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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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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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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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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61화 말이 품은 가치

DUMMY

561화 말이 품은 가치


“바로 정할 문제는 아니겠지.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소이다.”

“다음에는 내 존칭과 경칭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길 기대하지.”


지순왕 상가희와 회순왕 경중명은 각각 말을 남기고 떠났다.


“살펴들 가시오.”


그저 의례적인 인사로 그들을 배웅한 명나라 병부시랑 진신갑은 이내에 두 사람이며 그들을 호송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몸을 홱하니 돌리고는 사정없이 일그러트렸다.


‘망할 한간 새끼들 같으니라고.’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솔직히, 정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욕심대로 말한다면 그렇다.


놓아버리고 받아들여서 식어버린 진신갑의 욕망이 다시금 타오르게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 정말 한순간에 불과했으니 진신갑의 냉정한 이성은 조용히 그에게 현실을 일러주었다.


그런 대접, 정말 받는다고 한들 제대로 된 결과로 이어질 리가 없다고 말이다.


돌아서는 자는 중용받으나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하며, 계속해서 그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그래, 그 태감 조화순처럼 말이지.’


북경 조정에 있었기에 조화순과 안면이 있던 진신갑이다.


그리고 그는 상대적으로 청나라 내부 사정을 살피기 쉬운 심양에 있으니 조금만 면밀히 귀를 기울이고 살피면 오히려 남경보다도 북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쉬웠다.


덕분에 진신갑은 조화순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북경 근방을 제하면 명나라에서 가장 먼저 접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북경에서는 종종 험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도 말이다.


‘병부시랑씩이나 되어서 돌아선다? 그것도 한번 청나라 군대를 부수고 그로 인해 북정을 결정하게 한 놈이? 하, 자다가 목이 달아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정말 말 그대로 제명에 죽기 싫으면 받아들일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일신의 영달을 한번 내려놓았던 진신갑에게 있어서 상가희와 경중명이 했던 말들은 금세 가치 없는 것들로 변했다.


그저 평안무사하게 날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그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기껍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허나 냉철한 이성은 이제 그런 날을 이미 물 건너갔다는 걸 일러주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여봐라! 가서 소금을······.”


바로 액땜이라도 하듯 소금을 가져오라고 하려던 진신갑은 대놓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더욱 안 좋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휴. 안쪽 문간에나 좀 뿌려라.”

“예, 대인.”

“조용히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하인들 몇몇이 눈치 좋게 대답하며 움직이니 진신갑은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리는 걸 느끼면서 슬쩍 문 바깥을 보았다.


잠시 그렇게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입구를 보고 있자니 이내에 하인들이 문을 닫고 안쪽에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을 가만히 보던 진신갑은 불현듯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한숨을 지었다.


“하아.”

‘마음 편히 쉬던 나날은 당분간 안녕이구나.’



***



“나참, 그딴 놈을 굳이 이렇게 치켜세울 이유가 뭐라고.”

“회순왕께서도 잘 아시지 않소이까? 이건 사전 준비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오.”


보인 태도가 거짓이 아니라고 하듯 둘만 있는 장소에서도 경중명이 불만을 토하니 상가희는 웃으며 그를 달랬다.


“명나라는 참으로 명나라란 말이지. 특히나 남경은 더욱 그렇고 말입니다.”


의미심장하게 건네는 말에 경중명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사실 우리도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투신한 신세고 받는 대우도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과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오.”


경중명의 이 말은 상가희와 마주하고 있을 때만 토해낼 수 있는 말, 같은 처지기에 낼 수 있는 말이었다.


이제 적이 된 명나라 사람들은 물론이고 같은 편인 청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함부로 흘렸다가는 왕작은 물론이고 단박에 목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말이니 말이다.


이런 위험을 잘 알고 있는 상가희는 슬쩍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회순왕, 약한 소리는 아랫것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이 말입니다.”


아랫것들을 신경 쓰는 모습을 꾸미긴 하나 실상은 다른 경중명이다.


그러니 처음에 나온 말은 솔직히 말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 마음이 흔들릴 거라는 말은 경중명으로서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상가희가 에둘러 말했지만 딱히 아랫사람들만 지칭한 게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크흠, 그랬지요.”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덩치가 아니라는 걸 그대도 나도 잘 알지요. 하지만 그것이 실로 크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잘 압니다.”


조직의 실상은 거기에 소속된 내부인들에게 가장 잘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천하에서 청나라와 명나라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상가희와 경중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또한 그렇기에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양국이 품은 힘이며 그 체급들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현실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지 말이다.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청나라와 그렇지 못한 명나라의 싸움이었지만 슬슬 그 균형이 바뀌어 가고 있소이다.”

“그렇지. 하지만 그것은 눈덩이가 돌부리에 걸려서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해.”


상가희가 이르는 말에 동의하는 한편 여전히 명나라를 부정적으로 본 경중명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의심쟁이 황제는 제 살을 모두 깎아 먹었지. 그러면 그 아들은 어떨까?”

“더 나을 수도 있지. 솔직히 상대하기 더 귀찮은 건 당금 명나라 황제가 더하다는 거, 회순왕도 잘 아시지 않소이까.”


대세를 보는 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들만 한 위치에 있다면 들려오는 소리가 많으니, 그 가운데는 지금 명나라의 대처가 전에 비해 더욱 까다롭게 되었다는 건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이었다.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쪽이든,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 쪽이든 가리지 않고 그러한 말들이 들리니 세력은 커졌지만 상황은 지난하여졌다는 말이 꼭 어울렸다.


다만 상가희며 경중명은 이런 상황을 그리 나쁘게 보고 있지 않았다.


“잘 알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중이오.”

