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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LO 님의 서재입니다.

방구석 고졸 백수가 잘난 걸 본인만 모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KYLO
작품등록일 :
2023.12.02 16:07
최근연재일 :
2024.01.02 18: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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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6
추천수 :
50
글자수 :
196,646

작성
23.12.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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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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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0화. 몽상가들.

DUMMY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것이 분명한 성만의 눈을 슬쩍 쳐다본 마오랑은 살짝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실제로 성만이가 취사병으로 일정 기간을 보내긴 했지만 분명한 건 복무 기간 대부분을 외부 상에 공개할 수 없는 특수부대의 소속으로 지냈다는 거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도로 훈련받은 특수부대원이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성만이가 있던 부대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특수부대였냐면...”

‘진짜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단장님이 전부 털어놓은 거야?’

[지금은 성만 님의 군생활을 누구로부터 들어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기밀로 여겨지는 정보를 누설하지 않도록 막는 게 순서 아닐까요?]

‘맞아, 헬라. 정확한 지적이야.’


성만은 급한 불부터 끄자는 마음으로 마오랑의 입을 막기로 했다.


“마 팀장님? 거기까지만 말씀하시죠. 제 부대에 관해 더 말씀하시는 건 이 자리에 있는 셋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전역할 때 제가 속해있던 곳과 관련된 정보를 매우 엄중하게 지킬 것을 요구받았고, 어떤 생활을 하며 보냈는지에 대해 어디서든 말하지 않겠다는 보안서약을 맺고 나왔습니다. 아직까진 마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특별히 심각한 수준의 기밀 유출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었으니 크게 문제 삼을 부분은 없다고 판단됩니다만 계약과는 무관하게 해당 정보를 어떻게 입수한 부분에 대해선 제게 따로 말씀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성만은 계약서 옆에 놓인 펜을 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후한 계약서를 왜 제안하신지 그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했으니 그만 말씀하시죠.”

“정 과장은 어때? 성만이는 그렇다는데 자네는 이런 고용 계약을 왜 제안한 것인지 아직 자세한 내용을 더 알고 싶나?”


정 과장은 몇시간 전만 해도 고작해야 고졸을 채용한다고 하는 일에 말도 안되는 계약서를 만들어오라고 과장인 자신을 불렀다고 투덜거렸는데 오가는 말들과 전직 대령 출신의 경호팀장이자 회사의 이사인 마오랑의 묵직한 표정. 그리고 눈가에 상처가 거친 사내의 인상을 자아내는 성만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를 느끼고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도 괜한 일에 엮이고 싶진 않습니다. 그만하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민방위지만 저도 만기제대한 군필자인데요. 그 특ㅅ...아무튼 그쪽 계통으로 경력이 있다면 인사과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특채인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 과장이 마오랑의 질문에 화답하자 경호팀장실을 가득 채웠던 무거운 공기는 언제 있었냐는 듯 마오랑의 경쾌한 미소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 뭐 얼추 셋이 알아야 할 부분은 다 정리가 된 것 같군?”

“예. 아직 정보 입수에 관해서 해명하실 부분은 남아 있지만요. 그건 따로 말씀하시죠.”


속이 편해진 성만은 손재주 스킬을 켜고선 들고 있던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정성 들여 적고 그 옆에 사인으로 자신의 이니셜 H.S.M을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썼다.


“성만이 필기체 사인이 아주 멋있구나. 안 그래, 정 과장?”

“그렇습니다. 요즘 세대는 필기체도 잘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라 성만 사원이 쓴 것처럼 이렇게 깔끔하고도 힘 있는 필기체를 보는 건 저도 오랜만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보통 이렇게 글씨를 잘 쓰는 직원들은 일도 잘하더군요.”

“내 생각도 그래! 사회인이라면 이렇게 글씨를 쓰는 일도 있어 글씨체가 중요한 법인데 이런 작은 것부터 준비된 사람이 헐랭이같은 사람이겠어? 우리같은 치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지.”


