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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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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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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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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0쪽

16장-시원의 새벽 (5)

DUMMY

혼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었던 것일까.

죽음조차도 두 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하물며 그 혼마저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티엘은 무섭다거나 불안하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조차도, 닳아버려 무뎌진 혼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흐릿해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하지만 아름다운 어느 호수의 풍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얼어붙은 호수 위.

마찬가지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신전이 티엘을 내려보며 서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었던 걸까.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며 가볍게 뛰었다.

뭔가가 다르다.

저 신전을 눈으로 보는 것조차 처음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을만큼 흐릿한 기억 뿐이지만,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위화감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했다.

티엘은 천천히 눈을 돌려, 그 위화감의 정체를 살폈다.

신전의 중앙.

제단이 있었을까. 혹은, 다른 귀중한 성물이라도 품고 있었을까.

하지만 신전의, 그리고 이 얼어붙은 호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곳에 채워진 것은 그저 한 아름 정도의 심연.

마치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넓이만을 잘라낸 것처럼, 깊고, 짙은 어둠만이 아득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티엘이 서 있는 곳은, 그 구멍으로부터 겨우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자리였다.

'여긴 칼라가스의 안······, 인 걸까.'

티엘은 몸을 굽혀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단지 물이 깊어 어두운 것 조금 달랐다.

살아 숨쉬듯, 그리고 마치 티엘을 부르듯, 묘한 기류가 어둠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둠은, 마치 스스로가 평범한 물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처럼 티엘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스티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얼굴.

아니, '자신'의 얼굴.

자의식이 남아있다.

기억도, 자아도, 모조리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가라앉은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을 돌이켜보면, 눈 앞의 풍경이 바뀐 이후로도, 그녀는 스스로를 '티엘'이라고 의식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니, 어째서?

-그저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자는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그 때 갑자기 기묘한 목소리가 당황하던 티엘의 귓가에 들려왔다.

험준한 산꼭대기를 지나는 바람처럼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울림이 티엘의 전신을 잔잔하게 적셨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도, 말을 건네는 사람은 커녕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호수 자체가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하지만 티엘이 당황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목소리는 망설임 없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수한 이들 가운데 과거라는 안식을 버리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내일을 선택하는 이는 드물며, 더욱이 그 내일에 자신이 자리할 수 없는 자라면 더더욱 찾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멈춰서지 않는군.

"칼라가스?"

다시 한 번 온 몸을 흔드는 파문이 먼 곳에서 잔잔하게 울린 웃음을 실어왔다.

차가운 바람결에도 욕조에 몸을 담근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울림에는 옅은 부정이 섞여있었다.

아니, 질문을 던진 티엘조차도 이미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칼라가스의 목소리와는 다소 다르다.

더 무겁고, 더 커다란, 아마도 살아있는 자는 들을 수 없을 그런 목소리.

마치 오랫동안 방황하던 자식을 대하듯 자애롭지만, 동시에 엄격함을 머금은 기묘한 목소리가 약간의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녕 그대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겠는가? 정말로 자신의 존재를 걸 각오가 되어 있는가?

티엘은 다시 어둠이 고인 웅덩이를 보았다.

순간,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달아나고픈 충동이 몸을 휩쓸었다.

저 위로 발을 딛는다.

저 어둠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고 싶다는 마음은 커녕, 단지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얼어붙었다.

할 수 없다고. 그러고 시지 않다고. 몸이 미친듯이 떨리며,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올 까지도 격렬한 거부의 뜻을 내비쳤다.

'이런 감각, 알고있어······.'

언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이유도 없이 두려움에 떨며, 얼어붙은 호수를 힘겹게 건넜던 일이.

그 때는 어떻게 견뎠을까.

다리가 풀려 넘어지려는 것을 참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 그 이상까지 몰려버렸는데.

-이 호수는 그대를 재는 저울.

완전히 얼어붙은 티엘을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을 다독였다.

-그 중심으로 다가갈 수록, 계약으로 짊어진 인과의 무게가 그대의 어깨를 누르지. 그렇기에 이 신전까지 발을 들인 자 조차도 극히 적었으며, 이 방에 이른 자는 겨우 한 줌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떨림이, 조금은 멈췄다.

-도망치더라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한 걸음. 그대의 존재는 이미 흰 용으로 덧씌워져, 겨우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모두 지워진 것은 아니니, 짐을 덜어내고 돌아선다면 그 마지막 마음만은 남길 수 있을 터. 비록 부서진 혼을 남기고자 영으로 화할지라도,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한없이 답을 기다리는 순례에 몸을 맡기더라도,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터.

