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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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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9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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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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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오늘부터 우리는

DUMMY

여섯 시간이 넘게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잤다.

미랑이 문을 두들기기 전까지는 평생 못 겪어본 버라이어티하고 그로테스크한 꿈에 시달렸는데, 미랑이 나를 누인 다음의 잠은 최고로 달고 편안했다.


나는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 지독한 고열과 몸살을 앓았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와서 옥탑에 쓰러졌을 때 옥상에서 놀던 옥,희가 내 잠꼬대와 신음을 듣고 엄마를 불러왔다고 했다.

미랑은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와서 미랑은 나한테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체온을 낮추고 잠자는 내 옆을 지켰다.


도움받고 위로 받아야할 사람은 미랑인데, 오히려 내가 미랑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내가 고열과 몸살을 앓는 동안 내 방은 훨씬 정갈해졌다. 물건 하나 찾을 때마다 발굴과 갈아엎기를 해야 했던 공간이 수납의 왕 프로그램에 나오는 방처럼 변했다.

나는 골방에 널부러진 환자가 아니라 vvip 병실에 쉬러 들어온 재벌같이 스페셜 케어를 받았다.


미랑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나보다 먼저 알고 해결해 주는 우렁각시였고 수호천사였고 키다리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훈훈한 햇살을 불러와서 내게 쪼이고 있었고, 포근한 기운이 내 옥탑을 감싸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다음에 나는 감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내 감동은 당연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건 내가 생후 24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라고 했다.

다섯 살 때까진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후엔 산골 동네의 이웃 아주머니들이 나를 안쓰러워 하면서 잘 챙겨줬고, 고모가 -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사촌 누나, 할아버지 형님의 딸 – 옆 동네에 살면서 자주 들러서 보살펴 줬지만 엄마 있는 애들이 체험하고 느꼈던 아주 많은 것들을 건너 뛴 건 사실이었다.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날 즈음에 미랑이 끓여온 죽을 먹을 때였다.

맛있다는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맛이 좋았다. 너무 좋은 티를 내기가 쑥스러워서 급하게 떠먹다가 목이 메었다.

목이 메면 눈물이 솟는 법.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간발의 차이로 참아냈다. 미랑은 잠깐 움찔하는 나를 걱정했다.


“괜찮아요? 물 줄까요?”

“괜찮습니다. 잠깐 목이 메어서요.”

“너무 특별해요.”

“네?”

“미랑 씨 같은 사람이 없었어요.”

“아···”


그리고 나는 미랑의 손을 잡았다.

그 동작이 내 30년의 삶에서 가장 용감한 행동 같았다. 결정적이고 뭔가 멋있는 한마디를 해야 할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험험험.”

소리도 없이 들어온 기철이형이 문 앞에 서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아놔 저 인간! 깜짝 놀람과 동시에 나는 분노의 레이저를 눈으로 쐈는데,


“문이 열려 있길래··· 험험험···”


나는 죽상이 됐고 미랑은 죽사발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좀처럼 죽상을 펴지 않자, 친히 문병을 와주셨다는 기철이형은 일단 경찰서 얘기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기철이형은 나랑 마찬가지로 용근이가 본 괴존재와 신호진 사망사건의 연관을 의심하고 있지만 반장님은 엉뚱한 생각 말라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서장님이 꽂힌 데가 있다는 거였다. 조폭이라면 치를 떠는 서장님의 요즘 관심사가 늑대파라는 놈들인데 걔네가 우리 관내에 또아리를 틀려고 한다는 거였다. 강력 2팀이 조사에 들어간 상태인데, 조폭 박멸 전까지는 다른 팀도 한눈 파는 걸 용납 안 할 거라는 얘기였다.


휴··· 아쉽지만 조직사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분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자 기철이형은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너는 피살자 부인과 사귀기로 마음 먹은 것이냐?”

“미랑 씨요?”

“그래··· 이름이 구미랑 씨였지. 아무튼.”


버릇처럼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난 감정 표현에 망설임이 많은 편이었다. 유명한 농담처럼 설레임 사러 갔다가 ‘망설임 주세요’라고 실제로 말한 적도 있는 놈이 나였는데···.

이제는 그러기가 싫었다.


“네. 결심했습니다.”

“언제 결심한 거야? 방금? 쫌 전에?”

“사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때부터 결심했었다고 그러면 뻥이지. 또 세심하게 정직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결국 결심하게 될 것을 강렬하게 예감했습니다.”

