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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감자님의 서재입니다.

1등 기수가 경마장을 씹어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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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심심한감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0
최근연재일 :
2024.05.27 23:1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131
추천수 :
9
글자수 :
155,878

작성
24.05.0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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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경마장 구경(1)

DUMMY

안강철이 경마장에 데려가겠다 말한 날은 목요일이었지만, 경마장에 찾아간 날은 토요일이었다.


"코치님, 왜 금요일에 바로 안 가고, 토요일에 온 건가요?“


평일은 경주가 없기에 한산하지만, 주말에는 경주 때문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목요일에 인사를 나누고, 금요일부터 바로 훈련에 들어갔으면 됐을 텐데 왜 굳이 바쁜 토요일에 찾아온 걸까.


"기수가 될 거라면 적어도 경기는 직관해야지. 오늘의 경험은 네게 큰 도움이 될 거다.“


경주만 몇백 번을 뛰었고, 승리 횟수 또한 몇백 번이다. 경주를 직관한 것은 그보다 훨씬 많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하하, 재밌겠네요.“


안강철은 경마 전문지 2개를 사들고 와 하나를 건네줬다.


"경마 전문지다. 오늘 출전마와 그 말들의 상태 등 오늘 경기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들이 적혀있다.

원래 미성년자는 구매하면 안 되지만, 네가 말하면 내가 대신 만 원어치만 구입해주마.

따면 네게 다 줄 테니 신중히 골라봐라.“


나는 경마 전문지를 살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해도 못하겠지만, 기수를 할 때에도 내 평가가 궁금해 한 번씩 사던 것이기에 익숙했다.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경마 전문지를 보고 있으니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그도 그럴 게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말들이 다수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오늘 누가 1등으로 들어올지는 기억이 안 나지.‘


경기를 모두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경기마다 1등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 운영 방식에 따라 다를 테니 1등으로 들어올 말을 예측하는 단승식보다는 3등 이내로 들어올 말 한 마리를 예측하는 연승식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단 한 마리만은 예외다.


"저는 단승식으로 '썬더'를 고를게요.“


"자유마는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좌지우질 될 거다."


"그래도 저는 '썬더'가 1등으로 들어올 거 같아요."


'썬더'는 내가 기수일 때도 활동하던 말이다. 경기만 뛰면 뒷 말과 거리를 벌리기에 1등으로 유명하던 말이다.


'물론 지금은 아직은 이름을 못 알린 것 같지만.‘


'썬더'가 이름을 알리는 건 내가 기수 교육원에 들어갈 때쯤이었으니 2, 3년은 더 지나야 하는 일이다.

이름을 알린 이후의 인터뷰를 확인해보면 '썬더'가 어떤 운영 방식이든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자유마인 줄 알고 그동안 역량을 펼칠 수 없었다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고쳐주면 될 뿐이다.


"마권은 구매했으니 예시장으로 가자.“


경기 시작 30분 전부터는 경마 팬들과 경마꾼들에게 말을 보여주기 위해 경주마를 관리하는 관리사들이 예시장을 돌며 말을 보여준다.

그러면 관람객들은 위층에서 말을 확인한다. 정석대로라면 예시장에서 먼저 말 상태를 확인하고 마권을 구매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는 즐기러 온 것이니 괜찮다.


"네가 고른 말은 성격이 제법 있어 보이는 게 자유마보다는 도주마나 선행마 같은데...“


도주마와 선행마는 비슷하나, 다르다.

도주마는 출발대가 열리자마자 도망가듯 경주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시작하자마자 최소 10m 이상의 거리를 벌리지만, 도주마라는 이름답게 따라잡히면 도망을 포기하며 뒤로 처진다.

선행마도 이와 같지만, 선두를 빼앗겨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차이이다.

'썬더'는 이 중에서 선행마에 속한다. 안강철은 생긴 것과 보여지는 성격만으로 이걸 알아챘다.

2, 3년은 지나야 밝혀지는 것을 알아챈 걸 보면 괜히 한국 경마의 전설이 아니었다.