순간 티엘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스쳐갔다.

이미 옛 기억따위는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듯 갑작스레 선명하게 떠오르는 영상들이 있었다.

아르비주의 버려진 성소에서 꾸었던 꿈

네 명의 마법사와 맞섰던 어느 마법사.

그리고 아르타야의 히랄디안 로실데 호수에서 우룬의 불꽃을 지키고 있었던 생령, 구원의 좌(座) 펜살리르.

이상한 일이다.

접점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했던 두 기억이 묘하게 겹쳐지고 있었다.

아니, 접점은 있었다.

그때의 마법사가 쥐고 있었던 활.

그것은 분명 우룬의 불꽃, 이란데의 날개였다.

어째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마지막 순간 이피안 어로 말을 걸어왔던 그녀의 목소리는, 다름아닌 호수의 생령과 똑같았다는 사실을.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티엘의 주위로 어느새 희미한 그림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때 인간이었으나, 결국 부서지고, 가까스로 생령이 되어 이 호수에 묶여버린 수많은 '설원의 새벽'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티엘은 문득 익숙한 느낌이 드는 누군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한 때의 기억, 그리고 한 때의 만남으로 이어진 그녀, 펜살리르 역시도, 티엘의 모습을 멀리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의 씨앗이 썩는 것은 그를 통해 수많은 종자를 열기 위함이다. 그것이 이 땅에 새겨진 혼돈의 이치. 영웅이라 불린 자들도, 반신이라 칭송받은 자들도, 이 땅을 밟은 그 한 줌의 위인들도 한 때는 그것을 알았으나, 결국 이루지 못해 스러져버렸다. 원치 않는다면, 남아도 좋다.

"······그렇지 않는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건가요."

자신이 저들과 다르다는 오만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쳐버린다면 티엘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밤 새 탄식을 삼키며 끌어안았던 고민도, 더는 잃고 싶지 않기에 발버둥쳐온 시간도,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이 마음도, 모두 검은 용의 숨결에 스러져 사라져버릴 것이다.

도망칠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을, 무의미한 먼지로 만들 수는 없다.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어쩌면 바라는 대로 흑천의 날개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대가는 윤회조차 바랄 수 없는, 영혼마저 사라져버릴 완전한 무가 될 지도 모른다. 잃는 것을 두려워 한 자여, 그대는 정말로 그 대가를 짊어질 생각인가?

문득, 티엘은 어떤 시선을 느꼈다.

검은 용.

어느새 그림자처럼 주위를 감싼, 황금의 시선을 지닌 검은 용이 티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억센 육체를 감싸며, 빛나는 방패보다도 견고해보이는 칠흑같은 비늘.

그것은 얼핏 보기에 조금 전까지 그녀를 몰아붙인 시룡과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다르다.

하늘을 찌르는 열세 개의 뿔도, 안개를 찢어버린 여섯 장의 날개도,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금색의 눈동자도.

드높은 산봉우리처럼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을 눈은 고고하게 티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용을 보는 티엘의 눈이 낯선 감정으로 떨렸다.

검은 용은 그런 티엘을 위해 고개를 낮추었다.

긴 목이 수면 가까이 내려오며 티엘의 키보다도 더 커다란 눈동자가 거울처럼 그녀의 전신을 비췄다.

단검같은 이빨이 줄줄이 자라나있는 거대한 턱이 살짝 열렸다.

하지만 용은 티엘을 삼켜버리는 대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앞둔 자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건네왔다.

-두렵지는 아니한가? 한 포기의 들풀도 시듦을 두려워하며, 한티의 불씨도 사그라듦을 두려워하거늘, 그대는 죽음보다도 더 깊은 끝을 맞이하며 두렵지 아니한 것인가?

불길처럼 뜨거운 숨결이 수면을 달궈 옅은 수증기를 피워올렸다.

스치기만 해도 연약한 인간의 몸 따위는 사라져 버릴 치명적인 숨결.

하지만 그 숨결은 티엘에게 닿지 않았다.

해치지 않는다.

그녀 역시도 그의 아이. 그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있어 최초이자 최후의 아버지일테니까.

때문에 티엘은 담담하게 금색의 눈동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섭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당연히 무서워요. 누구라도, 사라지는건 무서울거에요."

