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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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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조회수 :
787,404
추천수 :
11,578
글자수 :
5,820,877

작성
17.10.22 15:21
조회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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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43쪽

해의 그림자 330

DUMMY

시열은 분노로 펄펄 끓다가, 갑자기 오싹한 공포를 느끼고 얼어붙었다. 추웠다. 어깻죽지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이미 대청을 나설 때부터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는데, 사립문 밖으로 나서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온몸을 잘근잘근 다져놓는 기분이었다.


"스승님?"


제자가 불렀다. 누구 목소리더라.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목장木匠들이나 쓰는 끌에 귓바퀴가 쓸리는 기분이었다. 콧잔등도 깎이는 것 같았다. 그냥 겹겹이 얼어붙은 너테가 한겹한겹 떨어져나가는 듯 했다.


"아버님?"


또 누가 불렀다. 꿈엔들 얻고 싶은 아들이었다. 하지만 정실도, 첩실도, 소원을 풀어주질 못했다. 헌데 어떻게 아들이 생겼더라?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었다.


"괜찮으시죠?"

"뭐?"

"아니...아까 그 독물이 한 얘기가 생각나서요."

"노망이 난 게지."


시열은 짜증스레 말하고 걸음을 내쳤다. 하늘은 아직도 붉은 기름, 푸른 기름이 동동 떠서 흰 구름과 함께 서로 떠밀고 뒤밀리다 뒤엉키는 듯 했다. 이제 보니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만큼, 하늘이 어지러웠다. 눈앞이 어지러운 게 아니라.


"저 스승님, 그쪽이 아닌 것 같은데요..."

"뭐?"


시열이 머뭇거리는데,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가마 놓은 데가 저쪽, 감나무 아래였는데..."

"감나무가 아니라 때죽나무네."

"감나문데요."

"때죽이라고."

"감!"

"때죽!"

"감!"

"때!"


시열이 보다 못해 제자들을 꾸짖었다.


"뭣들 하는가? 여기 산에 감나무 때죽나무가 한그루 뿐이겠나? 뭘...나무 갖고 싸우는가? 어느 나무였나가 아니라...어디였나가 중요하지.""


꾸지람을 하다 말고, 시열은 두눈을 끔뻑였다. 눈이 뻑뻑했다.


"얼른 가세."


시열은 급한대로 걸음을 내쳤다. 하지만 걸어가면서도 점점 무릎에 힘이 풀렸다. 가마 방향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내심 헷갈렸다.


"스승님, 그쪽이 아니라, 이쪽..."

"아냐, 거기 맞아."

"무슨! 스승님, 저쪽 같은데요?"

"아니 뭐...셋이 다 달라?"

"형님은 어느쪽 같은데요?"

"몰라? 다 아닌 거 같은데?"


제자들 셋이서 서로 자기가 맞느니, 옥신각신 입씨름을 해대고, 양아들 기태가 관망하며 콧마루를 긁어대는 모습이 흐릿하게 눈에 비쳤다. 그래도 시열은 왠지 쭉 걸어가면 길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걸었다. 헌데 가다 보니 웬 바위 두개가 나왔다. 시열이 무심코 지나치는 바위들에 새겨진 허목의 글씨체가 곁눈에 비쳤다.


日月石

일월석


龍門石戶

용문석호


하나는 심장모양으로 서로 달라붙어 두덩이가 한덩이가 된 연리석連理石이었고, 또 하나는 무지개처럼 생긴 홍예석이었다. 둘다 밤나무와 은행나무 그늘에 묻혀 글씨까진 잘 보이지도 않았다. 당장 여기 무녀촌을 벗어나고 싶은 일념 뿐이라, 송시열도 더 시선을 주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독물 집인데..."

"뒤쪽인가..."

"다시 앞쪽으로 가심이..."

"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있어? 확실해?"

"발자국소리가..."


반종이 주위를 살피며 하는 말에, 시열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내 눈빛이 날카로워져서 바로 앞 허목의 집을 살폈다. 반바퀴 돌아서 이리 왔다. 붉은 석양 아래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을 보니 기분이 스산했다.


"아닌가. 가시죠."


반종이 이내 경계심을 거두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열을 호종해야 하는 소임이 있다 보니 이내 걸음이 조금씩 처져서, 그 등뒤에서 걸었다. 다시 앞장선 건 이상이었다. 앞서 시열이 앞장서다 길을 헤맸으니, 자신이 똑바로 안내할 심산이었다.


"운거雲擧 형님, 이 길 아닌 것 같은데요."


열댓보를 걸어가다 기태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말했다. 이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성우는 물론 일행 중에 제일 젊은 편인 권상하까지 긴가민가 해서 주변을 돌아보는 참이었다. 그들 중 아무도 확신이 없었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가보세. 예서 멀지 않으니 헤매 봤자지."

"하긴..."


그들이 계속해서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범종소리가 들렸다. 시열이 미간을 실룩였다. 낮이 짧고 밤이 긴 겨울이었다. 유시酉時(오후5시~7시)가 끝나고 벌써 술시戌時(7시~9시)로 접어든 모양이었다. 벌써 해시亥時(밤9시~11시)는 아닐 터였다. 헌데 저녁 어스름이 짙어졌다. 사방은 온통 쪽빛으로 컴컴한데, 하늘은 아직도 불그죽죽했다. 아니, 울긋불긋했다. 붉은 얼룩과 푸른 얼룩이 뒤섞여 보라빛 얼룩까지 만들어냈다. 기분나쁜 하늘이었다. 왜 여기 하늘만 이럴까.


"웬 종소리?"

"이 근방에 절이 있나 봅니다."

"흠...허면 거기서 며칠 유숙해도 되겠구먼."


시열이 입맛을 다시는데, 배가 꼬르륵거렸다. 송기태가 움찔 돌아보았다. 귀밑이 허옇게 세기 시작할 무렵 생긴 아비였다. 본래 5촌간이지만 호적으로 묶였다. 그래도 세상이 존경하는 큰인물이라, 세상 다시 없을 복으로 알고 극진하게 모셨다. 여기 오기 전에도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기까지 했다. 허기질 때도 되긴 했지만, 배가 꼬르륵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헌데 왜 범종소리에 양부는 배까지 꼬르륵거리는 건지.


시열이 무녀골의 괴기스런 하늘에 짓눌려 걷고, 또 걷는 사이 범종소리가 그쳤다. 머리를 울리던 범종소리가 조용해지니 한결 귀도 밝아진 기분이었다. 헌데, 또 눈익은 글귀가 시열의 곁눈에 들어왔다.


