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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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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조회수 :
787,410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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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20,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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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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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43쪽

해의 그림자 328

DUMMY

"이게 무슨 짓인가?"

"어찌 이런...대청 구들을 걷어내다니!"

"우리한테 이럴 수는 없소이다!"

"패주 연산, 광해도 이러지는 않았소!"


대간들의 반발에도, 내시들과 인부들이 함실아궁이의 숯부터 거침없이 들어냈다. 대간들이 팔을 잡아채고, 앞을 가로막고, 아무리 바동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역정을 내며 호통을 쳐도, 내관들은 아예 배째란 식으로 팔 걷어부치고 인부들을 돕기까지 했다.


"자네들이 사람인가!"

"어디 언관이 거하는 곳의 구들을 없앤단 말이냐!"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전하께서 그릇된 명을 내렸으면 복역覆逆(간쟁하며 거부함)을 해야지!"


대간들이 격분해서 고래고래 소리쳐대자, 두광이 입을 비죽이며 대꾸했다.


"허면, 우리 전하께오선 차디찬 냉골에서 주무시는데, 신하들만 뜨뜻한 온골에서 자는 건 또 어느나라 법이요?"

"뭐?"


이사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왕이 차디찬 냉골에서 자는데 신하들만 불목에서 잔다는 말이 그저 황당했다. 말도 안되었다. 왕이 냉골에서 잘 리가 없었다. 이 엄동설한에.


"말도 안 되는 소릴..."

"저기 동온돌에 다녀간 대간들은 잘 알 텐데? 그 방바닥이 차가웠나, 따뜻했나."


두광이 대꾸하며 턱끝으로 권두기와 조이병을 가리켜 보였다. 또 사람들의 눈길을 한몸에 사게 된 권두기와 조이병이 얼굴을 붉혔다. 이미 조금 전에 사람들의 눈길 아닌 눈총까지 받았던 권두기로선 더욱 몸둘 바를 몰랐다.


"말해보시오. 동온돌이 어땠는지."


두광이 염지를 쭉 펴서 권두기의 가슴어림을 가리켰다. 권두기는 당혹스런 얼굴이 되어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말해보래도? 어땠는지?"


두광은 자신도 모르게 상전의 말투를 흉내냈다. 의식한 건 아니었다. 그저 권두기의 당황한 얼굴을 보니 그러고 싶어졌을 뿐이었다. 평소 본 게 있다 보니.


"그, 그..."


권두기는 목이 졸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잡아먹을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대간들의 눈빛이 무섭기만 했다.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게 한심해서, 그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입을 열었더니, 갑자기 봇물터지듯이 터져나왔다.


"차, 차디찼습니다. 손발이 시릴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옷자락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팔꿈치를 문질렀다. 발부리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앞코를 비벼댔다. 아직 여기 대청은 온기가 덜 식었다. 헌데도 동온돌만 생각하면 괜히 손끝발끝이 시렸다.


"자네...!"


여성제가 권두기를 향해 두눈을 부라렸다. 그냥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그냥 좀 차더라고 말해도 참아줄 만 했다. 헌데 너무 솔직했다. 차디찼다고 말해버렸다. 심지어 손발이 시릴 정도라고 강조했다. 왕도 냉골에서 지내는 마당에 아무도 숙직을 않는 대청에 마루를 까는 것쯤이야 누가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대놓고 왕의 수중에 명분을 쥐여준 셈이었다.


"영감, 정말 찼는데..."

"알았다고! 누가 뭐랬나!"


여성제가 참다 못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이성을 잃고 너도 나도 고함치기 시작했다.


"그 입 다물라잖나!"

"할 말 못 할 말 그렇게 못 가리나!"

"저런 똥오줌 못가리는..."

"전하 앞에선 찍소리도 못하더니!"

"이제 보니 전하의 개 아니야?"

"개는 좀..."

"아니 그러니까..."


서로 아우성을 치다가, 신하들이 주변의 눈귀를 의식하고 입을 다물었다. 동온돌이 냉골인 마당에, 대청에 구들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뻔뻔해도, 안될 말이었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입을 놀려 왕의 편을 들어버린 권두기가 미워졌다.


이미 눈길이 눈총이 되어버린 것을 체감하고, 권두기는 뭐라 대꾸를 하려다 가만히 입술을 감물었다. 어느틈에 다른 대간들 틈에 섞여 권두기 자신에게 삿대질을 해대는 조이병이 눈에 들어왔다.


"조장령, 같이 그래놓고..."


자신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왕의 침전 동온돌도 냉골이라 말했을 뿐이었다. 그 한마디로 졸지에 죽을 죄인이 된 게 너무도 억울했다. 아니, 죽을 죄인 취급을 받는 게 그저 기가 막혔다. 서인이란 당파가 이런 덴가, 사람들이 이런 건가 싶었다.


- 네놈들끼리 위아래는 따져 무얼 하느냐!


왕의 호통이 또 다시 고막을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정말 권두기는 억울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이해되질 않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왕과 송시열의 알력싸움에 자신만 중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러다 끼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전하께오서 냉골에서 지내신다 해도 무려 3백년을 이어진 관례요! 전하에서 멋대로 구들을 들어낼 순 없소이다!"

"전하께오서 쓰실 땔감이 모자라는 건 말 되고?"


두광의 반박에 대간들은 또 말문이 막혔다. 그들의 눈총이 또 권두기 한몸에 따갑게 틀어박혔다. 어쩌면 저렇게 눈치도 없는지.


"저, 저..."


권두기는 또 자신이 대간들의 눈총을 받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내가 뭐 역적이요? 왜들..."


권두기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대간들에게 두팔 벌려 손짓을 해보였다. 왕의 편에 섰다고 역적 취급이라니,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았을 뿐인데, 왜들 자신을 기름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달달 볶을 태세인지.


"역적이 아니라 간신인 게지. 대간臺諫의 소임도 망각하고!"


권두기는 아무 말도 못하고서 대간들을 돌아보았다. 이젠 누가 말하는 건지 분간도 되질 않았다. 누가 하는 말인지 따져볼 정신도 없었다.


"어유, 여긴 어떻게 계란이 익었네. 반숙! 수란기도 필요 없어."


전돌바닥에 계란이 흰자가 다 익고 노른자는 덜 익은 상태로 남은 것을 보고, 두광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손끝으로 찌를 듯 말 듯한 자세를 취했다. 두광은 그저 씁쓸한지 아랫입술을 비죽였다.