티엘은 꼭 말아쥔 주먹을 가슴 위에 올렸다.

"······하지만, 멈추는 것이 더 두려워요."

-그것은 복수를 위함인가? 원한을 풀기 위함인가? 사랑했던 가족을 잃게 하였고, 사랑했던 연인을 잃게 한 자를 벌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려는 것인가?

복수?

원한?

티엘은 대답하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가장 먼저,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워 했다.

누군가를 잃었기에 복수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텐데도, 무의식중에 티엘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가슴 위의 손에 느껴지는 스스로의 고동을 들으며, 티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되새겼다.

그런 티엘의 귓가로 검은 용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대의 손에 쥐어진 힘이라면 세상을 찢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테지. 미친 불길처럼 날뛰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두터운 얼음속에 묻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대가 두려워한 흑천의 날개라 할지라도, 복수의 열망을 태우는 그대를 상대로 했다면 온전히 살아남지는 못했을테지. 그런데도 그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복수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를 느낄 수 없었을 뿐이에요."

-그대가 사라진다는 결과는 같더라도?

"무의미한 복수보다는······, 아직 지켜야 할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슬프다.

이제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건만, 또다시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것이 가슴을 찢어낼 만큼 슬프다.

분명 그 마음은, 한 줌의 거짓조차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활을 든 이유는 슬퍼서, 괴로워서가 아니었다.

더이상 슬퍼하고,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설령 르비아를 죽인다고 해도 떠나간 사람들이 되돌아오진 않는다.

그렇다면, 또다시 스스로를 책망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붙잡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순된 이야기로군. 그대는 어느 신관으로부터 기적을 약속받았을 때조차도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것은 소망하지 못했다. 저 흑천의 날개가 유혹하는 말에도 결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땅에서 맺은 인연으로 스스로를 이루는 자가, 이미 끊어졌다 하여 과거의 연을 져버리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티엘은 고개를 저었다.

"저 하나의 만족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상자정원에 가두는 거야말로······, 옳지 않은 일이겠죠. 강은······, 흘러야 한다고 믿어요."

갑자기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수면으로 잔물결이 번지고, 잔물결은 다시 흔들리는 파랑(波浪)이 되며, 이내 거친 파도가 되어 수면을 할퀴었다.

웃고있었다.

용이, 이 얼어붙은 호수가, 함께 웃고 있었다.

-한 때는 죽음을 동경했던 그대였다. 한 때는 죽음으로 도망치려 했던 그대였다. 허나 지금은 다르구나. 결과는 비록 같을지 모르나, 덧없이 태워버리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사그라드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도, 지금만큼은 용의 표정을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미소를 품은 채 티엘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겁쟁이에게 묻겠다. 만일,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그대가 돌아가고자 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돌아간다면······."

돌아간다면,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안아주고, 함께 웃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위해, 울어줄거에요."

-그 뿐인가?

티엘은 빙그레 웃었다.

검은 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셀이라면······, 제가 따라오는걸 바라진 않을테니까요. 어차피 사라져버릴 저로선······, 어디까지나 가정의 이야기지만요."

검은 용이 눈을 감았다.

번들거리는 비늘 위로, 마치 핏줄처럼 섬세하게 번진 붉은 문양이 문득 눈을 끌었다.

조각도로 파낸 듯한 문양이면서도, 쉴 새 없이 꿈틀거리며 제 모습을 바꿔가는 붉은 그림자.

마치 매 순간 모습을 바꾸며 흐르는 물줄기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군. 그저 살아가는 것. 슬픔도, 기쁨도, 그 삶에 그 어떤 바람이 불더라도 꺾이지 않고, 받아들이며, 품고서 살아가는 것. 그 것이 그대의 길이로군. 분명 원망으로 물들기 쉬웠을 그 삶이 그런 자세를 이어가는 것도 어려웠을 테지. 그 자세야말로, 날개 흰 용을 이끌었던 것이겠지.

이끌었다?

티엘이 의문을 품은 순간, 검은 용이 눈을 뜨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치 티엘에게 권하는 것처럼, 천천히 주위로 빙 둘러 시선을 던졌다.

-힘을 가진 자라면 응당 그것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법. 더군다나 마법사는 기적같은 일을 그 손으로 이루어내기에, 힘이 주는 유혹을 더더욱 이기기 어렵다. 그런데도 그대는 힘의 노예가 아닌 인간이길 바랐고, 인간으로 살아오며,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였다. 설령 그 앞길이 자멸로 이어진다고 해도.

