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조회수 :
787,405
추천수 :
11,578
글자수 :
5,820,877

작성
17.08.20 02:25
조회
307
추천
4
글자
43쪽

해의 그림자 320

DUMMY

숙종은 모호한 눈빛으로 동온돌 천정을 멍하니 보았다. 잠결에 이런저런 소리를 들었다. 지붕 위를 누가 검집 끝으로 콕콕 짚어대는 소리, 대청에서 누가 걸어다니는 소리, 월대에서 군사들이 콜록거리는 소리...지붕 위 소리에 눈을 뜰 법도 한데도, 약기운에 좀처럼 눈을 뜨질 못했다. 눈을 뜨기 싫었다.


그런데 쇠를 긁는 소리가 났다. 듣는 것 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소름이 끼칠 법한 소리였다. 굳이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아도, 가장 손쉽게 숙종 자신을 깨울 수 있는 게 저 쇳소리였다. 김석하가 어떻게 아는 건지 몰라도, 김석하니까 알겠거니 싶었다.


헌데 이 망할 김석하가, 천정 위에서, 그러니까 지붕 위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궁의 부음을 알렸다. 거짓말 같은 죽음을 입에 담았다. 누구보다 거짓말 못 하는 그 입으로, 누구보다 거짓말 같은 중궁의 부고를 말했다.


누가 죽어?


김석하는 거짓말쟁이였다. 여태 단 한번도 거짓말을 안 들킨 진짜 거짓말쟁이였다. 마지막 한번의 거짓말을 위해 아흔아홉번 참말만 해왔을 뿐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다고 중궁이 돌아올지 의문이지만.


숙종이 한참이나 대답이 없자, 지붕 위에서 또 다시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토록 맑은 쇳소리를 들으니, 김석하 이놈이 무언가로 사인검 같은 걸 동곳으로 끼이이이 긁어대는 모양이었다.


기수에 드러누운 채로 숙종은 어깨를 움츠렸다. 가뜩이나 귀가 예민한 그였다. 쇠를 긁는 쇳소리에 오한이 일었다. 하지만 숙종은 이 거짓말 같은 비보에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두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한참 후에 눈이 떠져서, 그냥 꿈이라 했으면 싶었다.


"그만, 그만...들린다."

"그러십니까?"

"너..."

"파자교에서, 망곡례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

"뭐? 망곡례?"

"조보...입니다."


숙종이 되묻는데, 김석하가 힘없이 말하고선 비치적거리는 걸음걸이로 천정을 벗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듣다 보니 발걸음소리가 몹시 불안했다.


"너...어디 아픈...?"


숙종이 되묻는데, 북쪽 장지문 틈새로 조족등 불빛이 비치며, 조보 한장이 삐죽 쑤셔들었다. 숙종은 미간을 찌푸리고 장지문 틈새의 조보를 쳐다보았다. 조보가 문틈을 파고들어 숙종의 발치로 팔랑팔랑 날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조족등 불빛이 흐리터분하게 장지문을 손바닥 만큼 비추었다.


- 今月二十六日二更量, 中宮殿昇遐于慶德宮

이번달 26일 2경쯤, 중궁전이 경덕궁에서 승하함.


이경쯤二更量? 숙종의 눈시울이 실룩였다. 2경이라 함은, 흔히는 밤 9시부터 11시 사이, 그 한시진이었다. 특히나 한시진을 1경更으로 부르며, 또 그 1경更을 점點 단위로 십분十分하여, 오점五點이니 칠점七點이니 하는 말로 세밀하게 나누었다. 중궁이 수태하여 산실청이 차려지고 의관과 의녀가 서계를 올릴 때도 몇시 몇점點이니 하는 문구가 올라왔다. 하지만 조보에는 달랑 이경쯤二更量으로만 적혔다. 더구나 이경二更은 인경과도 시간이 겹치니 더욱 구분이 정밀할 수 밖에 없는데도.


"이경쯤二更量?"


숙종은 두눈을 의심했다. 두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중궁의 부음을 알리는 부고치곤 참 성의가 없었다. 이걸 진짜라고 믿으라고? 왕이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죽음을 이 따위로 알린다고? 헌데 왜 중궁의 죽음을 김석하가 이렇게, 검을 긁어가며 알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가고? 그리고, 김석하는 목소리가 왜 그 모양이고?


숙종이 의구심을 느끼고 북쪽 장지문을 쳐다보는데, 장지문 뒤 기둥에서 뭔가 그림자가 어른어른했다. 아니, 비틀비틀했다.


"김...석하?"


숙종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림자가 기우뚱했다. 쓰러지는 것만 같은 소리도 났다. 숙종은 귀를 의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침입자라니?"


어미가 당장 달려나와 금군과 정초군을 닦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 이 발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소릴까. 석하가 검을 긁고 간 지 반각은 커녕 그 반의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이건 꿈이고, 자시는 꿈에 속는 게 분명했다. 이건 꿈이었다. 김석하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면, 꿈이 거짓말을 하는 게 맞았다.


"침입자가 아니래도."


이건 금군의 목소리?


"봤는데...저 지붕 위에서 칼을 동곳으로 찌이이잉..."


이건 승전색?


"뭐? 그게 무슨..."


이건 어미였다.


외부의 대화를 숙종이 멍하니 듣는데, 대전상궁이 따지고 드는 목소리도 흘러들었다.


"헌데 대비마마, 왜 게서 나오시는 것이옵니까?"

"뭐 잘못 되었느냐?"

"거기 양화당은 주상전하의 편전이옵니다. 어찌 게서 나오시는..."

"주상이 옥체미령하니 내가 있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그게 왜 당연..."

"몰라서 묻느냐?"


몰라서 묻냐는 어미의 옥음에 대전상궁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숙종은 그 자리에서 눈동자가 굳어버렸다. 왕이 정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이면, 왕비나 왕대비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헌데 그 자리를 아무런 제지 없이 왕대비가 도맡는다는 건, 그녀를 견제할 중궁이 아프기도 하지만...하지만...생각에 곰곰 잠겨 숙종은 수중의 조보를 움켜쥐었다.


"불을 밝혀라."


대답이 없었다. 숙종은 다시 목청을 돋웠다.


"불을 밝히라고."

"예, 전하."


차지내관 한명이 부리나케 불붙인 인광노를 들고 달려와 동온돌 등불을 밝혔다. 뒤이어 동온돌 구석구석 놓인 좌등도 밝혔다.


