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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3,462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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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아내의 참모습

DUMMY

묘화는 싸늘하게 나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미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강자를 제압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이 시점에선 미랑이 나보다 훨씬 강하니까···.


엄청난 강도의 냥펀치 연타를 다시 날렸다. 미랑의 머리통이 흔들렸다.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았다.


‘이대로면 위험한데··· 나 때문에 방심을 했다가···’


묘화는 마지막 필살기를 날리려고 시도했다.

옆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며 꼬리로 미랑의 목을 감았다. 앞다리로 굵은 나뭇가지를 감싸 안고 뒷발의 발톱은 나무 줄기에 박아놓았다.

꼬리로 미랑을 감고 나무 위로 그렇게 올라가자 목이 감긴 미랑의 몸이 땅바닥에서 떠올랐다. 이대로 두면 고양이 꼬리에 감겨서 미랑은 교수형을 당하는 꼴이 될 거다!


“안돼! 그만!”


나무에 몸을 감은 채 묘화가 나를 돌아보면서 찌르듯이 울부짖었다.

“캬오오오!”


권총도, 가스총도, 삼단봉도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게 후회됐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주먹만한 돌을 집어서 묘화에게 던졌다. 퍽! 고양이 대가리 바로 옆 나무 줄기에 돌이 맞고 떨어졌다. 다시 한 번 날린 돌은 꼬리 바로 위에 맞았다.

묘화가 움찔하고 반응하자 꼬리가 풀렸다. 그리고 미랑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랑 씨!”


여기서 이름을 부르는 게 적절한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미랑을 정신차리게 하는 게 급해 보였다.

다행히 미랑은 눈을 떴는데 문제는 당연히 묘화였다. 이번엔 돌을 던진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앞발을 쳐들고 날아드는 고양이를 피하려고 나도 몸을 던졌다.

앞발 공격은 피했지만 뒤통수를 꼬리로 강타당했다. 띵! 튀어 오른 강철 스프링에 충돌한 듯한 통증! 순간 멍해지면서 사방이 고요해졌다. 눈앞에 황사가 가득 끼고 모든 게 정지한 것 같았다.


안 돼! 정신차려야 돼. 무조건 몸을 구르면서 움직였다. 어디서 날아올 줄 모르는 공격을 피하려고.

그런데 고개를 드니 눈 앞에 고양이 인간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내가 아무리 산에서 빨리 움직인다 해도 저것보다 빠를 순 없다. 이제 저것이 나를 덮치면···

체념인지 결심인지 이를 악물었다. 그때,


“크아아오”

나와 묘화 사이에 날아들어 착지하는 존재가 있었다. 재주넘기의 달인. 인간사회에서 체조 코치를 하는 여우 인간 미랑이었다.

파바밧! 근접 타격전! 미랑과 묘화는 순식간에 여러 펀치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묘화가 뒷걸음질쳤다.


“끼야아옹!”

묘화는 앞발로 피가 엉겨 있는 자기 어깨를 주물렀다.

아까 미랑이 던진 나뭇가지에 찔렸던 부분이 아픈 모양이었다. 나뭇가지가 창처럼 꽂혔던 것에 비하면 큰 상처는 아니었다. 솟던 피도 금방 멈춰 있었다.

운동능력만큼이나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크르으르르···”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지만 조금 전보다는 분노가 식은 것 같았다.

묘화는 터덜터덜 물러서더니 미랑과 나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괴물 같은 쇳소리와 인간의 음성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크으으··· 좋겠네··· 같은 편 있어서.”


우리 둘이 꼴보기 싫다는 듯 살짝 돌아선 묘화의 자세는 토라진 고양이의 모습 같았다.

그리고,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짐승의 모습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얼굴을 덮은 털이 짧아지고 뾰족이 솟았던 귀도 둥글게 줄어들었다.


“이 대 일이잖아. 치사하게.”

음성은 완전히 인간 황묘화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 눈동자가 길쭉하고 낚싯줄 같은 흰 수염이 손가락 길이만큼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묘화는 매우 인간적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


“둘이 어울려. 털 나고 꼬리 달린 마누라. 꼬라지가 천생 연분이네.”

미처 인간으로 완전히 복귀하지 않은 채, 삐진 묘화가 자리를 떴다.

다행히 뒷모습에 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니야아아아아옹!”

나무 숲으로 들어가면서 묘화가 일부러 고양이 소리를 크게 냈다.

어쩌라고? 어쩔 건데? 중2병 청소년의 삐뚤어질 테다 샤우팅 같았다.



그리고 둘만 남았다. 고양이한테 얻어터진 남편. 털 나고 꼬리 달린 마누라.

