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문학도 님의 서재입니다.

카니아의 탑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수문학도
작품등록일 :
2019.03.04 13:13
최근연재일 :
2019.07.12 18: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6,547
추천수 :
255
글자수 :
329,437

작성
19.03.04 14:50
조회
533
추천
13
글자
12쪽

레-솔리튜드 (2)

“나는 결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어느 정도까지 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나의 친구로 삼아 왔다. 하지만 현재 내가 대중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서 보면, 나는 다시 한 번 후손들을 나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삼아야만 한다. 누군가에 대해서 웃고 있는 똑같은 사람들이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




DUMMY

“영감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초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6월 어느 날 평소에도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다니는 피 영감이었지만 바다에 나갈 때는 모르는 사람이 와도 ‘좋은 일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좋은 일은 무슨 좋은 일. 얼라는 테이블이나 닦아라.”

“이미 닦았어요.”

“그럼 다시 닦아. 일당 값은 해야지.”

순식간에 ‘얼라’로 강등당한 단테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온 그로서는 아이 취급 하는 게 불만스러웠지만 일단은 뱃사람의 주먹이 무서워 토를 달지는 않았다.

“영감님 이번엔 멀리 나가려나보내.”

여관 물품을 나르던 홀 담당 피나 누나가 그에게 알려주며 한 쪽 눈을 찡그렸다.

“멀리요?”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영감님 가끔 배 타고 동대륙 정착지에 사람들이나 물건들을 운송해줬었거든. 최근에는 단테 너 여기저기 데려다 주는 동안 뜸했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가려나 보내.”

누나의 말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주 전쯤 피 영감이 거나하게 취해 여관으로 들어왔을 때 마중 나왔던 건 당직을 서던 단테였다. 영감은 기분이 좋았는지 무려 하루 일당인 1리그스를 그에게 용돈으로 주면서 말했다.

“어린 것이 고생이 많아. 딸꾹. 일도 열심히 하고 말야. 딸꾹. 그럼 보너스다!”

뜻하지 않은 거금이 들어오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90 도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영감님 복 받으실 거예요.”

“허허, 이미 복은 받았지.”

이 여관은 총 네 층이었는데 1층은 식당이나 집합소로 썼고 2,3층은 여관 4층은 직원들의 숙소로 썼다. 피 영감은 원래 여관장님과 함께 사는 집이 있었지만 이렇게 취했을 때는 옛 버릇 때문인지 숙소로 쳐들어가곤 했다.

“어떤 복인대요?”

영감의 팔을 어깨에 맨 단테가 능글맞은 웃음으로 물어보자 영감은 코를 찡그리더니

“예끼. 알면 다친다. 이놈아!”

한 대 쥐어박을 것처럼 다그쳤지만 4층 까지 올라가는 동안 위대하신 술의 신의 가호 덕에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주일 뒤에 동대륙으로 가는 귀족이 있는데 임금을 3배로 준다더구나. 뱃사람 사십 평생 이만한 목돈을 한 번에 마련하는 건 드문 일이지”

작년부터 석 달에 한번 정도 피 영감은 서대륙의 트리어나 푸아티에에서 온 사람들에게 고용되어 동대륙으로 갔다. 단테도 여관에서 3년을 지내면서 그가 명성 있는 뱃사람임을 깨달았다. 경험이 많을 뿐 아니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기꺼이 길잡이가 되는 명성 있는 항해사였기에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이번에는 제법 후한 고용 계약을 하고 기분 좋아 한 잔 마신 것 같았다.

“단테, 네가 좋아할 만한 소식도 있다. 이번에 너도 함께 가려 하는데 어떠냐?”

“······오”

소년은 짧은 감탄사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도 갈거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데려가 주세요.”

“그럴 줄 알고 이미 네 이름을 써 놓고 왔지!”

큰 손이 그의 등을 탕탕 치자 조금 움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번에도 절 방패로 삼으려는 거군요?”

“뭐 어떠냐. 너도 더 멀리 나가 보고 싶어 했잖냐. 서로 돕고 사는 거지.”

“······.”

여관장님의 감시를 어떻게 빠져나가나 고민하고 있는 단테를 가볍게 쏘아 붙였다.

“어린놈이 말이야. 약해 빠졌어. 사내란 말이야 남 눈치 보면 큰일을 할 수 없어! 누굴 닮았는지 몰라.”

“누구긴 누구예요. 저 데려온 영감님이지.”

뒤통수가 딱 소리를 내면서 얼얼해졌다.

“끄으읍, 이번엔 어디 까지 가나요?”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꿋꿋이 목적지를 묻는 소년을 향해 씨익 웃더니 대답했다.

“최소 이소도스에서 최대 기 까지 간다.”

최소인 이유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서 일 것이다. 동대륙 항해 경험이 일천한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끝가지 함께 할 것이냐고.

