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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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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필스너
작품등록일 :
2022.05.11 11:45
최근연재일 :
2022.06.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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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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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57화>

병자호란




DUMMY

 *           *           *


 고장난 전투기를 몰고 메뚜기 떼를 피해 혼자만 본진으로 달아난 카오핑 대령은, 가까스로 기체가 눈에 처박히며 착륙을 하였다. 이 충격으로 그는 한 쪽 팔이 부러졌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했기에 아픈 것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우선은 병사들이 다가와 여러 군데 다친 카오핑을 부축했다. 그리고 천막으로 옮겨 상처의 치료부터 하였다. 생명에는 아직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적의 상공에서 메뚜기 떼를 만나 공군이 전멸한 책임을 묻자고 하면, 그도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혼자만 귀환했다는 보고를 접한 사령부의 군사들이 다가와서는, 그를 끌고 황제에게로 데려갔다.

 그런데 혼자만 돌아온 게 카오핑만은 아니었다. 지금 저기서 누가 또 오고 있었다.

 대장군이라는 직책과 갑옷이 무색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도르반이었다.

 카오핑은 하늘로 귀환했지만, 도르반은 눈길을 헤치며 가까스로 도착을 하였다. 역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카오핑보다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여러 명의 군의가 달려들어 아직도 살을 뜯고 있는 개미들을 떼어내고 소독을 하고 약물을 투입하느라 한참동안 씨름을 하였다. 개미의 독이 온몸에 퍼진 도르반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헛소리까지 하였다.

 하지만 함께 출정한 육군이 개미 떼에게 모두 몰살당했고 본인만 살아서 돌아왔으니, 도르반도 역시 책임추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령부의 군사들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도르반이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그대로 그를 수레에 태우고는 황제가 있는 황금마차로 향했다.


 *           *           *


 적군과 매머드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들이 탔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많던 개미 떼는 식사가 끝나자 남은 살점 하나씩을 들고 모두 땅속으로 들어가버렸는지, 지금은 아예 보이지가 않았다.

 개미 떼로 인해 새까맣게 보이던 땅도, 이제는 붉은 피만 잔뜩 묻은 흙색을 다시 드러내었다.

 전장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매서운 바람소리만이 들렸다. 퓨그의 황제 호크런과 남은 육군도 마지막의 결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이란과 코르군은 처참했던 살육의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미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었는지 실감이 났다. 병사들의 시신은 이미 백골로 변해있었다.

 황제는 그런 사이사이를 지나쳐, 무너져도 거대하게 무너진 매머드를 향했다.

 “아, 이런~” 완저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이럴 수가?” 장군 파르코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매머드의 정체가 이런 것이었다니...” 황제 하이란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과연 그러했다.

 병사들이 군복 안에 뼈만 남았듯이, 매머드도 가죽 안에 뼈대만 남은 것은 비슷했다. 그런데 그 가죽은 동물의 가죽이 아니었고 그 뼈대는 동물의 진짜 뼈가 아니었다. 붉게 보이던 매머드의 눈도, 적이 전투기 엔진에 장착한 것과 같은 크기의 루비 덩어리였다.

 한 마디로 매머드는 실제 동물이 아니라... 기계였다!!

 빙하 시대에 이미 멸종한 매머드를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호크런이 만든 기계가 그동안 움직였던 것을 코르군은 확인했다.


 매머드의 눈은 루비 엔진이었고, 매머드의 가죽은 화염 공격에도 끄떡이 없는 방패막이였다. 

 호크런은 각목과 나무판과 철제를 적절히 조합하여 완벽한 기계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몸통 안에는 몇 명의 병사가 탑승하여 이 기계를 조종하고 있었는데, 그들도 이미 백골의 시신이 된 후였다.

 개미 떼가 매머드를 타고 오를 때, 굳이 매머드의 몸속으로 몰려들어간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기계에는 관심이 없고 안에서 풍겨 나오는 사람의 냄새에 식욕이 당긴 것이었다.


 지난 19년 전의 ‘7일 전쟁’때, 어떻게 이 거대한 매머드가 두크린강을 건넜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풀렸다.

 그들은 매머드를 분해하여 각자 작은 조각과 부품을 들고 강을 건넌 다음, 코르의 본토로 들어와 다시 조립을 하여 매머드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그렇다면... 호크런의 정체는... 마법사이기도 하고 또 천재 과학자이기도 하다는 말인가...?” 하이란과 수뇌부는 두려움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물론 희망은 남아있었다.

