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심한감자님의 서재입니다.

1등 기수가 경마장을 씹어 먹음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심심한감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0
최근연재일 :
2024.05.27 23:1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144
추천수 :
9
글자수 :
155,878

작성
24.05.08 12:26
조회
60
추천
0
글자
12쪽

기수가 될 준비(2)

DUMMY

“말을 타고 싶다 들었다.”


“네, 아빠.”


“해라.”


아버지는 그 어느 것도 묻지 않았다. 아들의 일에 관심 없어서?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진중한 눈빛. 아버지는 내 눈에서 각오가 보이니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는 나중에 경마 선수가 되고 싶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버지는 배움이 짧다. 짧은 가방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 쓰는 일이 다였기에 몸을 바쳐 날 키워냈다.

자신은 가방끈이 짧아 공사판에서 구르고 있지만 자식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시켜주겠다는 마음.

혹시나 실패하더라도, 좌절하더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항상 뒤에 있으니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을 거다.


나 또한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전생에는 뒤늦게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누리던 삶을 누군가는 몸과 인생을 바쳐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이번 생에는 꼭 트리플 크라운을 성공시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 * *


다음날 나는 곧바로 행복 승마장으로 찾아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승마장인지라 일요일임에도 손님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 현성 학생 왔어요? 일단 앉아요. 뭐, 음료수라도 마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그래요.“


난 곧바로 근로계약서와 보호자 서명서를 건네주었다.


"음, 필요한 곳에 서명은 다 됐네요. 그럼 오늘부로 현성 학생은 행복 승마장 직원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더 잘 부탁하죠. 자, 그럼 밖으로 나갑시다.“


안규성은 안전을 위한 헬멧과 안전 조끼를 입혀주고는 승마장의 시설과 어떠한 일을 해야 할지를 대강 설명해주었다.


"그럼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혹시 말을 접해본 적 있나요?“


"예, 있습니다.“


아직 이 몸으로는 말을 접한 적이 없지만, 전생에서는 수도 없이 접해봤다.

괜히 초짜 티를 내는 것보다는 실력을 보여주며 빠르게 경마 기술을 배울 생각이다.


"말을 접해봤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일단 마방 청소부터 시작해볼까요?“


말을 처음 겪는 사람은 똥 냄새는 물론이고, 말 냄새까지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안규성은 내가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는 걸 보고 이미 말을 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마방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말에게 차이지 않을 위치에 자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말을 비키게 만드는 것까지 익숙하게 해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말을 접해본 것뿐만 아니라 다룰 줄 안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일단 마방 치우는 건 여기까지 하고, 뭣 좀 물어볼게요.

현성 학생은 말을 타본 적이 있나요?“


말을 접해본 것을 보여주면 이 질문이 나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답까지 마련해두었다.


"예, 기본적인 것들은 배워뒀어요.“


학생이 경마 기수처럼 말을 탈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딱 기본적인 것들만 익힌 척하는 것.

결국 시키는 걸 해내는 것은 재능의 영역으로 포장하면 될 뿐이니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실력 테스트를 위해 말을 한번 타보죠. 말은 배정해줄 테니 현성 학생이 준비해볼래요?“


"네, 알겠습니다.“


말을 다루는 것과 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에 안규성은 초심자도 탈 수 있을 정도로 순한 말을 배정해주었다.


'행복이’


행복 승마장에 온 회원이 가장 처음 타는 말이자, 행복 승마장의 마스코트다.

당연히 나도 승마를 처음 시작할 때는 '행복이'를 통해 말을 다루는 법과 타는 법까지 배웠었다.


나는 안장을 비롯한 장비를 꺼내와 능숙하게 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만 습관은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현성 학생, 말을 이렇게 준비하면 안 되죠.“


"예?“


내가 준비한 방법에 틀린 점은 없다. 기수가 된 이후부터 혼자 준비하는 일은 없었지만, 수도 없이 반복해온 일이니 말이다.


"이건 기수들이나 쓰는 장비지, 실력 테스트를 받는 현성 학생이 쓸 게 아니에요."


안규성이 모든 장비를 풀고 승마용 안장을 들고 온다.

그제야 내 실수를 알아챘다. 기수 준비부터 기수가 된 이후까지 10년.

그렇게 이어진 습관은 자연스럽게 승마용이 아닌, 경마용으로 준비하게끔 만들었다.


"아무래도 현성 학생보고 기수가 되라 말해서 영상을 좀 찾아본 것 같은데 현성 학생은 경마가 아닌, 승마를 먼저 배울 테니 따로 말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준비하세요.“


‘사장님, 저 삼관왕까지 노리던 프로 기수예요. 그런 제가 승마부터 배우다니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속으로 집어넣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안규성이 홀로 말을 다 준비했다.


"자, 이제 승마용으로 준비됐으니 마장으로 가죠.“


행복 승마장은 실내 마장과 실외 마장으로 총 두 개의 마장을 가지고 있다.