"우리 전하께오선 냉골에서 지내시는데, 여긴 어떻게 따끈따끈 계란이 익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수백년의 전통을...!"

"전통 좋아하네! 군주가 냉골에서 지내는 건 뭐 전통이고?"


두광은 눈앞의 대간들을 보며 짜증이 났다. 다같이 모여서 작당이나 하라고 대청이 있는 건 아닐 터였다. 오다가다, 여기 대청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만 봐도 울화가 치밀었다.


"전하께서 어디 땔감이 모자라서 냉골에서 지내시겠나?"


정면이 볼멘 소리로 대꾸했다. 말을 내뱉고 보니 기괴했다. 두광이 헛웃음을 폐병환자처럼 발작하듯 내뱉았다.


"말 참 이상하게 하시네. 그럼 뭐 땔감이 넘쳐서 냉골에서 지내신다는 거요? 충성심이 병아리 눈물 만큼도 없으시네?"


두광은 빈정이 상한 투로 대꾸하곤 한번 더 정면을 흘겨보았다. 정면이 입술을 실룩였다. 이미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아버렸다. 입씨름을 더 해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하지만 왕이 냉골에서 지내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되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에 나오는 월왕 구천이나 오왕 부차처럼 복수심에 일부러 쓸개를 핥으며 섶에 누워 한뎃잠을 자는 거면 몰라도.


"아, 잠을 자려면 집에 가서 자야지. 왜 예서 밤낮으로 땔감을 축내는지 원. 양심도 없어. 얼른 집에들 가시오."


두광이 계속해서 이죽였다. 대간들은 얼굴을 와락 붉히면서도, 잡아먹을 듯이 두광에게 눈을 부라렸다. 할 말을 잃으니 더 화가 났다. 같은 대간인 권두기한테나 소임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게 통하지, 차지내관인 저 김두광한테는 씨알도 먹히질 않았다. 그저 눈뜨고 코베이는 기분으로, 대청의 구들이 철거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전하께오서 선견지명이 있으시옵니다."


두광은 그대로 동온돌에 들어 대청의 일을 고했다. 숙종은 서안 상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며 두광을 흘끗 쳐다보았다.


"왜, 일부러 요며칠 동온돌을 냉골로 만든 게 주효했단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전하께오서 냉골에서 지내시는데, 저들이 무슨 낯짝으로 구들을 고집하겠나이까."

"글쎄...벼룩도 낯짝이 있지만, 서인들은 낯짝이 없으니."


숙종은 콧잔등을 실룩이며 이불을 무르팍으로 더 끌어올렸다. 아무리 속에서 치받는 열불 때문에 추위도 잊어도, 발끝이 시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화로를 들일까요?"


두광은 상전의 코끝이 벌건 것을 보고 조심스레 말했다. 원래 상전이 잦은 기침과 가래에 시달릴 정도로 폐부가 성칠 않았다. 이렇게 군불을 때지도 않고 지내다 보면 또 기침병이 도질 터였다. 화로라도 안으로 들여야 할 것 같았다.


"아직은 되었다."


두광의 속도 모르고 숙종이 손을 내저었다.


"하오나 전하...해수咳嗽(기침병)가 도지시면..."

"되었다."

"하오나..."

"내 속이 펄펄 끓어 어찌할 수가 없구나."


숙종의 두눈에선 홧홧한 기운이 들끓었다. 속에서 열불천불이 나는 터였다. 아무래도 홧병이 생긴 것 같았다. 한겨울인데도 온몸이 더웠다. 손끝발끝 그저 뜨겁기만 했다. 눈도 마냥 뜨거웠다. 속에서 자꾸 불길이 솟구쳐 세상을 모조리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래야 직성이 풀릴 지도 몰랐다.


"전하..."

"용서가 안된다. 그 미친 것들이 중궁이 언제 죽었는지 모르고, 복례를 언제 치렀는지도 모르고, 아예 도성 밖에서 놀다 들어온 주제에, 낯짝도 두껍지! 두꺼워!"


숙종이 치를 떨며, 또 서안의 흠집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대는데, 문밖에서 대전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도승지 오두인이 입대를 청하옵니다."

"오수午睡 중이니 아니 된다 돌려보내거라."


숙종은 오두인조차도 만나기가 싫었다. 이젠 서인이란 서인은 꼴도 보기가 싫었다. 오두인이 누이 명안공주의 시아비라 해도, 지금은 그저 서인일 뿐이었다. 아니, 뼛속까지 서인일 터였다. 송시열과 원수가 진 최석정조차도 서인인 판국에.


"급한 일이라 하옵니다."


잠시 뜸을 들이나 싶더니, 대전상궁이 다시 고하였다. 숙종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오두인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일개 낭관들이 상소를 올린 일 따위로 급할급急자를 입에 담을 리가 없었다.


"들라 하라."


숙종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내키진 않지만 당장 오두인을 만나봐야 했다. 뭐가 그리 급한 건지 궁금해진 탓이었다.


"예, 전하."


두광이 답하고 나가선 이내 오두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장지문이 열리는 순간 숙종은 보았다. 오두인이 황급히 들어서며 어깨에 묻은 눈발을 손끝으로 쓱쓱 문질러 털어내는 참이었다. 숙종은 정신없이 걸어오는 오두인을 심드렁히 쳐다보며 그 흰 사모뿔에 묻은 흰눈을 손끝으로 가리켜보였다.


"거기도 묻었소."


오두인이 흠칫 눈을 크게 떴다. 흰 사모뿔에 묻은 눈송이까지 알아보다니. 왕의 느긋함에 왠지 속에서 욱 치받는 게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옵고..."

"무슨 일이오?"

"그게...저..."


서둘러 말을 꺼내놓고, 오두인은 막상 머뭇거렸다. 숙종이 두눈에 쌍심지를 돋우는 순간, 오두인이 겨우 말을 이었다.


"대로大老께서..."


숙종은 대로大老의 대大자만 들어도 짜증이 나는지 바로 사나운 눈씨로 쏘아보았다.


"대로?""

"아니 영부사가..."


오두인이 움찔하며 호칭을 고쳐 부르고선, 이내 왼손으로 오른쪽 소매춤을 조몰락거리며 계속해서 고했다.


