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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의 고독한 서재

프리즘(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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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HhHhHh
작품등록일 :
2019.04.01 12:07
최근연재일 :
2019.05.10 18:35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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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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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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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라쿤 섬 (5) (수정)

DUMMY

“이, 이게 샐리나, 네가 사는 집이야?”


무트는 어느덧 도착한 이장과 샐리나가 살고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서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택의 크기는 이미 이 마을에 처음 와서 본 여러 건물에 충분히 놀라있던 무트를 또 놀라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이 저택 정면은 쌍여닫이문과 좌우 양쪽에 창문 2개씩 있는 1층과 5개의 창문이 있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처럼 견고해 보이는 이 저택은 외적인 모습은 이제껏 통나무집에서 살아온 무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에는 충분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아빠랑 너랑 단둘이 사는 거라고?”


무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저택을 가리켰다.


“응, 맞아. 정확히는 ‘사라’라는 하녀랑 셋이서 살고 있어.”


무트의 순수한 반응에 샐리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막으며 말했다.


“하녀? 그게 뭔데?”


무트는 의문을 표했다.


“응, 하녀란 집안일을 하거나 주인을 시중드는 사람을 말해.”


“자, 애들아.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들어가자꾸나.”


이장은 문을 열면서 말했다.


샐리나와 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장을 뒤따라 저택 안에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가니 앞에서 하녀 복장을 하고 두 손 모아 다소곳이 서 있는 금발 머리의 사라를 볼 수 있었다.


“귀가하셨군요, 펠튼 이장님, 그리고 샐리나님.”


“우리가 없는 동안 수고 많았네, 사라. 미안하지만, 조금 있다가 저녁을 준비해줄 수 있겠나? 여기 있는 이 소년에게 대접을 해주고 싶어서 말이야.”


펠튼은 외투를 벗어 사라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라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무트, 인사해. 여긴 우리 집 하녀, 사라라고 해.”


샐리나는 사라를 가리켰다.


“아, 안녕?”


무트는 무뚝뚝한 모습의 사라가 다소 어렵게 느껴졌는지 루나에겐 편하게 인사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쭈뼛쭈뼛한 자세로 손을 수줍게 흔들며 인사했다.


이에 사라는 긴장한 무트를 배려하려는 듯,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펠튼 이장님과 샐리나님의 시중을 받는 사라라고 합니다.”


덕분에 긴장이 다소 해소된 무트는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때, 무트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여자라는 생물을 만나본 적 없는 무트가 굉장히 여성스러운 사라를 만난 지금 처음, 본능적으로 여성에 대한 호감, 그리고 설렘이란 감정을 느낀 것이다.


무트는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달아오르는 얼굴을 느꼈다.


“사라, 여긴 내 친구, 무트야.”


샐리나는 사라에게도 역시 무트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사라는 미묘하게 입만 살짝 벌리며 놀랐다는 감정을 표현했다.


“아, 샐리나님의 친구가 되시는 분이군요.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무트는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샐리나는 홍조가 띤 무트의 얼굴을 보고 뭔가 눈치챈 듯한 앙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트, 너 혹시······ 사라한테 반한 거야?”


샐리나는 장난스럽게 무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무,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무트는 정곡을 찔렸는지 무척이나 당황해했다. 이에 샐리나는 더욱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트를 약 올렸다.


“흠, 무트도 남자였구나. 전혀 몰랐어. 이렇게 보여도, 나도 꽤 예뻐서 이 마을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은데 말이야.

그런데, 이런 날 보고도 무트가 아무 관심조차 안 가지길래, 여자라는 것 자체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오해했지, 뭐야?

그런데, 이런 무트가 사실, 이런 거에만 반응하는 남자였다니, 세상에! 꿈에도 상상 못 했어.

그럼, 나도 다음부턴 무트에게 관심을 얻으려면 저렇게, 사라처럼 입어야 할까나?”


“아, 아니거든! 그런 취향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건데?”


샐리나는 짓궂은 표정으로 생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요염한 척을 해대며 무트를 바라봤고, 이에 무트는 붉으락푸르락 된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둘이 그만 장난치고, 얼른 씻고 저녁 먹을 준비들 하거라.”


둘의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펠튼은 한소리를 했다.


“치, 알겠어요. 무트, 내 방으로 올라가서 씻을 준비 하자!”


샐리나는 무트의 손을 잡고 이끌며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둘의 모습을 펠튼과 사라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렇게 즐거운 표정을 짓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먼. 그렇지 않나, 사라?”


