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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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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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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20,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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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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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41쪽

해의 그림자 323

DUMMY

"전하께서, 상차喪次의 배설도 윤허를 하시고...순한 양이 되셨습니다."


붉은 노을이 드리운 송동 고택 마당에 송시열의 머슴들이 짐을 푸는 광경을 사랑채 축대에서 송시열의 어깨너머로 비스듬히 굽어다보며, 김수항이 고했다. 시열은 미간을 실룩였다.


"퍽이나..."

"예?"


수항의 반문에 시열은 흠칫해선 얼버무렸다.


"아닐세."

"예? 아니...라뇨?"

"흥, 하루아침에?"


시열이 코웃음을 치자, 수항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우암 송시열. 후대의 모든 서인들에게, 조정의 모든 대소신료에게 그 영부사란 직함보다 대로大老란 호칭으로 더 불리는 거인. 그가 왕 얘기만 나오면 유독 거칠어지는 게 문제였다. 수항이 불안한 눈빛으로 시열을 쳐다보는데, 그런 수항의 눈길을 느끼고 시열이 곁눈으로 흘낏 돌아보며 설명을 곁들였다.


"기신록으로 겁을 주긴 했지만, 자객을 찾긴 커녕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지."

"겁이 나신 게지요."

"아니! 겁이 났으면 금군을 부르고 경계를 강화했겠지.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질 않았어. 혼자 있게 해달라면서."


수항은 왕에 대한 시열의 적대감, 그 이상의 경계심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하는 제가 더 잘 압니다. 겁이 나신 게 분명합니다."

"겁? 그 한번에?"

"예?"

"아니...어차피 한번에 겁먹을 거란 기대는 안했어. 차근차근 숨통을 조일 거였지."

"그 김석하란 자도 종적을 감췄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잡듯이 뒤져도 간 곳을 모르잖습니까. 심복도 사라진 마당에 신변에 위험을 느꼈으니 주눅이 들 수 밖..."

"아니! 아니라고!"

"어르신..."

"나한테 칼을 빼들었을 때 어쨌는지 벌써 잊었나? 이단하에게 행장行狀을 짓게 하곤 하나하나 꼬투리 잡아서 우릴 쳤다네. 바둑처럼 단수單手쳐서 한알한알 쏙쏙 빼먹었단 말일세. 미리 몇수 앞을 내다보고 꾸민 것처럼."

"그..."

"누가 아누? 이번에도 혼자 방구석에 숨어서 무슨 짓을 꾸밀 지 모르지."


시열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설마요..."

"자넨 왜 뭐든 믿고 싶은대로만 믿으려고 하나. 김만기고 김석하고, 지금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뒤로 무슨 수작을 부리는 줄 알고 마냥 만사태평이야!"

"둘 다 찾아보라 이미 일러두었습니다. 그리 염려하실 건..."

"자넨 몰라! 그 심기는 세상 꼭대기에 올라본 사람 만이 굽어볼 수 있어. 어찌 상국相國에 앉은 사람이 그걸 몰라?"

"어르신..."


수항은 불안한 눈길로 눈치를 보았다. 시열은 평소 호불호가 너무 뚜렷했고, 또 확고했다. 한번 적이면 영원히 적이었다. 수항 자신더러 최명길의 후예라고 너무 감정만 앞세우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충고한 건 정작 자기면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날을 세웠다. 역심逆心은 아닐까 불안해질 정도로.


"드디어 내일이 대렴大斂이로고..."


시열이 저문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항은 덩달아 한숨이 나올세라 마른침만 꼴깍 삼키고서 발치를 내려다 보았다. 낮엔 또렷하고 짧던 그림자가, 지금 밤엔 흐릿하고 길었다. 불안이란 이름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참이었다.



"뭐? 이 밤중에?"


해평 윤씨는 천담복 차림으로 흰 소복을 무릎맡에 올려두고 씁쓸히 어루만지다가, 장지문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 의구심 어린 목소리에, 장지문 너머에서 조상궁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예, 지금 당장 뫼시고 오라, 대비전하께오서 분부하셨나이다."


해평 윤씨는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등뒤의 병풍을 돌아보았다. 8첩 병풍에 채색된 초충도가 곁눈에 비쳤다. 까닭 모를 불안이 등줄기를 스멀스멀 기어올라, 목줄기까지 핥았다. 섬찟한 기분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대비전하께오서?"

"예, 왕대부인王大夫人."


조상궁의 대답에, 해평 윤씨는 가만히 입술을 감물었다. 이도 악물었다. 곧 파루의 종이 울리면 죽은 손녀의 대렴大殮이 행해질 터였다. 두시진만 있으면 손녀의 관뚜껑이 닫히는지라, 도저히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할래야 청할 수도 없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또 눈도 퍽퍽했다.


"어서 채비를 해 주시지요. 대비전하께오서 찾으시옵니다."

"왜 나를...?"

"그건 가 보시면 아실 일이옵니다."


조상궁이 난처한 음색으로 우물쭈물 답했다. 해평 윤씨는 인상을 쓰고 다시 한번 등뒤의 병풍을 또 돌아보았다. 착각일까. 병풍 속 호랑나비의 날개가 꿈틀댄 것만 같았다. 마치 누군가의 혼백이라도 모셔다 놓은 것처럼, 해평 윤씨는 혼잣말을 내뱉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해평 윤씨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앞발을 헛디뎠다. 휘청이다 곧바로 몸의 중심을 바로잡고 그녀는 또 뒷발을 휘청이다, 다시 똑바로 섰다.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왼손을 소스쳐 이마를 짚고선 가만히 호흡을 골랐다.


예순을 훌쩍 넘긴 노령의 몸이라, 잠을 제대로 못 이루면 이렇게 현기증이 도졌다. 헌데 이 밤중에 대비전이 자신을 왜 찾는 건지 의구심이 생겼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무슨 소리냐? 대비전하께서 왜 이 야밤에 어머님을 찾으셔?"


장지문 밖에서 아들 만중의 가시돋친 목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조상궁을 붙들고 꼬치꼬치 따져서 어떻게라도 만류할 심산 같았다.


"되었다. 내 다녀오마."