“후후, 그렇지요. 나쁘지 않지요.”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쓸모가 계속 있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지금 청나라에 있어서 대체할 수 없으며 계속 쓸모가 있는 이들이니 수군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포도 본래는 그러했지만 이제 화포를 잘 다루는 만주족이며 몽골인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수군은 그들, 한인들의 영역이니 수군에 속한 병사들 대다수가 상가희와 경중명이 이끌고 투항한 이들이거나 아니면 그 이후에 청나라에 투신한 한인들을 받아들여서 조련한 이들이다.


그리고 이제 천하가 북조와 남조로 갈렸으니 수군은 앞으로도 활약할 자리가 많았다.


강이라는 건 큰 도시라고 하면 어디든 끼고 있는 게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록 전쟁을 끝내기는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 일들이 끝나기 전에 그들이 버려질 일은 없어졌다고 감히 과언해도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을 따지면 상가희나 경중명은 이러한 사세가 드러내지 못하지만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그래도 말년까지 전장에서 구르는 건 영 재미가 없단 말이지요.”

“그래서 그놈한테 간 거긴 하지.”


사실 상가희며 경중명은 이 일을 그들에게 명한 사람들, 도르곤 그리고 지르가랑과는 노림수가 약간 달랐다.


두 친왕은 진신갑이 명나라에 전하는 소식에 불신을 심어주길 바랐고, 그를 위해서 당분간은 일부러 행적을 흘리고 어긋남을 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니 이번 전향 권유는 사실상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일종의 못 먹는 감 찔러보는 행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두 이성왕들이 보기에 이 일은 되면 편안한 노후가 보장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나서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들이 진신갑의 저들의 윗사람으로 삼겠다고 하는 것도 아주 헛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기다려 봅시다.”


상가희가 하는 말에 경중명이 고개를 끄떡이니 그들의 시선에는 작은 기대가 실려 있었다.


자신들에게 올 책임을 떠넘길 존재가 생기기를 바라는 기대가 말이다.



***



“일계로 이어지는 고귀한 혈통이며 위대한 쇼군의 이름을 잇는 분의 존안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청나라 버일러와 산둥 감찰관 그리고 아직은 시마라는 이름을 대고 있는 요스케가 올리는 인사에 정비 도쿠가와 오키코는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았다.


‘기억에 없네.’


혹시나 그녀가 한번 보아서 익숙한 사람이진 않을까 기대하였으나 그 기대는 여지 없이 빗나갔다.


만약 그러했다면 실로 반가웠을 것이라 여긴 오키코는 작은 아쉬움을 흘려버리고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군공을 다수 세운 용맹한 사무라이라고 말입니다.”

“사무라이의 칭호를 주심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감히 청하니, 정비께서는 소인을 부디 다이묘로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흐음.”


부려지는 무사가 아니라 다스리는 다이묘이길 청하는 말에 오키코는 차분한 얼굴로 요스케를 살폈다.


‘욕심이 느껴져.’


향상심이라고 부르든, 꿈이라고 부르든 오키코가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욕심이며 욕망이었다.


그리고 이미 교토에서 여러 번 이와 같은 사람을 보았던 그녀는 이내에 요스케에게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요스케는 아닌 모양인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 그것이 편치 않으시면 청나라에서 얻은 직함인 버일러를 칭하여 주심을 청합니다.”

“버일러는 무엇입니까?”

“장군의 직책이라고 보면 무방하나 본래 의미는 일족을 다스리는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라고 합니다.”


가주나 다이묘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오키코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솔직하네. 투명하고 투명해서 귀여울 정도로 솔직해.’


속내를 가리고 은유하며 돌려말한다.


교토 특유의 화법이며 정치는 항상 이렇게 돌아가며, 이러한 규칙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었다.


그 대상이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부유하다고 한들 마찬가지다.


에도는 조금 덜 하긴 했지만 쇼군을 제하면, 아니 그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역시 말을 종종 돌려서 말하고는 했었다.


그러니 이렇게 솔직하게 제가 바라는 것을 입에 담고 주장하는 요스케는 여러모로 그녀가 보기에 새로운 유형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한번 잃은 흥미를 다시 찾게 하니, 오키코는 먼 타국에서 만난 자국인이 누구보다 자국인답지 않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향수를 자극하고 그리움을 느끼게 하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게 하여 주니 타국에서 가까이 하기에 적당한 이라고 여긴 것이다.


“버일러 시마.”

“요스케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그러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버일러 요스케.”

“하명하소서.”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숙이는 요스케를 보면서 오키코는 입꼬리를 올렸다.


솔직하게 말한다고 하나 그것이 속에 있는 것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감춤도 있었다.


다만 그 감추인 것이 있다는 게 뻔히 보이니 그녀는 은은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르는 말들에는 가치가 있지요. 그리고 말이 품은 가치에 따라서 사람의 가치 역시 정해집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당신이 내게 가까이할 자격을 얻고자 한다면 응당 말에 가치를 품어야 할 것입니다.”


말에 가치를 품어라.


이 말에 요스케는 눈알을 굴리며 고민했다.


‘단순히 예의를 갖추라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궁리하는 요스케에게 오키코의 말이 다시금 들려오니 그 말은 마치 그의 짐작이 맞다고 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그래요, 가령 그대의 말을 그대로 멀리 타국에서 내가 얻은 인연들에게 전하여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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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2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85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3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2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86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79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2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83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88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83 9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1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0 12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97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96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2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97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96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1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1 14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07 14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0 14 12쪽
564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109 15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98 10 12쪽
»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111 12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106 10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108 12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108 13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127 13 12쪽
557 556화 죽은 말 +2 24.04.17 123 13 13쪽
556 555화 없으면 만든다 +1 24.04.16 11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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