日月石

일월석


龍門石戶

융문석호


시열은 눈을 의심했다. 일월석? 용문석호? 아까도 본 바위들이었다. 한결 짙어진 어스름 때문에 글씨는 제대로 안 보여도, 이미 이 괴상한 바위들의 형체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자리를 돌고 돌아 또 제자리라니?


꿈인가? 생신가? 갑자기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다. 자신의 볼살이라도 꼬집어서 느낌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발끝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시야만 핑핑 돌았다. 온몸이 마치 빨랫감처럼 비틀리는 기분이었다. 속이 뒤틀렸다. 갑자기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더니, 시열은 그대로 풀썩 고꾸라져버렸다.


"스승님!"

"아버님!"


하지만 손끝에 닿는 땅바닥의 느낌이 너무 차가웠다. 의식을 까무룩 잃어야 하는데 어쩐지 정신이 말짱했다. 당장 몸은 죽어나가는데 정신이 너무 멀쩡해서 탈이었다. 옴짝달싹 못하고서 시열은 신음을 흘리며 흙냄새를 맡았다. 쇳냄새인지 피냄새인지 섞여 콧속을 파고드는 참이었다. 이 부근 응봉산 부근에 무쇠막인지, 무쇠골인지 하는 대장간 마을이 있다는데, 바람이 쇠냄새를 싣고 불어오는 걸까.


"스승님, 피, 피..."


제자 한성우가 떨리는 손끝으로 가리켜 말했다. 시열은 고개를 숙여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돌부리에 긁혀 피가 나는 참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태 손등에 얼굴을 묻고서 무쇠막 생각을 했다니. 시열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자들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사고 말았다.


"제가 부축을..."


이상이 얼른 뒤로 다가들어 시열을 부축했다. 하지만 일으키려다 막상 힘에 부쳐 비틀거렸다. 반종이 냉큼 앞으로 다가들어 팔을 맞잡아주었다. 권상하가 소매춤으로 시열의 손바닥을 닦아주었다. 괜히 경쟁심이 일었는지, 이상이 오른쪽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반종이 뒤에서 주춤하는데, 한성우가 후딱 다가들어 권상하를 슬그머니 밀치고 자기가 왼쪽 팔꿈치를 붙들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았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이 추운 겨울날에 봄날 아지랑이라도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듯 눈앞이 흔들렸다. 실오라기 같은 연기들이 아른아른했다. 속도 메슥거렸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시열은 바로 곁 이상의 팔 안쪽 자개미를 잡았다.


"내 지팡이..."


시열은 발음이 자꾸 샜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듯이 이상의 팔 자개미를 꾹꾹 눌렀다. 지팡이는 챙겨오지 않았다. 제 몸 하나도 건사 못할 허목에게 보란 듯이, 두 다리로 멀쩡히 걸어다니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두고 왔을 뿐이었다. 언덕도 아니고 둔덕이라, 지팡이가 필요 없었다. 막상 와보니 그래도 응봉산과 남산 틈새라 지형이 험했다. 애초에 무녀촌이 멀쩡한 땅에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시열은 자신을 부축하는 이상의 팔을 힘주어 꾹꾹 누르며 걸었다. 한걸음한걸음 내딛을 수록, 시열의 눈앞에 물비늘이 물결치는 듯 했다. 아까는 쇠비린내가 나더니, 지금은 또 물비린내가 났다. 어디선가, 또 바람이 묻혀온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시열 자신이 몸상태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는 깨닫지도 못하고서 계속해서 걸었다.


"괜찮으세요?"


누군가 또 물었다. 시열은 귀가 먹먹해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속도 꽉 막혀서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양아들 목소리였다. 아내를 얻고 첩을 얻어서도 끝내 얻지 못한 아들, 그 아들을 죽은 사촌형한테 얻었다. 함께 김장생의 총애를 받는 제자였던, 하지만 43년 전 전란 때 강도江島에서 분연히 자결하여 귀신이 된 사촌형 송시영한테서. 그 아들 중에서 후사를 든든히 본 송기태를 양자를 삼아서 손주 다섯까지 두둑히 얻었다. 그렇게 얻은 포도송이 한다발 송두리째 얻는 기분으로, 그렇게 눈에 넣어도 달기만 한 아들인데, 시열은 목소리를 분간할 정신이 없었다.


"지팡이는 안 가져오셨는데..."

"아..."

"조금만 더 가면 가마가..."

"알았다."

"걸으실 수는 있으신 거지요?"

"아무렴. 독물이 보는데 업...혀나갈...수는 없지."


시열은 힘없이 대꾸했다. 너무 힘들어서 입이 자꾸 벌어졌다. 지팡이를 안 챙겨온 것이 후회가 되긴 하지만, 챙겨오고 싶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허목의 눈앞에서 정정한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부축을 받아 걷는 것도 허목이 볼까 걱정이었다.


"이번엔 제가 길 안내를 하겠습니다."


한성우가 앞장섰다. 이상李翔과 송기태는 스승 송시열에 비하면 한참 중늙은이였지만, 그래도 길눈도 어둡고 밤눈은 더 어두웠다. 자신이 나서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저들보다 조카뻘인데다, 길눈도 밝고 밤눈은 더 밝은 만큼.


하지만 한성우가 자신 있게 앞장서서 걷다 보니, 또 눈에 익은 괴석 두개가 일행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日月石

일월석


龍門石戶

용문석호


시열은 눈을 의심했다. 이젠 정말 지긋지긋했다. 여태 오기로라도 두 다리로 걷고 또 걸었다. 이젠 다리가 짧아지는 건지, 땅이 올라오는 건지, 그저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헌데 또 다시 같은 자리를 맴돌아 여기 왔다.


"또 허목 집..."


시열이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혀뿌리가 홧홧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또 제자린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늘이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았다.


"연천에 있는 집과 똑같습니다."

"뭐? 무슨..."

"녹봉鹿峰서 저런 바위들을 본 기억이..."

"녹봉?"

"원래 이름은 군영촌軍營村인데...허목이 마을 이름을 녹봉鹿峰으로 고친 모양입니다."


이상의 설명을 한참만에 알아듣고 시열은 입을 쩍 벌리고 치를 떨었다. 허목이 마을 이름을 바꿨다니? 자기가 뭐라고 수백년 된 마을 이름을 바꾼단 말인가. 그저 기가 막혔다. 시열 자신도 만의산萬義山을 무봉산舞鳳山으로 이름을 바꾼 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고려 태조 아닌 조선 태조가 위화도 회군을 논한 만의사 역시 자신의 장지로 정해서 내쫓아버린 것도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저 마을이름을 임의로 바꾼 허목의 고약함에 치가 떨릴 뿐이었다.


