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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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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7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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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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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여우 vs 고양이

DUMMY

체조 교실의 휴식 시간. 미랑은 사람이 없는 체육관 복도에서 전화를 걸었다.

묘화의 폰 전원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커피를 타 마시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묘환가?


급히 들여다 보니 학부모였다. 아이 건강과 성장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수다로 자기 스트레스를 풀려는 엄마가 종종 있다.

이 발신자는 특히 말이 많은 엄마였다.

‘전생에 촉새였거나 아니면 현생에 새에서 변신한 인간일 거야. 짹짹짹 재잘재잘재잘.’

넌지시 끊자고 눈치를 주는 게 안 통하는 스타일이었다. 미랑은 10분 가까이 붙잡혀 있다가 겨우 통화를 마쳤다.


쉬는 시간 절반을 학부모 전화로 까먹어서 다음 수업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휴~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미랑은 사무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수업 중에 점프 시범을 보이다가 삐끗한 발목이 쑤셔 왔다. 고민이 많다 보니 운동할 때도 집중이 쉽지 않았다.

사는 게 어려움의 연속이라지만 요즘은 미랑에게 쉽지 않은 시기였다.


한숨을 내쉬고 발목을 주무르는데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다음 반 아이들이 몰려들어왔다.

“옷 갈아 입고 몸 풀고 있어!”


일어나야지, 일해야지 마음을 다잡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묘화였다.

미랑은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금 들어온 아이들 수업은 못 할 것 같았다.


* * * * * * * * * * * * * * * * * * *


진술서들을 요약하고 청구서들을 정리하느라 오전 시간을 거의 보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니터에 메신저를 열어놓고 있었다.

박인숙 경위는 미랑이 한 군데 머물고 있고 묘화의 휴대폰이 계속 꺼져 있어도 20분 간격으로 나한테 연락을 줬다. 계속 같은 상황이라 특별히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반장님이 시킨 일보다 변함 없다고 연락해 오는 박경위의 메신저가 나한테는 훨씬 심각했다.


내가 보기에는 범죄자가 아니라 심신 미약 환자로 분류해야 될 것 같은 용의자의 진술서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진술 덕분에 그걸 받아 적은 진술서도 괴상한 문학 작품 같았다. 초현실주의, 포스트 모던, 아방가르드, 프로그레시브 경찰 조서 문학이란 이런 걸까?

무식한 형사의 엉터리 문학 상상을 박살낸 건 역시 메신저였다.


‘황묘화 폰 켜졌음.’


그때부터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곧바로 박경위는 묘화의 폰이 켜진 곳 위치를 알려왔다. 나는 인터넷 지도 위에 미랑이 일하는 체육관과 묘화가 확인된 지점을 찍었다.

두 지점은 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황묘화 이동 시작. 구미랑도 이동 시작.’


박경위는 휴대폰 위치가 확인되는 즉시 메신저를 날리고 있었다.

미랑과 묘화가 움직이는 지점들을 연결해 봤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둘이 만나려고 한다!’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미랑 쪽으로 접근하기로 마음 먹었다.

미랑을 따라가면 둘이 만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왔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튀어 나가면서 반장님한테 어이없는 핑계를 외쳤다.


“반장님. 집안에 급한 일이라 잠깐만 다녀올게요. 저녁에 와서 서류 다 끝내겠슴다!”

“뭔 일인데 임마?”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친한 형님은 뼈가 박살났고요.”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심적인 발언도 아니었다. 거짓말을 피하겠다는 소심함 플러스 급한 마음이 세상 쓸데없는 소릴 지껄이게 한 거다.


“저게 미쳤나? 왜 저래?”

반장님과 선배들의 험담과 폭언 따위 모두 흘려버리며 나는 뛰쳐나갔다.

레이서처럼 차를 스타트하면서 박경위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메신저로는 연락을 받을 수 없으니까.


“경위님! 저 위치 신호 따라갈 거니까 폰으로 연락 주실래요?”

“오케이. 백형사랑 같이 소고기 사라.”

“네! 형님!”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박경위가 누님 소릴 듣는 것보다 형님 소릴 듣는 걸 더 좋아하는 건 알았다. 박경위가 형사 선배들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주 봤었다.

경찰서의 마초적인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자기 포지션을 찾는 방식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애니웨이, 나는 실시간 정보를 받으면서 두 사람의 동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미랑과 묘화는 이동 경로는 각을 좁히면서 같은 지점으로 접근중이었다.

미랑을 쫓아가면 묘화까지 만나리라는 예상이 맞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지도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미랑과 묘화는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 * * * * * * * * * * * * * * *


미랑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서 묘화를 기다렸다.

