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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fle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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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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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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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7.10.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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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32화-세력과 세력(7)

DUMMY

처음 Parallel에 접속했을 때. 정현은 방황하는 중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가 방황하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게 맞겠지.

자신의 생에 첫 친구이며 가장 소중한 친구와 그런 친구를 배제하려는 아버지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능이라는 힘을 각성했고,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능에 이끌려 나온 존재와 계약을 맺고 말았다.

행운이었다.

그는 가장 깊은 어둠이었고, 가장 오래된 어둠이며, 가장 거대한 어둠이었지만 정현에게는 빛이었다.


-음? 이거야 순 핏덩어리가 아닌가.


처음 만남의 순간 그렇게 툭 내뱉은 그는 이내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실은 그저 검은 덩어리였을 뿐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전달되는 선명한 이미지가 그렇게 느껴지게 했다.


-내 이름은 녹스(Nox)다. 앞으로 같이 할 사이이니 통성명은 해 두는 편이 좋겠지. 네 이름은 뭐냐?


그는 무척이나 쾌활했고, 세상 모든 것에서 재미를 찾는 것 같았다.


-유렐, 유렐 아이스. 그리고 신정현이라. 좋군,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그 뒤에 이어진 것은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과 상담의 연속이었다.


-고민이 뭔지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 생각이 나지 않으면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시작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그저 네가 살아온 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꼬박 사흘을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보냈다.

엄마의 죽음과 이어진 아버지의 무관심. 친구 없이 지내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과 겨우 생긴 친구를 배제하려는 아버지.

아주 어릴 때부터 쌓아온 탓에 가슴 깊이 묻어만 놨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그는 그 말을 고스란히 들어주었다. 두서도 없이 나열되는 감정의 편린들을 그저 듣기만 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지막 날 정현은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펑펑 울었었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울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속에 숨어있던 감정을 모두 토해내고 자신도 모르던 감정을 모두 정리하면서.

그리고 결정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헤맸다.

아버지의 곁에서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것인지, 자기 고집을 지키면서 대립할 것인지.

마지막으로 따뜻한 대화를 나눠본 것조차 까마득했기에 바로 물을 용기조차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녹스의 조언에 의지하면서 전장에 몸을 던지는 것 뿐.

스스로 생각해서는 답을 얻을 수 없었기에 그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것일 뿐임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외면하고 그저 강해지려 전장에 몸을 깊이 담궜다.

강해지기만 한다면 이런 고민같은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자위하면서.

그곳이 어디건 상관 없었다. 단지 그곳에 전장이 있다면 걸음을 향했다.

전장이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 단지 그곳에 목숨을 걸고 싸울 상대가 있다면 걸음을 향했다.

그렇게 10년.

현휘가 아인즈로서 반신의 위를 이룩할 동안 그녀는 그렇게 핏물에 몸을 담고 있었다.

북부의 숲도, 남부의 마역도, 중부의 해역도.

그 어느곳에나 전장에는 그녀가 있었다. 베고, 나아가며 적의 목숨을 취하기만을 반복했다.

그저 무의미하게, 어디가 목표인지도 모른 채로 관성적으로 위를 향해서만 나아갔다.

그렇게 쌓은 경험을 자각하는 순간 정현의 검은 변화했다.

츠칵.

지금까지 신정현의 검과 유렐 아이스의 검은 명백하게 달랐다.

유렐의 검은 사납고, 매섭고, 잔인하고, 효율적이었지만 신정현의 검은 감정적이고, 짜증서린 길을 잃은 검이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구분하던 양 세계를, 제한적이지만 구분을 지우자 정현의 검은 유렐이 되었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고, 주저함도 없는, 그가 선물해 준 그 이름 그대로의 종말을 언도하며 정현은 동문을 압박해 나갔다.


'이건, 대체?'


어이가 없다.

동문은 지금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는 이가 정말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자가 맞는 것인지 스스로의 눈조차 의심하고 싶었다.

최후의 순간에나 사용하라며 지급된 약을 복용하며 잡았던 승기는 순식간에 빼앗겨버렸다.

