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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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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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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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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3쪽

해의 그림자 315

DUMMY

얼핏 보면 푸른 용이 은빛 강물 위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용의 등줄기처럼 옹긋봉긋한 산줄기로 휘감치고, 용의 발톱처럼 삐죽빼죽한 황금빛 모래톱으로 강바닥을 짚고서, 용의 머리처럼 우락부락한 산벼랑이 엎드려 물을 삼켰다.


"저길세."


막례의 손가락이 모래톱의 발등 쪽을 가리켰다.


"어디요? 어디?"


사공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뚝도나루를 뒤돌아보았다. 방금 모래톱을 지나 저 수렛길이 난 뚝도나루를 지나왔다. 배를 어디다 대라고, 나루터를 지나자마자 말하는 건지 답답했다. 앞쪽 돈대 쪽에 선착장이 있긴 했다. 헌데, 저 선착장은 나라의 세곡이나 목재를 실은 참선站船이나 조선漕船이 아니면 아무나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공은 다시 고개를 돌려 불안한 눈길로 앞쪽 선착장을 흘낏거리곤, 또 고개를 돌려 뚝도나루를 흘끔거렸다.


"저기. 앞에 대주게."


하필이면 막례가 염지로 돈대 쪽을 가리켰다. 사공이 입을 쩍 벌리고 인상을 썼다. 저 앞 선착장엔 이 배와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배가 두척이나 정박한 참이었다. 별감의 감독 하에 노비들이 땔감을 옮기는 본새를 보니 저 별고에서 땔감을 실어다가 동궐과 서궐이 가까운 두모포와 용산진으로 향할 터였다.


"설마요. 저긴 아무나 배를 대는 데가 아닌데요."

"아무나? 그래도 아무 배는 아니지."


막례가 대충 접은 황포돛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황포돛배는 마포나루에서 두모포를 거쳐 이포나루를 오가며 세곡을 실어나르는 참선이었다.


"아니..."

"펴."

"아...안 되는데..."

"펴."

"어흐...비키쇼."


사공이 입을 비죽이더니, 한숨을 삭이며 황포돛 앞으로 다가들어, 돛대에 기대어앉은 체건을 무릎으로 툭툭 쳐서 옆으로 밀치고선 황포돛을 폈다. 체건이 사공에게 눈을 흘기고선 말없이 지켜보았다.


연시빛이 도는 황포에는 승천하는 황룡이 수놓여 있어, 언뜻 보면 그냥 황포였다. 자세히 봐야 황룡이 보였다. 용산강감龍山江監(군량미를 보관하는 용산 별영창) 관인과 그 옆에 누군가 검은 먹물글씨로 휘갈겨 쓴 참站자가 그나마 조금 눈에 띄는 정도였다. 참선은 민간 소유지만, 나라의 세곡을 운반하는 일엔 부역으로 동원되다 보니, 어느 별감이 참선의 표식으로 남긴 모양이었다.


사공은 궁시렁거리며 뱃머리로 돌아가선 황포돛배를 몰았다. 모래톱의 등허리 쪽으로 가서, 돈대 아래 바위턱에 뱃머리를 갖다댔다. 체건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섬? 산?


기슭의 모래밭은 버려두더라도, 고개 아래 너덜겅엔 물샐 틈 없이 돈대까지 둘렀다. 처음부터 제대로 쌓아올린 돈대가 아니라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이 그때그때 틈새를 틀어막느라고 바위를 더덕더덕 덧대고 또 석회를 덕지덕지 덧칠하여 땜한, 돈대라고 하기도 민망한 대산臺山이었다.


그래도 저 대산엔 경강京江의 경치를 굽어보기 좋은 정자亭子까지 있는데다, 수령이 이백년은 됨직한 네 그루 느티나무까지 있었다.


여기가 어드멘지 눈어림으로 알아차릴 법한데도, 체건은 왼쪽 눈꼬리와 입꼬리를 동시에 실룩이며 되물었다.


"여긴 또 어딘데요?"

"뚝도纛島."

"뚝도 어디요?"

"숯광골."

"예?"


막례 딴엔 더는 설명이 필요가 없어서 짤막히 대꾸했다. 하지만 체건이 못 알아듣고 되물었다. 막례는 곁눈질로 흘겨보곤 무뚝뚝히 대꾸했다.


"어려운 말로 탄동炭洞이라고도 하던가."

"아...숯?"


체건은 비로소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칼만 쥔 놈 주제에, 쉽게 말할 땐 못 알아듣고, 어렵게 말하니 알아들었다. 막례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쳤다.


"이놈 엇박잘세."

"예?"

"가자."


먼저 배에서 내리는 막례의 뒷모습을 보고 체건은 인상을 쓰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돈대 아래며, 창고 돈대 위로 십여 척의 황포돛배며 수군水軍이 보초까지 서는 참이었다. 그 수군들 어깨 너머로 커다란 창고 같은 게 서너 채 있고, 관리들이 상주하는 청사도 서너 채 있는 듯 했다. 용산에 있는 별영창別營倉이 여기도 있나 싶어. 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웬 별고別庫? 별영창?"

"아까 내가 말했지? 희나리."

"아, 그게 왜요?"

"저거, 싹 뒤져봐."

"에?"


막례가 턱짓으로 별고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체건은 심드렁히 되물으며 숯광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 질 녘도 아니었다. 점심이나 되었을 법 했다. 그런데 벌써 해가 낮게 내려앉았다. 수평선만 보면 갈치비늘이 깔린 듯한 은잿빛 물비늘이 그저 맑기만 했다. 하지만 나무를 도끼로 찍어다가 줄줄이 엮은 떼배들이 즐비한 물가를 보면 청어비늘이 깔린 듯한 물비늘도 탁하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은빛 모래밭에 군데군데 검은 물줄기 같은 게 고인 것 같기도 했다. 대낮에도 땅이 거뭇하고, 웅덩이며 옹당이며 거무죽죽했다. 하지만 섬 앞 강물은 은빛 윤슬이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죽어서나 올 수 있는 곳 같았다. 기분이 괜히 으슬으슬했다.


체건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막례를 흘겨보며 노를 고쳐쥐었다. 여차하면 노를 휘두를 기세였다.


"싫음 계속 있든지. 가지 말고 있거라."


막례는 아직도 노를 꽉 그러쥔 체건의 손을 힐끔 내려다보며 사공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치맛자락을 들어올리고 그대로 황포돛배에서 발부리를 쭉 뻗었다. 그리곤 선착장을 놔두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미쳤..."


