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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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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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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5,407

작성
23.11.1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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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레퀴엠(127)

DUMMY

Episode 126 - 재회



"자, 천천히 들이마셔요."

정혁이 지태에게 패트병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찰랑거리는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상 현실로만 봤을 때는 막막한 상황인 것이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복잡한 생각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지태가 패트 안에 들어있던 물을 모두 마신 후 숨을 골랐다.

"많이 다치셨네요."

화람이 그의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완전히 엉망진창이라 볼 수 있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팔과 먼지가 가득 묻은 제복.


사실상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또한 대단한 상황이었다.

지태가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 말씀을 들어보니까 꽤 심각하긴 하네요."

지태 본인 역시 헛웃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걸까요?"


정혁이 화람을 향해 물었다.

"갑자기 설이 누나가 전대를 공격하다니, 마치 조하나 지휘부대장님 때와 일어나는 사건의 플롯이 비슷해요."

간단하게는 윤 설이 헬 파이브에게 세뇌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 맞아 보였다.

지태가 정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네, 유감스럽게도 저희 백조전대의 소속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은데."

원인을 제대로 알 턱이 없으니 어물쩡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렇게 인정사정없는 자가 인간이었다니."


지태는 당황스러움과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모습도 좀 이상했어, 겉보기에는 몸의 절반이 사이보그로 변형된 것 같았는데."

정혁의 눈이 부릅 떠졌다.

최악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윤 설의 모습.

그는 아랫 입술을 깨물며 조심히 말했다.


"개조된 것 같아요."

화람이 정혁의 눈치를 보았다.

주먹에 힘을 세게 준 채로 미동 없이 서있는 최정혁.

연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사실 화람은 윤 설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미 꽤나 늦었다는 사실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반쪽이 보였기 때문에 전투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조하나 지휘부대장의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는 불가능이 없는 법.


머리를 쥐어짠다먼 사이보그의 형태를 인간으로 바꿀 방법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아......"

정혁이 레이저라도 발사될 것 같은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윤 설을 그렇게 만든 이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죽여야 한다는 생각 뿐.

화람이 걱정되는 듯 정혁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얹었다.

"정혁아, 진정해."

그러나 그런 간단한 말로는 절대 안정을 취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모른다.

정혁의 지금 심정을.

딱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 아이고, 결국에는 이렇게 됐구나.

이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정혁이 말했다.

"제인, 거기 있어요?"


- 응.

그녀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허공에서 제인이 튀어나왔다.

제인은 곡소리를 내며 허리를 연신 두드렸다.

"아이고, 삭신이야. 요즘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픈지 모르겠네."

지태는 새롭게 나타난 인물에 놀란 듯 뒤로 자빠졌다.

"뭐, 뭐야?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헤헤, 이 친구들이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쭉 있었는데."

제인이 해맑게 웃었다.

정혁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까 말했던 게 무슨 뜻이야, 결국에는 이렇게 됐다니?"

제인은 웃고 있는 표정 그대로였지만 대답을 망설이는 듯 보였다.


"충격 받지 말고 들어, 아마 설이는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헬 파이브에게 개조를 당한 것 같아."

그 말은 즉슨 이미 늦었다는 뜻이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범선으로 침투해 놈들의 목을 따버리고 싶었지만 정혁은 억지로 게이지를 꾹 눌러 참았다.


최대한 분노를 삭히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상태는 어때요? 심각합니까?"

"아까 살펴보니까 이미 코어가 육체의 90퍼센트 이상은 지배한 것 같아, 며칠만 더 있으면 아예 모든 감정과 자아가 사라지는 단계가 올 것 같은데."

참으로 솔직한 대답이었다.


"거짓말은 안해서 좋네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분노 게이지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였지만 괴랄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화 안내?"

제인이 걱정되는 듯 물었다.


그녀의 순수한 질문에 정혁이 억지 웃음을 보였다.

"왜? 내가 화내는 거 보고 싶어요?"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통 소중한 사람이 저렇게 잘못되면 화를 내는 게 정상이잖아."

"화는 나죠, 그런데 지금 화를 내면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참고 있어요."


제인이 까치발을 만들어 정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특하네."

그녀의 작은 한 마디안에 엄청나게 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는 듯했다.

화람 역시 칭찬해주기 위해 그의 등짝에 스매싱을 꽂았다.

빠악-!!!

경쾌한 타격감이 울려퍼지며 정혁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우와악!!"

"어, 너무 세게 때린 것 같은데......"

순식간에 바닥에 엎어진 그가 허리를 짚으며 일어섰다.

"아니, 왜 갑자기 때리고 그럽니까? 가뜩이나 몸도 감당이 안되는데."

화람이 관자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힘조절을 실패해서."


"잡담할 시간 있으면 저라도 먼저 챙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혁이 고개를 돌리자 진명에게 부축되어 걸어오고 있는 윤찬이 보였다.

