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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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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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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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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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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발톱을 세우며 성벽을 오르려고 하는 마수들은 가장 작은 놈도 곰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그 외모도 수많은 생물체들을 섞어놓은 듯, 흉측하기 그지없다. 과연 마계의 짐승들.


놈들의 흉악한 모습에 압도당한 병사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 엘리자베스와 아가르타가 그런 그들에게 신성력을 쏟아부으며 응원했다.


"괜히 겁먹지 마라! 그렇게 굳어있으면 금방 잡아먹힌다."


아슬론이 선두에 서서 성벽을 기어오르던 마수에게 수다쟁이를 던지며 외쳤다. 수다쟁이는 평소처럼 그에게로 돌아와서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는 평소처럼 그것을 들은 체도 안 한다.


남들보다 한 발짝 물러나서 마법을 준비하던 로웬은 커다란 불덩이를 몇 개나 떨궜다. 카엘은 숲이 불탈까봐 불안해하는 눈치였으나... 지금은 그런걸 신경쓸 때가 아니다.


동족들이 불타고 뭉개지자 천하의 마수들도 겁이나는지 기세를 늦췄다. 개중에 특출나게 거대한 놈이 친구들을 독려하려 하자 엘로이스의 화살이 놈의 미간을 꿰뚫어버렸다.


"마수들이 이렇게 많으면 몰래 빠지지도 못하잖아..."


"엘로이스? 이게 얼마만인가요."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엘리자베스가 반가움을 표하자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온다.


"우리가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이래? 그나저나 넌 그새 다른 신으로 갈아탔어? 인간들의 알량한 신앙심이란..."


"여전히 쓸데없이 성격이 나쁘시네요. 한 번 더 그러시면 때려줄겁니다."


여유롭게 마수들을 상대하는 주교들의 모습에, 평신도들도 차츰 자신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아슬론은 넓은 성벽을 누비며 전선의 소방수 역할을 소화했다. 귀하디 귀한 신도들이 죽거나 다치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마수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로웬이 벌써 다섯 번째 주문을 날리며 불평했다.


"길드에서 왜 이제껏 이곳을 방치해뒀는지 잘 알겠습니다."


"성문쪽의 바리케이트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신앙점수를 아끼지 않고 주문을 난사하면서도 회의적으로 말했다.


내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이전보다 몸의 감도가 올라간 듯 했다. 신성력과 마력이 강해지고 그 운용이 한층 자유롭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있어도 마수들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로웬은 그야말로 바닥을 모르는 마력량을 자랑하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따로 손을 써둔게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벽 앞쪽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땅이 통째로 갈아엎어졌다. 우리가 도시에 도착한 그 짧은 시간동안 지뢰 비슷한걸 준비해둔 모양.


우리가 주문의 위력에 치를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하던 찰나. 살아남은 소수의 마수들이 동료들을 부르듯 있는 힘껏 울부짖기 시작했다. 엘로이스가 황급히 놈들을 저격했으나 놈들의 숨통이 끊어질 즈음에는 이미 지축이 울리고 있었다.


"뭐야, 이게 전부가 아니었나?"


"겨우 이 정도로 요정왕국이 멸망하겠어요?"


로웬이 아슬론에게 핀잔을 주며 바리케이트를 보수하는 한편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대규모 전투에서 그녀 같은 대마법사가 함께한다는건 든든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으나... 새로이 등장한 마수들은 아까전보다도 많아보였다.


아마 정령석 채굴장에 있던 놈들이 전부 몰려온 것이리라. 추가적인 적군이 나타나자 성벽 위에서 활을 쏘고 돌을 던지던 용인족들 중 일부가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비늘이 떨어지고 발간 피부가 드러나는게 보인다.


"으윽..."


"가, 가슴이 아파!"


"... 설마 너희들 지금 변이하는거냐?"


아슬론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다 점점 확신을 띄었다. 그는 동족의 성장을 지켜보면서도 어이가 없는 기색이다.


"아니, 성벽 위에서 돌 좀 던진거 가지고 무슨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고..."


"대주교님! 너무 그러지 말아주세요. 다른 동족들은 마수들의 공격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고요!"


힐데가 내 허락을 받고 변이를 시작한 동족들을 피신시키자 성벽 위의 병력은 더욱 줄어들었다. 우리 영지의 용인족은 워낙 약해서 이 정도 규모의 전투에 참여한 것 만으로도 변이를 거치는 모양.


아슬론은 한 층 줄어든 병력들을 독려하며 싸움을 이어나갔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어서 마침내 성문이 있던 자리를 지키던 바리케이트가 무너져내리자, 그는 즉시 두 자루의 대검을 들고 그곳을 막아섰다.


머지않아 마수들의 시체들로 새로운 바리케이트를 완성한 그는 아예 성벽의 밖으로 나가서 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그를 걱정스레 지켜봤으나... 마왕과의 싸움으로 강화된 아슬론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어쩌다가 상처를 입어도 그놈의 초재생 능력 덕분에 금방 아물어버린다. 로웬은 그가 나가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편히 화염계열 주문을 난사할 수 있었다.


싸움이 시작된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놈들을 몰아낸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성벽에 기댔다. 물론 이번 전투는 로웬과 아슬론 둘이서 거의 다 해먹은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힘들긴 힘들다. 그래도 뒤쪽에 펼쳐진 요정족의 도시를 보니 없던 힘도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린은 우리의 예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어이 우리를 훼방놓으려는 듯, 자신의 주교를 포함시킨 별동대를 보내버렸다. 마수들의 시체를 치우던 아슬론은 새로운 적들의 등장에 다시금 대검을 들었다.