체건은 막례를 말리려다 머뭇했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드나 했더니, 징검다리가 있었다. 막례가 사뿐사뿐 딛고 건너가는데 그 발치가 또 거뭇했다. 징검다리였다. 모래톱이라선지 여기는 수심이 몹시 얕았다. 본디 물인지 뭍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막례처럼 치맛자락만 좀 걷어내고 발치의 징검다리만 잘 밟아도, 그냥 물위를 걷는 듯이 건너갈 수 있었다.


체건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주위를 또 돌아보았다. 막례가 물속의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그 모습을 보고 우뚝 멈춰서서 손짓했다.


"안 와? 여기 물귀신이 수천이야. 꾸물대면 잡아먹혀."

"뭔 소리?"


체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까 황포돛배를 얻어탈 때도 막례가 사공과 아는 듯 모르는 듯 눈짓을 주고 받는 것도 이상했다. 헌데 수군들이 지키는데도 돈대로 서슴없이 걷는 걸 보니, 또 신기했다.


"뭔 수천..."


체건은 미간을 찌푸리고 강물 한복판을 쳐다보았다. 마치 귀신의 길이 따로 난 것처럼 강건너에 시꺼먼 물길이 뻗었다. 여기서 저기로 귀신이 건너가는 건지, 저기서 여기로 귀신이 건너오는 건지, 저쪽이나 이쪽이나 물길이 검었다. 물길만 검었다. 강물 자체는 은을 뿌린 듯이 맑기만 했다.


여기가 둑도면, 그 아래 한나절 물길이 험천險川이라던가. 거기서 숯을 굽다 보니 시꺼먼 물줄기가 뻗는다고도 해서 탄천炭川으로 불리다가, 병자년 전란 이후 험천險川으로 더 불렸다.


그 옛날 청나라 군대가 저 험천 위 언덕에 진을 치고 조선의 심장부를 파고들었다. 병영에서 여기저기 떠도는 괴담으론 저 험천에 조선의 수군과 의병이 수백 죽었다고도 하고, 수천 죽었다고도 했다. 정말로 물귀신이 수천 쯤 있을 지도 몰랐다.


"나 귀신 안 믿는데."


체건은 칼자루를 고쳐쥐고 막례를 뒤따랐다. 정말로 귀신 따위 믿지 않았다. 믿어본 기억도 없었다. 헌데 지금 해괴한 계집 둘이나 엮여서, 더 해괴한 곳에 발이 묶였으니 괜히 겁이 났다.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막례를 뒤따라 징검다리를 건너다 보니, 또 다른 황포돛배들 사이로 놓인 배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거 있는데 왜..."


체건이 배다리를 보고 화가 치밀어 따져 묻는데 막례가 입을 비죽이곤 아무 대꾸도 없이 별고 앞으로 다가섰다. 수군들이 세곡을 수레에 싣는 것을 감독하다가, 별감들이 막례를 알아보고 오히려 반갑게 맞았다.


"어우, 신녀님 오셨네?"

"신녀님!"


수군들까지 덩달아 공손히 인사하는 참이었다. 하지만 정작 막례는 손사래부터 쳤다.


"신녀님? 왜 또 반기시나? 무섭게시리?"

"에...신녀님."

"무섭다니까?"

"저야 그 뒤에 따라오는 저 귀매가 더 무서운뎁쇼?"

"귀매?

"뒤요. 뒤."


막례는 수군들의 손짓을 따라 뒤를 돌아보다가 이내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저 혼자 홀가분히 걸어오는 체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이소는?


당황한 막례의 눈앞에, 체건의 어깨너머로 이소가 검은 너울을 쓴 채로 졸면서도 어칠비칠 걸어오는 모습이 눈시울을 찔러들었다.


"저...저...!"


체건이 놈이야, 눈을 감고 걸어도 물속 징검다리 정도는 발 한 발짝 안 빠뜨리고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잠도 덜 깨어 검은 너울도 걷지 않고 발치도 보지 못하고 걷는 가시나는 졸다가 물위 배다리도 두발 다 빠뜨릴 판이었다.


"아...차..."


그제야 뭘 잊었는지를 생각해내고, 체건은 두눈을 뚜렷거리며 이소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소는 눈도 뜨지 못하고서 징검다리를 딛고, 또 딛고 건너는 참이었다.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한 몰골로 물 잠긴 오리처럼 치맛자락 적셔가며, 되똥되똥 건너는 모습을 보니 기도 차질 않았다.


"아니 왜..."

"똑바로 챙겼어야지!"

"누가 멀쩡한 배다리 냅두고 엉성한 돌다리로 건너래요!"

"네놈이...애는 안 챙기고..."

"내가 이럴 줄 모르셨나? 한치 앞도 못 보면서 무슨 무당!"

"이, 이..."


막례는 체건을 노려보며 치를 떨었다. 헌데 수군들이 체건의 막된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며 한발 나서며 창칼을 뻗었다.


"애새끼가..."

"어디 감히 뚝신纛神의 따님한테..."

"이분 손짓 한번에 여기가 섬이 됐다가 뭍이 됐다가 하는 판에..."

"무슨..."


체건이 코웃음을 치는데, 돈대 위 수군들이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그래도 이놈이..."


체건은 흠칫 입을 비죽였다. 욕 한마디라도 더 내뱉으려다 꾹 참는데, 그 사이 이소가 징검다리를 건너려다 체건의 등뒤에 머리를 콩 박았다.


"빨랑 안 오고 뭣해!"


막례가 독촉했다. 체건은 두눈을 홉뜨고 허공을 보고 한숨을 내쉬곤 이소의 머리가 더 닿지 않게 한발한발 걸음을 내쳐 징검다리를 마저 건넜다. 어느덧 막례의 걸음이 웬 느티나무가 즐비한 둔덕으로 올라서는 참이었다. 아무리 따라잡아도, 또 열댓 발짝씩 격차가 벌어졌다.


"천천..."


천천히 좀 가자고 말하려다, 체건은 멈칫했다. 막례의 발길이 용의 등줄기처럼 들쑥날쑥한 둔덕을 자꾸만 올라가는 참이었다. 막례 손짓 한번에 뭍도 되었다가, 섬도 되었다가 한다는, 허무맹랑한 요설이 생길 정도로 지대가 낮은 이곳에서, 그나마 제일 높은 데였다. 하지만 높다는 말을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무덤처럼 두두룩한 둔덕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 낮은 둔덕을 오른다고 숨이 찰 리도 없었다.