오 분도 안 돼서 묘화의 모습이 나타났다. 미랑은 묘화와 눈이 마주치자 돌아서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잰 걸음으로 따라붙은 묘화가 곧 미랑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미랑은 앞만 보고 걸으면서 말을 건넸다.


“어디 있었어?”

“여기저기.”

“백형사···”


맞은 편에 등산객이 보이자 미랑이 말을 멈췄다. 둘은 그렇게 대화와 침묵을 오가며 산길을 걸었다.


“죽이려고 그랬지?”

“알잖아.”


미랑이 화를 참으면서 묘화를 봤다. 이번엔 묘화가 앞만 보고 걸었다.


“진짜 우리들 안전을 위해서야? 니 야수성을 못 이긴 거 아냐?”

“그 두 가지를 구분해야 돼? 안전하게 우리 정체 숨기려고 짐승같이 싸웠어. 왜? 잘못된 거야?”


묘화는 ‘짐간’의 정보가 공개되는 걸 막으려고 애썼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고, 미랑은 왜 사람을 해치고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냐고 따지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싸웠다는 거야? 사람들 다니는 길거리 바로 옆에서 모습 드러내고?”

미랑이 묘화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묘화 너··· 인간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중간자 상태가 좋은 거야? 힘세고 겁 없고 잔혹한 그런 게 더 좋은 거 아냐?”

“맘대로 지껄이지 마. 나도 힘들고 나도 겨우겨우 참고 버텼어. 그런데 언니 땜에 다 망하게 됐잖아. 애 낳아서 사람 되겠다는 언니 욕심이랑 그 잘난 사랑 때문에. 안 그래?”


둘은 산길을 오르다 말고 마주서서 노려봤다. 하산하던 노인이 이상하다는 듯 둘을 쳐다보고 지나갔다.

미랑이 손가락으로 등산로 옆을 가리켰다. 산짐승들이 다니는 작은 샛길이 있었다.


미랑이 앞장을 서고 묘화가 뒤를 따랐다.

빽빽한 참나무숲 사이를 통과하자 곧 작은 벌판이 나왔다. 바위들 사이로 잡풀이 자라 있고 키 큰 나무들은 드문 장소였다.


“언니. 처음에 동네 골목에서 정체를 드러낸 게 누구였지?”


묘화가 미랑에게 쏘아붙였다. 미랑이 최용근한테 달려들어서 주성을 구했을 때 이야기였다. 미랑은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이 산에서, 바로 저 언덕 너머 골짜기에서 옥,희 아빠가 죽을 때 거기 누가 있었지?”


너무 강력한 공격이었다. 미랑의 얼굴이 억울함과 분노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 * * * * * * * * * * * * * * * * * *


차를 세워놓고 등산로 입구로 뛰어갔을 때 산길로 올라가는 두 여자가 멀리 보였다.

이제는 박경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면서 두 여자를 쫓아 걸음을 재촉했다. 혹시나 돌아보는 시선에 포착되지 않도록 길가로 몸을 숨기면서.


산길을 올라가던 미랑과 묘화는 마주 보고 말다툼을 하더니 좁은 숲길로 들어갔다.

나로서는 고박사가 보여줬던 동영상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긴장해서 꿀꺽 침을 삼키는데 갑자기 딸꾹질이 나왔다.


‘작은 소리도 주의해야 되는데. 사람들보다 훨씬 잘 들을 텐데···’


걱정을 한다고 딸꾹질이 멈추는 건 아니었다. 무작정 두 여자와 거리를 둘 수도 없었다.

숲길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면서 심호흡을 했다. 딸꾹! 그래도 가슴 속이 흔들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미세한 소리도 새나가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참나무 숲을 빠져나가려는데, 심상찮은 장면이 보였다.

미랑이 묘화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니가 어떻게 그 얘기를 나한테 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니가 어떻···”


미랑은 말을 맺지 못했다. 극도의 분노로 심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 변신의 시작이었다.


“키야아아오!”

미랑이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었다.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귀가 솟아오르면서 얼굴이 황색 털로 덮였다. 팔다리가 길어지면서 체구도 커지고 있었다. 역시 털로 뒤덮인 손에서 긴 발톱이 튀어나왔다.

긴장한 묘화는 재빠르게 미랑을 피해 물러섰다.


검붉은 눈동자에서 안광을 뿜어내면서 미랑은 자신의 분노와 야수성을 견디지 못해 몸을 뒤틀었다. 걷어차듯이 신발을 벗어던지고 칼날 같은 발톱이 달린 앞발을 휘둘러 허공에 양훅을 날렸다!