해평 윤씨는 바쁜 손놀림으로 횃대에 걸린 누비두루마기와 흑단 풍차風遮(바람막이 머리쓰개)를 걸쳤다. 검은 담비털로 테를 두른 풍차가 귓전을 간질였다. 그래도 장지문 너머에서 들리는 아들 만중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잘 들렸다.


"아니...바람이 찬데 어딜요..."


장지문 앞으로 다가가서 문고리를 쥐고, 힘껏 비틀어 열었다. 문틈으로 차디찬 밤바람이 짓쳐들어왔다. 그 잔인한 냉기에 윤씨는 몸서리를 치면서도 꿋꿋하게 걸음을 내쳤다.


"안 갈 수도 없잖으냐."

"소자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만중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축대를 올라 섬돌 앞으로 훌쩍 다가섰다. 어미를 부축하려고 이미 팔까지 뻗는 참이었다. 하지만 해평 윤씨는 손짓으로 아들의 팔을 슬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의연히 섬돌 위 운혜를 신었다.


"되었다. 네 형도 없으니 네가 자리를 지켜야지."

"하오나 어머님, 이미 인정이 지났는데..."

"조상궁 일행을 따라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하오나..."

"순라꾼들에게 신변보호를 청하면 되느니."


해평 윤씨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완고했다. 열넷에 시집을 와서 스물에 지아비를 잃은 이래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홀로 자손들을 건사하며 살아온 연륜이 마치 노송老松의 보굿처럼 단단하기 그지 없었다.


"허면, 우성이나...막...누구라도 데리고 가시지요."

"되었다. 왕실의 후예이자 어른인 나를 누가 감히 해코지를 하겠느냐."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국모도 해코지를 하는 마당에..."

"뚝. 입방정 말거라."


해평 윤씨는 조상궁의 일행을 의식하고 황급히 아들 만중을 나무랐다. 누구보다 총명한 아들이지만, 언제나 저 입이 화근이었다. 말을 돌리거나, 참을 줄을 몰랐다. 조상궁이 데려온 자들이 그 상전에게 무슨 말을 고할 지도 모르는데, 아까부터 줄곧 아슬아슬한 발언만 쏟아내는 참이었다.


"어머님, 소자가 모시고 가게 해주시옵소서."

"다녀오마."


해평 윤씨는 고집스레 말하고선 축대 아래로 내려섰다. 아들 만중 말대로 바람이 찼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금세라도 코를 베어갈 듯 했다. 양쪽 어깨까지 드리운 담비털을 턱밑으로 여미고도, 귀밑이 얼얼했다. 해평 윤씨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도 힘들 만큼 한기를 느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노모가 걱정되어 만중이 황망히 다가들어 팔꿈치를 잡았다.


"어머님...!"

"너는 여기 있거라."

"아니 왜..."

"하나라도 책 잡히면 아니 된다."


해평 윤씨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방의 대비전 일행을 훑어보았다. 결코 대비 김씨가 호의로 자신을 부른 건 아닐 터였다. 그러니 그 수족들 앞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할 터였다. 조상궁이 눈길을 피하는 것을 보고 해평 윤씨는 이내 고개를 똑바로 하고, 더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중문을 나섰다.


대비전 일행이 가져온 옥교에 올라타며 해평 윤씨는 자신이 누군지를 곱씹어보았다. 선조의 서녀序女인 정혜옹주와 시서화詩 삼절三節 해숭위 윤신지尹新之 사이에서 태어나서 정혜옹주가 몸소 끼고 소학을 가르쳤다. 위로 두 오라비가 있었지만, 일찌감치 요절하는 바람에, 해평 윤씨만 살아남아 부모의 기쁨이자 슬픔이 되었다. 전란으로 지아비를 잃고 미망인의 몸으로도 두 아들을 가르쳐 당대의 문장가로 키웠다. 아무도 그녀를 업신여기지 못했다. 성정이 괄괄한 대비 김씨조차 면전에서 그녀를 어쩌질 못했다. 헌데 이 밤중에 부르다니.


대비 김씨가 무슨 꿍꿍이로 찾는지는 몰라도, 털끝 하나라도 해칠 수는 없었다. 대비 김씨로선 오히려 중궁보다 해평 윤씨가 더 어려웠다. 또한 굳이 해칠 이유도 없었다. 괜히 벌집을 들쑤실 필요도 없었다. 도둑이 제발 저리지만 않으면.


어느덧 가마가 동궐 북문으로 들어와 저승전 삼문 앞에 당도했다. 해평 윤씨는 가마에서 내려 저승전 지붕을 올려다 보았다. 처마 아래며 여기저기 초롱이 달린 것이, 초롱이며 좌등 불을 온통 환히 밝히고 자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대비마마, 왕대부인 윤씨를 모셔왔사옵니다."

"부인夫人께서?"


조상궁이 고하자마자, 대비 김씨가 되물었다. 해평 윤씨의 눈시울이 꿈틀했다. 부인夫人? 틀린 호칭은 아니었다. 손녀 진홍이 중궁으로 책봉되며, 중궁의 조부 내외인 지아비인 김익겸은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에, 그녀는 강원부부인에 추증되었다. 헌데 대비 김씨는 며느리가 죽었다고 벌써 끊긴 인연 취급을 하는 참이었다. 그래봤자 윤씨 자신은 정혜옹주의 외동딸이라 아주 끊길 인연도 아닌데도.


느낌이 좋지 않아, 윤씨는 고개를 꼿꼿이 하고서 조상궁을 따라 동쪽 섬돌을 올라 저승전 내실로 들어갔다. 대비 김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짐짓 슬픈 얼굴로 윤씨를 맞이했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얼마나 애통하시냐, 이런 식의 말치레를 차마 내뱉을 수가 없어, 윤씨는 등허리만 숙여 몸짓으로 화답했다. 이미 목이 메여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눈물이 뿌옇게 앞을 가렸다.


"앉으시지요."


눈시울을 붉히고 그녀는 대비 김씨의 손목만 내려다 보았다. 그 와중에 인절미까지 챙겨 젓순 모양인지, 소맷부리가 누런 콩고물 같은 게 묻어 있었다. 해평 윤씨의 눈시울에 실오라기 같은 한기 같은 것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녀는 눈시울을 꿈쩍도 않고 대비 김씨와 마주앉았다.


"급하게 찾으셨다구요?"

"아, 힘들게 오셨으니 일단 다과상이 들어올 때까지 쉬시고..."