헌데, 체건은 막례의 발길을 따라 그 멧부리 위 성덕정聖德亭이란 현판이 달린 정자 앞에 닿고선 숨이 턱 막혔다.


"조용해서 좋구먼."


체건이 투덜거리다 조용해지자, 막례는 입을 비죽이며 웃었다. 체건은 짜증스레 막례에게 눈을 흘겼다. 자신들을 여기로 데려온 게 설마 저 성덕정에서 운치 있는 경치나 즐기자고 온 건 아니겠지, 하고 따져 묻고 싶었다.


굿이면 모를까.


세종 때 나라 곳곳에 뚝신묘纛神墓를 세운 이래, 해마다 봄가을이면 뚝제纛祭라 해서 조정에서 군대를 보내어 제사를 올린다 했다. 경칩驚蟄과 상강霜降, 그 봄가을 제례 외엔 뚝기가 저절로 울릴 때만 따로 별제를 올릴 뿐이었다. 두어달 전에 심한 물난리가 나서 나라에서 동서남북 성문 밖에다가 온갖 영제禜祭(비가 그치라고 올리는 기청제)를 서너번씩 올리고 난리법석을 떨긴 했어도, 여기선 영제를 올리지 않았을 터였다. 헌데, 지금 막례를 반기는 수군들의 행태를 보면 군軍과는 별도로 몰래 저자도나 여기 뚝도에서 영제를 올렸을 법도 했다.


"왜 군제軍祭에 무녀가 끼여선..."


체건은 입을 비죽이곤 막례를 따라서 정자에 올랐다. 아래를 굽어보니, 옹당이에 웅덩이가 많긴 해도 발치 아래로 둔덕마루가 펼쳐졌다. 저 산자락을 비워두고, 그 뒤로 또 커다란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처진 또 다른 산자락에 일백여 호가 옹기종기 에워싸고 촌락을 이루었다.


"뭡니까, 여긴?"


체건은 의구심을 느끼고 산마루 주변을 돌아다 보았다. 저 산마루야말로 촌락을 이루기 제일 좋은 곳일텐데, 왜 비워두고 그 뒤, 그 위 산허리에만 촌락을 이룬 건지 이상했다.


"보면 몰라? 진터잖아."

"진터요?"

"그럼. 두달 전만 해도 물난리로 잠겼어. 저기가."


체건은 다시금 산마루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산마루에 옹당이에 웅덩이가 많긴 했다. 두어달 전에 큰 물난리가 나서 나라에서 여러번 기청제를 올린 끝에 장마가 그쳤으니, 그때 쯤엔 이미 큰물에 잠기고도 남았을 터였다. 진터라는 막례의 말이 맞을 법도 했다.


"이 정자도요?"

"아니. 이건 물에 안 잠겨. 저거 때문에."


막례가 염지 끝으로 정자 턱밑을 가리켰다. 마치 관문처럼 웬 관왕묘 關王廟(관우의 위패를 모신 사당) 같은 사당이 있었다. 그 주변을 이백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푸조나무, 소나무 등이 줄지어 둘러싼 데다, 그 주변엔 깃발이나 과녁을 세웠다가 뽑은 흔적도 있었다.


"저 관왕묘는 또 뭐고?"

"관왕묘가 아니라 뚝신묘纛神廟야. 뚝신묘. 칼쓰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뚝신묘?"

"뚝신을 모셨다고, 뚝신묘."

"뚝 그치라고 뚝신묘겠지."

"세종께서 깊은 뜻을 품고 세우신 것을..."

"알게 뭐야."


체건이 궁시렁대며 건숭건숭 독신묘 주변을 돌아보니, 진터마루 주변에 고방 외에도 점포도 삼십 여호 정도 보였다. 헌데도, 체건은 입가를 실룩이다 멈칫했다. 분명히 아까 막례는 이 주변을 뒤져보라 했었다.


"아까 뒤져보라는 게...저 아래 창고들 포함이죠?"

"그야...당연하지. 여기 뚝도가 바로 왕실에 바치는 숯과 땔깜들이 모이는 데거든."

"아, 그래서 여기요?"

"어, 조심해야 할 거야. 여기 조정에서 파견한 별감들에, 사재감, 선공감 수군들이 아주 득시글하거든. 심지어 김석주 편비들도 있고."


막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건은 픽 웃으며 칼자루를 어루만졌다.


"칼춤 추기 좋겠네?"


체건이 장난삼아 칼자루를 비트는데, 검집끝에 걸렸는지, 옷자락도 함께 돌아가선 허리춤에서 뭔가 쇳소리를 짤그락 내며 발치로 툭 떨어졌다. 어디서 많이 보던 나비문양 은띠돈이었다.


"어어?"


체건이 당황해서 띠돈을 주워들었다. 허리춤에 꿴 띠돈이 빙글 돌아가다 빠진 모양이었다. 낭패한 얼굴로 체건이 띠돈을 쥐고만 있자, 막례가 낄낄거렸다.


"난 이 아이를 저 뚝신묘로 데려가 인사시킬테니, 네놈은 알아서 뒤져봐라."

"아, 네."


체건은 콧마루가 꿈틀댈 정도로 입꼬리를 실룩였다. 막례가 이소의 손을 잡아끌어 도로 정자를 내려갔다. 체건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뚝신묘를 바라보았다. 저 뚝신묘에 최석정의 여식을 데려간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살린다는 건 핑계고, 인사시킬 의도가 있는 듯 했다.


뚝신?


체건은 입을 비죽였다. 뚝신한테 인사시킨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비웃고 싶었다. 어쨌든 막례가 이소를 데리고 사당 안으로 쏙 들어가버리자마자, 체건은 슬그머니 정자 위 멧부리로 올라가선 먼빛으로 비치는 응봉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을 몇번이고 불고, 또 불었다.


"남의 손발을 부리면, 그 머리가 아는 법이거늘."


커다란 황금빛 바탕에다, 승천하는 용의 그림이 수놓여 있는 대형 깃발 앞에 이소를 세우다가, 막례는 귓결에 들리는 휘파람 소리에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체건이 동궐에서 나인들이 동온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을 보고 나서 아무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말이 생각났다.


- 남의 손발을 빌려 쓰면 남의 머리가 아는 법이지요.


물론 자신이 아는 누군가에게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명심하세요. 남의 손발을 빌리면 그 머리가 아는 법이지요.


최석정을 아는 듯한 말본새에, 또 누군가를 아는 듯한 말투까지, 아무래도 건너건너 인연이 있는 놈이었다. 저 김체건이란 어린 칼잡이는. 막례는 입꼬리를 비틀어 비웃고선, 이소의 머리에 씌운 전모와 너울을 벗겨주고 가만히 말했다.