"허...고려 태조께서 병사들을 주둔시키던 마을을...감히 제멋대로 이름을 고쳐? 7백년도 넘은 이름을..."

"아니, 문제는 저 바위가..."


시열이 자꾸 혀를 차고 치를 떠는 것을 보고, 이상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젖혀 밤나무와 은행나무를 각각 쳐다보았다. 그늘에 덮이긴 했지만, 글씨가 보이긴 보였다. 똑같았다. 바위들의 형태도 같은 듯 다른 듯 똑같은데다, 새겨진 글씨마저 똑같았다. 아니, 너무 엇비슷해서 구별을 못하는 것 뿐일 터였다.


"연천서 본 괴석들과 너무 똑같습니다."

"설마 하니 그 괴석들을 옮겨 왔겠느냐? 예서 얼마나 있을라고."


시열이 조용히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팔자 좋게 머슴이나 제자들을 이끌고 유람을 다니는 자라 해도, 제 집 뜰에 있던 괴석들을 굳이 가져올 리는 없었다. 몇년씩 살 집으로 이사를 다니는 거라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크기가 좀 다른 것 같기도..."

"뭐?"

"비슷한 바위들을 가져다 놓은 것 같습니다."


이상의 답변에, 시열의 눈시울이 실룩였다. 연리석과 홍예석 자체는 워낙 드물어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헌데도 연천에도 있고 여기 무녀촌에도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 귀한 것들을?"

"없으면 깎아서라도 만들었겠지요."


이상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이미 스승은 눈시울이 벌겋게 되어, 주변을 돌아보는 참이었다. 연천에 있는 그 큰 괴석들을 허목이 배에 싣고 돌아다닐 여력도 없을 뿐더러, 그랬으면 진작 허목의 행보가 여기저기 알려졌을 터였다. 헌데 소리소문 없이 허목이 저 연리석과 홍예석을 가져다 놨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아니, 당장 눈앞의 저 두 괴석을 보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왜 자꾸 저 괴석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건지.


"만들어? 뭐하러?"

"뭐...기문둔갑奇門遁甲이라도 부리려 했나 보지요."

"기문둔갑?"

"예, 뭐. 패설에나 나오는 얘기지요."


이상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하지만 권상하가 바로 지적했다.


"패설이 아니라 사료에도 기록된 얘기입니다. 주역 건착도乾鑿度에 나오는 구궁九宮의 법에서 시작된 거고, 군영들이 이 구궁을 변형해서 온갖 은둔술을 쓰는데, 신라 때 김유신의 후손 김암金巖이 당에서 둔갑술을 배워와 육진병법六陣兵法을 보급했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에 있고 말이지요."

"에이, 말도 안 되는...사료라고 다 믿나, 그걸?"

"당에서 이미 술사로 이름을 떨치고 돌아온 자였습니다. 왜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재주를 탐한 왜왕한테 붙들렸다가 겨우 풀려났다지요."


이상이 부정하려 들 수록 권상하가 조근조근 반박했다. 온갖 학식으로 무장한 권상하의 언변에 이상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상 역시 스승처럼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자였다. 하지만 스승이 바다의 물을 머릿속에 다 빨아들였다면, 이상은 그저 우물의 물을 머릿속에 퍼 담았을 뿐이었다. 그 얕은 학식으로 권상하를 당해낼 리가 없었다. 얼굴만 벌개져서 이상은 스승의 눈치부터 보았다. 자신이 아무리 스승의 고제자입네 나서도, 스승의 마음은 점점 저 권상하에게로 기우는 판국이었다.


"그래서, 자네 말은, 저 바위로 허목이 둔갑술이라도 부렸단 말인가?"


한성우가 나섰다. 방술 얘기가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이때다 싶었다. 유학의 범주가 워낙 광범하다 보니 이런 잡학까지 떡하니 유학으로 대접받는 것을, 스승은 손톱 밑의 가시처럼 못 견뎌했다. 그래서 사림을 장악한 뒤로는 주자의 가르침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는 사문난적들을 사정없이 숙청했다. 그런 스승이 보는 앞에서 그저 권상하를 찍어누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건..."


제 아무리 권상하라도 말문이 막혔다. 허목은 스승이 가장 미워하는 작자였다. 물과 기름처럼, 서인과는 뒤섞이지 않는 자였다. 지금 자신이 조근조근, 부드럽게 반박해봤자, 다른 제자들은 물론 스승까지 조곤조곤, 끈덕지게 부정할 것이 뻔했다.


"가자꾸나."


시열이 가래가 들끓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권상하는 흉곽이 들썩일 만큼 거칠게 심호흡을 했다. 길눈도, 밤눈도 어두운 사람들이 자꾸 나서니 문제였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경지의 학문을 지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목구멍을 꽉 눌렀다.


"저기...제가..."

"저기! 대감이...!"

"대감!"


권상하가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겨우 말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둔덕 아랫자락에서 도깨비불처럼 불빛이 춤을 추더니, 조족등을 든 군사들이 가마꾼과 함께 올라오는 모습이 그들의 시야를 밝혔다. 시열을 발견하고 반갑게 고함치는 듯 했다.


"어?"


시열이 두눈을 움찔하며 앞쪽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내려오지 않자, 혹시나 해서 군졸들까지 대동하고 찾으러 나선 모양이었다. 시열은 두눈이 뜨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질끈 감았다. 이게 무슨 망신인가 싶었다. 이 부근을 도는 군졸이라니. 보나마나 왕의 명을 받고 도성 안팎을 시찰하는 충장위인지 뭔지 하는 것들일 터였다.


"하도 안 내려오셔서..."

"여기 무녀촌 맞나? 방울소리는 안 들리고, 웬 종소리만 들리나?"


시열은 무안한 기분에 괜히 충장위들에게 역정을 냈다. 모르긴 해도, 이들은 왕의 눈귀를 대신해서 자신들을 몰래 감시하는 놈들일 터였다.


"종소리요? 그럼 저 위 안정사 쪽인데..."

"안정사?"


시열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하지만 바로 생각나질 않았다. 옆에서 권상하가 가만히 되뇌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정사安靜寺? 안 보이는데? 저 바위들 밖에..."

"저 석벽에 가려서 그럴 겁니다. 석벽이 진짜 크니..."

"석벽에 가려서?"

"아, 예..저 석벽 아래서 무학대사가 기도했다는데...뭐더라? 저 무학봉이 그 무학대사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던데...그 안정사라지요. 저 청련사靑蓮寺가."