"여기, 송시열이 사직소를 내고서 도성을 나갔사옵고..."

"또?"


숙종은 기가 막혀 눈살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눈앞의 오두인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를 뿐이었다. 물론 오두인 역시 당황한 척 하는 것일 뿐이었다. 숙종은 내가 한번 속지 두번 속냐는 눈빛으로 오두인의 동공을 차갑게 꿰뚫어보았다.


"또...라니요?"

"뭘 새삼스럽게. 송시열이 사직소로 시위한 게 어디 한두번이요?"

"하오나 도성 밖으로 나간 적은..."

"몇번이더라?"


숙종의 대꾸에 오두인의 눈시울이 이지러졌다.


"언제..."

"우선 과인의 성균관 입학례 때도, 기억나는데. 선대왕께서 소학을 택한 것에 불만을 품고 도성에 나갔지 않소? 그때가 벌써 10년도 전인데."

"하오나 지금은..."

"역시 사람은 변하질 않더군. 중궁이 죽기 전에도 또 나가고. 이거 원 송시열이 도성을 나갈 때마다 누가 죽어나가니...이번엔 내 차롄가?"


숙종의 냉소에 오두인은 가슴속이 새하얗게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턱밑 희끗한 수염마저 괜히 얼어붙어 고드름이 될 것 같았다.


"하오나 근래엔..."

"도성에 드나들며 제일 먼저 한 일이 병조판서 정재숭을 접촉한 일이오. 회유를 하든 협박을 하든 뭔가 하려다가 안 되니 이젠 찍어내려고 작당을 하나 본데...병판 내치고 뭘 하려고?"


그러는 전하께서도 서인 내치고 뭘 하시려구요? 오두인은 입가가 근질거려 실룩였다. 중궁을 잃기 무섭게 남인들을 문외출송에서 풀어준 것만 봐도, 남인들을 불러들일 심산이었다. 누가 왕의 속을 모를까. 어심이 벌써 서인들을 버릴 계획인데, 서인들이 속도 없이 물러날 턱이 없었다.


"어찌 됐든 송시열이 도성을 나섰으니..."

"불러들이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예의가 아니라 성의로."


송시열이 도성을 나갈 때마다, 예의를 갖춰서 만류하라고 신료들이 압박하는 것이 숙종은 너무도 싫었다. 말 한마디도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예의라는 말보다 성의라는 말이 더 좋았다. 왕인 자신의 머리 위엔 아무도 놓고 싶지 않았다. 독기어린 눈빛으로 허공을 쏘아보며, 숙종은 한번 더 되뇌였다.


"성의로."



도승지 오두인은 얼굴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져서 승정원으로 돌아왔다. 하얗게 날리는 눈발을 뚫고 승정원 앞에 이르니 굴뚝 위로도 흰눈이 쌓인 게 보였다. 저 대청 굴뚝에 눈이 쌓이는 꼴을 보다니.


오두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서인들도 잘한 건 없었다. 여기 숙장문을 좌우에 두고서 저 대청 아니면 빈청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왕의 기세를 누를까, 그런 궁리만 하는 모습도 그리 아름답진 않았다. 하지만 왕도 대신을 좀 더 예우해도 되지 않나 싶었다. 인조 이래 다른 왕들도 다 송시열 앞에서 한수 접어주었는데, 왜 지금 왕만 바락바락 대드는 건지, 내심 답답했다. 아무리 왕이라도 선대의 상신相臣을 예우해야 신료들도 마음놓고 왕을 받드는 것을.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잠겨 오두인이 승정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오두인이 협문 밖을 기웃거리니 숙장문 앞뒤로 놓인 화톳불을 에워싸고 대간들이 곁불을 쬐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군불을 땔 때는 저 대청 문을 나서질 않더니, 이젠 하나둘씩 숙장문 앞으로 나와 불을 쬐는 모양이었다. 그저 불을 쬘 마음은 없는지 대간들이 빈청 눈치를 보며 소곤거리는 참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소?"

"뭐가 말이오?"

"그냥 좀...전하께서 전부터 대로께 날을 세우는 느낌이..."

"그거야 뭐..."

"중궁전하 돌아가시고 분위기가 더 이상하오. 양쪽에서 신경전이...졸지에 우리도 가운데 껴서 이 고생인 것 같은데..."

"거 무슨 말도 안되는..."

"에이, 모르는 척 하는 거요, 정말 모르는 거요?"

"뭐?"

"딱 봐도 분위기가 점점 이상한데. 조보에 안 나온다고 모를 자리는 아니잖소. 빈청 옆인데."


조이병이 염지 끝을 뻗어서 빈청과 대청을 까딱까딱 가리켜 보였다. 숙장문 하나 끼었을 뿐, 서로 비스듬히 마주보는 듯한 구조였다. 언관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는 일이 드문 것도, 사실 저 빈청 주변에 있는 기관들은 대부분 빈청에 예속된 셈이었다. 한달에 한두번 회의를 하는 곳이 저 빈청인데도, 이렇게 대신들이 상주하며 대간들에게 온갖 압력을 넣어대니.


"그게 뭐?"

"끝까지 모른 척?"


조이병의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섰다. 아까는 대간들 틈에서 동료 권두기를 같이 비난하긴 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또 싫어졌다.


"왜들 나와 있는가?"


오두인은 그저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냥 도로 발길을 돌려 은대隱臺(승정원)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헌데 맞은편 빈청 쪽에서 누군가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흠칫 눈길을 드니, 빈청 앞에서 민정중이 고함을 치는 참이었다. 그 시선 끝에 오두인을 흘겨보면서.


"그냥 손끝이 얼어서...잠시 나왔을 뿐입니다."

"잠깐 불만 쬐고 들어가겠습니다."

"곧 들어가겠..."


대간들이 대꾸하다 민정중의 험악한 눈초리에 주눅들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내심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다. 왜 빈청에서 대청에 눈총을 주는 건지, 왜 대청이 빈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헌데 왜 우리가 나오면 안 되는 건지...?"


민정중에게 물어야 하나, 동료들한테 물어야 하나, 헷갈리는 듯한 말투로 물으며 조이병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구 역시 차마 큰소리는 내지 못하고 입술만 비죽였다. 일단 권두기가 덤터기를 쓰긴 했지만, 곧 자신들도 같이 엮여 찍혀나갈 판이었다.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아니...대로大老께서 또 사직소를 내고 도성을 나갔다는 얘기도 있고..."