"아니옵니다. 대비전하께오서 고단하실테니 제가 얼른 자리를 비켜드려야지요."


어서 말하라고 대비 김씨가 손짓으로 재촉했다. 대비 김씨는 가만히 서안 서랍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서안에 올려놓았다. 열쇠패에 열쇠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윤씨의 눈빛이 의구심으로 짙어졌다.


열쇠라니. 무슨 열쇠들인지는 몰라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미심쩍은 눈초리로 열쇠패를 물끄러미 보면서 윤씨는 눈길을 떼지도 않고 물었다.


"어인...열쇠들이옵니까?"


묻는 입초리도, 보는 눈초리도 느긋한 듯 느릿했다. 하지만 눈빛은 의심이 짙었다.


"아, 이것들이야...뭐..."


대비 김씨는 눈시울을 꿈틀했다. 심드렁한 눈빛으로 그녀는 손을 서안 위로 올려 열쇠를 염지 끝으로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해평 윤씨는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연꽃이 양각된 열쇠패였다. 열쇠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열쇠들의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사람 손바닥 만한 것부터, 새끼손가락 만한 것도 있었다. 형태도 저마다 달랐다. 순라꾼들이 순찰을 돌 때 딱딱거리며 들고 다니는 딱따기처럼 생긴 것부터, 동그란 고리인지 꼬리인지 달린 것도 있었다. 또 쌍끌이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보아하니 곳간의 문짝이며 의걸이장이며, 책장에다, 반닫이까지 쓰이는 온갖 열쇠였다. 귀한 백동으로 만든 것도 있고, 심지어 황금으로 된 것도 있는 게, 보나마나 중궁이 쓰던 것들일 터였다.


"알아보시겠사옵니까?"


대비 김씨의 입꼬리가 야릇하게 비틀렸다. 해평 윤씨는 대비 김씨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알아야 합니까?"

"물론이죠."

"왜..."

"왜긴요...이따 대렴 때 명기明器를 요여腰轝(혼백이나 신위 등 기물을 싣는 작은 가마)에 실으려면 나머지를 처분해야 하니...부인께 드리려는 게지요."


대비 김씨는 일부러 해평 윤씨의 두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게요?"


해평 윤씨는 귀를 의심하고 대비 김씨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피차 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서로가 상대의 동공을 후벼파는 듯한 눈길로 충돌할 뿐이었다.


"왜 중궁전하의 기물들을 제게 모조리 넘기시려는 겁니까?"

"그야...대행왕비가 유품을 남길 일점혈육 하나 없이 세상을 떴으니...모두 친정에 돌려드리려야지요."


대비 김씨는 눈웃음을 흘리면서, 뱀처럼 차갑게 두눈을 번뜩였다.


"친정..."


그 흉흉한 눈빛에 해평 윤씨는 숨이 턱 막혔다. 차라리 중궁이 그리워질까봐 그 유품 한점이라도 나눠주려고 한다고 말했으면, 그 후의에 감격했을 터였다.


"자요. 받으시지요."


대비 김씨가 서안 너머로 더욱 손을 뻗어 열쇠꾸러미를 내미느라, 그 손끝이 해평 윤씨의 손등을 스쳤다. 해평 윤씨는 흠칫 손끝을 움츠리며, 열쇠패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


"왜..."

"후의는 감사하오나...사양하겠나이다."

"사양?"


대비 김씨는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사양이란 두 글자를 되뇌였다. 아까부터 그녀가 줄곧 속을 긁는데도, 해평 윤씨는 있는 힘껏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아내는 참이었다.


"대행왕비께서 비록 박복하여 사속嗣續(대를 잇는 아들)이 없으나, 추후 경사가 있으면, 이 또한 그분의 자손이시니...두고두고 기다리는 게 옳지요. 천상진완天上珍玩(천상계의 기물)을 어찌 인가人家에 두겠습니까?"


해평 윤씨가 조근조근 반박했다. 대비 김씨는 말문이 막혀서 아무 대꾸도 내뱉질 못했다. 그저 얼굴이 확 붉어질 뿐이었다. 죽은 중궁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싶었더니, 이렇게 그 할미인 해평 윤씨도 녹록지가 않았다. 멍청한 꼴 더는 안 보이려면 당장 적당히 수긍하는 척 하며 축객령을 내비쳐야 했다.


"역시...부인께선 참으로 도량이 남다르십니다. 여염의 아낙네라면 냉큼 받아갈 것을."


대비 김씨의 말치레에 해평 윤씨는 웃지도 않았다. 그저 무덤가 문인석처럼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질 뿐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등뒤에서 누군가 손뼉치는 소리가 들렸다.


해평 윤씨는 눈앞에서 대비 김씨가 갑자기 두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았다. 눈시울이 일그러져선 파르르 경련하며, 해평 윤씨 자신의 어깨너머로 누군가를 쳐다보는 참이었다. 고개까지 위로 들려선 대비 김씨가 당황한 옥음으로 입술만 달싹였다.


주, 주상...


입술이 그렇게 말했다. 해평 윤씨는 듣지 않아도 그렇게 들었다. 등줄기를 찍어누르는 듯한 왕의 옥음에, 해평 윤씨는 뒷골의 신경이 모조리 곤두서는 느껐다.


"참으로 사군자四士君의 행실이지요? 야박하고 천박한 그 누구와는 다르게."

"뭐 뭐라구요? 뭐? 뭐?"


아들이 이죽이는 말에, 대비 김씨는 반박도 못하고 겨우 반문만 해댔다. 야박? 천박? 눈앞의 해평 윤씨가 벌떡 일어나서 뒷걸음질로 물러서는 바람에, 흑룡포도 아니고 희누런 침의寢衣 차림으로 눈앞에 떡 버티고 선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할 말을 잃고 입술만 파르르 떨다가 안간힘을 쓰고 아들을 나무랐다.


"이 무슨...? 어찌 부인 앞에서 그런 차림새로 돌아다니는 겁니까? 체모를 지키셔야지요."


대비 김씨가 아들을 꾸짖는 말을, 숙종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눈앞에서 해평 윤씨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다 멈칫하는 참이었다. 의아히 고개를 비끼니, 대비 김씨가 설움이 복받치는 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더욱 납작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전하, 전하..."