충장위가 횡설수설 설명하니, 권상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학봉이란 이름도 친근했지만, 안정사란 이름도 묘하게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무학대사가 여기 무학봉 석벽에서 불공을 들이다...십리를 더 가라는 관음보살 말대로 도읍을 정하고, 여기를 왕십리往十里로 불렀다는 얘기가 있긴 한데..."


권상하도 말끝을 흐렸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스승 송시열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였다.


"호오...안정사?"


아무 생각 없이 허목을 만나러 온 길이었다. 하지만 바로 윗고개에 안정사가 있다니. 하지만 아무리 어둡다곤 해도, 여기선 절이 보이지도 않았다. 정말로 석벽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청련사로 불리지만...뭐 옛이름이 더 좋아서..."

"안정사...청련사..."


시열은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고단한 탓인지 아랫입술이 퍼석퍼석 말라붙었다. 자기도 모르게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이며, 그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 오래 된 절이 있다면, 필시 연포軟泡(두부)도 만들 줄 알 터였다. 으레 절을 통째로 빌려서 천한 중놈들을 부려 두부를 만들게 하고, 또 연포갱을 끓여 먹는 것쯤은 미안하지도 않았다. 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또 대나무틀에서 몽글몽글 뭉치는 두부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저절로 고였다.


"스승님, 저 안정사에서 며칠 묵어갈까요? 땡중 놈들한테 연포갱 좀 끓이라 하고."


평소 입안의 혀처럼 굴더니, 입안에 고인 군침마저 눈치챘는지 이상이 얼른 끼여들었다. 역시나 이상은 언제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줄 줄을 알았다.


시열은 군침을 삼켰다. 방금 전까지 뇌리를 짓누르는 듯하던 하늘의 물결무늬도 이젠 그냥 구름으로 보였다. 아직도 저 구름들이 울긋불긋한데도 이젠 무섭지 않았다. 이젠 저 구름들마저 뽀얀 두부가 몽글몽글한 연포갱 국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 독물의 집 대청에 있던 글씨도 안정곡이었..."


갑자기 들리는 말소리에 시열은 흠칫했다. 권상하의 목소리였다. 시열은 귀를 의심했다.


"뭐? 안정곡?"

"예. 같이 보았을텐데요?"


권상하가 이상, 송기태, 한성우에 이어 반종까지 차례로 쳐다보았다. 물론 이상도, 송기태도, 한성우도 보았다. 듣고 나니 생각이 났다. 허목의 대청에 있던 현판에 적힌 글씨 역시 안정곡安靜谷이었다. 보나마나 절이 옆에 있으니 저 안정사에 허목도 뻔질나게 드나들 터였다. 그림의 떡을 보듯, 시열은 안정사를 품은 석벽을 쳐다보며 입맛만 쓰게 다셨다. 연포갱 생각이 순식간에 싹 가셔버렸다. 하늘이 붉으락푸르락 도로 무섭게 보였다.


"뭐라?"

"저도 보긴 했는데..."


한성우도 말끝을 흐렸다. 스승은 사랑채 내실에 있어서 대청 편액 쯤은 눈여겨 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대청에 있던 자신들은 똑똑히 보았다.


안정곡安靜谷.


다같이 식욕이 뚝 떨어져버렸다. 조금 전에 범종소리를 듣고 스승이 먼저 뱃고동을 울리는 바람에, 제자들도 슬슬 시장해진 뒤였다. 이미 허기가 심해져 자기들도 모르게 등이 구부정해졌다. 저 지긋지긋한 허목만 아니면, 당장 저 안정사로 쳐들어가서 연포갱을 먹고 싶었다. 뜨끈뜨끈한 국물에 뱃속을 지지고 싶었다. 배고프다 못해 이젠 춥기까지 했다.


"예서 전곶관까지는 3각이나 걸릴 텐데..."


이상이 군침이 고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열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멀었다. 너무 멀었다. 물론 가마꾼들이 자신들을 찾아 올라온 걸 보니, 얼마 내려가지 않아 가마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날이 어두운데다, 길이 사나웠다. 다른 잿길보다 험한 것도 아닌데, 고작 둔덕길이 왜 이리 헷갈리고 어지러운 건지.


참 요상했다. 여기서 가마보다, 무학봉 안정사가 더 멀었다. 헌데도 더 가까워 보였다. 완만한 둔덕길을 내려가는 것보다는 가파른 무학봉 잿길을 올라가는 게 더 힘들텐데도, 더 쉬워 보였다. 연포갱 생각이 굴뚝 같았다.


"장정 걸음으론 2각 밖에 안 됩니다."


권상하가 참견했다. 절간에서 땡중들을 부려 연포갱을 먹는 것도 좋지만, 전곶관에서 마음 편히 민어찜을 먹는 게 더 좋았다. 그냥 절이 아니라 안정사인 게 문제였다. 그래도 한양천도漢陽遷都가 결정된 성지에서 연포를 먹는 건 어쩐지 열성조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다.


"저...그래도 안정사는 좀..."

"안정사는 뭐 절 아닌가? 만의사도 때려잡았는데."


시열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어차피 10월만 되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산으로 올라갔다. 산 속에 숨은 절을 속속들이 찾아내서 법당이고 뭐고 다 때려부순다는 핑계로, 떡하니 절을 차지하고 중들을 시켜 콩을 일일이 까고, 불리고, 갈고, 끓여서, 또 식히고, 이토록 손이 많이 가는 연포를 만들게 했다. 어엿이 살생을 금하는 곳인데도, 버젓이 물고기를 잡든 소를 잡든 해서라도 연포갱에 감칠 맛을 내라고 닦달하기도 했다. 조정의 관료 중에 입산해서 박사업을 쌓고 급제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절밥 좀 먹어본 자들이었다. 이 당연한 걸 왜 또 권상하는 마다하는 건지.


"스승님, 오랜만에 포회泡會(연포회. 두부잔치) 좀 여시죠."

"운거雲擧형님!"


송시열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이상이 갑자기 오른손을 까딱까딱 흔들며 권했다. 권상하가 손사래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왜! 중궁이 죽는 바람에 포회泡會도 못 열고 지나갔는데. 밀린 회포懷抱는 푸셔야죠."

"회포懷抱?"


이상의 말장난에 시열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여기 있는 제자들 중에 학식은 제일 일천하지만, 언제나 입안의 혀처럼 구는 게 여기 있는 이상이었다. 그래도 시열 자신의 학문을 이을 그릇은 따로 있지만. 의뭉스런 웃음을 혼자 짓는데, 두눈이 까무룩 감겼다. 깜빡깜빡 졸음이 왔다. 마치 민어 부레풀이라도 바른 듯이 양쪽 눈꺼풀이 자꾸 끈적끈적 달라붙어서, 시열은 애써 두눈에 힘을 줬다. 그렇게 두눈을 지릅뜨고, 그래도 안 되어 고개를 흔들고, 도로 또 앞을 보며 눈에 힘을 딱 주고서, 시열은 하늘을 보았다. 배가 고픈 탓일까. 졸렸다. 당장 더 내려가기도 싫었다.