머릿속에서 지도를 펼친 단테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가장 멀리 항해한 곳은 이소도스에서 이틀거리에 있는 바시 까지였다. 입구라는 뜻을 가진 이소도스는 동대륙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름 그대로 입구 역할을 하는 레-솔리튜드의 중요 거점 기지였다. 문제는 이소도스 다음부터 본토로 향하는 항해였다. 오래 전 대륙채로 망한 탓인지 잠깐 방심한 사이에 해류에 휩쓸려 난파된 배들이 항아리 만의 수위를 배로 높였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겁먹었냐?”

영감이 핀잔을 두자 코를 찡그렸다.

“무서운 건 사실이긴 한데 어차피 언젠가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니······기 까지 갈게요.”

소년의 대답에 만족한 듯 껄껄껄 웃으면서 소리쳤다.

“암암 그렇지. 뱃사람이라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가긴 어딜가!”

무언가가 날아와 피 영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컥!”

쓰러지기 전에 가까스로 영감의 몸을 잡아채는데 성공한 단테는 뒤를 돌아보니 소식을 듣고 잠옷 차림으로 달려온 여관장님이 씩씩 거리고 있었다.



“···섬 출신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한 특수한 장벽, 이 도시를 통한 식량 수입량 증가를 근거로 저는 왕국에 식량 문제 이상의 자생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왕국과 외부를 출입할 수 있는 특수한 메타포라를 양성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막 변성기가 지나가고 있는 소년이 말을 맺자 마주 앉아 있던 페테르센 교수는 소년이 쓴 열다섯 페이지의 소논문을 흘겼다.

“흥미로운 접근이군. 자네는 케드로스 사람들이 이 도시로 이주한지 얼마가 지났는지 아는가?”

“올해로 20년 입니다.”

페테르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주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또한 그들이 종사하는 업종이 무엇인지 아는가?”

단테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알지 못합니다.”

“50명이지. 대부분 나와 같은 교수직을 하고 있다내.”

교수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 특수한 메타포라를 양성하기 위해서라면 이주 당시 사람들이 더 많이 이주했어야 하지. 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할 테니 말일세. 혹은 출입증을 가진 자들이 이곳으로 돌아오거나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어야 하지. 그러나 이에 관한 소식을 보고 받은 것은 없다내. 그 점은 이주민 관리 담당인 내가 보증하지. 나라면 메타포라 보단 섬 외부인들로 우수한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결론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논문은 많지 않은가?”

교수의 반문에 그가 대답하지 않자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제시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보편적인 연구는 그 이유가 있는 걸세. 이만 나가보게. 다음 학기에는 더 발전해 있기를 바라지.”

목례를 하고 교수실을 나섰다. 터덜터덜 패배감을 느끼며 복도를 걸어가는 단테의 등을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툭 쳤다.

“야.”

동기인 요한이였다.

“놀아줄 기분 아니다.”

“또 깨졌냐?”

그럴 줄 알았단 표정을 지으면서 축 쳐진 자기 친구를 향해 씨익 웃었다.

“어차피 한두 번 깨진 것도 아니고 이제 좀 익숙해지지 그래? 나라면 저런 교수는 아예 상종 하지 않을 테지만”

단테는 요한의 빈정거리는 건지 위로인지 모를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번엔 영감님이 준 정보를 토대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생각 했는데, 메타포라 하는 섬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어.”

리마는 ‘흐음’ 하는 표정이 되더니 다시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근데 그거는 교수가 아니면 일일이 찾아가 조사하지 않는 한 모르는 거잖아? 미련 가지지마. 그런 교수랑 상대하다보면 너도 그 사람처럼 늙어 버릴걸?”

요한의 냉철한 결론에 단테는 납득했지만 씁쓸하게 웃었다.

“알잖아. 이런 데 쓸데없이 자존심 센거.”

친구의 자백에 리마가 복도가 떠나가라 손뼉을 쳤다.

“그치. 내 친구 자존심 빼면 시체지. 근데 저 교수는 더한 존재지.”

“그래서 한 번 이겨보겠다고 도서관에 몇 시간이나 처박혀서 연구만 하는 거냐? 아 부럽다 부러워. 난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너 사실대로 말해. 사실 연구만 하는 거 아니지? 애인이라도 숨겨 둔 거 아니야?”

짓궂은 장난에 단테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랑 매일 데이트한다.”

섬사람들은 레-솔리튜드로 이주할 때 서적들을 가져와 도시의 도서관에 보관했다. 때문에 몇몇은 단테의 높은 성적의 근원을 그곳으로 의심했으나 관련자 모두가 침묵했기에 입증 할 방법이 없었다.

페테르센 교수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낙제점을 뿌려 기숙사 벽 낙서의 대부분이 교수를 향한 원망, 애원, 욕설 등이었다.