해평 윤씨는 더는 말을 잇지도 못하고 꾹 삼켰다. 방금 대비 김씨가 죽은 중궁을 마치 소박 맞은 며느리 취급까지 하면서, 자식도 없이 죽었으니 그 유품을 친정으로 돌려주겠다는 망언을 해댄 탓이었다. 그래도 회임을 네번이나 하고 또 딸을 둘씩이나 낳았던 며느리를,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인연까지 끊어내려고 나섰으니, 그저 기가 막히고 또 숨이 막혔다.


할 말을 꾹꾹 삼키느라 해평 윤씨의 목울대가 꿈틀했다. 숙종은 숨이 턱 막혀서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두눈에서 초점이 사라져서 텅 비었다. 아니, 가슴은 메말라가는데, 눈은 젖어들어 온통 새하얗게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끔찍합니다, 어마마마."


숙종은 해평 윤씨의 말을 더 기다릴 수도 없었다. 어미의 흉악스런 말을 더 참아줄 수도 없었다. 해평 윤씨를 불러다 놓고서 중궁이 소생이 없으니 그 쓰던 물건을 친정에 돌려주겠다니.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척 알량한 아량을 베푸는 척 가슴에 대못 박는 수작이었다. 그저 치가 떨렸다. 중궁의 친정까지 한순간에 비루한 여염 취급을 하려 들다니.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중궁을 졸지에 소박 맞은 여인 취급을 하려 들다니. 아직 그 관뚜껑을 닫기도 전에, 대못질부터 하다니.


"주상, 난 그저..."

"제 것입니다. 중궁의 물건은 다 제 것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올도, 다 제것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맘대로 남을 줍니까!"

"남이라뇨. 친정입니다! 중궁에게 피와 살을 나눠준 친정입...!"

"제 것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제 것입니다!"


숙종이 버럭버럭 소리지르며, 손을 뻗어 서안 앞으로 다가들었다. 열쇠패를 집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대비 김씨가 먼저 두손으로 열쇠패를 부둥켜쥐었다. 아들에게 뺏길세라 열쇠의 고리에 손가락을 걸어선 꼭 움켜쥐었다.


"어마마마! 이리 내시..."


숙종이 뺏으려고 들었지만, 대비 김씨는 고통으로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고도 오히려 손가락이 끊어져도 내놓지 않을 기세로 열쇠패를 더욱 품에 끌어안았다. 숙종도 양보가 없었다. 이미 어미가 해평 윤씨를 불러 열쇠패를 건네는 장면을 두눈으로 목도한 참이었다.


"이 손 놓...!"


대비 김씨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더욱 허리를 숙여 서안으로 고개까지 묻었다. 모자간의 실랑이가 점점 격해지자, 해평 윤씨가 놀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도, 둘 다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죽은 중궁과의 인연을 끊어내려는 어미와 지켜내려는 아들의 드잡이질이었다.


"노, 놓으세요, 이 손!"

"어마마마나 놓으소서!"

"좀...!"

"제 것입니다! 제 것이요!"

"놔요, 놔! 손도 놓고, 다 놓으세요! 이미 죽어 연이 끊어진 아이입니다!"


대비 김씨의 말에, 숙종은 멈칫했다.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이, 대비 김씨를 돌아보는 그 어깻죽지가 파르르 떨렸다. 몸서리를 치며 어미를 돌아보는 검은 동공도 함께 뒤흔들렸다. 점점 눈자위가 시뻘개지면서, 눈동자가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서야 비로소 흔들림이 멈췄다.


"할머님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엄연히 제 정비옵니다! 죽어 귀신이 되어도 제 정비옵니다! 죽은 제 아기들의 어미이옵니다! 또 태어날 아기들의 그 어미가 되옵니다! 제가 그리 만들 것이옵니다! 살아도 죽어도 저와 함께이옵니다!"


숙종은 두눈에 시뻘건 핏발이 서서 어미를 노려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언제부턴가 모후母后란 말도 차마 나오지 않는, 고약한 어미였다. 어미라는 사실이 너무도 싫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싫은 적이 없었다. 어미가 어미인 게, 너무도 끔찍했다. 왜 하늘이 중궁을 데려가고, 자신의 발목이나 잡는 어미를 놔뒀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답답하십니다. 주상! 왜 모르세요! 중궁은 아무 쓸 데도 없이 주상의 발목만 잡는...!"

"어마마마만 할까요?"

"무슨..."

"차라리 어마마마께오서 먼저..."


숙종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모든 게 어미 탓인 것처럼 느껴졌다. 중궁이 잘못된 것도 다 어미 탓이었다. 중궁이 잉태한 용종 넷이자 잘못된 것도 다 어미 탓이었다. 누이들이 잘못된 것도 다 어미 탓이었다. 세상에 내놓지 못한 아우들이, 형들이 잘못된 것도 다 어미 탓이었다. 아비가 죽은 것도 다 어미 탓이었다. 모든 게 다 어미 탓이었다. 그래도 어미라고, 왜 먼저 죽지 못했냐고 따져 묻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식의 숙명이자 도리였다.


"설마...이 어미가 죽길 바라는 겝니까?"


눈시울을 실룩이며 어미가 묻는 말에, 숙종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대비 김씨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아들이 하려다가 만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충격으로 관자놀이가 온통 멍했다. 고막까지 멍했다. 아들이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죽은 중궁 대신 차라리 어미가 죽었길 바라는, 몹쓸 생각까지 품다니.


"주십시오"


숙종이 대답을 피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들의 빈손을 내려다보는 대비 김씨의 눈동자가 모질게 번뜩였다. 그녀는 열쇠패를 더욱 힘껏 그러쥐고 허리 뒤로 내돌렸다.


"못 줍니다."

"어마마마!"

"앞으로 주상이 이 열쇠패를 돌려받으려면, 둘 중 하나...내가 죽든, 그 원자가 태어나든...주상의 꿈이 한가지는 이뤄져야 할 겝니다."


대비 김씨는 날선 눈초리로 아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말하다 보니 갑자기 숨이 거칠어졌다. 심장이 후들거렸다. 어깻죽지가 점점 헐떡이는가 싶더니, 미친 듯이 펄떡거렸다. 심장이 사방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눈앞이 하얗게 물결치며 시야를 집어삼켰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 하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금세라도 쓰러질 듯 했다.


