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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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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1.12.25 21:14
최근연재일 :
2022.01.17 03:24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834
추천수 :
57
글자수 :
138,763

작성
22.01.17 03:24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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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달콤한 꿈과 피폐한 현실

DUMMY

짙은 검정 머리의 십 대의 소년, 용사의 외모는 나와 같은 동양계의 남자였다. 용사님이라고 운을 띄운 내게 용사 블랙포드는 말을 편하게 놓을 것을 권했다.


“딱딱하게 굴 것 없어. 같은 파티가 된 이상 우리는 모두 동등한 관계야. 그렇지? 켈레나.”


“후훗, 물론이야. 시한이라고 했지? 켈레나라고 해. 화력은 내가 맡을 테니 빵빵한 회복 지원은 네게 맡길게.”


“네...아니, 응! 나도 잘 부탁해.”


용사의 부름에 그의 뒤에 앉아있던 농염한 원숙미를 지닌 30대 중반의 여인이 눈웃음을 날려 보냈다. 켈레나 브란체즈... 왕국 최고 명문가의 귀족이라 들었는데 직접 만나본 그녀는 귀족이라기보다 창부의 느낌이 더욱 강한 인상이었다.


그 후로 전투사 마닉, 사령술사 블라한 등이 차례로 내게 말을 건네며 대면식이 마무리 되었고 용사는 나의 합류를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다. 음산한 유령 저택의 로비에 마법으로 붙인 불을 둘러싸 술잔을 기울인 조촐한 규모였지만 나는 그제야 내가 이들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



“꾸에엑!”


마닉의 너클에 안면이 함몰된 마족 한 놈이 괴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적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일 검에 마족을 둘이나 베어낸 블랙포드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켈레나에게 마법 지원을 독촉했다.


“켈레나, 아직 멀었어?”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나갈 참이었어. 반딧불이의 춤!”


블랙포드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준비한 켈레나의 주문은 그녀의 영창에 따라 허공에 수십 개에 달하는 불덩이들을 만들어냈다. 일렬로 늘어선 불덩이들은 적들에 둘러싸인 블랙포드와 마닉의 곁을 맴돌며 그들을 공격하는 마족들의 몸에 달라붙어 순식간에 그들의 몸을 불태웠다.


불길에 몸이 타들어 가는 마족들은 격통에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마닉과 블랙포드, 그리고 블라한이 소환해 낸 해골 병사들은 틈을 놓치지 않고 무방비한 적들을 모조리 섬멸하였다.


얼떨결에 치른 나의 첫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다행히 전위를 맡은 블랙포드와 마닉의 상처는 얕게 베이거나 표피만 잘려나간 수준이라 낮은 수준의 치유 마법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다.


전투의 뒤처리를 맡은 블라한의 해골 병사들이 적들의 시체를 불구덩이에 옮기는 동안 우리는 갑작스런 기습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적들의 피에 절은 자신의 너클을 손질 중인 마닉이 투덜거렸다.


“젠장,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을 어떻게 알아챈 거지?”


“왕도로 가는 길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환영식이 열린다는 소식만 알고 있다면 매복할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아.”


“그러니까 내 말은 저 마족 새끼들이 환영식에 대한 소식을 어떻게 알았냐는 소리잖아.”


켈레나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마닉이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두 사람이 반목하자 리더인 용사 블랙포드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마닉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진정하라고. 마족에게 습격당한 마을이 어디 한 두 곳이겠어? 그러다보면 우리가 왕도에 간다는 이야기도 자연스레 전해졌겠지.”


“그치만 블랙포드! 말도 글자도 통하지도 않는 저 마족 놈들이 어떻게...”


“학계에서는 지금 마족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저들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


흥분한 마닉을 진정시키려는 블라한의 말에 나는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잠언이 떠올랐다. 우리가 마왕을 토벌하려 하는 것처럼 저들 또한 우리를 주살하려 한다는 생각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용사는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이기는 거 아니었어? 이러다 재수 없으면 나도 죽는 건가?’


비로소 자신이 안전한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적들을 직접 상대하는 동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후방에 있긴 하지마는 의무병도 전쟁터에서 죽는 건 매한가지다.


그때 불구덩이에서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가 블라한의 해골 병사를 밀치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불행히도 우리 일행 중 불구덩이와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것은 바로 나였고 불타는 시체였던 것(?)은 숨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나를 끌어안고 같이 산화하려 들었다.


“우왓!”


