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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3,285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01 18:30
조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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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4쪽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DUMMY

두 번째 입맞춤.


그녀를 또렷이 보면서 나 스스로 다가간 진짜 입맞춤.

우리는 살며시 이어져서 서로만을 느꼈다. 잠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분리돼 있었다. 그리고, 맞닿은 두 사람의 촉촉한 입술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도 눈을 감았는데···,


콰콰쾅!

강렬한 굉음이 작렬했다.

근접 거리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머리칼이 쭈뼛 서고 뒤통수가 시렸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 이 세상이 아닌 황홀한 기분이 한 순간 오싹하게 바뀌었다.

미랑과 나는 동시에 눈을 떴고 방에서 옥,희의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떨어지자마자 옥,희가 거실로 달려나왔다.

미랑은 두 아이를 양팔로 안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이 통한 것처럼 미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엉거주춤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왔고, 두근거림과 아쉬움을 품은 채로 3층 현관을 나와서 나의 옥탑으로 올라갔다.



정전, 암흑 속의 입맞춤, 빛 속에서의 키스, 눈을 감자 작렬한 벼락.

참으로 짧은 시간 안의 놀라운 체험이었다. 나는 쿵쾅대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면서 계단을 올라왔는데,


앗! 옥상 난간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이었다. 음산한 옥상, 서늘한 달빛을 받으면서 한 여자가 난간 위에 위태롭게 쪼그려 앉아 있었다.


“위험해요! 내려오세요.”

긴 머리카락들이 휙 날리면서 여자가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어!”


난간 위에서 흔들리는 여자의 몸이 위태로워 보였는데 어느새 여자는 착, 옥상에 착지해 있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 기괴한 날이군요.”

이건 또 무슨 멘트래? 나를 향해 도도하게 걸어오는 여자는 나를 아는 눈치였다.


“저 기억하시죠?”

그제서야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났던 영 리치가 생각났다.

그때 색안경을 쓰고 코를 붕대로 가려서 얼굴은 제대로 확인 못 했지만 윤곽과 분위기 그리고 음성은 기억이 났다. 옥상 난간에서 내려선 여자는 건물주가 맞았다.


“미랑 언니랑은 많이 친하신가 봐요?”


가까이 다가온 건물주는 실눈을 뜨고 턱을 살짝 내민 채 고개를 틀었다. 마치 내 냄새를 음미하는 것 같았다.


“그래··· 보이나요?”

“왠지 가까이에 오래 계셨던 것 같아서요. 미랑 언니랑.”


무슨 의도의 질문이었을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는 쫌 재수 없어 보이는 시크한 미소를 짓더니 한 손을 살짝 들어 보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건물주가 사라진 다음 나는 난간으로 갔다. 그녀가 앉아 있던 곳에서 그녀가 내려다 보던 아래쪽을 나도 내려다 봤다.

얕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다세대 주택의 마당에서 고양이 여러 마리가 밥을 먹고 있었다. 건물주는 길고양이들이 들어와서 먹을 수 있게 마당에 늘 음식을 준비해 뒀고, 매일 다른 고양이가 담을 넘어 들어와 그 먹이를 먹곤 했다.

그날따라 여러 마리가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서 내려다 보고 있었나? 건물주의 행동을 추리할 때 고양이가 나의 시선을 느꼈나 보다. 한 마리가 나를 올려다 보자, 다른 고양이들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던 노란 고양이가 캬아아오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이상한 건물주에 묘한 집이었다.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피해 옥탑에 들어와서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데 기철이형한테 전화가 왔다.


“술 한 잔 할래?”


낮에 탐문 수사할 때 상태가 안 좋았던 후배가 걱정돼 연락했다는 거다. 그러니 안 나갈 수가 있나. 더군다나 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나서 현실감을 되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술이 땡긴 나는 기철이형을 만났고 뭐 이런 술고래가 다 있나? 기철이형에게 감탄 또는 경악하다가 어느새 필름을 죄다 끊어먹고 말았다.


결국 아침에 눈을 떠서 잠바까지 입고 잠들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기특한 귀소본능 덕에 옥탑까지 무사 귀환해서 다행이었다.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갈 것 같은 몸뚱이를 억지로 끌고 출근하면서 계속 지난밤 술자리의 기억을 소환하려 애썼다. 뭔가 꺼림직한 느낌을 털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기철이형은 특유의 느긋한 말투와 미소 띤 얼굴로 꾸준히 나의 대답을 유도했었다.


“아아, 그랬구나. 그러엄~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다음엔?”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물어보고 뭘 답했는지 기억의 퍼즐이 조립되질 않았다.


경찰서에 들어서니 기철이형은 커피잔을 들고 흡연구역에 서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질문을 시작했다. 어제 내가 무슨 얘길 떠들었는지.