초보자는 떨어지는 일이 많기에 혹시나 떨어지더라도 말이 도망칠 수 없게끔 하기 위해서 실내마장에서 먼저 배우게 된다.

이번 생의 나 또한 초보자인 건 다름없었다.


"자, 이제 기승해보죠.“


안규성이 계단을 놓아준다. 말이란 동물은 키가 상당히 크기에 성인 남성이라 해도 요령이 없다면 혼자 타기 버겁다.

계단을 이용해 쉽게 말에 올라타 승마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경마와 승마는 말을 탄다는 점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스포츠다. 경마는 결승점을 먼저 통과하는 것만을 보고, 승마는 기술을 본다.

자세부터 장비까지 승마와는 모조리 다르니 승마의 기억을 끄집어내야 한다.


"자, 그럼 가볍게 평보(平步)부터 시작하죠.“


평보란 말이 걷는 행위를 뜻한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니 베테랑 기수인 내가 못 해낼 이유가 없다.


"딱.“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말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채찍. 고통을 각인시켜 행동을 주입시키면 채찍을 보여주거나, 때림으로써 행동을 지시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박차. 부츠의 뒤꿈치에 다는 금속으로 말에 올라탄 상태에서 옆구리를 찌르는 것으로 원하는 자세와 앞으로 가라 지시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혓소리가 있다. 혀를 입천장에서 뗄 때 나는 소리는 말에게 앞으로 가라는 신호가 된다. 어릴 때부터 혓소리를 각인시키니 사람이 기른 말은 모두 혓소리를 익히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지만, 승마에서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지금의 나는 채찍도, 박차도 없으니 혓소리를 내었다. 그와 함께 '행복이'가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균형. 고작 말이 걷는 것뿐이라지만, 정말 균형을 못 잡는 사람들은 그 정도에도 낙마(落馬)를 경험한다.

내가 안정적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으니 안규성은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경속보(輕速步)도 가능한가요?“


‘경마도 당장 가능해요, 사장님.’


그런 말을 할 순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경속보로 가보세요.“


말이 뛸 때 생기는 반동에 맞춰 일어나주는 것을 경속보라 한다. 뛰어야 하니 평보보다 빠른 건 당연하다.

혓소리와 함께 뒤꿈치로 말의 양 옆구리를 때렸다. 말의 가죽은 사람보다 훨씬 두터우니 뾰족한 물건으로 찌르거나, 강한 힘으로 때리지 않는 이상, 고통을 느낄 리 만무하다.

'행복이'는 베테랑 초보용 말답게 놀라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경속보도 잘하네요.“


그저 반동에 맞춰 일어나면 된다지만 초보자는 그 반동을 맞추기 힘들어하기에 반동에 맞춰 일어나는 데에만 며칠이 걸리겠지만, 나는 반동을 완벽히 맞추고 있다.


"좌속보(座速步).“


말의 반동을 온몸으로 받으며 안장에 앉아있는 것을 좌속보라 한다.

사실상 승마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좌속보로 꼽힌다. 그 이유는 말의 반동이 상상 이상으로 크고, 그 반동을 받으며 균형을 유지하는 행위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프로 기수가 못 할 건 없다. 나는 반동을 모조리 받아내며 균형을 받아내고 있다.


"...구보(驅步)도 할 수 있어요?“


말을 기준으로 안쪽 다리로 배를 감고, 바깥쪽 다리를 뒤로 빼는 것으로 신호를 주며 압박한다.


다그닥, 다그닥!


"이제 방향 바꿔보죠.“


고삐를 살짝 당기며 몸의 중심을 뒤로 뺐다. 그에 맞춰 '행복이'도 속도를 줄이며 구보를 속보로 바꿔 뛰었다.

그 다음, 마장을 대각선으로 가로 지르며 타고 있는 반동을 반대로 바꿨다.

다시 구보 신호를 주니 자연스럽게 반대 구보가 나간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행동이 기본적인 동작들이자, 승마의 모든 것이다. 더 깊게 파고들면 다양한 기술과 각 보법에서의 테크닉이 있지만 경마를 목표로 하는 내가 배워야 할 이유는 없다.


"현성 학생, 잠깐 이리 와봐요.“


‘행복이’를 사장님이 있는 쪽으로 몰아 다가가니 안규성이 묻는다.


"기승 경력이 얼마나 돼요?“


기승 경력으로만 따지면 15년이다. 다만 그건 전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이번 생은 처음 타는 것이다.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답한다.


"반년 됐어요.“


사실상 1년은 필요한 테크닉이었지만, 재능이 있다면 반년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재능 있는 컨셉으로 밀고 가기 위해 반년이라는 대답을 택했다.


"반년이라...“


안규성이 갑자기 등자(鐙子)를 조절했다.


‘설마 바로 경마로 넘어가는 건가요, 사장님?’