“혹시···”


기철이형이 망설이고 있었다. 십 초 정도 침묵이 이어지다가,


“그 결심이 누군가에게 교묘하게 유도된 것 같지 않았나? 의도적으로 너의 시선을 이끈 정황을 느끼지 않았나?”

이 인간, 분명히 술집에서 내가 떠든 복사본을 갖고 있는 거다. 내가 취해서 털어놓았던 말들을 다시 들어본 거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내가 니 사생활을 캔 건 절대 아니고, 매우 일반적인 추측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야.”


기철이형은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면서 눈을 깜빡깜빡 빠르게 떨었다. 진실을 말하는 순진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연기 같았다.


“총각 형사가 아이 둘 딸린 과부한테 반했다. 게다가 과부는 담당했던 사건 관계인, 피살자의 아내다. 그 과부가 총각 형사 아래층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정전으로 깜깜할 때 총각 형사의 의도와 무관하게 입술 박치기가 이루어졌다. 입술이 범퍼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표정 연기로 하고픈 말이 전달된 것 같았다. 마주 앉은 기철이형 인상이 찌그러지는 걸 보니 거울 없이도 알 수 있었다.


“떫으냐?”

“예?”

“듣기에 거슬려도 한 번 남의 일처럼 따져 보라는 얘기다.”

“제 얘긴데요! 그게 어떻게 남의 일이 돼요?”


합리적인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발끈하고 있었다.


“알았다.”

쩝, 기철이형은 입맛을 다셨다.

“감정이 코팅된 상태구나. 아무리 뭘 갖다 부어도 스며들질 않겠어.”


기철이형의 방문이 맘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방문 앞 옥상까지는 배웅을 했다. 하루 반만에 잠깐 바람을 쐬고도 싶었고. 기철이형은 삐진 티를 팍팍 내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옥탑방 철문에 갈고리 같은 걸로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이게 원래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리고··· 이건 나중에 들은 얘기다.

기철이형은 내려가다가 1층 현관 앞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건물주와 미랑의 말다툼이었다.

두 여인의 음성에서 음모나 흉계 의 필이 느껴졌다나? 본인 왈 형사의 촉이 발동한 기철이형은 (사적이고 변태적인 악취미 같기도 한데···) 현관에 귀를 대고 엿들었다고 한다. 녹음을 켠 휴대폰도 갖다 대놓고서.


“언니 이러려고 이사온 거야? 다른 형사까지 끌어들···”

“자꾸 나쁜 쪽으로만··· 말라니까. 내가 알아서 해. 이게 최선이야.”

“뭐가 최선이야! ···하고 얘기가 달라졌으면서. 자기 맘대로 갖다 붙이면 다야?”

“기집애가 언니한테 뭐라는 거야!”

“가까이 있으면서 관리하고 감시하겠··· 지금 그대로··· 있는 거야?”


미랑과 나의 관계에 대해 토론?이 진행중이라고 기철이형은 판단했다. 그래서 침을 꿀꺽 삼키고 주의를 집중했다.


“그 양아치 만났을 때도 그냥 내버려··· 되잖아! 그럼 걱정 클리어···”

“어떻게 그걸 내버려 둬?”

“지금 제일 위험한 게··· 둘이야. 옥탑 선배란 짭새도 의심하는 눈치야. 그런데··· 세상 편하게 친목질이야?”


우리끼리는 짭새라고 셀프 비하도 하지만 남이 하는 짭새 발언엔 기철이 형도 민감했다. 화를 누그러뜨리고 침착하려고 애썼는데 그 와중에 이상한 소리도 섞여 들리는 것 같았다.

크아악, 카아오, 야생의 맹수들이 내는 괴성 같은 게 간간이 섞여 들려왔다.

‘안에서 대형 짐승을 사육하나?’


“정 그러면 신경 꺼. 내가 처리··· 돼.”

“묘화야. 진정해.”


정확하진 않지만 건물주 ‘묘화’가 화를 내고 미랑이 말리는 분위기였다.


“뭘 진정해? 내가 해치울 수 있다니까.”


뭘? 누굴? 분명히 파악할 순 없지만 건물주의 분노에서는 불길한 범죄의 냄새가 났다.


“저 사람들 위험할··· 있어. 하지만 나한텐··· 더 중요한 게 있어. 훨씬 많이, 우선인 감정이 있다고.”