”다른 말을 고르는 게 어떠냐? 내 아무리 봐도 저놈은 오늘 순위권에 들어올 것 같지 않구나.“


”아니요. 분명 ’썬더‘가 1등으로 들어올 거예요.“


물론 평소와 같이 뛴다면 순위권에도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아니, 앞으로 주행법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예시장은 경기에 나가기 30분 전부터 걷고 있고, 경기 시간이 가까워지면 기수가 말에 올라탄다.

지금이 바로 내가 찍은 말을 1등으로 바꿀 순간이다.


”’썬더‘는 선행마에요! ’썬더‘는 선행마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응원하기 위해 크게 외치는 사람들도 있기에 내 목소리는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이 외침이 들렸을지는 모른다. 그저 들었다면 1등일 것이고, 듣지 못했다면 몇 년은 더 고생해야 할 것이다.


”기수는 시합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니 못 들었을 수도 있다.“


”못 들었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럼 이제 네 외침이 들렸는지 확인하러 가보자.“


경주의 관람은 여기저기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어디서든 관람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야외로 나갔다.

1층에는 관람석이, 2층부터 4층까지는 커다란 베란다로 이루어진 관람석이 있다.

우리는 2층의 베란다에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저곳이 훗날 네가 기수가 되면 뛰게 될 경기장이다. 감상은 어떠냐?“


처음 오는 것도 아니다. 몇 년간 먹고, 자고 했던 곳인데 왜 이리 오랜만에 온 것 같을까.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내가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고 있다.

나도 결국 어쩔 수 없는 기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강철 또한 마찬가지인가 보다.


”좋으신가봐요?“


미소를 지은 채, 경기장과 경주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안강철이 다급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냥 얼마나 달라졌나 구경해본 것 뿐이다.“


나도, 그도. 결국 같은 기수다. 경기장에서 흥분하는 건 똑같다.


”이번이 ’썬더‘ 차례네요.“


방금 막 전 경주가 끝나고, 다음 경주를 위해 기수들이 경주마를 타고 트랙으로 입장하고 있다.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건 ’썬더‘를 탄 유한성 기수. 나보다 선배이자, 1군에 오르기 전까지 1등을 수도 없이 하던 기수이다.

과연 내 외침은 들렸을까.


”코치님은 어떤 말한테 거셨나요?“


”난 ’폭군‘한테 걸었다.“


’썬더‘가 선행마라는 걸 알아채고 주행법을 바꿀 때쯤에 ’폭군‘은 은퇴하였기에 누가 더 잘 달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썬더‘가 주행법을 바꾸기 이전까지는 ’폭군‘이 가장 인기 있는 말이었기에 주행법만 바꿨다면 기대가 되는 대결이다.


”그럼 ’폭군‘과 ’썬더‘의 대결이네요.“


”어쩌다 보니 그런 셈이 되었구나.“


”그냥 보는 것도 심심한데 내기 하는 건 어때요?“


”내기라, 재밌겠구나. 그래, 무슨 내기를 하지?“


”만약 ’썬더‘가 이기면 제가 기수가 된 이후에 도움을 원하면 한번쯤은 꼭 도와주세요.“


내 죽음. 경기장에서 죽을 때의 그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

날 죽음으로 몬 윤성호가 혼자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굳이 시합에서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아무튼 언젠가는 안강철의 경마계에서의 입지가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 지금 기회를 만들어둬야 한다.


”그럴 일이 있을까 싶다만, 그리 하마. 그럼 이제 내 조건을 말해야겠지.“


”코치님, 조건은 뭔가요?“


”네가 기수가 된 이후에도 내가 스승으로 남는 것이다.“


”예?“


이건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해야 할 일이다. 안강철은 이미 완성된 기수이고, 경주에 한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이니 조언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비록 조교사 자격증을 따거나, 현역으로 뛰는 건 아니라도 도움이 됐으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을 거다.“


”코치님이 도와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누가 이기든 결국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말들이 몸을 푼 지도 10분째, 이제 슬슬 발주대 앞으로 모이고 있다.

그렇게 16시 10분이 되고 말들이 발주대 안으로 들어간다.

TV로는 경마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온다.


[...3세 암말들의 경주가 곧 시작합니다.