"대청에 있기가 좀..."


한구가 겨우 목소리를 내서 송시열 핑계를 댔다. 조이병도 얼씨구나 맞장구를 쳤다. 송시열이 도성을 나갔다는데, 어떻게 대청에 틀어박혀 있겠냐는 논리면, 아무리 방귀깨나 뀌는 좌의정 민정중이라 해도 자신들을 어쩌지 못할 터였다.


"또?"


민정중의 고개가 까딱 움직였다. 뿔이 난 눈빛이었다. 송시열이 도성을 나간 사실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그 날카로운 눈초리가 꼬챙이처럼 한구의 동공을 꿰뚫었다.


"또?"


민정중은 조금 전 한구가 입밖에 낸 한글자에 가시돋친 반응을 내비쳤다. 한구가 겉으로는 송시열 얘기로 둘러댔지만, 은연 중에 '또'란 말로 불만을 내세운 참이었다.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전..."


한구는 실수를 깨닫고 입술을 가만히 감물었다. 자칫 권두기와 엮여 함께 조정에서 내쳐지게 생겼는데, 실언까지 하였으니 제대로 찍혔다 싶었다.


"뭐 하는가? 얼른 들어가지 않고?"


민정중은 한구와 조이병에게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그 그악스런 눈초리에 압도되어 한구와 조이병은 주변에 있던 이사영의 눈치를 보았다. 이번에 사헌부가 제대로 체면을 구긴 탓에 이리저리 천덕꾸러기가 된 참이었다. 그저 눈치만 보였다.


"들어가래도!"


민정중이 또 한번 오두인의 눈치를 보며 윽박질렀다. 아무리 오두인이 송시열과도 무던하게 잘 지낸다 해도, 그가 뼛속까지 서인이라 해도,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저 오두인은 왕실에 한쪽 다리 걸친 외척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에선 자신들을 보고 웃고, 뒤에선 왕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것을 누가 모를까봐서. 사실 왕이 대청의 구들을 들어낸 것도 저 오두인이 쪼르르 달려가 쏘개질을 한 것이 틀림 없었다.


"저...전하께 말씀 좀 아뢰주시면...전하께오서 대청 구들을 마루로 바꿔버리시어...도저히..."


조이병의 간청에 민정중은 할 말을 잃었다. 나서서 왕에게 항의를 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 더는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당황하여 입술만 달싹이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좌상대감, 저희들 만으론 역부족이오니 좌상께서...좀..."

"험,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구들 타령인가?"


민정중의 힐난에 대간들은 귀를 의심했다. 때가 어느 때라니. 수백년을 따뜻한 구들장을 지다가, 하루아침에 얼음장을 지게 생겼다. 헌데 자신들을 대청으로 몰아넣은 그 주동자가, 오히려 슬그머니 발뺌을 하다니?


"홍수에 이은 분어分御까지 겹쳐 이미 땔감이 동났다잖나."


민정중의 대꾸에 조이병은 입가를 실룩였다. 뭔가 이상했다. 여기 대청은 대간臺諫으로서의 오랜 성지였다. 여염과는 달리 마루 아닌 구들이어야 마땅했다. 헌데 왕이 땔감을 핑계로 제멋대로 마루로 교체해 버렸다. 헌데도 시국 타령을 해대며 좌의정 민정중이 묵인하다니? 가당치도 않았다. 민정중은 누구보다 송시열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송시열의 일이 더 중요했던 거였다.


"대감?"


눈으로 보고도,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는 듯한 조이병과 한구의 두눈을 보고서, 민정중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니, 저런 눈으로 볼 것까진 없지 않냐고, 당장이라도 푸념하고 싶었다. 괜히 얼굴이 뜨뜻해져서, 민정중은 고개를 숙이려다 일부러 더 꼿꼿이 쳐들었다.


"전하께서도 냉골에서 지내신다는데, 어찌 대간 주제에 구들을 고집하겠나."

"대감...!"


조이병이 언성을 높여 불렀다. 정중은 못 들은 척 눈길을 들어 사방의 풍경을 살피기만 했다. 숯광골에서 이미 두손을 든 일이었다. 괜히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숯광골에서 땔감이 동난 이유를 왕이 캐려고 들면 곤란했다. 땔감 문제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조이병은 미간을 찡그리고 나비눈으로 정중을 흘낏거렸다. 이 께름한 기분은 무얼까. 왕이 대청의 구들을 치워버렸는데, 방고래를 죄다 막아버리고, 헐어버리고, 나무까지 떡하니 깔아버렸는데, 뭣이 켕겨서 쉬쉬 덮고 넘어가려는 건지.


"대감? 전에 없던 일입니다. 패주 연산燕山도 못하던 것을, 주상이..."

"됐다지 않은가."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자꾸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조이병의 태도에 짜증이 나서, 민정중이 거칠게 손사래를 쳤다. 입 다물라는 손짓이었다. 흰자위가 희뜩하는 그 사나운 눈빛에 조이병은 자기도 모르게 두눈을 찔끔거렸다. 자칫 한마디만 더했다간 민정중의 저 도끼눈에 그대로 찍혀나갈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민정중은 그대로 걸음을 돌이켜 빈청으로 돌아가버렸다. 문틈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그 뒷모습에, 조이병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또 한번 왼쪽 입꼬리를 실룩였다. 꼭 어금니 사이에 음식찌꺼기라도 끼인 듯한 기분으로.


대청의 구들을 마루로 바꿨는데, 왜 아무도 찍소리를 못해? 왜?


혹덩이 같은 의심이 뒷목에 눈두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이미 송시열이 어쩌다 한번도 아니고 열두번도 더 도성을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하지만 대청의 구들은 그가 알기론 처음으로 헐렸다. 송시열이 도성 한번 나갈 때마다 왕더러 예의를 다해서 만류하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언로言路가 막혔는데 왜 빈청에선 쉬쉬하며 입을 닫는 걸까. 도대체 뭐가 그리 켕겨서? 뭐가 그리 겁나서?


"대청의 구들이 막힌 게 흔한 일인가?"

"아니지."

"헌데 왜들 그러지? 이게 작은 일인가?"

"아니지."

"다들 가만 있는 게 옳은 일인가?"

"아니지."