“동감입니다, 이장님.”


“저 미소, 부디 영원해야 할 텐데······.”


한편, 샐리나와 무트는 어느 방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내 방이야.”


샐리나는 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문틈에서 나오는 향기로운 냄새가 무트를 반겨줬다.


“우와······ 여기가 네 방이라고?”


무트는 샐리나의 방 안쪽을 기웃거렸다. 샐리나는 방에 들어가서 양손을 양쪽으로 폈다.


“응! 어때, 예쁘지?”


“이렇게 넓다니······.”


무트는 샐리나의 방으로 들어가 머리를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방 구조를 빠르게 훑어봤다.


무트는 일단 통나무집의 자신의 방 넓이와 매우 비교되는 넓이의 샐리나의 방을 보고 감탄을 자아냈다.


다음으로는 샐리나의 분홍색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나무로 만든 투박한 모양새의 침대보다는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치 각양각색의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오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색감이었다.


또 다른 한쪽에는 화장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사물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이 놓여있었다. 무트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이건 내 모습이잖아? 물웅덩이도 아닌데 어떻게 내 모습이 비치는 거지?”


무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거울 표면을 손바닥으로 쓸어서 만져 보였다. 거울 표면은 매우 매끈매끈했다.

수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표면이 닳고 닳아 매끈해진 나무껍질 표면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응? 뭔데?”


무트의 어리둥절한 반응에 샐리나는 무트를 보았다. 샐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무트, 이거 거울이잖아.”


“거, 거울?”


무트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트는 외부와 단절된 섬에서 13년간 지내오면서 거울을 비롯하여 문명과 밀접한 물건과 물체,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기에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히 현상이었다.


샐리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말도 안 돼. 설마, 너······ 거울을 모르는 거야?”


“으, 응······.”


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지?”


샐리나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무트, 너 우리 섬 옆에 있는 섬에서 온 거 아니었어?”


샐리나의 말에 무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아닌데?”


“엥?”


샐리나도 무트처럼 덩달아 고개를 갸웃했다.


“그, 그럼 어디서 온 거야?”


“음······.”


무트는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헤헤.”


“뭐라고?”


무트의 엉뚱한 대답에 샐리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살던 곳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샐리나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고, 무트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왜냐하면, 난 주변에 바다뿐인, 아무것도 없는 작은 섬에서 살고 있었거든.”


“섬? 설마 네 말은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없는 무인도 같은 거 말하는 거야?”


“맞아, 그런 거야.”


“세상에······.”


샐리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벌어진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무트를 쳐다봤다.


“설마······ 무트, 너 그 섬에서 13년 동안 있었다는 거야?”


“응.”


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다른 섬으로 와보는 건 처음이라는 거네?”


“맞아, 처음이야.”


“와······ 무트, 넌 여러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샐리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감탄했다.


“과연, 처음 만났을 때 머리도 그렇고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샐리나는 무트와 처음 만났던 때, 무트의 첫인상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트,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샐리나는 어느새 탐구심으로 가득 찬 눈을 띠고 있었다.


“그야, 물론이지.”


무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샐리나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음······ 어떤 것부터 물어보는 게 좋을까?”


샐리나의 머릿속엔 무수한 질문들을 수없이 발현되고 있었지만, 샐리나는 이를 최대한 간추리고 간추려 질문해보기로 했다.


“무트, 섬에서는 누구랑 같이 살고 있었던 거야? 설마 혼자서 살고 있었던 건 아닐 거 아니야.”


“맞아, 앤스트랑 같이 살고 있었어.”


“앤스트?”


“응, 날 키워준 사람이야.”


“아하, 그럼, 부모님은?”


“음, 그건······.”


무트는 머뭇거렸다.


“사실, 13년 동안 부모님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어. 애초에 알고 있는 사람도 앤스트가 유일하고.”


무트의 말에 분위기는 갑자기 숙연해졌고, 샐리나는 미안함으로 가득해진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거 같네.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샐리나는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반면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무트는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몰라서 그랬던 거고, 애초에 난 슬프거나 하진 않으니까.”


“그래도······.”


샐리나는 연민으로 가득해진 두 눈으로 무트를 쳐다보았다. 그러고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다.


“무트, 나도 사실은······.”


“응?”


말을 꺼낸 샐리나는 웬일인지 머뭇거렸다. 샐리나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질문 계속할게.”


칠흑같이 어둡고 슬픈 표정이었던 샐리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우리 섬에 온 이유는 뭐야? 13년 동안 살던 섬에서 나올 만한 거라면 평범하진 않을 거 같은데.”