성벽이야 아직 멀쩡하지만, 저들은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정예들이다. 지금 상황에서 맞서 싸우기엔 확실히 버거운 상대. 카엘은 상대측에 요정족들이 적잖게 포함된 것을 보고 성벽 위로 몸을 내밀어 설득에 나섰다.


"잠시만요. 이곳은 원래 요정족의 영토! 아무리 자유 교역 도시라고 해도 함부로 침공하시면 안 됩니다."


기병대에 포함된 요정들이 웅성였지만, 아린의 주교는 작은 혼란을 재빨리 바로잡았다.


"아무리 과거의 동맹이라 해도 길드의 영토에 멋대로 침입하다니! 이러한 만행은 용서할 수 없다!"


"여기가 언제부터 길드의 영토였단 말이지..."


정말이지 얼토당토 않은 이유. 이제는 전쟁의 명분조차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린이 이토록 뻔뻔스럽게 나올 줄 몰랐던 나는 속이 타들어가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로웬은 아직 여유가 남아있는지, 슬쩍 웃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묻는다.


"마력은 얼마나 남았어?"


"아무리 저라도 지금 당장 전투를 속행하는건 힘듭니다. 하지만 걱정마십시오. 이제 곧 원군이 올겁니다."


"...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의심을 품던 나는 머지않아 더욱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로웬의 말마따나,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적잖은 숫자의 기병대가 갖춘 복장은 다름이 아닌 성왕국의 군복. 그들의 어깨에 박힌 것은 왕국군 중에서도 정예인 국경 수비대의 인장이다. 로웬을 제외한 사람들은 자신의 눈이 잘못 된 것인가 싶었지만, 일전에 한 번 붙어봤던 상대인 만큼 잘못 볼래야 잘못 볼 수가 없었다.


기세 좋게 달려온 성왕국 국경 수비대의 기사들은 망설임 없이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기병대를 덮쳤다.


"쳐라!"


"서, 성왕국과의 충돌은 예정에 없었는데... 일단 후퇴해라!"


과연 아린의 주교는 상황판단이 빨랐다. 여기서 성왕국의 기사들이 끼어들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성왕국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불필요한 병력손실은 최대한 피하고 싶겠지.


아슬론은 기병대의 규모를 보고 작게 감탄했다.


"이쪽 방면의 기사들을 모조리 긁어모아온건가? 로웬, 어떻게 이런 지원군을 데려왔지?"


나는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고 나서야 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단순한 협상으로는 이 정도의 병력을 지원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이쪽이 자유 교역 도시를 견제해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성왕국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아닌가.


로웬은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뒤늦게 설명해줬다.


"딜라드 5성 귀족에게 나눠주었던 코드를 이용한 것 뿐입니다. 주문의 명령권자를 바꾸는건 그걸 해제하는 것 만큼이나 쉽지요."


"..."


아린이 설마 했던게 진짜였다. 로웬은 애시당초 코드를 나눠줄 때 부터 이것을 안배해 놓은 것이다. 그녀는 강제적으로 달려온 국경 수비대를 다시 돌려보내곤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알룬님께서는 쓸데없이 자비로우신 면이 있으신지라... 일이 끝난 다음에 설명드리는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내가 이걸 미리 알고있었으면 아린에게 사정을 읽혔을 수도 있다. 나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매사에 깐깐한 아슬론조차 로웬에게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다. 아마 충성심으로 가득한 용인도 그녀와 똑같이 생각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속아넘어간 장본인으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로웬의 행동이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임은 잘 알고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녀를 다시 만난 뒤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돌던 의문이 드디어 입 밖으로 나왔다.


"...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거야?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해줬다고?"


모처럼 소리를 죽인 질문에 로웬의 얼굴도 진지함을 되찾는다. 그녀는 이 질문을 기다려 마지 않았다는 듯.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알룬님께서는 처음으로 저를 위해 헌신해주신 분이십니다. 혼돈신의 사도가 저를 납치하려 했을 때. 당신께선 후일 화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저를 살려주셨지요."


"그, 그래도 너는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다며? 그 동안 나 같은 놈이 한 명도 없었을리가..."


"아니오.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마법신의 신좌에 맹세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알룬님이 처음이십니다. 그게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로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잇는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게 호의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제 능력이 서서히 밝혀지면, 그러한 호의는 눈 깜짝할 새에 변질됩니다. 그들은 이내 저를 자기들의 사욕을 위해서 이용하려 들지요."


순수한 호의를 받기 위해서는 차라리 평범한 소년이나 소녀로서 지내는 것이 낫다. 로웬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그녀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어떻게든 이용해먹고 싶을 것 같긴 하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그 얼굴은 어찌보면 환희에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수도 없는 전생들과 그 속의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 알룬님 만큼은 달랐습니다. 알룬님께서는 그 어떠한 이해타산도 없이. 오로지 저에 대한 연민으로 움직여주셨지요."


"... 그런가. 하지만 너는 그런 내 자비를 걸림돌 취급하고 있구나."


나는 다른 신도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외계신답게 대답했다. 이건 이번 사건에서 받은 섭섭함의 표시다. 로웬은 강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무척 공손히 변명한다.


"고귀함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알룬님의 자애는 무척 존경스러운 것이나... 그것은 오직 저만을 위해서 베푸셔도 됩니다. 자잘한 일들은 저희 신도들이 알아서 할테니 알룬님은 그대로 남아계셔주십시오."


"..."


나는 속이 턱 막힌 기분 때문에 쉽게 대꾸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로웬은 내가 그녀를 일으켜 줄 때 까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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