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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3,284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3.12.28 18:25
조회
133
추천
8
글자
14쪽

피살자의 아내

DUMMY

5초나 됐을까?

마주하자마자 내 시각과 청각은 여인의 매력에 침몰해 버렸다. 감각의 이상 때문인지 주변 사물들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어지럼증이 왔다.


휘청거리려는 몸을 고정시키고 티를 내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줬다. 그리고 격렬해진 맥박과 호흡을 안정시키려 심호흡을 한 다음에 여인에게 말했다.


“신호진 씨가 남편이시죠?”

“네.”


불안을 감지한 피해자의 아내,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동시에 두근거리는 내 심장박동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커졌다.


이제 말해야 하는데··· 입술이 바짝 마르는 걸 느끼면서 나는 기철이 형을 돌아봤다. 그는 턱을 들어 시선을 우상향시킨다.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먼 산 바라보기 자세다.


‘니가 알아서 해’라는 신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꼬라지다.

어쩔 수 없다. 다시 시선을 여인에게 돌렸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것처럼 여인의 표정도 나못지 않게 초조해 보인다. 아이고···


“사망하셨습니다.”


여인의 모습이 정지화면처럼 보인다. 숨도 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뱉어진 말이다.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더듬지 않고, 헷갈리지 않고 담담한 척 잘 말했구나. 안도하려는데···


“어!”


기철이형의 놀란 음성과 동시에 여인의 몸이 내쪽으로 무너졌다.

나는 엉겁결에 쓰러지는 여인을 받아 안았다.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이었고, 다행히 내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따뜻한 체온과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가 내게 옮겨졌다.

콧구멍으로부터 두개골 안 우동사리로 그리고 사지 말단의 모든 땀구멍까지 강렬하게 퍼지는 여인의 체취. 나는 전율했다.


119를 부르고, 앰뷸런스에 동승해서 깨어나지 않는 여인 머리맡을 지켰다. 응급실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여인의 입원 수속을 마칠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꿈속처럼 흘러갔다.

병원 로비를 나설 때가 돼서야 겨우 땅을 밟고 현실 속을 걷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미션을 부여하던 할아버지의 음성이 귓전에 생생하게 울려왔다.


‘서울로 가라. 가서 여자를 잡아와야 돼.’



“너는 피살자 아내 구미랑 씨를 만나. 나는 피살자하고 밀렵에 동행했던 사람을 만날게.”


구미랑 씨를 병원에 입원시킨 다음날 기철이형은 역할을 나누어서 용의자를 조사하자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피살자의 배우자는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인 동시에 용의자로 조사대상이 되곤 한다.


“죽은 신호진이 불륜 관계를 맺은 여자가 여럿이고, 가정폭력을 심심찮게 저질렀다는 제보도 있어. 그러니까 배우자한테도 살해 동기가 있는 거야.”

“밀렵 동행인은요?”

“신호진이랑 불륜 관계가 있는 유흥업 종사 여성. 이십대 후반.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니까 당연히 수사해야지.”


구미랑 씨, 피살자의 아내, 쓰러져 내 품에 안겼던 여인을 다시 만나러 간다. 아··· 단 둘이 만난다니··· 강렬한 기대감과 망설임이 동시에 나를 흔들었다.


“저···”

피살자와 동행했던 여자를 만나러 가려는 기철이형의 팔을 붙잡았다.

“제가 동행인 쪽을 맡으면 안될까요?”


뭔가 의심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기철이형은 날카로운 눈빛을 나한테 쐈다.


“왜? 자신 없는 거야?”

기철이형 대신 왠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김형석 반장님이 질문을 던졌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


“피해자 부인이라서 불편해서 그래? 수사관은 그런 감정을 버려야 돼.”

이번엔 기철이형이 나를 달랜다.


그런데 이 양반 능청맞게 심리전을 잘하는 인물로만 알았는데, 켕기는 게 있을 때는 뭔가 티가 난다.

말로는 나한테 불편해하지 말라지만, 내가 보기엔 기철이 형이 불편한 피해자 부인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그럼··· 결국 내가 구미랑 씨를 만나러 갈 수밖에 없는 건가?

첫눈에 나를 흔들어 놓은 여인과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하지 않을 대화를 해야 하는 건가? 머릿속에 구미랑 씨에 대한 생각이 꽉 들어찼다.