[꿍-]


그때 누군가가 커다란 방패를 들어 불이 붙은 마족을 튕겨 내었다. 그는 교단 본부에서 파견된 호위 기사 세 명중에 리더인 펙토스였다.


그에게 맥없이 튕겨나간 마족은 숨이 끊기기 전 불에 탄 성대를 이용해 마족의 언어로 무어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마족의 외침은 펙토스를 제외한 나머지 호위 기사들의 손에 들린 메이스와 망치에 그의 머리가 날아가며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칫! 아직도 숨이 붙어 있던 건가? 지독한 놈이군.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아마 저주 비스무리 한 거겠지. 성자 양반, 정화 주문 있으면 부탁해.”


“그래...”


귀기어린 마족의 단말마를 직접 들은 일행은 마닉을 시작으로 차례로 내게 정화 계열 치유 마법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세계 전이자 특전인 자동 언어 통번역 스킬을 지닌 내게 그의 마지막 말은 요연하게 전달되었다.


‘위대하신 세르티에게 영광 있으라!’


‘어떻게 된 일이지? 마족들은 주신 세르티를 저주하고 마신을 숭배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번잡해진 마음에 하는 둥 마는 둥 정화 주문을 외우는 나의 번민을 알아챘는지 나를 바라보는 블랙포드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



그날 밤, 따로 둘만의 이야기가 하고 싶다며 나를 호출한 용사 블랙포드는 대뜸 내게 이쪽 세상의 사람이 아니지 않냐며 물어왔다. 정체가 밝혀져 좋을 것이 없단 생각에 나는 애써 그의 의혹을 부인했지만 자신 역시 그러하다며 털어놓는 바람에 나는 솔직하게 이실직고 하였다.


“네 생각이 맞아, 나는 대한민국에서 왔어. 너는 어디서 온 거야? 일본? 아니면 중국?”


“그게 뭐지?... 아하! 하하하하. 이거 완전히 예상을 뛰어넘었는데? 대단하구만, 이곳의 신이라는 놈은.”


“무슨 소리야? 어디서 온 거냐니까... 설마?”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거 같은데? 아무래도 우린 서로 다른 세상에서 온 모양이야.”


놀랍게도 블랙포드는 지구와 다른 행성 혹은 별개의 우주에서 이곳 에이리스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용사의 역할, 나는 성자의 역할로.


다국적 그룹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다세상 그룹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블랙포드는 이러한 내막이 즐거운지 배를 잡고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있었다.


한편 낮에 있었던 사건이 떠오른 나는 블랙포드에게 그것에 대해 물었다. 그도 나와 같은 이세계 전이자이기에 분명 그 역시 마족의 언어가 별다른 무리 없이 해석되어 들렸을 것이 분명했다.


“맞아. 아마 세르티에 대한 기도였었지? 같은 신도를 죽이다니, 네 수호 기사들은 아마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될 거야. 크크큭.”


“농담이 아니야, 블랙포드. 이건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문제라고. 인간과 마족의 대립 문제의 원인인 신앙의 차이가 무의미하다는 소리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뭐?”


“마족과 인간의 다툼이 네가 말하는 그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이후 블랙포드가 내게 들려준 세계의 ‘진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마족의 사원을 토벌하고 그가 우연히 손에 넣은 서적에 따르면 ‘성자 리테르코 연대기’ 에 나오는 개종한 이대륙의 야만인, 그들은 바로 현재 이곳 에이리스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그들을 개종시키고 원대륙의 주인, 즉 마족들의 진보 문명을 전달해 현 인류에 수용시키고 마족의 역사와 문화를 개찬하여 인류의 역사로 왜곡해 다툼의 근원을 만든 사람. 그것이 성자 리테르코 추기경에 대한 진실이었다.


“서로 같은 신을 숭배하는 두 종족의 신앙과 마법은 극명하게 다르지. 같은 신의 가호를 받는데 어찌 그리 다를 수 있을까? 어쩌면 에이리스에는 세르티, 즉 신은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


“용사인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아무렴 어때? 용사인 나나 성자인 너나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인데. 너도 거기선 따로 믿는 신이 있었을 거 아냐. 나는 아직도 파포니 카쿰바의 열렬한 신도인걸?”


중부 아프리카의 프로 축구리그에서 뛸 법한 선수의 이름 같은 신을 믿는 블랙포드에게 나는 넌지시 진실을 공표해 더 이상의 희생을 멈출 것을 권유하기로 했다. 갑자기 평화주의자가 된 게 아니라 이런 무의미한 싸움 때문에 개죽음 당할 수도 있다는 게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왕도에 가면 용사 환영식에서 이 사실을 전달하자. 용사인 너와 성자인 내가 말한다면 사람들도 납득하게 될 거야.”


