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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최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니콜라스최
작품등록일 :
2018.04.30 19:07
최근연재일 :
2018.07.02 19:15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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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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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817

작성
18.05.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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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인간의 경계(4)

과학과 미스테리가 만난 본격 SF 소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입니다




DUMMY

미국 애틀랜타 질병통제센터


하루에 한 번씩 미리엄, 니콜라스와 영상통화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리엄은 항상 니콜라스를 먼저 바꿔주었다.

“대디, 안녕!”

아이들은 당장의 고통만 없으면 해맑기 마련이다.

대학시절, 재난 현장에서 봉사를 하던 때, 폭풍과 홍수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은 아이들도,

나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제안하면 금방 웃으면서 같이 놀았다.

그래주지 못했으면, 무거운 가슴만 안고 돌아와야 했겠지만,

아이들의 그 천진한 미소 덕분에 우리 스스로도 많은 용기를 얻었다.


“니콜라스 오늘 뭐했니? 밥은 먹었지?”

왜 나는 꼭 이 얘기부터 먼저 할까?

내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학술대회 출장차 외국에 나가셔서 전화하셨을 때마다 반복하시던 얘기를 나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대디, 다친 데는 괜찮아?”

“그럼, 볼래? 붕대도 다 풀었는데?”

“아빠, 언제 올 거야? 엄마는 아빠가 언제 올지 모른대”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배운 니콜라스는 나한테 대디와 아빠의 호칭을 섞어서 사용했다.


“금방 갈 거야. 다음 주쯤? 그때 가면 아빠랑 팔씨름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자”

“와아, 진짜? 대디오면 내가 많이 놀아줄게”

“정말? 기다릴게. 니콜라스”

매번 비슷한 이야기지만, 이 통화라도 없으면 나는 정말 탈진할 것이다.

머릿속을 오가는 복잡한 변수들을 정리하느라 샤워 한 번 맘 편히 못해보고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까?


미리엄은 나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직 한국에 감염의 증후가 보이지는 않지만, 내 가족만은 안전한 곳에 대피시켜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리엄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자신과 같은 의료진이 더 필요할 시기가 올지 모를 텐데,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카를로스가 들어왔다.

특별 경호대의 엄중경호를 받으면서 제네바의 WHO 본부와 미국의 질병통제센터를 오가느라 카를로스의 삶도 나만큼이나 척박한 꼴이 되었다.

면도는 고사하고 때에 절은 셔츠 깃이 그의 고단함을 말해준다.


“알렉스, 두 가지 소식이 있네”두 가지 소식이라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일 텐데, 보통 나쁜 것부터 먼저 들으면 상실감이 덜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동참한 연구실에서 뭔가 특별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모르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음... 좋은 소식부터 먼저 들려주게”

카를로스는 흠칫했다.


“좋은 소식 같은 건 없는데”

“그럼 나쁜 소식만 두 개인가?”

“아니,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이 있지”

카를로스는 내심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즐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 상황에서 저런 유머가 나오다니...

“나쁜 소식은 뭔가?”


“일본 모리타워에서 좀비로 각성했던 두 사업가의 아내들이 그 후 행방을 감춘 것 까지는 알고 있지? 그녀들을 찾았네”

“그런데 그게 나쁜 소식이라니?”

“그녀들은 그 때 짐도 싸지 못하고 사라진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아마 모리타워에 갈 일정이 있었나봐. 그리고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본 거지. 아마 헬기가 자신들의 남편이 있는 19층에다가 기관포를 쏘는 것도 봤을 거야”

“그녀들도 운남성에서 좀비에게 물렸었나?”

“둘 중 하나만. 그런데 료타와 하루토를 잡기 위해서 모리타워의 사건이 보도되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챈 것 같네. 그래서 일본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밀항을 시도했다네”


“밀항? 어디로?”

“그 부부들이 원래 살고 있던 싱가포르로 데려다줄 배를 찾은 것 같아. 그러다 다른 맘을 먹은 사람들을 잘못 만났어”

“그럼, 싱가포르로 돌아가지도 못했다는 건가?”

“원래 항구에서 짐을 실어 나르는 선원들도 아니고, 고기를 잡는 배도 아니었나봐. 그녀들이 항구 근처에서 밀항할 배를 찾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근처 폭력배들이 붙은 것 같다는데. 처음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을 보고도 선뜻 응하자,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쁜 계획이 생긴 거지”

“그래서?”“항구에서 떠나기 직전, 그녀들을 선실에 가두고 계좌의 모든 돈을 자신들에게 송금하게 했다네. 그걸 확인한 후에 아마 공해상으로 나가 그녀들을 바다 속에 수장시킬 계획이었나봐”


그렇다면, 그들도 그 계획을 실행하는 도중 각성한 그녀 중 한명에게 습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 짐작으로는.

카를로스의 설명도 일치했다.

요코하마의 로컬 야쿠자 조직에서 조직의 돈에 손을 댔다가 쫓겨난 조직원들 몇이 저지른 그 일은 그들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은 일본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그녀들을 바다 속에 빠뜨린 후, 빈 배로 돌아오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상보안청의 눈을 피하느라 배를 모는 동안 꼬박 하루 가까이 걸린 것이 문제였다.

