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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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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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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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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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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회

DUMMY

요정족의 도시를 성공적으로 점령한 우리는 곧장 영지의 민간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아슬론은 그들의 호위 역할로 떠나기 전에 엘로이스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다른 휴식처를 찾기 위하여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냥 여기에 있어도 될텐데..."


라르고가 엘로이스의 손을 잡고 흔들며 한 마디 하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랬다간 너희들 말썽에 계속 휘말릴 것 같아. 나는 휴식을 취하러 온거라고."


"이십년 가까이 놀고 먹는게 휴식이냐."


"인연이 닿는다면 또 한 번 뵙지요."


엘리자베스가 라르고의 앞으로 나서며 작별인사를 건네자 상대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애버론의 원수를 갚을 때에는 좀 말해주고. 그 때는 나도 한 몫 해야겠어."


"네가 어디있는지 어떻게 알고?"


"내가 숲 속에 가만히 처박혀 있어도 너희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도록 해봐. 마왕을 잡으려면 그 정도 세력은 갖춰야할테니까."


그대로 몸을 돌려서 떠나려던 엘로이스의 앞에 카엘이 나타났다. 그녀는 요정족의 재건을 위하여 엘로이스를 붙잡고 싶은 듯 했으나, 라르고와 엘리자베스의 눈치가 보여서 그러지 못했다.


옛 동료들도 놔두고 떠나는 마당이니 설령 동족이라고 해도 가산점이 그리 클 것 같지는 않다. 카엘은 그러한 욕구를 겨우 참아내곤 겨우 한 마디 했다.


"도시의 탈환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재건에 들어갈테니, 엘로이스님도 언젠가 다시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글쎄... 잘 해봐."


엘로이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카엘에게 인사하곤 그대로 떠나버렸다. 카엘은 그 영문을 모를 표정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의문과는 상관없이, 도시를 재활용하는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요정족들의 도시가 생각보다 큰 덕분에 우리 영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블랙우드의 사람들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광산을 포기하는건 쉽지 않을 터였으나... 어차피 그 땅에 남아있으면 눈 뜬 채 빼앗길 땅이다. 게다가 이 숲에는 정령석 채굴장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렇게 차근차근 재건에 열중하는 동안. 자유 교역 도시는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사실 여기서 우리만 치워내는 것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를 건드리면 로웬이 성왕국의 병력을 불러버린다.


아슬론은 죽은 부하들의 장례를 치뤄주곤 로웬에게 불평하듯 내뱉었다. 우리측의 사상자는 싸움의 규모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적었지만, 그래도 우리 사람들인 만큼 유달리 뼈아팠다.


"성왕국 놈들을 좀 더 일찍 부를 수는 없었던건가?"


"네. 저는 요정의 숲 탈환이 결정되자마자 그들을 불렀으니까요. 성왕국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 널 탓하려는건 아니었다."


로웬이 살짝 날카롭게 대꾸하자 아슬론이 되레 사과했다. 그도 자신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을 알고있는 듯 하다.


사실 성왕국의 국경수비대가 진작 도착했어도 문제가 되는게... 나는 되도록 그들의 도움을 받고싶지 않았다. 이쪽의 사정 때문에 그들을 멋대로 동원해버리면 나도 신성제국과 다를게 없어지지 않은가.


물론 이번에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니 별 말 하지 않았다. 로웬도 그것을 알고 최대한 언급을 삼가는 눈치다.


집집마다 자리잡은 덩굴을 뜯어내고, 무성히 자란 잡초들을 베어내던 우리는 머지않아 크나큰 난관을 맞이했다. 나와 레니아는 요정족의 왕궁을 눈앞에 두고 진땀을 뻘뻘 흘렸다.


"으음, 이거 어떻게 하지?"


"아, 알룬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건 제초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요정족의 왕궁은 장시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숲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 속에 만들어진 왕궁에서는 웅장함과 세련됨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있다.


문제는 이게 요정왕족의 건물이란 것이다. 우리가 이곳을 탈환해줬으니 버려진 집이나 기반시설들을 쓰는건 거리낄게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뜸 왕궁을 차지해버리는건 좀 그랬다. 특히 우리에겐 요정왕족의 정당한 계승자인 카엘이 있지 않은가.


나나 레니아에게 요정족 도시의 문제들을 처리할 비전이 있었다면 좋았겠으나, 우린 그냥 급한 김에 이곳으로 피신온 것 뿐이었다.


마수들에게 맞서서 탈환전을 펼칠 때에는 별 생각을 안 했는데, 막상 빼앗고 나니까 고민거리가 늘었다. 당장은 이 도시를 우리가 쓴다고 해도, 언제 요정족들에게 돌려줘야 하는거지? 이제부터 카엘에 대한 취급은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고민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던 중. 카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서 들어가주십시오. 달리 사령부로 쓸만한 건물도 없지 않습니까. 마수들에게서 도시를 해방시켜주신 알룬님이 이곳에 머무르신들 누가 감히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 그래?"


원주인의 허락도 받았겠다. 우리는 즉시 입성하여 아예 살림을 차렸다. 물론 요정왕의 왕좌는 일부러 남겨둔 채다. 당장은 사절 등을 맞이할 일도 없을테니 저곳은 잠시 비워둬도 될 것이다.


카엘은 도시의 재건 작업이 어느정도 진행되자 동족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뛰어다녔다. 자유 교역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확보해둔 인맥들을 아린 몰래 동원하는 한편, 그들을 맞아들일 준비도 마쳤다.