“아하, 그건 말이지.”


샐리나의 질문에 고민하던 무트는 방에 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무트는 창문을 열었고, 창문 너머로는 서서히 어둑어둑해져 가는 드넓은 마을의 아름다운 저녁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 하려고?”


무트 뒤로 다가온 샐리나가 물었다.


“저길 봐. ‘기둥’이 보이지?”


무트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거기엔 바다 수평선에 가라앉고 있는 붉은 노을빛에 은은히 빛나고 있는 ‘기둥’이 보였다.


샐리나도 역시 무트가 가리킨 ‘기둥’을 보았다.


“응, 저게 왜?”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로 꼭 가보는 게 꿈이야.”


“진짜? 무슨 일로?”


“왜냐하면, 알고 싶은 게 있거든. 이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 부모님은 누구인지.”


무트는 창틀을 두 손으로 짚은 채로, 노을빛이 반사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함께 말했다.


“흐음, 그렇구나. 그나저나 신기하다.”


샐리나는 가볍게 콧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트는 고개를 돌려 샐리나를 보았다.


“뭐가 신기한데?”


“저기로 가겠다는 사람이 무트, 너뿐만이 아니거든.”


“뭐? 진짜?”


자기처럼 생각한 사람이 여럿 된다는 샐리나의 말에 무트는 놀랐다.


“응, 그럼, 무트 너도 아까 낮에 봤던 그 배를 타러 우리 섬에 왔다는 거네?”


“응? 그 배가 왜?”


샐리나의 말에 무트는 낮에 잠깐 봤던 큰 배를 떠올렸다.


“그야, 그 배가 네가 말한 그곳으로 가는 배거든. 그것도 몰랐어?”


“그, 그래?”


뜻밖의 사실에 무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곧바로 무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급히 해안가를 살펴 낮에 봤던 배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무트의 모습에 샐리나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풉! 걱정 마. 배는 이틀 뒤 아침에 출발하니까.”


“아······ 그렇지.”


그제야 무트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조급해지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던, 섬을 떠나기 전에 들은 앤스트의 방침이 떠올랐다.


“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오는데, 그 기간만 되면 우리 섬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배를 타고 무트, 네가 말한 저 ‘프리즘’이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지.”


“‘프리즘’?”


“응, 몰랐었구나? 사람들은 저걸 ‘프리즘’이라고 불러.

물론, 이름 말고는 저기에 뭐가 있는지는 나 역시 직접 가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지만, 소문에 의하면 상상 이상의 것들이 있다 하더라고.”


“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무트는 샐리나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무트.”


“응, 왜?”


샐리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무트를 보았다.


“‘프리즘’은 링스 대륙에 있는데, 알고 있어?”


“응, 그건 알고 있어, 왜?”


“다른 게 아니라,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네가 과연, 링스 대륙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돼서.”


“헤헤, 걱정 안 해도 돼. 난 적응력 하나만큼은 뛰어나니까.”


“무슨, 아까 보니까 거울이랑 사진도 잘 모르던데, 속 편한 소리 하기는!”


“아야!”


샐리나는 우쭐대는 무트의 이마에 꿀밤을 날렸다.


“링스 대륙이 어떤지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야? 잘 모르나 본데, 링스 대륙 안 세상은 여기랑은 완전 다른 세상이야.

거기엔 우리 섬 같은 작은 섬마을엔 없는 산처럼 높게 솟아오른 건물에, 나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귀하고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해.

게다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사람처럼 말을 하는 동물이랑 괴물도 있다고.”


샐리나는 링스 대륙에 대해 열렬히 설명했다.


“그리고, 세상이 말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오늘 일어난 일만 해도 알 수 있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잇는 링스 대륙에선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더 약하지는 않을 거야.

아마, 우리 섬에 있는 사냥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음······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샐리나. 내가 잘못 생각했어.”


무트는 마을에 들어오기 전과 식당에서 겪은 사냥꾼들과의 마찰을 떠올렸다.


샐리나의 말이 맞았다. 세상과 부딪히는 걸 마냥 쉽게만 생각할 문제가 아님이 분명했다.


“휴, 어쩔 수 없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무트, 네가 모르는 기초적인 것부터 내가 직접 하나하나 전부 자세히 설명해주도록 할게.”


샐리나는 의욕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


“일단, 모를 만한 물건들에 대해서 알려줄게. 아무것도 모른 채 링스 대륙에 갔다가는 바보 취급만 당할 게 분명하니까.