용이 날개를 펼쳤다.

천 년이 흐르더라도 결코 녹아내리지도, 부서지지도 않을 것만 같았던 얼음의 신전이, 그 순간 조각조각 갈라지며 단숨에 무너졌다.

그러나 부서진 얼음들은 다시 지면으로 떨어지는 대신, 마치 속박을 끊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하늘로 떠올라 허공을 수놓았다.

-그대가 서있는 이 곳은 칼라가스의 내면이자 그의 영지, 그리고 칼라가스에게 삼켜진 계약자들의 무덤이다. 이 시대의 하늘과 땅이 열린 후, 수많은 자들이 이 호수에 잠들었다. 위대한 마법사들도, 강대한 영웅들도 있었다. 그대 이상으로 칼라가스와 교감한 자들도 있었지.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도, 자신의 길을 끝내 찾지 못하여 이 땅에 이르러, 칼라가스의 한없는 기다림에 함께하고 말았다.

몸을 활짝 펼친 용은 그 아득한 시선으로 한없이 펼쳐진 호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그림자들 역시, 아스라히 멀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쓴웃음을 짓는 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자. 그리고, 무언가를 기대하듯 티엘을 향해 눈을 빛내는 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가거라. 그렇게까지 자신의 길을 긍정하겠다면 망설임 없이 그 손을 뻗어라.

티엘은 검은 웅덩이를 향해 발을 떼었다.

그리고 무수한 시선들 가운데, 가벼운 파문을 일으키던 어둠은 티엘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마지막 심호흡을 남긴 티엘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것으로, 티엘을 이루던 마지막 한 조각의 파편조차, 물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져갔다.



* * *


이상한 풍경이 있었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설원과, 이상할 정도로 쓸쓸한 벌판 위로 끝도 없이 펼쳐진 잿빛의 하늘.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랫동안 시들어간 병자처럼, 생명력을 모두 잃어버린 세계. 쓸쓸함에 짓눌려 죽어버린 듯한 세상이었다.

그런 하늘 가운데, 문득 무언가가 흔들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희고 가벼운,

차고 가여운,

얇디 얇은 한 장의 꽃잎.

영원히 땅에 닿지 않을 듯 너울거리는 그 꽃잎은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의 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로운 눈꽃이라도, 한 번 지나친 길은 되돌이킬 수 없었던 것일까.

바람조차 탈 수 없었던 눈꽃은 지상으로 떨어져, 작은 구멍처럼 남아있던 마지막 얼룩을 덮었다.

죽어버린 세계를 위로하는 수의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듣는 이조차 없을 외로운 바람의 애가(哀歌)만이 소리없이 서글피 울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살아있지 않은 고독이란, 그 바람조차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희미하게 울리던 바람소리마저, 오래 지나지 않아 시들었다.

가장 외로운 설원은 점점 어두워지다, 마침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그것은 누구도 눈으로 담지 못했을 마지막 눈송이의 기억.

하나의 세계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몇 번이나 창세와 멸망을 반복하는 이 세계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찰나.

풀잎 끝에 맺혀 금방이라도 떨어질 이슬 속에 비친, 덧없는 풍경과도 같은 것이리라.

살아있는 것은 결국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세계 또한 불멸할 수는 없다.

스스로의 변화를, 스스로 품은 혼돈을 더이상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린 세계는 그로서 수명을 다 한다.

생을 다한 세계는 눈을 감고, 결국 모든 것은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영원이라는 말조차도, 이 앞에서는 사치스러운 것이다.

시간은 곧 변화.

하지만 모든 것이 잠들어버린 이 무(無)는, 변화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니 영겁의 세월조차도, 한 순간의 찰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스러져간 것들을, 정말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순간, 한 조각의 빛이 태어났다.

티끌보다 작은 빛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뒤이어 무수한 빛조각들이 그 뒤를 따라 태어나 하늘을 수놓는 강이 되어 흘렀다.

반짝이는 하늘의 빛 조각, 이스티엘(별).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헤아릴 수 없는 빛조각들은 홀로 태어나지 않았다.

깊은 밤 하늘에서 격렬하게 춤추며, 별무리를 이루어 하늘과 땅을 모두 휘감는다.

