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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3,282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08 18:25
조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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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허니문의 뒷면

DUMMY

결혼식이 끝난 다음엔 또 옥,희를 뒤에 태우고 강원도 고향집으로 차를 몰았다. 신혼여행 가는 길에 아이들을 할아버지께 맡기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자고 미랑에게 제안했었다. 미랑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노No예요. 절대 안 돼. 일정을 줄이더라도 맡기고 가는 게 맞아요.”


그래서 천연호 씨한테 옥,희를 부탁할까 했었는데, 고맙게도 아이들이 ‘왕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옥,희는 증조할아버지 즉 내 할아버지를 왕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발랄한 쌍둥이는 왕할아버지와 금방 친해진 사이였다. 할아버지, 즉 내 아버지랑은 피차 서먹서먹했다.


“왕할아버지랑 노는 거 완전 좋아요!”

“왕할아버지 어린이 네이웃도 완전 잘한다요. 께임 대장이야요.”

“인형 옷 입히기도 잘하고 쿠키 굽기도 잘해요.”

“그냥 할아버진 잘 못해요. 안 할라구 그런다요.”


시골집에 풀어?놓자 옥,희는 왕할아버지한테 달려가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어, 어험··· 옥,희 할아버지인 내 아버지는 공연히 헛기침이나 하면서 먼 산만 봤고.


아이들을 맡긴 다음 미랑과 나는 본격 허니문에 돌입했다.

우리는 산맥을 넘어 동해안으로 가서 바닷가 7번 국도를 타고 부산에 갔다. 부산에서는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로 건너갔다. 돌아올 때는 역시 배로 목포에 내려서 서해를 따라 상경하는 코스였다.

전국 가장자리 일주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나라의 중심에 계신 바다 없는 충청북도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나중에 들르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휴대전화도 끄고 다녔다. 저녁에 산골에 있는 옥,희랑 통화할 때만 전화를 켰다.

내가 그렇게 세상 일 잊어버리고 신혼여행에 빠져 있을 때도 당연히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을 하는 형사가 있었다.


* * * * * * * * * * * * * * * * * * *


백기철 형사는 후배 지주성의 결혼식 내내 기분이 편치 않았다.

나이 어린 후배가 먼저 장가가는 것이 주 원인은 아니었다. 난 반댈세 티를 냈던 신부를 주성이 맞이한다는 것도 별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한 찐 원인은 신부 측 하객이 수상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형사는 미랑의 남편 심장을 멎게 한 존재와 최용근을 공포에 질리게 한 존재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건이 주성과도 연결됐다고 추측했다. 정확하게는, 주성의 아내 미랑과 그녀 주변인물에게 강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주성을 문병 갔다가 1층에서 말다툼 소리를 엿들었을 때부터 거의 확신을 하게 됐다. 불분명한 대화 내용이었지만 미랑의 친구 황묘화는 강한 공격성을 드러냈었다.


‘분명히 뭐가 있을 거야. 신부 친구 중에 정체를 숨긴 존재가 있어.’


축가를 부르면서도 백형사는 남다른 집중력으로 하객들의 표정을 살폈다.

백형사가 나름 몸을 아끼지 않고 슬랩스틱 코미디를 했는데도 인상이 굳은 하객이 있었다. 의심하는 눈초리로 백형사를 노려보는 황묘화!

그 눈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백형사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축가 메들리의 끝부분 ‘다행이다’를 맥없이 부른 건 그 때문이었다. 후배가 먼저 장가간다고 일부러 대충 부른 게 아니었다.


그리고 단체 사진을 찍으면서 황묘화가 놀라운 점프력으로 부케를 잡아냈을 때 그는 확신했다.

‘분명해! 저 여자는 신호진 사망, 최용근 체포 사건과 관련이 있어!’


결혼식 비디오를 구한 백형사는 영상 분석을 의뢰했다.

확인 결과 황묘화의 서전트 점프는 국가대표 배구 선수들보다도 높은 1미터 가량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때 황묘화는 치마를 입고 구두를 입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인간의 능력이 아닌데···”

“영상이 정확하다면··· 올림픽 금메달쯤은 껌인데요.”