"이 나라를 지키는 뚝신께 큰절 올리거라."

"예..."


이소는 눈앞을 시꺼멓게 가리던 전모와 너울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졸음에 겨워 눈도 게슴츠레 뜰 뿐이었다. 이소는 멍하니 큰절을 한번 올렸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몇번이고 올리고, 또 올렸다. 일곱번째가 되어, 고개를 쳐들다가 이소는 멈칫했다. 잠결에 북소리가 들렸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눈꺼풀이 들렸다.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 북鼓이 울렸다. 북소리를 찾아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눈앞을 시뻘건 피보라가 뒤덮는 듯한 착각에 이소는 화들짝 놀라 뒤로 엉덩걸음을 해버렸다.


"피, 피..."

"피는 무슨..."


막례의 핀잔도 들리질 않았다. 이소는 그저 자신이 보고 들은 피보라와 북소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벽 여기저기에 뚝纛과 정旌이 놓이고 징錚과 북鼓이 걸렸다.


이소의 눈길이 눈앞에 펼쳐진 깃발에 닿았다. 누런 용문양이 수놓인 깃발에 에두른 붉은 꿩꼬리털이 바람결에 나풀거리는 참이었다. 너무도 커다란 깃발이었다. 이 엄청난 깃발을, 어느 책자에선가, 또 아니면 어느 돛배에선가 본 것 같았다.


뚝기纛旗


치우의 깃발이라던가. 대장군의 깃발이기도 했다. 군대를 출병할 때는 이 뚝기를 올리고, 또 퇴병할 때도 뚝기를 내린다 했다. 이 뚝기가 눈앞에 있다는 건, 이소 자신이 지금 뚝기를 모시는 뚝신묘에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긴..."

"이제야 정신을 차리누."


막례가 묘한 눈초리로 이소를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소는 또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막례가 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 보는 참이었다.


"여긴 왜..."

"네년이 중궁의 액厄을 받아내다 다 죽게 생겨서 이리로 데려왔느니."


막례의 말에 이소는 아무 대꾸도 하질 않았다. 재산루에서 갑자기 귀신이 들려서, 몇달째 잠만 잤다. 졸고 또 졸고, 자고 또 잤다. 한낮에 멀쩡히 밥을 먹다가도, 입안에 밥알을 물고서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버젓이 큰길을 걷다가도, 졸고 또 졸았다. 잠깐씩 졸 때마다 가위에 들려서, 때로는 손발이 굳어 꼼짝도 못했고, 또 때로는 눈뜬 장님처럼 움직였다.


웬만한 사람은 깨우지도 못한다 했다. 깨울 수 있는 사람도 깨우지 않았다. 깨우면 그 가위눌림이 옮겨갈 정도로 해괴한 귀접鬼接이라 들었다.


헌데 왕실의 뚝기를 모신 이 뚝신묘에서 절을 올리다가 이소는 잠결에 북소리를 듣고 정신이 들었다.


"아, 자설단..."


이소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설단을 입에 담았다. 막례는 기가 차서 이소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설단?"

"중궁전하를 구하려면, 자설단이 필요해요."

"뭐?"

"자설단요."

"그걸 왜 나한테서 찾느냐?"


막례가 심드렁히 되묻는 것을 보고, 이소는 그대로 무릎걸음으로 다가들어 막례의 치맛자락을 부여잡았다. 막례가 움찔하는데도, 이소는 그 치맛자락을 붙잡고, 또 소맷자락을 움켜쥐고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절을 일곱번이나 한 뒤라 무릎이 후들거렸다. 이소는 막례의 소맷부리를 비틀어쥐고 말했다.


"있잖아요."

"없어."

"저 두창에 걸려 죽어갈 때, 입에 넣어주셨잖아요. 제가 복용한 그 자설단...무녀님이 그 서각으로 만들어주신 거, 기억해요."


이소는 막례의 허리춤에 걸린 피낭 같은 물체를 흘끗 내려다 보았다. 유상이나 백흥령이 자설단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구할 생각만 했던 것도, 그 재료인 서각을 구하기가 힘든 탓이었다. 그 귀한 서각을 저 막례는 아예 허리춤에 차고 다니다가, 이소 자신을 청파에서 만났을 때 서각을 갈아서 자설단을 만들어 주었다. 그 자설단이 남아있든, 어쨌든, 막례는 구해줄 수 있었다. 방술로만 역신을 떼어내는 게 아니라, 의술로도 떼어내는 무의巫醫였으니.


그런 막례가 눈앞에 있었다. 중궁에게 자설단이 필요한 걸 몰랐을 땐 끔찍하던 막례가, 지금은 또 반가웠다. 그런 이소의 반짝이는 두눈을 보고, 막례는 입꼬리를 실룩였다.


"그래서? 물에 빠진 년 꺼내줬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란 게냐?"

"보따리가 아니라...국모에 대한 백성의 도리지요. 무녀님도 이 조선의 백성이시니."

"아...뭐, 다른 분들보다야 자애롭긴 하셨지."

"하오면 더..."


이소가 막례를 설득하려는데, 막례가 싸늘한 코웃음으로 가로막았다.


"흥, 그 중궁전하 때문에 주상께서 노물을 찍어내고 싶어도 못하는데?"

"예?"

"그 역린을 누가 잡아뜯을까봐, 주상께선 아무 것도 못하시지. 팔을 들지도, 칼을 뽑지도 못해. 아쉽지만 역린이 뽑혀야...노물이 죽어."


막례의 말투가 차디찼다. 하지만 물기가 짙었다. 막례도 중궁의 죽음은 원치 않을 터였다. 이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물..."

"조선에 태어난 게 축복이자, 재앙이지."


막례가 말하는 게 누군지, 이소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 노물이 죽기 위해서라도, 저 막례는 자설단을 내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소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막례를 보았다.


노물을 죽이려면 중궁이 죽어야 한다고?


말도 안되었다. 노물은 이미 칠순이 넘었고, 중궁은 이제 스물이었다. 나이차를 따져봐도, 반백년 터울이 훌쩍 넘었다. 황천길이 머지 않은 송시열 때문에 앞길이 구만리인 창창한 중궁이 이소는 가만히 뇌까렸다.


"반백년, 반백년인데..."

"뭐?"

"반백년인데..."


계속 되뇌이기만 하는 이소를 보고서 막례는 실소를 지었다.


"저승길에 나이는 왜 따져?"

"예?"

"네년 목숨은 뭐 길 줄 알고?"

