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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HhHhHh
작품등록일 :
2019.04.01 12:07
최근연재일 :
2019.05.10 18:35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1,440
추천수 :
2
글자수 :
192,712

작성
19.04.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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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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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라쿤 섬 (7)

DUMMY

무트는 처음 입어보는 바지에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단을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무트의 코로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가 마구 파고들었다. 음식 냄새는 집 전역으로 퍼져 있었다.


무트는 본능에 충실하여 이끌려가듯 음식 냄새의 근원지로 걸어갔다.


그렇게 계단 옆에 나 있는 중앙 통로를 지나 나가니 넓은 주방이 나타났고, 그 주방 안에서 저녁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앞치마를 두른 사라의 뒷모습이 보였다.


주방은 사라를 기점으로, 도마에 부딪히며 나는 정겨운 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주방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무트가 지내왔던 통나무집의 주방과는 확연히 다른 레벨이었다.


사라가 서 있는 곳인, 흑색 대리석으로 구성된 상판은 길게 늘여져 있었고, 그 위에는 음식을 요리할 크고 작은 은제 냄비와 여러 가지 향신료가 담긴 통, 그리고 요리재료로 쓰일 다양한 채소들이 즐비여 놓여있었다.


상판 아래에는 석탄을 원료로 하여 불을 지필 수 있는 화로가 있었고, 석탄 연기를 배출하기 위한 배기관이 천장으로 솟아있었다.


게다가, 상판 머리 위엔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모양의 은제 요리 도구 수십 개가 바로 꺼내어 사용하기 쉽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상판 건너편 안쪽에는 싱크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아래에는 큰 오븐과 양옆으로 여러 찬장이 있었으며, 양옆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한, 쌍여닫이의 큰 냉장고 두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넓은 공간의 주방이었지만, 갖갖이 요소가 적재적소에 적절히 배치되어, 공간이 낭비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새 둥지와 같은 정갈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무트는 조심스레 사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요리에 집중하다 인기척을 느낀 사라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머, 무트님이시군요.”


사라는 미소를 지으며 무트를 반겼다. 사라와 눈이 마주친 무트는 사라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굴이 붉어진 채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헤헤, 안녕.”


“그 옷은 샐리나님이 골라주신 건가요?”


사라는 무트가 입은 옷을 가리켰다.


“응, 맞아, 그런데 왜?”


“굉장히 잘 어울려서요. 너무 멋있으세요.”


“정말?”


사라의 칭찬에 무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아 불편함이 느껴졌던 옷이 괜스레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와봤어.”


상판에 머리가 겨우 걸칠 정도의 키였던 무트는 열심히 까치발을 들며, 사라가 하는 것을 구경했다. 이때, 무트에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저런, 많이 배고프셨군요. 죄송해요. 제가 좀 더 빨리 요리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아냐, 아냐. 괜찮아. 아까 낮에 많이 먹었거든.”


무트는 사과하는 사라에게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아까부터 배에서 위가 쪼그라드는 소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트를 지켜보던 사라는 나무로 된 숟가락을 집더니, 끓이고 있던 냄비 뚜껑을 열어 안에 있던 내용물을 숟가락으로 듬뿍 퍼내었다.


“고기 스튜랍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사라는 스튜를 퍼낸 숟가락을 무트에게 보여주었다. 숟가락에는 당근색보다 조금 진한 연붉은색의, 오래 끓인 듯 진해 보이는 국물에 먹음직스러운 고기 한 점과 잘 익은 감자 한 덩어리가 올려져 있었다.


무트는 군침을 꼴깍 삼키며 숟가락을 보았다.


“정말 먹어봐도 돼?”


“그럼요, 물론이죠. 어서 드셔보세요.”


무트는 다시 한번 군침을 삼켰고, 입을 벌려 사라가 건넨 숟가락을 조심스레 집어삼켰다.


그렇게 숟가락에 얹혀 있던 국물과 고기, 감자는 입속에서 잘 어우러져 혀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 미각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무트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이로 고기와 감자를 씹었다. 고기는 육즙이 매우 풍부하였으며 육질이 매우 부드러워 턱관절의 움직임을 매우 용이하게 하였고, 잘 익은 감자는 잘게 부서지면서 이빨 사이사이에 고소함이 퍼져나가게끔 했다.


낮에 맛보았던 루나의 음식과는 차별된 매우 깊은 맛이 났다.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맛있어······.”


무트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낮엔 너무 배고픈 나머지 루나의 음식을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었던 탓에 못 느꼈던 감동을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무트의 배는 아까보다 더욱 거세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라, 저녁 준비는 다 되어가나?”


이때,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펠튼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사라는 숟가락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네, 다 준비됐습니다, 펠튼님.”


“수고 많았네, 사라. 음? 무트도 있었구나.”


펠튼은 사라 옆에 서 있는 무트를 발견했다.


“하마터면 누군지 몰라볼 뻔했구나. 옷을 바꿔 입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이 달라 보이다니.”


말끔한 옷차림의 무트를 보고 펠튼이 말했다.


“샐리나가 생일 때 받은 옷이로구나.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하는 차에 이렇게 옷에 딱 맞는 주인이 나타나다니, 이거 참 다행인걸?”


펠튼은 만족한 듯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니 음식을 날라보도록 할까.”


펠튼은 보호 장갑을 끼고 스튜가 들은 냄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자, 무트, 너도 힘 한번 보태어주거라.”


“응, 알겠어.”


펠튼은 무트에게 부탁을 하고 주방 밖으로 걸어나갔고, 무트는 할일을 찾기 위해 주방을 둘러보았다.


“무트님은 이걸 들고 가주시면 될 것 같아요.”