정 과장은 마오랑의 말대로 성만이 쓴 사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기껏해야 학력 수준이 고졸에 불과한 성만이 배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글씨체가 좋으니 그것만으로도 성만의 학력에 대한 선입견이 일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예로부터 동양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오래된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판단한다면 성만은 인사과에서 10년의 경력을 쌓아온 정흥기 과장에겐 눈가의 흉터와 공식적인 학력인 고졸이 불안요소이긴 하지만 언사나, 글씨체, 판단력 부분은 꽤나 만족할 만한 인사였다.


“루머를 빨리 치워버리기 위해서라도 홍보팀이 어서 움직여야 하니 저는 내려가서 바로 이 고용계약서를 수리하고 회사 데이터베이스에도 업로드해야겠습니다.”

“그렇지. 바쁜 사람 붙잡고 내가 시간을 빼앗고 있었군. 가서 일 보시게.”

“예. 아! 성만 사원, 오늘 작성한 고용계약서의 복사본은 미리 준비해둘 테니 돌아가는 길에 인사팀으로 와서 받아가세요.”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경호팀이랑 인사팀은 회사에서는 그렇게 자주 마주칠 일이 없어서 오늘 이후로는 모르겠지만. 그래요, 저도 인사과장으로서 해성만 사원이 앞으로 회사에 좋은 인재가 되길 바랍니다.”


문서를 챙긴 정 과장이 마오랑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서서 경호팀장실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걸 헬라를 통해 확인한 성만은 입을 열었다.


“이제 저희끼리 정리해야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겠군요. 방금 말씀하신 그건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아주 보안의식이 철저하군. 경호원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자세야. 자네를 진심으로 이 회사의 인재로 받아들이고 싶은 건 나니까 자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내 속을 조금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는 것 같군. 내가 육사 출신이고 한태완 선배님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는 건 저번 해프닝으로 기억하고 있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태완 단장님은 X 부대에 대해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낼 분이 아닌데...설마 이 아저씨랑 친하다고 다 털어놓으신 거야?’


성만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하는 대답을 들은 마오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며 자신이 아직 군복을 입고 호국의 의지를 갖고 있던 과거를 떠올렸다.


“일단 이건 확실히 말해두지. 자네의 군생활에 대해선 한태완 선배님의 입을 통해 들은 건 없다네.”

“단장님으로부터 들은 게 아니라면...도대체 어디서?”

“말하자면 꽤 긴 내용인데 들어주겠나?”

‘길어봐야 얼마나 길겠어.’


성만은 기억해야 했다. 봉사활동하던 날 입이 터졌던 마오랑이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를.


“어지간히 골치 아픈 문제에 엮이지 않는 한 육사 출신은 육군 내에서 같은 육사 출신들에 의해 비호를 받지. 그래서 비육사 출신들에 비해 육사 출신은 중령이나 대령같은 계급까지 빠르게 진급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야. 어차피 진급해야 한다면 비육사 출신보다 육사 출신을 밀어주니까. 문제는 영관급에서 장성급으로 올라설 때지. 그때부턴 같은 육사 출신이어도 영관급에 비해 한정된 자리를 놓고 다퉈야 하니 육사 출신 내에 존재하는 자신이 속한 파벌 혹은 라인의 힘과 정치력이 중요해진다네. 물론 과거 해일회(海日會)라는 군대 내 사조직이 벌였던 쿠데타로 인해 육사 내에서 군인들이 무리를 짓는 것에 대해 여전히 사회적인 경계가 존재하고 압박이 강력하지만 그래도 군대라는 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에 알게 모르게 뜻이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파벌이나 라인을 형성하지. 어떻게 본다면 필연적일 거야.”

[집단을 형성하는 건 인간(人間)의 본성이니까요.]


기자인 아버지와 공무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에 비치된 다양한 종류의 서적과 인터넷을 통해 많은 학습을 한 헬라는 마오랑의 말에 동조했다.


“하지만 말이야. 국가의 명령만을 따라야 할 군인이 사조직을 만들지 말라고 했음에도 파벌을 만들면서 필연적이라고 하는 건 너무 자위적 발언이지. 으레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게 옳은 것이 아닌 데다 육사를 졸업한 군인들이 이 나라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창가에 양손을 뻗으며 기댄 뒤 한차례 숨을 골랐음에도 말을 계속하는 마오랑의 목소리에선 어딘가 분기가 느껴졌다.


