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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필스너
작품등록일 :
2022.05.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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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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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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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0쪽

<38화>

병자호란




DUMMY

   에피소드 2. 하이란과 호렌의 황제


                              4부


 29. 디퍼슨 일기


 코르의 공군력이 예상 외로 강해 퓨그의 전투기가 전멸한 사실을 두고 호크런(Hawkrunn)은 분을 이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애꿎게도 맨츠(Mantz) 부족 출신과 타 지역 출신 장수의 목 수십 개가 달아난 뒤에야, 황제는 노여움을 좀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런데 퓨그군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어찌 보면 패전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도 할 수 있는 대장군 도르반(Dorban)의 신변과 지위에는 이번에도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황제를 따라 북극에서 내려온 냉혈족 출신의 장군과 대신들은, 수시로 도르반의 실책을 거론하고 그의 불충을 들어 지위를 깎아내리려 하였지만, 황제도 당장은 도르반의 힘이 필요한 상태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도르반도 겉으로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지만, 남풍 마프(Marp)가 계속 불어와 북풍 보라(Bora)와 충돌을 하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자신의 입지는 확고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기에 사실 황제의 벌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패전의 책임을 다른 나약한 장수들에게 돌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도르반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카오핑 대령은, 그런 대장군의 음모를 밑에서부터 뒷받침했다. 자신은 절대 장군으로 승진을 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장군의 반열에서 거들먹거리고 있는 눈엣가시들은, 이들에게 불만이 많은 병사들의 탄원을 모아 자신이 직접 나서 황제에게 그 죄를 고자질하기 일쑤였다.

 위로는 도르반이, 아래에서는 카오핑이 이처럼 격렬하게 협공을 하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작전을 주도하며 자신의 공을 드러내려 하는 장수들은 그래서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냉혈족을 제외한 퓨그의 장수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보다 오히려 도르반에게 적당히 묻어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 더 정확한 표현임이 현재 퓨그의 상황이었다.


 어쨌든 호크런은 자신이 친히 출정하는 날까지 모든 전력을 두 배로 올리라는 칙령을 전군에 내렸다. 또한 맨츠에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터라, 매머드를 앞세운 군단도 이번에는 총공격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장군 도르반에게 엄청난 불만이 있었지만, 아무리 황제라 해도 지금 당장은 감정을 조절해야할 필요가 있었기에...


 *            *            *


 아직도 10월 초,

 포박을 당해 *함거에 실려 두크린(Duckreen)강 국경 수비대로 향하고 있는 에반(Evan)과 그 일파는 삶을 체념한 듯했다. 어차피 최전방에서 화살받이나 하다가 죽어야 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물론 에보크(Evoke)와 얀스(Jans)도 함께 있었다. 얀스는 그래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지만, 왕세자의 자리가 눈앞에 있다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철없고 혈기만 왕성한 에보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다, 다시 한숨만 쉬었다, 가끔은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에반의 권세가 한순간에 추락한 것을 확인한 길가의 군중들은, 코르의 군주와 세상이 바뀌었음을 그대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 예전에 죄인을 실어 나르던 수레.

 

