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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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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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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7.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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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7회

DUMMY

전쟁의 기사가 원정대를 이끌고온 땅굴은 보기보다 넓고 길었다. 하루이틀만에 만든 것이 아닌 듯, 곳곳의 지지대가 천장을 확실히 떠받치고 있다. 통로의 저편에는 창고 비슷한 것도 보인다.


아슬론은 이곳이 당장 붕괴되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하자마자 놈에게 대검을 겨눴다. 아린과 연합군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잔당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애버론도 그것이 어이없는 듯 한 마디 했다.


"어디에 처박혀 있는가 싶었는데 북서부, 그것도 토굴 속에 숨어있었나. 우리가 못 찾을 법도 했네."


"그런 놈들이 뭘 믿고 이제와서 모습을 드러냈지?"


"다른 잡놈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자네의 주인님만큼은 내 주인님의 동맹이 될 자격이 있거든. 그쪽이 주인님의 주교직을 맡아두기도 했고."


놈의 태연스런 대답에 아슬론이 성을 냈다.


"이 따위 주교직, 도로 가져가버려라! 감히 누구를 알룬님께 빗대는거냐!"


"내 주인께서는 외계인들에게 핍박받는 사람들을 궁휼히 여겨 나서셨다. 그대의 주인님 또한 마찬가지지."


"알룬님께서는 네놈들처럼 방만히 행동하신 적 없다."


"우르닥이 그 말을 들으면 지하에서 통곡하겠구나. 네가 우르닥의 영지를 쳤을 때엔 어떠한 빌미도 없었을텐데?"


전쟁의 말에 아슬론의 말문이 막혔다. 녀석은 내 영지 근방에서 있었던 일까지 알고있던건가? 아슬론은 이제껏 그래왔듯 할말이 궁해지자 무기를 휘두르려했다. 그러자 애버론이 그것을 막았다.


"아슬론, 진정해라. 이놈이 아무 대책도 없이 우리 앞에 나섰을리가 없지 않느냐."


"이 토굴은 우리들의 은신처 겸 통로로 쓰이고있다. 이래저래 복잡하게 얽혀있으니 안내인이 없으면 길 잃기 딱 좋지."


전쟁의 기사는 태연스레 말하며 토굴을 지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조금 큰 개미굴처럼 되어있는데, 길이 배배 꼬여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푸르뉘우스에게 이만한 시설을 건설한만한 역량이 남아있다는 점이 의심스러웠다.


애버론도 똑같은 생각을 한 듯 미심쩍게 중얼거렸다.


"부랴부랴 북부로 도망쳐온 것 치곤 시설이 과하게 좋은데?"


"여긴 옛 시대의 밀수꾼이 만들어놓은 곳이다. 우린 보수만 조금 진행했을 뿐이야."


전쟁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우리를 기만하기 위한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아슬론은 애써 그를 조롱하듯 말했다.


"그래. 이 땅굴에 처박혀서 뭘 하려는거냐?"


"당연히 신성제국을 부활시켜야지. 우린 이미 이 통로를 이용해서 인원과 자금을 확보했다. 이곳 뿐만이 아니야. 나의 동포들이 다른 유적들 또한 발굴하고 있는 중이다."


푸르뉘우스는 신성제국의 힘을 이용해서 각국의 현인과 지식들을 그러모은 전적이 있다. 그러니 이런 유적들에 대해서 잘 알고있을 법도 하다. 아슬론이 놈의 이야기를 듣다가 발끈했다.


"건방진 꿈을 꾸긴... 내가 지금 당장 네놈들과 함께 신성제국의 미래도 토막쳐주랴?"


"이 무식한 용인아. 우린 아직 언데드들의 활동영역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이 넓은 토굴을 하염없이 헤메고 싶다면 그래보든지."


전쟁의 말에 애버론이 아슬론을 말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시지. 저놈들이 왜 갑자기 이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는거냐? 다른 놈들은 몰라도 흑색 기사단이 움직이는건 좌시할 수가 없는데..."


"너희도 대충은 짐작하고있지 않나. 북서부 최대의 길드에서 쫓겨난 외계신이 복수를 위해서 사령술사들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네놈이 좋아하는 흑색 기사단과 그 주인도 있어."


자신들을 멸망시킨 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치곤 설명이 꽤나 자세하다. 오래지 않아 그의 속내를 꿰뚫어본 애버론이 코웃음을 친다.


"본인들과 활동영역이 겹쳐서 애가 타셨구만. 우리가 저놈들을 대신 처리해줬으면 하는건가?"


"싫으면 가만히 방치해두시던가. 저대로 몇달만 놔두면 북부인들 모두가 시체의 군세로 변해 전 대륙을 덮칠거다. 사악한 신성제국의 만행을 심판하셨던 용사님들이 그런걸 가만히 두고보진 않을테지?"


우리들을 비꼬는 동시에 구슬리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이제보니 전쟁의 기사 주제에 전쟁질보다는 아가리 파이트에 특화된 모양. 애버론은 그의 말을 웃어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의 말대로 저걸 가만히 방치해두긴 곤란한 모양.


그의 옆에있던 젊은 마법사 한 명이 자신의 짧은 지식을 과시하며 대신 반박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령술사라도 한 번에 통제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쪽의 말은 과장이 너무 심한데..."


"과장이 아닙니다. 보통 사령술사들이야 많아봤자 몇백구가 한계지만, 흑색 기사단의 주인은 시체들을 있는대로 부릴 수 있으니까요."


이제껏 말을 아끼고있던 엘리자베스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애버론 파티와 놈들은 나름대로 면식이 있는 모양. 아슬론이 잠시간의 침묵을 틈타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놈은 뭡니까? 시체 주제에 묘하게 예의바르던 놈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알고있던데."