"여기...서요?"


안정사 법당 앞 마당에서 일골살 동자승 민순敏淳은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시열 일행을 쳐다보았다. 중궁이 훙하고 나서 올해는 늦가을, 초겨울을 조용히 지나갔다. 찬바람이 들면 으레 사대부들이 절을 약탈하여 연포회를 여는 게 일상이었는데, 올해는 조용했다. 내상內喪이란 이유로 사대부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큰스님도, 작은스님도, 다같이 기뻐했다. 훙서한 중궁한텐 죄송한 일이지만, 다른 때도 아니고 10월 말엽이라는 게 내심 고마웠다. 죽은 중궁이 팔도 방방곡곡의 승려들에게 베푼 진짜 은혜는 올겨울을 편안히 지나게 해준 사실이었다. 중궁의 승하라고 애도하고 통곡하기엔, 시월이 너무 고되었으니...올해는 정말로 편안히 겨울을 난다 싶었다. 헌데, 이들이 왔다.


"중궁전하 승하하셔서...그동안 아무도 안 왔는데..."


민순이 말끝을 흐렸다. 승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 늙은 사대부들이 냅다 눈을 부라린 탓이었다. 그동안 사대부들이 사찰들을 찾아와서 힘으로 윽박지르고 핍박하던 일은, 일곱살 민순도 알았다. 작년에도 혹세무민하는 불교를 벌한다는 명분으로, 사대부들이 절을 찾아와 약탈을 해댔으니.


"오늘로 한달 성복이 끝났을텐데. 소식素食(고기가 없는 식사) 안 먹어도 되고."

"그래도...아무도 안 왔는데..."


권상하가 온화하게 말하는데도, 동자승은 말하다 말고 입을 앙다물며 도리질을 해댔다. 그냥 이들이 침입자 같았다. 이대로 돌아가 줬으면 싶었다. '아무도'라고 자꾸 강조하는 동자승이 괘씸하게 보였는지, 이상이 코웃음을 쳤다.


"아무도? 요 아래 독물이 사는데?"

"어린 것이 거짓부렁은."

"뻔한 수작 보게? 독물이 여길 안 왔다고?"


중늙은이들이 민순을 비웃었다. 그중 머리가 더 허연 자는 아예 주먹으로 민순의 정수리를 쥐어박기까지 했다. 민순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펄쩍 뛰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민순은 자신을 때린 중늙은이를 향해 눈을 흘겼다.


"왜 때려요! 왜!"

"이게 돌았나!"


동자승을 때려놓고 이상이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더 높이 쳐들었다. 발부리까지 꿈틀대는 게 당장이라도 걷어찰 기세였다. 민순은 코끝까지 벌개져선 울먹울먹 소리쳤다.


"또 때리면! 저 아래 신선님께 이를 거예요!"

"신선? 너 말 잘했다. 그럼 그렇지...그래놓고 뭐? 아무도 안 와?"

"신선님이 뭘요! 그분은 사람이 아닌데!"

"사람이 아니야? 요놈 아주 웃기네?"


이상은 귀밑만 희끗할 뿐, 머리가 거뭇했다. 얼핏 보면 그냥 중늙은이였다. 하지만 결코 젊지 않았다. 헌데도 동자승과 소란을 피우는 참이었다. 권상하는 두눈을 지긋이 감으며 한숨을 삭였다.


"운거형님, 그만 좀..."

"진짜예요! 신선님은 저기 돌벽만 보고 가셨단 말이에요!"

"돌벽?"

"예! 왕십리往十里인지 왕심리往尋里인지 한번 두고보자고 하시고..."

"왕심리?"

"신선님 말씀으론...하도 양반들의 수탈이 심하니, 우리 절에서 무학대사의 이름이라도 빌리려고 왕심리를 왕십리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고..."


동자승의 말에 이상은 입을 쩍 벌렸다. 한눈에도 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어린 중놈이 따박따박 따지듯이 하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저기 영도교永渡橋(영미다리)부터 전곶교箭串橋(살곶이다리)까지가 다 왕심리往尋里라고...그냥 여긴 왕이 머물다 가는 동네라고...함부로 범하면 열성조께 벌받을 거라고도..."

"아주 달달 외웠구나. 애가 뭘 안다고."


권상하도 참고 듣다가 비꼬았다. 안정사에서 연포회를 여는 것이 께름하긴 했다. 하지만 허목의 입김이 닿은 것을 보니 떠름했다.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동자승이 움찔해서 시열 일행의 눈치를 보았다. 일행 중 제일 머리가 검은 사내가 조근조근 설명했다.


"뭘 모르는 소리. 나랏님들이 놀다 가는 동네는 저 전곶교 건너편 뚝도纛島다. 저기 뚝기가 있거든."

"아니에요. 저기 돌벽에 활터도 있는데, 저기서 태조께서 사냥도 곧잘 하셨댔어요."

"흥, 그게 다 독물이 뭘 모르고 주절대는 소리다."


참다 못해 시열이 나서서 말했다. 아이는 뎅그렇게 된 눈으로 시열을 보았다. 눈밑이 유난히 검은 노인이 말을 거니 그저 무서웠다.


"귀, 귀신이다..."

"뭐?"


시열이 눈시울을 실룩였다.


"귀신?"

"눈밑이...꺼매요."


동자승 민순이 염지 끝을 구부려 말하다가 손끝을 덜덜 떨었다. 시열의 눈동자가 굳어졌다. 눈밑이 꺼멓다는 건 자신의 오랜 지병인 담음이 갑자기 도졌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꽤 신경써서 담음이 심하게 도진 적은 없었는데. 허물을 두고 독물이라 욕하던 자신이 오히려 눈밑에 독기가 시꺼멓게 뭉쳤다.


"뭘 하느냐? 어서 연포를 내오지 않고!"

"연..."


동자승 민순이 할 말을 잃었다. 중궁 승하 한달이 지났으니 소식도 풀렸다며 절을 찾았다.


"우리 스승님은 하돈을 좋아하시니라. 꼭 내장을 빼고 하돈도 같이 넣거라."

"내장은 꼭 빼고."

"내장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이 절을 불태워버릴 테다."

"터뜨리지 않게 꼭 조심하고."


