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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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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1.12.25 21:14
최근연재일 :
2022.01.17 03:24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822
추천수 :
57
글자수 :
138,763

작성
22.01.02 23:11
조회
40
추천
3
글자
11쪽

동원아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

DUMMY

호기롭게 모험가 길드를 나선 언수와 일행이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다시 돌아오자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자신만만하게 큰소리 쳐놓고는 결국엔 겁에 질려서 도망쳐 온 게 아니냐며 그나마 실패 보고라도 하려고 돌아온 게 장하다는 분위기였다. 언수가 품에서 기다란 뿔을 꺼내기 전까진.


“끌고 오긴 너무 무거운 놈이라 우선 징표만 가져왔어. 사체는 자리에 그대로 놔두었으니까 못 미더우면 직접 가서 확인해도 돼.”


“배...뱀보로스의 마각(魔角)이닷!”


“우욱..우우욱...”


“이봐! 정신 차려!”


뱀보로스의 상징과도 같은 머리 위의 뿔이 등장하자 장내의 군중들은 일제히 경악에 찬 비명을 고래고래 질러댔다. 60cm 가량 길이의 피 묻은 뿔에선 강력한 마수가 죽기 직전 남긴 원념이 느껴졌고 마법 저항이 부족한 일부 모험가들은 그것이 뿜어내는 사기(邪氣)를 견디지 못하고 구역질을 해댔다.


이러한 사태는 접수처의 아이네가 가져온 특별한 재질의 천으로 마각을 돌돌 말아 에리카에 전달한 뒤에 조금씩 진정되었다. 아이네에게서 건네받은 뱀보로스의 마각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에리카는 자신도 모르게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을 시작으로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에리카에게 이 뿔은 자신의 연인의 목숨을 앗아간 괴물의 일부이며 동시에 그 복수를 달성한 징표라는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다. 때문에 내던져 버릴 수도 또 끌어안을 수도 없는 이 물건을 그녀는 어정쩡한 자세로 손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훌쩍...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네. 자, 약속했던 성공 보수야. 리안의 원수를 갚아줘서 고마워.”


손목을 들어 옷으로 젖은 코를 스윽 문지른 에리카는 한 눈에 봐도 묵직해 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언수에게 내밀었다. 6천 골드. 서로 미래를 약속한 어느 한 연인이 함께 해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런 물건이었다.


“... 기꺼이 받도록 하지.”


“아, 사장님! 분위기 좀...”


희영은 ‘이 돈은 받을 수 없어.’ 라든지 ‘반만 받도록 하지. 나머지는 연인의 장례에...’ 같은 대사가 나올 타이밍에 덥석 돈을 건네받은 언수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니, 약속은 약속. 리안이 옆에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거야.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게 정석이잖아.’


“미안하지만 돈이 필요한 일이 있거든. 염치 불고하고 이 돈은 한 푼도 놓칠 수 없어.”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이 돈은 이제 당신 거야.”


언수는 돈이 든 가죽 주머니를 에리카에게서 받자마자 주둥이를 끌러 그 자리에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은행에서 전액 골드 6천개로 환전해왔다는 에리카에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넣고 뒤적거리며 혹시나 은화를 섞은 건 아닌지 판별까지 하는 언수의 모습에 희영은 더 이상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확인 작업을 마친 언수는 다시 주머니를 들어 에리카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왕성까지 길 안내를 해줄 모험가가 필요해. 솜씨가 좋은 프로로. 검을 장기로 쓴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고.”


자신의 허릿춤에 찬 장검에 시선을 보낸 언수의 의도를 알아챈 에리카는 해맑게 씨익 웃고는 언수의 손에 든 가죽 주머니를 가로채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마침 내가 잘 아는 모험가가 있지. 검 솜씨 확실한 프로로.”


[짝...]


[짝.짝.]


[짝짝짝짝-]


모험가의 혼을 타오르게 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친 손뼉을 시작으로 카로판 모험가 길드 안에는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적선하듯이 베푸는 동정을 하여 상대의 체면과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득을 포기한 행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모험가의 동업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고 감동에 젖은 관객들 사이로 두 사람에게 다가간 희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두 분, 감동도 좋은데 사실 제가 아직 기도소에 빚이 조금 남아서... 50 골드만 어떻게 안 될까요?”


