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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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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1.03.27 17:03
최근연재일 :
2021.04.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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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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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색마 조주벽(2)

DUMMY

“이 색마들아. 나를 능욕하려거든 차라리 죽여라.”


아혈이 풀린 서문민정이 짐승처럼 부르짖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쌍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눈앞의 음적에 당해 분하고 힘든 마음이야 알겠으나 왜 나까지 조주벽과 같이 색마로 묶는단 말인가? 내가 그녀의 손목을 잡길 했나 옷을 벗겼나? 아니면 이 색마가 그녀를 제압하는데 도움을 주길 했는가? 왜 자신의 피해망상으로 나를 모욕하는가 말이다.


황당하고 분하여 그녀를 바라보니 원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 발로 이 색마를 찾아왔을 때는 이런 비참한 말로도 각오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떤 대꾸도 위로의 말도 건네기 싫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눈앞의 강적에게 집중하는 것이 옳았다.


“이 간적아.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될 것이니 목을 내어놓거라.”


“크하하하핫. 오늘은 내 제삿날이 아니라 자네가 동정 땐 날로 만들어주지. 크하하핫”


그는 크게 뒤로 물러나더니 이 한 마디를 남기고 풀숲으로 달아났다. 내 경공으론 그를 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내게 한가지 숙제를 남긴 채 사라졌다.


조주벽이 떠나버린 지금 그녀는 이제 제법 크게 흐느끼고 있었고 굵은 눈물이 그녀의 뺨과 목, 그리고 그녀의 젖가슴까지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시선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인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반쯤 드러난 젖가슴을 두 팔과 손으로 가린채로 거칠게 부르짖었다.


“이 색마야. 네가 나를 욕보이려 한다면 나는 혀를 깨물고 죽으리라.”


그녀가 자신의 정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가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나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만들었다.


“흥. 당신은 그 색마와 겨루려 찾아 왔을 때 이런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았소?”


“무슨 각오 말이냐? 싸우다 지면 죽으면 그 뿐. 그는 응당 심판을 받아야 하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야.”


대책 없는 그녀의 답에 뭐라 답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딱히 그녀를 책망할 마음도 없었으나 나를 바라보는 경멸의 시선과 저속한 태도가 나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누가 당신 같은 허접한 삼류에게 목을 내어 준단 말인가? 그 색마가? 그리고 색마가 괜히 색마인가? 여자를 보면 못 참으니 색마가 아닌가?”


“시끄럽다. 이제 나를 어떻게 할 샘인가?”


“어쩌긴 뭘 어째? 나는 못생긴 년은 관심 없다.”


나의 말에 그녀의 낯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그럼 나를 그냥 보내주겠단 말인가요?”


이제서야 그녀는 조금 유순한 말투가 되었고 금새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심사가 불편 한 듯 눈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어찌할 마음도 없었는데 왜 당신은 그 음적의 말만 듣고 사람을 그 같은 부류로 보는지 모르겠군.”


“남자들이야 미인을 보면 다 어떻게 해보려 하는 존재가 아닌가?”


“세상에 왕 노릇 하려는 놈들이 다 죽었는데 지랄 같은 공주병은 남았군··· 나는 그 색마의 점혈법을 모르니 점혈이 저절로 풀릴 때까지 호법을 서드리겠소.”


나는 몇 가지 점혈법은 알았으나 그녀의 점혈을 풀기 위해선 반드시 신체 접촉이 필요했다. 하지만 반쯤 벗은 여자의 몸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무슨 오해를 살지 모르는 일이었고 특히나 나를 음흉한 사람이라 여기는 이 여자와 얽히기 싫었다.


그녀의 뒤에서 땅에 떨어져있던 그녀의 검과 나의 검을 땅에 꽂아 두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는 척 했다. 그녀는 점혈을 푸는데 집중하는 듯 조용했고 나 역시 고요함을 즐기며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예상했던 상황이 닥쳤다. 그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분명 나를 시험에 빠뜨리곤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삼한 땅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미인이 헐벗은 채로 있으니 내가 그녀를 반드시 취할 것이라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내가 그녀를 겁탈한다면 이 노련한 흑도의 무법자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반드시 지금의 상황도 노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방심하여 삼매에 들어있는 듯 보였을 것이고 서문민정의 점혈은 아직 풀리지 않았을 때를 말이다.


‘삼십장.’


뒤쪽 삼십장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고 십장까지 접근 했을 때는 앞에 꽂아 놓은 두 자루 검신에 반사되는 그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제 나와의 거리는 오장. 한 번의 도약으로 도달 할 수 있는 거리였으나 그는 조심스러웠다. 내게 들킬 것을 염려하여 오히려 가장 느리고 조심스럽게 접근 하는 것이었다.


