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왕전생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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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끝나자 오크 소년이 장막에서 걸어 나왔다. 소년은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설마 이 정도로 강한 전사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오크 소년이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은인이여, 이 생명이 끊어지는 날까지 오늘을 잊지 않겠소.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것이오.”
오크 특유의 어조가 있다 보니 마치 원한을 갚겠다는 것처럼 살벌하게 들리긴 했지만, 진심인 것은 틀림없었다. 신경 쓰지 말라며 손을 내저은 뒤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상관없다. 갈 곳은 있나?”
오크 소년이 문득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이 모두 인간의 것이니 어찌 갈 곳이 있겠냐마는…….”
그러나 그 표정은 곧 강인한 의지로 바뀌었다.
“그래도 대륙은 넓으니 어딘가 이 한 몸 뉘일 곳이 있지 않겠소? 없다 해도 노예로 사느니 떠돌다 죽는 운명을 택할 것이오.”
초라한 차림에 상처투성이, 검 역시 녹슬어 있지만 오크 소년의 눈빛에는 전사의 긍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빙그레 웃었다.
“호기로운 녀석이군.”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라키드 산맥 너머 남동쪽으로 보름 쯤 걸어가면 이름 없는 황무지가 나온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명칭도 붙지 않은 오지 중의 오지, 인간 아닌 종족이 시련의 땅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의아해하는 오크 소년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그곳으로 가거라. 그곳에 숨어사는 오크들이 있다 들었다. 푸른 곰 부족이다.”
오크 소년의 표정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아직 노예가 아닌 동족이 남아 있었던가? 희망에 차 기뻐하던 소년이 갑자기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레펜하르트가 동요하며 물었다.
“전사가 함부로 고개를 숙여도 되는가?”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은 경의를 표하는 것,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절대적 굴복을 의미한다.
소년의 말투가 다시 바뀌었다.
“그대는 나를 구해주고 새롭게 길까지 열어주었습니다. 이제 그대는 나의 멘토이니, 기회가 된다면 그대를 위해 검을 들겠습니다.”
오크들의 문화로 멘토는 인생의 지도자, 공경하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인간의 ‘주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개념인데, 철저히 복종하지만 결코 긍지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점이 노예와는 달랐다. 인간으로 치면 군주와 기사 관계랄까?
하여튼 최상의 예의를 갖췄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살짝 감동하는 레펜하르트를 향해 오크 소년이 정중히 물었다.
“은인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난…….”
레펜하르트는 잠시 주저했다. 그는 원래 델피아의 마탑에서 받은 성인 윈스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생이 펼쳐졌으니…….
“내 이름은 레펜하르트. 레펜하르트 왈드 안타레스다.”
룬 어로 왈드 안타레스는 안타레스의 통치자란 의미. 그는 이제부터 저것을 자신의 성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가 걸어야 할 길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레페하르트 왈드 안타레스. 그 이름, 잊지 않겠소.”
오크 소년이 어색한 인간 발음으로 레펜하르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리며 작별을 고했다.
“그럼 이만.”
“아, 잘 가게.”
일단 마음먹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오크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다 말고 문득 레펜하르트가 외쳤다.
“아, 참! 그대의 이름은?”
생각해보니 소년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멀어져가며 오크 소년이 소리쳐 답했다.
“나는 크로타의 아들이자 라트의 도끼를 물려받은 자. 타시드라 하오!”
“엉?”
순간 레펜하르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하게 마음에 들고 어색하지도 않다 했더니!
“저 녀석, 타시드였어?”
그의 사천왕 중 하나였던 오크 대전사 타시드.
푸른 곰 부족의 족장이었고 결국 모든 오크들의 대족장이었던 사내.
레펜하르트는 멍하게 오크 소년이 사라진 숲 속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어느새 숲 저편으로 맹렬히 뛰어가고 있었다.
그가 알려준 길, 그가 가야 할 동족들을 향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달려간다.
“신기한 인연이네.”
운명의 힘을 새삼 느끼며 레펜하르트는 의아해했다. 혹시 왕년 테스론도 타시드를 만났던 걸까? 하지만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어린 오크를 발견하고 도와주었을 리가 없다. 아마도 레펜하르트가 이 자리를 택함으로서 운명이 꼬인 것 같았다. 사실 이 자리는 무술을 수련하는 데는 그리 유용하지 않으니까. 그는 어디까지나 마법 수련을 위해 이 폭포 옆 공터를 택했다.
하여튼 신기했다.
“하하하…….”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움이 밀려든다. 당장이라도 저 소년의 뒤를 쫓아 그를 붙잡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
그의 충실한 부하이자 친우는 지금 자신의 운명을 걷고 있다. 그 길을 방해해선 안 된다. 다행히 그가 알려준 푸른 곰 부족은 타시드가 원래 있었던 장소, 크게 운명을 뒤틀진 않았을 것이다.
멀어지는 타시드의 기척을 느끼며 레펜하르트는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꾸나. 나의 친우, 나의 형제, 용맹한 전사의 후예여.”
4.
타시드와의 기이한 인연이 있고서 또 다시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산 속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소복이 쌓인 눈이 모든 것을 덮고 그 위로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친다. 두껍게 얼어붙은 산 속의 호숫가, 입김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그 매서운 추위 속에서 두 남자가 손속을 나누고 있었다.
“받아보아라, 제자야!”
거구의 근육질 노인이 웅혼한 정권을 내지른다.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충분히 거구인 근육질 청년이 정권을 피하며 팔꿈치를 올려친다.
“이 정도쯤이야!”
얼굴을 쪼개버릴 듯한 강렬한 엘보 블로우를 가볍게 피하며 노인이 껄껄 웃었다. 이 추위에도 불구, 둘 다 상의는 걸치지도 않은 채 가벼운 반바지만 입은 차림이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절로 돋는 모습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의 전신은 땀으로 얼룩져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감탄사를 외치며 노인, 제라드가 다시 손끝을 세워 제자의 옆구리를 찔러갔다. 늑골을 부수고 내장을 헤집을 가공할 일격이었다. 저런 걸 부담 없이 날리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사생결단을 내야 할 철천지원수 사이처럼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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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설날에 이것저것 너무 먹어서 그런가 살짝 체한 것 같아요.
끙끙. 역시 뭘 하든 적당히가 제일 중요한 듯.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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