힘은 오히려 자신이 우위에 있었지만 정현의 검에서는 그 정도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관록'이 있었다.


'저 나이에, 전장에서 수십년은 구른 것 같은 관록이 가당키나 한 건가?'


원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 가상현실이라는 허울 좋은 수단의 도움이 있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전장에서 수십년은 구른 것 같은 관록이 가당키나 한 건가?'


자신에게 전술을 교육했던 교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런 이능도 없고, 은퇴한지도 오래된 노인이었지만 그에게 수차례나 죽음의 직전까지 몰렸었다.

그때 그의 몸에서 뿜어지던 것과 같은 관록의 향기가 지금 눈 앞에 있는 여성의 몸에서 느껴졌다.


'젠장할, 이게 천재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면 정말 불합리하군.'


자신을 노려보는 가라앉은 시선에 이를 악물며 거칠게 검을 휘둘렀지만 과연 그는 알까.

그녀가 지금과 같은 강함을 보이기 위해 얼마나 오래동안 전장을 헤매고, 고민했는지.

그녀를 가르친 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싸우고, 투쟁하며 살아왔는지.

그녀가 살아왔던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 그런 세상이었는지.


"큿?!"


이미 심리적으로 밀렸기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드러난 틈을 종말이 파고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허리를 절반 가까이 절단 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 동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의 선택은 곧장 파국으로 치달았다.

촤아악!


"커......억!"


"젠, 장!"


종말을 피하기 위해 균형을 모두 포기하며 몸을 던졌고, 동문을 떨쳐내는 데 성공한 정현은 문적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문적의 파상공세를 피하다 이제 막 몸을 일으키는 대원들에게,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시피 한 종말의 존재는 재앙 그 자체였다.

닿는 순간 대상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리는 특성에서 비롯되는 절삭력과, 4m에 이르는 검신으로 인한 살상 반경은 단 한번의 휘두름으로 절반의 인원을 몰살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충격적인 것을 넘어서 어이없기까지 한 광경에 문적은 헛숨을 토해냈고, 명인은 헛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정현의 판단은 빠르게 판세를 점치고 오더를 내렸다.


-이제 모두 빠져!


이미 저쪽에서 악귀같은 얼굴을 한 동문이 달려오고 있었고, 동료의 절반을 잃은 대원들이 거칠게 진형을 구축하며 달려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언제라도 상대의 지원이 도착할지도 모르는 상황.

문적과 명인은 먼저 전장을 이탈하는 정현의 뒤를 따라 곧장 몸을 던졌다.

눈이 뒤집히다시피 한 대원들이 곧장 뒤를 따르려 했지만 재차 날아드는 충격파와 동문의 통신에 이를 악물며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그만! 추격하지 마라!


-하지만!


-따라갔다가 더한 희생이 생길수도 있다. 이미 절반을 잃고도 더 잃을 수는 없어!


동문의 시선에 잡힌 정현은 절대 전력을 다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는 최후의 수단을 숨기고 있다고 해야 하겠지.

지금까지야 그대로 숨기고 있었지만 과연 추적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숨기고 있을까?

동문은 회의적이었다.

만에 하나 저 검을 폭발시키기라도 한다면 과연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사방에 낭자한 피와 부하들의 시신을 보고 있자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 때문에 남은 이들조차 잃을 수는 없었다.

철퍽.

발 밑에 고인 피웅덩이에 이를 악문 동문이 씹어뱉는 듯 명령을 내렸다.


-모두......후퇴한다. 동료들의 시신을 챙기도록.


-......라져.


억눌린 감정이 고스히 전해오는 통신을 들으며 인이어를 뽑아버린 동문이 눈을 감고서 나직히 중얼거렸다.


"젠장......"


* * *


"젠장, 젠장, 젠장......!"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사이렌을 배경음 삼아 새하얀 가운을 걸친 남자가 다급하게 복도를 달려갔다.


"하아, 하아, 하아."


복도의 어귀마다 설치된 통신기구를 들었다가도 붉은 색으로 점멸하는 표시등에 곧장 내팽겨치기를 수차례.

복도의 끝에 도착한 남자는 그 안의 풍경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 제기랄......"


