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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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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1.03.27 17:03
최근연재일 :
2021.04.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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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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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살아남기

DUMMY

난세가 찾아온 삼한 땅, 필부의 삶에서 마주쳐야 하는 위험은 수도 없이 많다. 기근과 병마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 평범한 일일까? 나무를 하다 숲에서 표범을 마주칠 땐 간담이 서늘해 지고 운이 나쁘다면 크게 다칠 것이다. 하지만 굶주린 칡범이나 돈독 오른 비적 떼를 맞닥뜨린다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반드시 목을 내어놓아야 할 것이다.


천수는 누리고 싶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지만 한 가지 딱 남들만큼 가진 것은 제대로 누리고 싶다는 소망. 그래서 한 가지 삐딱한 답을 찾았고 오십년근 산삼을 판 은자 다섯 냥에 무예를 배웠다.


풀뿌리나 캐 먹는 입장에선 너무 큰 사치라고 할 수 있겠으나 뭐 어떤가? 범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데. 나는 어린 시절에도 내 목숨 값이 그보단 더 나간다고 믿는 자긍심 높은 아이였다. 거기다 덤으로 무병장수까지 누릴 수 있다니 아니 배울 수가 있나.


그런데 잘 모르겠다. 뭔가 시원찮다. 약속한 일 년을 채운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의 자긍심만큼 재능이 높진 않았을까? 표범에게 졌다. 검을 휘둘러 칡범도 때려 잡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그나마 놈이 앞다리에 상처를 입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팔이 빠진 내가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한 달 전에 봐두었던 칠십년근을 뽑아서 팔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일 년만 더 배우면 표범 따위 수월하게 때려 잡지 않을까? 비적 떼와 맞붙어도 이기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고민은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그 동안 무예를 가르쳐 준 스승이 말 없이 고을을 떠났기에.


그리고 십 년 동안 나는 가야산 일대의 모든 것을 이기기 위해 혼자서 노력했고 마침내 가야산의 모든 짐승과 비적을 꺾었다. 그 중엔 표범과 칡범, 승냥이떼, 악명 높은 비적들 또한 포함되었다. 이제 가야산 주린 범이라고 하면 일대에선 꽤나 유명했다. 비록 누구도 내 이름자는 몰랐지만.


문뜩 해묵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은자 다섯 냥에 일년 동안 나를 가르쳤던 스승이 해준 이야기. 그것은 한 사람의 무용담이다. 삼한제일인(三韓第一人) 숭무단주(崇武團主)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작금의 삼한 정세를 만든 사람이었다.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절세고수가 전란에 휩싸인 삼한 땅 모든 군벌의 수뇌를 죽여버렸다. 왕이라 칭하는 이, 성주라 칭하는 이, 장군이라 칭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그의 검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른바 왕이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숭무단주를 경외하였으나 그는 군림하지도 다스리지도 않았다. 다만 왕이 되겠다 나서는 이를 다 죽일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구도 백성들을 착취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허용 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이 같아졌다. 그야말로 사람의 귀천이 없어진 것이다. 다만 그 귀천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빈부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농민은 더 이상 나라에 조세를 내지 않았다. 나라님이 없으므로. 상인은 누구와 무엇이든 거래 할 수 있었다. 숭무단이 앞장서 최고의 상단이 되었기에. 그렇게 단 한 사람이 나타나 천지개벽한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이제 삼한의 필부가 아니라 무림으로 들어가 무인으로 살고자 한다. 그것이 만만치 않더라도 내 목숨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 알아보겠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 알아내겠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이 비정한 삼한 땅. 왕도 다 죽어버린 비정한 곳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알고자 하는 것들,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들을 알아내고 이룰 것이다. 무인으로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오랜 고민의 끝에 마지막까지 두 가지 답이 남았다. 첫 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를 꺾는 것.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어렵고 지금의 나에게는 불가능한 답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비겁하더라도 한 가지 답을 더 남겨두어야만 했다. 나 보다 강한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피해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 굴욕적이고 비겁한 이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인이사가 수도 없이 많은 강호에서 나보다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또 그리하면 내가 무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구차하더라도 한 가지 답을 더 찾아냈다. 가장 큰 세력, 힘있는 세력을 등에 업는 것. 그리고 작금의 삼한 땅에 그 세력은 숭무단 하나이다. 왕까지도 다 죽여 버린 숭무단이야 말로 이 시대의 가장 힘있는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숭무단은 나 같은 어중이 떠중이를 다 받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절세무공도, 유명한 스승도, 좋은 내력도, 인맥도 없는 내가 숭무단에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참의 고민 끝에 내린 나의 답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하면 약간의 명성도 얻고 명문정파의 인재만 모인다고 하는 숭무단에 들어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답은 다른 두 가지 의문을 불러온다.


도대체 누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인가? 그리고 내가 그를 꺾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가 꺾을 수 있는 가장 나쁜 놈을 물색했다.


강호에는 숱한 비무와 뜻하지 않은 승부가 펼쳐진다. 지금 내가 붉게 단풍 든 나무에 숨어 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무림의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은 명성을 얻기 위해, 또 죽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크나 큰 위험이 뒤따른다. 자신의 명성을 잃을 수도 있고 자신의 팔을 잃을 수도, 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인의 욕망은 언제나 죽음과 닿아있다.