동온돌 장지문이 환해지니, 대비 김씨도 아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훤히 알 수 있었다. 저렇게까지 불을 밝힌 것은 보나마나 어느 쥐새끼가 숨어들어 중궁의 부고를 고해바친 게 틀림 없었다.


"여기, 여깁니다!"

"뭐? 어디?"


갑자기 대비전 소속 정초군 한명이 통명전과 양화당 사이의 틈새를 조족등으로 가리켰다. 사내의 얼굴이 대비전의 눈에도 똑똑히 비치도록 그 얼굴을 비추었다.


"침입자요, 침입자!"

"침입?"

"침입자가 쓰러져 있습니다!"


대비 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침입자가 쓰러졌다? 저자가 아들에게 며느리의 부고를 전한 그 쥐새끼인 모양이었다.


"저 놈이?"


대비 김씨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걸음을 내쳤다. 아들이 부음을 접한 것도 큰일이지만, 아들에게 전한 쥐새끼도 살려두지 않을 요량이었다. 대비 김씨는 그쪽으로 걸음을 내쳤다. 양화당 월대에 세워둔 궁인이며 내관들, 대비전 소속 정초군들도 뒤따랐다.


"근데 어디서 본..."

"누구냐?"


되물으며 대비 김씨가 성큼 다가서는데, 정초군이 조족등으로 비추는 얼굴이 그녀의 눈에도 들어왔다. 동곳이 빠져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게, 하필이면 아주 낯익은 얼굴이었다. 너무 눈익은 얼굴이었다.


대비 김씨의 두눈이 차례로 실룩거렸다. 아들과 똑닮은, 이 쥐새끼의 얼굴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김...석하?"


대비 김씨는 눈초리를 매섭게 치켜올렸다. 그 흰 눈자위에 살의가 비쳤다.


사사건건 눈에 거슬리는 것을, 죽은 금이를 생각해서 애써 참았더니, 욘석이 또 일을 저질렀다. 자꾸 끼여들어 어깃장을 놓는 욘석을 대체 어디까지 참아줘야 할까. 죽은 병주 놈은 진작 처리했는데. 도대체 욘석은 어디까지 사람 인내심을 시험하는 걸까.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데.


"또 네 놈이구나."


석하를 내려다보는 대비 김씨의 두눈에 시퍼렇게 독이 올랐다.


"오냐, 너 잘 걸렸다. 대역죄로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주마."

"뭐?"


석하는 의식이 흐릿한 가운데 눈길을 겨우 들어 곁눈으로 대비 김씨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온통 식은땀으로 뒤덮여서 눈시울까지 스며들었는지, 두눈이 따끔거리는 듯 힘없이 깜빡였다. 대비 김씨의 얼굴도 그 눈에서 명멸했다.


"네놈이 주상을 시살하려 통명전을 범했잖으냐."


대비 김씨의 야멸찬 말투에 석하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소리내어 웃지는 못했다. 그저 가쁜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대비 김씨...


그 어린 병주 놈을 살수로 부려먹다가 당고개 물에 쳐박을 때 알아봤다. 한술 더 떠 자기 손주를 네번이나 회임했던 중궁을 어떻게든 없애려고 온갖 모략을 쓸 때도 물론 알아봤다.


하지만, 석하 자신한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부계혈통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모계혈통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


"그래서, 누굴 찢어죽이겠다구요?"


양화당 뒤켠에서 웬 계집의 맹랑한 옥음이 흘러나왔다. 귀익은 목소리였지만, 대비 김씨는 누구 목소린지 깨닫지 못했다. 그냥 가슴 밑바닥에 쌀뜨물 같은 것이 차오르는 기분일 뿐이었다. 투명하지도, 그렇다고 탁하지도 않고 그저 희뿌옇기만 한, 그래서 그 바닥 뭐가 고였는지 보이지도 않는, 그런 느낌일 뿐이었다. 감히 대비 김씨에게 따져 물을 계집이라곤 조선팔도에 대왕대비 조씨 외엔 없는데도.


"뭐라?"


대비 김씨는 그저 가소로운 기분에 뒤돌아보았다. 되물어보았다. 헌데 양화당 뒤켠에서 검은 너울을 쓴 계집이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처음엔 의녀려니 했다. 또 어쩌면 중궁이 죽었다더니 자기를 노린 자신을 놀래려고 이렇게 검은 너울을 쓰고 나타났나 싶었다. 피묻은 치맛자락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그래봤자 중궁은 이미 끝났다. 파자교에서 망곡례까지 한 중궁인데, 살아돌아온들 귀신 취급 밖에 더 받으랴 싶었다.


설마...


하지만 계속해서 한발, 또 한발, 걸어오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서, 대비 김씨의 얼굴에선 웃음이 천천히 걷혔다.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집의 걸음걸이치곤, 그 보폭이 놋쇠자鍮尺로 잰 듯, 너무도 정확했다. 보폭 자체가 하나의 유척일 만큼 정확한 계집은, 발꿈치가 닿지도 않고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저런 계집은, 재산루에서 나고 자란 대비 김씨로선 오로지 한명 밖에 본 적이 없었다.


"금이...?"


그 이름을 입 밖에 내어 물으면서도, 대비 김씨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금이 그 아이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 석하 저 놈을 낳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당시 그 포천 금현리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리 말했다. 믿기지가 않아서, 대비 김씨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돼..."


고개를 연신 가로젓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계집이 검은 너울을 위로 걷어보였다.


"오랜만입니다. 대비마마."

"너...?"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대비 김씨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보였다. 산 사람처럼 움직였다. 대비 김씨 자신을 보고선, 전모에 딸린 검은 너울을 걷어 이마 아래 얼굴을 내보였다. 그리고 말까지 걸었다.


"너...어떻게?"

"대역죄로요? 찢어죽여요?"

"너...?"

"제가 누군지 한번 밝혀볼까요? 그래도 이 아이를 찢어죽이는 게 가능할까요?"


대비 김씨는 말문이 턱 막혔다. 두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저 검은 너울을 알 만한 자가 하필이면 등 뒤에 있었다. 조상궁도 소스라쳐 검은 너울의 이름을 입 밖에 내었다.


"너...금이...?"