다들 한마디씩 당부를 넣으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동자승 민순은 겁에 질린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았다. 큰스님과 작은스님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눈빛을 던졌다.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큰스님과 작은스님이 결정할 일도 아니었다. 양반네들이 할 일이었다. 끔찍하게도.


"이 밤중에...하돈을 구하는 건..."


동자승이 난색을 표하자, 이상이 뱀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누가 네놈더러 하라 했느냐? 넌 그냥 가서 말만 전하면 된다."


짓누르는 듯한 이상의 말투에 동자승은 겁에 질려 자라목이 되었다. 법당 쪽을 돌아보며 무슨 말이라도 하려 하니 입술만 달싹이게 되었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물론, 큰스님, 작은스님은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린 눈으로 봐도, 그냥 저들도 시시때때로 잘못을 저지르는 흔한 사람이었다. 여기 머물다 갔다는 무학대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여기 남은 스님들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도 한가지는 충실했다. 최소한 이 절 안에선 계율을 범하지 않았다. 밖에선 몰래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어도, 절 안에선 하지 않는 법이라 하셨다. 그게 하지 말란 일을 어른 몰래 아이가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그러니 쌍화雙花(만두)를 먹으려면 밖에서나 먹고 들어오라고.


그런데, 여기 양반네들이 쳐들어와서 하돈을 내장 빼고 연포갱에 넣으라며, 윽박지르는 참이었다. 중궁전하 돌아가시고 한달 동안이 참 좋았는데. 그분께는 안된 일이지만, 참 평온했는데. 왜 이런 작은 무양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우선 방부터 잡을까..."


시열은 사방의 법당이며 객방 등을 돌아다 보다가, 힐끗 눈길을 내려서 동자승 민순을 내려다 보았다. 쥐방울 만한 녀석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이었다. 시열의 입가에 얄궂은 미소가 스쳤다.


"네놈 방이 어디냐?"

"예?"


동자승 민순은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객방을 놔두고, 민순의 방을 묻다니. 왠지 모르게 겁이 더럭 났다. 방을 뺏으려는 걸까? 왜?


"자, 오늘 안에 하돈을 못 구해오면, 네놈 방은 내 차지다."


시열의 엄포에 민순은 더욱 겁에 질렸다. 동공이 텅 비어선, 민순은 이미 승방 마당으로 나온 큰스님 작은스님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요? 민순은 속으로 물었다. 방을 뺏기게 생겼다. 객방도 아닌 승방을 차지하려 드는 저 양반네들 때문에.


"뭐 하느냐? 얼른 다녀오지 않고?"


시열이 동자승 민순을 향해 손짓했다. 민순이 하얗게 질려선 어쭐 줄을 몰라 했다. 눈앞이 그저 캄캄했다. 오늘따라, 하늘도 무서웠다.



"두우쟁이를 잡아오랬더니 모래무지를 잡아왔구나."


허목은 대청 툇마루에 걸터 앉은 채로, 섬돌 아래를 흘끗 내려다 보았다. 어린 사공이 고운 모래를 함께 담아온 무쇠대야에선 모래무지가 유유히 헤엄치는 참이었다.


"두우쟁인데. 에이, 뭘 모르시네. 봐요. 옆구리에 점이 열댓개잖아요."


어린 사공이 시치미를 떼었다. 허목이 눈엣가시가 낀 듯한 눈빛으로 어린 사공을 노려보았다.


"이놈아, 내 아무렴 모래무지 두우쟁이 구별도 못할까."

"예?"

"내 사는 연천에서 허구한 날 잡히는 게 두우쟁이다. 이거보다 더 길쭉하잖냐. 나처럼."

"거기서 맨날...드신 거예요?"

"거기서 나 닮아서 미수대감이라고 부르는 놈도 있다. 헌데 이놈은 모래무진지 돌마잔지...왜이리 땅딸막하냐."

"아 참...중전마마 승하하시고 나라 분위기도 안 좋은데...웬 고기 타령이세요? 소식도 해야 되는데."

"한달 지나지 않았냐? 그럼 소식도 끝난 거지."

"그래두요. 어떻게 바로 소식을 끊습니까? 정 없게."

"내 나이가 몇이냐?"

"예?"

"네가 좀 봐줘라. 이 나이에 한달간 소식을 했더니, 손에 힘이 없어 침을 못 잡는다, 내가."

"에이 무슨. 침은 원래 안 잡으셨잖아요. 눈 나빠진다고."


허목이 어린 사공과 함께 입씨름을 하는데, 담장너머에서 어린 동자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신선님..."


갑자기 부르는 목소리에 늙은 시열도 어린 사공도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동자승은 담벼락에 매달려 버둥거리다가 두 노소가 소리에 반응해서 정확히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


한손을 소스쳐 말하려다, 동자승은 중심을 잃고 몸이 기울어져선 황급히 담장마루를 붙잡았다. 손끝에까지 힘을 꾹 주고서, 동자승은 낑낑대며 말했다.


"저...혹 하돈 있으세요?"

"잉?"


생뚱맞은 하돈 소리에, 허목은 귀를 의심하며 눈살을 찡그렸다. 저 위 안정사에 사는 꼬맹이가 여기 와서 하돈을 찾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요물이 찾더냐?"


허목의 말에 동자승은 의아히 쳐다보았다. 어떻게 아셨지? 안정사에서 하는 얘기가 여기 이 초가에 사는 늙은이의 귀에 들릴 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말로만 엎어져서 코닿지, 진짜로 코닿는 거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 늙은이가 노신선이 맞는 모양이었다.


순진한 동자승과는 달리, 허목과 사공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아까 시열을 피해 뒤쪽으로 빠져나갔던 두 사공이 무학봉까지 올라가서 관망했던 참이었다. 이미 시열 일행이 안정사로 들이닥쳐 연포갱을 끓여와라, 하돈도 내장 꼭 빼고 넣어라, 갖은 요구를 해댄 것도 그들이 허목에게 보고한 뒤였다.


"올록볼록...지 생긴대로 먹는구먼."


허목이 혀를 찼다. 옆에서 어린 사공이 피식 웃으며 입을 비죽였다.


"신선님도 뭐...길쭉길쭉..."

"뭐?"

"아니 뭐...두우쟁이가 길쭉길쭉하다구요."


어린 사공이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욘석이..."


허목은 입술을 오므려 욕이라도 할 듯한 시늉을 했다. 오냐오냐 했더니 어린 놈이 잔망스럽게도 벌써 기어오르는 참이었다.


"아니 뭐...그냥 생긴대로 안 잡수면 좋잖아요. 잡기도 힘든 두우쟁이보단 모래무지, 하돈河豚보단 수돈水豚(쏘가리), 이런 거 잡수시지. 이 추운 겨울에 잘 잡히지도 않는데."