본래라면 푸른색으로 점멸하는 표시등의 빛으로 물들어 있어야 할 방 안은, 겨우 살아있는 몇개의 통신기의 붉은 표시등의 빛만이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그게 뜻하는 것은 간단했다.


"EMP라니, 너무하잖아......"


기껏해야 재밍 정도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거였는데 이런 식으로까지 거칠게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설마 여기를 찾아내고 공격할 수 있는 조직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넋을 잃고 있던 것도 잠시 이를 악문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벽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벽에서 패턴을 찾아낸 남자가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벽을 누르고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벽의 일부가 돌출되며 패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설 내부의 거의 대부분의 전력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패널을 보며 잠시 주저하던 그는 이내 입술을 앙다물고 조작을 시작했다.


"내가 이대로 죽을 거 같아? 어림도 없지......!"


그가 조작함에 따라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패널이 불길함을 풍겼다.

이윽고 패널이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며 패널 가운데의 버튼을 제외한 모든 버튼이 빛을 잃었다.

금단의 그 무엇과도 같은 모습으로 불길하게 빛나는 버튼을 눈에 담은 그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과연 지금 이 버튼을 누르는 게 자신에게 허락된 일일까?

버튼이 몰고 올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그 고민은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게 할 시간따위 없었다. 그를 이곳까지 몰아넣은 상황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허락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제엔장."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이 버튼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씩, 손이 다가갈 때마다 몸이 떨려왔다.

이걸 누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항복한다면 적어도 자신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누르게 된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부담감과 어쩌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삶의 미련이 손을 붙들었다.


"이런, 그러면 안 돼지."


결국, 그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퓩.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게 반이 날아가버린 머리를 가진 사람이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어이쿠, 그러면 안 되지."


앞으로 쓰러지면서 버튼을 누르려는 몸을 옆으로 치워내며 심경환이 귀를 두드렸다.


"여기는 1조장이다. 5조장. 어떤가, 해석해낼 수 있겠나?"


-칙, 농담은 사절입니다. 칙.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거칠게 들리는 수신음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턱을 긁적였다.


"뭐, 마무리만 하고 나가 봐야겠군."


쓱.

허리춤에서 꺼낸 나이프로 방금 전까지 패널을 조작하던 남자의 손을 잘라내 천장에 연결한 줄에 매달았다.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손의 위치를 조정하던 그가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줄이 잘린다면 그대로 버튼을 누를 위치에 있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자, 그럼 타이머를 맞추고......"


가슴에 붙은 포켓에서 휴대용 폭약을 꺼낸 그가 줄에 장치하고는 다시 한번 귀를 두드렸다.


"임무를 완수했다. 모든 조는 5차 집결지에서 만나도록 한다. 이상."


-2조 수신.


-3조 수신.


-4조 수신.


-5조 수신.


"모두들 괜한 꼬리를 달고 오지는 말도록. 그런 녀석들은 내가 직접 엉덩이를 걷어차주마."


농담섞인 통신을 마지막으로 인이어를 뽑아 밟아 부순 그가 바닥의 시체를 일별하며 방을 나섰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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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233화-세력과 세력(8) 17.10.31 190 3 12쪽
» 232화-세력과 세력(7) +5 17.10.25 222 3 12쪽
233 231화-세력과 세력(6) +1 17.10.23 274 3 12쪽
232 230화-세력과 세력(5) 17.09.19 1,035 2 11쪽
231 229화-세력과 세력(4) 17.09.14 228 2 12쪽
230 228화-세력과 세력(3) 17.09.14 264 2 12쪽
229 227화-세력과 세력(2) 17.09.12 262 2 12쪽
228 226-세력과 세력(1) +3 17.09.08 303 2 12쪽
227 225-딸-Air 17.09.04 267 4 11쪽
226 224화-딸-Solitudo 17.08.02 255 5 12쪽
225 223화-기사(Knights)(2) +1 17.07.20 29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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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221화-친구-Julell(2) +1 17.06.13 348 3 11쪽
222 220화-친구-Julell(1) +2 17.06.12 79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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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218화-누이-Irian(1) +2 17.05.17 36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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