벨트를 채운 바지를 입어서 꼬리가 튀어나오지 않은 건 다행이었을까? 묘화는 원래 형태로 반쯤 돌아온 다음 가버렸지만 미랑은 아직 변신 괴물 그대로였다.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 보기가 매우 괴로웠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미랑이 내 쪽으로 돌아섰다. 내 특별한 마누라는 울고 있었다.

개나 소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적은 있었다. 죽으러 팔려 갈 때나 가족과 헤어질 때 알아채고 그렁그렁한 눈물이 넘치는 장면.

하지만 사람 옷을 입은 사람보다 큰 여우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털이 북숭북숭한 앞발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 이런 거 상상해 본 사람 과연 몇 놈이나 될까?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비실비실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뭐라 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울고 있는 여우 인간을 뒤로 하고 돌아서서 서너 걸음 걸었는데 미랑의 앞발이 내 손목을 잡았다.


‘이 여자가 남자 손목을···’

터프하게 뿌리칠 작정이었다. 그러나 내 손목을 움켜쥔 강력한 악력! 미동도 없이 버티는 무시무시한 근력!

200킬로그램 넘는 데드리프트를 시도했다가 꼼짝도 않는 철봉을 느낄 때와 똑같았다.


“주성 씨···”

무지무지하게 힘이 센 아내가 내 뒤에서 애처롭게 나를 불렀다.


‘아, 이거 힘없이 돌아서면 상당히 쪽팔릴 텐데?’

그러나 돌아서야 했다. 쇳덩이 같은 팔뚝이 나를 잡아당겨서 돌려 놨으니까.


“여보···”

아이고머니나··· 시뻘건 눈에서 눈물을 떨구면서, 툭 불거진 주둥이를 벌려서 살벌한 송곳니를 보여주면서, 칼날 같은 발톱 달린 털북숭이 앞발로 내 손목을 잡고서···

‘여보’라고라? 어떻게 이런 시츄에이션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아직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나에게 미랑이 질문했다.

“왜 날 도와줬어요?”

나는 뭐라 답을 못 했다.


“나 목 졸릴 때 도망갔으면 되는데 왜 덤볐냐고요?”

“박···”

박애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무서워서.


“자연···”

또 위태로운 발언이 새 나오다 멈췄다.

자연친화 사상 때문에? 만물에 신이 깃들었다는 세계관 때문에? 여우 토템을 숭배해서?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왜 도왔냐고? 몰라. 이렇게 희한한 판을 벌여놓고 나보고 답을 하라고? 반발하고 싶었지만 역시 겁이 나서 못했다.


나는 미랑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우물쭈물 고민만 하고 있었다. 아내의 질문에 진지하게 응하는 게 옳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지금은 진실한 대화가 필요한 상황인데, 아내는 본 모습을 다 보여줬는데··· 나도 솔직한 감정을 밝혀야 하지 않나?’


머릿속에서 타고난 이기주의와 학습된 이타주의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 솔직하게 말을 해? 말을 못 하는 게 사실은 상대를 배려하는 거라고.’


나는 미랑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고민만 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꼴이라서 못 쳐다보겠어요?”

“아니··· 나는 당신이 그냥 인간인 줄만 알았는데··· 보통 한국사람, 평범한 시민···”

“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돼 있어요.”


미랑의 조용한 항변이었다. 내 입장에선 지금 그게 중요하질 않았다.

“여기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자랐어요?”


미랑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인간으로 살고 있고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과거가 더 중요한가요?”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라? 오 마이 갓. 내가 웬만한 과거라면 얘기를 안 하지. 욱하는 심정이 살짝 튀어나왔다.


“나한테 미안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보고 어쩌란 거예요. 도대체···”


미랑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표정 근육이 인간보다 덜 발달한 여우의 대가리였지만 정색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네요.”

빠드득, 이빨을 부러뜨릴 듯이 미랑이 이를 악물었다.


“오늘 유치원 당신이 데리러 가요. 그리고 애들 감기약 시럽 TV 아래 서랍에 있어요.”

내게서 돌아서면서 미랑이 말했다. 이 무슨 가정적인 대화란 말인가···


미랑은 나를 남겨 두고 숲속 빈터를 떠났다. 가 버리던 그 시점에서야 미랑은 내가 알던 원래 - 뭐가 ‘원래’인지는··· 모르겠다··· 절레절레 – 모습으로 돌아왔다. 쫌··· 진지한 얘기할 때 미리 인간 형상이 됐으면 얼마나 좋아?