사라는 차곡히 쌓여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무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건 너무 쉬워. 좀 더 무거운 거 없어?”


“네? 그게 무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트의 말에 사라는 의아해했다.


“난 괜찮으니까 얼른 알려줘.”


무트의 강경한 태도에, 사라는 머뭇거리며 싱크대 아래에 있는 오븐을 가리켰다.


“저 안에 새끼 통돼지 구이가 있긴 한데요······.”


무트는 사라가 가리킨 오븐을 보았고, 성큼 오븐으로 다가갔다.


“엄청 무거울 텐데······.”


사라는 걱정 어린 눈을 뜨고 있었다. 오븐 앞에 도착한 무트는 내부가 훤히 비치는 오븐 유리에 눈을 박고 안을 보았다.


“오, 맛있겠다.”


사라의 말대로 노릇하게 구워져 있는 새끼 돼지가 있었다.


“음, 그런데 저건 어떻게 꺼내지? 이렇게 하면 되나?”


오븐을 처음 봤던 무트는 오븐 바깥쪽에 돌출되어있는 손잡이를 잡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열린 문틈으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그윽한 돼지 구이 냄새가 주방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음! 맛있는 냄새.”


무트는 코로 냄새를 힘껏 들이마셨다. 위와 폐로 냄새를 가득 빨아들이니 벌써부터 배부른 느낌이 들어, 무트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마음껏 냄새를 다 음미한 무트는 구워진 새끼 통돼지가 놓인 쟁반을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때, 사라가 옆으로 다가와 무트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만요, 이거 맨손으로 잡으면 큰일 나요.”


사라는 손에 들고 있던 보호 장갑을 무트에게 주었다. 보호 장갑을 끼고 있던 사라는 걱정 어린 눈으로 무트를 보았다.


“역시 안 되겠어요. 저도 도울게요. 분명 무거워서 혼자 들기에 벅찰 거예요.”


“아냐, 아냐, 정말 괜찮아. 그리고 이런 장갑 같은 건 필요 없어.”


무트는 사라가 준 보호 장갑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맨손으로 쟁반 양쪽 끝을 잡아 뺐다.


사라의 우려와는 반대로 새끼 통돼지가 담긴 쟁반을 가뿐히 들어 올린 무트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봐봐, 괜찮다니까.”


“우와······ 정말이네요.”


사라는 놀란 표정으로 무트를 쳐다보았다. 사라의 반응을 본 무트는 뿌듯한지 우쭐댔다.


그런데, 무트의 얼굴 색깔을 점점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고, 그 수치가 최고치에 다다르자 무트는 손에 쥐고 있던 쟁반을 황급히 상판 위의 비어있는 공간에 올려놓았다.


“앗, 뜨거워! 생각보다 엄청 뜨겁잖아.”


무트는 귓불에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을 갖다 대어 열을 식혔다. 이 모습을 본 사라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하, 거봐요. 제가 뜨겁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대단했어요. 이걸 혼자 들어 올리다니.”


사라는 보호 장갑을 낀 손으로 쟁반 한쪽을 잡았다.


“우리 같이 들어요. 역시 혼자보다는 같이 하는 게 낫잖아요?”


사라는 방금 일로 부끄러워하는 무트에게 손을 건넸다. 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무트는 바닥에 놓은 보호 장갑을 끼고 쟁반 반대쪽을 잡았다.


“하나, 둘, 셋.”


둘은 숫자와 함께 쟁반을 들어 올려 주방 밖으로 나가 거실로 향했다.


그렇게 새끼 통돼지 구이 냄새가 집 전역으로 퍼짐으로써 저녁 준비가 다 되어감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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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라쿤 섬 (에피소드 최종화) 19.05.10 40 0 17쪽
36 라쿤 섬 (14) 19.05.08 39 0 14쪽
35 라쿤 섬 (13) 19.05.07 45 0 12쪽
34 라쿤 섬 (12) 19.05.05 40 0 14쪽
33 라쿤 섬 (11) 19.05.03 88 0 16쪽
32 라쿤 섬 (10) 19.05.02 41 0 9쪽
31 라쿤 섬 (9) 19.05.01 40 0 15쪽
30 라쿤 섬 (8) 19.04.30 35 0 14쪽
» 라쿤 섬 (7) 19.04.28 47 0 9쪽
28 라쿤 섬 (6) 19.04.26 40 0 18쪽
27 라쿤 섬 (5) (수정) 19.04.24 36 0 28쪽
26 라쿤 섬 (4) 19.04.19 48 0 9쪽
25 라쿤 섬 (3) 19.04.18 45 0 8쪽
24 라쿤 섬 (2) 19.04.17 42 0 11쪽
23 라쿤 섬 (1) 19.04.16 47 0 12쪽
22 모험의 시작 (3) 19.04.15 40 0 11쪽
21 모험의 시작 (2) 19.04.14 41 0 13쪽
20 모험의 시작 (1) 19.04.13 40 0 10쪽
19 고백, 그리고 대화 (2) 19.04.13 46 0 14쪽
18 고백, 그리고 대화 (1) 19.04.12 21 0 9쪽
17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4) 19.04.12 16 0 18쪽
16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3) 19.04.11 18 0 12쪽
15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2) 19.04.09 25 0 10쪽
14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1) 19.04.09 34 0 9쪽
13 꿈, 그리고 현실 (6) 19.04.07 18 0 12쪽
12 꿈, 그리고 현실 (5) 19.04.07 17 0 8쪽
11 꿈, 그리고 현실 (4) 19.04.05 23 0 7쪽
10 꿈, 그리고 현실 (3) 19.04.04 25 0 8쪽
9 꿈, 그리고 현실 (2) 19.04.04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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