 죄인이라고는 하나 긴 여정에 식사와 용변을 위해 잠깐씩은 함거에서 내려 포박이 풀린 상태로 휴식을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잠시라도 쓰러져 눈을 붙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얀스는 어떤 정보라도 얻으려 주위를 세심히 관찰했다. 또한 그동안은 지극히 계약적인 관계였던 에반에게도 먼저 다가가, 궁금했던 지난 일에 대해 하나씩 천천히 묻기 시작했다. 이미 목숨을 포기한 에반도 더는 숨길 게 없었다. 그저 편하게 모든 과거의 기억을 그에게 펼쳐놓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늘 데리고 다니던 매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 매는 대장군에게만 충직하다고 들었는데... 하늘을 봐도 따라오는 것이 전혀 안 보입디다만...” 얀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빌로(Veelo) 말이오? 매가 얼마나 영리한 동물인데, 충성도 주인이 힘이 있을 때 바치는 것 아니겠소? 대전에서의 그 난리를 다 지켜봤고, 이젠 주인이 죄인이 되어 죽으러 가는 마당인데, 그놈이 내게 더 이상 붙어있을 필요가 뭐가 있겠소? 아마도 다른 주인을 찾아 어디론지 멀리 가버렸겠지요.” 에반은 여전히 세상에서의 삶을 단념한 것처럼 보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나저나 대장군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솔직히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얀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한 번 말해보시오.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이제 와서 내가 대장에게 숨길 게 무엇이 있겠소? 묻는 대로 지난 일에 대해 모두 다 말하리다. 그렇게라도 하면 답답한 내 속이 조금은 뚫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에반은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그러자 얀스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난번 징계 위원회 때 말이오. 그때 만약 생도들에게 퇴학의 처분을 내렸더라면, 하이란은 어쩔 수 없이 바로 코지섬으로 다시 내려갔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쯤 대장군은 그토록 원하던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을 것 아니겠소?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대장군이 무기정학으로 징계를 낮추었고, 이유는 비행기를 만든 기술을 인정해서라고 하였소. 또한 더 훌륭한 비행기를 만들어내면 그때 가서 정학을 풀 수 있다고도 하였고. 나는 솔직히 그 부분이 이해가 잘 가질 않소. 사실 최초로 비행기를 설계한 것도 나였고,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을 때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도 바로 나였는데, 그냥 나에게 당근을 주어 비행기를 맡기고, 생도들에게는 바로 채찍을 내렸으면 되었을 것을, 어떤 이유로 그들을 그렇게 봐준 것인지 말이오... 특히나 대장군은 하이란 생도를 아주 싫어하지 않았소? 그런데도 완전히 내치지 않은 이유가 나는 궁금하다는 것이오. 혹시... 오빠가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샤니 생도가 그중에 포함되어 있어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에 그랬던 것이오?”

 “후후, 얀스 대장은 그런 생각이 들었었군요. 사실은 말이오... 음... 사실은... 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오. 아주 오래된...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그런 이유가...” 에반은 길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오래된 이유? 아니 어떤 이유길래 그토록 싫어하던 하이란에게 대장군이 다시 기회를 줬다는 것인지...” 얀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음... 그러니까... 크란(Krann)산에서 사냥 대회를 열었을 때, 하이란이 이마의 파란 인장을 갑자기 벗겨내며 자신이 여자임을 밝히지 않았소?”

 “그랬지요. 그건 파르코나 나나 하멜 왕자님이 사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했던 그런 약속이었소.” 얀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게... 하이란이 여자라는 사실에 정말 놀라기도 했지만... 왜냐하면, 무예가 그토록 뛰어난 젊은이였는데, 그게 사내도 아니고 여자였다고 하니... 그런데 그보다 내가 진짜 더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은... 하이란이 완저(Wanzer) 총독의 딸이라는 사실이었소! 더군다나 아비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자랐다는 말에... 그 말에... 내 가슴에 와닿는 게 하나 있어서...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모든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하이란을 절대로 내칠 수가 없었소.” 에반은 아주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확인? 아니, 있는 그대로 다 말을 했는데, 무엇을 더 확인한다는 말이오?”

 “나는 하이란이... 어쩌면 나의 딸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소.”

 “뭐요? 대장군의 딸?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에보크가 있는데 같은 나이의 딸이 또 있다니? 그럼... 당시에 혹시 완저 총독과...??”

 “그렇소. 그럴 이유가 있었소..."

 "어떤 이유?? 어차피 얘기가 여기까지 나왔으니, 자세히 말을 좀 해보시오." 얀스는 계속해서 다그치듯 물었다.