"어마마마?"


숙종은 흠칫 놀라 다가들다 멈칫 쳐다보았다. 그간 어미가 가슴을 쥐어뜯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가슴앓이에 좋은 국화차를 김석주가 수시로 엄선해서 들여온 지도 꽤 한참 되었다. 그녀가 괴질을 앓는다는 소문이 신료들 입초시에 오르내렸다. 말이 괴질이지, 화병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물론 두어시진 침수에 들고 나면, 씻은 듯이 낫기도 하니, 말 그대로 괴질이었다. 아니면 꾀병이던가. 어미를 보는 숙종의 두눈에 설핏 한줄기 한기가 스쳤다.


"편찮으시니 이만 쉬시지요."


숙종은 차갑게 말하고서 뒤돌아섰다. 그 등뒤로 어미가 가냘픈 목소리로 불렀다.


"주상..."


숙종의 흉곽이 들썩였다. 하지만 다시 들썩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굳어졌다. 뒤돌아보는 것도 겁이 나는지, 숙종은 서슴서슴 고개를 돌리는 듯 싶더니, 그냥 고개를 도로 홱 돌리고 걸음을 내쳤다. 장지문이 열리고, 문틈으로 걸음을 내치는 그의 눈결에, 시퍼런 새벽 어스름이 밀려들어왔다. 얼굴이 얼얼해져서, 숙종은 입을 크게 벌리고 이리저리 실룩였다.


어미가 죽거나, 자식이 생기거나...


중궁이 쓰던 물건 한 가지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게 미치도록 답답했다. 속에서 홧홧한 불길이 이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미가 도를 넘었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도를 넘더니, 이제 아예 훌쩍 넘어버렸다. 이러다 숙종 자신마저 어미가 틀어쥐고 마구 흔들어댈 것만 같았다. 아니, 이대로 벌써 흔들어대는 것일 지도 몰랐다.


그래선 안되지.


숙종은 통명전으로, 동온돌로 돌아와서도 차갑게 얼어붙은 손끝으로 익선관을 벗으며 생각했다. 왕권은 부모자식간에도 나눌 수 없었다. 어미가 자꾸 숙종 자신의 등뒤에 주렴을 치고 어탑에 올라서려 한다면, 어미가 앉을 의자를 때려부수고라도, 어미를 아예 끌어내서라도 그 그림자조차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누군가 어미를 움직여 숙종 자신을 움직일 꿈도 못 꿀 터였다.


그리고, 파루의 종이 울렸다.


겨우 스물에 세상을 뜬 왕비의 시신을 담은 재궁梓宮이 서궐 회상전에서 나왔다. 녹의를 입은 내시들이 재궁을 검은 어련에 안치하고, 백의를 입은 일백의 여사군轝士軍(국상 때 가마꾼)들이 끌채를 잡고 일제히 들어올려, 한발한발 움직였다.


"영소전永昭殿..."


어련이 어느 전각에 닿았다. 안으로 채 들어가기도 전인데 누군가 전호殿號를 낯설게 불렀다.


영소전永昭殿. 여기가, 산릉에 들기 전까지 재궁을 모실 전각이었다. 산릉에 든 뒤로 그 혼백을, 그 신주를 모실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여기가, 앞으로 중궁의 이름이 될 곳이었다.


"영소전永昭殿..."


연습이라도 하듯 또 누군가 뇌까렸다. 연습을 참 힘들게도 했다. 여사군들이 어련을 내려놓으며 눈치를 보았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이제 보니 누군가가 자신들 무리에 숨어서 몰래 뒤따르는 것 같았다. 누굴까. 뭐 하는 놈들일까.


"누구야, 자꾸?"

"이 엄숙한 상중에..."

"조용히 못해?"

"언 놈이야?"


여사군들이 버럭 성질을 내며 눈을 부라렸다. 아예 두눈에 불을 켜고 잡음의 범인을 색출할 모양이었다. 여사군들 틈바구니에서 앳된 얼굴 둘이서 서로 두눈을 뚜렷거렸다.


"들킬라...조용히 좀..."

"네놈이나 조용히 하거라."


앳된 얼굴 둘이서 쑥덕이며 소리죽이고 숨죽이고, 그렇게 는데, 그 와중에 여사군들이 재궁이 영소전으로 협문으로 들어갔다. 영소전 서월대에 6척尺 높이로 마련된 찬궁撰宮으로 재궁을 들였다. 그러는 사이 여사군들 무리에서 앳된 얼굴 하나가 점점 뒤로 처졌다. 발길이 묶여서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오도카니 쳐다보기만 했다.


"전하?"


먼저 뒤따르던 여사군이 뒤돌아보더니 헐레벌떡 다가와서 나직하게 물었다. 여사군은 멍하니 찬궁만 쳐다보았다. 의심이 많아서,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 중궁이 죽었는지 직접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차마 더는 발끝이 떨어지질 않았다. 겁이 났다. 더 들어가면, 중궁의 죽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죽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겨우 한숨 돌렸구먼."


상중喪中이란 표시로 거적을 외벽에 두른 빈청에서, 수항은 민정중 형제와 함께 모여 엽차를 마시며 아침이 밝기만 기다렸다. 헌데 오늘따라 차맛이 유난히 썼다. 한모금 입에 머금으니 입안이 온통 아렸다. 그래서 얼른 삼키고 나니, 또 목이 말랐다. 아예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입안이 자꾸 바싹바싹 말라붙어, 수항은 연거푸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찻잔을 도로 내려놓으니 이미 찻물이 동나서 흰 찻잔바닥에 연록빛 자국만 남았다. 수항이 자기도 모르게 다기로 손을 뻗는데, 민정중이 더 빨랐다. 얼른 수항의 빈잔에 연록빛 찻물을 채워주며 정중이 한마디 했다.


"벌써 넉잔짼데...목이 자꾸 마르시나 봅니다?"

"아...오늘따라 좀..."


수항은 찻잔을 반바퀴 돌리며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새벽에 눈 뜰 때부터 입안이 썼다. 차맛이 쓴 게 아니라 입맛이 썼다. 밤새 꿈자리도 사나웠는지,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참이었다.


"하긴 저도 좀..."