“뭐야 어머머 이 언니 정말 미쳤나봐. 그 짭새 새끼가 그렇게,”


크아오! 짐승의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건물주의 짧은 비명이 문틈으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기철이형이 그만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탁!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와 동시에 집안이 조용해졌다.

기철이형은 휴대폰을 주워들고 황급히 집을 나왔다.


찜찜한 감정에 싸인 채 기철이형은 우리 동네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자꾸 누군가 뒤를 밟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홱 돌려 확인해 봤는데 따라오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소보다 많은 길고양이들이 기철이형 뒤에서 눈에 띌 뿐이었다.


찜찜한 감정은 집에 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처럼 싱글인 기철이형이 키우는 프렌치 불독 땡구가 전보다 훨씬 거센 반응으로 반려인을 맞이했다. 평소 잘 짖지 않아 성대 수술도 안 한 놈이었는데, 5년 평생 짖어온 것만큼 짖어댔다.

이상했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집 밖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려올 뿐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철이형이 왔다 가고서 몸살 기운이 씻은 듯이 가셨다. 물론 내 몸살과 백형사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으리란 생각은 안 했다.

미랑에게 뭔가 보답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금요일에 모처럼 칼 퇴근에 다음날도 푹 쉴 찬스가 생겼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대접을 하고 싶다는 말에 미랑은 흔쾌히 승낙했다.


약속한 고깃집에 미랑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옥,희를 친한 친구집에 데려다 주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했다. ‘데리고 오셔도 되는데’라고 그리 정직하지 않은 멘트를 내가 했고 ‘안 돼요. 걔네 엄청 먹어요.’라고 미랑이 웃으며 화답했다.


나는 미랑에게 돼지 쪽은 쳐다보지도 마시라고 부유한 척을 하며 메뉴판을 건넸다.


“이 집 등심으로 유명하대요.”


등심 가격이 부담이 돼서 그런지 미랑은 다른 쪽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세심하게 그녀의 눈길이 만든 각도를 따라가 봤다. 육사시미와 육회, 미랑은 날고기 쪽을 보고 있었다.


여친의 니즈를 미리 파악하는 현명한 남친처럼 나는 육사시미를 주문했다.

그러자 주인이 써비스라며 생간을 한 접시 내왔다. 순대의 텁텁한 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탱탱 싱싱한 생간!

나는 젓가락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어느새 미랑은 다다다다 초고속 흡입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미랑은 생간을 제외한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생간 접시가 비워진 후에야 미랑은 나를 올려다 봤다.


“식탐 있는 여자 보기 싫죠?”

“아뇨. 잘 잡수시면 좋은 거죠.”


환희 뒤에 오는 불안 같은 걸 느끼는 걸까? 미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옥,희 아빠는 신경질을 냈어요. 여자가 고기에 환장을 한다고. 짐승 같이 처먹는다고 핀잔을 줬죠.”


분위기가 서먹해졌을 때는 없는 놈 욕하고 뒷담화를 까는 게 유용한 윤활유가 된다. 물론 고상한 짓은 아니지만.


“그건 그분이 잘못 말씀하신 거예요. 고기 잘 먹는데 남녀가 어디 있어요? 요새 그런 편견은 거의 사라졌어요.”


‘편견’이라는 단어가 트리거(방아쇠), 요즘 말로 발작 버튼이었나 보다. 미랑은 울화와 예민의 결정체로 변신해서 분노의 언어를 퍼붓기 시작했다. 나한테.


“주성 씨는 정말 편견이 없으세요? 안 그런 척하던 사람이 알고 보면 더하거든요.”

그리고는 방금 써빙된 소주를 한 잔 따라 번개같이 원샷했다.


“술고래 주정뱅이 여자 어떻게 생각해요? 정말 남자하고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아니, 여자가 술 좋아할 수도 있죠.”

“회사 여자 동료랑은 맞담배 피우다가도 자기 식구나 애인은 절대 안 된다고 그러고. 여자가 다른 정치 색깔로 조금만 똑똑한 소릴 하면 질린다고 그러고. 안 그래요?

1번 찍는 사람하고 2번 찍는 사람도 못 사귀는 세상이잖아요. 주성 씨는 자기랑 반대 색깔 당 극성 지지자도 좋아할 수 있어요?”

“네··· 실은 제가 어려운 일엔 별 관심이 없어서···.”

“거 봐요. 똑부러지게 대답 못하고 둘러대잖아요. 만나는 여자가 과거에 이슬람 게릴라들을 칭찬한 적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에 나랑 반대 입장이다. 그러면 어쩔 거예요?”

