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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에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1.03.27 17:03
최근연재일 :
2021.04.21 16: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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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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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5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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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미행

DUMMY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고 바람을 쇠고 싶어 황독주의 별채를 나왔다.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는 없어 연무장으로 오니 아직도 많은 수가 연공에 열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연무장 한편으로 발걸음이 이어졌고 눈을 감고 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애써 시상에 맞춰 검을 휘둘러 보았으나 마땅한 검초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의미 없고 흉한 몸부림에 그칠 뿐이었다. 나는 부끄러워 퍼뜩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당연히 나는 그들의 이목을 사고 있었기에 꽤 많은 수가 나의 몸부림을 보고 있었고 꽤나 어우스꽝스러웠는지 킥킥 거리고 웃고 있었다.


쪽팔려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머리는 텅 비고 잠시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칼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있으니 누군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한 판 붙자”


흑수말갈일까? 거친 북방 사투리였으나 단순한 내용이라 알아듣긴 충분했다. 아마도 조금 전 나의 형편없는 검술이 그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이미 승부는 난 걸로 아는데.”


그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돌려 다른 놈을 불렀다. 아마도 신라 말이 가능한 놈일 것이다.


“한 판 붙자.”


“일전에 이미 승패가 분명했는데 다시 붙어야 할 이유라도 있소?”


그는 다시 통역을 통해 반박했다.


“나는 지금까지 너를 꺾기 위해 노력했고 더 강해졌다.”


“이틀 동안 노력한다 해서 큰 진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소만.”


“무엇보다 너 따위에 지는 바람에 호법이 되고자 했던 나의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역시 호법이라는 것이 꽤 대단한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다시 꺾어줘야 할 이유가 생긴 샘이다. 나도 황독주를 도피시키지 못한다면 호법의 자리를 노려야 하기에.


“좋아. 이번에도 내게 진다면 호법은 포기해라.”


나는 그가 두렵지 않았기에 호기를 부려보았다. 전에 그를 맞아 어려운 지경에 몰린 것은 내가 그보다 약해서가 아니라 창이라는 병장기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창술에 익숙하고 무엇보다 나의 실력 또한 일취월장 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흥. 호법자리가 포기한다고 되고 하고 싶다고 하는 자린 줄 아느냐?”


“이번에도 손목을 베지 않는다곤 장담 할 수는 없다.”


그의 치욕을 자극하는 격장법을 써 보았다.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어느새 격분한 윤강호의 장창이 목을 찔러 왔다.


그의 창술은 이미 완전히 간파하고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놈은 내가 어떻게 자신의 창술을 예측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전보다 훨씬 더 기합이 들어가 힘과 절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계속 쉴새 없이 터져나오는 기합소리가 다소 시끄럽게 느껴졌다.


어찌보면 그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그 앞에서 나를 꺾겠다는 당찬 포부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이얍!”


그의 강한 창은 나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미 그보다 훨씬 강한 복호당주와 도법교관의 칼도 모두 막아낸 내가 아닌가?


“뭐가 더 나아졌다는 것인가?”


“후압!”


창격을 막고 흘리고 피할 때마다 놈은 더욱 더 맹렬하게 소리지르며 창술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강한 창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이무승과 최중달과의 대결에서 수세의 묘를 완전히 채득했고 그의 창에 위태로운 상황을 맞기는 어려웠다. 너무나도 여유롭게 그의 창에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나와의 격차가 더욱 커진 것을 느끼는 듯 했다. 얼굴은 어느새 울상이 되었고 맥이 풀린 듯 힘 없는 창격이 이어졌다. 오히려 그가 터무니 없는 하수였다면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그 또한 분명 수준이 있는 무인이었기에 나와의 격차를 정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같은 무인으로서 더 이상 그의 자긍심을 짓밟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손을 썼다.


-유성만리(流星萬里)


이것은 전에 복호당주와 싸울 때 나도 모르게 떠오른 초식이었다. 한 줌의 진기로 강력한 일격을 가하고 싶은 갈망에서 나온 것이고 당시엔 탈진 상태라 시전 후 바로 쓰러져 기억이 없었다. 화가 난 복호당주가 나의 철검을 부러뜨렸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었다.