"무슨..."

"내 한가지 비밀 알려줄까?"

"무슨..."

"여기 하늘만 시뻘건 줄 알지? 저기 하늘도 시뻘개. 아예 별들이 춤을 춰. 신료란 것들은 왕이 실덕한 탓이라고 뒤집어씌우지만,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아. 몇년째 춥고, 또 춥고...헌데 거길 찾은 색목인들도 입을 모아 말하지. 동서남북이 다 똑같다고. 하늘이 미친거라고."


막례는 염지 끝으로 뚝신묘의 천정, 그 위 하늘을 가리켜 보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동서남북의 하늘이 다 똑같다는 막례의 말이 이소의 관자놀이를 무섭게 관통했다.


그래도 본디 하늘은 조금씩 달랐다. 별도 다르고, 바람도 달랐다. 그런데도 다 똑같이, 하늘이 미쳐 날뛴다는 말이 무섭게만 들렸다. 이소는 몸서리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청엔 왜..."

"무의巫醫가 청에 가는 게 무에 이상하겠누."

"그래도 거기까지 간다는 게 쉽지 않은데..."

"사람을 살리려면 자설단이 필요한데, 그 자설단은 서각이 없으면 안돼. 헌데 이 조선땅엔 가짜가 판을 치니 진짜를 구하려면 차라리 직접 청에 가서 발품을 팔아야만 하지."

"진짜...서각요?"

"그래, 전설의 짐독도 풀어줄 만큼 영험한 놈."

"진짜...서각 하나 구하려고 청에 가셨단 말인가요?"

"흥. 내가 좀 미쳤지."


막례가 피식 웃었다. 이소는 혀를 내둘렀다.


"좀이 아니라...많이요. 청에 가셨을 리가."

"거기 황제는 더 어린 나이에 즉위해 자기 신하들과 전쟁을 치렀어. 자신의 맞은편에 서는 자들로 모조리 오사리젓 육시럴젓...아니 오사리젓 육젓을 담가버렸지. 그래도 거기 신료들은 찍소리도 못하지. 오히려 왕이 신하처럼 굽힌다고 불만이거든. 왕이 약해지면 나라도 약해진다고 믿거든."


왕이 신하처럼 굽힌다고 불만이라고? 왕이 약해지면 나라도 약해진다고? 이소는 통명전에서 보았던 풍경을 멍하니 떠올렸다. 대비가 보낸 무녀들을 감히 중궁의 윤허도 없이 수문장들이 안으로 들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중궁의 처지가 얼마나 처량한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힘을 잃었어도 왕의 정비인데 어찌.


"자설단요."


이소는 막례의 눈앞에 또 손을 내밀었다. 막례는 기가 막혀 이소를 보았다. 방금 자신이 이소가 알아듣기 쉽게 말했던 것 같았다. 중궁의 액을 받아내다 잘못되게 생겨서 이리로 데려온 거라고.


헌데도 이 아이는 자신의 경고를 귓구멍이 아닌 콧구멍으로 들었는지, 보란 듯이 손을 내미는 참이었다.


"그 손..."

"자설단요."

"대체 내 말을 어디로..."

"자설단요."


이소의 눈빛은 단호했다.


"징한 놈."


막례는 기가 차서 이소를 보았다. 일개 백성의 충심치곤 대단했다. 국모가 승하하면 백성들은 길거리로 나와 통곡을 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것이 중궁을 언제 봤다고 이 정도 충심을 지닌 건지, 이해도 공감도 되질 않았다.


"네가 중궁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막례의 비웃음에 이소는 뭐라 대꾸하려다 갑자기 목울대가 콱 막혔다. 목울대가 날카로운 바늘 같은 걸로 찔린 건지, 아니면 찢긴 건지. 이소는 고통에 안면근육이 실룩였다.


"지금 왕의 곁에 계신 분...더 알아야 할 게 있나요?"

"글쎄..."


막례는 가만히 한숨을 삼켰다. 중궁은 왕의 곁에 있는 존재였다. 왕의 앞에 서려고 하지 않는 그 한가지면 충분했다. 그 성품이 어떤지, 더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왕의 어미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니, 지금은 왕이 중요했다.


그 왕이 중궁에게 너무 집착해서, 노물을 사사로이 불러들였다. 당장 노물에게 깨물린 역린이 아파서. 그 역린이 노물에게 물어뜯길까 겁이 나서.


계속 이렇게 왕이 노물에게 짓눌리고 또 짓밟히면, 조선은 우물 안에 갇혀 노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노물의 손으로 세상을 다스리려 할 터였다. 그게 계몽이고, 그게 개혁이라 믿으며. 허나...아무리 연못을 정화시키는 연꽃 같은 존재라 해도, 이미 꽃대가 꺾인 것을 어쩌리.


"차라리 모후께서 더 좋은 분이셨더라면. 차라리 그 명줄이 더 짧았더라면."


막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뒷걸음질로 뚝신묘를 물러나와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아직 한낮인데도 벌갰다. 막례는 눈을 의심했다. 어디선가 흰 연기가 치솟는 참이었다.


"웬 연기?"

"예?"


이소가 되묻는데도, 막례는 대답하기 귀찮은지 말없이 하늘만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이소가 다시금 되묻는 듯한 목소리가 귓결에 스쳐도, 막례는 이소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 시선은, 버젓이 뚝신묘 지붕에 무릎을 세우고 드러누워 하늘만 쳐다보는 체건을, 그 뻔뻔한 얼굴을 보는 참이었다.


"거기서 뭐 하는 게냐? 어디 감히 신령님께 불경을..."


체건은 힐끗 고개를 돌려 막례를 지붕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최석정의 여식 머리에 씌운 전모와 너울을 막례가 팔에 걸치고서 자신을 쏘아보는 참이었다. 체건은 눈썹만 살짝 꿈틀했다.


"보면 몰라요? 기다리는 중이잖아요."

"엿듣는 중이었겠지."


막례가 무섭게 노려보는데도 체건은 태평했다. 막례는 눈시울을 누그러뜨리며 한숨을 내쉬고, 별고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희뿌연 연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저거, 지난번 물난리 때 왔을 때도 한번 본 건데 말이다."

"저 연기요?"

"그땐 불이 났나 싶었는데, 한여름 물난리에 창고에서 연기가 날 일이 무에 있겠누."

"뭘 끓였거나 태웠거나?"

"가서 훑어보든지."

"지금?"


체건은 느낌이 싸해서 뚝신묘 지붕 아래의 막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하는 소린지, 거짓으로 하는 소린지, 아니면 참과 거짓을 섞어서 하는 소린지, 파악하려 했다.