“육사를 졸업하긴 했지만 난 과거 내 선배라는 작자들이 저지른 과오가 너무 혐오스러워. 오직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적과 대치하고 있는 휴전상태에서 총부리를 국가 밖이 아니라 국가 내로 돌렸다는 건 어떤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명백한 반역행위니까. 심지어 그 작자들은 거창하게 자신들이 주창한 것과 다르게 실제론 본인들의 사적 이익을 더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고.”


성만은 군인이 지켜야 할 기본에 대해 말하는 마오랑에게서 군인다운 굳은 의지를 느꼈다. 가을의 태양을 받는 마오랑의 모습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군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무튼 사조직을 형성해 과오를 저지른 그 작자들을 혐오하는 나로선 해일회가 없어진 뒤 다시 생겨난 파벌들 중 어느 파벌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았어.”

[주류에 속하긴 어려운 사고방식이죠. 인간의 역사를 보면 시류에 영합하여 물 흐르듯 따르는 이들이 대체로 잘 살았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파벌에 속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도 어느 파벌에 속하게 되더군.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나?”

‘파벌에 속하지 않으려 했는데 파벌에 속하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파벌에 속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파벌에 속하지 않으려 하고 군인은 군인으로서 상명하복을 철저히 따르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충직한 군인들을 뭉뚱그려 ‘돈키호테’라고 불렀지. 웃긴 건 자칭도 아니고 그들이 이상주의자인 척 현실도 모르는 몽상가들이랍시고 멸칭이자 조롱의 의미로 명명한 그 돈키호테라는 이름에 의해 나와 같은 의지를 가진 지사(志士)들이 조금씩 모였다는 거야.”

[이름이 없는 누군가를 무명(無名)이라 불렀더니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이름이 된 상황이군요.]

‘아!’


성만은 헬라의 비유를 들으니 확실하게 이해가 됐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은 그들이 우리를 돈키호테라는 멸칭으로 부른다고 해도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았어. 그들이 뭐라고 부르건 개의치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했지. 자네, ‘맨 오브 라만차’라는 작품에 대해 알고 있나?”

“요즘 여기저기서 광고하는 뮤지컬이죠? 포스터는 기억납니다. 맨 오브 라만차라는 글자의 형태로 생긴 말 위에 탄 중세 기사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얼마 전부터 국내에서 공연을 시작해서 크게 인기 있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인공이 바로 돈키호테였다.


“그 뮤지컬에 나오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주제가에 우리가 이 나라를 수호하는 군인으로서 지키고 싶은 의지가 모두 담겨 있더군. 그 때문에 전역한 뒤로 얼마나 맨 오브 라만차를 재관람했는지 몰라.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군인일 때 가졌던 대의가 떠올라서 이 가슴이 북받쳐 오른다네”


돈키호테를 다룬 주제가에 대해 떠들던 마오랑은 자연스럽게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가사에 약간의 음정을 담아 부르기 시작했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이런 걸 삘 받았다고 하는 거죠? 으윽, 아저씨가 갑자기 저러는 건 약간 주접스럽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한데 난 아저씨들 저러는 거 그렇게 싫지 않은걸.’


분명 목소리는 크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나서 읊조리듯 노래를 부른 마오랑은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했다.


‘으으으...방금 했던 말 취소. 저건 싫다. 중년의 아저씨가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봐버렸어.’

[왜요? 저는 오히려 순수해서 마음에 드는데요.]

‘진짜로? 저 나이에 저러는 게 좋다고?’

[분명 중년의 남자가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낯설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순수해 보이지 않아요?]

‘순수한 아저씨라니. 금기는 아닌데 서로 함께 해선 안되는 단어들의 조합 같다.’


헬라와 마오랑이 각자의 취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때, 표정을 가다듬은 마오랑은 좀 전까지 쑥스러워했으면서 아닌 척 가다듬고 성만을 보며 말했다.


“한태완 선배랑 알게 된 건 방금 말했던 돈키호테들과 알게 된 이후고, 존경하게 된 건 우연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한태완 선배님의 부하로 가게 된 이후였어. 부하가 되어 선배님을 옆에서 지켜볼수록 선배님은 상급자이기 이전에 내가 군인으로서 되고 싶은 롤모델이었으니까.”