금이란 이름에, 석하가 혼미한 와중에도 두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감은 두눈을 실룩일 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눈꺼풀만 꿈틀댈 뿐이었다. 그 모습을 검은 너울, 한금이가 가만히 내려다 보며 대비 김씨를 쏘아보았다. 그 표독한 눈빛에 대비 김씨는 그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입술만 달싹였다.


살아...있었어?


반가워야 했다. 스무해도 넘게 꿈에서도 그리워했다. 금이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며, 그렇게 금이를 추억했다. 보고 싶었다. 너무도 보고 싶었다. 시시때때로 생각났고,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저 금이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멍해지기만 했다. 반갑지 않았다. 자신을 보는 저 도자기 파편 같은 눈빛이 너무도 따가웠다. 마주 보려니 따끔거렸다.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두눈이 일그러졌다. 시야가 이지러졌다. 대비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지 마...


자신도 모르게 대비 김씨는 뒷걸음질을 쳤다. 너무도 무서웠다. 오랜만의 재회치곤 무서웠다.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나타난 건지, 겁부터 났다. 늘 믿을 만 하던 자신의 사람인 금이가, 한발한발 걸어왔다. 살의어린 눈빛으로 천천히 숨통을 죄였다.


오지 마...


겁에 질린 대비 김씨의 눈앞에서, 금이는 석하의 양쪽 겨드랑이를 잡아 부축했다. 눈앞에서 김석하를 데려가려는데, 대비 김씨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냥 그동안 쥐죽은 듯 지낸 것처럼, 김석하를 데리고 이대로 또 쥐죽은 듯 지내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냥 눈앞에서 사라져주면 좋겠다 싶었다. 한금이는, 대비 김씨 자신이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였다.


"어딜..."


대비 김씨가 마냥 얼어붙어 있자, 정초군 한명이 금이와 석하를 향해 칼을 뽑았다. 하지만 한금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차갑게 비웃었다.


"내가 누군지, 이 아이가 누군지 말해주랴? 듣고 싶으냐?"

"뭐? 무슨...?"

"그리 되면 여기 있는 늬들 상전이 모조리 숨통을 끊어버릴 지도 모르는데?"

"뭐, 뭐요?"


정초군이 두눈을 크게 뜨고 대비 김씨를 돌아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목에서 힘이 풀렸다. 길을 막으면 막을수록 이 계집이 무슨 말인가를 나불거릴 태세였다. 정말, 들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막아서도 안될 것 같았다.


흥, 나직한 코웃음만 흘리고, 금이는 한발한발 나아갔다. 그 앞을 가로막은 정초군과 금군, 궁녀와 내시들이 주춤주춤 양갈래로 갈라지며, 앞길을 텄다. 그러면서도 나비눈으로 흘끔흘끔 금이의 행색을 살폈다. 그들 중 몇몇에겐 묘하게도 눈에 익었다. 그중 마흔 안팎의 상궁들과, 스물 안팎의 나인들이 저마다 다른 호칭으로 그녀를 불렀다.


"진짜...금이?"

"중궁전...한상궁 마마님?"

"뭐?"


중궁전 소리에 순식간에 간격이 더 벌어졌다. 두창을 앓았던 중궁전에서, 그것도 중궁의 유모였던 이가 나타났으니, 혹시라도 두창을 옮길까봐 겁부터 난 모양이었다. 누구는 김씨로 부르고, 누구는 한씨로 부르는 게 이상해서, 그들 모두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금이는 석하를 데리고 유유자적 그들 사이로 걸어갔다. 통명전 서협문을 나서며, 그녀는 불이 온통 환한 동온돌에 한번 더 눈길을 주었다.


"쫓거라."


머릿속이 아득해져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금이와 석하가 통명전 서협문을 나선 뒤에야 대비 김씨는 정초군들에게 손짓했다. 정신이 드니 이대로 금이를 내보내선 안된다는 생각에 미친 모양이었다. 정초군들은 조금 전 금이의 을씨년스런 기세에 압도당한 뒤라 곧바로 움직이질 못하고 어깻죽지를 움츠렸다.


"예?"

"뭣들 하느냐! 어서 뒤쫓지 않고?"


목을 긋는 시늉까지 하는 참이었다. 정초군들이 금군들을 돌아보았다. 금군들이 움직이면 자기들도 움직이겠다는 식이었다. 대비 김씨가 금군들을 그악스레 노려보며 급히 독촉하려는데, 등 뒤에서 서늘한 옥음이 얼음조각처럼 등골을 내리훑었다.


"왜들 이리 시끄러우냐?"


대비 김씨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들이 차지내관의 곁부축을 받아서 힘겹게 월대까지 걸어나온 참이었다. 누가 몸에 손 대는 것도 싫어하는 아들이,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나왔다. 손엔 뭔가 문서 같은 걸 구겨쥐고서.


"왜 나오셨습니까. 그 몸으로."

"시끄러워서요."


숙종은 힘없이 대꾸했다. 부축해달라니 내관이 부축해줬다. 자신이 내관에게 부축을 받을 리도 없을 뿐더러, 중궁이 죽을 리도 없었다. 어미가 양화당 쪽에서 나올 리도 없을 뿐더러, 김석하가 쓰러질 리도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평소와는 달랐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니었다.


"지금이...몇시지?"


숙종은 잠이 덜 깬 눈빛으로 허공을 뚜릿뚜릿 쳐다보며 물었다. 어미에게 묻는 건 아니었다. 그저 통명전 도처에 깔린 금군과 정초군, 내관과 여관에게 묻는 것일 뿐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답해주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여는 자가 있더라도 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 소리를 내는 자가 있더라도, 말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


"지금이 몇시냐?"


숙종이 다그쳐 묻는데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숙종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아직도 믿지 않았다. 그냥 나와 보았을 뿐이었다. 믿어서 나온 건 아니었다. 끝까지 믿지 말아야 하는 죽음이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 탓일까. 아무도 대답이 없는데, 북소리가 들렸다.


둥!

둥!

둥!

둥!


"사경四更?"


숙종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이마가 띵했다. 이경二更에 중궁이 죽었다는데, 사경四更에 부음을 들었다. 그것도 통명전을 금군과 정초군이 첩첩 에워싸고, 어미가 양화당을 차지하고 두눈 시퍼렇게 뜬 상태로 김석하가 그 철통 같은 경비망을 뚫고 들어와 자신을 깨울 때까지, 아무도 입밖에 내는 자가 없었다.