승마는 등자를 다리 길이에 맞게 길게 맞추지만, 경마는 말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엉덩이를 떼기 때문에 등자를 짧게 맞춘다.

엉덩이를 떼는 만큼 균형을 맞추기 더 어려울뿐더러, 버티지 못하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니 무게 중심도 잘 맞추어야 한다.


"이제부터 전경자세(前傾姿勢)를 해볼 거예요. 전경자세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오늘은 체험만 해보는 걸로 하죠.

그냥 편하게 기마 자세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곧바로 기마 자세를 취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경자세를 완벽히 취했다.


"하, 이런 말도 안 되는...“


재능의 격차라는 건 분명 존재한다. 같은 것을 배워도 누구는 빠르게 습득하고, 누구는 느리게 습득할 것이다.

다만 결과는 모두 노력 여하에 따를 텐데 안규성이 보기에 내 재능은 그 모든 개념을 부숴버렸을 것이다.


"이건 내가 가르칠 수준이 아니잖아...“


안규성은 나를 가르칠 수 없다. 승마에 재능이 없어 승마장 사장으로 직업을 바꾼 안규성은 승마 기술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그 때문에 기본적인 것밖에 가르치지 못하기에 이전 생에도 몇 달간 기본만 배우다 제대로 된 경마는 다른 사람에게 배웠다.

분명 이번에도 자신이 아닌, 더 뛰어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더 뛰어난 기수가 될 것이라 판단할 것이다.


* * *


대충 마무리를 해놓고 현성을 집으로 보낸 안규성은 곧바로 아버지에게 찾아갔다.


"아버지!“


"음? 무슨 일이라도 있냐? 왜 그리 헐레벌떡 찾아와?“


"아버지 제자가 될 만한 학생을 찾았습니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제자는 무슨 제자냐. 난 그냥 승마장 관리나 하면서 노년을 보낼 거라 말했잖냐.

애초에 제자를 들일 생각이었다면 승마장에 있을 게 아니라 경마장에 그대로 남았겠지.“


"하지만 그 학생을 보면 아버지도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그 학생을 보며 아버지 전성기 때가 떠올랐거든요.“


"말도 못 타는 놈이 떠올리긴 무슨.“


"아버지도 보면 정말 생각이 바뀔 겁니다.“


"됐다. 내일 얼굴 보고 얘기나 한번 해보지 뭐.“


"그래도 아버지...예? 이렇게 쉽게요?“


"네가 말은 못 타도 보는 눈까지 없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내일 볼 테니 알아서 준비해둬라.”


“예, 아버지도 정말 마음에 드실 겁니다.”


안강철 기수. 국내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기수이자, 현성의 첫 스승이었던 은퇴한 전설이 다시 현성을 마주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등 기수가 경마장을 씹어 먹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실력이 미천하여 연재를 중단합니다 24.05.30 9 0 -
공지 저녁 11시 15분 연재 24.05.10 8 0 -
공지 7화부터 경마 시작입니다. 24.05.08 30 0 -
31 1조의 기수 24.05.27 8 0 11쪽
30 마지막 평가(3) 24.05.27 13 0 11쪽
29 마지막 평가(2) 24.05.25 14 0 11쪽
28 마지막 평가(1) 24.05.24 17 0 10쪽
27 기수 교육원(14) 24.05.23 15 0 12쪽
26 기수 교육원(13) 24.05.22 18 0 12쪽
25 기수 교육원(12) 24.05.21 22 0 11쪽
24 기수 교육원(11) 24.05.20 23 0 11쪽
23 기수 교육원(10) 24.05.19 26 0 11쪽
22 '천마'의 혈통(2) 24.05.18 25 0 11쪽
21 '천마'의 혈통(1) 24.05.17 29 0 12쪽
20 기수 교육원(9) 24.05.16 30 0 10쪽
19 기수 교육원(8) 24.05.15 31 0 11쪽
18 기수 교육원(7) 24.05.15 32 0 11쪽
17 기수 교육원(6) 24.05.14 32 0 11쪽
16 기수 교육원(5) 24.05.14 31 0 11쪽
15 기수 교육원(4) 24.05.13 34 0 11쪽
14 기수 교육원(3) 24.05.13 32 0 11쪽
13 기수 교육원(2) 24.05.12 36 0 11쪽
12 기수 교육원(1) 24.05.12 40 0 11쪽
11 전설과의 대결 24.05.11 38 0 11쪽
10 기수 후보생 모집(2) 24.05.11 40 2 11쪽
9 기수 후보생 모집(1) 24.05.10 42 1 12쪽
8 경마장 구경(2) 24.05.10 46 1 11쪽
7 경마장 구경(1) 24.05.09 54 1 12쪽
6 기수가 될 준비(5) 24.05.09 54 1 13쪽
5 기수가 될 준비(4) 24.05.08 59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