어린 사공의 볼멘 소리에 허목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정말로 자신이 살던 연천에선 두우쟁이가 흔했다. 두우쟁이를 잡아주던 어느 사공 놈은 생긴대로 잡순다며, 아예 두우쟁이를 '미수대감'이라 부르는 참이었다. 그래도 경강에서 하돈보단 더 잡기 쉬운 생선인데, 왜 송시열 그 요물하고 똑같이 엮어놓고 말하는 건지.


"아니, 두분끼리 싸우지 마시고...하돈 좀 어떻게..."


동자승의 말에 허목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돈은 초여름에만 잡히는 놈이었다. 초여름에도 잘 잡히지도 않았다. 지금쯤 저 바다에 있을 놈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지.


"하돈이 어디 겨울에 잡히나? 이 겨울에 하돈이 잡히면 내 성을 간다, 갈아."

"저도요."


어린 사공도 제 가슴을 두드리며 맞장구를 쳤다. 방금까지 서로 입씨름을 하더니, 똘똘 뭉쳐 내기까지 거는 모습이, 흡사 조손간이라 해도 믿길 정도였다. 그러기엔 사공은 너무 어리고, 허목은 너무 늙었지만.


"아서라 네놈은. 그냥 생긴대로 나백이, 나배기(나복저蘿葍菹. 나박김치)가 낫다. 나, 배, 기!"

"나배..."

"익으면 끝나는 나배기. 딱이지."

"이...하돈 잡히면 신선님은 성이나 손씨로 바꾸시죠. 손목!"

"그럼 넌 자씨 어떠냐. 나배기. 뚝배기 자배기."

"자백이거든요. 자백...이..."


어린 사공이 두손을 불끈 쥐고 항의하다 움찔했다. 자백? 얼굴이 대뜸 묘하게 일그러졌다. 허목 역시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배꼽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사공, 백이가 눈을 부라렸다.


"아니...하돈요 하돈! 강돼지요! 강돼지 달라구요!"


자꾸만 늘어지는 두 노소의 시답잖은 만담에 동자승은 반만 알아듣고, 또 반은 못 알아듣고, 그래서 더 답답했다. 더는 담장마루에 매달릴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더 동자승은 손바닥으로 담장을 탁탁 치며 더 소리를 질러댔다. 아예 두 다리까지 바동거렸다.


"빨리요, 빨리!"

"아 강돼지 안된다니깐. 물돼지 잡아줄게."


어린 사공 백이가 하는 말에, 동자승 민순은 바동질을 멈추고 두눈을 말똥거렸다.


"물...돼지요?"

"겨울에 강돼지를 찾는 것 자체가 양심이 없는 거지. 물돼진 잡아줄 수 있다, 진짜."


백이가 장담을 하는데, 허목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잡아주면 뭘 하누. 어차피 쳐먹지도 못하는데."

"예?"


동자승이 두눈을 뎅그렇게 떴다. 이게 무슨 소린지. 잡아줘도 못 먹는다니.


"아까 보니 눈밑이 꺼먼 게, 다 죽게 생겼드만. 종 한번만 더 울려도 픽 쓰러질 게다."


허목의 장담에 동자승은 흠칫했다. 눈밑이 꺼멓긴 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웠다. 꼭 귀신 같았다. 정말 노신선 말대로 종 한번만 울려도 픽 쓰러질까. 어른이 하는 말, 그것도 노신선이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될 터였다.


"독 쓰셨어요?"


뜬금없이 백이가 허목에게 물었다. 허목은 정말 무서운 괴물이었다. 어느날 손님이 찾아와서 차 한잔 마시고 갔는데, 마당을 걷는 걸음걸이만 보고서, 곧 죽을테니 뒤따라 가서 묻어주란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뒤를 밟으니 정말로 그 사람이 잘 걸어가다 픽 쓰러져 죽었다. 그때는 정말 용하다고 감탄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얘길 다른 사공에게 했을 때, 그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말을 아꼈다. 그 뒤로 백이도 곰곰 생각하면 할수록 허목이 무서워졌다.


"우리 집에서 물 한모금 안 마셨는데?"

"누가 뭐래요?"


백이는 입을 비죽이곤 곁눈질로 행랑 쪽을 돌아보았다. 저기 머물다 간 다른 사공이 송시열을 태우고 다녔다. 뭔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었다. 그 사공이라면 어쩌면...


"이놈아, 저 요물이 평소 애들 오줌으로 몸보신을 하던 놈이다. 그 소변독이 쌓이고 쌓여서 오른 거지."

"예?"


백이는 귀를 의심하고 허목을 보았다. 물론 애들 오줌으로 몸보신을 하는 어른들은 조선팔도에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천하의 송시열마저 오줌요법을 쓴다니...말이 안 되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동자승 민순을 쳐다보는데, 민순은 두눈이 커다래져선 뚜렷뚜렷 굴릴 뿐이었다.


"가서, 혹 그 요물이 벌써 잠들어 있으면, 속히 의원을 부르라 하거라."

"예?"


나백이도, 민순도, 귀를 의심했다. 의원을 부르라니. 정말 가서 송시열이 잠들어 있으면 의원을 불러야 할까. 어른 말은 다 믿어선 안되는 걸, 민순도 이젠 알 만큼은 알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른 말은 곧이곧대로 들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아니, 자신이 어른 말을 잘 믿던 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제는 어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만 더 기억이 났다.


"뭘 하느냐? 어서들 가보지 않고?"


허목이 두손을 소스쳐 어서 가보란 손짓으로 보챘다. 백이가 경직된 얼굴로 안정사 쪽을 돌아보았다.


"예?"

"몰라서 묻느냐? 재야는 벌써 내뺐다. 네놈도 얼른 내빼야지."


허목의 말에 백이가 당장 둔덕길을 내려갈 기세로 발부리를 트는데, 동자승 민순은 오히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망울을 애처롭게 굴렸다. 집이나 다름 없는 곳인데, 어쩐지 지금은 돌아가기가 싫었다.


민순이 어기적어기적 중문에 들어서니, 양반네들이 큰스님과 작은스님을 다그치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큰스님도, 작은스님도, 난처한 목소리로 어물어물 대꾸하는 참이었다.


"모르겠는데요. 왜요, 근데?"

"왜요, 근데?"

"아는 얼굴이지?"

"아니...왜들..."

"아는 얼굴 맞구먼."

"죽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말하거라."

"아니 정말 모르는...그림은 봐도 그냥 헷갈려서..."