 적의 주력인 매머드와 공군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나머지 퓨그군과 백병전을 벌이며, 정확한 실체를 할 수 없는 호크런을 상대하는 일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마지막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와 희망으로 코르군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           *           *


 엄청난 패배를 보고받은 호크런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황금마차에서 내려온 그는, 당장이라도 도르반과 카오핑의 목을 벨 태세였다. 호크런의 주변을 늘 어슬렁거리며 황제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는 육중한 체구의 불곰들도 가슴을 치고 포효를 하면서 불처럼 화를 내었다.


 바닥에 강제로 무릎이 꿇려진 도르반은, 개미독과 상처의 고통으로 신음하느라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그는 삶에 대한 집착을 포기할 뜻은 없는 듯했다.

 그 많은 병력과 무기가 모두 허망하게 자취를 감추었으니, 총사령관으로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아직 치료가 다 끝나지 않은 자신을 왜 여기 데려왔냐고 병사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났기 때문에, 도르반 자신으로서도 손을 쓸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핑계만을 황제에게 늘어놓았다.


 그런 도르반의 태도는 황제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러나 호크런은 아직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호크런은 전에도 여러 번 도르반에게 징계를 내리고 싶었지만, 코르의 본토로 진격을 했을 때 온화한 남풍 마프(Marp)가 기세를 부리면 냉혈족으로서는 힘을 쓸 수가 없기에, 맨츠의 부족을 이끌고 있는 그를 아직은 살려둘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코르를 치려면 도르반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미련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전투의 결과는 이미 이렇게 되었고, 다른 냉혈족 장군들은 계속해서 도르반과 카오핑에게 극형을 내리라고 항의와도 같은 건의를 거세게 하고 있기에, 황제로서도 지금은 머리가 무척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은, 일의 자초지종을 알 필요가 있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해야, 다음에 실수를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도르반과 카오핑의 목숨 하나 날리는 게 당장 급한 것은 아니었다.

 곧 닥칠 황제끼리의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빨리 찾아 개선해야만 했다.


 이미 몸과 마음이 다 부서지고 망가진 도르반이었지만, 천재지변을 이길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입은 아직도 그대로 살아있었다.

 반면에 카오핑은 팔에 부목도 대었고, 치료약의 효과도 나타나 그나마 안정을 되찾았는지,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는 먼저 도르반을 엄중하게 꾸짖으며, 군대가 일방적으로 몰살당한 이유를 물었다.

 도르반은 그저 천재지변이었다고 계속 강변했다.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땅속에서 나타난 개미 떼가 아주 넓은 벌판을 갑자기 장악해버려, 아무리 말을 달리고 병사들에게 피하라고 명령을 내렸어도, 개미 떼가 이미 침범한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고만 주장했다.

 그런 현상을 어찌 예상하지 못했냐고 냉혈족 장군들이 공격을 했지만 도르반은 오히려 성을 내며, 그럼 당신들은 그런 현상을 왜 예상하지 못했냐고 되받아쳤다. 선봉에 선 자신과 군대에게 그런 현상이 예상되니 천천히 진격하라는 말을 미리 해주지 않은 이유는 뭐냐고 따져 물었다.

 듣고 보니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냉혈족 장군들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야 말았다. 모두가 도르반의 궤변에는 맥을 못추고 있었다. 황제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공군이 메뚜기 떼에 전멸한 이유도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냐고, 냉혈족의 한 장군이 다시 물었다.

 도르반은 역시 비슷한 대답을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고 말하며, 이번에는 슬쩍 한 발 물러났다. 그러자 얌전히 있던 카오핑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도르반을 쳐다보았다. 그런 카오핑의 놀란 시선을 도르반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적의 전투기들이 엔진을 모두 해체시키고 공중전을 포기한 상태로 있을 때, 그들은 땅에 있고 우리는 하늘에서 이를 정찰했는데, 아마도 그들은 땅속에서부터의 천재지변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아군은 정찰기로만 이를 확인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 그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것이라고 도르반은 꽤 감성적으로 주변을 설득했다.

 그 말에, 잠깐 놀랐던 카오핑은 설마하는 마음을 다시 누그러뜨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도르반의 그 다음 말에 모든 상황은 일시에 돌변하고야 말았다.

 메뚜기 떼가 나타나기 직전에 아군의 모든 전투기는 적의 상공에 있었다. 땅에서부터 거대한 연기가 솟아올라 밑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그때 아군기들은 가지고 있는 폭탄을 모두 거기서 투하하고는 적의 상공을 떠났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아무리 메뚜기 떼가 거대하게 떠올랐어도, 전투기가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공군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귀환할 수가 있었다.