최악의 상황으로는 사기꾼들이 들러붙어서는 무척이나 귀찮게 굴 수도 있어. 왜냐하면, 무트, 너처럼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애가 사기를 치기 딱 좋은 대상이니까.

알고 있으면 별거 아니지만, 그 반대로 모르고 있으면 신기해 보이는 물건을 막 보여주면서 첨언을 통해 상대를 입맛에 맞게 굴리면서 구매를 하게끔 유도를 하는 거지.”


샐리나는 예시와 함께 설명했지만, 당연하게도 크게 와 닿지 않는 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말해도 감이 잘 안 오는걸······.”


“흠······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샐리나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싸매고 주위를 둘러보던 샐리나는 아까 무트가 보고 깜짝 놀랐던 화장대의 거울을 보았다.


“그래, 이게 좋겠다.”


샐리나는 무트를 잡아당겨 거울 앞에 나란히 섰다.


“자, 다시 한번 여길 봐봐, 무트. 어때?”


무트는 샐리나 말대로 거울을 보았고, 거울 안에는 아까처럼 무트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샐리나의 모습도 비치고 있었다.


“어? 샐리나, 여기에 너도 있어! 분명 아까는 안 보였는데?”


무트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거울 속을 가만히 응시했다. 거울 속의 샐리나의 모습은 여전히 실물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이야, 방안도 보이잖아?”


비쳐 보이는 건 샐리나뿐만이 아니었다. 방안의 모든 풍경이 거울 속에 담겨 있었다. 무트는 신기한 눈으로 거울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까는 설명 못 했지만, 이건 거울이라는 거야. 그 어떠한 것도 여기 앞에 놓으면 비춰볼 수 있어.”


“하하하! 이거 진짜 신기한데?”


샐리나가 설명하든 말든 무트는 거울 앞에 서서 여러 자세를 취해보았다.


이미 무트는 물웅덩이에 비쳐 보였던 것과는 달리 좀 더 뚜렷하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신기함을 넘어, 취해버린 상태였다.


“어때, 신기하지? 그럼, 지금부터 내가 문제를 하나 내볼게.”


“문제?”


거울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던 무트는 샐리나를 보았다.


“자,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거울을 너한테 판다고 하면 넌 어떻게 할 거야?”


“판다고? 그럼, 당연히 사야지!”


무트는 물어서 뭐하냐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럼, 금화 한 개에 판다고 하면 어떡할래? 살 거야?”


“금화 한 개?”


무트는 곰곰이 생각했다. 섬에서 금화는 몰라도 금이라는 광석은 봤었었다. 예쁜 노란 빛으로 빛나고 있었기에 잠깐은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 쓰임새와 가치를 알 리 없었던 무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되었고, 이후로는 일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당연히 사야지. 이렇게 신기한 물건인데, 그깟 금화 하나 정도야, 뭐!”


금화도 결국 금으로 만든 물건이겠거니, 이토록 재화라는 개념이 전무한 무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샐리나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거라고. 이래서 내가 알려줘야 한다고 했던 거야.”


“왜, 왜?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어?”


“당연하지!”


여전히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무트의 물음에 샐리나는 윽박질렀다.


“금화란 엄청 귀하고 비싼 거야. 왜냐하면, 금화 한 개는 은화 백 개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고, 은화 한 개는 동화 백 개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거든.

여기서, 동화 한 개로는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무트, 네가 낮에 봤던 여러 과일 중에 사과가 있었지? 바로 그 사과 한 개를 동화 한 개로 살 수 있어.

그럼, 은화 한 개로는 백 개의 사과를, 금화 한 개로는 무려 만 개의 사과를 살 수 있다는 거지. 어때, 엄청나지?”


“사, 사과를 만 개씩이나?”


무트는 사과 만 개를 머릿속에 그려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사과 만 개를 온전히 상상해내기란 쉽지 않았고, 그제야 무트는 금화의 금전적 가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 알겠지? 금화가 얼마나 비싼 건지.”


“응······.”


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나는 거울을 가리켰다.


“이 정도의 거울은 은화 하나면 살 수 있어. 그러니 금화 한 개라는 가격에 산다는 건 정말 미련한 짓인 거야.

그야 당연하게도, 무려 은화 99개를 손해를 보는 거니까.”


“그, 그렇네. 진짜였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무트는 안도감을 표했다. 샐리나는 팔짱을 끼고 무트를 노려봤다.