천재지변이든 호환마마든 전쟁이 나든 유치원에 옥,희 데리러는 가야 했다. 그리고 반장님한테 약속한 대로 오늘 할 서류 정리도 마쳐야 했다.

기철이 형한테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결심했다. 아마 내 연락이 없으면 눈치챌 것 같았다. ‘주성이 마누라도 마찬가지였구나’라고.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미랑 친구 천연호 씨한테 옥,희를 맡기긴 싫었다.

할 수 없이 유치원에서 경찰서로 직행했다. 반장님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지만 결국 옥,희의 놀이 파트너가 됐다.

나는 돌아와서 일을 마치겠다고 했지 아이들을 안 데려오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어, 워킹 대디는 뻔뻔해야 했다. 다행히 강력반에 흉악범은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교육상 안 좋겠지만 옥,희에게 거짓말로 둘러댔다.

엄마가 체육관에서 가르치는 언니가 재주 넘다가 심하게 다쳤는데 엄마가 며칠 동안 간호해주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고.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불안해 하는 티가 났다.


옥,희를 재워야 할 시간이 됐을 때 미랑한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아이들 걱정이 돼서 건 거였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옥,희가 옆에서 알아보고 샤우팅을 시작했으므로 딱히 변명을 위해서 미랑과 말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옴마, 체육관 언니가 다쳤다면서요!”

“집에 몇 밤 못 오면 옴마 쓸쓸하겠다요!”


아이들과 영상통화가 끝나자 전화는 내게 돌아오지 않고 바로 끊어졌다. 옥,희는 엄마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자 많이 안심이 된 것 같았다.

두 아이가 잠들자 미랑이 문자를 보내왔다.


‘이제 휴대폰 꺼놓을 거예요. 괜히 추적하지 마요.’


누가 궁금하댔나? 추적할 생각도 안 했는데 웬 오바? 이건 주부 가출 사건인가? 아이들 때문에 이대로 오래 버티긴 힘든데, 찾아야 되나? 이 여자가 양육도 포기하고 잠수를 타겠다는 건가?

이 생각 저 생각 관점이 통일되지 않은 여러 생각들이 오락가락했다. 그리고, 전날도 거의 밤을 새운 처지라 황당한 밤이었지만 내 눈이 감겼다.



아내 가출 2일차.

오전에 정신없이 급한 일들을 몰아 해치우고, 점심을 먹고 나서 탐문 수사를 핑계로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미랑의 친구들을 만나서 ‘짐간’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 다음에 사기 결혼이라고 변호사를 만나든 기철이 형이랑 같이 수사를 하든 마음을 정해야 될 것 같았다.


먼저 찾아간 곳은 마종대의 포장마차였다.

이른 시간이지만 포장을 친 리어카는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식재료를 사들고 오는 건장한 사내가 보였다. 챙 넓은 모자와 굵은 금속 목걸이 통 넓은 힙합 바지를 입은 마종대.


“이봐요. 종대 씨.”

말상의 얼굴 길쭉한 사내는 나를 보더니 슬슬 피했다.

“잠깐만요. 종대 씨··· 종대 씨! 마종대!”


아, 이런 된장! 붙잡으러 온 거 아닌데··· 경찰이 뭘 물어보러 오면 일단 도망가는 바람에 의심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아니 뭐 좀 물어 보려고!”

“나중에요! 지금 바빠요!”


마종대는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가 뛰기 시작한다. 그럼 형사들은 본능적으로 쫓아간다. 게다가 나도 달리기엔 자신이 있다. 도시의 평지에서도 남들보다는 낫다. 그런데!

마종대, 무척 빠르다. 다가닥다가닥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 같다. 나는 말에서 변신했음이 분명한 자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야! 마차도 끌고 가! 이 말대가리 새꺄!”

아니면 아예 과천 경마장으로 이사를 가든지···.



그 다음으로 찾아간 건 당연히 천연호 씨였다.

황묘화는 작정하고 나를 피할 테니까 이 타이밍에 만날 사람은 이 사람뿐이었다. 보람차게 동화구연을 마치고 나와서 자기 차에 타려는 천연호 씨 앞으로 내가 다가갔다.


“어머··· 주성 씨.”

“안녕하셨어요?”

“미랑이 때문에 오셨어요?”

천연호 씨는 사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끼리 문제는 당사자가 만나서 푸셔야지. 왜 저를 찾으시죠?”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미랑이랑 같은 처지시니까···”

천연호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와 다르게 단호하고 매몰차 보였다.


“아니에요. 인간이에요 난. 완벽한 인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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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괴물을 보았다 24.01.02 81 7 14쪽
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7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102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8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103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42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93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46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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