그래서, 결혼식이 끝난 다음부터 백형사는 황묘화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없이 혼자 살고 있고 가입한 종교 사회 단체도 없고 원한을 사거나 큰 갈등을 빚은 일도 없다. 전과 없고 벌금 · 과태료 · 연체 · 체납도 없었다.


‘기록상으론 깨끗하군.’


직업은 스턴트우먼. 동시에 무명 무술 배우였고 간단한 배우 대역도 하고 있었다.

백형사는 황묘화가 속한 액션 팀에 취재인 척 전화해서 일정을 알아냈다. 그리고 퇴근 후에 짬을 내서 촬영 장소로 달려갔다.

호기심과 묘한 기대감 때문에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격투 중에 이층에서 유리창을 뚫고 몸을 날려 도망치는 씬이었다.

감독의 액션 신호가 떨어지자 대형 슈가 글래스를 박살내면서 황묘화가 점프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틀어 두 발을 지면으로 향했다.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어깨로 구르는 회전 낙법으로 착지! 유연하고 가뿐한 동작이었다.

유도 유단자인 백형사가 보기에 대단한 낙법 실력이었다.


‘충격을 최소화하고 매끄럽게 체중 이동을 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능숙한 낙법 동작보다 더 훌륭하게 느껴진 건 황묘화의 태도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긴장은커녕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얼굴이었다.


그 다음날 밤에는 황묘화의 집 – 주성과 미랑의 집이기도 한 – 앞에 차를 대 놓고 잠복하면서 집안을 살폈다.

얕은 담장을 넘어서 고양이가 한 마리 두 마리 저녁을 얻어 먹으러 마당으로 들어갔다. 백형사가 확인한 것만 다섯 마리였다.

집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담장이 가로막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마당엔 고양이가 더 있는 것 같았다.


드르륵, 1층 창문이 열리는 게 담장 너머로 보였다.

황묘화가 마당을 내다 보더니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고양이들이 몇 칸의 계단을 올라가 1층 현관으로 들어갔다.


‘짧은 휘파람 한 번인데··· 길고양이들인데···’


철컥, 1층 황묘화의 집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들이 니야옹 니야옹 반가운 인사처럼 울어댔다.

마당에 있다가 1층으로 들어간 고양이는 열 마리가 넘었다.


기묘한 체험은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다음날도 백형사는 황묘화의 집 앞에서 잠복했다. 자기 차를 전날처럼 또 세워 놓으면 눈에 띌 것 같아서 경찰서 관용차를 타고 있었다.

전날과 달리 담장을 넘어가는 고양이도 휘파람을 부는 황묘화도 보이지 않았다. 1층 창문에는 불빛도 없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는 건가?’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다가 헉! 튕겨 나가는 것처럼 몸을 젖혔다.

녹색과 검은색이 섞인 눈동자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둠 속의 눈 하나! 정면에서 백형사와 눈이 마주친 건 애꾸눈 고양이였다. 러시아에서 기원했다는 날씬한 돈 스코이 종 고양이가 백형사를 빤히 쳐다봤다.


‘어 깜짝이야! 언제 기어 올라온 거야?’


쪼그만 고양이 따위에게 겁을 먹으면 안 되지···. 백형사는 자세를 바로 잡으면서 보닛(본네트)에 올라앉은 고양이를 관찰했다.

맨살처럼 털이 없는 회색 몸, 삼각형 얼굴 위로 뾰족하게 치솟은 귀, 양 끝이 날카로운 아몬드 모양 눈은 하나뿐이었다. 상처 입은 한 쪽 눈은 굵은 주름이 잡힌 채 감겨 있었다.

음산한 느낌이었다. 털 없는 애꾸눈 고양이가 소리 없이 보닛에 올라와 백형사 정면에 도사린 거다.


‘어 그놈 진짜 분위기 안 좋네. 섬뜩해. 딱 용의자 관상이야···.’


백형사가 속으로 인물평을 하자 고양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차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부드럽게 담장을 넘어 황묘화의 집으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백형사가 담배 한 대를 피울까 말까 고민할 때 현관문이 열렸다.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던 불빛 없는 집에서 황묘화가 나왔다.

동네 마트라도 가는 것처럼 편한 차림이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통이 넓은 치마를 입고 삼선 슬리퍼를 끌고 있었다.


백형사도 조용히 차에서 내려서 미행을 시작했다.