“그러게, 내가 이런 걸 안 알려줬으면 나중에 링스 대륙에 도착해서 어떡할 뻔했어?

분명 링스 대륙에 가면 이 거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신기한 것투성이일 테고, 무트, 넌 그런 걸 발견하는 족족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흥청망청 구매했겠지.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니까? 넌 나한테 감사해야 해, 무트.”


“헤헤, 고마워, 명심할게, 샐리나.”


샐리나의 진심 어린 잔소리에 머쓱해진 무트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신기한 건 어쩔 수 없는걸.”


무트는 다시금 거울을 보았다. 그러다 무트는 거울 앞에 놓여있는 사진이 든 액자를 발견하였다. 무트는 액자를 들어 올렸다.


“이건 뭐야? 그림인가?”


액자를 들어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던 무트는 액자 속 사진을 보고 말했다.


“앗, 잠깐, 그건······.”


무슨 일인지 샐리나는 무트가 들은 액자에 황급히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무트도 역시 놀랐다.


“미, 미안, 소중한 물건이었구나.”


금세 상황을 눈치챈 무트는 손에 쥐고 있던 액자를 조심스럽게 원래 자리에 내려놓으려 했다. 샐리나는 손사래를 치며 무트를 말렸다.


“아니야, 난 괜찮으니까 계속 보고 있어도 돼.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거야.”


“사진?”


“음, 역시 사진도 처음 보는 거구나.”


신기한 눈으로 사진을 바라보는 무트를 보고 샐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사진기라는 물건으로 찍는 건데, 이런 식으로 버튼을 누르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찍히는 거야. 이 과정 후에 나오는 게 바로 사진이고.”


샐리나는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흉내를 내었다.


“그렇게 말해줘도 잘 모르겠는걸······.”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되질 않는지 무트는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확실히, 13년 동안 섬에서만 살던 무트가 접한 신문물을 단번에 이해하고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괜찮아, 어차피 내일 마을 구경하면서 같이 사진 찍으려고 했으니까.”


“우와! 정말?”


“사실은 오늘 마을 구경하면서 사진도 같이 찍으려고 했어. 그런데 식당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못 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내일은 사진도 찍고, 오늘 못했던 마을 구경도 하면서 실컷 놀자, 무트.”


“으, 그렇게 말하니까 벌써부터 너무 기대되는걸.”


무트는 기대감에 안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샐리나는 방긋 웃으며 무트를 보았다.


“그럼, 나도 이거처럼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건가?”


무트는 다시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어? 잠깐만······ 이거 너희 아빠 아니야?”


사진을 자세히 보고 있던 무트가 남성을 지목하며 말했다.


“응, 맞아.”


샐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트의 말대로 사진 속에는 지금보다는 다소 젊어 보이지만 외관상 별 차이 없어 보이는 펠튼이 있었다.


펠튼은 검은색의 신사 복장에 높이 솟아오른 모자(탑햇)를 쓰고, 의자에 앉아있는 한 여인의 뒤에 서서 의자 등받이에 두 손을 얹은 자세를 하고 밝게 웃고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도 역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잘 보니 여인은 배가 불룩하게 솟아 올라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아무리 봐도 사라는 아닌 거 같은데······.”


무트는 사진 속 여인을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무트의 모습에 샐리나는 피식 웃었다.


“아빠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야. 이 사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고.”


샐리나는 여인의 불록 나온 배를 가리켰다.


“난 이때 여기에 있었어.”


“아하······.”


무트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배 속에 아기를 배게 되면 배가 이렇게 나온다는 걸 앤스트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무트는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여기에 들어오면서 ‘샐리나의 엄마’라고 불리는 이 여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희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거야?”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어. 그래서······ 나도 무트, 너처럼 엄마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샐리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직감하고선 입을 열고 머뭇거렸다.


아까 액자를 집었을 때 보인 샐리나의 행동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원상복귀 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무트는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샐리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 엄만 원래부터 몸이 굉장히 약하셨대. 그래서 나를 임신하고 나서부터는 더 힘들어하셨다고 하더라고.

어느덧,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고 산통이 심해지자 엄마는 무척이나 두려워했대.

자기가 죽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닌, 약한 자신 때문에 내가 죽을까 봐······.”


샐리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결국, 출산일이 다다르고 나는 태어났어. 나를 낳고 숨만 겨우 쉬고 있던 엄마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손을 들어서 내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는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돌아가셨대.