"어마마마?"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이, 숙종이 대비 김씨를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반쯤 미쳐버린, 형장에서 사형수에게 반월도를 휘두르기 직전의 망나니의 정신나간 눈동자처럼,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대비 김씨는 제 속으로 낳은 아들인데도 자기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주, 주상..."

"어마마마? 지금이 사경四更이랍니다?"


숙종이 마치 깍지가 벗겨지기라도 한 듯 묘하게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대비 김씨를 쏘아보았다. 그 칠흑같이 검던 눈동자가 핏빛으로 번뜩였다. 대비 김씨는 숨이 턱 막혀서, 더듬더듬 대꾸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금이에 놀란 가슴이라 아들이 한발한발 다가오는 것도 겁이 났다.


"주상이...편찮아서...깨면, 말하려 했습니다. 깨면요."

"뭘 말입니까?"


숙종이 나른히 되물었다. 그 모습에 대비 김씨는 또 화들짝 놀랐다.


"예?"


바보 같이 되물었다. 아들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듣고 나왔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분명히 김석하가 아들한테 뭐라뭐라 떠드는 것 같았다. 중궁의 부음을 알리고도 남았다. 그런데 아들은 그저 멍하니 되묻기만 했다. 저런 얼빠진 얼굴을 보니 대비 김씨 자신도 똑같이 얼빠진 기분이었다.


모르나? 정말 모르나? 김석하가 고한 게 중궁 일이 아니라 최석정 일인가? 그럼 말 안 해도 되나? 한숨 더 자게 놔두고, 날 밝으면 그때 말해도 되나? 몸 안정되면 그때 말해도 되나? 어의들이 두창 아니라 하면, 그때 말해도 되나? 한번 미루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한번 도망가기 시작해도 끝이 없었다. 그냥 말하기가 싫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김석하가 감히 통명전을 범하여..."


대비 김씨가 두눈을 굴리면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헌데 말하다 보니, 아들 수중에 웬 종이쪼가리가 있었다. 대비 김씨가 미간을 실룩였다. 김석하 이놈이 아들 손에 뭔가 쥐여주었다. 이미 늦었다. 한발 늦었다. 대비 김씨는 크게 헛숨을 들이키며, 콧잔등도, 콧마루도 실룩였다. 괜히 코끝이 매웠다.


"주상?"

"말씀해 보시지요? 파자교에서 망곡례가 있었다던데. 누가 죽었답니까? 제 허락도 없이요?"


아랫것들 앞에서 아들이 도발했다. 얼굴이 홧홧하여, 대비 김씨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가 형형했다.


"네. 말합니다. 말하지요. 중궁이요. 중궁이, 이경二更쯤 숨을 거뒀다지요."


도발엔 도발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대비 김씨는 자신이 아들과 며느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잊고, 아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만 생각하고, 그 수중에 적힌 글귀를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아들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군요. 중궁이 죽었군요."


대비 김씨는 눈과 귀를 의심하고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생각보다 그리 분노하거나 흥분하거나 하질 않았다. 슬퍼하거나 아파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로 화를 쏟아붇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근차근 듣고, 묻고, 그게 전부였다. 하도 몸이 성치 않아서 희로애락 자체를 터뜨릴 기력도 없어 보였다.


아들은 천천히 걸음을 내쳐서, 어칠비칠 월대를 가로질러 동온돌 뒤켠으로 걸어갔다. 그 뒤켠에 석하가 떨어뜨린 사인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고약한 김석하가 동곳 끄트머리로 긁어놓은, 기다란 선들이 세줄이나 눈에 띄었다. 숙종은 가만히 사인검을 들어 만지작거렸다.


"어마마마께서 죽였습니까?"


갑자기 정곡을 파고드는 아들의 질문에, 대비 김씨는 소스라쳐 숨을 헐떡였다. 아들의 눈을 보았다. 보다가 켕겼다. 자신도 모르게 두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봐야 했다. 지금 아들 눈을 피하면 안 되었다.


"뭐? 뭐라구요? 그걸 말이라고..."

"허면 어떻게 죽었답니까?"

"아시잖습니까. 두창인 걸요. 왜 이러십니까?"


숙종이 손톱 끝으로, 사인검의 은빛 검신을 긁었다.


"헌데 왜? 도둑장례를 치르셨습니까!"

"뭐? 도둑..."


그 차가운 반문에 대비 김씨는 숨이 턱턱 막혔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도둑장례? 도둑장례? 도둑장례? 어이가 없어서 따지고 들려는데, 아들이 칼끝을 뻗었다.


"주..."


대비 김씨는 소스라쳐 두눈을 크게 홉떴다. 턱밑으로 은빛 검끝이 파고드는 참이었다. 밤을 훔친 뱀처럼, 은빛 섬광이 그녀의 목울대에 닿았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상?"


대비 김씨는 따지다 보니 숨이 절로 가빠졌다.


"아...제 사인검 좀 보시라구요. 새로 하나 주조해도 될까요? 누가 죄다 긁어놔서요."


숙종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사인검을 긁으려면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야만 했다. 머리를 풀어헤진 것을 보니 그 파자교에서 있었다는 망곡례에서 같이 한 것인지는 몰라도, 동곳이 빠진 게 분명했다. 사인검을 흘렸으니 그 동곳도 흘렸을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칼, 치우세요. 주상."


숨을 헐떡거리며 아들을 만류하는 어미의 목소리에, 숙종은 심드렁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나른한 눈빛으로 사인검의 흠집들을 내려다보고선 이내 칼을 거두는 듯 하더니, 또 자신의 맨손으로 은빛 검신을 어루만졌다. 그러다 손톱으로 살살 긁었다.


"주상, 그 칼 좀...좀...!"

"뭐가 그리 겁나십니까? 어마마마께오서...이미 절 죽이셨는데."


아들의 터무니 없는 말에 대비 김씨는 관자놀이를 쇠꼬챙이로 꿰인 듯한 충격을 느꼈다. 죽였다니? 그게 아들이 어미한테 할 소린가? 아들이 미쳤다. 이미 어미가 중궁을 죽였다고 믿고, 지금 자신에게 시위하는 참이었다. 다짜고짜, 그 어떤 물증도 없이 심증 만으로?


"제 정신입니까, 주상? 무슨 말도 안 되는...내가 어떻게 주상을 죽였다고!"

"예? 절 죽이셨어요?"


숙종은 멍하니 대비 김씨를 보았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신 차리세요. 난 중궁을 죽이지 않았어요. 저 혼자 죽었지요. 두창으로."