잠겨있던 선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이미 각성한 좀비와 맞닥뜨려야 했던 것이다.

그녀들 중 좀비에 물리지 않은 다른 한 사람은 이미 목을 물려 절명한 뒤였고,

좁은 배안에서 피할 데가 없었던 조직원 다섯 명은 차례로 그녀에게 습격을 당했다.

뱃속에 갇혀 있으면서 정신이 나간 줄 알았던 그들은 몽둥이로 아무리 매질을 해도 달려들어 물어뜯는 그녀를 결국 흉기로 제압한 뒤, 생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경동맥에 상처를 입어 가망이 없었고, 역시 바다에 던져졌다.


그 후, 나흘이 지났을 때, 필리핀 해경이 탑승한 파롤라급 경비정은 공해상을 떠도는 일본 국적의 어선을 발견했다.

무선신호에 응답이 없자, 결국 배에 올라타서 수색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고,

베 안에 있던 네 명의 좀비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때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여러 명이 좀비의 이빨에 열상을 입었고, 이틀 후, 마닐라항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진료한 의사는 입원치료를 권했다.

그리고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입원한 해경대원들은 각성했다.


“두테르테를 만나야 될지도 몰라”

“이유는?”

“마약을 뿌리 뽑겠다고 즉결 처형도 허락했는데 이번 일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겠어. 생각해봐? 마약쟁이하고 좀비하고 어떤 쪽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겠는지? 아마 지난번 회의에서 난 결론 때문에 경찰이나 군대가 직접 움직이진 않아도 지금쯤 암암리에 민병대가 알아서 좀비들을 죽이겠다고 나설지 몰라. 그걸 모른 척 하기만 해도 필리핀은 마녀사냥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무척 안 좋은 소식이다.

마약을 근절하겠다고 수천 명을 사살한 그가 민병대의 월권을 인정해 버린다면 다른 나라들에게 주는 여파도 엄청날 것이다.


“더 나쁜 소식은 무엇인가?”

“자네 총 쏠 줄 아나?”

느닷없는 카를로스의 질문에 나는 그야말로 멍해졌다.

‘내가 직접 총을 쏴서 좀비를 막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는 것인가? 아직은 아닐 텐데’

“어떻게 쏘는지는 알고 있네”

“잘 못 쏜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사실 그렇다. 예전에 미리엄과 데이트를 하던 시절, 나는 가끔 미리엄의 재촉에 못 이겨 실내 사격 연습장으로 가서 총을 쏴보곤 했다.

물론 권총사격이었지만, 과녁에 맞는 총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가 천부적으로 사격에 소질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미리엄은 장난스럽게 나를 놀리곤 했다.

“알렉스, 지금 쏘는 거 맞아요? 여기요. 총이 발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좀 봐주실래요” 등등...


“내가 좀비한테 물려봤다고 좀비한테 총을 잘 쏘게 되는 것은 아냐”

카를로스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엄지를 위로 내밀었다.

“알렉스. 자네 정말 대단한데. 이래서 전부터 우울해지면 과학자들한테 농담을 걸어보라고들 했구만. 설마 자네보고 직접 좀비를 막으라고 하겠나? 그것보다 지금부터 가야할 곳에서는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할지 몰라서 호신용 무기를 지녀야 하니까 물어본 걸세”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이론과 실제는 틀리다.

아마 감식키트가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되는지, 감염자들에 대한 격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특성에 따라 원칙 적용에 융통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는 결국 현장에 가서 판단해야 했다.

그러다가 덮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경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우리 같은 감시인력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위차원에서라도 무력을 지녀야 했다.


카를로스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인도로 급히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즐곧 우려하던 운남성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감염의 끈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인도의 땅이 넓어서 통제구역을 설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둘째 문제이다.

인도를 지나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시리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길이 연쇄적으로 열리게 된다.

전성기 시절의 징기스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바이러스는 중동을 지나 유럽을 향해 갈지 모른다.


더욱이 인도는 지금 3년마다 한 번 열린다는 쿰브 멜라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1억 명이 넘는 순례자가 갠지스강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의식을 치르고 설법과 명상을 한 달 이상이나 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 달이 넘는 축제가 끝나면, 다시 그들은 인도 각지로 걸어서 돌아간다.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에 이보다 더 좋은 이벤트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갠지스 강은 감염의 최초 출현지인 운남성과 불과 미얀마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WHO와 UN은 갠지스강 유역의 축제의 본산지인 알라하바드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축제에 참가하는 인원이 도착하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했다.

감염자가 몇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축제 자체를 금지할 명분이 인도정부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현장에서 맞이할 첫 번째 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입술을 계속 마르게 했지만, 나는 카를로스에게 서둘러 가자는 얘기를 꺼냈다.

카를로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에 메는 권총홀스터를 건네주었다.

카를로스 이 여우같은 놈.


다음 주에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니콜라스와의 약속은 아무래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가 아는 좀비는 과연 사실일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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