민정중이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뒷목을 주물러댔다. 파루의 종이 울리자마자 대렴을 행하느라 괜히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한밤중도 아닌데 벌써부터 눈앞이 침침했다.


"저도 좀...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벌써 피곤합니다."


유중도 어깻죽지를 삐걱거리며 한마디 보탰다. 벌써 나가고 싶은 건지 수항이 문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헌데 그 뒷덜미로, 유중의 한숨이 들렸다.


"제일 중요한 성복成服이 남았습니다."

"성복..."


그 두 단어를 듣기만 해도 수항은 무거운 한숨으로 등줄기가 축 늘어졌다. 지난번 선대왕의 국상 때도 저 성복 문제로 송시열이란 거목이 찍혀 나가고, 서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었다.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단어였다. 순식간에 등이 구부정해져선 입술만 달싹이다, 수항은 다시금 문쪽을 쳐다보았다.


"예판은? 왜 안 보여?"

"아까 보니 대렴 끝나자마자 전하께 불려가던데..."


민정중의 대꾸에 수항은 미간을 좁히고 콧숨을 내쉬었다.


"흠..."


짜증이 묻어났다. 조사석이 요즘 들어 왕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게 보였다.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왕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대왕대비 조씨의 사촌아우일 뿐이지, 왕의 골육지친은 아니었다. 헌데도 은근슬쩍 왕의 뜻대로 움직였다. 참 눈에 거슬렸다. 송시열과 조사석 집안의 해묵은 원한은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외척입네 하는 것만 생각나는 참이었다.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어차피 전하께서 성복 문제는 옥당玉堂(홍문관)에 위임을 하셨으니..."

"그 옥당에...누가 있더라?"


너무 걱정 말라고 민유중이 손사래를 치며 하는 말에, 수항은 찜찜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조사석도 외척이랍시고 왕의 편을 들고 나선 참이었다. 옥당에도 외척입네 슬쩍 팔이 안으로 굽는 자가 있을 지 누가 알랴 싶었다.


"그 옥당에...김석주는 이제 없지요."

"그 옥당에, 이민서가 있으이."

"이민서..."

"그래 이민서. 그 삼대 전까진 종친이었다가 백강白江 때부터 떨어져 나오긴 했지만, 같은 뿌리랍시고 누차 전하 편에 선 데다, 꺽정이 놈 편에도 서고. 우리완 다른 쪽일세"

"그래도 사직소를 내고 나가 있는데..."

"그 조카가 대신 들어와 있지 않은가."

"그..."


유중은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송시열의 조정인데, 야금야금 왕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선대왕 때는 누구 하나 그 뜻을 알아주는 이도 없었고, 받드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왕은 고립된 상태가 아니었다. 느낌이 그랬다. 그러니 이렇게 왕을 궁지로 몰아넣고도 영의정 김수항이, 또 어쩌면 천하의 송시열이 이렇게 알게 모르게 안달이 난 것일 터였다.


"저, 영상대감..."


갑자기 문 저편에서 누군가 수항을 불렀다. 수항은 고개를 홱 돌리고 날카로워진 눈초리로 문쪽을 쏘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상소 대개大槪(요약본)를...가져왔사옵니다."

"대개?"


승정원 서리가 상소문의 대개를 가져왔다면, 조사석이나 옥당의 상소일 터였다. 수항은 상체를 벌떡 일으켜 문에 대고 손짓했다. 아직 문이 닫혀, 볼 사람도 없는데, 손짓부터 해대는 참이었다.


"가져, 가져오게, 얼른."


마음이 급했다. 조사석이 보이지 않는데다, 옥당도 왕의 측근들이 장악한 터였다. 송시열의 고제자까진 아니어도 애제자는 되는 임영까지 의심하진 않았지만, 불안이 인내심을 잠식해 버렸다. 문이 열리고 서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수항의 손짓에 움찔해선 냉큼 대개를 가져와 수항의 두손에다 바쳤다.


"어디 상소더냐?"


눈으로 한번 훑어보면 될 것을, 마음이 급하니 수항은 상소의 출처부터 물었다. 예조인지 옥당인지 못내 궁금한 터였다.


"옥당이옵니다."


서리가 고개를 숙여 답하고선 이내 고개를 들지도 않고 문쪽으로 내뺐다. 홍문관에서 올라온 상소라니. 수항은 바로 굶주린 듯한 눈길로 허겁지겁 대개를 훑어보았다. 읽다보니 점점 두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순식간에 굳어버린 눈을 둔하게 굴리며 대개를 읽었다.


- 전하께서 부음訃音을 들은 게 이미 하루가 늦었으니, 여기 있는 여러 신료들이 성복하는 것도 모름지기 전하를 따라 하루를 물려야 한다는데...상차喪次에 있는 뭇 신료들은 승하 당일부터 따져 대렴한 이튿날에 성복해야 하는 것이니...어찌 그날 바로 거애擧哀하지 못했다고 정일正日을 미룰 수 있겠습니까? 승하 당일에 이미 복례復禮를 행하였으니, 즉 발상發喪을 한 셈입니다. 홍문관 교리 임영林泳, 이사명李師命, 부교리 조지겸趙持謙, 부수찬 송광연宋光淵.


"뭐라 적혔습니까?"


민유중이 묻는 순간, 대개를 훑던 수항의 눈동자가 그대로 굳어져버리나 싶더니, 흔들흔들거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 있어선 안될 글귀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의깊게 다시금 상소의 대개를 들여다보다가, 수항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 초종初終을 저버리고 거애부터 날짜를 계산하는 것은 옳지 않는 바...이로 인해 은전殷奠을 폐지하게 되면 편치 못할 일입니다.


"왜, 뭐라 적혔는데요?"


민유중이 자꾸 보채는데도, 수항은 대꾸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민유중이 상체를 수항 쪽으로 기울여 그 수중의 대개를 훑어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명석한 민유중이라 해도, 한문을 거꾸로 읽는 재주는 없었다. 대개가 제대로 보이도록 고개만 자꾸 이리 비틀고, 저리 비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유중은 손을 뻗어 대개의 귀퉁이를 잡아당겨 자신의 눈앞으로 돌렸다. 빠르게 대개를 살피다가, 유중의 눈길도 어느 한 귀절에 멈췄다.


昇遐日旣行服禮, 卽使是發喪

승하일에 이미 복례를 행했으니,

즉 발상을 한 셈이다.