 

 "음... 그러니까... ‘7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유명한 군인은 아니었소. 우리 가문이 대대로 장군을 많이 배출하기는 했지만, 나의 직급이 꽤 높을 나이는 아니었다는 말이오. 물론 촉망받는 장교였기는 해도... 어쨌든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전쟁이 일어난 뒤 나는 큰 공을 많이 세워서 초고속으로 승진을 거듭해 대장군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사실 전쟁 전에는, 왕세자인 브리젠(Brizenn)에게 많은 권력이 몰려있었소. 그래서 왕세자와는 생각이나 노선이 달랐던... 나의 은사이자 선배인 이스트 포인트 출신의 장군들과 왕세지 간에는... 서서히 여러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던 시절이오. 그리고 완저 총독은 당시에 브리젠의 부인인 진주(Jinju) 세자빈의 여종이었소. 그런데 여기서...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주 강했던 나는, 어쩌면 미래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을 브리젠 왕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좀 알아낼 필요가 있었소.”

 “음... 그래서 일부러 완저에게 접근한 것이었군요.”

 "솔직히 그렇소. 나는 조상 대대로 이스트 포인트 출신인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완저는 그저 평범한 몸종에 불과했지요. 그런 그녀에게 나는... 겸손과 친절, 성실과 긍정의 가면을 쓰고 은근히 다가갔소. 그러니 처음에는 완저가 좀 놀라고 당황하더군요. 하지만 계속되는 나의 호의에 그녀도 차츰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렸소. 당시에 그런 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결국... 함께 잠자리를 가진 적도 몇 번 있었소. 그렇게 하면서 나는 브리젠 세자와 진주 세자빈의 성향이나 동향을 완저로부터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럴수록 그녀에게 더 잘 해줬지...“

 “그런데 어떤 이유로, 지금은 완저 총독이 대장군을 그리도 증오한다는 말이오?”


  *            *            *



 “폐하,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소인들이 드디어 적기를 다 물리치고 퓨그군 기마부대의 진격 또한 모두 저지했사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옵소서, 폐하. 보급품 부대도 지금 막 도착하였사옵니다. 적의 불곰과 늑대 군단이 이리 오기 전에 충분히 배를 탈 수 있사옵니다!”


 “배를 타면 하루면 한즈에 도착하옵니다. 어서 정신을 차리시고 일어나시옵소서, 폐하!”


 “폐하는 코르의 국왕이시옵니다. 폐하께서 힘을 내셔야 코르의 군사들도 힘이 나옵니다! 이제는 제발 눈을 뜨시옵소서!”


 "사라진... 별은...”


 “네? 뭐라고 그러신 것이옵니까, 폐하? 사... 사라... 사라진 별이요? 저번에 말씀하신 그 별이라는 것이옵니까? 소인들이 아직 부족해서 풀지 못했던 그 수수께끼 말이옵니까?”


 “그래... 그 별은...”


 “네, 폐하! 그 별은요?”


 “그 별은... 디...퍼슨...”


 “디퍼슨이요? 디퍼슨이 어떻다는 말씀이옵니까?”


 “디퍼슨... 브리젠 형님이 먼저 귀국하시던... 바로 그 전날 밤... 그 말씀...”


 “네? 브리젠 세자께옵서 당시에 어떤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옵니까?”


 “그 말씀... 아... 디... 퍼... 슨... 일... 기......”


 “폐하~~~~~~”



 황제에 오른 하이란이나 근위대장이 되어 황제를 보필하고 있는 하멜이나, 지금 당장 제일 신경을 써야할 일은 바로 퓨그(Fuug)와의 전면전이었다. 맨츠에서 적의 지상군과 전투기에게 큰 타격을 입혀 가까스로 진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퓨그의 황제인 호크런에게 회복하지 못 할 만큼의 결정적인 손실을 입힌 것은 아니었다. 황제 스스로도 출정하지 않았고, 적의 주력인 매머드 군단이 나타난 것도 더욱 아니었다. 

 결국 이제 남은 일은, 다시 한 번 맨츠 벌판에서 국가의 운명을 건 전면전을 벌이는 것, 바로 그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엄청난 퓨그의 군사력과 물량공세에 대응을 하려면, 코르에서도 열세인 전력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최첨단 전투 장비를 새로 개발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신비한 마력을 찾아야만 했다.