"그렇게 믿고 싶으신 거겠지요."


숙종은 어미를 보고 차갑게 웃었다. 갑자기 어미와 더는 한마디도 섞기 싫어졌다. 눈빛도 마주치기 싫어졌다. 중궁을 잃은 충격이 가시기는 커녕, 오시지도 않았다. 그냥 다 부정하는 참이었다. 다 귀찮았다. 중궁은 죽지 않았다.


"중궁은 죽지 않았습니다."

"뭐? 뭐라구요?"

"죽지 않았습니다. 따라해 보세요. 어마마마."


숙종의 태도에, 대비 김씨는 두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차라리 눈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치는 편이 나았다.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속으로 곪아터지는 게 나았다. 그럼 적어도 곪는 동안은 눈에 띄지 않을 터였다. 헌데 지금은 이 망할 자식이 그녀의 목밑에 칼날을 들이대고 겁박하는 참이었다. 중궁은 죽지 않았다고, 그리 말하라고.


"중궁은 죽었습니다, 주상."


대비 김씨는 헛숨을 들이켰다. 코끝이 시큰거려서 자꾸만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아들이 지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신료들 중 누군가 지금 이 꼴을 본다면 아들을 폐위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댈지도 몰랐다. 설령 중궁을 하루아침에 잃은 오늘이라도.


"주상, 정신 차리세요. 주상."


대비 김씨는 가슴을 쥐어뜯듯 앞섶을 그러쥐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 릇이었다. 아들이 그만 떠들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들은 계속 헛소리만 지껄였다.


"평소 눈엣가시였던 중궁을 어디론가 빼돌리셨을테지요. 아니, 죽이려고 했는데, 중궁이 이미 사라져버렸겠지요. 하여 중궁이 살아돌아오기 전에 망곡례를 서둘러 치러버린 거지요. 중궁이 죽은 걸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미친...왜 이럽니까, 주상?"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아들을 보니 대비 김씨는 겁이 더럭 났다.


"그러게요. 안 죽었거든요."

"죽었다니까요, 주상! 죽었다고요!"


참다 못해 대비 김씨는 두눈을 부릅뜨고 핏대까지 세우면서 고함을 쳤다. 주상이 충격받을까봐, 쉬쉬하고 부음도 숨겼다. 신료들이 파자교에 나가 망곡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것도 말리지 못했다. 헌데 자꾸 부정하는 아들의 태도가 오히려 그녀의 입을 열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중궁이 죽었다고 거듭거듭 말하게 만들었다.


"안 죽었습니다."


끝까지, 아들이 부인했다. 방금 전엔 어미가 자길 죽였다고 해놓고서, 중궁은 죽지 않았다고 우겼다. 말도 안 되었다. 중궁이 죽고, 아들이 살았다. 하지만 아들은 자기가 죽고, 중궁이 살았다고 우겼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아들을 보는 대비 김씨의 두눈도 광기가 홱 돌았다.


"죽었다구요! 죽었다구요! 왜 내 말을 안 믿어요! 죽었다구요! 죽었다 이겁니다!"

"어디다 숨겼습니까?"

"정신 좀 차려요!"

"시치미 떼봤자 소용 없습니다. 다 같이 짰겠죠."

"주상, 제발 좀!"

"어디다 빼돌리셨어요?"


대비 김씨는 숨이 턱턱 막혔다. 아들이 자신의 말을 통 믿어주질 않았다. 아니, 들어먹질 않았다. 차라리 중궁의 비보를 듣고 아들이 쓰러질 거라 불안에 떨 때가 더 나았다. 지금은 아예 듣고도 끝까지 부인하는 참이었다. 중궁이 죽었다고 믿지 않는 아들을 믿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들이 이미 말을 듣지 않는 게 문제였다. 김석하의 말도, 자신의 말도 덮어놓고 의심하는 참이었다. 아니, 처음엔 좀 믿는가 싶더니, 말을 섞으면 섞을 수록 더 안 믿는 게 문제였다.


"주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말 똑똑히 들으세요. 중궁은 죽었습니다. 이제 없습니다!"


목이 찢어져라 고함치는 대비 김씨의 면전에서 숙종은 입을 쩍 벌려서 하품을 크게 해버렸다. 뒤늦게 손등으로 입을 가리면서도 숙종은 걸음을 터덜터덜 옮겨 동온돌로 향했다.


"자고 나면...있겠지."

"없다구요! 이제 없다구요!"

"어마마마도...없겠지."


대비 김씨는 귀를 의심했다. 어마마마도 없겠지? 이게 무슨...등뒤에서 자신의 궁인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아들이 울고 불고 소리를 치고 하는 편이 나았다. 헌데 아예 모든 걸 의심하는 중이었다. 아예 자신이 숨쉬는 사실마저 부인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도로 잠을 청하러 동온돌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자고 나면, 눈 뜨고 나면, 자신에게 중궁이 죽었다고 말하는 모든 게 사라지리라 믿으면서. 설령 그게 자신을 낳은 모후母后라도 사라지길 바라면서.


"주, 주상!"

"저...혼자 있게 하심이..."


섬돌에서 버선발로 올라서는 아들을 보고 대비 김씨가 치를 떨며 소리쳐 부르는데, 조상궁이 등뒤에서 손을 뻗어 대비 김의 소맷부리를 잡을 듯이 가로막으며 만류했다. 조상궁이 손을 옴츠리며 거듭 간언했다.


"전하께선 지금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의심부터 하시옵니다. 혼자 계시게 하는 편이 낫사옵니다."

"뭐라? 혼자?"

"다시 눈을 뜨시면...믿으실 것이옵니다."


조상궁의 결연한 눈빛에, 대비 김씨는 더욱 할 말을 잃었다. 혼자 있게 두라고? 같이 있고 싶은데, 같이 있어줘야 되는데, 혼자 놔 두라고?


"이제...복례復禮를 할 차례니까요."

"그래, 주상도 다 알았으니, 이제 복례復禮를 거행해야겠지. 그리고 거애도."


조상궁이 손을 소스쳐 하늘을 가리켜 보이자, 대비 김씨는 차디찬 눈빛으로, 용마루도 없는 통명전 지붕 위를 좌우로 훑어보듯 올려다 보았다. 동온돌에서 서온돌로, 다시 서온돌에서 동온돌로. 잔인한 일이지만, 중궁의 부음을 듣고도 인정하지 않는 아들에겐 어쩔 수 없었다. 중궁이 여기 동궐 서온돌이 아닌 저기 서궐 서온돌에서 숨졌으니, 마땅히 복례도 거기서 행해야 할 터였다.