하지만 쓰러지기 직전 내가 본 그 광경이 다시 한 번 재현되었다. 기나긴 검기가 창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고 마치 세상을 두 쪽 내는 듯 보였다.


하단전의 기운이 가늘고 길게 끊임 없이 이어지며 검기가 세상의 수평선이 되는 듯한 착각. 검기는 창을 잘라버리고 윤강호의 왼쪽 옆구리를 지나 연무장 구석에 있던 병기고의 기둥을 직격 했다.


검격에 무기고가 떨리는 것 이상으로 윤강호와 지켜보는 이들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누구보다 내가 더 크게 떨고 있었기에.


생전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기나긴 검기, 그럼에도 공력의 소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복호당주와의 대결에서도 한 줌 남은 공력으로 아주 긴 검기를 뽑았던 것이다.


윤강호는 반토막이 된 창을 쥔 채로 떨고 있었다.


“정신차려라. 패배는 병가지···..”


“나도··· 나도 외공에 치중하지 않고 내가기공을 깊이 익혔다면 이렇게 지지 않았을 것을···”


그의 말은 사실 틀린 이야기다. 나는 내가기공을 그리 깊게 익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고수와의 대결에서 언제나 부족한 내공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류성원, 이무승, 최중달은 모두 나보다 훨씬 심후한 내공을 지닌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의 미력한 내공으로도 길고 긴 검기를 뽑아냈기에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억울하면 사흘 후에나 오시오.”


짧은 말을 마치고 다시 황독주의 별채로 발을 옮겼다. 다행히 그는 이미 와 있었고 나는 은밀히 그에게 도주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반응이었다. 인질로 잡혀있던 딸 조차 도피시켰음에도 그는 적룡방을 떠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과연 억지로 잡혀온 사람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도주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을 줄 알았기에 조금 실망스러웠다.


“도주 할만한 방법이 전혀 없겠습니까?”


“우리 부부는 무예에 조예도 없고 이제는 나이를 먹어 빠르게 달릴 수도 없으니 적룡방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산을 넘기는 무리요.”


나는 한 가지 방안이 있었으나 위험한 것이라 그가 동의 할지 알 수 없었다.


“새벽에 배를 바다에 띄우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적룡방의 앞바다는 여름에도 물이 찬데 이제 겨울이니 더더욱 어렵소. 거기다 누가 배를 가져온단 말이오?”


“개심사에 있는 의원의 제자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성진이와 접촉은 가능하지만 그가 배를 세내어 거친 바다로 오는 것은 지금은 무리오. 거기다 바다로 가려면 적룡방의 정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거긴 항상 감시가 있으니 어찌 가겠소? 그것은 바다가 따뜻해지길 기다려 적룡방의 동태를 보고 해야 할 것 같소.”


그는 탈출을 미루는 느낌이 강했다. 탈출하다 잡혀 욕볼 것을 두려워해서일까? 아니면그것은 그가 적룡방에서 하고 있는 일 때문일까?


“그렇다면 적룡방의 호법은 감시 없이 드나들 수 있습니까?”


“호법은 적룡방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데 당연히 가능하나 그들은 적룡방에 충성하니 우리의 도피엔 도움이 되지 않소.”


그는 내가 적룡방의 호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니 생각의 한계가 있었다. 물론 내가 복호당주의 시험을 통과 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


“현재 적룡방의 사정을 알 수 있습니까?”


느닷없는 물음에 그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내가 그 때문에 사지로 들어온 것을 감안하여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적룡방은 현재 세를 늘리고 있지. 그런데 왜 그런 것이라 생각하나?”


“글쎄요. 무림의 방파들이 세를 불려 힘을 과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흠···”


그는 숨을 한 번 고르더니 작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마교(魔敎)때문이네.”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흑도무림의 적룡방이 마교와 손잡는다 한들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적룡방은 사파에서 세손가락에 꼽히는 큰 방파인데 이들이 마교 아래 들어갔고 듣기론 혈웅방 또한 포섭되었다하네. 그것은 빙교가 삼한을 장악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지. 곧 무림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어닥칠걸세. 나와 구독문주가 여기 와있는 것도 빙교의 숙원을 푸는데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더더욱 빨리 여기서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도 느꼈겠지만 나와 구독문주가 여기서 큰 대우를 받지 않던가? 잡혀 온 사람으로 보이던가?”