굳이 조사 대상을 바꾸자고 말했던 건 초딩 때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괜히 싫은 척하던 것과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 여인을 생각하니까 떨렸기 때문이었고, 그 여인을 수사하면 공사구분이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튼, 구미랑 씨 생각에 꽂혀 있으면서 그렇게 내숭을 떤 거였는데,


“수사하는 거 싫어? 백형사, 쟤 수사시키지 말고 그냥 옆에서 타자치고 따까리나 시키지.”

반장님이 나를 자극했다. 그럴 수는 없지!


“아닙니다. 수사하는 거 좋습니다!”

“좋, 습니다?? 수사를 하면?”

기철이형은 내 마지막 말을 천천히 조금 뒤틀어 발음했다. 뭔가 눈치를 챈 사람처럼 형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기철이형은 같이 경찰서를 나오면서 격려하는 척 자극을 줬다.


“부담스러워 하는 거 이해해. 유가족인 동시에 용의자니까 조심해서 얘기해야지.”

“네.”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 되거든. 피살자가 마누라 패는 걸 봤다는 동네 사람도 있었어. 그리고 피살자랑 그날 동행했던 사람이 유흥업계에서 잘 나가는 아가씨래.”


기철이형이 얘기하는 의도가 뭐든 간에 구미랑의 남편을 생각하자 나는 슬슬 화가 나려고 했다.


“그렇군요.”

“30대 유부남이 20대 유흥업소 풍만한 에이스 언니랑 사냥을 다녀. 노루피 같은 거 먹으면서. 그래서 뭔가 스태미너가 생기면 뭐 할까? 수렵 현황에 대한 토론?”

“그런 건 아니겠죠.”

“남편이 그러고 다니면 완전 꼴도 보기 싫을 거야. 그치?”


갑자기 내가 핍박받는 아내가 된 것 같았다. 불끈불끈 분노의 에너지가 내 안에서 솟구쳤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여자가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인간적으로 욕할 필요는 없어.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어. 하지만 사실 관계는 밝혀야지. 우리 일이니까.”


설득이 되는 기분이었다.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잘못된 선택이 있었더라도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겠다는 갸륵한 마음이 내 안에서 퍼져갔다.



병원으로 찾아가니 구미랑은 어느새 퇴원 절차를 밟고 있었다.

원무과 앞 데스크에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던 그녀는 앞에 서 있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인 다음 명함을 건넸다.


“담당 수사관이시군요.”


단지 아홉 음절이었다. 별 의미가 담긴 말도 아니었는데 그 아홉 글자가 뭐라고···나지막한 음성이 나의 폐부를 시리게 파고들었다.

나는 또 잠시 얼어붙어서, 초췌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은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경찰서로 가야 되나요?”

“아, 아뇨. 그냥 몇 가지만 대답해 주시면···”


구미랑은 유치원생인 쌍둥이 아이들을 친구집에 맡겨뒀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필요한 핵심을 피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대화를 이끌겠다고 결심하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병원 로비의 카페에 마주 앉으면서 속으로 질문의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제일 중요한 것, 사건 발생 시점의 부재증명 즉 알리바이 확인만 되면 오늘 밥값은 한 거라고 생각했다.


“산에 있었어요. 북한산.”


등산객이 비명을 듣고, 쓰러진 신호진을 발견했던 시간에 어디 있었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북한산!

신호진이 죽은 그 산에 있었다니······.


“헉··· 산에는 웬일로···”

침착하겠단 결심이 초반부터 흔들렸다. 다행히도 조사를 받는 구미랑 씨는 수사관보다 훨씬 침착했다.


“전날도 외박을 했었어요.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어디냐고 물어봤죠.”


나는 긴장을 감추려고 커피를 들이켰다.


“산에 간다면서 짜증을 내더라고요. 옆에서 여자 웃음소리가 들렸죠.”

“어떤 여자인지 아시고 계셨나요?”


부재 증명과는 관계 없는 질문을 던졌다.

구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입에 대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녹아서 커피색이 옅어지고 있었다.


“어느 산,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더니 전에 애들 데리고 같이 갔던 데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끊어버렸어요.”


구미랑은 잠시 진술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스피커폰이었나봐요. 옆에 있던 여자가 끊어 오빠 어쩌고 하는 게 다 들리더라고요.”


나쁜 놈. 아무리 바람이 났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그래서 가족끼리 갔던 삼관사 옆 등산로에 가봤어요. 가본다고 만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답답한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게 몇 시쯤이었죠?”


등산객이 신호진의 비명을 들은 시각이 8시 30분이었는데, 구미랑이 삼관사 등산로로 들어섰을 때도 그 즈음이라고 했다.


