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포밍

레퀴엠(132)

Episode 131 - 나뉘어진 힘

"지휘부대장님, 지휘부대장님!"

누군가가 화람의 어깨를 흔들었다.

"으으으, 왜? 무슨 일인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상체를 들어올리니 정혁이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주무신지 두 시간도 더 넘게 지났어요, 회의 하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아, 뭐야. 조금만 더 자게 놔두지."

화람은 아직도 많이 피곤한 듯 크게 하품했다.

"하아아암, 다른 간부진들 한테도 말해놨어?"

"네, 곧 있으면 모두 회의실에 모일 거에요."

정혁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일어섰다.

"아이고, 그럼 어쩔 수 없네."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억지로 벗어난 화람이 허리를 뒤흔들며 몸을 풀었다.

"가보자, 최대한 빨리 끝내 보자고."

두 사람이 생활관을 나섰다.

회의실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1차적인 관문인 아이템 제작에 대한 불안함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인이 말했던 또 다른 아이템만 완성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범선에 침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어?"

화람의 동공이 커진 채로 자리에 우뚝 섰다.

정혁은 그 모습을 보고 똑같이 서 있었다.

"왜 그래요?"

화람이 두 손을 바라보다가 얼른 물었다.

"정혁아, 혹시 텔레포트 아이템 다른 누가 가져갔니?"

그 말을 듣자 정혁 역시 불안한 듯 눈이 흔들렸다.

"아, 아니요? 아무도 가져간 사람이 없을 텐데? 설마, 아니죠?"

화람이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 생활관의 문을 열었다.

쾅-!!

얼마나 놀란 것인지 아주 문이 부러져라 열렸다.

그녀는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두리번 거렸다.

"그 커다란 게 안 보이지는 않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이건 뭐지?"

정혁이 침대 위에 놓여진 작은 물체를 보고는 손으로 잡았다.

화람이 그의 손을 바라보자 5센치미터 크기의 얇은 마름모꼴 보석이 보였다.

정혁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화람에게 물었다.

"지휘부대장님, 혹시 이거 아니에요?"

하지만 보석과도 같은 생김새만 보일 뿐, 크기도 뿜어내는 빛의 농도도 확연히 달랐다.

"아, 이거 아닌 것 같은데?"

정혁은 고개를 돌리며 갸우뚱거렸다.

"그러면 안되는데, 혹시 뭐 들은 거 없어요?"

"일단 전화를 좀 해봐야겠어."

화람이 다급하게 소매를 걷어 콜 링의 전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기 시작하며 곧 덕광이 전화를 받았다.

[ 또 무슨 일이십니까? ]

이제는 화람의 전화가 불안한지 그는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저 사람도 참 불쌍하네.'

"아, 덕광씨. 다름이 아니라 뭐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 네, 얼마든지요. ]

화람은 조금 불안해 보였다.

하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아이템이 단 몇십 분만에 사라졌다는 것을 안다면 상대방은 기겁을 할 것이다.

"혹시, 아이템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나요?"

화람이 처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확실히 잘못되는 상황에 대한 후한이 두려운 것 같았다.

[ 사라지는 경우요? 아니요, 그런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

생각과 다른 대답이 나와 당황한 화람이 동공을 흔들었다.

[ 아, 혹시 아니면 쿨타임이랑 헷갈리신 것 아닙니까? ]

"쿨타임이랑 헷갈렸다는 게 무슨 뜻이죠?"

덕광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 원래 아이템의 상태는 커다란 삼각뿔 보석이잖아요, 그런데 쿨타임 시간이 되면 작은 마름모 모양으로 바뀌어요. ]

정혁은 자신이 들고 있는 보석을 응시했다.

"아, 그렇다면 이게?"

[ 혹여나 사용하셨다면 지금 마름모 모양의 보석이 있을 겁니다. ]

"아니, 그런데 쿨타임은 30분이 아니었나요? 어째서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쿨타임 상태를 유지하는 거에요?"

잠시 덕광이 대답을 머뭇거렸다.

[ 음......, 아! 제가 알기로 활성화를 시켜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되게 복잡한 기능들이 많아 보였다.

"활성화는 혹시 어떻게 시키는지 아시는 것 있습니까?"

[ 그 마름모 보석의 중간 부분을 누르면 된다고 하던데요, 혹시 중앙에 박혀 있는 붉은 보석이 보이십니까? ]

그의 말을 듣고는 화람이 곧장 아이템을 확인했다.

덕광이 말한 것처럼 정말 붉은 보석이 조그맣게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정말이네요. 보석이 박혀 있어요."

[ 그 보석을 눌러보세요. ]

화람이 조심스럽게 붉은 보석을 누르자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그 순간, 기이한 진동음이 들리며 마름모 보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뭐야?"

[ 가동되기 시작했네요. ]

울림의 소리가 링의 너머로까지 전달된 듯 보였다.

곧 푸른 결정이 하나 둘 씩 생성되기 시작했다.

"나타났다."

아주 작은 입자의 크기가 뭉쳐지며 마름모꼴의 보석을 감싸 점점 커졌다.

결정이 수천 만개, 수억 개, 수십 억개가 생성되며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동일한 모양으로 집합되었다.

"돼, 됐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완벽한 인피니티 텔레포트의 형상이 완성되었다.

"와, 정말 아름다운 보석인데요?"

정혁이 텔레포트를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텔레포트는 시중에 화려하다고 여겨지는 값비싼 보석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만약 세계 최고의 부자가 보석 수집의 취미가 있었다면 수 백억을 주고도 살 가치가 있을 정도로.