절정경공을 발휘하는 고수가 기척을 숨기며 살금살금 접근하는 것이었고, 내가 정말로 운기조식에 들어가 몰아지경에 있었거나 욕정을 이기지 못해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면 절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방심하는 채하고 그를 기다리는 것도 분명 위험했다. 방금 전 대결에서 내가 몰아붙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칼을 쥔 유리함이 작용한 것이다. 지금은 비록 가까이 두었으나 칼을 쥐고 있지도 않았고 완전히 방심한 척 해야 했다. 무엇보다 녹림삼적의 무공은 얕볼 수준은 아니었다. 그의 음흉한 간계만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제 일곱 걸음. 그의 벽공장력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망설여졌다. 이 거리가 그를 한번에 제압하기에 충분한 거리인지 아니면 내가 훨씬 위험한 거리인지 알 수 없었다. 원래 다섯 걸음 거리까지 끌어들이려 했으나 더 이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기로 했다. 아니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즉시 옆으로 피하며 바로 앞에 꽂아 둔 칼을 쥐었고 그 순간 그의 벽공장력이 검신을 때렸다. 그 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땅에서 채 뽑히지 않은 검신이 크게 휘어졌고 나는 그의 공격을 피하는 대신 칼을 놓칠 수 밖에 없었다.


첫 번째 암습이 무위로 돌아가자 그는 재차 공격을 이어왔다. 나는 여전히 좋지 못한 자세였고 검까지 놓쳤으니 그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것이다. 사력을 다한 십이묵룡수의 연속적인 공세에 나는 바로 서지 못하고 땅을 뒹굴었다. 그렇게 여섯 번을 피하고 나서야 몸을 추스르고 두 발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는 전과는 다르게 말을 아끼고 계속해서 양팔을 휘두르며 맹공을 퍼부었고 황급한 나의 눈엔 땅에 꽂아둔 서문민정의 보검이 보였다. 나는 당장 그것을 뽑아 돌아서며 발검식을 시전했다.


- 춘풍요행화(春風搖杏花)


일반적으로 빠름에 중점을 둔 발검과는 다르게 느리지만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의외성을 가진 초식이었다.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다가 예측불가의 검초를 쓰자 그는 자신의 손을 거둘 틈이 없었다. 서문민정의 검이 나의 몸에 가려져 있었던 데다 오직 공격만을 생각하고 있던 그였기에 이 검에 반응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묵룡수는 강력했고 무엇보다 그의 보법은 완전무결 했기에 그 짧은 순간에도 몸을 틀어 검로에서 살짝 벗어나는 듯 보였다. 보검이 그의 손목을 스쳤다. 하지만 얕은 느낌. 그러나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손목아래가 뚝 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검기 수준으로는 그의 묵룡수를 동강낼 수 없었을 것인데.’


깜짝 놀란 나는 손에 쥔 보검과 떨어져 나간 그의 왼손을 번갈아 보았다. 놀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왼손을 잃은 조주벽은 놀라서 고통마저 잊은 듯 경악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흠··· 보검의 도움을 받았군. 하지만 당신이 꾸민 간계와 암습이었으니 그리 불공평하다 할 순 없지.”


나의 말에도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웬만한 검기는 통하지 않는 구성의 묵룡수인데··· 어찌··· 어찌···”


손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도 미친 사람처럼 혼자 주절거리고 있는 그를 보니 연민의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이제 그는 도망치려 해도 출혈이 심하여 멀쩡한 나를 따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를 바로 베어 버릴지 폐인으로 만들어 놓아줄지 결정해야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순간의 연민으로 그를 놓아준다면 아마도 훗날 좋은 일보단 나쁜 일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구나. 그 검은 그 할망구의 인지수성검(人地水聖劍)이구나. 크흐흐흐.”


그의 말에 내 손에 들린 보검을 살펴보니 검신이 예사롭지 않긴 했다. 검신이 눈에 띄게 하얗다는 것은 원래 알고 있었으나 칼날의 예기나 손안에서의 무게감 또한 최상인 것이 비범한 검이 분명했다.


“과연 천하삼대보검이구나··· 한노사가 목숨처럼 아끼는 보검을 제자에게 주었을 줄이야···. 하지만,하지만 아까 전엔 이런 예기는 느끼지 못했는데 어째서···어째서...”


