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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3,426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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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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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상식의 출구 진실의 입구

DUMMY

차가웠다.

뒤통수와 등과 엉덩이가. 내 몸의 뒤쪽이 차가운 것에 닿아 있었다.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정전이 됐던 미랑의 거실처럼 암흑 속이었다. 그 때와 상황은 천지차이였다.

여기는 모르는 공간이다. 처음 본 사내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거다. 똑같이 마셨는데. 딱 한 잔이었을 뿐인데.


일어나려 했는데 움직여지질 않았다. 팔다리가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나한테 뭔 짓을 한 거야? 고박사. 무슨 속셈이야? 있는 힘껏 좌우로 몸을 틀어봤다.

소용 없었다. 힘으로 풀 수 있는 매듭이 아니었다.


“고박사! 고박사! 고해곤! 이거 안 풀어!”


반응이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목청이 더 커졌다.


“나와 이 새끼야! 얼른 불 키고 안 나타나!”


악을 써 봐도 마찬가지였다. 약 올리려고 듣고도 가만 있는 건지, 사람을 묶어 놓고서 까먹고 어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컹컹커컹, 웍웍웍~”


사납게 짖어대는 개떼들 소리가 들렸다. 사냥개들 같았다. 개와 사람이 같이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 휘파람과 호루라기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사냥개 짖는 소리가 더 크고 세차졌다.

어디서 들리는 거지? 나를 어디로 옮겨 놓은 거지? 산속의 폐가 같은 데다 묶어 놓은 건가?


소리 나는 쪽을 알아내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강한 불빛이 내 눈으로 쏟아졌다.

놀라고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다. 눈꺼풀로 덮은 눈에 붉은 빛이 어른거렸다. 눈을 감았지만 머리 위로 불빛이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눈을 떴다. 플래시 같은 불빛이 계속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불빛은 한 줄기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여러 방향을 향해 어지럽게 춤추고 있었다. 컹컹컹컹! 사나운 사냥개 우짖음과 함께.


내가 사냥터 가운데 있는 건가? 아님 나를 미치게 만들려는 신종 고문법인가? 생각해 보는데 플래시 불빛들이 동시에 싹 꺼졌다.

개 짖는 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는데, 머리 위 천장 쪽이 밝아졌다. 올려다 보니 둥근 달 같은 조명이 차가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개 짖는 소리가 멈추더니 휘잉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게 대체 뭐 하자는 플레이야?


“고박사! 장난하자는 거야! 대한민국 경찰이 만만해?”


그때 딸깍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바람이 멈추더니 전체 조명이 들어왔다.

검은 암막 커튼이 쳐진 실내. 내가 멀리 옮겨진 것 같진 않았다. 고박사 연구소 옆방쯤 되는 느낌.

나는 금속 선반 위에 밧줄로 묶여 있었다. 국과수 같은 데서 쓰는 해부대 위였다.


“일단 말이야. 자기는 순수한 인간일 가능성이 커. 그래도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지.”

고박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해부대로 다가왔다.


“고박사! 당신 제 정신이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고박사는 양손에 커다란 깃털과 붓을 들고 있었다.


“잠시 후에 얘기해 줄게. 일단 확인부터 하고.”


그는 해부대로 다가오더니 내 팔다리를 깃털과 붓으로 간질이기 시작했다. 몸이 근질근질 꼬이면서 이런 된장, 짜증나게도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어때 시원해?”


진정 변태 같은 상황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중늙은이가 변태 같이 웃으면서 나를 간질이고 있었다. 게다가 묶여 있는 나는 러닝셔츠에 팬티 바람이었다.


“야, 야, 어어··· 허허··· 그만 안 해··· 이 변태 같은··· 아저씨, 그만해요!”


고박사는 웃음기를 거두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30초 정도 더 격렬히 간지럽혔다.

나는 이를 악물고 풀려나는 대로 저 인간을 박살내리라 저주하면서 치욕적인 간지러움을 참아냈다.



“오케이. 이제 인정하지. 지주성 경위는 정확히 한국 사람이고 경찰공무원이다.”

“뭐? 그걸 인정하는데 이 난리굿이 필요한 거야?”

“나한테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온 걸로 아는데··· 그렇게 말이 짧아도 되는 거니? 나 그냥 나갈까? 이 방 의외로 방음 잘 돼.”


불리한 상황이었다. 일단 좀 숙이고 가겠다고 결심했다. 태세 전환!


“아니··· 제 입장에서는 환장하겠잖아요. 대체 왜 이러신 건지 알아야죠.”


그건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박사가 끄덕였다.


“일단 자기가 잠든 다음에 내가 경찰서에 연락해서 확인해 봤어. 명함에 있는 신분은 맞더라고. 그 다음에 이 늙은이가 건장한 청년을 칠성판에 올려놓느라 용을 썼잖니.”