미랑이, 미랑이 결국···

정체를 드러냈다. 주둥이가 뾰족하고 갸름한 대가리의 여우의 모습! 그러나 현실의 여우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무시무시한 존재!

범죄자 최용근을 한 손으로 들어올려서 공포에 오줌을 지리게 만들었던 괴물!


미랑, 구미랑, 옥,희 엄마, 나 지주성의 아내가···

내 뒤에 있다가도 어느새 앞에 나타나고, 내가 방향을 바꿔 다른 데로 가도 주변을 재빨리 돌아 앞질러서 기다리던 미랑. 생고기를 잘 먹고 생간에 환장하던 미랑.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소복 입은 구미호처럼 재주를 잘 넘던 구미랑.

결혼 후에 배우자에게 어떤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이해해야 한다면서 맹세를 원하던 미랑.

그리고 나를 때려죽이려던 용근이 목덜미를 치켜들고 겁을 줬던 게 분명한 미랑.


충분히 내가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애써 무의식 깊이 묻어두고 알아채지 않으려 했던 미랑의 본모습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랑에게 위협 당한 묘화마저 변신을 시작했다. 기철이형이 봤던 고양이 대가리의 괴물.

내가 포장마차에서 그림자로 목격했던 고양이가 묘화, 개를 닮은 형상이 미랑이었다.


“미야아아아오!”

거대한 고양이를 닮은 고양이 인간 묘화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미랑을 향해 포효했다.


“키야아오!”

미랑이 묘화를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대단한 점프력이었다.

뛰어오르며 미랑이 날린 앞발 공격을 피해 묘화는 옆나무로 몸을 옮겼다. 큰 덩치에도 나뭇가지를 타고 움직이는 동작이 가볍고 날랬다.

분노한 미랑이 다시 몸을 날리면서 앞발을 휘둘렀다.

미랑의 발톱이 나무 깊숙이 박혔다. 흔들리는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묘화의 꼬리가 채찍처럼 미랑을 갈겼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나는 공포감에 주저앉을 뻔했다. 오줌싸개 용근이 심정이 이해가 됐다.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내 아내가 싸우고 있지만, 아니 내 아내였던 존재가 싸우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릎 뒤가 후들거리면서 힘이 빠졌다. 말 그대로 ‘오금이 저리’고 있었다.


‘아니야. 저건 내 아내가 아냐. 인간 구미랑이 아냐.’

그렇지만 눈길을 뗄 수는 없었다.

딸꾹, 또 내 횡경막이 들썩였다. 소리가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고양이 꼬리에 뺨을 맞은 미랑은 방금 발톱을 찍었던 나무의 가지를 꺾어들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부러뜨릴 수 없는 굵기의 나무였다.

묘화가 다시 사사삭 나무 위로 몸을 피하자 미랑은 창처럼 가지를 던졌다.


“캬악!”

어깨에 가지끝이 꽂히면서 묘화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고양이답게 착지하고는 스스로 나뭇가지를 뽑아냈다.

묘화의 어깨에서 피가 솟았다. 그 핏방울이 묘화의 투지에 불을 붙였다. 미랑 옆의 나무로 몸을 날렸다가 당구의 쿠션처럼 방향을 바꾸면서 세차게 미랑을 할퀴었다.

미랑의 뺨에도 발톱자국이 나면서 피가 배어나왔다.


“크르릉”

본격적으로 달라붙는 두 짐승. 근접 난타전이 시작됐다.

아웃복서의 잽을 피해 파고드는 파이터처럼 미랑이 고개를 숙이고 달려들어서 묘화의 옆구리를 물었다. 묘화가 고통을 느끼고 움찔하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그런데,


“위이잉··· 달그락”


딸꾹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하면서 같이 넣어둔 열쇠고리를 건드렸다.

귀가 큰 두 짐승들··· 묘화를 강하게 물고 있던 미랑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다가··· 나를 봤다. 소스라치게 긴장한 내 눈과 마주치자 여우의 검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아··· 이제는 어떻게···


그 순간! 묘화의 눈길도 나를 스쳤지만 반응은 달랐다.

미랑은 한 순간 싸움을 잊고 물었던 이빨을 풀어버렸고, 묘화는 반격의 찬스임을 직감했다.


파파팍!

피스톤 펀치 3연타! 묘화의 앞발 가격에 미랑이 쓰러졌다.

묘화는 이제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노려봤다. 고양이 대가리가 싸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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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괴물을 보았다 24.01.02 81 7 14쪽
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6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101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7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102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41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92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44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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