- 중궁복中宮復(중궁께선 돌아오소서!)

- 중궁복中宮復!

- 중궁복中宮復!


내시가 중궁이 입던 당의를 들고 서궐 지붕 위로 올라가 소리쳐 부르는 듯한 환영이 대비 김씨의 뇌리에 그려졌다. 아마도 그 내시는 김두광이 될 지도 몰랐다. 마침 거기 서궐에 있으니. 두광에 생각이 미치자, 대비 김씨는 눈시울을 찡그렸다.


"지금 당장 여기서 거애를 거행한다."

"예? 복례는요?"

"그건 서궐에서 알아서 해야지."

"하오면 순서가..."

"이미 망곡례부터 했다. 순서는 이미 바뀌었어."


허공을 보는 대비 김씨의 두눈은 차디찼다.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그 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도록, 도로 불러 되돌리는 일, 즉 복례復禮라 불리는 저 초혼招魂이었다. 하지만 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쉬쉬하다 보니 서궐에서 복례도 미루고, 그 밖의 거애와 망곡례도 미뤘다. 이제 아들이 알았으니, 당장 거애를 거행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아들 귀에도 들리지 않을 복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아들이 곤히 잠들든, 깨든...그건 아들 문제였다.


"참, 아까 금이더러 중궁전 한상궁 마마님이라 부르던데...?"


대비 김씨가 조상궁에게 곁눈질로 눈을 흘겼다. 이 와중에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 힐난어린 눈초리에 조상궁은 애매한 눈빛으로 등뒤의 수행궁인들을 돌아다 보았다. 마마님이라 부른 걸 보면 필시 상궁은 못되고 나인쯤 될 터였다. 조상궁이 뒤를 돌아보자 나인 한명이 흠칫 놀라 고개를 조아리며 어물어물 대답했다.


"소, 소인이...봉보부인 댁에 심부름을 갔다가...뵈, 뵈었는데...봉보부인 말씀이..."

"봉보부인?"

"예, 예."

"그래서? 중궁전 한상궁이랬다고?"


대비 김씨는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봉보부인 이씨야, 아들이 태어나고 난 뒤에 양인들 중에서 선별했다. 천인을 데려다가 면천시켜줄 수도 있는 법이지만, 귀한 원자를 천것 손에 키우고 싶지 않았다. 금이가 궁에서 사라진 게 아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니 서로 면식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니 대비전 김금이인지, 중궁전 한상궁인지 알 리도 없었다. 이 중에서 금이를 알아볼 만한 이라곤 조상궁 정돈데...


"저...얼마전, 쇤네를 습격한 이도 저 금이 같습니다."


조상궁이 머릿속이 텅빈 듯한 투로 말했다. 대비 김씨는 짜증부터 내며 돌아다보았다.


"그걸 왜 이제...!"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리가 없어서..."


아예 귀신에 홀린 듯한 말투였다. 대비 김씨는 짜증을 삭이느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조상궁마저 금이 같다 했다. 더구나 본인이 금이라 했다. 헌데도 두눈으로 보고, 두귀로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궁적宮籍을 가져오너라."


대비 김씨는 조상궁에게 손을 쓱 내밀었다. 조상궁은 어깨를 흠칫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궁적을 예서 찾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었다.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고, 조상궁은 소근소근 고했다.


"송구하오나 서궐에 있을 것이온데..."

"베껴둔 건?"

"아...필사본이라면..."


조상궁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또 한번 소리를 낮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돌아가서 올리겠나이다."


조상궁의 말에 대비 김씨는 바로 대꾸하지 않고, 주위를 휘 돌아보았다. 대전나인들이 하나둘씩 중궁전 비보를 접하고 마당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온돌 불빛은 도로 꺼졌다. 아들이 이대로 잠을 청할 기세였다. 불빛이 꺼지는 바람에 이대로 거애를 해도 될지 대전나인들이 두눈을 뚜릿거리며 눈치만 보는 참이었다.


잠이 오나?


대비 김씨는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지만 기가 찼다. 아들은 아예 중궁의 죽음을 철저히 부정하는 참이었다. 끝까지 의심할 태세였다. 저러고 잠을 청하면, 잠이 제대로 오기나 할런지. 당장 대비 김씨 자신도 더는 잠이 오지 않을 듯 했다.


동온돌에서 걸음을 떼어 통명전 동협문을 나서며, 대비 김씨는 귓결에 파루의 종소리를 들었다. 하나, 둘, 셋...보나마나 서른셋을 셀 때까지 칠 터였다. 굳이 세어볼 필요도 없이. 그녀는 어느덧 두눈이 말라비틀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동온돌쪽 분합문을 보았다. 저 장지문이 다시 켜지진 않았다. 아들도 참, 끈덕지게 잠을 청하려는 모양이었다. 딱하게도.


저승전으로 돌아와, 대비 김씨는 조상궁이 갖다바치는 궁적을 확인했다. 괜히 손끝이 굳어서 책장이 잘 넘겨지질 않았다. 손끝에 힘을 주어, 거의 구겨쥐다시피 하여 넘기고 넘긴 끝에, 그녀는 궁적 맨 뒷장에 별도로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본방 손님.


- 한금이韓金易

- 김상아金象牙

- 김봉이金奉伊

- 최우희崔禺莃


김상아란 이름은 먹물로 묵삭이 되어 있어 흐릿하게 비칠 뿐이었다. 하지만, 한금이란 이름은 똑똑히 보였다. 대비 김씨의 눈시울이 실룩였다.


"한금이? 미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대비 김씨는 헛웃음을 뱉아냈다. 본방 손님이라 하여, 중궁이 사가에서 데려온 몸종들은 정식 궁녀 취급도 받지 않았다. 특히 중궁의 유모는 이미 한평생 수절을 해야 하는 궁인들과는 달라서, 오히려 왕의 유모인 봉보부인처럼 대우받아 자유롭게 궐을 드나들 수 있었다. 궁적을 살필 생각도 못하는 사이, 금이가 자신의 턱밑에서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기가 차서 그저 또 한번 헛웃음이 나왔다.


"밤을 훔친 건 난데..."