잃어버렸던 시간은, 그렇게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세상을 덮어버렸던 어둠은, 그렇게 다시 새로운 세계를 위한 빛을 허락하며 물러난다.

주위의 풍경은, 마침내 어둠속에 녹아들었던 것과 비슷한 설원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시 하늘 저 편에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내렸다.

얼어붙은 대지를 적시는, 눈물처럼 따뜻한 빗방울.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새로운 세상에서 첫 번째로 내린 빗방울은, 마지막 눈송이가 생을 마쳤던 바로 그 위로 떨어졌다.

녹았다.

죽음같은 얼음이 녹아내리며, 그 품에 새로운 물결을 담기 시작했다.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최초의 빗방울이 떨어진 곳으로 차츰 물방울이 모여들었다.

한 방울의 물은 작은 물 웅덩이로 자라고, 얕은 못을 이루다, 끝내 하늘을 비추듯 거대한 하나의 호수로 변해갔다.

그제서야 티엘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늘 위로부터 부감하며 내려보는 시선과, 호면으로부터 하늘을 올려보는 또 하나의 시선.

티엘의 시선은, 전혀 다른 두 방향에서 서로 겹쳐지고 있었다.

"칼라가스······."

소녀의 시선 끝에 놓인 것은 이스티엘의 모습.

용이 부드러이 미소짓는 끝에 있는 것은 칼라가스의 날개.

서로의 시선으로 서로를 비추는, 거울 아닌 거울.

겨우 한 걸음, 겨우 한 발짝을 사이에 둔 채로, 서로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눈 존재.

뒤늦게 찾아온 바람이 상쾌한 노래를 부르며 머리칼과 깃털을 휘감았다.

시릴 정도로 푸르게 개인 하늘 아래서, 하늘보다도 더 푸르른 눈이 티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티엘은 두 팔을 벌렸다.

아직, 손은 닿지 않는다.

손을 마주하기에는 아직 한 걸음, 부족하다.

하지만 칼라가스는 움직일 수 없었다.

몇 겹이나 되는 투명한 사슬이 아름다운 흰 용의 몸을 휘감은 채 그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천 년간 쌓인 끝에 얼어붙은 만년설처럼, 몇 겹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겹쳐 감긴 얼음의 사슬.

스스로의 힘을 깎아내기 위해, 티엘에게 전해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날개조차 펼 수 없을만큼 스스로를 묶어놓은 흔적이었다.

자신의 성장을 이겨내지 못하는 계약자를 위해, 칼라가스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안이었다.

티엘은 애틋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겨우 한 걸음.

하지만 그 사이를 나누는 것은 아찔할 정도로 깊고 가파른 절벽이었다.

그러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한 티엘은 단숨에 마지막 한 걸음을 좁혔다.

불안정하게 딛은 발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한없는 심연 속으로 그녀를 끌어당겼지만, 티엘은 악착같이 칼라가스를 묶은 사슬에 매달리며 온 몸으로 그 사슬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이미 한 덩어리로 얼어붙은 사슬은 그 정도로는 미동조차도 하지 않는다.

입술을 깨문 티엘은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하며 칼라가스를 끌어안듯 자신의 몸을 기댔다.

"괴로웠지······?"

칼라가스는 눈을 꼭 감으며 티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고귀한 이의 손등에 입 맞추는 기사처럼, 조심스럽게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제 괜찮아. 금방 풀어줄테니까······!"

티엘은 손을 들어올렸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손에 쥐여있던 이란데의 날개가 가슴을 에는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 활을 이루는 것은 태초에 우룬의 육신이 남긴 파편. 한때는 나와 하나의 존재였던만큼, 너를 대신해 힘을 담아내, 너를 지켜줄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 탓에 더 괴롭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칼라가스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대신해, 사슬 사이로 흘러나온 마력이 티엘의 뺨을 어루만졌다.

-최초의 계약으로부터 줄곧 너를 힘들게 해왔지. 이런 내가, 싫지는 않아?

"······하지만 항상 날 도와줬잖아. 너야말로······, 널 이렇게 만든 내가, 원망스럽지 않았어?"

티엘은 사슬 너머로 칼라가스에게 몸을 기댔다.

포옹하는 듯한 자세였다.

-원망할리가. 긴 시간 잠들었던 나를 깨워준, 소중한 친구인걸.

"너도, 내겐 소중한 친구야. 그러니까,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거야."

칼라가스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자아. 시위를 당겨. 한 발의 화살이면 충분해.

"응."