조이병이 혼잣말로 계속 의문을 던지는데, 옆에서 누가 계속 대답을 했다. 반쯤 넋이 나간 목소리였다. 조이병은 흠칫 눈썹을 꿈틀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구의 목소리였다. 조이병보다 품계도 한두품 아래인데다, 나이도 한두살 아래였다. 그런데 반말을 하다니? 조이병이 대뜸 눈을 부라렸다.


"한지평持平! 어디다 반말을!"

"아차차...실수요, 조장령掌令."


한구가 넉살좋게 두손을 소스쳐 보이며 웃음지었다. 서로 글씨라면 자부심이 대단한데다, 사헌부에서 품계도 나이도 엇비슷한 정도라, 친한 듯 안 친한 듯 묘한 사이였다. 묘하게 허공에서 서로 시선이 엉키듯 떨어졌다. 하얗게 쌓이는 눈발 때문에 화톳불도 점점 불씨가 꺼지는 참이었다. 꺼져들어가는 불씨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가만히 눈시울을 실룩였다.


- 네놈들끼리 위아래는 따져 무얼 하느냐!


왕의 고함이 아직도 그들 고막에 쟁쟁했다. 권두기만 탓할 게 아니었다. 몇살이라도 더 나이가 많은 그들도 왕의 눈을 보고 벌벌 떨었다. 왕이라서 눈을 보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저런 왕이라서, 저런 눈이라서 보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 지독한 눈빛을 보고 나니, 송시열이 곧 정의인 서인 조정에 실날 같은 회의가 들었다.


중궁이 죽어가는 그 시각에, 조정대신들은 도성 밖에서 송시열을 만났을 터였다. 왕의 살기등등한 눈빛만 봐도, 지금 돌아가는 판세만 봐도, 그들이 송시열의 편에 서서 왕을 압박할 수록, 왕의 눈씨가 더 끔찍해질 것만 같았다.



"청로하라!"

"청로하라!"

"송공宋公 행차시다!"

"물럿거라!"

"물럿거라!"

"대로大老 행차시다!"

"청로하라!"

"물럿거라!"

"우암 송시열 대감 행차시다!"


남문 밖 대로에 또 요란한 벽제가 울려퍼졌다. 송시열의 구종과 머슴들이 앞장서서 벽제를 해대고, 송시열이 탄 평교자를 가마꾼들이 모는 그 앞뒤로 제자들이 호종했다. 남문 밖에 흰눈이 수북이 쌓여 지나는 행인들 앞코가 젖어들었다. 하지만 눈발 속에 평교자 행렬을 피해 길가로 비켜나 무릎까지 꿇고 엎드리다 보니, 백성들의 무릎은 물론 팔꿈치며 발꿈치까지 젖을 수 밖에 없었다.


"왜 또...전하 심난하신데..."

"그러게 말야. 중전마마도 돌아가시고..."

"두창이 다 뭐야. 우리나 걸리는 건데."

"왜, 전하 두분 누이들도 두창으로 죽었는데."

"아...왜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겨."

"전하께서 즉위하셔서 그런가."

"그 전부터지."

"전하 태어날 때부턴가, 그럼?"

"그 전부턴데."

"뭐?"

"나랏님이 계속 바뀌었잖아. 다 갑자기 승하하시고."

"그러네. 다들 얼마 못 가시고."

"왕실이 저주 받은 거지. 꽤 됐어."

"근데 왜 자꾸 도성을 나가?"

"뭐?"

"저기 말야. 저기."


대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발 속에 수레바퀴며, 말발굽이며, 온갖 신발밑창이며, 하나둘씩 수를 놓듯 지나가고, 또 지워지고, 그렇게 흩뿌린 듯이 남겨지고, 또 묻혀졌다. 서로 수군대던 백성들이 남긴 흔적들도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의혹이 남았다.


"그러게, 왜 자꾸 도성을 나갈까?"


고즈넉한 남문 앞 길가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내리깔렸다. 흰 방갓에 심의 차림으로 길가에 꿇어엎드렸던 어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으로 한약냄새며 본초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노인은 눈발 속으로 차츰 멀어지는 평교자의 꽁무니만 씁쓸히 쏘아보았다. ㄱ자로 눈썹이 눈꼬리까지 꺾어져선 바람결에 흩날렸다. 그 옆얼굴을 한발 뒤에서 비스듬히 지켜보며, 어린 뱃사공이 말했다.


"신선님, 이만 배를 타시는 게..."

"그리 부르지 말랬지."


노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은빛 눈썹에다 은빛 수염까지 눈바람에 나부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데다 검버섯까지 피었다. 여든을 훌쩍 넘어 아흔까지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토록 고비늙은 사람이, 얼굴은 환히 빛났다. 눈빛조차 살아있었다. 어린 뱃사공은 존경심이 가득한 눈망울로 대꾸했다.


"그치만 돌아가신 백호白湖 대감께서 신선님이라 부르셨는데..."

"희중希仲 그 친구..."


노인은 그늘진 눈빛으로 탄식했다. 뱃사공이 백호대감이라 부르고, 노인이 희중이라 부른 이는 이미 반년 전에 저승 문턱을 넘었다. 생각할 수록 아까운 인물이었다.


"신선님, 어서 배를 타셔야...해 떨어지면 좀..."

"원...어린 것이 급하기는."


노인은 뱃사공에게 곱게 눈을 흘기고선 다시 곁눈을 주었다.


"내가 걱정된 게냐? 아니면 손님들이 걱정된 게냐?"

"아니...뭐, 둘 다요..."


뱃사공이 혀끝을 살짝 내밀며 노인의 눈치를 보았다. 해가 저물면, 제 아무리 갈치비늘처럼 잔잔한 동호의 잔물결도 거친 복어지느러미로 변하고, 솜털만 겨우 쓸던 강바람도 아예 살갗을 꿰뚫는 칼날로 바뀔 터였다. 노인네를 태우고 무사히 강을 건널 자신도 없을 뿐더러, 그동안 손님들이 무탈히 자신들을 기다릴 거란 확신도 없었다. 그저 불안했다.


"가자꾸나."


노인은 목구멍으로 쑥 나온 한숨을 삼키고 걸음을 옮겼다. 청파역 근처라 유난히 억새풀도 많았다. 혹시라도 발자국을 남길세라 일부러 눈꽃처럼 흐드러진 억새풀 틈새로 거닐면서 노인은 평교자 위의 송시열이 백립을 더욱 눌러쓰는 것을 보았다.