유중이 알기로 승하 당일 복례를 행하지 않았다. 왕의 귀에 들어갈세라 덮어놓고 쉬쉬하느라, 복례도 미뤘다. 복례를 하기는 한 건지도 의문이었다. 헌데 옥당에선 버젓이 승하일에 복례를 행했으니 발상을 한 거란 단언을 해버렸다. 왠지 느낌이 싸했다. 유중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두눈을 깜빡이는데, 또 문쪽에서 내시 특유의 종잇장처럼 얇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거기! 빈청에 있는 대신들은 모두 통명전으로 들라는, 주상전하 하교가 있사옵니다!"


군목질을 하는 건지, 아니면 겸연쩍어 그러는 건지, 승전색의 말에 자꾸 헛기침이 섞였다. 하지만 당장 수항과 유중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미처 상소 대개를 읽지 못한 정중만 고개를 팔을 뻗어 낚아채곤 무르팍에 올려다놓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하께서?"

"예, 대감. 어서 가시지요."

"우리만?"

"예?"

"우리만 부른 것이냐니까."


수항이 짜증이 묻어나는 맡투로 재촉해 물었다. 그 예민한 모습에 승전색은 두눈을 뚜렷뚜렷 굴려 분위기를 살폈다.


"어이 그러시는..."

"말해라. 우리만 부르신 것이더냐!"

"아...이미 다들 대청으로 뫼셨사옵니다."


승전색이 흰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잇몸까지 비치는 그 얼굴을 보니, 유중은 울화통이 터졌다.


"뭐? 뭐라?"

"연로한 분들부터 먼저 뫼시고, 나머지 빈청에 계신 분들은 천천히 데려오란, 전하의 특별한 하교가 있어서..."


수항은 입을 쩍 벌리고 두눈을 질끈 감았다. 벌써 속이 홧홧하니, 불 같은 한숨이 목구멍에서 확 뿜어져 나오는 참이었다. 연로한 대신들을 우대하는 척, 왕이 일부러 자신들과 갈라놓았다. 간격을 두고 자신들만 맨나중에 부르게 한 터였다. 온몸의 신경이 쭈뼛 곤두섰다.


"영상대감..."


유중이 떨리는 음색으로 수항을 불렀다. 수항은 입술이 하얗게 타버려 혀끝으로 윗입술을 축였다. 뭔가 잘못되었다.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서, 어서요."

"가세."


자꾸 승전색이 보채는 통에, 수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를 내뱉고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막이 울렸다. 헌데도, 또 꿀꺽 삼켰다. 울대뼈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유중의 눈에도 보였다.


"설마 전하께서 칼날을 잡을 리가요."


유중이 힘없이 반박했다. 확신이라곤 눈곱 만큼도 없는 말투였다. 왕이 직접 신료들 앞에서 칼날 운운하긴 했지만, 위안이 되긴 커녕 오히려 위협이 되는 기분이었다. 칼을 가슴에 품은 듯한 말투였다.


- 잘 아시잖소. 적어도 이 조정에 칼날을 잡을 바보는 없소.


그러고 보니 왕이 칼날을 잡을 거란 말은 아니었다. 칼날을 잡을 바보가 조정엔 없다고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왕이 먼저 칼자루든 칼날이든 잡는다면? 칼자루를 왕의 손쪽으로 은근슬쩍 돌려줄 자가 나온다면? 최석정이 누군가를 대신 내세운다면?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지...복례를 당일 했다니? 이것들이 아무렇게나 써갈기면 단가. "


형 정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개가 쓰인 종이를 구겨쥐었다. 휙 바닥에 내던지려다 꾹 참아내고, 정중이 그대로 소맷부리에 집어넣는 게 눈결에 보였다. 숨을 씨근벌떡이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미 김수항이 대꾸도 않고 문쪽으로 향하는 참이었다. 유중과 정중의 사이로 승전색이 끼여들어 또 재촉어린 손짓을 해댔다.


"이만 가시지요."


유중은 짜증이 치밀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눌렀다. 멋모르고 복례를 함부로 언급한 옥당의 젊은 낭관들 때문에 속이 온통 홧홧했다. 설마 하룻밤 사이에 왕과 한통속이 되었나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통명전에 불려가서 저 시퍼런 애송이들을 어찌 다뤄야 할 지,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어서들 오시오."


벼르고 별렀는지, 그들이 통명전 동쪽 섬돌을 오르기 무섭게, 왕이 문틈으로 쏘아보며 반겼다. 목화를 오른발 한짝부터 벗고 나머지 왼쪽 한짝도 벗으려다, 민유중은 움찔해서 눈앞을 보았다. 오사모 아래로 귀밑이며, 코밑이며 턱밑까지 온통 허여멀건 이상진과 정지화가 다소곳이 꿇어엎드려 있었다.


"다들 한참 기다렸소."


활짝 열린 장지문 틈으로, 왕이 두눈을 더욱 시퍼렇게 번뜩이며 말했다. 수항은 이미 민정중 형제보다 한발 앞서 대청으로 올라서서, 이미 부복한 이상진과 정지화의 기색을 살피며 형세를 가늠했다.


대청 안엔 저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눈에도 시뻘건 홍단령 외에 시퍼런 청단령이 넷이나 뒤켠에 있었다. 가주서 윤덕준, 교리 임영, 이사명, 부교리 조지겸까지 있었다. 사관으로 불려온 건지, 아니면 소두疏頭로 불려온 건지, 당상관들이 불려온 자리에 저들 당하관들이 섞여 있었다. 수항은 승정원 서리가 넣어준 상소 대개의 내용을 떠올리고, 곱지 않은 눈길로 뒤켠의 당하관들을 흘겨보았다.


"사배례는 되었고...다들 영상의 고견을 기다렸소. 기탄 없이 말해 보시오."

"워낙 급작스레 불려온지라, 미처 준비를..."

"준비랄 게 뭐 있을라고. 다 경의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오?"


얼핏 들으면 경외심이 느껴질 말을, 숙종은 고개까지 비끼고 삐딱한 투로 이죽였다. 수항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얼른 말해 보시오."