헌데 막례는 애숭이한테 속내를 들킬 만큼 미숙하질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체건을 마주보며 티끌 만한 감정도 드러내질 않았다.


그때 뚝신묘 안에서 이소가 잔기침을 하면서 힘없이 걸어나왔다.


"무의巫醫님..."

"왜 그러..."


대꾸를 하다 말고, 막례가 눈시울을 꿈틀거렸다. 별고에서 새어나오는 연기에 이소가 마른 기침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나 심상치가 않았다. 증상이 심하지 않고, 그저 목이 따갑거나 하는 정도이니, 당장 문제될 건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잔기침을 해댈 만큼 몸에 좋지 않은 연기를 맡은 게 문제였다. 막례는 바로 체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왕실로 들어갈 숯과 땔감을 보관하는 창곤데, 독한 연기가 나거든? 뒤져 볼래, 안 뒤져 볼래?"


막례의 말을 흘려들으며, 체건은 뚝신묘 지붕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최석정의 여식이 막례 앞으로 다가서다, 이쪽을 돌아보는 참이었다.


예전에 이슥한 밤에, 재산루 으슥한 다락에서 볼 땐 몰랐는데, 또 방금도 이 아이가 두눈을 반쯤 감고 졸며 걷기만 할 땐 몰랐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예쁘지 않았다. 체건은 발밑에서 묘하게 반짝이는 영롱한 두눈을 보며 속으로 심장 문짝에 어깃장을 대었다. 여염의 계집답지 않게 오똑하고 날렵한 콧날을 보며 또 마음속 어깃장에 대못질을 해댔다. 못 생겼다. 석류알을 삼킨 듯이 붉은 입술을 보며 또 빗장도 걸었다. 더럽게 못 생겼다.


"언제 돌아가시게요?"


고개를 돌려 무녀를 보며 이소란 계집아이가 물었다. 옥의 티처럼 오른뺨 귀밑에 다닥다닥 붙은 붉은 곰보를 보는 순간, 체건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왔다.


"씹..."


예뻤다. 하필이면 신분부터 하늘과 땅 차이인 이 아이는 끔찍하게 예뻤다. 계집아이가 흠칫 자신을 보며 두눈을 암상궂게 치뜨는 것도 그저 곱기만 했다.


"그 북소리, 그쪽이 내신 건가요?"

"북소리?"


체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북소리라니. 자신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밖에 있는 자신이 듣지 못한 북소리를, 안에 있는 계집이 들었을 리가 없었다. 이 계집도 석하형님처럼 귀가 밝은 건가. 안에 있는 계집이 들은 북소리를, 밖에 있는 자신이 듣지 못한 게 너무 이상했다. 계집이 착각을 한 건가.


"나도 들었는데. 북이 울더군."

"북이...울어? 미친..."

"뭐, 네놈이 천정에서 발이라도 굴렀나 보지?"


막례가 실쭉 웃었다. 체건은 두 낮도깨비 같은 계집들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내가 뭘!"

"아님 말고."

"이..."


체건은 울화를 삭이느라, 어금니를 꽉 물었다. 계집들을 상대로 성질을 부릴 수는 없었다. 두 요상한 계집을 상대로 조금은 들떴는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긴 했어도, 여기서 더 거칠어지긴 싫었다. 오늘따라 자기답지 않게 수선을 피우긴 했어도, 더는 망가지기 싫었다.


애써 화를 억누르는 체건을 보고 막례는 아랫입술을 비죽이며 이소를 흘낏 쳐다보았다.


저 철부지 칼잡이한테 고작 한두살 내지는 두어살만 어렸다. 체건이 놈이 또래의 계집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저 나이 땐 자기보다 더 성숙한 계집에게 더 끌리기도 하지만. 저놈은 자기가 베어야 할 상대, 지켜야 할 상대를 나눠야 하는 칼잡이니, 어울리지 않게 계집을 지켜주고 싶은 본능이라도 발동했을 지도 몰랐다. 이소를 곁눈으로 훔쳐보고, 막례는 도로 고개를 젖혀 체건을 보았다.


"안 가볼텐가? 연기가 꺼졌는데."


막례의 연기 운운에 체건은 미간을 실룩였다. 벌건 대낮에 혼자 창고들을 뒤져봐도 되나 불안했다. 자신은 쓸 데 없는 객기를 부릴 만큼 아둔하진 않았다. 아직 약관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머리가 뜨겁진 않았다. 그저 조금 성질이 사나울 뿐이었다.


"돌팔이, 같이 가실라우?"

"같이?"


막례는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막례 자신은 따라나서지 않으면서, 자기한테만 가보라고 하니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자기가 닭모가지 비틀지도 만한 힘이 없는 아낙으로 보일 리도 없는데, 왜 데리고 들어가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왜?"

"친구면 손 좀 빌리고, 적이면 손 좀 묶어두게."

"아, 그래?"


막례는 피식 웃고 이소를 돌아보았다.


"네년은 저 안에 들어가 있거라. 거기면 아무도 네년 못 건드리니."

"그냥 다같이 여길 나가는 게...북이 울렸습니다. 곧 군이 몰려들텐데요?"

"그러니 그전에 살펴야지."


막례는 짜증스레 미간을 꿈틀댔다. 요즘 들어 만나는 군상들이 하나같이 의심이 많았다. 어떻게 된 게 사람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 자들이 없었다. 미욱한 중생들은 신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고, 메주로 고약을 만든다 해도 믿을 것을.


"얼른."


막례가 보챘다. 하지만 이소는 체건과 막례를 빤히 쳐다보곤 오히려 돈대 쪽으로 한발 또 한발 걸음을 옮겼다.


"너...!"

"먼저 배로 가서 기다릴게요."

"네년..."


도무지 말을 듣질 않는 이소의 태도에 막례가 진노하는 순간, 오히려 체건이 고개를 끄덕여 한마디 거들었다.


"아, 그게 낫겠네. 누구라도 지키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막례는 기가 차서 이소를 쳐다보곤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허면, 이 아이가 배에 올라타는 순간, 우리도 움직이죠?"


체건의 제안에 막례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어차피 그 황포돛배에 올라타면 이소는 안전했다. 하지만 왠지 찜찜했다. 아무래도 딴맘 먹고 선착장으로 가려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창고를 뒤지는 사이, 저 아이는 혼자 어디로 내뺄 지도 몰랐다. 그래도 막례는 이소의 눈앞에 검은 전모와 너울을 툭 내밀었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중궁전 서온돌에 장난친 놈들을 잡아내기 위함이다."