오히려 밤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금이가 살아돌아왔는데, 중궁이라고 살아돌아오지 않으란 법이 없었다. 대비 김씨는 왠지 불안해서 조상궁을 노려보았다.


"중궁의 시신은, 직접 확인했느냐?"

"예, 마마. 분명히 맥이 끊겼사옵니다. 쇤네 이전에도 이미 영상대감이 어의를 시켜 두번세번 맥진을 시켰던 모양이옵니다."

"그래? 정말이냐?"

"예, 마마."

"만약에 중궁이 살아돌아오면 네년 목을 내놓겠느냐?"

"염려 마소서. 마마."


조상궁이 고개를 조아렸다. 대비 김씨는 거듭거듭 다짐을 받아내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이래서 있는 걸까. 잠이 달아났다. 중궁이 저 금이처럼 살아돌아올까 무서워졌다. 밤을 도둑맞은 기분에, 그저 어깻죽지가 으슬으슬하기만 했다. 이미 그녀의 엄명에 따라, 대비전 궁인들도 앞마당에 몰려나와 밤새 뜬눈으로 거애를 시작한 참이었다.


"애哀! 애哀! 애哀!"



어미와 달리, 아들은 서온돌을 향해 모로 누워선 죽은 듯이 잠만 자다 다음날 아침에야 다시 눈을 떴다. 동온돌 천정을 쳐다보며, 숙종은 멍하니 간밤의 일을 복기했다.


꿈을 꾸었다.


꿈에서 매미가 울었다. 한여름 해 질 녘에나 울어대는 매미떼가 그 요란한 울음소리로 귀를 덮었다. 어찌나 자꾸 매미가 울어대는지, 귀가 지금도 먹먹하고, 또 멍멍했다. 지금이 한여름도 아니고, 이미 첫눈까지 내린 초겨울인데, 매미가 밤새 울어댔다. 귀따갑게 울어댔다. 붉은 저녁노을 아래서.


"애哀! 애哀! 애哀!"


아무리 숙종이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 밖에 없게끔, 통명전 앞에 궁인들과 내관들이 모여, 거애擧哀를 하는 참이었다. 숙종은 두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초상이 나면, '애哀! 애哀! 애哀!'하고 소리내어 곡읍을 하기 시작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간밤에 다들 왕에게 쉬쉬하느라 궐내에선 아무도 곡읍을 않다가, 어미와의 대치 이후로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게 오히려 일종의 시위처럼 들렸다. 인정할 건 인정하라는 것 같았다.


숙종은 머리가 온통 찌뿌둥하니 온통 멍했다. 궁인들의 곡소리가 매미소리처럼 들리기만 했다. 그래서 간밤에도 그렇게 매미울음만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꿈속에서 중궁이 보였다. 중궁이 새빨간 당의 차림으로 후원의 숲길을 걸었다. 황금빛 능수버들이 축축 늘어져서 바람결에 이리저리 한들거렸다. 중궁이 손으로 능수버들 가지를 잡았다가 놓으며 뒤돌아보았다. 웃었다. 숙종은 그런 중궁을 보며 손을 뻗었다. 중궁이 손을 내밀어 맞잡으려 했다.


"애哀! 애哀! 애哀!"


또 매미가 울었다. 중궁이 흠칫 손을 옴츠렸다. 숙종은 당황해서 더 손끝을 뻗었다. 중궁이 머뭇거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숙종은 안달이 나서 한발짝 더 다가섰다. 하지만 중궁이 한발짝 더 물러섰다. 그 손끝을 더 옴츠렸다.


"손...! 손...!"


숙종은 애가 타서 아예 어깻죽지까지 당길 만큼 한껏 팔을 뻗었다. 하지만 매미소리가 워낙 시끄러웠다.


"애哀! 애哀! 애哀! 애哀!"


중궁이 또 한번 움찔했다. 나무로 된 가락지를 열손가락 모두 끼고, 중궁이 두손을 모았다. 숙종은 흠칫 놀라 중궁을 부르려 했다.


"중궁!"

"애哀! 애哀! 애哀! 애哀! 애哀!"


중궁이 입을 열어 뭐라 답했다. 하지만 또 매미소리에 묻혔다. 매미떼가 징그럽게 울어댔다. 진심으로 슬퍼하지도 않으면서, 곡소리만 요란했다. 자꾸만 울어대는 그 곡소리에, 귀가 따가워서 중궁도 오른손으로 오른귀를 막았다. 어깻죽지가 들썩였다. 하지만 눈길을 들어 숙종을 보는 그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흐릿해질 뿐이었다.


"안돼...이리 와."


숙종이 말하는데도, 중궁은 옴짝달싹 하질 않았다. 옷고름을 푸는가 싶더니, 당의를 너울너울 벗어던졌다. 바람결에 당의자락이 나풀나풀 날아왔다. 숙종이 손을 뻗어 그 당의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손끝을 스치며 그대로 뒤로 날아가버렸다. 숙종은 정수리가 쭈뼛 곤두서는 느낌에 두어발짝 다가들어 손을 뻗었다.


"애哀! 애哀! 애哀!"


몹쓸 매미울음이 중궁과 숙종 사이를 가로막았다. 중궁은 그대로 오도카니 서서, 치마끈도 풀었다. 이번엔 붉은 치맛자락도 바람에 휘말려 날아갔다. 숙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저히 잦아들지 않는 매미울음 속에서, 중궁이 북쪽으로 돌아서더니, 한발한발 걸음을 떼었다.


"안 돼!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중...!"


숙종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데도, 중궁이 북악산으로 걸어갔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면서, 한발한발 내딛었다. 그런 그녀를 붙잡으러 숙종도 따라걸었다. 하지만 걸음이 자꾸 바람에 떠밀렸다. 그렇게 밀려났다. 그러자 중궁이 고개를 비틀어 뒤돌아보는가 싶더니, 곁눈만 주고서 더 나아갔다. 그렇게 저녁어스름이 점점 더 짙어지며, 중궁의 형체를 집어삼켰다.


"안..."


숙종은 혼자가 되었다. 매미울음 가득한테, 홀로 숲길에 남았다. 점점 밤이 이슥해지고, 매미울음이 그쳤다. 울다 지친 걸까. 하지만 그 울음소리에 뒤섞여, 아침햇살이 짓쳐들어오고, 대전지밀나인들의 수근거림도 들리기 시작했다. 숲길이 아니라 방안으로.