“아, 진짜! 분위기 좀...”


“아, 진짜! 분위기 좀...”



***



후에 켈트 신화 최고의 신이 되는 '루 라바다'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신들의 수도 타라에 들어가려 할 때 있었던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 보는 낯선 젊은이가 성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문지기들은 입장을 불허하며 말했다.


"특별한 재주가 없는 이는 이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나는 물건을 만드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다."


자신만만한 루의 대답에 문지기가 그를 비웃으며 거절했다.


"우리에게는 콜루 콸레위히(건축,세공,야장의 신들)가 있다."


루는 그 다음으로 자신이 있는 특기들인 전투와 의술 등을 차례로 말해 보았지만 문지기는 모두 이미 자리가 차 있다며 루를 거절했다.


그러자 루는 지금까지 자신이 말한 특기를 혼자서 할 수 있는 이가 있냐고 외쳤고 이에 문지기는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루 라바다는 '일다나(loldanach)' 즉 '모든 기술에 통달한 이' 라 불리게 되었다.



***



“꾸르륵... 꾹꾹.”


“흐음...”


남자는 이른 아침, 자신의 창가에 전서구가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서구의 다리에 매인 천에 적힌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의 얼굴엔 언짢은 표정이 지어졌고 급하게 근처에 대기 중인 시종을 불렀다.


“지금 당장 왕성에 갈 것이니 채비를 꾸려라. 서둘러야 할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남자의 이름은 제놀. 용사를 소환한 베아닌 왕국에서 왕 다음가는 권력을 자랑하는 귀족 가문 라이네스의 수장이며 동시에 용사 파티의 한 사람인 베라코의 아버지였다.



***



“그게 정말입니까? 용사가 며칠 내로 마왕성에 진입한다니... 예상보다도 너무 빠른 속도군요.”


“못난 놈이지만 허튼 소리는 안 하는 놈이니 틀림없을 거요. 계획을 조금 서둘러야겠소.”


궁전 내 마련된 밀실에 사람을 모은 제놀은 자신에게 되물은 여인 같이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의 의문을 단번에 일축시켰다. 장발 남자의 정체는 베아닌 왕성 수석 마법사이자 마탑의 탑주(塔主)인 보라스였다.


“탑에서는 즉시 전력으로 부주(副主)를 포함해 50 명의 상급 마법사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근위대는 어떻소?”


“...근위대 77 명 전원, 그리고 기사단에서 차출 가능한 상급 기사를 포함하면 100 명은 넘을 겁니다.”


근위대 가용 병력을 묻는 제놀의 질문에 근위대장인 시카가 답했다.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느껴지는 시카의 말투에 보라스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시카님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십니다그려. 아, 혹시 다수로 한 명을 상대하는 것에 무인의 자존심이 상하신 겁니까? 아니면 용사에게 남은 애틋한 사제지간의 정, 뭐 그런 겁니까?”


“당치도 않은 소리. 남에게 힘을 빌어서야 쓸 수 있는 엉터리 마검사가 제자는 무슨. 그러는 당신도 용사에게 마법을 전수하지 않았소. 당신이야말로 용사에게 딴 마음이 있는거요?”


“껄껄걸. 그에게는 마도의 정수, 그 편린조차 보여주지 않았거늘 어찌 제가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원숭이의 스승을 자처하겠습니까? 아, 용사와는 달리 베라코 군에게는 아낌없이 가르침을 드렸으니 부디 안심하시길.”


그러나 그런 보라스의 사탕발림에도 서릿발 같은 기상의 제놀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흥, 탑주께서 아무리 열과 성의를 다했대도 그 반푼이 자식 머릿 속에 들어간 건 반의 반도 되지 않을 거요. 어차피 이번 ‘용사 습격’에서 일이 잘못되면 버려도 될 놈이니 개의치 마시오.”


“아니, 그래도 명색이 소가주 님이시거늘 어찌 그리 차갑게 말씀하십니까.”


“내게 아들은 그놈 말고도 셋이나 더 있소. 어차피 폐하께서도 계집이란 정략으로 써먹으려고 낳은 것들이니 공주를 따로 신경 쓰지 말라하셨거늘 내가 뭐라고 대수겠소.”