정혁이 반가운 듯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민윤찬 지휘관님, 오랜만입니다. 몸은 괜찮으세요?"


그 질문이 어이가 없었다.

"하, 야 임마. 괜찮아 보이냐?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하면 대비라도 하지, 무턱대고 늑대전대로 가라길래 왔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윤찬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는 피해자였다.


화람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어."

윤찬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고개 드십쇼."

상관이 사죄하는데 안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윤찬 역시 최대한 유도리를 발휘했다.


정혁은 후폭풍이 지나간 주변을 훑었다.

대원들이 하나 둘 씩 깨어나기 시작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진명이 그 모습을 보고는 지태에게 말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저희 전대의 인원이 벌인 일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그러나 지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났던 것 같지만 사상자는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는 화조차도 내지 않은 채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일단 쓰러져 있는 분들부터 편안한 곳으로 옮겨 드려야할 것 같은데요."


화람이 지태에게 말하자 그는 곧바로 일어섰다.

"아, 그래야죠. 혹시 조금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바닥에 쓰러진 대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나도 도와주러 가야할 것 같은데, 정혁이 네가 윤찬이를 좀 맡아줄 수 있겠냐?"

진명이 어깨동무를 풀며 정혁에게 물었다.


"예, 제가 지휘관님을 데리고 있겠습니다. 다녀오십쇼."

"그래, 부탁한다."

진명이 지태와 화람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상처는 좀 괜찮으십니까?"

정혁이 윤찬에게 말을 건네며 손을 펼쳤다.

하얀색의 계수 결정이 나타나며 윤찬의 몸에 스며들었다.


"왜 이렇게 나한테 괜찮냐고들 물어보는 거야, 보면 모르는 거야?"

"사실 안 괜찮은 것 같기는 합니다."

정혁이 장난치듯 얄미운 목소리로 말하자 윤찬이 웃음을 터트렸다.

"풉, 근데 윤 설 저 자식, 어떻게 저렇게 강해진 거야?"

윤찬의 얼굴이 꽤나 심란해 보였다.


백조전대를 떠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윤 설이 방금 전투에서 보여준 힘은 자신조차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정혁 역시 그 부분이 의문스러웠다.

"저도 그게 좀 궁금해요, 분명 각성 단계를 깨우쳐 강해진 것은 맞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아까의 전투에서 윤 설이 보여준 힘은 전대의 모든 이들이 함께 덤벼도 버거울 정도로 강력했다.

"제인, 그쪽은 이유가 뭔지 알아요?"

옆에 서서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던 제인이 말했다.

"개조당했기 때문이지, 이미 사이보그 프로그램에 잠식되어 있어서 그런 거야."


"그 사이보그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사람이 저렇게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프로그램으로 강해졌다 한들 그 편차가 너무 컸기 때문에.

"윤 설이 장착하고 있던 사이보그 프로그램은 Alpha - M, 놈들이 발명해낸 노예 가동 프로그램 중에서도 최상급일 거야."


"도대체 힘에 관련된 기능이 뭔데요?"

"자신이 체내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도 감당할 수 있게 신체를 강화시켜주는 기능이지."

말 그대로 본인의 전력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

"그렇다면 지금 설이 누나가 보여준 힘이......"


"맞아, 잠재력을 모두 끌어낸 그 아이의 전력이라는 뜻이지."

고작 프로그램을 하나 장착한 것만으로도 그게 가능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헬 파이브의 과학력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 같아요?"

정혁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시간을 말하는 거야?"

"사이보그 프로그램이 설이 누나를 완전히 잠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요."

제인이 거짓 없이 말했다.

"일주일도 남지 않았을 거야."

일주일, 시간으로 계산하자면 168시간.


정혁은 회복의 계수를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주일이면 충분하네요."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 뒤 어딘가로 향했다.

윤찬은 어색한 표정으로 제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제인이 곁눈질로 윤찬을 노려보더니 곧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흠, 뭐지?"

제인이 윤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 아니,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사람 얼굴을 그렇게......"

"아니, 누구를 닮은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기억이 안나네."

"연예인이라면 아무도 안 닮았으니까 그렇게 가까이서 보지 마세요."


------


- 후우, 후우.

망토를 뒤집어 쓴 남자가 윤 설을 업은 채로 몸을 숨긴다.

백조전대와 늑대전대의 이들이 모여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저 아이인가.

남자가 머리를 덮은 두건을 벗었다.


토르메.

그는 늑대전대의 대원들을 부축하고 있는 정혁을 응시하며 말했다.

- 저 아이인가, 너를 구해주러 올 운명의 예언자가.

윤 설이 감은 눈을 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스파크 소리를 낼 뿐이었다.

- 그래, 자질은 충분하군.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일 거야.


토르메는 급하게 몸을 움직여 늑대전대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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