나의 욕망 역시 그러하다.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놈과 싸워 절대로 지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는 강해지기 위한 수련에 더해 확신을 얻기 위한 연구가 필요했다.


최근까지 그와 싸워 이기고 진 자의 무위를 파악하고 장단점을 연구하는데 봄과 여름을 보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승리를 확신하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방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결국 실패로 이어짐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야산의 표범을 잡기 위해 한 번의 실패가 필요했고 칡범을 잡기 위해 또 한번의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녀석들을 잡기 위한 모든 역량이 이미 나에게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범들을 놓쳤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람이었다. 내가 가야산 일대를 호령하기까진 무려 열 두번의 싸움이 필요했다. 거기서 단 한번의 패배도 허락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사람과의 승부에선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되지 않는 것. 그것은 인간의 집요함과 잔혹함이 짐승보다 더 했기 때문이고 나는 그것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조주벽. 저 색마를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서 만날 줄이야. 하지만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오히려 다행인지도. 이런 것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이 아닐까?


황갈색 단풍이 아름다운 이 나무는 몸을 감추고 한 사람을 기다리기에 딱 좋았다. 이 인적 드문 속리산 기슭에 삼한 제일의 색마(色魔)로 일컬어지는 녹림의 거목 조주벽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올 줄이야. 강호사화(江湖四花)중 하나이며 최고의 후기지수들인 사룡삼봉(四龍三鳳)으로 꼽히는 이화소백검(梨花小白劍) 서문민정이 조주벽과 한판 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조주벽은 흔히 백도에서 녹림삼적(綠林三賊)으로 불리웠다. 이제 사십 중반에 접어든 중년 고수인 그는 흑도(黑道)에서 그 무명을 떨쳤고 백도(白道)에선 악명이 자자했다. 그가 녹림삼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까닭은 세가지다.


돈이 떨어지면 반드시 훔치고(盜賊), 미인을 보면 처녀와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며(奸賊), 산에 숨어 비적질을 일삼는 그의 악행에 기인한다. 하여 정파에선 그 한 사람을 두고 녹림삼적으로 칭하여 왔고 협의지사들은 항상 그와 마주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조주벽의 무위는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십이초 묵룡수는 신기절묘하여 웬만한 추격자들은 비명에 보냈고 특히나 초상비(草上飛)를 넘어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지마저 넘어섰을지 모른다는 절정경공 영지운중행은 이름 난 고수를 맞닥뜨렸을 때도 그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때문에 그는 여러 번 패했으나 여전히 죽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조주벽을 꺾고 이름을 날리고 싶은 공명심 때문에 그를 추적해온 것이었으나 그 보다 서문민정의 소문난 미색을 살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호기심과 본능 이었다. 귀가 닳도록 들은 강호사화(江湖四花)의 미색을 실제로 구경하게 될 줄은 색마 조주벽을 쫓을 때는 미처 기대하지 못한 횡재였다.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썹 아래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나의 시선은 잠시 멈추었다. 다시 가늘고 긴 그녀의 목에서 출발한 오묘한 몸의 굴곡을 따라 시선이 흘렀고 그 종착점은 크나 큰 부끄러움이다.


부지불식간에 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때의 나는 색마 조주벽이 욕망을 주체 하지 못할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보다 호기심은 더욱 컸기에 나는 둘 앞에 나서지 않고 계속해서 그 둘을 지켜보았다.


“오호라. 역시 강호사화의 미색은 명불허전이로다. 그 동안 내 품에 안겨 울고 웃었던 계집애들이 한 순간에 잊혀지는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로군.”


조주벽은 충혈돼 시뻘건 눈으로 음흉한 미소를 흘렸고 그의 목소리엔 기쁨과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흥. 이 색마야. 나 서문민정이 이 땅의 모든 여자들을 대신해 너를 단죄 할 것이니 이제 그 더러운 목을 내놓거라.”


서문민정은 자신의 장검을 뽑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단호한 결기와 비장함이 담긴 그녀의 기합이 하늘을 찔렀고 온 숲을 울렸다.


그녀의 의기(義氣) 가득한 말은 또한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저 공명심에 조주벽을 노렸던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어떤 대의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하지만 조주벽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그는 그녀의 말에 놀란 척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다시 음흉한 웃음으로 답했다.


“흐흐. 좋구나, 좋아. 자고로 계집은 그렇게 반항하는 맛이 있어야지. 요즘 강호에선 계집과의 싸움은 십 초를 접어주는 것이 관례라고 하더군. 나 또한 십 합까진 공격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은 말거라. 나는 계집에겐 부드럽고 관대한 남자이니.”


작가의말

주말동안 여러편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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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칠보산(七寶山)에 서다. 21.04.02 158 0 12쪽
10 뜻 밖의 대결 21.04.01 188 2 11쪽
9 상단주 류성원 21.03.31 234 2 13쪽
8 천하제일쾌검(2) 21.03.30 210 2 12쪽
7 천하제일쾌검 21.03.29 241 2 13쪽
6 금운루(錦雲樓)의 주인 21.03.28 239 3 13쪽
5 주루(酒樓)에서의 결투(2) 21.03.28 281 4 11쪽
4 주루(酒樓)에서의 결투 21.03.27 291 4 12쪽
3 색마 조주벽(2) 21.03.27 331 4 13쪽
2 색마 조주벽 21.03.27 372 4 16쪽
» 살아남기 21.03.27 68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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