"험, 험...신의 비루한 소견을 이미 다 아뢰었사옵고...비록 다시 하문을 받았으나 역시...더는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하오나 찬궁欑宮이 설치되고 동짓달 초하룻날 아침에 마땅히 은전殷奠(넉넉히 차린 제물)을 바쳐야 하는데, 이에 뭇 신하들이 성복을 앞당기고 뒤물리느라, 응당 행해야 할 제전祭奠을 폐지한다면, 더욱 심히 편치 않을 것이옵니다. 유신儒臣들의 차자 같은 건, 성복도 하기 전에 미리 은전을 행하자는 얘기가 되는데, 이런 거는 예禮에 어떠한지 신으로선 알 길이 없사옵니다."


고개를 조아리고서도, 수항은 두눈을 치뜨고서 슬며시 어탑을 쳐다보았다. 성복을 미루면 은전도 바치지 않겠노라, 왕에게 모종의 압력을 가하는 참이었다. 이미 왕이 지레 겁을 지어먹었으니, 이 정도 압력에 흔들릴 게 자명했다.


"신의 의견도 같사옵니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김수흥도 재빨리 동조했다. 숙종이 심드렁히 쳐다보는데, 민정중이 한마디 했다.


"신민臣民의 성복은 거애하는 날부터 쳐서 행하자고 신도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대행왕비가 승하한 게 26일 초경初更에 있었사온데, 그 위급한 순간에도 만에 하나 소생하길 바라는 정성이 없지도 않았기에 재삼再三 진찰하였던 것이옵니다. 사경四更 뒤에야 비로소 복례復禮를 행하고 거애하였는데, 집에 있던 신료들은 대부분 새벽녘까지 기다렸다가 부음訃音을 받들고 와서 모였으니, 정히 그들이 성복을 해야겠으면, 엿새의 기한을 채우지 못할 것이옵고...이런 게 예禮인 건지, 신은 정말 모르겠사옵니만...정해진 기한 안에 분상奔喪도 성복도 못하면 은전을 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이게 예禮이겠나이까?"


민정중은 성복과 은전의 문제만 거론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강한 어조로 반박하는 사이, 대청에 앉은 청단령의 옥당 낭관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야? 중궁전하 승하가 왜 초경이야? 2경이라고 조보가 다 나갔는데?"

"거..."

"초경에 승하하시고 약방에 의원을 보내어 재삼 진찰하고 나서 2경에 승하하신 거라고 발표했다고?"

"복례를 4경에 했다는데?"

"우리가 상소에 쓴 건 26일 당일인데...27일 4경이라고?"

"어느 게 진짜요?"


청단령의 당하관들의 눈길이 홍단령의 당상관들 사이에서 마냥 흔들렸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를 못하고, 자기들끼리만 수군거릴 뿐이었다. 조지겸의 두눈엔 아예 날이 섰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불과 며칠 전 중궁이 승하했는데, 저 시뻘건 대신들 중 누구 하나 그 시각을 제대로 아는 자가 없었다. 2경이라 했다가, 1경이라 하고, 또 그 한시진의 차이를 중궁의 기사회생을 바라면서 의관들을 두번 세번 들여보낸 탓이라고 우기는 촌극까지 벌이는 참이었다. 민정중은 씨알도 안 먹힐 핑계를 대면서, 4경 뒤에야 복례를 했다고도 말했다. 맞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뭘 한 거지...?


조지겸은 기가 막혀 민정중을 쏘아보았다. 그 어깨너머로, 문틈으로 설핏 비치는 왕의 두눈은 그저 차갑기만 했다. 왕은 대신들을 불러 논의란 명목으로, 저들의 민낯을 적나라히 자신들에게 발가벗긴 참이었다. 그냥 모든 게 가관이었다. 이보다 웃길 수는 없었다.


작가의말

1. 실록을 보면 인경왕후의 승하에 대해 신료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26일 2경이라고 조보 기사가 나갔는데, 민정중은 초경이라며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 의관을 두번 세번 들여보내 진찰시키느라 4경에야 복례를 치뤘다고 변명하고 있고, 옥당관들은 26일 당일에 복례를 치뤘다고 말하고 있고...왕비가 두창으로 죽었다는 사실로 서로들 그 전염성을 꺼리느라 벌어진 촌극 같긴 한데...서로들 얘기가 너무 달라서, 일단 의심을 품고 상황을 재구성했습니다. 나중에 숙종이 인경왕후의 죽음 때문에 모든 게 거짓말 같다는 소회를 담은 시를 썼는데, 당시 상황을 불신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보태어봤습니다.

 

2. 송시열이 쓴 인경왕후 지문이나 윤씨 행장을 보면, 인경왕후 승하 후에 대비 김씨가 윤씨 부인을 불러 인경왕후가 쓰던 그릇과 옷을 물려주겠다며, 소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친정에 돌려준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실제로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현대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대목인지 잘 모르겠네요. 윤씨 부인 역시 인경왕후의 호의(?)가 달갑지 않았는지, 천상진완을 민가에 둘 수 없다고 둘러대며 완곡히 거절했는데, 송시열은 그 대목을 훈훈하게(?)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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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해의 그림자 333 +1 17.11.12 215 5 43쪽
333 해의 그림자 332 17.11.04 242 4 43쪽
332 해의 그림자 331 17.10.28 204 3 43쪽
331 해의 그림자 330 17.10.22 247 6 43쪽
330 해의 그림자 329 +1 17.10.17 419 4 43쪽
329 해의 그림자 328 17.10.13 218 5 43쪽
328 해의 그림자 327 17.10.07 251 6 43쪽
327 해의 그림자 326 +1 17.10.03 307 4 43쪽
326 해의 그림자 325 17.09.29 228 6 43쪽
325 해의 그림자 324 +1 17.09.24 252 4 43쪽
» 해의 그림자 323 17.09.16 233 5 41쪽
323 해의 그림자 322 17.09.07 218 6 41쪽
322 해의 그림자 321 17.08.27 235 3 43쪽
321 해의 그림자 320 +1 17.08.20 307 4 43쪽
320 해의 그림자 319 +1 17.08.15 253 6 43쪽
319 해의 그림자 318 17.08.13 214 5 43쪽
318 해의 그림자 317 17.08.08 262 4 43쪽
317 해의 그림자 316 17.08.01 281 6 42쪽
316 해의 그림자 315 17.07.24 305 5 43쪽
315 해의 그림자 314 17.07.19 283 8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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