중문 안쪽으로 좀더 들어오니, 마당에서 양반네들이 웬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펼치고 큰스님, 작은스님을 추궁하는 장면이 눈에 비쳤다. 큰스님, 작은스님도 진땀을 뻘뻘 흘리며 발뺌하는 참이었다. 동자승 민순이 두눈을 뎅그렇게 뜨고 쳐다보는데, 그중 제일 나이 많은 양반네가 홱 고개를 돌려 쳐다보더니, 반갑게 소리쳤다.


"너, 너 잘 왔다!"

"예?"

"이리 와. 와봐."


손짓으로 보채면서도, 이상이 급한 성질에 성큼성큼 다가들어 민순의 눈앞에 두루마리를 좍 펼쳐보였다. 누군가의 용모파기가 동자승 민순의 눈앞에 펼쳐졌다. 민순은 두눈을 움찔했다. 자기도 모르게 두어번 깜빡일 정도로, 용모파기의 얼굴은 눈에 익었다. 방금 대화를 하고 와서, 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 왜요?"

"오라? 네놈도 아는구나?"

"저 아니에요!"

"뭘 아냐! 방금 너 이 용파 보고 놀랐잖아!"


이상이 윽박지르는 것을 보고, 작은스님이 얼른 끼여들었다.


"쟤가 아니라구요."

"뭐?"

"이놈 말버릇인데요. 무슨 말만 나오면 저 아니에요! 하는 거."

"뭐?"


이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땡중의 말은, 도둑이 제발 저렸는지 아이가 무조건 자기는 아니라고 잡아떼고 보는 탓이라는 얘기였다. 반쯤 수긍이 가면서도, 이상은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여기 절의 사람들이 이 두루마리를 보고 뭔가 알아보는 듯한, 그러고도 숨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이놈,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정말 이 용파를 모르겠느냐? 이 사공 놈이 누구냐!"


이상이 버럭 소리쳐 물었다. 민순은 겁에 질린 눈초리로 큰스님과 작은스님을 돌아보았다. 저 두 스님들도 뻔히 알면서 모른다고 잡아뗀 모양이었다.


"저...아래 신선님이..."

"민순아!"

"안...!"


혹여 민순이 사공의 정체를 밝힐까 겁났는지, 큰스님과 작은스님이 황급히 소리쳐 불렀다. 민순은 흠칫 놀라 눈을 굴려 이상을 쳐다보았다. 이상이 먹이냄새를 맡은 승냥이처럼 두눈을 번뜩였다. 그 모습에 움찔 뒷걸음질 치면서도, 민순은 딴소리를 했다.


"신선님이...요물이 아프...대요. 아플 거래요."


동자승의 엉뚱한 말에, 송시열의 제자들은 두눈을 크게 홉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그들은 이내 동자승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그 험상궂은 얼굴들에, 동자승 민순은 숨이 턱 막혀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방을 가리켜 보였다.


"또 범종소리를 들으면 픽 쓰러질 거라고...얼른 의원이나 부르라고..."


민순이 말하는데, 맑은 범종소리가 들렸다. 벌써 해시亥時(밤9시~11시)가 된 모양이었다. 범종이 천천히, 또 천천히, 울리는 참이었다. 여기 살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범종소리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더욱 크게 들렸다. 적막을 찢는지, 고막을 찢는지, 머리가 울렸다. 민순의 눈동자가 더욱 겁에 질렸다.


작가의말

숙종때는 온갖 야사가 많았습니다. 숙종의 동궁시절, 인경왕후와의 첫날밤에 혹시라도 아들이 미숙해서 얕보일까, 명성왕후가 미리 궁녀들을 한사람씩 숙종의 처소에 밀어넣었다는 야설, 숙종 때 송시열이 평소 애들 오줌으로 몸보신을 하다가 병이 도져서 허목 외엔 치료할 사람이 없었다는 야설, 숙종이 분신법 및 축지법을 써서 자신이 직접 암행어사처럼 전국 팔도로 암행을 다녔다는 야설...야설 외에도 송시열에 관련해서 당시 신하들이 개인 기록에 남긴 이야기들도 좀...다루기 민망한 게 많네요.

 

사실 왕십리往十里가 이름자체는 더 자연스러운데, 실록을 뒤지면 왕십리往十里란 표현은 오히려 성종이나 연산군 때 이후로 나타나고, 그 전엔 왕십리往尋里나 왕심촌往尋村 등으로 더 많이 쓰였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머문 흔적들 같습니다. 하지만 무학대사가 안정사를 중건했다는 얘기도 신빙성이 있구요. 전설대로라면, 안정사에서 무학대사가 웬 농부든, 관음보살이든 만나서 한양천도의 계시를 얻었다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았으면 좋았을 것을...아쉽게도 안정사는 몇년 전에 불교간 내분으로 건설업자에게 넘어가 모조리 헐리고, 거기서 나온 석벽이나 조선말기 마애불 때문에 뒤늦게 시끄러웠다 합니다. 조선이란 나라가 저도 그다지 매력을 느끼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국 및 한양천도와 관련한 문화재 및 유적들이 자꾸 훼손되는 것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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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해의 그림자 338 17.12.12 203 4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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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해의 그림자 336 17.11.30 217 7 43쪽
336 해의 그림자 335 17.11.26 169 4 43쪽
335 해의 그림자 334 17.11.20 257 4 43쪽
334 해의 그림자 333 +1 17.11.12 215 5 43쪽
333 해의 그림자 332 17.11.04 242 4 43쪽
332 해의 그림자 331 17.10.28 204 3 43쪽
» 해의 그림자 330 17.10.22 248 6 43쪽
330 해의 그림자 329 +1 17.10.17 419 4 43쪽
329 해의 그림자 328 17.10.13 218 5 43쪽
328 해의 그림자 327 17.10.07 251 6 43쪽
327 해의 그림자 326 +1 17.10.03 307 4 43쪽
326 해의 그림자 325 17.09.29 228 6 43쪽
325 해의 그림자 324 +1 17.09.24 252 4 43쪽
324 해의 그림자 323 17.09.16 233 5 41쪽
323 해의 그림자 322 17.09.07 218 6 41쪽
322 해의 그림자 321 17.08.27 235 3 43쪽
321 해의 그림자 320 +1 17.08.20 307 4 43쪽
320 해의 그림자 319 +1 17.08.15 253 6 43쪽
319 해의 그림자 318 17.08.13 214 5 43쪽
318 해의 그림자 317 17.08.08 262 4 43쪽
317 해의 그림자 316 17.08.01 281 6 42쪽
316 해의 그림자 315 17.07.24 305 5 43쪽
315 해의 그림자 314 17.07.19 283 8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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