오늘 주목해볼 경주마는 2번마 ’행복파트너‘와 6번마 ’다이나믹’, 7번마 9번마 ‘다크호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있네요. 1번마 ‘폭군’ 이미 입상도 여러 번 했고, 지금까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말이죠.

말씀드리는 순간, 모든 말이 발주대로 들어왔습니다.

곧 출발합니다!]


곧이어 일제히 발주대가 열리며 말들이 뛰쳐나왔다.

시작하자마자 치열한 선두 경쟁이 벌어지고, 말과 말이 부딪히는 몸싸움도 일어난다.

가장 중요한 초반부에서 선두를 쟁취해야 후반에 질주하기 편하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몸싸움은 치열했다.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선두를 쟁취한 것은 역시나 1번마 ‘폭군’입니다.

그 뒤를 잇는 건 16번마 ‘썬더’...? 가 있습니다!]


아나운서도 썬더가 폭군의 뒤를 이을 줄은 몰랐는지 입을 쉬지 않아야 하는 경마 해설에서 잠깐의 공백이 있었다.

후반을 생각하지 않고 초반을 쟁취하려면야 모두들 할 수 있지만, 선행마가 아니고서야 굳이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썬더’는 순위권에 들지 못한다는 예상에 배당률이 40이나 되는데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폭군’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16번마 ‘썬더’! 16번마 ‘썬더’가 ‘폭군’과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경쟁은 오로지 두 말의 것이라는 듯, 1번마 ‘폭군’, 16번마 ‘썬더’ 독주합니다!]


두 말이 서로만 신경쓰는 덕에 세 번째 말과의 거리 차이는 벌써 10마신 이상.

10마신이나 벌어진 이상, 결국 경기의 승자가 되는 1착의 자리는 두 말 중 하나일 것이 뻔하다.


[말씀드리는 순간, 1번마 ‘폭군’과 16번마 ‘썬더’가 코너 두 개를 돌아 마지막 직선에 돌입합니다.

두 말이 동시에 달리고 있지만, 선두는 여전히 ‘폭군’! 아니, ‘썬더’! 다시 ‘폭군’!]


두 말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 다른 말들은 따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두 말은 질주한다.


[마지막 50M! 아직 선두는 1번마 ‘폭군’! 그러나 16번마 ‘썬더’가 무섭게 따라붙습니다!

두 마리의 역차가 좁혀지며...!]


”됐다!“


[16번마 ‘썬더’의 역전입니다!!!]


관람석에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썬더’의 배당률은 40. 이 정도면 1등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없다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 간 큰 베팅을 했을 사람은 없을 것이고, 굳이 1등만 보는 단승식이 아니더라도 순위권에 ‘썬더’가 들어올 것이라 베팅한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축하한다, 네가 이겼구나.“


”운이 좋았죠.“


운이 좋게도 유한성 기수에게 내 외침이 들렸다. 그 덕분에 안강철과의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네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아쉽게도 네 스승은 못 되어주겠구나.“


”예?“


”‘폭군’이 이기면 스승을 하겠다 했잖냐. ‘썬더’가 이겨버렸으니 스승은 못하겠지.“


‘썬더’가 이긴 덕에 안강철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스승을 잃었다?


”하하, 장난이다.“


안강철은 오랜만에 경마장에 와 들떴는지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으면서 장난까지 치고 있다.

역시 경마장에서 떠난지 오래됐어도 몇십 년을 경마장에서 지냈을 테니 이곳이 집 같기도 할 것이다.


”내기는 끝났다만, 경주는 더 구경하고 가자.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다.“


”예!“


안강철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나 또한 경마장에서 몇 년을 지냈다.

직접 경주를 뛰지 않아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말쟁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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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수 교육원(2) 24.05.12 36 0 11쪽
12 기수 교육원(1) 24.05.12 40 0 11쪽
11 전설과의 대결 24.05.11 38 0 11쪽
10 기수 후보생 모집(2) 24.05.11 40 2 11쪽
9 기수 후보생 모집(1) 24.05.10 41 1 12쪽
8 경마장 구경(2) 24.05.10 46 1 11쪽
» 경마장 구경(1) 24.05.09 53 1 12쪽
6 기수가 될 준비(5) 24.05.09 54 1 13쪽
5 기수가 될 준비(4) 24.05.08 5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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