‘단장님이면 그럴 수 있어.’


성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한태완이라는 군인이 얼마나 군인다운 인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국가에 대한 수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선배님께 듣기로는 자네가 그 분의 당번병이었다면서? 그분에 대해선 자네도 잘 알 테지.”

‘어디까지 얘기한 거야? 둘이서 도무지 얼마나 이야기 했는지 짐작이 안가니까 어디까지 대답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네.’


나는 마오랑의 동조요구에 선뜻 응할 수 없었다. 마오랑 팀장은 그런 나의 머뭇거림의 이유가 짐작이 가는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훗, 선배님이 아주 자네 교육을 잘 해놨다는 건 지금 자네의 그런 자세만 봐도 알겠어. 내가 자네가 있던 ‘그 부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과거에 돈키호테들과의 대화에서 몇 번 그런 성격의 부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대화가 오간 적이 있었고, 어떻게 육성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깊은 토론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게 두 번째 근거지. 물론, 군부대 전체의 체질을 그런 식으로 바꾸는 건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하는데다 당장 그렇게까지 하는 건 장비 개선이나 국방력 증가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어 그때는 그냥 우리들끼리 떠든 가상의 시나리오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비용상의 문제로 폐기된 가상의 시나리오가 왜 현실화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거야 자네의 그 비이상적으로 발달된 신체를 봤기 때문이지. 그 날 자네는 40kg짜리 쌀가마니를 양쪽에 얹고서 수십번이고 움직였지만 조금 힘이 빠지는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 수준의 근력과 지구력은 어지간한 국가대표 운동선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야. 안 그래?”

‘아무렇지 않게 그냥 쌀을 옮긴 걸 보고 그걸 추론했다고?’


성만은 이 마오랑이란 사람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오랑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건 짐작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자네가 동생을 구하러 갈 때 보여준 그 달리기 속도. 아무리 동생에 대한 애정이 있고 동생이 위험하다고 해도 그건 방금 전까지 꽤나 많은 무게를 짊어지고 근력 운동을 수행하며 체력을 소모한 사람이라면 보일 달리기가 아니었어. 그게 세 번째 근거야. 군 출신이고 특수부대원들의 운동능력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잘 아는 나로선 너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지.”

“그러면 첫 번째 근거는 뭔가요?”

“그래. 자네와 만나고 난 이후, 한 선배를 만났을 때 자네 이야기를 꺼냈더니 식사 자리에서 보였던 한 선배의 대응. 그게 첫 번째 근거이자 자네에 대해 내가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이유였지.”

‘분명 좀 전에 단장님이 말을 한 건 아니라고 했는데...도대체 어떻게 대응했길래 .’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많은 요소들로 자신의 심리 상태나 의도를 드러내요. 그걸 읽은 거겠죠. 부하로 함께 한 시간이 있고 말하는 뉘앙스로 보아 보통 친한 게 아닌 사이라면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니가 헬멧을 쓴 내 신체반응을 토대로 내가 하는 말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듯이?’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방법은 동일하겠죠.]


헬라와의 대화를 통해 마오랑이 어떤 식으로 한태완 단장이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알게 되었는지를 유추한 성만은 알았다는 듯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튕겼다.


-딱!


“팀장님 말씀대로면 단장님께서 온몸으로 제가 기밀과 관련 있음을 실토한 거나 다름없군요.”

“그래! 척하면 착하고 알아들으니 좋아. 역시 똑똑해.”

[훗, 신이 만든 인공지능인 제 앞에서 뭘 그 정도 가지고. 제 수준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추측이었습니다만.]

‘저 분은 날 칭찬하는데 왜 니가 자부심을 느껴.’

[저 아니었어도 저 남자가 성만 님을 칭찬을 했을까요? 저건 제 지성에 대한 칭찬이에요.]

‘그래~ 너 잘났다.’