 코르군도 수정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를 다시 제작하고 있고 남은 병력 또한 서둘러 추스르고는 있었지만, 지금으로서 이것만으로는 퓨그의 호크런과 매머드 군단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기본적으로 기마 부대를 형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장을 거침없이 질주할 건장한 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무모하게 시작했던 맨츠 벌판으로의 진군에서 너무도 많은 말들이 추위와 배고픔 속에 죽어간 결과이기도 했다.


 결국 휘레스(Phoiress)왕이, 분명 '솔루노픽스(SolunOpeaks)' 병풍에 어떤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19년 전에 사라진 바로 그 별을 찾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포탄의 파편에 가슴을 맞아 숨을 계속 헐떡거리며 겨우 말 몇 마디만을 하던 휘레스왕의 마지막 순간이, 하이란이나 하멜의 뇌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 * *


 끼이익~

 그리 크지 않은 문이 천천히 열렸다.

 하이란은 시종과 근위병을 모두 물린 채, 근위대장인 하멜만을 대동한 상태였다.

 공식적으로는 이 나라의 주인인 황제와, 황제의 신하인 근위대장이란 관계였지만, 실상은 서로 깊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연인의 사이였다. 그리고 아무리 황제와 대장이라고는 하나, 이제 겨우 19살의 파릇파릇한 청춘이었다.

 그래서 둘은 가급적이면 둘만 있는 시간이 참 좋았고, 둘이 있을 때는 황제고 대장이고 할 것 없이 보통의 연인끼리 하는 그런 편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하멜이 혼자 중얼거렸다.

 “나도 여긴 처음 들어와 봐. 하멜, 우리가 원하는 게 과연 여기에 있을까? 꼭 있어야만 하는데...” 하이란도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말을 꺼냈다.

 “글쎄, 지금은 사실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하멜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코르(Corr) 왕국, 아니 하이란이 스스로 황제를 칭했기에, 이제는 코르 제국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하여간 둘은 코르의 역대 왕과 왕실의 기록을 모두 보관한 사고(史庫)에 들어섰다.

 멀리 있는 사람의 숨소리도 다 들릴 만큼, 내부는 아주 고요했다. 높고 긴 책장이 수십 개나 열을 지어 설치된 상태였고, 각 책장에는 수백 권의 기록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역사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사고 안의 분위기에, 둘은 처음부터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국왕과 왕세자, 또 왕실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상황을 전부 기록한 수천 권의 실록이었다. 코르 왕국이 세워진 700여 년 전,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순서대로 일사분란하게 정리되어 있는 실록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코르의 진짜 역사이자 가장 중요한 보물이었다.

 하이란은 실록의 방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멜도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코르 왕국의 저력에 대해 새삼 경외심을 느꼈다.


 호렌으로 들어오기 전, 콕센에서 자신이 알고 있었던 사실. 그리고 남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

 호렌(Horen)이라는 세계는 자신의 네론(Nehron) 왕국이 속한 콕센(Coxen)이라는 세계보다 과학이나 기술력에서 많이 뒤쳐져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네론이나 네론의 가장 큰 경쟁국인 앵글(Angle) 왕국에서조차 이런 실록을 남겼거나 지금 남기고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런 실록이 있었다면, 19년 전에 아버지인 요한슨(Johannson) 왕자는 왜 호렌으로 원정을 감행했는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머니인 마리앙(Mariann)은 또 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하멜도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는 코르 안에서도 공공연히 밝혀진, 하멜 자신이 네론 왕국의 왕자라는 사실이 지금은 갑자기 초라하게 다가왔다.


 하이란은 하멜처럼 내적인 고민에 사로잡혀 있을 입장이 아니었다. 우선은 아버지 브리젠 세자에 관한 실록부터 찾았다.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퓨그의 수도인 디퍼슨(Deeperson)에 볼모로 끌려갔었을 때를 적었다는 ‘디퍼슨 일기’를 찾아다녔다.