"애새끼..."


노인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은빛 수염이 나풀거렸다. 조정 모든 신료들이 대로大老니, 어르신이니, 지극히 공경해서 부르는 자를, 노인은 그저 옆집 아이 부르듯이 비웃으며 불렀다. 마치 들리기라도 한 듯, 평교자 위의 송시열이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노인이 흰 수염 끝을 꿈틀했다. 그저 우연일 뿐이었는지, 송시열은 다시 다른 데를 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나 여기 있다. 애새끼야."


노인이 방갓을 염지 끝으로 치켜올리며 끌끌 웃었다. 천하의 송시열을 애새끼라 부를 수 있는 늙은이였다. 어린 뱃사공은 신기한 눈빛으로 평교자 꽁무니를 쳐다보았다. 귀밑머리며 수염이 온통 허연 송시열이 애새끼라 불리니, 묘한 괴리감이 들었다. 뭘 그리 경계를 하는 건지 자꾸만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니, 어른 무서워 하는 아이 같긴 했지만.


"애새끼...저 못된 것이 또 임금을 길들이려 들어."


노인이 지팡이를 고쳐쥐며 또 욕지거리를 내뱉았다. 옆에서 어린 뱃사공은 두눈을 말똥거렸다. 방금 애새끼라 불린 게 송시열이니, 저 송시열이 나랏님을 길들이려 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두귀로 듣고도, 한귀로 흘린 것처럼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뱃사공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노인은 ㄱ자로 꺾인 긴 눈썹을 꿈틀대며 평교자 꽁무니를 또 노려보았다. 살의가 번뜩였다.


"내 황천길에 저 애새끼는 데려가야 하는데."


노인의 말에 뱃사공은 치미는 웃음을 참느라 입과 눈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사람 목숨을 갖고 할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죽음을 달관한 듯한 노인의 말투가 우스꽝스러웠다. 정말로 송시열 숨통을 끊어놓고 갈 요량일까. 물론 뱃사공이 아는 저 노인은 얼마든지 그럴 깜냥이 되었다. 6년 전 송시열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통의 상소 역시, 저 노인의 입김에서 시작된 것이니.


뱃사공은 억새풀에 가려진 한척의 배 앞으로 노인을 데리고 갔다. 황포돛을 돌돌 말아올린 작은 배였다. 너럭바위 앞에 대어 오르내리기도 좋았다. 누가 볼세라 경계하듯 주위를 살피고서, 뱃사공은 노인을 배의 후미로 안내했다. 노인이 지팡이 끝으로 너럭바위를 찍으며 단숨에 배 갑판 위로 올랐다.


"어디 보자..."


노인은 황포돛배 갑판에 올라 억새풀 틈새로 송시열 쪽을 지켜보았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지, 아니, 따라오는지, 송시열 일행이 일제히 행군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참이었다. 웬 백사모에 백단령까지 차려입은 관리가 족자 같은 것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서 정신없이 말을 달려와 멈추는 게 보였다. 관리가 왼손으로 족자를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보이며, 뭐라 소리치는 참이었다.


그 족자를 든 손이 높이높이 소스쳐, 희뿌연 겨울하늘을 가리켜보이자, 송시열의 일행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송시열 앞으로 관료가 다가가서 족자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워낙 먼발치라 뭐라 읽는지 잘 들리지도 않고 답답하여, 어린 사공이 노인을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글쎄, 전하께서 승지를 보내서 만류하시는 게야."

"아, 그럼 전하께서 저 애새...노인네를 붙잡으시는..."

"흥."


사공의 순진한 말에 노인은 코웃음을 치고, 덧붙였다.


"그럴 리가 있나."

"에? 아니 지금 붙잡으시는..."


사공은 염지 끝으로 가리켰다. 왕이 직접 승지까지 보냈는데도 붙잡는 게 아니란 허목의 말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신선님껜 보내시지도 않는데..."


노인의 귀에 들릴 락 말 락 사공이 입을 비죽였다. 왕이 저 송시열한텐 승지를 보내도 이 노인한텐 보내지도 않았다. 물론 눈앞의 노인이 늙어도 너무 늙은 게 문제였다. 내일모레 아흔이 될 노인네를 벼슬길에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이 나이까지 살아서, 아니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워낙 진귀한 일이라 다들 신선님, 신선님, 하며 떠받드는 것이겠지만.


"모르는 소리. 대신이 사직소를 내면 왕은 세번은 붙잡아야 해.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게 대신에 대한 예우지."

"세번요?"

"그래, 세번."


알쏭달쏭한 느낌으로 사공이 손꼽아 세어보며 되묻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곤 덧붙였다.


"그래서 죽은 허적이도 늘 사직소를 가슴에 품고 다녔지. 헌데 저 애새끼는 사직소로도 모자라 꼭 도성까지 나간단 말이야. 요란하게."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공은 그제야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눈길을 돌려 억새풀 틈새로 송시열 쪽을 보니, 그 자리에서 송시열이 뭐라뭐라 또 상소를 쓰는 듯 했다. 지금도 왕이 마지 못해 붙잡는 시늉을 하는 모양인데, 송시열이 또 마다하고 사직소를 적는 느낌이었다.


"하오면..."

"딱 세번만 붙들고 안 붙드실 게야. 딱 세번만."


노인이 입가를 실룩이며 시열을 쏘아보았다. 그 눈빛은 한점 온기도 없었다. 송시열의 어깨너머로 북망산을 내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로 저승길에 데려가고 싶은 눈빛이었다. 왕이 송시열을 붙잡는 것은 앞으로 딱 두번 남았다. 결코 더는 붙잡지 않을테니. 그 세번째에 송시열이 또 덥석 물고, 개선장군처럼 저 남문으로 들어가버리면, 그땐 정말로 자신이 황천길로 끌고 가야 할 터였다.



부진不進


숙중의 수중에 든 명소패命召牌에 적힌 두 글자였다. 숙종은 서안 위로 사직소를 펼쳐두고 명소패로 톡톡 두들겨보다가, 다시 또 쳐다보았다. 아무리 웃음을 참아보려 해도 입꼬리가 자꾸만 벌어졌다. 애써 참으면서, 숙종은 송시열 특유의 굵고 힘찬 서체로 적힌 상소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노인네, 기운은..."