헬라의 자기자랑에 성만이 속으로 혀를 차는 사이, 흡족한 얼굴을 한 마오랑은 이내 씁쓸한 얼굴로 한태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가까운 사람 앞에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게 뚝심 있고 영명하신 한 선배가 가진 약점이지. 내가 몇 번이고 조심하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타고난 기질이라서 그런지 쉽게 고치지 못하시더군. 아무튼 그렇게 선배님으로 받은 힌트에 내가 직접 관찰해본 결과를 더하니 자네가 그 부대의 일원이라고 확신하는 건 어렵지 않았네. 이러면 자네가 왜 그 특수부대의 일원이라고 확신하는지 해명이 됐나?”

“음...노 코멘트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보안에 관해선 무엇이든 최대한 흘리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자네도 기억해둬. 때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어떤 대답보다 강력한 대답이 될 수 있다는 걸. 차라리 그럴 땐 거짓말을 하거나 화제를 돌려보게.”


마오랑은 마음의 짐으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홀가분해 보이는 성만의 얼굴을 보고 굳이 네 번째 근거까지 말하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돈키호테와 만나 더블체크해서 X부대에 대해 어느 정도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된 것까지 밝히지 않은 건 잘 한 것 같군. 진심이 통한다고 해서 모든 것에 전부 솔직해질 필요는 없지. ’

마오랑은 그런 속내를 숨기며 성만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네한테 거는 기대가 크네. 해 사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성만은 마오랑이 내민 오른손을 살며시 잡은 듯 안 잡은 듯한 상태로 흔들지는 않았다. 사회에서는 이런 행동이 결례일 수 있겠지만 마오랑은 그런 자세를 취하는 성만이 도리어 마음에 들었다.


상급자와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하게 되는 경우, 상급자가 먼저 손을 흔들지 않는 한 하급자는 가만히 손을 펴고 자세만 잡은 채 상급자가 손을 잡고 흔들기 전에 기다리는 이런 자세는 군대에 있을 때나 볼 수 있던 예의였다.


마오랑은 그런 성만의 모습에서 문득 대령으로서 군 생활할 때가 생각나 세차게 흔들었다.


‘오늘은 이래저래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군.’

맨 오브 라만차.PNG


작가의말

-19화에서 성만의 독백이 이전화에 언급된 바와 다소 배치되는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여 수정하였습니다. 

-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 가사 부분과 포스터가 저작권에 위배되는 바가 있다면 해당 부분은 삭제 후 그냥 어떤 노래를 불렀다 정도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노래 가사는 마오랑이라는 인물이 어떤 뜻을 품은 인물인지를 설명하기 위함이지 어느 누군가의 저작권을 침해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분량이 꽤 넘쳤으나 주말이고 해서 독자님들께서 더 즐기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통으로 다 담았습니다. 강력한 한파로 요즘 날이 추운데 연말에 다치거나 한랭질환으로 아프신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작가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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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첫 월급(1) 23.12.29 61 2 17쪽
25 24화. 신입사원(2) 23.12.28 60 2 19쪽
24 23화. 신입사원(1) +2 23.12.27 61 1 18쪽
23 22화. 첫 출근(2) 23.12.26 66 1 16쪽
22 21화. 첫 출근(1) +2 23.12.25 79 1 17쪽
» 20화. 몽상가들. 23.12.23 74 1 19쪽
20 19화. 인간사 새옹지마(1) (수정) 23.12.22 86 1 14쪽
19 18화. 지상에서 빛나는 수십 개의 별(3) 23.12.21 81 1 17쪽
18 17화. 지상에서 빛나는 수십 개의 별(2) 23.12.20 85 1 14쪽
17 16화. 지상에서 빛나는 수십 개의 별(1) 23.12.19 92 1 15쪽
16 15화. 나는 알잖아. 23.12.18 97 2 14쪽
15 14화. 다 부숴버릴까 23.12.16 103 2 16쪽
14 13화.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2) 23.12.15 114 1 16쪽
13 12화.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1) 23.12.14 122 2 17쪽
12 11화. 포기해 23.12.13 134 2 19쪽
11 10화. 왜 네 입에서 걔 이름이 나와? 23.12.12 14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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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대한민국에 암살자? +2 23.12.10 15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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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2 23.12.05 232 3 15쪽
2 1화. 약관을 자세히 확인하세요. +2 23.12.04 30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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