 의자를 옮겨 그 위에서 책장을 뒤지기도 했고, 성이 안 차면 사다리를 가져와 맨발로 거길 올라가서 실록을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하이란은 드디어 아주 평범하게 진열되어 있던 책들 중에서 원하던 것을 찾고야 말았다.

 부리나케 촛불을 켜고 실록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는 건, 하이란의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었다.

 

 ‘*세자가 오늘은 디퍼슨의 관소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은 오후에 도르반 장군이 관소로 찾아왔다... 세자는 황제 호크런이 사냥을 가는 길에 배웅을 나갔다... 오늘은 카론성으로 들어가 황제가 주관하는 연회에 참석했다...’ 하이란은 일기에 적혀진 내용을 꼼꼼이 확인해 나갔다.

 

 “어쩜 매일매일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을 했을까. 그것도 수백 년 동안...” 하이란은 크게 감탄을 했다.

 “그러게. 할 말이 없네.” 옆에서 함께 글을 확인하던 하멜도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잠깐, 하멜. 여기를 좀 봐. 이것은... 아마도... 아바바마께서 어느 날, 함께 있던 어마마마나 시종들과 관소 안에서 나눈 대화를 사관이 적은 것 같아.”

 “그래? 뭘 어떻게 적었는데?” 하멜은 더욱 궁금증이 커져갔다.

 "지금 우리의 국방력으로 퓨그와 맞선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훨씬 더 강화해 궁극적으로는 퓨그로부터 독립을 하여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상하더라도 지금은 퓨그의 앞선 문물을 배워야 할 시기다... 나는 민족이 부활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며, 결국에는 민족의 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 이번에는 하멜이 일기에 적힌 내용을 나지막이 소리내어 읽어갔다.


 

* 실제로 ‘소현세자 심양일기’에는 위에 적은 식으로 기록되어 있음.



 "아바마마는 이토록 민족혼의 부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어. 현실을 직시하고 차분히 준비를 하며, 퓨그에게 복수할 힘이 갖춰질 때까지는 그들에게 거짓으로라도 고개를 숙이며 미래를 기다리신 거야. 그런데 이런 아바마마의 뜻도 모르고 에반이나 그 일파들은 자기 세력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아바마마를 그토록 모함했었다니! 그냥 지난번 대전에서 내가 에반을 확 죽여버릴 걸 그랬었나봐...” 분노가 끓어오른 하이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하멜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었다.

 “사라진 별에 대한 단서 같은 것은 어디 없어?” 조급한 듯한 표정으로 하멜이 물었다.

 “글쎄......” 자신의 말을 하멜이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느꼈는지, 하이란은 좀 섭섭한 표정부터 먼저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면서 눈알만 열심히 굴렸다.


 "참,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하멜이 대뜸 물었다.

 "어? 뭐가?" 온통 책에 관심이 가있는 하이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네론의 왕자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나나 얀스나 그 얘기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살았었는데... 둘이서 몰래 대화를 하는 걸 언제 들킨 적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아, 그거. 그게 뭐냐면... 난 둘의 관계를 진즉부터 다 알고 있었어. 그냥 계속 모른 척한 거지만, 호호~" 하이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진즉부터? 아니 어떻게??" 하멜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코지섬에 언제 난파했는지, 어떤 경로로 이동을 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일단 통나무 다리를 건너 인간의 영역으로 두 사람이 들어온 순간부터는, 누군가가 다 보고 있었지. 두 사람이 움직이는 게 다 기록되어 있다니까? 그 기억을 나중에 또 재현시키면 나도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되고 말이야..." 하이란은 약간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너희가 거석상을 세우는 의식을 진행하는 걸 나랑 얀스가 몰래 염탐하다 들키기 전까지는, 주위에 사람들이 전혀 없었는데? 송골매도 보질 못했고, 낮이라 반딧불이도 아예 없었거든? 도대체 누가 봤고, 또 누구의 기억을 재현시킨다는 거야??" 하멜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사람들은 전혀 없었겠지만... 사람처럼 생긴 것은 군데군데 많이 있었잖아??" 하이란은 여전히 웃음을 띄며 말했다.