힘찬 서체를 보니 기분이 또 고약했다. 숙종은 고개를 젖히고선 눈을 내리뜨고, 다시금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두번..."


오두인은 충혈된 두눈을 부릅떴다. 왕의 용안을 함부로 쳐다볼 생각도 없었지만, 두눈의 피로감에 눈을 똑바로 뜨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방금 왕의 말이 너무도 의미심장했다.


앞으로 두번?


왕은 두번만 더 붙잡는 시늉을 하고 더는 붙잡지 않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어심에 송시열은 없었다. 중궁 김씨가 세상을 뜨자마자, 또 다시 송시열을 치워버릴 결심을 한 걸 보면. 중궁 때문에 송시열과 서인들을 왕이 억지로 두고 보았던 게 분명했다. 앞으로 두번이라니...아예 벼르고 벼르며, 손꼽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전하, 정언 윤세기가 입대를 청하옵니다."


대뜸 장지문 밖에서 들리는 두광의 목소리에 숙종은 미간을 찡그리고 오두인을 쳐다보았다. 오두인도 숙종의 눈치를 보았다. 이미 윤세기가 두어차례 상소를 올려 김덕원을 비롯한 남인들을 비방한 터였다.


"남인 몇 들이면 어때서 저 야단인지."


숙종은 시큰둥히 오른쪽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오두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맛만 쓰게 다셨다. 그러는 왕이야말로 중궁이 훙서하기 무섭게 남인들을 향해 궐문을 열어젖혔다. 중궁을 지킨다, 살린다, 그리 서인들이 꽃노래를 부르며 조정에 재입성했으니, 중궁이 없는 지금은 쫓겨나는 일만 남았다. 남인들에게 밥그릇을 내주기 싫은 게 아니라, 밀물 밀려들어오기 전에 미리 막아보려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물론 밥그릇을 나누기 싫은 마음도 조금, 아주 조금 있겠지만.


"들라 하라."

"예, 전하."


숙종과 두광의 짤막한 대화가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오가더니, 이내 장지문이 열리고 결연한 표정의 윤세기가 문틈으로 비쳤다. 그 굳은 눈동자를 보고 숙종이 눈살을 더 찡그렸다. 딱 보니 상소를 써서 외워온 모양이었다. 그럴 걸 뭐 하러 청대를 넣는 건지, 그냥 상소를 쓰지 왜 숙종 자신의 예민한 귀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지.


숙종이 마뜩잖은 눈초리로 지켜보는 가운데, 윤세기가 한발한발 걸어들어와서 서안 앞에 꿇어엎드렸다.


"전 판윤 김덕원은 성상께서 재앙을 입어 구언求言(신하의 직언을 구함)을 하시는 때에 보은할 계책은 생각지 않고 전지에 응하는 핑계로 기회를 틈타 어심을 흔들어 역당의 무리를 비호하고 나섰으며..."


윤세기의 말을 들으며 숙종은 지루한 눈빛이 되었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재변을 만나면 왕은 자신을 돌아보고 대신의 직언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곤욕이었다. 왜 조정 탓을 하는 신하는 간신 취급을 받아야 하고, 왕 탓을 하는 신하는 충신 취급을 받는 건지. 왜 왕이 반려를 잃은 위기를 더욱 몰아세울 기회로 여기는 건지.


"하옵고, 훈적의 추가 등록 문제며, 또 목내선 같은 역당의 등용 문제는 공론公論에 오른 것인데, 사사로이 간언을 중지한 권두기 외 사헌부의 관원들은 모두 파직을..."

"파직? 파직을 하라고?"


숙종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자신이 고래고래 소리쳐서 내쫓은 뒤로 권두기 등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숙종 자신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그들이 뭐라도 켕겼는지, 생각이 바뀌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파직을 시켜달라니?


"예, 마땅히..."

"너희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공론에 올리지도 않으면서?"

"무슨..."

"내 이미 대청 구들을 들어엎었다. 헌데 왜 이리 조용하더냐? 이미 대간들 사이에선 말이 많던데?"

"그건..."


숙종의 대꾸에 윤세기도 할 말을 잃었다. 이상하긴 이상했다. 왕이 대청의 구들을 치워버렸는데 아무도 찍소리를 못하는 참이었다.


"그건 파직이 아니고, 이건 파직이고?"

"하오나 대감의 소임에 도중에 물러서는 것은..."

"원, 대간들의 성지인 대청 구들을 없앴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나 보지? 그러고도 너희가 대간이냐?"

"그야...전하께오서도 냉골에서 지내신다 하여..."

"흥, 가서 뚝소纛所 숯광골의 일이나 한번 캐보거라."

"예?"


뜻밖의 말에 윤세기는 두눈을 홉떴다. 뚝소 숯광골?


"갑자기 궐내 시탄柴炭의 공급이 줄었으니, 뭔가 부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헌데 사헌부가 그 문제는 감찰도 않고 묵인하는 걸 보니 수상쩍지 않으냐. 허니 사간원에서 한번 캐보는 게 어떠냐."

"저..."

"사흘을 줄테니 한번 사헌부부터 들쑤셔보거라. 그러고 오면 네 말에 귀기울여 주겠다."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된 윤세기를 무섭게 노려보며, 숙종의 눈동자에서 불씨가 번뜩였다. 보자보자 하니 정말로 수상쩍은 자들이었다. 대청 구들을 들어엎었는데, 찍소리도 못하면서 딴소리만 해대다니.


어깨가 축 늘어져서 동온돌을 나서는 윤세기의 뒷모습을 보며, 숙종은 가만히 턱을 꿈틀거렸다. 여태 아무 말도 못하고 오두인이 옆에서 지켜보는 참이었다. 숙종은 나른히 오두인을 보며 말했다.


"송시열이 홧병 좀 나겠군."

"예? 그게 무슨..."

"뻔하지 않은가. 내가 안 붙잡으면, 병 핑계를 대고 도성 근처에 머무를테니."


숙종의 냉소에 오두인은 그저 손바닥으로 등허리를 문질렀다. 괜히 등허리가 뻐근했다. 자꾸 체증이 생겨서일까. 왕과 송시열간의 신경전을 지켜보니 괜히 온몸이 피가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우리 송자宋子를 모셔오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승지를 그 멀리까지 직접 보내야 하는데...이번엔 또 누구를 보낼까? 사돈어른께서 가시겠소?"