“공부란 자신의 그릇을 채워가는 과정인데 자네는 무엇을 했기에 아직도 발전이 없는건가? 정 모르겠으면 나에게 와서 물어보게. 언제든지 답변 해 줄 테니.”

요한이 교수를 흉내 내고는 낄낄 웃었다. 저 말은 처음 그의 강의를 듣고 시험을 망쳤을 때 버릇처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단테 역시 첫 시험 때 저 소리를 들었다. 다른 교수의 강의로 부족한 학점을 채울 수 있었기에 대부분이 교수실로 가는 경우는 성적에 관한 개인 면담일 때 뿐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 단테는 정말로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수실에 가 개인 지도를 받았다. 항상 깨졌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자신이 만든 소논문이나 타인의 논문에 관해 교수와 논쟁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매일 덤비는 학생과 가감 없이 쳐내는 교수의 입씨름으로 보였지만 이 과정을 통해 그의 지식은 비약적으로 축적되고 사고가 확장되고 있었다.

레-솔리튜드에서 세워진 마법 왕국의 대학은 도시와 이라클리오 사이에 마법 연구는 섬 안에서만 한다는 조건으로 인해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마법 장벽으로 둘러싸인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본래 섬 출신이거나 이주한 교수들이 발급하는 출입증을 획득하는 것이었는데 섬 출신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섬에서 자고나라기 때문에 첫 번째 방법은 통상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출입증은 졸업 시험을 친 학생 중 매년 5등까지만 주어지는 매우 제한된 큰 영광이자 입학의 목표인 마법 연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대학이 막 개교했을 때는 컨닝도 많았으나 교수들의 능력인지 아니면 마법 때문인지 대부분 잡혀 퇴학 처분 된 이후로 순수하게 실력으로 겨루게 되었다. 수업은 크게 자연 철학, 사회 철학, 수리학, 이라클로오어 네 가지였고 각 과목마다 몇 갈래로 세분화 되어 있었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5명의 학생을 학년에 관계없이 선별했다. 해마다 5명을 선별하는 시험에서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재학 중 단 한번만 졸업 시험을 칠 수 있었기에 자유로운 월반이 가능했다. 물론 이론적으로 1학년 때 졸업 시험을 치는 것이 가능한 것이고 시험을 치면 다시는 대학에 들어 올 수 없었기에 보통은 5학년 까지 모두 채우고 시험을 쳤다. 단테는 아직 2학년 이었지만 크리스가 남겨준 자료와 페테르센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영광의 5인-학생들과 교수를 제외한 교직원들이 부르는 별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다.

“그래도 저 교수는 맘에 안들어.”

요한이 맞장구 쳤다.

“그건 나도 동감이야.”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연재를 시작한 수문학도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카니아의 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두 달간 휴식기를 가지게 됐습니다. 19.07.22 44 0 -
공지 건강상의 이유로 일주일간 휴재합니다. 19.07.14 32 0 -
공지 60화를 끝으로 에피소드 1이 끝났습니다. 19.06.10 34 0 -
공지 연재 관련 공지입니다 19.04.13 76 0 -
69 출항 (2) 19.07.12 65 2 10쪽
68 출항 (1) 19.07.10 35 2 9쪽
67 짧은 이별 (3) 19.07.08 35 2 9쪽
66 짧은 이별 (2) 19.07.05 49 3 10쪽
65 짧은 이별 (1) 19.07.03 29 3 13쪽
64 졸업 (4) 19.07.01 33 2 9쪽
63 졸업 (3) 19.06.28 37 2 11쪽
62 졸업 (2) 19.06.26 52 3 9쪽
61 졸업 (1) 19.06.24 47 3 9쪽
60 길 (6) 19.06.10 52 3 7쪽
59 길 (5) 19.06.07 28 3 10쪽
58 길 (4) 19.06.05 33 3 9쪽
57 길 (3) 19.06.03 35 3 10쪽
56 길 (2) 19.05.31 35 3 10쪽
55 길 (1) 19.05.29 26 3 11쪽
54 먼지 쌓인 도서관 (4) 19.05.27 34 3 10쪽
53 먼지 쌓인 도서관 (3) 19.05.24 40 3 10쪽
52 먼지 쌓인 도서관 (2) 19.05.22 38 3 10쪽
51 먼지 쌓인 도서관 (1) 19.05.20 36 3 9쪽
50 점성술사 (2) 19.05.15 29 3 9쪽
49 점성술사 (1) 19.05.13 35 3 10쪽
48 반격 (5) 19.05.10 27 3 10쪽
47 반격 (4) 19.05.08 49 3 12쪽
46 반격 (3) 19.05.06 44 3 10쪽
45 반격 (2) 19.05.03 37 3 10쪽
44 반격 (1) 19.05.01 50 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