티엘이 시위를 당기자, 그에 맞추어 칼라가스 역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이름을, 너의 날개에."

-내 혼을, 너의 손 끝에.

노래하는 듯한 두 목소리가 하나의 선율로 휘감겼다.

"이로서 하나로 엮인 우리,"

-하나의 이름, 하나의 혼으로 서리니

서로 주고 받으며 이어지던 목소리.

그리고 다음 순간, 용과 소녀의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졌다.

"이 하늘이 거두어질 그 날 까지, 하나의 새벽을 나누리라."

안개처럼 피어오른 마력이 활을 휘감고, 다시 사슬로 스며들었다.

차르르르륵!

사슬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빙하가 깨져나가는 것처럼, 한데 뒤엉켜 있던 사슬들이 비명을 지르며 조각조각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칼라가스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두 날개를 힘차게 펼쳤다.

눈부신 흰 날개가 하늘 높이 펼쳐지며, 길고 날카로운 포효가 온 하늘을 울렸다.

흰 용이 오래 전, 계약자를 위해 스스로 묶었던 제약을 벗어던지고 있었다.

눈물처럼, 한탄처럼 떨어지는 바스라진 사슬의 조각에는 그녀가 겪어왔던 아픔과 탄식들이 애틋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아팠던 만큼, 칼라가스 역시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흔적이었다.

하지만 사슬의 조각들은 이내 바스라져 사라졌고, 그저 무수한 흰 깃털만이 마치 꽃잎처럼 휘날렸다.

아름다웠다.

역시 날개를 지닌 존재는, 묶여있어서는 안된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제 넌 자유야. 뒷일은 부탁할게."

티엘은 희미하게 웃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기쁘지만, 동시에 조금 슬펐다.

이제 자유로이 하늘을 날게 된 칼라가스와는 달리, 한계를 넘어버린 자신은 사라질 것이다.

칼라가스가 날아오르는 모습은, 아마도 볼 수 없으리라.

그것이 너무나 아쉽고, 슬펐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한 줄기의 바람이 티엘의 주위를 휩쓸었다.

쌓여있던 눈송이들이 상쾌한 바람을 타고 주위를 휘감았다.

이 눈꽃과 함께 녹아버리고 마는걸까.

그러나 바람을 피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티엘의 눈에 비친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오로지 흰 빛으로 가득한 세계에, 부드럽게 휘날리는 무언가.

함께 휘날리는 눈송이들 사이에서 더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는 그 머리칼은, 너무나도 익숙했던 밤하늘의 빛이었다.

깜짝 놀라며 파문 사이로 숨어버리는 눈동자 역시, 귓불에서 반짝이는 보석과 똑같은 보랏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꿈일까? 불티처럼 사라지기 직전에 보는, 덧없는 백일몽일까?

순간, 백은의 깃털이 허물어지듯 흩날렸다.

"아니. 자유로워지는건 나만이 아니야."

깃털 사이에서, 문득 푸르른 눈빛과 새하얀 머리칼이 눈길을 끌었다.

어느새 그 곳에 날개를 펼쳤던 용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티엘과 똑같이 생긴, 그저 하얗게 물든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을 뿐이었다.

흰 소녀는 말 없이 손을 내밀어, 티엘의 손을 맞잡았다.

"나의 근원이자, 모든 혼돈의 시작이신 나의 이버지, 엘드리안이시여."

낯선, 하지만 동시에 익숙한 기분.

마치 수의처럼 길게 펼쳐진 머리칼을 설원에 내려깐 겨울의 소녀는, 마치 기도하듯 가볍게 눈을 감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꺼풀에 숨겨진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밤하늘을 가르는 신어궁(神魚宮)의 성좌.

"시원의 용 칼라가스가, 이 날개에 짊어진 성좌의 이름으로 선언하겠습니다. 그녀는 나의 반려, 영원을 기다린 나의 답. 이 선택을, 아버지께서는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깍지 낀 손에 긴장이 흘렀다.

"칼라가스······."

흰 소녀는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도,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순간을 위해, 이제까지 영원의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이제와서 다시 기다리지 못할 것 따위 없으리라는 것처럼.

"대답해주세요, 아버지."

속삭이듯, 애틋한 목소리가 다시 먼 하늘로 흩어져갔다.

그 순간, 다시 주위의 모습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풍경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한 번 사라졌던 그림자들이었다.