"김상책 아니야?"

"뭐야, 왜 벌써 와?"


궁인과 내시의 목소리가 한번씩 들리더니, 뒤이어 두광의 대꾸도 들렸다.


"두창은 아니고 토란독 때문이라는데?"


토란독이란 말에 숙종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냥 듣기만 했다. 반응은 궁인들과 내관들이 했다. 숙종은 그냥 듣는 게 전부였다.


"뭐? 토란독?"

"화자동에 있는 주막에서 술 젓숫다 토란독에 걸린 거래. 같이 마신 내관들도 똑같이 토란독 올라서 울긋불긋...아주 난리가 아니었대."

"뭐야, 그래서 놔준 거야?"

"잘 됐지 뭐."

"김상책이라도 있어야지. 전하 곁에."


숙종은 멍하니 천정을 또 올려다 보았다. 토란독? 토란독을 두창으로 오인하고 격리한 거라고? 중궁이 죽었으니 두광을 돌려주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라고?


세상이 속은 거였다. 중궁이 죽은 줄 알고, 어미도 김석주도 두광을 돌려주려는 터였다.


숙종은 아직도 믿고 싶지가 않아서 애써 부인했다. 말도 안되었다. 누구는 두창이라 죽고, 누구는 토란독이라 살았다고?


숙종은 큭큭큭 웃어댔다. 그냥 우스웠다. 우스꽝스러운 세상이었다. 왕이 받을 충격을 염려한답시고, 왕비의 부음을 감추고 자기들끼리 몰래 파자교로 나가 망곡례를 치렀다 했다. 보나마나 김수항과 어미가 손발이 척척 맞아 눈 가리고 아웅을 해댄 모양이었다.


"어? 저기!"

"김상책 나리?"

"김내관!"

"괜찮은 게야? 정말 아픈 데 없고?"


나인이며 상궁, 내관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두광의 대답 대신 기침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괜찮...으신 거죠?"

"뭐...전하 좀 뵙구요."


두광의 목소리에 숙종은 흠칫했다. 여태 억류해놓고서 중궁이 죽은 뒤에야 두광을 돌려줬다. 알고 보니 토란독이라면서. 생각만 해도 섬찟했다. 중궁이 죽을 때까지 기다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중궁이 죽자마자, 이렇게 두광을 돌려준단 말인가.


"전하, 두광이옵니다."


대전상궁이 흥분을 삭이며 장지문에 대고 고했다. 숙종은 시들한 눈빛으로 장지문을 보았다. 마두령이 없었다. 누가 치워버렸을까. 어미라면 진작 치우고도 남았다. 그러고 보니 양화당에도 들락거리셨던가.


"들라 하라."


왕의 웃음 섞인 대꾸에, 대청 위의 궁인들은 모두 귀를 의심했다. 방금 왕의 목소리가 밝았다. 밝아도 너무 밝았다. 오랫동안 정든 아내를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답지 않았다. 의구심을 품고 그들은 장지문을 열어주었다.


"오랜만이구나."


숙종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서 두광을 맞이했다. 하지만 장지문 틈으로 두광이 들어섰을 때, 두광은 방안의 공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분명히 왕은 슬픔에 젖질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 공기가 더 이상했다. 왕의 형형한 두눈도, 묘하게 번들거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천신, 김두광...뭐라 위로의 말씀을 올려야 좋을 지..."

"중궁은 죽지 않았다."


두광이 숙종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데, 갑자기 뒷덜미를 쓰다듬는 듯한 왕의 옥음에 소름이 끼쳤다. 두광은 두손으로 방바닥을 짚은 채로 어깻죽지를 바르르 떨면서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전하?"

"죽지...않았어."


허공을 보는 왕의 눈이 새파랗게 번뜩이는 것 같아서, 두광은 가슴이 섬뜩했다. 중궁은 이미 죽었다. 이미 서궐에 어의들이 두번세번 다녀갔다. 중궁이 살아있을 때는 오히려 얼씬도 않더니, 죽은 뒤에야 저렇게들 몰려든다고, 중궁전 지밀상궁이 악다구니를 쓰는 것도 목도했다. 헌데도 왕은 믿지 않았다. 끝내 부정하는 왕의 두눈을 보니, 겁도 났다. 두광은 두눈을 질끈 감았다.


"전하, 제발..."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해의 그림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해의 그림자 전편으로 끊고, 속편 준비 중입니다. 17.12.24 319 0 -
공지 등장인물의 변辯 +6 12.11.14 10,139 1 -
342 해의 그림자 341 - 終 +3 17.12.22 469 11 43쪽
341 해의 그림자 340 17.12.20 201 3 43쪽
340 해의 그림자 339 17.12.17 182 3 44쪽
339 해의 그림자 338 17.12.12 203 4 43쪽
338 해의 그림자 337 17.12.08 214 5 43쪽
337 해의 그림자 336 17.11.30 217 7 43쪽
336 해의 그림자 335 17.11.26 169 4 43쪽
335 해의 그림자 334 17.11.20 257 4 43쪽
334 해의 그림자 333 +1 17.11.12 215 5 43쪽
333 해의 그림자 332 17.11.04 242 4 43쪽
332 해의 그림자 331 17.10.28 204 3 43쪽
331 해의 그림자 330 17.10.22 248 6 43쪽
330 해의 그림자 329 +1 17.10.17 419 4 43쪽
329 해의 그림자 328 17.10.13 218 5 43쪽
328 해의 그림자 327 17.10.07 251 6 43쪽
327 해의 그림자 326 +1 17.10.03 307 4 43쪽
326 해의 그림자 325 17.09.29 228 6 43쪽
325 해의 그림자 324 +1 17.09.24 252 4 43쪽
324 해의 그림자 323 17.09.16 233 5 41쪽
323 해의 그림자 322 17.09.07 218 6 41쪽
322 해의 그림자 321 17.08.27 235 3 43쪽
» 해의 그림자 320 +1 17.08.20 308 4 43쪽
320 해의 그림자 319 +1 17.08.15 253 6 43쪽
319 해의 그림자 318 17.08.13 214 5 43쪽
318 해의 그림자 317 17.08.08 262 4 43쪽
317 해의 그림자 316 17.08.01 281 6 42쪽
316 해의 그림자 315 17.07.24 305 5 43쪽
315 해의 그림자 314 17.07.19 283 8 4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