 폭격을 하라고 모든 전투기를 보냈건만, 빨리 폭격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바람에 몰살을 당한 것이라고 도르반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말하면서 도르반은 카오핑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자 냉혈족 장군들의 성난 시선은 모두 대령 카오핑에게로 향했다.


 카오핑은 어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적이 함정을 파는 건 아니겠냐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는데, 대장군 도르반이 걱정할 것 없다고 당장 출격하라고 명령을 내려 결국은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도르반은 모든 책임을 카오핑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카오핑은 기가 막혔다. 수십 년간 믿고 의지했던 고향 선배이자 삼촌뻘인 도르반이 자신에게 이런 수모를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이건 그냥 수모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책임을 추궁당하면 당장 자신의 목이 달아날 형편이었다. 자신만 살자고, 자신만 책임을 회피하겠다고, 고향 후배이자 최측근이자 조카뻘인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도르반의 행동에, 카오핑의 배신감은 폭발하고야 말았다.

 빗발치는 냉혈족 장군들의 책임추궁 포화에, 카오핑은 모든 것을 이실직고하겠다며 당당하게 말을 꺼냈다.

 뭐 여기까지는 도르반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카오핑이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중요한 것은 일단 자신이 살고 봐야했다.


 적의 함정일 수도 있을 거라고 카오핑은 도르반에게 미리 말했다고 하겠지만, 이는 사실 증거가 없었다.도르반은 그저 발뺌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냥 그렇게 계속 카오핑의 결정적인 실수만을 물고 늘어질 속셈이었다.

 하지만 카오핑은 가만히 앉아서 도르반에게 당할 그런 어리숙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화노블산의 지하 기지 사건이나, 코르에 내려가서 있었던 일 등, 그동안의 모든 과정에 대한 도르반의 실책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그의 실토는 호크런에게도 냉혈족 장군들에게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카오핑은, 한즈(Hanz)의 프로스(Pross)궁에서 휘레스(Phoiress)왕의 왕관을 빼앗아 마차 두 대분의 황금 조공과 함께 퓨그로 돌아오던 중에, 두크린강 하구의 유스토에 하룻밤을 머물면서 발생했던 얘기부터 꺼냈다.

 그 금관은 온전히 황제 폐하에게 가져다 드려야 할 공물로, 아무리 도르반이 휘레스왕을 협박해서 획득한 것이라고는 하나,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르반은 그날 밤 천막에서, 그 금관을 본인이 직접 머리에 쓰고는 황금잔에 술을 부어 가득 마시고 마치 황제가 된 마냥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대취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병사들이 경계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막사에 온통 화재가 발생하면서 도르반은 금관을 분실하고야 말았다. 더군다나 볼모로 잡아 디퍼슨으로 데려가고 있던 코르의 왕세자 베니안마저 혼란 중에 사라져버렸다.


 또한 남풍 마프의 근원지를 알아내라고 시킨 황명을 받고도, 코르의 남쪽 바다 끝에 있는 가장 큰 섬인 코지(Cozee)를 제대로 검열하지도 않았으면서, 황제에게는 모든 조사를 다 했고 아무런 문제를 찾지 못했다고 거짓으로 보고를 하였다.

 코르의 대장군 에반과 그 일파를 잠시 지하 기지에서 보호한 일과, 에반의 고집과 착각에 넘어가 작전을 그르쳐, 그토록 힘들게 키운 불곰 군단과 늑대 군단이 적의 기습을 받아 전멸한 사건도 거론하였다. 그 책임의 추궁을 당하지 않기 위해 황제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거짓으로 보고한 것도 실토했다.

 언젠가는 본인이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다는 말까지 꺼냈다.


 호크런과 냉혈족 장군들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폭발했다. 카오핑의 말이 모두 사실이냐고 도르반에게 거세게 따져 물었다.

 도르반은 허탈했다.

 공중전에서의 참패의 원인을 카오핑에게 돌리면, 분노한 황제가 단칼에 카오핑을 벨 것으로 생각했었다. 자신에 대한 모든 비난을 카오핑이 전부 짊어지고 이승을 빨리 떠나주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경과에 대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런 얘기를 황제가 끝까지 들어줄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지에 대해, 수만 가지의 잔꾀가 도르반의 머리를 스쳤다.


 우선은 무조건 아니라고 발뺌을 해야만 했다.

 카오핑이 지금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거짓을 고하고 있다고 항변해야만 했다. 그래서 도르반은 당당하게 그대로 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황제와 냉혈족은 알 방법이 없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참모들도 이번 전투에서 모두 숨진 뒤였기 때문에, 확인을 할 증거가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 호크런이 잠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번뜩하는 생각이 든 카오핑은 결정적인 증거를 대겠다며 벌떡 일어나 말을 꺼냈다.