“아니··· 왜 그렇게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제가 걱정해야 되는지···.”


살면서 편견 때문에 힘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왜 나한테? 종로에서 뺨 맞았으면 종로놈한테 화풀일 해야지, 내가 한강인가?


“아이 딸린 과부가 남자 만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그것도 연하의 총각 만나는 거? 남편 죽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남자 만나서 데이트하는 사람은 좋게 보여요?”


아, 결국 이게 궁금했나? 그렇다면 단호히 주관을 밝혀야 한다.

“전혀, 절대로,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남한테 해 끼치는 것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데 문제될 게 뭐가 있습니까!”


미랑은 의심 가득히 흘겨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 기분엔 그렇겠지만 조금만 틀어지면 한심한 여자라고 욕할 거예요. 남들이 손가락질하면 막아주지도 못할 거고요. 한국 남자들 다 그래요.”


“한국 남자가 다 그렇다뇨! 그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국가적 자부심 같은 건 별로 없지만 미랑의 논리적 잘못은 지적해야 했다.


“주성 씨 어려워지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할 걸요. 나 만난 다음에 깡패한테 맞고, 열 나서 죽을 뻔하고. 다 나 만난 다음이었잖아요.”

“그것도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인과 관계 없는 것들을 합쳐서 생각하는 결합의 오류 또는 사안과 무관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점 일탈의 오류를 범하시는 거예요!”


어릴 때 공부는 못 했지만 형사가 되려면 말빨 플러스 논리력이 있어야 된대서 논술이랑 화법 책을 좀 보긴 했다. 그걸 이렇게 써 먹을 줄은 몰랐다.

미랑이 또다시 소주를 원샷하더니 쾅! 소리가 나게 테이블에 내리쳤다.


“그거 믿게 할 수 있어요? 말로만 떠는 거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냐구요?”

미랑이 내 코 앞에서 소리쳤다.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했다.


“있어요. 뭐 할까요? 뭘로 보여 드려요?”

나도 언성을 높여서 큰 소릴 쳤다.


미랑은 분노 폭발 직전처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길을 마주 보자 내 심신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상한 전개였다. 원래는 말다툼이었는데 엉뚱하게 흥분이 됐다. 설마 이게 세심하게 기획된 진행은 아니겠지···


0.2초쯤 의심이 깃드는데 미랑이 두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거세게 짚으며 벌떡 일어났다. 나는 또 0.3초쯤 당황하고 있었는데 미랑의 두 손이 내 뺨을 감싸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미랑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미랑 집에서의 입술박치기와 달리 이번엔 혀 부위까지 활용하는 불란서식(french) 구강 접촉이었다.

아아 좀 전의 설전은 이 설전을 위한 전초전이었던 것인가?


오오! 식당 안에서 환성이 울려 퍼졌다. 몇몇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우리는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입술을 뗐다.

미랑은 입술만이 아니라 두 눈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미랑 씨··· 취한 거 아니죠? 후회하실 수도 있는데···”

“뭐라구요? 내가 여기 오려고! 옥,희 맡기려고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연락했는데요! 오늘은 곤란하다는 친구한테 억지 쓰고 매달리고 자존심 상해가면서 얼마나 부탁했는데요!”


땡! 사방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둠 속의 링에서 나 혼자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공이 울렸다. 더 이상 피하고 기다릴 수 없다!


‘아녀자 저리 애태웠는데 주저하는 자 대장부 아니로다!’


나는 카드를 표창처럼 날려 신속히 결제를 마치고 미랑의 손을 움켜쥐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남녀가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3층 미랑의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런 경우 옥탑의 총각방으로 가는 게 합리적일 듯하나, 바빴다. 너무 바빠서 한 층 더 올라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벌어진 일을 시시콜콜 옮기는 것은 매우 민망한 행동이라 여겨진다.

간략히 전하자면··· 21시 10분부터 우리는 황급히 탈의하고 동물의 경우 짝짓기라 일컬어지는 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돌입했다. 활동 종료 후 나는 23시 55분경 탈진하여 잠들었고, 미랑은 그 10분 후쯤 꿈나라로 갔다고 한다.


작가의말

이토록 고매한 작품에 19금 에로 장면을 기대하신 건 아니죠? 독자의 상상력 증진이 매우 중요하니 남녀관계의 구체적 진행 상황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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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1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91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1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96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34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86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35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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