"그놈과 그놈의 주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구시대의 마법왕국 이야기부터 해야하는데."


애버론이 곤혹스러움을 보이자 아슬론이 뭐 그런걸로 걱정하냐는 듯 내뱉었다.


"저 시간 많습니다."


"좋아. 우리 원정대원들 중에서도 젊은 친구들은 놈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애버론이 이야기를 시작할 기미를 보이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고위 마법사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받을만한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심지어는 전쟁의 기사조차 은연중에 경청의 자세를 갖춘다.


애버론은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먼저 아슬론에게 물었다. 대화의 참가자가 많아지면 이야기에 두서가 없고 복잡해지기만 할 뿐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혹시 마법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나?"


"잘은 모르겠습니다."


아슬론이 쉽게 대답하는 사이, 그 이름을 떠올린 내가 딴지를 걸었다.


"잠깐. 아슬론, 우리 영지에서 발견된 던전이 마법왕국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잖아."


"아..."


얼마전에 던전이 발견됐을 때, 라르고는 이 주변 일대의 영지들이 구시대의 마법왕국 위에 건설된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우리 영지의 주변 일대가 어떤 곳인가? 남부 지방의 요충지. 신성제국의 식량 생산을 책임졌던 금싸라기 땅이다.


옛부터 남부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이들만이 이 땅을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좀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마법왕국은 이곳을 점령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였음이 틀림없다.


구시대의 마법왕국이 우리 영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음을 깨닫게된 아슬론은 금세 성실함을 되찾았다. 사실 이전까지는 본인이 물어놓고 약간 시큰둥한 기색이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흑색의 기사단장 뿐이었다.


"마법왕국은 구 신성제국의 영토를 점령할만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어. 이름대로 마법 기술은 대륙 최고급이었고... 그렇다고 군사력이 달리는 것도 아니었지. 기사단과 병단도 제법 충실한데다, 그 중에서도 흑색 기사단은 당시로선 전승무패를 자랑했거든."


"그놈들은 옛날부터 있었던겁니까?"


"보충 인원과 결원이 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법왕국에서 그대로 이어져왔다고 보면 돼. 아무튼 마법왕국은 다른 많은 국가들이 그래왔듯 내분으로 인해 최후를 맞게된다."


정확히는 마법왕국 특유의 엄격한 신분제에 반발한 국민들의 반란 때문이었다. 흑색 기사단은 최후까지 왕궁을 사수하며 싸웠으나 숫적인 열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원 사망. 왕가의 핏줄들도 공주 한 명을 남기곤 모조리 몰살당한다.


애버론은 이 즈음부터 드물게 우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왕가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공주는 복수를 위해서 금단의 마법에 손을 댔지. 그게 바로 사령술이다. 그녀는 흑색 기사단과 자신의 종복들을 되살려서 복수를 꾀했어."


"그런 거물이 왜 지금은 이렇게 춥고 외진 북부에 처박혀있답니까."


"그야 다른 이들로부터 총공세를 받았으니까. 사령술이 괜히 금단으로 지정된게 아냐."


시체를 되살려서 망자를 조롱하는게 쉽사리 받아들여질리 없다. 대략적인 사정을 이해한 아슬론이 맨 처음의 질문을 다시금 꺼냈다.


"그래서, 그놈은 왜 그렇게 예의바른거죠?"


"자기가 아직 흑색 기사단 단장인 줄 알거든. 왕국과 기사단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일은 할 수 없다는거야."


"시체 주제에 자존심은..."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우린 루그레스의 사도가 죽었는지 확인도 못했고, 시체들의 군세도 막아야해. 죽음의 군주는 북부를 정벌하고 난 뒤엔 필시 남부로 찾아올거다."


자신의 땅을 되찾지 못한 그녀가 우리쪽으로 향할 것은 뻔하다. 애버론과 대원들은 즉석에서 다음 행동을 결정하게 됐다.


지금 이 인원들만으로 죽음의 군주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애버론과 그 일행들은 분명 강력하지만... 소수 정예들로 모든걸 해결할 수 있으면 뭐하러 군대를 양성하겠는가? 그토록 강했던 루그레스의 사도조차 시체들의 물량공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번 상대가 무척 극단적인 놈이라는 것이다. 사령술을 쓰는 놈이라면 살아있는 생명체 모두가 적이라고 봐도 된다. 게다가 죽음의 군세는 우리의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지라 북부의 협조를 이끌어내기도 쉽다.


아슬론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한 마디 했다.


"그래서, 저흰 이제 어떻게합니까? 북부를 돌아다니며 연합군이라도 모집해볼까요?"


"아니. 가만히 있으면 그쪽에서 찾아올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건 북부인들이지 우리가 아니니까. 일단은 귀환해서 정비를 마치도록 해."


여기에 있는 신도들은 대부분 길드 간부들의 주력멤버다. 이들이 이 이상 자리를 비우는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애버론의 말에 지친 대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애버론은 주변 대원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듣고있다가 엘리자베스에게 접근했다.


"너는 이제 어떻게 할테냐? 의탁할 곳이 없으면 자유 교역 도시에서 지내도 된다."


"... 아닙니다. 저는 아슬론님을 따라 알룬님의 영지에 가보고싶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엘리자베스가 내 허락을 구하듯, 아슬론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일전의 복제인간 사건으로 인해 애버론에 대한 불신이 싹튼 모양. 나는 그녀의 체류를 어렵지 않게 허가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전쟁의 기사가 우리쪽을 잠깐 돌아보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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