 카오핑은... 얀스라는 코르 사람이 병사들 중에 있다고 고백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도르반은 가슴 속으로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진즉에 에보크와 얀스를 죽이고 나서 황제가 있는 본진으로 들어왔어야 했는데...


 황제가 보낸 참모들은 병사들의 막사를 뒤져 다리를 절뚝거리는 얀스를 찾아 데리고 왔다. 얼굴의 반은 화상의 흉터로 가득한 초췌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퓨그어에는 서투른 그였지만 용케도 병사들 사이에는 눈에 띄지 않고 잘도 숨어서 지냈었다. 물론 카오핑이 신경을 써서, 문제없게 잘 지내도록 보살핀 결과이기도 했다.


 몰골은 초췌했지만, 얀스는 속으로 환희에 차고 있었다. 드디어 황제 호크런을 눈앞에서 만난 것이었다.그토록 찾아 헤매던 절대 힘의 원천, ‘사자의 심장’이자 ‘황제의 별’이 분명 그에게 가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호렌 세계에서는 그가 ‘가장 위대한 자’이기에, 반드시 그러할 것이었다. 사라진 유성, 사라진 별이 이제 조금만 더 찾으면 얀스의 눈에도 보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떻게든 황제를 잘 구슬려 그와 친해진 다음에는, 틈을 타서 사자의 심장을 훔치고 하멜을 찾아 콕센(Coxen)으로 달아나면 되었다.

 지금 얀스의 눈엔 온통 그런 밝은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황제는 카오핑에게 정확한 통역을 하도록 명령한 뒤, 누구의 말이 맞는지에 대해 얀스에게 물었다. 전후의 사정을 다 알게 된 얀스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즉시 대답을 했다.

 카오핑이 증언이 모두 맞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도르반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제는 삶의 희망이 사라져버렸다고 느꼈다.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던 도르반의 가증스런 행동에 몸서리를 쳤던 카오핑은, 이제야 살았다는 확신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얀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크런과 냉혈족은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병사들은 흐느적대는 도르반을 황제의 앞으로 강제로 끌고 나왔다.

 호크런은 즉시 처형을 하라고 엄하게 명령을 내렸다. 호위를 하는 불곰들은 발톱을 길게 세우고 땅을 박박 긁어대며 으르렁거렸다.


 도르반은 마지막으로 카오핑을 한 번 쳐다보았다. 수십 년간 동고동락했던 자신이 가장 아끼던 부하이자 조카였다. 그런 카오핑의 증언으로 인해 지금 자신은 저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회한이 밀려왔다.

 황제에게 책임을 추궁당하더라도, 그를 변호하며 함께 추궁을 당했으면 목숨만은 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의 이기심에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친 결과가 이제는 이렇게 다가오고야 말았다.

 

 이미 모두 끝난 얘기였다. 이제 와서 황제의 분노를 돌릴 방법도 전혀 없었다.

 도르반은 눈시울을 적시며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휙~!!!

 퍽~~

 콸콸콸~~~

 큰 칼이 허공을 가르자, 도르반의 목은 붉은 피와 함께 멀리 달아났다.

 배가 고픈 불곰들이 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코르의 만년 2인자로서 잠시 국왕의 자리를 탐내다 결국 호랑이의 밥으로 인생을 마감한 대장군 에반처럼, 언제나 퓨그의 2인자로 살아왔으나 가끔 황제의 자리를 꿈꾸었던 대장군 도르반은, 이처럼 불곰의 밥이 되는 것으로 최후를 마감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황제의 분노는 도르반 한 사람을 처형한 것으로만은 쉽게 가라앉지가 않았다. 이것은 카오핑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수십 년간 도르반의 최측근으로 살아온 카오핑.

 호크런의 눈에는 그도 역시 도르반과 한 패로 보여졌다. 비록 마지막에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실토했다지만, 황제는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숨긴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카오핑에게 분노를 느꼈다.

 

 황제의 표정이 계속해서 일그러져있자, 이제는 카오핑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카오핑을 도와 진실을 말했던 얀스도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지만 모든 힘은 황제인 호크런에게 있었다. 모든 결정은 그가 내리는 것이었다.

 카오핑은 도르반과 한 패라고 황제가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코르에서 잠깐 넘어왔지만 그동안 함께 지냈으니 얀스 역시 카오핑과 한 패라고 황제가 결론을 내려버리면, 그게 곧 진리가 되는 것이었다.

 카오핑과 얀스는 머리를 조아리며 자비를 구했지만, 황제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이들은 병사들에게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죽지는 않을 만큼의 고문이었지만,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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