“야... 너 미쳤어?”


“미쳤다니, 너야말로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너나 내가 대체 어떤 이유로 여기서 신처럼 떠받들어지면서 사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다 왔기에 그런 얼빠진 생각을 할 수 있지?”


처음 마주친 뒤로 늘 싱글거리던 블랙포드의 얼굴은 어느새 웃음기 한 점 없이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나를 향한 그의 눈은 낮에 만난 마족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사납게 변해있었다.


“너와 내가 대접받는 이유는 인간에겐 마족과의 대립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야! 이들에게 ‘우리’가 있는 것처럼 저들에겐 우리에 상응할 ‘무엇’이 있겠지.”


“‘마왕’인가...”


블랙포드의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신? 세르티? 그의 말이 맞다. 이곳에 그딴 건 없다. 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인간과 마족, 그들이 서로 가지려 피를 흘리며 다투는 여기 이 ‘땅’이 그 신이란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전쟁이 없으면 무기상은 굶게 돼. 달콤한 꿈과 피폐한 현실. 성자, 아니 인간 장 시한은 어떤 것을 선택할 거지?”


“나는...”


눈치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연예계에서 연습생 시절까지 세면 짬밥만 8년을 먹어온 나는 알고 있다. 블랙포드의 질문에 주어진 선택지는 꿈과 현실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죽고 싶냐, 살고 싶으냐. 결국 그 얘기였다.


“아무 말도 듣지 않았어...”


“훌륭한 선택이었어. 성자 시한.”


내 대답이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블랙포드는 자신보다 조금 더 키가 큰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손수 쓰다듬어 준 뒤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일행의 곁으로 돌아갔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새끼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말마따나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에 대한 경험치만 보자면 그에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보였다. 말로만 전쟁터라는 연예계지만 블랙포드에게선 진짜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자라온 위험한 냄새가 느껴졌다.


목숨을 건진 안도감과 진실을 은폐하는 데 동참했다는 죄악감이 진득하게 엉겨붙은 끔찍한 기분 속에서 나는 5 년 전 지금과 같은 기분이 들었던 그때의 사건이 떠올랐다.


작가의말

어떻게든 주말 내에 25화까지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저녁에 손님이 오는 바람에 오후에 작업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손님을 보내고 뒤늦게나마 작성해 올려봅니다. 최대한 빠르게 나머지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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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꿈과 피폐한 현실 22.01.17 15 1 11쪽
23 더듬이 헤어. 저 놈이 바로 용사다! 22.01.16 15 2 13쪽
22 졸라 고독하구만... 22.01.15 17 2 11쪽
21 청강석... 잘랐다고... 22.01.15 21 2 12쪽
20 성공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네 22.01.13 16 2 12쪽
19 미안해요, 선배...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22.01.12 17 2 14쪽
18 슈퍼스타 장시한 22.01.11 17 2 13쪽
17 사람 사는데 다 똑같네. 22.01.10 18 3 11쪽
16 반드시 위로 올라간다. 그곳이 어디까지든! 22.01.09 22 3 14쪽
15 너 진짜 고소장 날아오는 거 보고 싶어? 22.01.07 23 3 11쪽
14 죽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22.01.06 27 3 13쪽
13 이제 집으로... 22.01.05 36 2 19쪽
12 진짜 주인공 보정 X같네... 22.01.04 34 2 13쪽
11 용사인 내가 왜 저런 마을 사람 A에게... 22.01.03 30 3 13쪽
10 동원아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 22.01.02 42 3 11쪽
9 사장님, 대체 뭐하시는 사람이에요? 22.01.01 37 3 13쪽
8 혹시 용사가 돌아가기 싫다면 어떡하지? 21.12.31 37 2 17쪽
7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야지 21.12.30 37 2 12쪽
6 모험자 길드에 처음 오신 걸 환영합니다 21.12.29 42 3 13쪽
5 환영합니다. 용사님. 21.12.27 55 2 14쪽
4 아무래도 저희 아이가 이세계에 간 것 같아요 21.12.26 52 3 13쪽
3 이세계 구조 상담 전문 사무소 -토래비- 직원 모집 중 21.12.25 56 2 14쪽
2 재수 없는 여자 21.12.25 62 3 11쪽
1 프롤로그 21.12.25 104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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