“니가 했던 말 나도 잘 기억 안 나. 내가 남보다 많이 퍼먹지만 남보다 잘 기억하는 건 아냐.”


아예 그게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차 기억 못 하는 얘기, 생각하면 뭐 하냐. 찜찜한 기분은 잊어버리자. 그런데,


“그저 아래층 과부한테 꽂혔는데 그 여자가 북한산 변사자 신호진 부인이다 정도···”


아이고야, 핵심은 다 불었구나. 난감해 하는 내 앞으로 기철이형은 휴대폰을 내밀더니 녹음 파일을 재생시켰다.


“기억은 안 나는데 녹음은 돼 있어. 수사하던 버릇이 있어서···”


참으로 불길해 보이는 휴대전화에서 어젯밤 술자리에서 내가 주절댔던 소리의 일부가 흘러나왔다.


“정전! 완전 암흑! 그런데요, 그 상황에서도 입술이 딱! 이건 운명적이잖아요. 안 그래? 그래요 안 그래요?”


아 쪽팔려라. 내 인상이 찌그러지자 기철이형은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나한테 건넸다.


“니가 다 지워.”

그 즉시 내 손으로 녹음 파일들을 완전히 삭제했다.


“됐지? 끝! 포겟 어바웃 잇Forget about it.”

기철이형은 미국영화 깡패 말투를 흉내내며 쿨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안심이 되질 않았다. 이 양반이 어딘가에 복사본을 남겨뒀을 것 같은 의심이 지워지질 않았다.



그날부터는 집에 들어가기가 대단히 쑥스러워졌다.

느닷없던 키스를 그저 없던 일로 넘길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그렇지만 도무지 판단이 되질 않았고 잊혀지지도 않았다.

근무 중엔 자꾸 미랑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코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일단, 당분간은 미랑과 마주치지 말고 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며칠 동안 집에는 한밤중에 들어가고 꼭두새벽에 나왔다. 3층을 통과할 때는 까치발로 소리 없이 걸었다.

그렇게 집엘 잘 안 가다 보니 시간도 남고 심란해서 동네를 빙빙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미랑이 자꾸 눈에 띄었다. 어디를 가도 툭툭 눈 앞에 튀어나왔다. 어느 골목 어느 귀퉁이에도 다 미랑이 있는 것 같았다.


근린공원에서 운동삼아 전력질주를 할 때는 출발점에서 목격됐던 미랑이 골인지점에서도 보였다. 그런데 눈에 띈 그녀가 진짠가 보려고 막상 가까이 가보면, 미랑은 없었다.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순 없어. 그렇게 빨리 사라질 수도 없어.’


착각이고 환상이라고. 잊지 못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자꾸 착시를 일으킨다고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다가 결국 실수도 저질렀다. 마트에서 맥주 식스팩을 사는데 뒤쪽 청과 코너에 배추를 고르는 여자가 미랑처럼 보였다. 에이 아니야, 고개를 저으면서 급하게 이동해 계산대로 가니 계산대 앞에 미랑이 또 있었다.


‘헛거야. 이건 가짜야.’

잡귀를 쫓을 때처럼 손을 내저었는데 실제 존재하는 육체에 손이 부딪쳤다. 등을 맞고 돌아선 여자는 진짜 미랑이었다.


“지형사님!”


나는 대꾸도 못하고 식스팩을 내버려둔 채 도망쳤다. 마트에서 멀어지면서 생각했다.

나는 미랑에게 홀린 건가?

그리고 홀렸다는 생각 자체도 정신병의 증상인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착시든 착각이든 한 번만 더 희한한 꼴을 보면 곧바로 상담의를 찾아가겠다고 결심을 했다.



식스팩 사건 이후로는 며칠 동안 내 시야 곳곳에 미랑이 출몰하는 현상이 멈춰 있었다.

이제 환상에서 벗어난 걸까 조금은 안심이 되던 날, 당직 때문에 저녁 출근하는 날이었다. 식당가에서 저녁 먹을 곳을 고르고 있는데 톡톡 뒤에서 등에 노크하는 이가 있었다.


“식사하시려고요?”

“아, 예···”


미랑이었다. 막상 이렇게 마주치자 피해야겠다는 결심은 까맣게 잊혀졌다.


“저도 밥 먹고 들어가려던 참인데···”

“아···”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이것도 우연일까? 피할 수 없는 우연일까? 그리고 미랑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어디가 좋을까요?”


미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덮밥집에 들어가서 조용히 테이블 오더를 터치해 주문하고 나란히 앉아서 말없이 밥을 먹었다. 내가 밥값을 내자 미랑이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덮밥집 바로 옆이 카페였다.


덮밥집에 들어갈 때부터 나는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는데, 카페 문지방을 넘을 때는 희망 가득한 청년이 된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데이트인가?’