"전..."

"혹 사부의 친인親人이 승정원에 또 있소?"


갑자기 훅 파고드는 숙종의 질문에 오두인은 멈칫했다.


"그건 어찌..."

"글쎄, 이왕이면 사부와 잘 아는 사람을 보냈으면 하는데."

"사부라 하시면..."

"최석정."

"아..."

"누가 좋겠소?"

"글쎄요, 아직..."

"스, 승지 윤지선尹趾善이 있사온데..."


오두인은 머뭇머뭇 말했다. 윤지선이란 이름을 입밖에 내기가 꺼림했다. 왕이 송시열에게 보낼 승지를 찾으면서, 왜 최석정의 친인을 찾는 건지, 불안했다.


"승지 윤지선? 사부와 친하다고?"

"사이가 나쁘진 않은 걸로..."

"흠...박태상, 신후재, 정재희가 더 친했던 것 같은데...최후상은 친부인지 양부인지였고...다들 도로 은대로 넣어버려?"


숙종의 말에, 오두인은 움찔해서 말했다.


"송구하오나 박태상은 이미 품계가..."

"허면 대사간에 앉혀야겠군."


숙종이 혼잣말처럼 말하자, 오두인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굳이 더 최석정의 사람을 심어둘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왜 최석정의 사람을 더 심어두려는 걸까. 그들을 송시열에게 보내서 뭘 어쩌시려고?


"전하, 윤지선이면 충분하옵니다. 그들 형제를 최석정의 집에서 본 적이 있사옵니다."


오두인이 떠름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왕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느낀 바가 있었다. 이미 조정은 최석정의 친인들 천지였다. 물 반, 고기 반...그냥 최석정이 낚싯대만 담갔다가 건지면 되었다. 그 나머지가 송시열의 사람들이었다. 꼭대기 3정승과 6판서 자리만 빼고선, 그 밑으로는 어떻게든 최석정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송시열이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그나저나, 사부 소식 들은 거 없소? 왜 여태 감감무소식이요?"


숙종이 한마디 툭 던지는 말에, 오두인은 눈살을 꿈틀했다. 빨리도 묻는다 싶었다. 소식이 끊어진 게 무려 대행왕비의 승하 당일이었다. 아무리 중궁전 승하로 경황이 없었다지만, 최석정이든 왕이든 둘 중 하나라도 어떻게든 연통을 넣었을 터였다. 혹시 서로 몰래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도 오두인 자신에게 시치미를 떼는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숙종의 혼잣말에 오두인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설마 정말로 전하마저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 사돈인 경주이씨를 만나도 행방을 알진 못했지만, 그녀가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왕은 무조건 알 거라 믿었다. 하지만 왕은 거의 보름간을 넋나간 사람처럼 굴다가, 이제 조금 눈빛이 독해졌다 싶을 뿐이었다. 정말로 왕도 최석정의 행방을 모른다면, 최석정은 어디 있는 건지. 아니...아무리 생각해도 왕이 모를 리 없었다. 그간 왕의 행보는 은밀하게 또 긴밀하게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는 듯 했으니.


"정말 모르시..."


망설이다 오두인이 입을 여는데, 장지문 밖에서 또 두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노도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노도?"


숙종의 두눈이 번뜩였다. 노도에 심어둔 자가 찾아왔다는 건, 송시열이 노도 객사에 당도했다는 뜻일 터였다. 숙종은 묘한 미소를 띠다가 흠칫 오두인을 돌아보았다.


"이만 나가보시오."

"아...예..."


오두인이 물레걸음으로 물러나려는데, 숙종이 잠시 손을 소스쳐 불렀다.


"잠깐."

"예?"

"눈이 벌건데. 두창 아닌가?"

"예? 무, 무슨..."

"저 옆 양화당에 가 계시오. 어의 시켜 진찰 좀 해야겠소."


숙종의 말에 오두인은 입을 쩍 벌렸다. 눈이 벌개질 수 밖에 없었다. 왕이 자꾸 송시열의 성질을 들쑤시는 바람에, 사방에서 상소가 빗발쳤다. 그 많은 상소들을 검토하고 반려하고 또 봉입하느라 눈이 이렇게 되었다. 헌데 이 벌건 눈을 핑계로, 양화당에 격리시킬 태세였다. 일부러, 노도에서 온 자와 마주치지 못하도록.


내가 그리 못 미덥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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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해의 그림자 341 - 終 +3 17.12.22 469 11 43쪽
341 해의 그림자 340 17.12.20 201 3 43쪽
340 해의 그림자 339 17.12.17 182 3 44쪽
339 해의 그림자 338 17.12.12 203 4 43쪽
338 해의 그림자 337 17.12.08 215 5 43쪽
337 해의 그림자 336 17.11.30 217 7 43쪽
336 해의 그림자 335 17.11.26 169 4 43쪽
335 해의 그림자 334 17.11.20 258 4 43쪽
334 해의 그림자 333 +1 17.11.12 215 5 43쪽
333 해의 그림자 332 17.11.04 242 4 43쪽
332 해의 그림자 331 17.10.28 204 3 43쪽
331 해의 그림자 330 17.10.22 248 6 43쪽
330 해의 그림자 329 +1 17.10.17 419 4 43쪽
» 해의 그림자 328 17.10.13 219 5 43쪽
328 해의 그림자 327 17.10.07 251 6 43쪽
327 해의 그림자 326 +1 17.10.03 307 4 43쪽
326 해의 그림자 325 17.09.29 228 6 43쪽
325 해의 그림자 324 +1 17.09.24 252 4 43쪽
324 해의 그림자 323 17.09.16 233 5 41쪽
323 해의 그림자 322 17.09.07 219 6 41쪽
322 해의 그림자 321 17.08.27 235 3 43쪽
321 해의 그림자 320 +1 17.08.20 308 4 43쪽
320 해의 그림자 319 +1 17.08.15 253 6 43쪽
319 해의 그림자 318 17.08.13 214 5 43쪽
318 해의 그림자 317 17.08.08 262 4 43쪽
317 해의 그림자 316 17.08.01 281 6 42쪽
316 해의 그림자 315 17.07.24 305 5 43쪽
315 해의 그림자 314 17.07.19 284 8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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