자식들을 정략의 도구로 생각하는 중세의 세계관답게 왕이나 제놀에게 세리아스와 베라코는 계획을 위해 소모해도 상관없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 툭툭 튀어나온 뼈마디가 도드라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원탁을 쿡쿡 찔러 시선을 집중시킨 제놀은 다시 한 번 계획을 당부하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계획은 성공해야만 하오. 용사와 마왕 두 ‘괴물’ 들이 서로 물어뜯어 어느 한 쪽의 숨통이 끊어진 순간, 나머지 한 놈도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혹여 마왕도 막지 못한 통제가 안 되는 괴물은 이제 마왕과 다를 바 없으니.”


밀실에서 이뤄진 회의가 끝나고 시카와 보라스는 각각 근위대와 마탑의 병력을 인솔하여 마왕성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용사와 마왕의 조우가 일어난 그 시점에 도착하게끔.



***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전날 밤에 호숫가에서 베라코와 세리아스 둘에게 지랄한 것과 별개로 아무리 용을 써봐도 잠은 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 컨디션은 100% 아니 120%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난 밤 꿈나라에 가려한 내 정신을 붙든 건 타우린도 카페인도 아닌 기대감이라는 천연강장제였다. 마치 소풍 가기 전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밤새 가방을 여닫기를 반복하며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부터 엄마가 싸주는 김밥을 옆에서 주워 먹다 학교에 가는 아이처럼 나는 흥분해 있었으니까!


마왕은 어떻게 생겼을까? 만화에서처럼 양 갈래로 뿔이 길게 나있을까? 라노벨처럼 쭉쭉빵빵한 미소녀면 어떡하지? 확 배신하고 마왕 쪽에 붙어 버릴까? 온갖 상념이 머리를 가득 채워서 솔직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침에 나를 깨우러 왔다 행복한 상상 타임을 망친 제크롬의 뺨을 후려친 다음에야 나는 날이 밝은 걸 알아챘다. 마왕을 상대하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마지막 만찬이 될 아침 식사를 입 안이 터지는 바람에 멀건 죽을 호호 불어 마시는 제크롬의 모습을 보니 미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차피 내 컨디션이 곧 놈의 생존 확률이라고 생각하고나니 미안한 생각은 금방 날아가 버렸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나는 들뜬 마음을 안고 마왕성을 향해 돌격했다. 굳게 닫혀 있을 거라 생각한 성문이 열려 있는 것은 예정 외였지만 공성계(空城計) 같은 허허실실 작전이든 넘치는 자신감이든 아무런 상관없다. 자아, 돌격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어?”


성을 쌓은 돌의 재질을 알아 볼 만큼 가까이 가서야 나는 텅 비어보이는 성문 앞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을 알아챘다. 웨어울프?수인족? 덩치 큰 두발 멍멍이와 맹해 보이는 내 또래의 여자, 그리고 철 지난 짧은 예수 머리를 한 아재.


상황을 파악하고자 잠시 발을 멈춘 내게 꼰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 동원아, 엄마가 이제 그만 밥 먹으러 집에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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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반드시 위로 올라간다. 그곳이 어디까지든! 22.01.09 2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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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죽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22.01.06 27 3 13쪽
13 이제 집으로... 22.01.05 35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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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원아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 22.01.02 41 3 11쪽
9 사장님, 대체 뭐하시는 사람이에요? 22.01.01 36 3 13쪽
8 혹시 용사가 돌아가기 싫다면 어떡하지? 21.12.31 37 2 17쪽
7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야지 21.12.30 37 2 12쪽
6 모험자 길드에 처음 오신 걸 환영합니다 21.12.29 42 3 13쪽
5 환영합니다. 용사님. 21.12.27 55 2 14쪽
4 아무래도 저희 아이가 이세계에 간 것 같아요 21.12.26 52 3 13쪽
3 이세계 구조 상담 전문 사무소 -토래비- 직원 모집 중 21.12.25 56 2 14쪽
2 재수 없는 여자 21.12.25 62 3 11쪽
1 프롤로그 21.12.25 101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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