삼관사는 신호진이 사망한 천진초등학교 쪽 등산로와는 거리가 좀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삼관사 등산로 입구와 신호진 사망 지점을 확인했다.

내가 가본 적은 없는 곳이었지만 산길을 걸어서 두 지점을 왕복하려면 3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10분? 15분? 그 정도 산길에 있다가 도로 나왔어요.”

“왜죠?”

“밤중에 산속이잖아요. 깜깜하고 사람도 없었고 남편도 당연히 안 보였고요. 답답해서 무작정 오긴 했는데 여기서 찾아 헤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었어요.”


말을 마친 여인은 긴 한숨 끝에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검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연히 휴대폰을 들고 고개를 돌렸다.

눈물 짓는 구미랑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챙기고 부검 결과가 나온 후에 장례도 치러야 하는 구미랑을 오래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나는 먼저 등산로 주변의 CCTV를 확인하러 갔다. 등산로 앞 주차장과 등산로 입구와 공원 관리소의 사건 당일 CCTV 파일을 받아서 경찰서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부터 사무실 PC 앞에 앉는 순간까지 나는 초스피드로 움직였다. 수많은 동료 선배 직원들과 어깨를 스치면서도 아는 척을 무시했다.

한시라도 빨리 영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보름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국립공원 등산로 입구. 하산하는 등산객 한둘만이 오가는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 눈에 확 띄는 사람이 나타났다.

하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딱 붙는 황토색 쫄바지? 아니 레깅스, 그리고 헐렁한 오버핏의 붉은 스웨터를 입은 구미랑이었다.


아, 낮은 탄식을 뱉으면서 나는 의자를 당겨 모니터 앞으로 눈을 접근시켰다. 일단··· 구미랑이 갖고 있는 건 손에 쥔 휴대폰밖에 없었다. 구미랑이 입은 옷에는 주머니도 없었다.

사망자 신호진의 상처에서 추론할 수 있는 흉기, 발톱을 닮은 갈고리, 이빨을 닮은 송곳 같은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저리도 신축성 있는 소재로 몸매를 드러내는··· 섹시한 차림을 한 것인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레깅스와 스웨터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육감적인 몸매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남편을 잃은 여인, 크나큰 비극을 맞이한 아내인데···


그러면서··· 내가 상경한 목적이 새삼 떠올랐다. 가문이 내게 준 미션이 여성을 패밀리에 편입시키는 것임이. 그리고 피해자의 아내도 여성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뇌리에 각인됐다.


‘안 돼, 안 돼.’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 일단 형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었다.


CCTV로 확인한 구미랑의 행동 시간은 진술과 별 차이가 없었다. 8시 21분에 삼관사 등산로로 들어가는 게 찍혔고 35분에 나오는 게 찍혀 있었다. 구미랑의 말대로 정말 14분만에 내려온 거였다.

그리고 삼관사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서 귀가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14분만에 구미랑이 산길을 이동해서 피해자를 해치고 돌아올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제는 직접 산길을 가봐야 했다. 나는 곧바로 경찰서를 나와서 산을 향해 달려갔다.

삼관사 등산로로 들어가서 사건현장까지 산길을 천천히 답사한 다음에 최단 코스를 찾아봤다. 그 다음에 최선을 다해서 전력질주로 왕복해 봤다. 손목이 긁히고 점퍼가 찢길 정도로 정신없이 달렸음에도 25분이 걸렸다.


구미랑이 산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14분이었다. 중간에 헬기를 타거나 초대형 드론에 매달려 가지 않으면 살해하고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었다.


신호진 시신을 발견한 등산객이 최초 신고전화를 한 시간은 8시 32분, 휴대전화를 걸면서 달려나와 천진초 입구 CCTV에 찍힌 것이 8시 34분이었다. 구미랑은 8시 35분에 삼관사 등산로에서 나와 CCTV에 찍혔다.

두 장소를 산속 지름길로 주파하는 데 내 최고 스피도로도 12분이 넘게 걸린 거리였다. 구미랑이 신호진을 만난 다음에 삼관사 쪽으로 나온다는 것은 완벽하게 불가능했다. 인간이 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아니야! 절대 그녀는 아니야!

구미랑의 알리바이를 확인한 나는 한순간에 기분이 확 좋아졌다.


“오케이! 됐어!”


내 입에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정말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전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놔, 왜 이러지!


작가의말

 kk11jeus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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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0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91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1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96 7 12쪽
»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34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86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35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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