"예?"


이소가 냉큼 전모와 너울을 그러쥐는 것을 보고, 막례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더했다.


"허니 잘 생각하거라. 경거망동하지 말고."


혼자 도망칠 생각 말라는 엄포 대신, 막례는 이소가 배에서 자신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물론 막례 딴엔 정말 쉬운 설명을, 남들은 어렵게 알아듣는다는 걸, 막례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도 총명한 계집이니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소는 체건이 뚝신묘 지붕에서 사뿐신뿐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며 선착장으로 한발한발 걸음을 내쳤다.


뚝신사 아래로 내려서니 큰물에 둔덕이 한번쯤 휩쓸렸는지, 여기저기 초목이 기운 듯한 풍광이 이소의 눈에 들어왔다.


이소는 자신의 모습이 별고 쪽에서 잘 보이는지, 어떤지, 이리저리 시선을 가늠해 보았다. 그리곤 되도록 기둥이 아름드리 굵은나무, 내지는 자신의 머리까지 덮을 만큼 빽빽히 우거진 풀숲을 찾아서 일부러 걸음을 삐뚤빼뚤 걷기 시작했다. 선착창이 가까워져서야, 이소는 전모와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사공이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어? 혼자 오는 겁니까?"

"먼저 가라고 하시던데요."


이소는 전모를 쓰고도 고개를 살짝 숙이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무녀든 칼잡이든, 더는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궁에서 끌고 나온 것 만으로도, 그들은 나쁜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이 사공을 속여 여기 뚝도를 벗어나 두모포로 가고 싶었다. 두모포까지만 가도, 걸어가든, 달려가든, 어떻게든 입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지금 다 떠나서...남은 배가 이 배 뿐인데..."


이미 모래톱 앞까지 달려가는 두척의 참선을 사공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이소는 사공의 손길을 따라 돌아보곤 흠칫 손끝을 옴츠렸다. 정말로 배가 한척 밖에 안 남았다. 이대로 사공을 데리고 배를 출발시키면, 저들은 저대로 이 섬에서 발이 묶여 다음 배가 들어올 때까진 오도 가도 못할 터였다. 그 다음 배가 들어왔다간, 무녀도 칼잡이도 꼼짝없이 잡히는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이건 기회였다.


"다음 배로..."


이소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무녀와 칼잡이가 이리로 온 건 서온돌에 장난친 놈들을 잡아내기 위함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 대화에 간간이 희나리란 말이 섞였었다.


- 달안개...이상해...


중궁전도 그런 말을 했었다. 이소는 생각에 잠겨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누군가 서온돌 구들에 장난을 친 것 같긴 했다. 밤시간만 잠깐 거기 입직해서 왔다 갔다하는 자신보다는, 하루종일 서온돌에서 누워 지내는 중궁이 더 잘 알터였다.


하지만 열여섯 이소의 귀엔 너무 끔찍한 소리였다. 가뜩이나 두창으로 숨이 턱에 걸린 중궁을, 구들에 장난쳐서 아예 숨통을 끊으려고 한다는 건,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야 그럴 수 있는 걸까.


그 말이 맞으면, 가서 중궁의 곁을 지키는 건 아무 소용도 없었다. 너라도 살리려고 이리로 데려왔다는 무녀의 말은 진심일 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거짓일 지도 몰랐다. 이미 막례가 김석주와 한패라면. 여기 뚝도에서 신녀로 통하는 그녀가 별감과 수군을 움직여 이 모든 음모를 관장하는 것일 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자기가 전부터 신딸로 탐을 내는 이소 자신을 미리 손을 써서 자신을 이리로 데려온 것일 지도 몰랐다. 이미 김석주와 손을 잡았다면. 백흥령, 유상에 이어, 이소 자신까지 떼어내면 중궁은 완전히 고립될 테니.


"그럼...기다리죠."


이소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칼잡이와 무녀가 저 별고에서 뭐라도 들고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하게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제 정신이 아니라 두사람의 대화를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방금 둘의 대화만 되짚어봐도, 거짓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 같진 않았다.


이소는 어느덧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끝으로 축이면서 돈대 위 별고를 쳐다보았다.


찾아야 할 비밀,

또 구해야 할 단약.


이소는 머릿속이 분주했다. 음식이나 식기에 독이 섞였으면, 중궁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구들에서 독한 연기가 나왔어도 중궁이 몰랐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중궁이 잠든 한밤중을 노려 연기로 야금야금 중독시켰으면 가능할 법도 했다. 그러면, 의심을 해도 잡아내진 못할테니.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한 눈빛으로 이소가 별고를 먼빛으로 주시하는 사이, 막례와 체건은 별고 세채 앞으로 다가갔다. 땔감을 나를 차례인지, 아니면 땔감을 나르던 중인지, 세채 중 맨뒤만 빼고 맨앞과 가운데의 별고는 자물쇠가 벗겨져 있었다.


"뭐야, 지금 나르는 중인가?"

"서둘러."


막례의 잔소리에 아무 대꾸도 않고 체건이 가운뎃별고로 막례를 잡아끌었다.


"이거 놔. 나눠서 들어가야 빠르지."

"댁을 어찌 믿고?"

"허이구?"

"뚝."


체건은 막례에 조용히 하라 신호를 보내곤, 가만히 코를 킁킁대며, 이내 막례의 팔을 문밖으로 잡아끌었다.


"왜...!"


막례가 따지려는데 체건은 바로 가운뎃별고로 막례를 데려갔다. 막례는 기가 찬 표정으로, 하지만 어린아이 재롱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체건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폈다.


체건은 별고의 문을 열자마자 냄새만 맡아보고 또 도로 문을 닫았다. 어차피 가운뎃 별고엔 곡물만 가득 쌓였고, 그나마 숯이 들었을 법한 바구니는 스무개 정도만 시렁에 놓였다. 하지만 체건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왜 열어보지도 않고..."


막례는 따지다가 말고 말끝을 얼버무렸다.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이 되어, 막례는 체건의 옆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체건이 이번엔 앞쪽 별고로 그녀를 잡아끌었다.


앞쪽 별고도 문을 열자마자 체건은 콧마루를 실룩이며 냄새부터 맡았다. 뭔가 냄새가 난다 싶었는지, 두눈을 감고 다시 한번 코를 킁킁거렸다. 목울대에 마른기침이 꽉 찼는지, 체건은 콜록거리면서 오히려 걸음을 한두발짝 들이밀었다. 막례가 체건이 옆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순순히 따라들어갔다.