 "사람처럼 생긴 거? 그게 뭐야? 혹시... 거석상?? 그럼 거석상에 보는 눈이 달렸어? 그건 그냥 큰 조각품이나 상징물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호호호. 그리고, 한즈로 올라오는 노리브(Norivv)호 안에서 네가 나를 갑자기 뒤에서 덮쳤을 때, 내가 밑에 있는 줄 모르고 얀스가 ‘앗, 왕자님?’이라고 잠깐 말했었는데, 그때 뭐 내가 완전히 다 기절한 줄 알았니? 호호호." 하이란은 계속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반면에 하멜은 “아니, 뭐야?”라고 말하며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참,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이번엔 하이란이 문득 물었다.

 "뭔데?" 하멜은 약간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손가락의 그 반지, 전혀 못 보던 것이라... 어디서 난 거야? 생김새가 보통 반지는 아닌 듯해서 말이야... 혹시 누가 줬어??"

 "아, 이거... 아냐 누가 주긴? 전부터 있던 거야... 평소에는 목걸이에 걸고 다니다가, 그냥 손가락에 낀 거야...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끼시던 반지..." 하멜은 약간 숙연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군... 호렌으로의 원정을 감행하시면서, 만약을 위해 그 반지는 아들인 하멜에게 남겨놓고 떠나신 거구나..." 하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되물었다.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후후후" 하멜은 눈시울을 약간 적신 상태로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하이란은 더 이상 반지에 대한 사연을 묻지는 않았다.


 

 하이란은 갑자기 실록의 어느 대목에서 집중하다가, 여기를 보라고 하멜을 툭 치며 함께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디퍼슨에서 아바마마와 휘레스(Phoiress) 숙부가 대화하는 내용인가 봐... 어려서 솔루노픽스(SolunOpeaks) 병풍 앞에서 놀았던 이야기... 디퍼슨에서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

 “어, 정말 그런 것까지 다 쓰여 있네? 두 분이 대화를 하실 때에도 사관은 늘 곁에 같이 있었다는 얘기네? 후세에 모든 것을 남긴다는 자세로 말이야. **어떻게 이런 방법과 제도를 생각하고 만들고 또 실천에 옮겼을까? 참, 코르라는 나라가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우리 네론 왕국에서는 아니, 우리 콕센 대륙의 어떤 국가도 이런 것을 이렇게 기록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어.” 하멜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러자 하이란은 자신의 나라가 마냥 자랑스러웠는지,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한 번 거만하게 뒤로 잔뜩 젖혔다.



 ** 조선왕조의 실록들은,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직 조선에서만 이루어진 방대하고도 자세한 기록임.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도 모두 실록을 편찬하기는 했지만, ‘조선왕조실록’처럼 장기간 기록하지 않았고, 또 중국이나 일본은 손으로 쓴 필사본이었지 조선처럼 실록을 인쇄본으로 만들지도 않았으며, 후세에 임의로 고칠 수도 있는 허술한 관리를 하였음. 따라서 질이나 양적인 면에서 다른 나라의 실록은 결코 ‘조선왕조실록’을 따라올 수가 없음.



 "음... '7일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그 해 여름에 우리나라에 떨어진 유성 때문이었대. 퓨그에서도 유성에 대한 전설이 있었는데, 그 별을 차지하면 호렌 대륙을 완전히 제패할 수 있다고 믿었었나 봐. 그래서 결국은 호크런이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서 밀고 내려왔을 것이라는 얘기도 적혀있어. 그들은 한즈(Hanz)까지 점령하고도 별에 대한 정보를 얻지는 못해, 왕자들과 백성을 볼모로 잡아가려는 준비와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시간을 좀 끌며, 비밀리에 전국의 방방곡곡을 다 뒤졌었는데... 끝내는 찾지를 못했대... ... ... 아바마마는... 그 별을 깨우는 주문을 알아야만 하는데 그걸 아직도 알지 못했다고... 그런 말씀도 적혀있어...”