"작동은 잘 된다고 하셨죠?"

정혁이 아이템을 가리키며 묻자 화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는 길에 실험해봤으니 확실해."

그녀는 콜 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덕광씨, 고마워요. 다음에 제가 한 턱 쏠게요."

[ 그, 말로만 하지 마시고 진짜 쏘시는 거 어떨까요? 지금까지 한 턱 쏜다는 이야기를 네 번은 들은 것 같은데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 ]

뚝.

화람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정혁은 점점 덕광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했다.

"푸하, 다행이다. 사라진 게 아니라서."

"저도 놀랐어요, 설마 진짜 없어졌다면 시간이 더욱 지체되는 거니까요."

"그래, 아무튼 원인을 알아내서 다행이지. 일단 어서 가자, 이러다가 사람들 화내겠는데?"

"네, 그러죠."

두 사람은 서둘러 생활관을 나서 회의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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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구 - 아펠리온.

지안 가의 성역 혼테일.

"그래서요?"

리셸이 다리를 꼰 채로 홍차를 마셨다.

"일단 백상아리는 임무를 실패했고,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렇기에 가주님께서 헬 파이브를 출동시킨 것 같네."

리셸이 웃었다.

"재밌네요, 사실 백상아리가 실패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제페토가 책장의 책을 정리하며 말했다.

"자만이 문제일세, 원래 그런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행성을 침략하다보니 병이 든 게지."

리셸이 곁눈질로 제페토를 쳐다보았다.

"유능한 제자 하나를 잃었는데 슬프지 않아요?"

"흐음, 유능하다라......"

제페토는 책장의 정리를 잠시 멈춘 후,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맞아, 유능했지. 마치 개처럼 시키는 일에는 따박따박 잘하고 즐길 때는 즐기는."

제페토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리셸이 미간을 좁혔다.

"원래 백상아리를 제거하실 생각이었나요?"

그녀의 말에 제페토의 동공이 커졌다.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상체를 앞으로 빼며 두 손을 모았다.

"그래, 그럴 생각이었지. 요즘 너무 대가리만 커져서 말이야, 가주님께서도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놈을 처형시키라 하셨어."

"하지만 수고를 덜긴 했네요, 어찌저찌 루난도 다시 확보했고 백상아리도 죽었으니까요."

"하, 수고를 덜어줬으니 오히려 인간들은 나에게 고마운 존재라 해야 하나?"

제페토가 손으로 이마를 집었다.

"사랑하는 제자를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는데 정말이지 슬픈 현실이군, 흑흑!"

그가 우는 시늉을 하자 리셸이 손을 휘저었다.

"그런 이상한 연기는 그만두시죠, 당신의 이미지에 전혀 맞지 않으니까."

"그럴까?"

당장 얼굴을 들어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제페토였다.

"그나저나, 가주님께서는 도대체 왜 본인과 간부진이 아닌 헬 파이브를 보내는 걸까요?"

리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 각도를 돌렸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에 귀찮음을 느끼는 분이고, 게다가 가주가 직접 움직인다면 너무 그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 말은, 빌렉빅토르 가문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제페토의 말에 리셸이 혀를 찌르는 발언을 했다.

"흠, 그렇다 볼 수 있지. 하지만 빌렉빅토르 가문을 의식하는 것은 자네들도 똑같지 않나."

"맞는 말이에요."

빌렉빅토르 가문은 찬성파들이 가장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위험도 1순위.

만약 인간 세계에 제대로 침입했다가 그 가문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판도가 바뀔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이해는 잘 되지 않네요, 지금 그 가문의 가주는 계속 잠적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거취도 제대로 모르는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페토의 표정이 굳었다.

"모르는 거지."

"예?"

"그 남자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제페토가 진지해졌다.

그는 마치 과거의 잘못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저희 가문은 빌렉빅토르 가와 위치가 끝과 끝 지점이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요, 게다가 봤다 하더라도 가주가 아닌 방주들 한 두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요?"

리셸의 말에 제페토가 피식 웃었다.

"압도라는 걸 느껴본 적이 있나?"

질문의 의도는 잘 파악하지 못했지만 리셸은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은 한 번도."

"절대로 그를 맞상대할 생각도 하지 마라."

제페토는 절대적인 조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리셸은 무표정으로 테이블 위 홍차를 바라보았다.

"그와 싸워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페토가 아랫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몇십 년 전에 그랬지, 황야라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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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전의 아펠리온 - 황야.

"으으으으......."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

그리고 어두운 배경과 긴장 넘치는 음악이 흐를 것 같은 주위의 풍경.

말 그대로 황야였다.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시신들과 부상자들.

"커, 커헉......!"

제페토가 피를 흘리며 자신의 머리맡에 서있는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고통이 연신 찾아오며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거냐, 너희들은?"

남자의 울리는 목소리가 귀에 박히자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제페토의 머리채가 손에 잡히고 곧 몸이 들어올려진다.

"커, 커헉!!!"

윌의 얼굴이 보였다.

굉장히 심란해하는 표정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남을 해할 수 있는 거냔 말이야!!"

윌은 제페토에게 울분을 토했다.

"크크크,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 행성은 파멸뿐이다."

"그래, 너희는 너희의 신념대로 그 길을 가라. 나는 나의 신념으로 너희들을 필사적으로 막을 테니까."

그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이빨을 꽉 깨물었다.

- 내가 찬성파 이들을 모두 죽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