사실이었다.


“제가 보기에도 황의원께선 여기 적룡방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요. 이렇게 별채도 따로 내어주었으니 잡혀 온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건 나와 구독문주가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서 그러네. 우리가 없으면 마교의 거사는 누구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나는 전에 구독문주가 떠들던 것을 떠올렸다.


“혹시 그 빙혼강시와 관계된 일입니까?”


“자네는 거기에 대해 너무 깊이 알 필요는 없네. 따라 오게.”


그를 따라 별채 옆에 몇개의 병상이 놓인 의원이 있었다. 적룡방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자네는 오늘부터 여기서 보내게. 아직 적룡방도가 아니니 함부로 돌아다닌다면 곤란한 일을 겪게 될 것이야.”


어차피 나는 적룡방 내부에서 아는 곳은 복호당과 연무장, 그리고 황독주의 별채 뿐이었고 그 세곳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복호당 뒤로 전각들이 여러 개 있었으나 그 뒤로는 가보지 않은 것이다.


황독주가 떠나고 최치원의 시를 외며 어두워 지길 기다렸다. 시의 함의를 풀 방법은 없었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에게 적룡방 내부 구조와 전각 위치를 대충 들었고 가보아야 하는 곳이 떠올랐다.


다행이 칠흑 같은 어둠에 그믐이라 야음에 몸을 숨기기 좋았다. 이 음침한 밤을 이용하여 내가 향한 곳은 구독문주가 이용하는 별채였다. 황독주의 별채와 마주 보고 있어 크게 의심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으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듣기로 그는 자발적으로 적룡방에 가담하여 처와 딸까지 데려왔다 들었는데 모두 벌써 잠들었다니 이상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려다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나는 급히 몸을 숨겼다. 구독문주 일가였다. 어딘가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그의 성미와 다르게 제법 다정한 가장의 모습이었으나 나는 그 순간 해독제를 얻어 낼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의 처와 딸이 별채로 들어가자 그는 다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수상하여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미행하니 구석에 있는 한 전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직도 불이 켜진 그 전각은 뭔가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졌으나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모르는 새 벌써 전각의 왼 쪽 기둥에 바짝 접근해 있었고 벽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위험한 일인 것을 알았고 두려움이 일었으나 이미 커질 때로 커진 호기심을 억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화들짝 놀라 거의 주저앉을 뻔 했다.


“웬 놈이 미행하는가 했는데 네 놈이었군. 크크큭.”


그는 미행을 알아채고 나를 유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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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것은 강시인가 호법인가? 21.04.21 62 0 15쪽
18 적룡방주 등장 21.04.19 55 1 12쪽
» 미행 21.04.15 105 0 12쪽
16 최치원의 시(詩) 21.04.13 98 0 14쪽
15 도법교관 최중달 21.04.09 103 0 13쪽
14 복호당주와의 대결. 21.04.07 124 0 14쪽
13 구독문주와 생사여의(生死如意) 21.04.05 128 0 12쪽
12 비무(比武). 21.04.03 172 0 15쪽
11 칠보산(七寶山)에 서다. 21.04.02 158 0 12쪽
10 뜻 밖의 대결 21.04.01 188 2 11쪽
9 상단주 류성원 21.03.31 234 2 13쪽
8 천하제일쾌검(2) 21.03.30 210 2 12쪽
7 천하제일쾌검 21.03.29 241 2 13쪽
6 금운루(錦雲樓)의 주인 21.03.28 239 3 13쪽
5 주루(酒樓)에서의 결투(2) 21.03.28 281 4 11쪽
4 주루(酒樓)에서의 결투 21.03.27 291 4 12쪽
3 색마 조주벽(2) 21.03.27 332 4 13쪽
2 색마 조주벽 21.03.27 372 4 16쪽
1 살아남기 21.03.27 68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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