“그러니까 왜 여기다 묶어 놓았냐고요? 그리고 어떻게 기절시킨 거예요?”

“질문이 많은 애들은 공부 잘하는 애 아니면 ADHD인데··· 그건 나중에 따져 보고오~ 갈켜 줄게. 술 먹었던 머그잔 바닥 색깔이랑 또옥같은 색 수면제 갈아서 찐득하니 붙여놓고 술 따라 줬던 거고. 자기는 원샷하고 잤고. 거기다 올려 놓은 이유는···”


인간이 아닌 야생 짐승 같은 존재가 내 속에 숨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고박사는 말했다.

자기 안에 짐승을 감추고 있는 사람은 밀렵꾼과 사냥개가 쫓아오는 상황에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짐승의 기괴한 성향이 가장 잘 활성화되는 시기는 보름달이 밝을 때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이 짐승들은 간지럽혀 보면 알거든. 간지러워서 웃고 몸을 비틀다 보면 정체를 숨긴 이성의 가면이 홀딱 벗겨지는 거라.”


그러니까 나는 고박사의 테스트를 통과한 거였다.

아이고야···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행이었다. 고박사가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판정했으면 무슨 짓을 더 했을지 모르니까.


“불 끄고 개소리 들려주기 전에 내가 꼬리 흔적, 송곳니, 손발톱 검사도 해봤고. 귀 운동, 주둥이 골격도 검사해 봤지. 자기는 인간 맞아. 인정!”

“그런데요··· 박사님이 말한 이 검사라는 걸 왜 해야 되는 거죠?”


고박사는 답답해 하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 나쁜 건 팔자니까 죄가 아닌데 형사가 그러면 어떡하니? 생각이란 걸 해 보자고. 어떤 생물학 박사가 인간 반 야생짐승 반인 것들이 있다고 발표했어. 반반 치킨도 아니고 짬짜면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면 학계에서는 무시하고 인간들은 또라이 취급하겠지.

근데 말이야··· 진짜 짐승 인간들은, 나는 요즘 유행처럼 줄여서 걔네를 '짐간'이라고 부르는데··· '짐간'들은 지네 정체가 탄로날 수 있으니까 나를 싫어하겠지? 내가 위험해질 수 있겠지?”


나는 점점 설득되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나 기철이형은 이 괴상한 박사님의 썰을 무시할 수 없는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끄덕끄덕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영 쑥맥은 아닌가 보네.”


고박사는 휴대폰을 꺼내서 녹음 기능을 터치하고는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박사님 연구 결과를 다른 사람한테 발설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건 약속할게요. 싸인도 하고요.”

“잠깐만. 오른손잡이 맞지? 풀어주기 전에···”

“네. 바로 서명할게요.”

“그런데 지형사 잘 때 고민이 되더라고. 내가 아는 걸 온전히 전해주면 또 무슨 골아픈 일에 쫓기려나··· 그래서 무난하게 타협하자는 거야.

인간과 야생짐승의 중간 존재. 가능성 있음. 구체적 확인은 현재 불가. 여기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 이 정도로 싸인하고 나가자고. 괜찮지?”


안 될 말이었다.

그 정도로 만족하려고 내가 이 철판 위에서 난닝구 바람으로 변태 영감의 장난감이 됐단 말인가? 절대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게다가 뼈가 박살나고 턱이 금이 가고 죽기 직전까지 갔던 형사가 병상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안 돼, 하여튼 안 돼!


“박사님! 지금 제 친형 같은 분이 짐승 같은 것한테 당했어요. 박사님 말씀하신 '짐간'한테 맞아 죽을 뻔하고 병원에서 사경을 헤맨다고요!”


살짝 과장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심에 거리낄 게 없었다. 그러나 고박사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은 안 나타났다.


“저희 관내에 사망 사건도 있었어요. 이빨 자국 발톱 자국이 있는 시체가 나왔다고요!”

“그렇다고 내가 알려줘야 되는 거니?”

“박사님. 부탁드려요.”


고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을 보면 부탁의 감정이 아닌 것 같은데.”

“무서워요.”


가식 없는 말이 나왔다.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솔직한 내 마음이 튀어나온 거였다. 제발 누군가가 나를 무시무시한 고민에서 끄집어내 주길 갈망하는 마음.

그런 건 다 망상이라고 못을 박아 주든가, 아내와 그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할 비법을 제시해 주길 나는 소원하고 있었다.


“뭐가? 사는 건 대개 다 무섭거든.”

“진실을 알게 되는 게 무서워요.”


내 마음 속의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기철이형 얘기는 인정하면서도 나랑은 무관하다고 애써 막아놓았던 장벽.


“그러면서 왜 알려달라는 거야? 진실이 무서우니까 진실을 말해달라? 사랑하니까 헤어지자는 아리송한 말이니? 자기 형사가 아니고 시인이니? 이건 패러독스니 아이러니니?”