그러나 일주가 지나고, 이주가 지나도 숲으로 찾아오는 요정족은 보이지 않았다. 레니아는 근심으로 앓아누울 듯한 카엘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준다.


"아마 길드쪽에서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는거겠죠. 그쪽은 성왕국과 전쟁 중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확실히 천리안을 이용한 아린의 통제능력은 무서울 정도지만... 그래도 무적은 아니다. 특히 지금은 성왕국과 전쟁중인 만큼 그쪽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터다.


설령 아린의 통제가 있다 해도 한두 무리 정도는 이쪽에 와야 정상이다. 카엘은 갑자기 머리에 스쳐지나가는게 있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왜 그래? 뭐 짐작가는거라도 있어?"


"아닙니다. 일단 거주지 분배부터 마치지요."


카엘은 곧바로 회의에 집중했지만, 그녀의 미심쩍은 반응이 마음에 걸리던 나는 레니아의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추측했다.


"제 어림짐작이긴 하지만... 카엘은 동족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요정족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왜?"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엘로이스님께서 그런 반응을 보이셨던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카엘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엘로이스는 어딘지 모르게 비웃고 동정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었다. 설마 그녀가 이런 사태를 예견했단 말인가?


나는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카엘을 찾았다. 왕궁의 창가에서 달을 보던 그녀는 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룬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아무 고민도 없이, 그저 도시를 되찾으면 동족들이 돌아올 줄 알았다니."


"..."


나는 자책하는 카엘을 탓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확실히 우리가 너무 안이했다. 성왕국이 혼란에 빠진 지금. 아린은 대륙 남부의 확고한 최강자. 이제껏 아린의 은혜를 입은 요정족들이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와 위태위태한 내게로 올리가 없다.


카엘은 정말이지 투신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그 즈음에 위로의 말을 목구멍에서 쥐어짜냈다.


"지금 당장은 아린의 눈치를 보느라 나서지 못하는거야. 우리가 좀 더 세력을 키우면 네 동족들도 합류하겠지."


"그렇습니까... 알룬님. 부디 이 일대는 물론이고, 남부 대륙까지도 알룬님의 손에 넣어주십시오. 알룬님의 품 속에서 저희 동족들이 다시금 뭉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영광일겁니다."


카엘은 독기마저 품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동족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직접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키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차피 아린이 지금처럼 나온다면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그녀와 정면으로 맞붙을 각오 정도는 해두고 투신한 것이다. 카엘은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창문에서 물러났다.


"그럼 이제 알룬님께서 왕좌에 앉아주십시오. 요정왕의 후예인 제가 따르시는 분이니 별 말이 나오지 않을겁니다."


"... 그래도 될까?"


"네. 정 마음에 걸리시면 아예 왕권을 획득하시는 법도 있고요."


그녀는 내게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리곤 예를 표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이해못할 말을 되새기며 레니아와 로웬이 있는 회의실로 돌아갔다. 요정족과 별 관계도 없는 내가 어떻게 왕권을 얻는단 말인가?


왕궁에는 방이 무척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로웬과 레니아는 기어이 내 방을 회의실로 썼다. 나는 그녀들에게 방금 전의 일에 대한 조언을 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애매한 반응 뿐이었다.


"... 진짜 방법을 모르시는건가요? 어쩔때는 알룬님께서 일부러 이러시나 싶어요."


"모르셔도 됩니다. 어차피 일말의 고려조차 필요없는 사안이니까요."


그녀들의 은근한 냉대에 기가 죽은 채 잠든 나는 다음날부터 요정왕의 왕좌에 익숙해지려 노력해야했다. 왕좌 뒤쪽의 벽면에 새겨진 요정왕의 문장을 지우던 로웬은 우리 교단의 문장을 새기려다 그만뒀다.


나는 우리 교단 문장의 견본을 빤히 보던 로웬에게 불안한 심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예전에도 보긴 했지만 뭐 이런 문장이... 멋이 없는 것도 이 정도면 예술이네요. 이건 우리 대주교가 만든건가요?"


로웬은 남들의 앞에서는 아슬론을 존중했으나, 나와 단둘이 있을때엔 딱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참담한 심정으로 대꾸했다.


내 센스가 별로 좋지 않다는건 알고있지만 그걸 대놓고 들으니까 고개가 꺾인다.


"아니. 그거 내가 만든건데."


"... 우직하고 단순한 것도 괜찮지만, 알룬님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여기선 문양을 조금 바꿔보지요."


황급히 수습에 나선 로웬이 벽면에 용의 머리를 새겼다. 따라그리기 쉽도록 데포르메가 가해져 있으면서도, 용이란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특징을 잘 잡아냈다. 나는 멋진 새 성표에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을 느꼈다.


"이런걸 새겨놓으면 용들이 쳐들어오잖아."


"저희 교단은 이미 용들의 표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 누가 알룬님의 앞길을 막든 제가 치워보일테니 걱정마시길."


하긴. 이제와서 용들을 걱정하는 것도 좀 그렇다.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새로운 성표를 허가했다.


로웬과 아슬론을 비롯한 신도들은 기쁜 표정으로 새로운 성표를 곳곳에 새겨넣었다. 내가 그러한 광경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던 중.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한창 도시 재활용 계획에 전념하던 레니아가 아가르타로부터 급보를 듣곤 내게 알렸다.


"알룬님. 자유 교역 도시의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 벌써? 일단 들여보내."


아린이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하리란건 예상했으나,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방법으로 다가올 줄이야. 이건 너무 정석적인지라 오히려 의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왕좌에 앉아 그녀의 사절을 기다렸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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