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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배 님의 서재입니다.

권왕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임경배
작품등록일 :
2012.10.31 18:24
최근연재일 :
2012.10.31 18:2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9,987
추천수 :
4,710
글자수 :
106,196

작성
11.02.09 16:22
조회
37,901
추천
177
글자
7쪽

권왕전생 - 19

DUMMY

“그래도 그렇지, 은화 30닢은……. 쩝.”

이해는 하면서도 레펜하르트는 연신 혀를 찼다. 왕년 그의 한 회 목욕비도 이것의 열 배는 넘는다.

“그냥 받아라, 좀. 나도 더 주고는 싶은데, 원래 우리 무문엔 하산 시 제자에게 내주는 여비도 미리 책정되어 있다. 내가 하산할 땐 은화 25닢이었어. 그래도 물가 오른 거 감안해서 시가대로 준 거다.”

어째 말하다보니 무슨 머슴 새경 셈하는 말투가 되어 버렸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제라드는 헛기침을 컴컴 해댔다.

‘하여튼, 감동적인 하산 장면에 꼭 셈 타령 들어가는 것도 우리 무문의 전통이라니까. 쩝.’

어쨌거나 주는 것이니 감사히 받아야지. 보따리를 챙기며 레펜하르트가 제라드에게 농담을 걸었다.

“그래도 하산하는 제자에게 선물 하나 안 주십니까?”

“하하핫!”

껄껄 웃더니 제라드가 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내 던졌다. 척 받으며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뭡니까?”

펼쳐보니 웬 지도였다. 복잡한 산세의 지형이 양피지 위에 그려져 있고 가운데 X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지도 위쪽에 세텔라드 산맥이라고 친절하게 적힌 것도 보였다. 세탈라드 산맥이라면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험지다.

“나중에 근처 갈 일 있으면 들려보아라. 내, 그곳에 작은 선물을 하나 마련해 놓았다.”

“사, 사부…….”

아무래도 가르침 상 돈으로는 못 주니 이런 편법으로라도 제자를 챙겨주고 싶어 한 것 같다.

‘하여튼 사람은 정말 좋다니까…….’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져 레펜하르트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참, 제가 하산하면 사부님께선 어쩌시렵니까?”

제라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어차피 이곳은 임시 거처이니 볼 일이 끝난 사부의 행보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되도록 세상 나가서까지 만나고 싶진 않으니 피해 다닐 생각으로 물은 것이었다.

제라드가 느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평생의 업을 풀었으니 당분간 세상을 떠돌며 좀 쉬어야겠지. 그리고 혹시 쓸 만한 자질을 가진 아이가 보이면 데리고 와서 또 가르쳐야겠고.”

“우리 무문, 일인전승(一人傳承)이 아니었습니까? 제자를 또 들이시게요?”

“누가 우리 무문이 일인전승이라 했더냐?”

생각해보니 제라드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원체 수련법을 견딜 자질의 소유자가 한 세대에 하나 나오면 기적이다 보니 제자 둘 키울 여력이 안 될 뿐, 짐 언브레이커블은 사실 문호를 널리 열어놓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자질 뿐. 심성도 혈통도 가문도 재산도 안 본다.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공평한 무문 아닌가? 그저 들어오면 다 죽어서 나가니 함부로 들이질 못할 뿐이다.

“사실은 이 좋은 가르침을 대륙 널리 전파하고 싶은데, 다들 너무 허약해서…….”

‘글쎄, 그 기준이면 세상에 안 허약한 사람 하나도 없다니까요…….’

쓴웃음을 지으며 레펜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하산을 축하한다, 제자야.”

사나이의 이별은 쿨해야 하는 법. 레펜하르트는 말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공터 너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요란한 발걸음이 점점 멀어졌다.

“하하하하핫!”

은색 수염을 휘날리며 제라드는 통쾌하게 웃었다.

‘사부, 드디어 당신께 받은 은혜를 돌려드릴 수 있게 되었소.’

제라드는 시린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사부가 하늘 위에서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뛰어가던 제자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진다.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본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고난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결국 힘을 손에 넣은 그의 제자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하산하고 있을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감격과 아쉬움이 뒤섞인 그 아련한 감정은 그 역시 60년 전 느껴본 바가 있다.

“가거라, 제자야!”

제라드는 주먹을 들어 허공을 찔렀다. 콰아아앙! 전신에서 황금빛 오러가 일어나 하늘 높이 치솟았다. 빛의 기둥으로 하늘을 가르며 그는 세상으로 나가는 제자를 축복했다.

가거라, 제자야.

이별을 아쉬워하지 마라.

남자답게 앞만 보고 달려가거라.

너는 나의 제자,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의 전수자이니라!


&


‘진짜 하산인 건가?’

레펜하르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야? 나, 진짜 여기서 풀려난 거야?’

하도 고생을 과하게 했다보니 도저히 진짜로 하산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하도 이 상황만을 꿈꾸고 그리며 살아왔더니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레펜하르트는 산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당장이라도 저 악마 같은 사부가 뒤쫓아 와서 그의 뒷목을 잡고 ‘으하하하! 농담 좀 해봤다. 사실은 다음 단계 수련이 있었느니라!’ 라며 광소를 터트릴 것 같았다.

그러는데, 갑자기 사부가 허공에 주먹을 번쩍 들고 애꿎은 하늘을 때려대는 것이 아닌가?

우르릉!

사람이 허공에 주먹질을 했는데 엉뚱하게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역시 저 양반은 인간도 아니다. 빛의 기둥이 선명하게 번쩍거리며 여기까지 비춰왔다.

‘어, 엄마야!’

순간 소름이 팍 돋았다. 어째, 내려가기 싫으면 좀 더 같이 지내자는 제스처 같기도 했다. 레펜하르트는 사색이 되어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언덕을 넘어 저 통나무집 -이라 쓰고 지옥이라 읽는 저 곳의 모습이 사라져도 저 빛의 기둥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두 개의 언덕을 지나 세 개의 개울을 넘고 숲 하나를 통째로 가로지른다.

아득히 멀리, 빛의 기둥조차도 보이지 않아 흐릿한 황금색 하늘만 아련한 거리에까지 와서야 레펜하르트는 비로소 뜀박질을 멈췄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빠, 빠져나왔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진짜다. 진짜로 하산했다. 진짜로 저 지옥에서 벗어났다.

“으하하하하!”

그 자리에 서서 레펜하르트는 광소를 터트렸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 듯이 웃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나저나 할 일이 많군.’

옛 마법의 힘도 되찾아야 하고 현재의 자신, 어린 레펜하르트가 어찌 되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안타레스 재국을 재건하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시리스, 이제 곧 만날 수 있겠구나.’

눈을 빛내며 레펜하르트는 산을 내려갔다. 나무 사이에서 사이로 가볍게 뛰어가며 그가 단숨에 숲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

1장. 산 속의 수행자 편 끝났습니다.

하루 정도 쉬고 2장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 글을 보신 모든 분들께 축복이 가득하시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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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2

  • 작성자
    Lv.3 김재연
    작성일
    11.03.27 00:50
    No. 91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역시 임경배님 개그센스!!ㅋㅋㅋㅋㅋㅋ 사부가 '가거라!' 하면서 주먹으로 허공 지르기 해서 오러 기둥 만들 때 배 찢어지게 웃었습니다. 역시 기대대로 레펜하르트가 기겁하고 도망치네요 ㅋㅋㅋㅋㅋㅋ 잘 보고 있습니다. 아 이거 나중에 책 볼 것도 기대됩니다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마아카로니
    작성일
    12.10.05 13:51
    No.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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