구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모여든 무수한 그림자들은, 어느새 티엘과 칼라가스를 둘러싼 채 이 광활한 호수를 가득 메우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눈으로 보았고, 이 귀로 들었다.

그와 함께, 사라졌던 검은 용의 목소리가 웃음기를 머금고 다시 들려왔다.

-허락한다. 하늘의 별이 움직이고, 잠들었던 시간은 깨어난다. 성좌를 이끌고, 지켜나가야 할 자여. 그리고 새벽의 이름을 지켜온 흰 날개의 용이여. 마지막까지 내일을 바라는 그 마음이라면 분명 더 큰 짐을 짊어지더라도 헛된 길을 걷지 않으리.

엘드리안.

그는 소멸과 혼돈, 그리고 변화의 신.

그 신성을 이어받은 시원의 용들은, 지나치게 거대한 존재로 인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세상을 찢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힘을 억누르며 세상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형태의 인간을 찾아, 그들과 계약을 맺고 세상 안으로 녹아든다.

그렇기에 칼라가스는 티엘을 선택했고, 티엘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믿으며 이 자리에 섰다.

거짓된 행복에 묶여 변화를 거부하는 대신, 스스로를 잃더라도 그 앞에 있을 내일을 믿고 걷는 자. 아득한 과거, 칼라가스가 정한 삶의 형태.

칼라가스의 기다림은, 지금 이 곳에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긴 기다림에 대한 축복은, 이런 것이 마땅하리라.

쨍그랑!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부서졌다.

칼라가스 뿐만이 아닌, 티엘마저 함께 휘감고 있었던 그 무언가는 파편조차 남기지 않은 채 바람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티엘은 놀란 눈으로, 칼라가스는 열에 젖은 눈을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을 여는 자들이여. 황혼의 시간에서 기다리는 자, 혼돈과 소멸의 신 우룬 엘드리안은 그대들을 인정한다. 증오로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고, 과거에 묶여 멈춰서지 않은 채, 끝없이 나아가는 그대들을 성좌의 주인으로 맞이한다. 가라. 이 얼음의 땅에 오랜 기다림이 끝났으니, 그대가 증명하고, 그대가 밝혀낼 새벽을 향해 나아가라!

검은 신의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그 광활하던 얼음의 호수는 찬란한 빛 속에 잠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타난 그림자들의 모습도, 손을 마주잡은 친우의 모습도, 그리고 눈 앞을 가리는 눈꽃과 깃털도.

그러나 마주잡은 손 만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작가의말

음... 시원의 용의 선택은, 말하자면 폴라리스 랩소디의 하이마스터들의 선택과 비슷합니다.

“나는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 저 사람이야말로,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계약이 곧 선택은 아닙니다.  계약은 친화력만 충분하면 맺을 수 있지만, 저렇게 자신의 존재를 걸고 선택하는 자는 단 한 명 뿐.

시원의 용과 계약을 하는 자도 매우 드물지만 선택의 기로에 드는 자는 그 가운데서도 극히 드물답니다. 그런 사람들조차 저렇게 많아질 정도라면, 시원의 용이 한 번의 선택을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리는지는 감히 가늠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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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16장-시원의 새벽 (9) 19.11.29 58 3 32쪽
161 16장-시원의 새벽 (8) 19.11.28 66 3 24쪽
160 16장-시원의 새벽 (7) 19.11.27 95 3 34쪽
159 16장-시원의 새벽 (6) +2 19.11.26 78 4 28쪽
» 16장-시원의 새벽 (5) 19.11.25 62 4 30쪽
157 16장-시원의 새벽 (4) 19.11.24 68 3 30쪽
156 16장-시원의 새벽 (3) 19.11.23 65 3 30쪽
155 16장-시원의 새벽 (2) 19.11.22 64 3 29쪽
154 16장-시원의 새벽 (1) 19.11.21 71 3 28쪽
153 15장-귀향歸鄕 (11) 19.11.20 67 3 38쪽
152 15장-귀향歸鄕 (10) 19.11.19 62 4 25쪽
151 15장-귀향歸鄕 (9) 19.11.18 221 3 25쪽
150 15장-귀향歸鄕 (8) 19.11.17 60 3 24쪽
149 15장-귀향歸鄕 (7) 19.11.16 60 2 34쪽
148 15장-귀향歸鄕 (6) 19.11.15 64 4 24쪽
147 15장-귀향歸鄕 (5) 19.11.14 82 3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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