 “그래? 어디 좀 보자... 음...” 하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기를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아... ‘7일 전쟁’이 일어난 진짜 이유가 그 유성 하나 때문이었다니... 나 참... 우리 부모님이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데... ” 하이란은 그저 답답한 마음으로 한숨만 길게 쉬었다. 그러나 하멜은 지금 그런 가냘픈 감정에 사로잡힐 상황이 아니었다.


 “세자께서 하신 말씀을 다 풀어보면... 퓨그가 찾으려다 못 찾은 그 별을, 우리 코르도 결국 못 찾아서 답답하다는 얘기는 전혀 없잖아. 그냥... 별을 깨우는 주문을 알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얘기만 있어. 이건 무엇을 뜻하는 거지? 세자께서 결국 별을 찾긴 찾았다는 얘기 아니야?” 하멜이 흥분했다.

 “어? 정말 그렇네? 아바마마가 별을 찾긴 찾은 것 같아!” 하이란도 맞장구를 쳤다.

 이제 하멜과 하이란은 브리젠 세자가 남긴 비밀의 큰 줄기를 찾은 것만 같았다. 그러자 그들은 다른 실록도 꺼내어 속속들이 내용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어머 하멜? 세상에! 여기 날짜를 좀 봐봐. 아바마마가 코르로 영구 귀국하시던 날의 바로 전날에 벌어진 일을 기록한 부분이야!” 하이란이 실록의 날짜를 여러 번 확인하더니 신나게 말했다.

 “어, 정말 그렇네? 맨츠에서 휘레스 폐하가 서거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이 전날 밤에 쓰여진 실록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어!” 하멜도 놀라 나지막이 소리쳤다. 둘은 정신없이 그 부분의 일기를 탐독해 내려갔다.


 “아, ***아바마마가 휘레스 숙부와 동시에 귀국을 한 게 아니었구나. 여기를 봐. 먼저 귀국하는 아버지, 즉 브리젠 세자께서는 아마도 그 순간이 동생을 보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었나 봐.” 하이란이 차분히 말했다.

 “그러네. 갑자기 대화가 진지하고 엄숙해졌어.” 하멜도 다 이해를 했다.


 “내가 만약 코르에 돌아가서 어떤 이유로라도 갑자기 숨을 거두거든... 아우는 우리 형제간의 우애와 혈육의 정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오직 국가의 미래와 운명만을 생각해서 냉정하게 대응을 하여라. 내가 만약에 죽게 되면 나를 높이 받들거나 기리지 말고, 우리 왕국의 번영을 위해서... 그저 나를 밟고 가라... 내 한 육신이 부서져도 우리 코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다 무너져온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위 계승자인 내가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오직 백성을 위해 먼저 부서져야만 한다... 나는 그런 임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아우도 백성을 위해 언제든 나를 밟고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근데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글쎄... 아바마마의 말씀은 단지 동생에게 진지하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무슨 암호나 밀담 같아. 당시에는 워낙 퓨그에 복수부터 하자는 북벌론자들이 득세를 하던 시기여서, 아바마마나 휘레스 숙부도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던 때였다고 들었어. 그러니 하다못해 옆에 있는 시종이나 사관도 완전히 믿을 수 없으셨겠지. 그래서 아마도... 남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말씀 중에 어떤 단서를 남기신 것 같아. 육신이 부서져도... 민족의 혼... 그냥 지나치기에는 무엇인가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해...” 하이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멜도 그 의견에는 차츰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둘은 브리젠과 휘레스가 나눈 마지막 대화에 대한 실록을 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진실 앞에서는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 1644년, 청나라는 북경의 자금성을 함락시키며 명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켰음. 이로 인해 후방에 대한 근심이 사라지자 볼모로 잡고 있던 조선의 왕자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으며, 1645년 초에 먼저 소현세자가 귀국을 했다가 곧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 비보를 듣고는 동생인 봉림대군이 급거 귀국을 하였음. 이후 봉림대군은 세자의 자리에 올랐고 인조가 사망한 후에 효종으로 즉위했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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