별고 안엔 강원도에서부터 이포나루를 거쳐 참선으로 들어온 온갖 탄목炭木들이 뚜껑도 벗겨진 채로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가운뎃별고에선 숯더미가 벽쪽 시렁에 놓였지만, 이 앞쪽 별고는 그냥 바닥에 방치되었던 건지, 바닥 여기저기에 희고 검은 숯가루와 희고 검은 재가 깔렸다. 특히 들창 쪽 벽밑은 여느 숯가루보다 짙은데다, 바닥의 흙도 축축해 보였다.


체건은 연기의 근원이었을 화로 같은 것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화로, 화로..."

"저깄는데."


막례가 숯더미 틈새의 화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체건은 코끝을 벌름거리며 화로 앞으로 다가들었다. 그 와중에도 곁눈으로 막례의 동태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놈..."


막례가 기가 차서 혀를 찼다. 아주 다부지고도 야무지게 자신을 경계하는 걸 보니 그저 기가 막혔다. 체건은 흰 잿더미가 수북한 화로 앞으로 코끝을 갖다대곤 이내 쿨럭거렸다.


"이 냄새..."

"뭐?"

"이 냄새가 맞는 것 같긴 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똑같은 냄새는 아니었다. 뭔가가 달랐다. 하지만 자신이 냄새를 맡았던 건 동온돌이었고, 그때는 유근피를 비롯해서 다른 땔감들도 있었다. 연기냄새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왕이 쓰러지기 직전에, 대비 김씨가 수의를 끌고 들이닥쳐 방문을 열게 했었다. 비록 진맥 및 진찰로 왕의 병증을 살피려는 핑계였지만.


"냄새를 확인해 보려면 차라리 저 아이를 데려오는 게..."

"그럴 필요 뭐 있누. 이걸 가져가서 확인 시키면 되지."


막례는 화로를 통째로 들었다. 체건이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막례에게 언성을 높였다.


"뭐예요? 그걸 들고 가려고?"

"웃기는..."


막례는 치마 앞자락에 화로를 기울여 잿가루를 쏟아부었다. 체건은 기가 질려 눈시울이며 입시울이 온통 이지러졌다.


"그..."

"이렇게 해서 여기를 돌돌 말면..."


막례가 잿가루를 담은 치맛자락을 한껏 들어올려 뱃대끈으로 친친 동여맸다. 혹시라도 가루가 샐 세라 몇번이고 뱃대끈을 감고 또 감았다. 덕분에 치맛자락에 작은 혹이 생겼다. 본디 뱃대끈에 고리째로 걸려 있던 피낭 같은 게 뒤집힌데다, 치맛자락이 올라가서 막례의 발목 복사뼈는 물론 아예 정강이까지 훤히 비쳤다. 체건은 우스꽝스런 막례의 몰골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제 호패주머니에 넣는 게..."

"아...그런 방법이..."

"거 머리 좀 쓰지..."

"너도 10년만 늙어봐라. 머리가 꾸들꾸들 해진다."


막례가 천연덕스레 대꾸하며 옷매무새를 고쳐, 저고리자락으로 치맛자락의 혹을 감쪽같이 감추었다. 하지만 뱃대끈에 원래 고리째로 걸려 있던 적갈빛 피낭 같은 게 삐져나왔다.


"아, 네."


체건의 눈길이 피낭 같은 물건에 닿았다. 처음엔 피낭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후줄근한 게 아예 무두질도 안 되었다. 게다가 뿔 같은 부분은 뚫려 있어, 물을 담아도 샐 것 같았다.


피낭이 아니면...?


"누구냐!"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체건도, 막례도 흠칫 놀라 문쪽을 뒤돌아보았다. 아까 선착장에서 수군과 노비들을 부려 참선에서 땔감과 숯을 내려놓게 하던, 두 별감 중 한놈이 문간에 있었다.


작가의말

뚝신묘 고증에 무척이나 애를 먹었습니다.

태조 이성계 때부터
군대를 출정할 때면
뚝기( 둑기 혹은 독기纛旗)를 맨앞에 세우고 행군을 시켰는데
뚝기를 든 군졸이 깃발을 부러뜨리기라도 하면
불경죄로 참수하기도 했습니다.
세종 때 뚝기를 뚝도와 통영 쪽에 안치하고 뚝신묘를 세웠는데,
해방 이후 사라진데다 자료가 남질 않아서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질 않았습니다.

옛그림과 사진을 참고해서 상상으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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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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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해의 그림자 전편으로 끊고, 속편 준비 중입니다. 17.12.24 319 0 -
공지 등장인물의 변辯 +6 12.11.14 10,139 1 -
342 해의 그림자 341 - 終 +3 17.12.22 469 11 43쪽
341 해의 그림자 340 17.12.20 201 3 43쪽
340 해의 그림자 339 17.12.17 182 3 44쪽
339 해의 그림자 338 17.12.12 203 4 43쪽
338 해의 그림자 337 17.12.08 215 5 43쪽
337 해의 그림자 336 17.11.30 217 7 43쪽
336 해의 그림자 335 17.11.26 169 4 43쪽
335 해의 그림자 334 17.11.20 258 4 43쪽
334 해의 그림자 333 +1 17.11.12 215 5 43쪽
333 해의 그림자 332 17.11.04 242 4 43쪽
332 해의 그림자 331 17.10.28 204 3 43쪽
331 해의 그림자 330 17.10.22 248 6 43쪽
330 해의 그림자 329 +1 17.10.17 419 4 43쪽
329 해의 그림자 328 17.10.13 219 5 43쪽
328 해의 그림자 327 17.10.07 251 6 43쪽
327 해의 그림자 326 +1 17.10.03 307 4 43쪽
326 해의 그림자 325 17.09.29 228 6 43쪽
325 해의 그림자 324 +1 17.09.24 252 4 43쪽
324 해의 그림자 323 17.09.16 233 5 41쪽
323 해의 그림자 322 17.09.07 219 6 41쪽
322 해의 그림자 321 17.08.27 235 3 43쪽
321 해의 그림자 320 +1 17.08.20 308 4 43쪽
320 해의 그림자 319 +1 17.08.15 253 6 43쪽
319 해의 그림자 318 17.08.13 214 5 43쪽
318 해의 그림자 317 17.08.08 262 4 43쪽
317 해의 그림자 316 17.08.01 281 6 42쪽
» 해의 그림자 315 17.07.24 306 5 43쪽
315 해의 그림자 314 17.07.19 284 8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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