초점을 잃은 눈빛, 계속해서 갸웃거리는 고갯짓은 그를 더욱 애처롭게 만들었다. 그는 한 가지 수수께끼를 풀자 스스로 다른 수수께끼를 찾아내고 있었고 그렇게 의문에 의문을 거듭했다.


그는 그렇게 손이 잘려나간 통증을 잊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구가 되거나 죽음을 맞이 할 운명을 모른 척 하기 위함일까?


“언제까지 미친 척 할 것인가?”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상황을 끝내려 했다. 그도 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노려보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굵은 피가 뿜어지던 왼 팔의 혈을 눌러 지혈했고 마지막 진기를 끌어올렸다. 양 팔이 다시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소매자락은 더욱 팽팽해졌다. 살기가 넘치는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한 장의 거리에서도 뿜어지는 살기가 피부에 짙게 전달 되었다.


그는 상처입고 죽을 때가 다 된 늑대였다. 서로간에 완전한 상황에서도 우세를 점했었기에 지금 승부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 상처 입은 늙은 늑대가 할퀴거나 무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참이었다.


‘이번에 끝낸다.’


마음이 일어나고 머릿속에선 쓰러지는 그가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검이 움직였다.


- 일입운중(日入雲中)


- 용득여의(龍得如意)


그의 마지막 묵룡수는 두려움도 탐욕도 없었다. 비룡이 여의주를 채듯이 거침없이 남은 한 손으로 나의 필살 일검을 잡아챘다. 그야 말로 목숨을 건 한 수였고 그는 아마도 그것이 실패할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무인으로서 자신이 갈고 닦은 최고의 한 수를 시험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인의 원초적인 욕망인 것이다.


반쯤 잘려나간 오른 손으로도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신(劍身)을 놓지 않고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처참했다. 나도 언젠가 겪게 될지 모를 모습이다.


“크흐흐흐흑. 인지수성검이 아니었다면 잡을 수 있었을까? 아니 내가 욕정을 절제하고 수행에 정진했었다면···”


그가 나에게 묻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것은 나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었다. 나의 낡은 철검으로도 그의 극성 묵룡수를 벨 수 있었을까? 그의 묵룡수는 나의 검을 결코 이길 수 없었겠지만 나 역시도 그를 베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은 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의 빠른 발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의 욕망이었다. 무명소졸(無名小卒)에 패해 도망쳤다는 말을 듣기 싫었을 것이고, 다잡은 서문민정을 안지 못하고 그냥 두고 가지 못했을 것이다.


욕망. 그것은 죽음과 닿아있다. 특히 무인의 욕망은 더욱 그렇다. 그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고 오늘은 그의 성욕, 명예욕, 승부욕이 나의 검을 받도록 강제했다.


한가지 예상치 못한 인기척이 나의 상념을 떨쳐냈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서문민정의 점혈이 풀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서 일어난 이 대결을 보진 못했지만 점혈을 풀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 분명했다. 이마에 맺힌 구슬땀, 창백한 안색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지치고 분한 감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무슨 검법인가?”


조주벽은 마지막 숨으로 입을 열었다.


“천살무혼(天殺武魂).”


“멋진 이름이군. 이 보검이 어울리는.”


우리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분함에 몸을 떨던 서문민정은 갑자기 몸을 던지더니 그의 가슴에 박혀 있던 인지수성검을 쥐고 아래로 그어 내렸다.


강호를 떨어 울린 색마는 그렇게 여러 토막의 시신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온 천하에 녹림삼적 조주벽을 쓰러뜨린 젊은 고수의 이름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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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것은 강시인가 호법인가? 21.04.21 6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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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복호당주와의 대결. 21.04.07 124 0 14쪽
13 구독문주와 생사여의(生死如意) 21.04.05 128 0 12쪽
12 비무(比武). 21.04.03 172 0 15쪽
11 칠보산(七寶山)에 서다. 21.04.02 158 0 12쪽
10 뜻 밖의 대결 21.04.01 188 2 11쪽
9 상단주 류성원 21.03.31 234 2 13쪽
8 천하제일쾌검(2) 21.03.30 210 2 12쪽
7 천하제일쾌검 21.03.29 241 2 13쪽
6 금운루(錦雲樓)의 주인 21.03.28 239 3 13쪽
5 주루(酒樓)에서의 결투(2) 21.03.28 281 4 11쪽
4 주루(酒樓)에서의 결투 21.03.27 291 4 12쪽
» 색마 조주벽(2) 21.03.27 332 4 13쪽
2 색마 조주벽 21.03.27 372 4 16쪽
1 살아남기 21.03.27 68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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