황묘화는 앞만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고개가 고정된 것처럼 전혀 두리번거리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똑바로 전진했다.

덕분에 백형사는 거리를 두고도 어렵지 않게 뒤따를 수 있었다. 그러다가···, 황묘화가 멈춰 선 곳은 특별한 장소였다.


‘저기는! 최용근이 체포된 장소!’


주성이 스패너에 맞아 죽을 뻔했고, 최용근이 괴존재에게 협박당했던 골목으로 황묘화가 들어가고 있었다.


‘범인은 범행 장소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옛날 형사들의 격언이 떠올랐다. 백형사는 황급히 골목으로 쫓아 들어갔다.

그런데 황묘화는 없었다. 골목의 집들에서도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백형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선 채로 제자리를 뱅뱅 돌며 골목 안을 살폈다. 한 집 한 집 들어가서 탐문을 해야 되나? 생각하는데,


휙! 바람과 함께 뭔가 날아왔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자기를 향해 떨어지는 존재가 보였다.

티셔츠와 치마를 입은··· 그러나 사람이 아니었다!

소매 밖 치마 밖으로 노란 털이 수북한 발톱 달린 발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얼굴, 아니 대가리는 뾰족한 귀에 긴 수염이 팽팽한 고양이였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아주 잠깐 백형사가 얼어붙었는데,


타다닥! 벌새의 날갯짓처럼 재빠른 앞발 연타가 백형사 얼굴을 갈겼다. 기습에 당한 백형사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안 돼!’


넋 놓고 있다간 큰일 당할 거라고 느낀 백형사, 뒤로 굴러서 일어나면서 주머니에서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캬아아악! 고양이 인간이 날카로운 소리로 우짖었다. 아래 위로 길쭉한 눈동자가 분노의 불빛을 뿜었다.

앞발을 치켜들고 달려오는 고양이 인간은 백형사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백형사는 뒷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이기려고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에 몸이 떨렸지만 싸워야 했다.


“악!”

세찬 기합과 함께 힘껏 삼단봉을 휘둘렀다.

훌쩍 고양이 인간이 삼단봉 스윙 위로 뛰어올랐다. 뒷발이 백형사 머리칼을 스치면서 고양이 인간이 서 있는 백형사 뒤로 넘어갔다.


‘놈이 등 뒤로 갔다!’

백형사가 돌아서려는 순간 삼단봉을 쥔 손이 강한 힘에 딸려갔다.

들춰진 치마 밑으로 튀어나온 길다란 고양이 꼬리가 삼단봉을 잡아챘다. 땡그랑! 삼단봉이 골목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고양이 인간이 백형사를 깔아 뭉갤 듯이 점프해서 덮쳐왔다. 반쯤 돌아섰던 백형사는 고양이 인간을 등지면서 날아오는 앞발을 잡았다.


업어치기! 유도 유단자 백형사의 기술이 제대로 걸렸다.

‘됐어! 보냈다!’


힘껏 집어던진 백형사는 고개를 들었다. 착! 고양이 인간이 너무도 스무스하게 착지했다.

아니··· 그러나 경악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먹이를 향해 점프하는 표범처럼 고양이 인간이 몸을 쭉 뻗으며 날아왔다.

그 앞발에 가슴을 채이면서 백형사는 쓰러졌다. 뒤통수가 깨질까봐 몸을 틀면서 왼팔로 땅바닥을 짚었다.


“우지끈!”

너무 강력한 충돌이라 낙법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왼팔에서 강렬한 통증이 왔다. 부러진 게 분명했다.

으윽,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데 이번에는 강펀치가 머리통을 강타했다. 팔이 불편해서 땅을 짚지 못한 백형사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빡! 턱이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다. 죽음의 공포가 백형사를 엄습했다.


부러진 왼팔 쪽으로 몸을 굴렸다. 팔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고양이 인간에게서 멀어지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억, 캑···”

고양이 인간은 꼬리가 길었다. 그 꼬리가 백형사의 목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구렁이가 먹잇감을 질식시키듯이.


“큭, 크큭···”

고양이 꼬리가 이렇게 단단했나? 굵은 철근이 목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백형사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벌게진 얼굴에서 눈이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면 질식하기 전에 졸린 목이 끊어질 것 같았다.


‘아, 아, 안 돼···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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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0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91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1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96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33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86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35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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