이때, 옆에서 엄마를 도와주셨던 의사 선생님이 슈이처 선생님이셨는데, 슈이처 선생님은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은 건 기적이라고 하셨어.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나를 낳기 몇 개월 전부터 상당히 지친 상태였거든. 그래서 나를 낳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셨대.

하지만, 엄마는 성공적으로 나를 낳으셨어. 죽음을 각오하고 몸이 내재하고 있는 모든 힘을 쓰신 거야.

난 그래서 항상 이 사진을 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에게 늘 감사하고 있어.”


샐리나는 사진 속 여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하하, 미안해,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나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네.”


사진 속 여인을 어루만지던 샐리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무트를 보고 애써 웃어 보이며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난 지금이 뜻깊은 순간이라고 생각해. 이런 내 비밀을 남에게 알려준 건 무트, 네가 처음이거든. 왜냐하면, 난 널 보통 친구가 아닌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진정한 친구란 건 원래 서로 장벽 없이 과거와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잖아? 그래서 비밀을 공개한 거야. 별다른 뜻은 없어.”


샐리나는 무트의 손에 있던 액자를 들어 조심스럽게 화장대 위 제자리에 되돌려놓았다.


반면, 무트는 여전히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샐리나는 그런 무트의 팔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아얏!”


찰진 소리와 함께 무트는 팔을 움켜 집고 얼굴을 찡그렸다.


“야, 무트, 뭘 그렇게 시무룩해져 갖고 있어. 난 정말 괜찮으니까, 그런 표정은 인제 그만 짓고 다른 걸 한번 봐봐. 모르는 게 있으면 설명해줄게. 참고로, 지금 아니면 기회 없다?”


“아, 알겠어.”


무트는 방안을 다시 샅샅이 둘러보았다. 그때, 무트는 벽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를 발견했다.


“어, 시계다!”


많고 많은 여러 물건 중에 드디어 아는 걸 발견한 무트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어?”


샐리나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내가 살던 섬 통나무집에 저거랑 비슷한 작은 시계가 있었거든. 물론, 고장 나서 안 움직이긴 했지만 말이야.”


“후훗, 다행이다. 이걸로 내가 설명할 게 줄었네?”


샐리나는 등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은 듯 한결 수월해진 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보았다. 그런데 시계를 본 샐리나는 표정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앗! 벌써 6시잖아?”


샐리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샐리나의 말대로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각각 숫자 6과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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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라쿤 섬 (에피소드 최종화) 19.05.10 40 0 17쪽
36 라쿤 섬 (14) 19.05.08 40 0 14쪽
35 라쿤 섬 (13) 19.05.07 45 0 12쪽
34 라쿤 섬 (12) 19.05.05 40 0 14쪽
33 라쿤 섬 (11) 19.05.03 89 0 16쪽
32 라쿤 섬 (10) 19.05.02 42 0 9쪽
31 라쿤 섬 (9) 19.05.01 40 0 15쪽
30 라쿤 섬 (8) 19.04.30 35 0 14쪽
29 라쿤 섬 (7) 19.04.28 47 0 9쪽
28 라쿤 섬 (6) 19.04.26 40 0 18쪽
» 라쿤 섬 (5) (수정) 19.04.24 37 0 28쪽
26 라쿤 섬 (4) 19.04.19 48 0 9쪽
25 라쿤 섬 (3) 19.04.18 45 0 8쪽
24 라쿤 섬 (2) 19.04.17 42 0 11쪽
23 라쿤 섬 (1) 19.04.16 48 0 12쪽
22 모험의 시작 (3) 19.04.15 41 0 11쪽
21 모험의 시작 (2) 19.04.14 42 0 13쪽
20 모험의 시작 (1) 19.04.13 40 0 10쪽
19 고백, 그리고 대화 (2) 19.04.13 46 0 14쪽
18 고백, 그리고 대화 (1) 19.04.12 21 0 9쪽
17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4) 19.04.12 16 0 18쪽
16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3) 19.04.11 19 0 12쪽
15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2) 19.04.09 26 0 10쪽
14 밝혀진 거인의 정체, 그리고 무트의 굳은 다짐 (1) 19.04.09 34 0 9쪽
13 꿈, 그리고 현실 (6) 19.04.07 18 0 12쪽
12 꿈, 그리고 현실 (5) 19.04.07 17 0 8쪽
11 꿈, 그리고 현실 (4) 19.04.05 23 0 7쪽
10 꿈, 그리고 현실 (3) 19.04.04 25 0 8쪽
9 꿈, 그리고 현실 (2) 19.04.04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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