커피잔을 두고 마주 앉으니 어색한 분위기도 조금 누그러졌다. 점점 밝아지고 있던 나는 ‘밝음’과 관련한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기로 했다.


“옥,희 어머니 댁은··· 어려운 일 겪으셨는데 다행히 집안이 밝으세요.”

“어머··· 이상한 집 같죠?”


미랑은 조금은 씁쓸하게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사람, 아이들 아빠가 마지막엔 집에 잘 안 왔어요. 아이들도 아빠 없는 게 익숙했고요.”


그게 나을 것도 같았다. 가정 폭력범이 집에 잘 안 들어온 덕에 아이들이 명랑한 게 아닐까···


“가정 폭력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보디 블로.”

???

“흔적이 안 남게 기술을 부렸어요. 상처가 안 남는 부위를 조준해서 가격.”


죽은 신호진에 대한 동정심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미랑이 손사래를 쳤다.


“그만. 잊고 싶은 건데 괜히 얘기했네요.”


그리고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쌍둥이 딸의 유치원 무용담, 무상 급식을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의 캐릭터, 내 직장 동료 백형사와 김반장 등등.

별로 극적이지 않고 큰 의미도 없는 스토리들이었지만 흥미로웠다. 대화라는 게 이렇게 즐거운 것인가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아, 경찰서 들어가셔야죠.”

시계를 보니 조금 늦긴 늦은 때였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았나 봐요.”

“아닙니다. 금방 가면 됩니다.”

“저도 애들 친구네 집에 데리러 가야 돼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어나야 했다. ‘혹시··· 동네 여기저기랑, 저희 경찰서 근처를 자주 배회하시나요?’ 궁금했지만 질문할 수는 없었다.

미랑과 나 사이에 묘한 인연이 있다는 믿음, 알면 알수록 미랑이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카페를 나와서 목례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몇 걸음 가다가 미랑이 다시 돌아섰다.


“근데··· 제 이름 아시죠?”

“네··· 구미랑 씨.”

“옥,희 어머니는 좀 그래서요.”



온화하다 · 푸근하다 · 감미롭다 그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밤. 그리고 보름달이 밝은 밤이었다. 휘영청 뜬 달이 나를 간질이면서 가슴 속에 따뜻한 불을 지펴주는 것만 같았다.


‘오호라, 은은한 은빛이 은근히 비추어 은밀한 심정을 은폐할 수가 없도다.’


바람난 조선 선비 스타일의 ‘은’자 랩이 떠올랐다. 그랜파에게 읊어 드리면 칭찬받으려나? 혼자 모자란 놈처럼 실실 웃다가 갑자기, 나는 딱 멈춰섰다.


용근이였다. 이 구역의 또라이 양아치 형제 넘버 투. 먼저 빵에 간 지네 형 상근이를 따라가도록 내가 붙잡아야 하는 용의자. 최용근이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슬슬 걷고 있었다.


“야, 최용근! 거기 서!”


예상 못 했던 일이었다. 거기 서라니까 섰다. 게다가 놈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하기사, 그럴 수도 있지. 자기 형을 잡아넣고 자기까지 붙잡으려고 쫓아다니는 형사한테 악감정이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찌릿!

용근이의 공격 충동이 느껴졌다. 나는 용근이한테 다가가다 말고 흠칫 멈춰 섰다. 용근이가 형 못지않게 재수 없게 씨부렸다.


“쫄았냐?”

“뭐 임마!”


용근이는 안주머니에서 몽키 스패너를 꺼냈다. 아직 출근 전이었던 나는 아무 장비 없는 완전한 맨주먹이었다. 휭! 용근이의 스패너가 내 코 앞을 지나갔다.


“우리 형제한테 왼수졌냐! 왜 지랄이야, 개쉐꺄!”


붕붕 겁나 빠르고 넓게 휘둘러대는 놈의 스윙을 피하다 보니 나와 놈의 위치가 바뀌었다. 내 뒤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주특기 달리기를 살려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


“야야, 정신차려. 너 실수하는 거야.”

“조까.”


쌩하고 날아온 스패너가 피하면서 얼굴을 가린 내 팔뚝에 빗겨 맞았다. 고통을 느끼면서 주춤, 한 발 더 물러서는데 턱에 엄청난 타격감을 느꼈다.

용근이의 앞차기를 턱에 정통으로 맞는 순간 떠올랐다.


‘얘 태권도 선출이랬지.’


눈을 감기 직전에 용근이가 발을 내리고 스패너를 치켜드는 것을 봤다.

의식을 잃은 내 몸뚱이가 풀썩 길바닥에 자빠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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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늘부터 우리는 +4 24.01.03 73 7 18쪽
8 괴물을 보았다 24.01.02 78 7 14쪽
»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1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91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1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96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34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86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35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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