고박사는 쉽게 사람을 믿지 않았다. 최대한 남을 시험해 보는 스타일이었다.


“진짜로 무섭다구요! 마누라가, 마누라가···”

“마누라가 뭐? 마누라가 짐승같이 정력 좋은 놈이랑 바람났나? 배 맞춘 놈이 물개 같은 수영 선수야?”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쿵! 묵직하게 울리는 효과음이라도 속으로 들은 걸까? 고박사는 동작을 멈췄다.

하지만 곧바로 믿어주지는 않았다.


“자기야. 마누라나 남편새끼 보고 저 왼수가 인간인가 싶다··· 한탄하는 사람 수두룩빽빽하거든. 근데 자기도 그런 시답잖은 비유를 하는 거면,”


그어어억~

그는 거하게 트림을 하면서 알콜기 듬뿍 담긴 악취를 내쪽으로 뿜어냈다.


“오랜만에 해부 실습을 해버릴 거야.”


그때 나는 겁을 내거나 화를 냈어야 자연스러운데 눈물이 솟구쳤다.


“정말이라구요. 아내가. 아내가 사람이 아닌 거 같다구요. 나 어떡해요···”


처음 만난 사람. 초면에 나를 기절시키고 벗기고 묶은 사람 앞에서 울었다. 난닝구에 빤스 바람으로 꺽꺽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흐느꼈다.

숨기고 묻어두려 했던 의혹들이 감당할 수 없이 치솟아서 도무지 어쩔 줄을 몰랐다.



고박사는 스크린을 내리고는 OHP 프로젝터를 켰다. 이놈의 연구소엔 잡동사니만 쌓여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내가 환한 스크린을 보면서 기대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고박사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더니 말했다.


“요샌 말이든 글이든 두괄식이 유행이라더라. 답부터 말해줄게.”


바짝 긴장한 나는 시선을 고박사에게 고정했다. 그도 살짝 부담스러운지 나를 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짐간. 동물인간. 있어. 숫자 파악은 못 했지만 드럽게 많아. 우리나라에만 만 마리는 넘을 거야.”

“어떻게··· 그걸 연구하신 거죠? 증명이··· 과학적으로 가능한가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올 게 왔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과 어떻게든 과학과 상식으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충돌했다.


“몇 가지 이론에 통달하면 증명해 낼 수 있어. 양자역학, 특수상대성 이론, 싯달타의 연기법, 윤회전생론, 융의 분석 심리학과 동시성 이론, 진화생물학,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 이론, 범신론, 카프카의 변신···”


과목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나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변~신이 아니라 병신 같은 개그야. 뭘 많이 알면 밝혀낼 가능성도 클 거다. 그런 취지의 농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추리나 가설을 세우긴 했지만··· 나 같은 돌박사는 당연히 과학 언어로는 입증 못하지.”


뭔 소리야? 그럼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찌푸린 내 미간은 펴지지 않았는데,


“그런데 봤어. 내 두 눈으로 직접. 그리고 여기 담았지.”


드디어 고박사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수상한 놈이 있었어. 자꾸 동물학 연구실을 찾아와서 이상한 얘길 하고 짐승 같은 행동을 했어. 그래서 자기들처럼 미행도 하면서 관찰했지. 보름달 뜬 날 산에 가는 걸 따라갔다가···”


중년 남자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고 답답한지 목과 어깨를 돌리고 팔을 비틀면서 걸었다. 행동장애가 있거나 금단 증상을 겪는 사람 같았다.

밤중의 등산로에 사람은 없었다. 조용한 산속의 미행이라 멀리서 찍은 화면이었다. 남자는 자주 앵글에서 벗어났고 화면은 흔들리다가 다시 조정됐다.


남자가 등산로를 빠져나와 나무숲에 둘러싸인 풀밭으로 갔다. 고박사의 카메라는 나무 틈으로 남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산소가 있는 잔디밭에서 남자는 미친 듯이 몸을 뒤틀었다.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기도 했다. 머리를 뒤흔들고 땅바닥에 머리를 찧어대다가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섰다. 체념한 것처럼.


“크르르릉”

남자가 짐승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냈다.

고박사의 카메라는 최대 배율로 줌을 당겨서 남자의 신체를 포착했다.

남자의 입과 코가 앞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얼굴과 손에서 털이 돋더니, 손가락 끝에서 뾰족한 발톱이 튀어나왔다.


“크아아앙”

짐승의 본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가 주변을 제압하겠다는 듯 도리질하며 사납게 짖어댔다.

날카로운 송곳니. 세모로 솟은 귀. 붉게 빛나는 두 눈. 늑대의 얼굴이었다.


“아오오오오!”


두 발로 선 늑대.

늑대인간이 고개를 꺾어 달을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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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6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101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7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102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40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91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43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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